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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야전렬차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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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0건 조회 1,841회 작성일 22-12-27 0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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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0 회

40

 

《아, 정말 원통합니다! 어버이장군님도 세상을 떠나실수 있습니까! 태양도 꺼질수 있는가 말입니다!》

《이게 꿈입니까, 생시입니까. 아닙니다, 꿈입니다! 아무러면 장군님 우리 인민을 두고 어떻게 가실수 있단 말입니까.… 너무도 힘드시여 달리는 야전렬차에서 쪽잠에 드실 때처럼 잠시 쉬시는게 아닙니까. 제발 빕니다. 그래주십시오. 어서 깨여나시여 잠간 잠들었댔다고 말씀해주십시오.》

《절통하구나! 우리 이제 더는 아버지장군님품에 안길수 없단 말입니까! 장군님의 다정하신 음성 이제 더는 들을수 없단 말입니까! 아, 아버지! 가지 마십시오. 가시면 안됩니다!》

《나 같은게 일흔살 먹고도 펀펀히 살아있는데 우리 장군님 가시다니!… 세상에 이런 변고도 있습니까. 의학은 왜 있고 의사들은 뭘했습니까.》

《아, 장군님, 심장의 고동이 멎는 순간에 얼마나 고통스러웠겠습니까. 우리들의 심장을 모두 합쳐 장군님의 심장을 다시 뛰게 할수는 없습니까?! 그럴수만 있다면 이 심장을 서슴없이 바치겠습니다! 세상에 그런 기적은 왜 없단 말입니까? 장군님!…》

《장군님!… 저는 장군님 앓고계시는줄 몰랐습니다. 그렇게 불편하신 몸으로 우리 방직공장을 찾아주신줄은… 아픔을 내색 안하시고 전화를 걸어주신줄 몰랐습니다. 홍순이랑 우리 직포공들이 장군님 바라시던대로 온 나라 학생들에게 입힐 교복천도 다 짜고 샤쯔천도 폭포처럼 쏟아지고있는데 그걸 보시지 못하고 가신단 말입니까! 안됩니다, 절대로 가실수 없습니다.》

《최고사령관동지, 그토록 념원하시던 조국통일의 그날을 두시고 이렇게 가시면 우리 병사들은 어떻게 합니까. 아, 장군님.》

《장군님, 우리 대학 로학자들에게 70돐, 80돐 생일상을 보내주셨는데 천만군민이 올리는 70돐 생일상도 받지 못하고 가실수 있습니까! 이 가슴이 갈기갈기 찢기는것 같습니다.》

《어버이장군님!… 불효막심한 자식들이 왔습니다. 우리가 장군님안녕을 축원한다고 말만 하지 말고 뼈심바쳐 일해왔더라면… 장군님께서 그토특 고생하지 않으셨겠는데… 부모가 다 해줄것을 바라는 철없는 아이들같은 우리들때문에 장군님께서 너무도 일찌기 돌아가셨습니다.… 엎드려 용서를 빌고빕니다.》


국가장의위원회성원들과 함께 어버이장군님의 령구옆에서 호상을 서시여 조객들을 맞이하시던 김정은동지의 귀전에는 가슴이 찢어지는것같은 통곡소리와 피눈물을 삼키며 부르짖던 인민군장병들과 평양시민들, 지방대표들, 각계층 인민들의 애절한 목소리가 여전히 쟁쟁히 들려오는듯 하시였다.

잠시동안의 휴식도 없이 울음홀옆의 작은 방에서 다시금 긴급히 제기되는 국사를 돌보시려고 문건을 마주하셨지만 비통함에 젖어드는 쓰라린 마음을 안정하실수 없고 뜨거운 눈물이 자꾸만 고여올라 글줄을 읽어나갈수 없으시였다.

그이의 가슴속에서는 인민이 흘리는 눈물의 바다가 꽉 차오르고 슬픔의 격랑이 끝없이 뒤설레였다.

(장군님, 정말이지 일어나실수 없습니까. 천만군민이 웁니다. 인민이 장군님을 목메여 부르고부릅니다. 인민이 원한다면 돌우에도 꽃을 피우시는 장군님께서 그 인민의 이 간절한 소원을 왜 들어주지 못하십니까!…)

울음홀쪽에서 들려오는 비장한 추도곡소리와 통분함을 절규하는 조객들의 피눈물젖은 목소리가 끊기지 않고 그이의 가슴을 허비였다.

