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마틴 루터 킹 데이에 생각해보는 한인 이민 사회의 은인들 > 통일게시판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통일게시판

어느 마틴 루터 킹 데이에 생각해보는 한인 이민 사회의 은인들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권종상
댓글 0건 조회 1,619회 작성일 14-01-20 23:20

본문

시애틀 시호크스 수퍼볼 진출을 확정지은 경기, 집에서 경기를 지켜보던 아이들의 광란이 끝나고 어제 우리 집엔 함께 경기를 같이 즐기던 조카녀석이 우리집에서 아이들이랑 놀다가 슬립 오버(친구나 친척 집에서 하룻밤 자는 것)를 하게 됐고, 아이들 잠든 동안에 일찍 일어나 마틴 루터 킹 데이 연휴의 여유를 즐겼습니다. 

 

그리고 보면, 지금 한국인들이 이곳에서 별 문제없이 살고 있는 것은 한인들이 많은 이들에게 '빚'을 지고 있는 것을 뜻합니다. 지금 저는 하루의 휴일을 보내고 있는 셈이지만, 마틴 루터 킹이라는 인물이 있지 않았다면 우리가 지금 누리고 있는 미국에서의 이 평등한 권리들을 누리며 살고 있을까요? 지호와 지원이는 모두 이곳에서 한국을 자랑스러워하며, 자신이 '코리안'이라는 데 대해 자부심까지 갖고 살고 있습니다. 물론 싸이와 삼성 전화기와 현대 자동차의 역할이 크다고 하지만, 그 전에 더욱 중요한 것은 유색인종이라도 차별 없이 살 수 있는 세상을 누군가가 우리보다 앞서서 만들어 놓았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탄압을 받았고 심지어는 목숨까지 버려야 했습니다. 

 

마틴 루터 킹이라는 인물이 미국에 끼친 영향은 미국의 각 도시마다 있는 그의 이름을 딴 도로들, 그의 이름을 딴 건물들과 학교들의 숫자만 봐도 대략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미국 내의 비교적 '대도시'라고 불리울 수 있는 곳들 중에서 마틴 루터 킹의 이름을 딴 거리가 있는 곳은 모두 68개 도시입니다. 만일 간단히 말하자면 '미국의 간디'라고 부를 수 있는 그의 족적이 그만큼 미국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바꾼 것입니다. 

 

우리가 보통 민주주의의 본산이라고 부르기까지 하는 미국이 실제로는 1920년대가 되어서야 여성의 참정권을 허용했고, 흑인의 참정권은 결국 대부분의 주에서 1960년대의 민권투쟁의 결과로서 이뤄졌다는 사실을 보면 미국이 우리가 보통 알고 있고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는 대의민주주의란 것이 사실 그렇게 역사가 길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단적인 증거라고 할 수 있겠지요.  

 

역시 60년대 민권 운동 및 저항 운동에 있어서 상징적 존재였던 말컴 엑스는 "그래도 흑인들에게 도움을 주었던 백인은 아무도 없는가?"라는 한 기자의 질문에 "히틀러와 스탈린"이란 답을 내 놓습니다. 세계 제 2차대전과 그후 이어진 냉전은 그동안 유색인종을 받아들이지 않았던 정보와 방산 부문에 흑인의 진출이 가능케 했고, 특히 냉전 기간엔 미국과 당시 소련의 군비 경쟁과 아울러 서로의 체제가 더 낫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복지 경쟁'까지 하게 되면서, 소련은 인종차별을 미국의 치부로 왕왕 공격하곤 했고, 미국의 경우엔 60년대를 휩쓴 민권운동의 불길도 잡아야 했고, 아울러 미국 체제가 우월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드디어 '유색 인종 중산층'이 탄생할 수 있도록 길을 터 줍니다. 그 와중에서 유색인종들의 참정권도 확립된 것이고, 그 결과물을 지금 우리 한인 이민자들도 누리고 있는 셈이지요. 

 

사실 우리는 민권운동의 정면에 서서 맞서 싸웠던 그들에게 감사해야 한다는 생각을 늘 하게 됩니다. 특히 시애틀에 산다는 것은 몇 개의 다른 유색인종 세력이 저마다 생존을 위해 싸웠던 역사가 축적되어 있는 것을 한인들이 누리고 산다는 것을 뜻합니다. 동서 횡단 철도를 놓으며 대서양과 태평양을 잇는 대역사를 벌인 중국인 이민자들의 노력이, 그리고 원주민(인디언)들의 마지막 백인들에 대한 항쟁이, 그리고 가난한 백인과 흑인 노동자들이 벌인 노동 쟁의가 대포로 진압되는 아픔까지... 지금 시애틀이 누리고 있는 민주적이고 자유적이며 비교적 다른 도시들에 비해 깨어 있는 분위기들은 모두 이런 과정들을 거쳐 생겨난 것입니다. 그리고 백인 지배층들은 그런 세력들과 자신들의 사이에 안전장치로서, 한인들을 일종의 '버퍼'로서 이민을 수용했다는 점은 우리가 사실 늘 상기해야 할 필요가 있는 듯 합니다. 

 

물론, 미국의 구석구석엔 아직도 인종차별이 눈에 더 띄는 곳들이 있습니다. 특히 중서부 지역이 그렇지요. 물론 대도시에도 인종차별 문제는 분명히 존재합니다만, 그것을 '제도적으로' 눌러 놓을 수 있는 이들의 의식적인 노력은 분명히 이곳에 살고 있는 한국인들에게도 가장 확실한 바람막이가 되어 주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 면에서 지금 다문화 사회의 첫발자욱을 뗀 한국에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고 할 것입니다. 

 

뭐, 지금 제 아이들만 해도 한국을 무척이나 자랑스러워하고, 한국을 세상에서 제일 잘 나가는 나라 쯤으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된 건 역시 한국의 문화나 과학기술 컨텐츠, 상품의 힘이기도 하지만, 이런 한국을 인정할 수 있게 해 준 시애틀의 분위기이기도 합니다. 이런 저런 생각 하면서, 오늘도 하루가 참 평화롭게, 조용히 지나가고 있습니다. 내일 일 하러 가면 엄청난 양의 일거리가 기다리고 있겠지요. 물론, 그런 것 때문에 제 삶을 나름 풍족하게 영위할 수 있는 것이겠습니다만.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서비스이용약관 모바일 버전으로 보기 상단으로


Copyright © 2010 - 2023 www.hanseattle1.com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