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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지 '구시대 질서 재도래' 지적한 표지를 보며-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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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권종상
댓글 0건 조회 1,609회 작성일 14-03-22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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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돌아 온 구세계의 질서'-  오늘 나온 타임지의 표제입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여긴 내 땅이야!"라는 큰제목이 붙어 있습니다. 구세계 질서의 귀환이라. 마음이 착잡합니다. 이게 차라리 이념으로 갈라졌던 동서 냉전 시대의 부활이라면 오히려 반길 수도 있습니다. 구소련이 존재할 당시, 동서는 냉전 상태로, 또 핵무기 개발 경쟁으로 일촉즉발의 위기를 겪었을망정, 없는 사람에겐 더 나았던 시기이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그때 동서는 서로 자신의 체제가 더 낫다는 것을 반증하기 위해, 군비 경쟁 뿐 아니라 복지 경쟁도 했었습니다. 미국의 웰페어 제도의 적지 않은 부분은 바로 사회주의 체제와의 경쟁 속에서 나와 유지됐던 것들입니다. 한때 미국이 '노인의 천국'이라고 불리웠을 때가 있었습니다. 지금의 미국의 모습에선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그게 가능했습니다. 은퇴할 나이가 된 노인들은 SSI 라고 불리우는 일종의 무상지원 개념의 '용돈'을 받기도 했고, 노인 연금 이슈를 다루는 '모던 머처리티'라는 잡지는 노인들이 어떤 식으로 연금 재테크를 할 것인가에 대한 기사가 늘 주를 이뤘었습니다. 

 

또 미국에서 인종주의가 조금씩 그 힘을 잃었던 것도 냉전,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에 앞서 있었던 세계대전때부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군수산업의 확장, 그리고 모자라는 군인의 충원을 위해 미국 정부는 그에 대한 문호를 유색인종들에게 열기 시작했고, 이것은 '유색인종 중산층'을 대거 양산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면서 민권에 대한 의식이 급속히 성장하면서 미국은 인종주의에 대한 표면적 변화에서 나아가 60년대 인권운동 시기를 거치며 인종문제에 관한 질적 변화를 이뤄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스탈린주의가 대두되면서 창조성을 잃고 오로지 일관된 경직성만이 남은 현실사회주의 종주국 소련은 결국 '관료주의의 폐해'와 '만성적 노동의욕 저하', 그리고 결정적으로 아프간 전쟁으로 인한 지나친 국력의 낭비로 인해 해체되는 운명을 맞았고, 자본주의의 승리는 분명해 보였습니다. 그러나, 아이러니컬하게도 바로 그때부터 자본주의 사회의 '진짜 홍역'이 시작된 것입니다. 

 

자본 자체가 권력이 되는 시대가 됐고, 이 물결에 편승한 러시아와 중국 등 구 사회주의 국가들이 어떻게 변했는가는 이제 굳이 말할 필요도 없는 낡은 주제가 되어 버렸습니다. 더 이상 자기 얼굴을 감출 필요가 없어져버린 자본주의는 신자유주의로 진화했고 그것은 다시 세게를 빈부의 극단적 양극화로 몰았습니다. 그것은 개인 차원을 넘어서 국가 단위로까지 진행됐습니다. 

 

그러나, 지금 회자되는 '구세계 질서로의 회귀'는 그런 것이 아니라는 데 문제가 있다고 봐야 할 겁니다. 이것은 러시아라는 국가가 영토 확보를 통한 새로운 지배질서 확립하려는 움직임의 일환이라는 점에서 양차 세계대전 이전의 세계의 정치 환경, 즉 '제국주의 시대'로의 환원을 뜻합니다. 민족주의의 대두 속에서 강대국이 계속해 식민지를 늘려 나가려 하던 시대의 모습과 비슷하다는 점에서, 이것이 극단적으로 치달을 때는 어떤 일이 벌어질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으로 진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극단적 민족주의의 발흥은 그것이 세계 어디가 됐든간에 국우파의 문란한 발호와 편협한 국수주의, 그리고 나아가 인종주의의 재도래를 불러오게 될 것이라는 점에서 우려됩니다. 멀리 가지 않아도, 구소련 붕괴 이후 동구권에서 과거의 강국 체코슬로바키아나 유고슬라비아가 민족 문제가 개입되면서 어떤 일이 일어났었는지를 되새겨보면 이 우려가 그냥 기우가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에 강대국이 개입하고 자기들의 이익을 챙기면서 문제는 더욱 심각해집니다. 코소보 사태나 남오세티아 사태 등을 되돌아보면, 이 민족문제의 충돌이 얼마나 피를 부르기 쉬운지를 알 수 있습니다. 당장 지금 중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신장 위구르인들의 독립전쟁(이를 그냥 '요구'라고 부르기 쉽지만, 신장인들의 입장에서는 '전쟁'이 맞을 겁니다. 마치 우리도 옛날에 항일 독립전쟁을 벌였지만, 일본 제국주의자들의 입장에서는 마적떼의 준동에 불과했을테니까)이 보여주고 있듯 말입니다. 

 

문제는 이게 독재와 탄압을 다시 일상화시키고 압제하의 국민들이 마땅히 누려야 할 시민자유를 축소시키고 있다는 겁니다. 지금도 우리의 일상에서 '우리의 자유와 안전을 지키려는' 이유로 얼마나 많은 권리들이 사라졌는지를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9.11 테러 사태 이후 비행기를 탄다는 것이 얼마나 많은 불편을 겪어야 하는 일로 변했는지를 생각해보면 귀찮고 힘들게 느껴지지만, 저는 많은 시민들이 이같은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는 것'에서 더 심각한 전율을 느낍니다. 

 

이것이 혹시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다시 독재에 대한 내성을 내재화시키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두려움도 있습니다. 물론 안전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이런 일들이 일어나게 된 근본 원인은 결국 강대국의 욕심이 바탕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자본의 권력독점이 심화되고, 이것이 국가 이익이라는 말과 동일시되면서 더욱 심화됩니다. 결국 그 자본의 이익, 그들이 말하는 국력의 신장은 국가 내부로는 '서민'이라고 불리우는 대부분의 시민과 국제적으로는 약소국들의 희생으로서 이뤄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면에서, 우크라이나와 크림 반도를 둘러싼 일련의 사태들과 민족주의의 발호는 우리나라를 점점 개항 당시의 모습과 겹치게 만듭니다. 우리가 어떻게 외교적으로 현명하게 대처해야 지금의 호랑이 아가리속 같은 세계 정세 속에서 우리의 이익을 지키며 내적 성장을 이룰 수 있을까를 고민해야 할 시기에, 한국을 바라보면 갑갑하기 그지없습니다. 그저 자기들의 권력을 지키기 위해서만 싸우는 정치인들, 그리고 헛발질만 날리는 외교의 모습을 보면서, 또 이런 무능한 위정자들 아래서 부글부글 끓는 화를 삭히며 자기 앞가림에만 충실해야 살아남는 원시 정글 같은 한국 사회의 구성원들을 바라보면서, 내가 나고 자란 조국이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를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이런 상황 속에서 축소되는 시민 자유는 또 어떤 식으로 찾아내고 지켜야 할 것인가 고민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시애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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