(장군님께서 초강도강행군현지지도길에서 일신의 모든 아픔을 내색하지 않으시고 환하게 웃으실 때 우리 인민은 강성부흥하는 앞날만 그려보았지 장군님 안계시는 조선, 슬픔의 곡성이 차넘치는 조국을 상상해보지조차 못했습니다. 그래서 저리도 절통해합니다.)

김정은동지께서는 눈물속에 문건을 다 보시고 아까부터 서있는 일군에게 시선을 돌리시였다.

《무슨 일입니까?》

《저… 장군님께서 평양시민들에게 공급하라고 하신 물고기가… 오늘 아침 원산항에 도착했습니다.》

《그걸 왜 이제야 말합니까. 문건을 이리 가져오시오.》

문건을 보신 그이께서는 침통한 어조로 말씀하시였다.

《장군님께서 16일 밤에… 생애의 마감날 밤에 수도시민들을 위해 취해주신 사랑의 조치인데… 우리들이 집행을 잘해서 장군님의 뜨거운 사랑이 시민들에게 빠짐없이 가닿도록 해야 합니다. 설날까지 열흘밖에 없는데 빨리 수송조직을 해야겠습니다. 애도기간이라고 이것저것 재지 말고 화물렬차, 랭동차들을 긴급동원하시오. 날씨가 추우니 일반화물자동차들도 물고기를 실어나를수 있을것입니다.》

김정은동지께서는 활달한 필체로 문건을 비준하시고서 물으시였다.

《야외조의식장들에 장군님태양상을 모셨습니까?》

《예, 김일성광장과 당창건기념탑마당, 체육관과 하나음악정보쎈터와 4. 25문화회관 앞광장에 모셨습니다. 도소재지 야외조의식장들에도 오늘중으로 장군님의 태양상을 다 모시게 됩니다.》

한밤중에 김정은동지께서는 손수 승용차를 모시고 김일성광장으로 향하시였다.

가로등빛이 대낮처럼 밝게 비치는 창전거리에는 저마끔 손에 흰 꽃송이를 든 남녀로소 추모의 행렬이 만수대언덕으로, 김일성광장쪽으로 끝없이 흐르고있었다.

그이께서는 좀전에 일군이 보고올리던 말이 생각나시였다.

라지오방송과 텔레비죤으로 대국상의 억장이 무너지는 비보가 나간 19일 낮 12시부터 20일 하루동안에만도 연 500만명에 달하는 시민들이 만수대언덕에 모신 위대한 수령님의 동상으로 달려와 곡성을 터뜨렸다. 사람들은 어버이장군님을 목놓아부르며 쓰러지듯 엎드려 땅을 쳤고 대돌을 끌어안고 몸부림쳤다. 비애의 견딜수 없는 정신적충격에 졸도하는 사람들이 허다했다.

다박솔초소와 오성산, 대덕산, 초도와 철령너머의 군부대들… 최전연 천리방선의 하늘과 땅, 바다초소들에서 인민군장병들이 가슴을 두드리며 비분의 피눈물을 쏟았다.

백두산기슭의 하늘아래 작은 마을, 대흥북두봉 분광산, 지심깊은 탄광막장, 서해의 외진 섬마을에 이르기까지 조선의 방방곡곡, 일터마다에서 어른, 아이들모두가 달려나와 울음을 터뜨리고 어버이장군님을 목메여불렀다. …

김정은동지께서는 행길에 사람들이 넘쳐나 도로가녁에까지 줄지어가는 바람에 승용차를 더욱 천천히 모시였다.

이렇게 밤거리에 나서시니 장군님께서 사랑하시던 온 조국땅의 돌이킬수 없는 상실의 크나큰 슬픔이 그대로 가슴에 마쳐오시였다.

검은구름층이 겹겹이 서리여 어둠이 더 짙고 무겁게 내리덮인 김일성광장에는 수십만의 군중이 립추의 여지없이 들어찼다.

군중은 광장주석단아래에 꾸려놓은 조의식장으로 끊임없이 밀려가고있었으나 그 흐름은 조의를 표시하고 장군님의 태양상앞에서 통곡하며 엎드려 좀처럼 일어나려 하지 않는 사람들로 하여 너무도 더디였다. 조의식장앞에까지 가자면 두어시간은 실히 걸려야 할것 같았다.

차에서 내리신 김정은동지께서는 멀리 광장주석단 벽가에 모신, 투광등빛속에서 사랑하는 인민을 향해 환히 웃고계시는 장군님의 태양상을 점도록 바라보시였다. 순간 또 눈물이 쿡 치솟아오르시였다.

오로지 장군님께서 생존해계실 때, 경사스러운 민족최대의 명절인 2월 16일, 장군님탄생 70돐을 맞이하여 온 나라 가정들에 장군님태양상을 모시려고 몇해전부터 얼마나 심혈을 바쳐왔던가.

그리하여 저렇게 강철의 기상과 담력, 창조의 예지와 만민을 품에 안으시는 자애로움이 넘치는 장군님의 태양상을 완성하였는데… 인민의 곡성이 하늘땅을 진감하고 눈물의 바다인 이 추모장소, 사람들이 원통함에 땅을 치는 이 조의식장에 모시리라고 상상이나 했던가.

김정은동지께서는 너무도 가슴이 쓰리고 고통스러워 떠날줄 모르시였다.

생각할수록 기가 막히시였다. 하늘은 어찌하여 인민들의 애끊는 소원을 알아주지 못하는가. … 정말이지 무심하다. 어쩌면 자신의 지성을 그리도 몰라준단 말인가.

그이께서는 절통스런 후회와 애석함으로 하여 승용차에 오르지 못하시였다.

김일성광장은 어버이장군님의 태양상을 뵈오려고 찾아오는 조객군중으로 바다를 이루었다.

사람들의 말소리는 거의나 들리지 않고 울음소리와 오열을 터뜨리는 몸부림의 크낙한 신음소리만이 별 하나 없는 숯처럼 캄캄한 밤하늘을 진동했다.

무수한 조객군중한테서 서려오르는 입김은 강추위에 얼어붙어 종합청사건물지붕과 사방에 설치한 광원이 센 조명등과 투광등들의 교차된 빛줄기속에 밤안개마냥 피여올랐다.

많고많은 군중이 광장에 들어차고 언눈이 과다진 도로와 가로수길과 눈쌓인 잔디밭에 사람들이 넘쳐나건만 그 조객군중의 바다는 인솔자도, 지휘하는 사람 하나 없어도 질서있게 조용히 움직였다.

슬픔에 굳어진 거대한 행렬의 한쪽은 희디흰 화환들에 검은 댕기를 드리운 광장주석단앞의 조의식장으로 서서히 흐르고 행렬의 다른쪽은 거기서 흘러나온다. 조의식장으로 가는 사람들도, 나오는 행렬의 사람들도 눈물만 가득하다. 개개의 사람들이 흘리는 눈물이 시내를 이루고 강물이 되기라도 하는듯 온 광장은 눈물의 바다이다.

김정은동지께서는 승용차에 올라 조향륜을 잡으시였지만 자신과 한마음이 되여 슬픔을 나누고있는 인민, 어버이장군님을 우러러 흠모하고 온넋을 바쳐 추모하는 인민의 고결한 충의의 마음에 감심하여 광장을 떠날수 없으시였다.

얼마후에야 승용차는 김일성광장의 조의식장으로 끊임없이 굽이쳐오는 군중들로 하여 도로를 메우다싶이해 조금밖에 열리지 않은 차길로 조용히 달렸다.

승리거리를 지나면서 사람들의 물결은 버성겨졌다. 그런데 평양역앞거리와 공원에는 수많은 군중이 운집해있었다.

얼핏 보기에도 기차를 타려는 손님들도 아니고 친지들을 마중나온 사람들도 아니라는것이 알렸다.

야외조의식장도 없겠는데 어떻게 되여 군중이 이렇게 많이 모여있는가.

김정은동지께서는 뒤좌석에 앉은 일군더러 가서 알아보고 오라고 하시였다.

얼마후에 돌아온 일군은 목이 메는지 선뜻 사연을 말하지 못하였다.

《대장동지… 저 사람들은 장군님께서 서거하셨다는걸… 절대로 믿질 않는답니다. 어버이장군님께서 이제 야전렬차를 타시고 강행군현지지도길에서 돌아오신다고… 장군님께서 야전렬차로 늘 떠나시던 평양역으로 꼭 돌아오신다고 굳게 믿는답니다.… 만가지 일을 보시니 좀 늦으실수 있다고… 자기들이 기다렸다가 마중한다는겁니다. 중대보도가 나간 날에는 사람들이 지금보다 훨씬 더 많았다고 합니다.》

김정은동지께서는 가슴이 뭉클하시였다.

밤 2시였다.

평양역사의 탑시계에서 은은한 종소리가 울리는 동시에 평범한 여느날과 다름없이 그리움의 서정깊은 기악선률이 하늘가에 울려퍼졌다.


북두칠성 저 멀리 별은 밝은데

아버지장군님은 어데 계실가

창문가에 불밝은 최고사령부

장군님 계신 곳은 그 어데일가


역사앞에 모여선 사람들은 손으로 얼굴에 흐르는 눈물을 훔치면서 경건한 몸가짐으로 굳어져있었다.

김정은동지께서는 어버이장군님의 태양상을 모신 체육관앞마당과 4. 25문화회관광장의 조의식장에 가셔서도 조객군중의 바다, 가슴찢기는 오열의 곡성과 눈물의 바다를 절감하시였다. 밤이 깊어 기온이 더 내려가고 맵짠 바람이 휘몰아치건만 시민들은 조의식장을 떠나지 않는다. 장군님의 태양상앞에서 호상을 서는 조객은 늘어만 간다. 어른들도 아이들도 늙은이나 녀성들도 솜옷모자니 털모자, 목수건을 쓰지 않고 장군님의 신변을 지켜드리는 영원한 호위병이 된듯 엄숙히 고개를 숙이고 서있다.

눈바람에 조의식장의 화환들이 상할가봐 자기의 솜옷을 벗어 씌운 대학생들이 맨 교복차림으로 호상을 서는가 하면 너무도 슬피 울어 혼절하여 쓰러진 녀인들도 있다.

어떠한 타이름도 완력으로도 그들을 교대시킬수 없고 집으로 보낼수 없다. 밤추위에 온몸이 얼어들고 지쳐 쓰러질지언정 자애에 넘쳐 환하게 웃으시며 앞날을 부르시는 장군님과 함께 있고싶고 생전에 지켜드리지 못한 장군님의 안녕을 그렇게라도 지켜드려야 속죄가 되고 슬픔에 언 마음이 조금이라도 녹는것이였다.


동이 훤히 틀무렵에야 김정은동지께서는 집무실에 돌아오시였다.

그이께서는 눈바람랭기에 꽈닥꽈닥해진 외투를 벗으시고 서둘러 집무탁에 마주앉으시였다. 곱아드는 찬손을 맞비비시고나서 종이장을 당겨 활달한 필체로 친필서한을 써나가시였다.


장의행사기간 인민들의 리익을 옹호하고 편의를 철저히, 우선적으로 보장하는데 중심을 두고 모든 행사 조직진행할것이다.

또한 의료보장대책, 더운물보장대책 철저히 따라세우고 평양시는 물론 전국 각지에서 각종 사고방지대책을 예견성있게 세우도록 해야 하겠음.

각급 당조직들에서 (일군들이) 책상에 앉아서만 추운 겨울밤 인민들걱정을 하지 말고 일별, 시간별 교대로 현장에 나가 인민들을 위로하고 그들과 함께 슬픔을 나누며 어려운 시기를 헤쳐나가도록 해야 하겠음.

당조직들(일군들)에서는 추운 겨울밤 추위속에서 인민들이 떨고있다는것을 아시면 우리 장군님께서 가슴아파하신다는것을 명심하고 인민들의 편의를 최우선 절대적으로 보장할것.


김정은동지께서 넘겨주시는 친필서한을 정중히 받아들고 집무실을 나갔던 해당 일군이 무슨 보고드릴 일이 있는지 조금후에 다시 들어왔다.

《아, 부부장동무, 내 그러지 않아도 강조한다는것을 잊었습니다.》

그이께서는 인민을 생각하시는 촉박한 심정에 친필서한에 구체적으로 쓰지 못한것을 말씀하시였다.

《야외조의식장을 찾는 인민들과 호상을 서는 사람들이 털모자와 머리수건은 물론 장갑과 귀덮개를 착용하게 하고 조의를 표시할 때에만 벗도록 하시오. 밤날씨가 여간 춥지 않은데 사람들이 추위에 떨거나 동상을 입는것과 같은 일이 절대로 나타나서는 안되겠습니다. 야외조의식장주변에 사람들이 들어가 몸을 녹일수 있게 훈훈한 가설막들을 전개하도록 하시오. 난방장치가 구비된 각종 뻐스들을 배치하는것도 좋을것입니다. 조의식장에 치료용구급차들은 이미 대기하고있겠지요?》

《예, 시내 모든 병원들에서 떨쳐나섰습니다.》

일군은 수첩에 그이의 말씀을 다 적고나서 잠시 머뭇거리나가 입을 열었다.

《저… 존경하는 대장동지, 인민들이 지금 너나없이 당조직에 조의금을 바치고있습니다. 벌써 전국적으로 100억원이 넘습니다.》

《무슨 명목으로 바칩니까?》

김정은동지께서는 근엄한 표정을 지으시였다.

《인민들이… 마음껏 울음을 터칠수 있게 어버이장군님의 동상을 모셔달라고… 장군님의 업적이 하늘같으신데 왜 이제껏 동상을 모시지 않았는가 하면서 스스로 바치는겁니다. 저희들의 잘못이 큽니다. 이미전에 장군님의 동상을 모셨더라면…》

집무실에 정적이 깃들었다.

그이께서는 힘겹게 일어나시여 조용히 방안을 거니시다가 자책감에 젖어있는 일군앞에 다가와 멈춰서시였다.

《가슴이 아픕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장군님의 동상을 한상도 모시지 못하다보니 인민들이… 장군님께서 서거하셨다는 비보를 받고 어디에 가서 장군님께 조의를 표시해야 할지 몰라 수령님의 동상과 사적비를 찾아 달려갔습니다.》

김정은동지께서는 무척 괴로우시여 갈린 음성으로 뇌이시였다.

《동무들의 잘못이 아닙니다. 그리고 장군님의 동상을 자금이 없어 모시지 못한것이 아닙니다. 장군님께서는 생전에 자신의 동상이나 기념비를 세우겠다는것을 절대로 승인하지 않으시였습니다. 너무도 엄격하시였습니다. 장군님께서는 위인의 력사는 동상이나 기념비로 빛나는것이 아니라 사상과 업적으로 빛나는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한생을 조국과 인민을 위해 자신의 모든것을 아낌없이 바칠 때 그 업적은 조국청사와 더불어 인민의 마음속에 영원히 간직되는것이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일군은 숭엄한 감정에 젖어 그이의 귀중한 말씀을 새겨들었다.

《인민들에게 조의금을 돌려주도록 하시오. 장군님령전에는 절통스런 추모의 마음과 그리움의 충의를 담은 꽃송이를 놓아드리면 됩니다. 장군님은 생전에 오직 우리 조국의 부강발전과 인민의 행복을 위해 헌신해오시고 생명을 바치셨지 인민에게서 꼬물만치도 덕을 입으려고 하신적이 없습니다. 장군님께서는 우리 인민들의 조의금을 바라시는것이 아니라 슬픔을 힘과 용기로 바꾸어 백배의 정신력을 가지고 인민생활향상을 위해, 세상에 부럼없는 강성국가를 건설하기 위해 분연히 일떠서기를 바라십니다.》

두어시간에 걸쳐 긴급히 제기되는 문건들과 국사를 처리하고나신 김정은동지께서는 인민봉사부문을 담당한 일군을 찾으시였다.

새벽부터 야외조의식장에 나가 조객군중들에 대한 봉사활동사업을 지휘하며 슬픔을 나누고있던 일군이 급히 집무실에 달려왔다.

《몸이 얼었겠습니다.》

그이께서는 일군을 반가이 맞아주시였다.

《일없습니다. 시민들속에 섞여있으니 추운줄 모르겠습니다.》

《조의식장분위기가 어떻습니까?》

《존경하는 대장동지의 가르침대로 일군들이 모두 추운 야외조의식장들에 떨쳐나가 시민들을 돌봐주고있습니다. 대장동지의 말씀대로 조의식장을 찾는 시민들에게 맹물대신 뜨끈한 사탕물과 꿀물, 우유를 마시게 하니 모두들 격정의 눈물을 흘리고있습니다. 호상을 서고있는 사람들은 〈조상전래로 상제가 더운 방에서 꿀물과 우유를 마시고 빵을 먹으며 지낸적이 있었는가.〉고 하면서 모두들 울었습니다.》

《부부장동무는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알지요?》

김정은동지께서는 화제를 바꾸어 물으시였다.

《예… 12월 22일…》

《그렇습니다. 동지날입니다. 오늘 급양봉사망에서… 시내 식당들에서 동지죽을 쑵니까?》

《저… 대장동지…》

일군은 갑자르다가 겨우 대답올렸다.

《닷새전에… 어버이장군님께서 조치를 취해주시여 흰쌀과 팥, 찰수수 같은 동지죽원자재들을 급양봉사망들에 공급했습니다. 그런데… 대국상의 비보에 접하고서… 식당문들을 다 닫았습니다.》

《잘못되였습니다.》

김정은동지께서는 근엄한 안색으로 뇌이시였다.

지난 시기 동지날이 오면 위대한 장군님을 한자리에 모시고 최고사령부지휘성원들이랑 일군들과 같이 찰수수오그랑이를 둔 엇구수한 동지죽을 맛나게 들던 일들이 삼삼히 떠오르시였다.

언제인가 최전연의 한 군부대의 중대교양실에 들리셨던 장군님께서는 벽보에 동지죽에 대해 씌여진것을 읽어보시고 웃음을 지으며 일군들에게 말씀하시였다. 동지날 팥죽속에 들어있는 오그랑이를 자기 나이만큼 먹어야 좋다고 했는데 틀린 견해이다, 만일 나이가 예순이 넘은 사람이라면 그만큼 먹어야 한다는 소린데 그렇게 되면 아마 소화를 못 시키고 불편하게 될것이 아닌가, 또 한창나이의 젊은이들은 더 먹고싶어도 먹지 못하게 되니 얼마나 속상한 일인가, 벽보에는 동지날의 유래와 동지죽 만드는 방법을 써넣으면 된다.…

김정은동지께서는 눈굽이 축축히 젖으시여 그날의 장군님의 다심하신 모습을 추억하시였다.

평소에 산같이 무거운 사업부담으로 하여 휴식도 못하시고 때식도 건느기 일쑤이신 장군님이시지만 동지날이면 잊지 않고 꼭꼭 민속음식인 동지팥죽을 쑤게 하시고 전화로 일군들을 찾으시였다.

《동지날을 쇠며 동지죽을 먹는것은 좋은 일입니다. 한가마에 쑨 동지죽을 먹으면서 한살을 더 먹었다는 생각과 함께 지난해를 돌이켜보며 새해결의를 다지게 되니 좋고 이웃들이 서로 동지죽을 나누어먹으면서 화목을 도모하니 또한 얼마나 좋습니까.》

동지팥죽이 풍기는 민족적향취로 사람들의 마음을 후덥게 해주시고 소박한 민족음식을 들어도 인민의 마음속에 열렬한 애국을 심어주시던 장군님께서… 인민이 동지날을 쇠도록 생애의 마지막날까지도 사랑을 베풀어주셨는데 동지죽을 쑤지 않아서야 되겠는가.

《부부장동무, 만사를 제쳐놓고 급양봉사망들에서 동지죽을 쑤도록 하시오. 식당문을 열고 시민들에게 동지팥죽봉사를 합시다.》

《알겠습니다.》

한낮이 기울었을 때 일군은 무척 걱정스러운 얼굴로 다시금 김정은동지의 집무실에 찾아왔다

《존경하는 대장동지, 저희들은 참말이지 어떻게 했으면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식당봉사망들에서는 대장동지의 은정깊은 말씀을 받들고 비상소집을 하다싶이 했습니다. 봉사원들이 총동원되여 동지팥죽을 맛있게 쑤고 식당출입문을 활짝 열었습니다. 그런데 식당앞으로 지나가는 시민들은 들어올념조차 않고 그냥 지나칩니다. 한사람도 동지죽 먹으러 오지 않고 조의식장으로만 갑니다.》

《걱정할것 없습니다. 식당봉사원들이 팔짱끼고 손님들이 오기를 기다리지 맡고 동지팥죽을 조의식장에 가지고가서 조객들에게 봉사하면 되지 않습니까. 동지죽은 추운 겨울날 펄럭펄럭 끓여 뜨끈뜨끈한걸 훌훌 불며 먹는 맛이 제격입니다. 식으면 제맛이 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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