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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북부조국 방문기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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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6건 조회 53,765회 작성일 14-11-02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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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년만에 다시 찾은 북부조국 방문기 19


장수복 접대원으로부터 인민들의 생활을 공부하다


아직 해가 길어 연극관람을 마치고 돌아오는데도 밖이 환하다. 호텔로 돌아와 5층 엘리베이터를 내리니 5층의 휴게실에서 근무하는 장수복 접대원이 잘 다녀왔느냐면서 반갑게 인사를 건넨다. 친절하면서 사려깊은 장수복 접대원은 호텔에 도착했을 때 우리 일행이 차를 마시며 일정을 의논할 때 봉사해주었고 그때 이미 인사를 나눴기에 구면이라 수복동무라 부르기로 했다. 휴게실은 호텔 복도 옆 제법 기다란 방에 스무 명 이상 앉을 수 있도록 여기저기 소파와 테이블을 배치해 놓아 커피샾 같은 분위기인데 보통 지나면서 살펴보면 두어 테이블 정도에 손님이 있었다.


수복동무는 입구 쪽에 진열대 겸 계산하는 곳이 있고 거기서 커피와 맥주 등 음료수를 판매하며 안주거리와 간단한 식사를 제공하는데 음식은 호텔의 식당에서 요리하는 것이 아니라 이곳 휴게실에서 바로 복도 건너편에 직속 부엌이 있고 거기에도 요리사가 있어 직접 요리해서 음식을 제공한다고 했다. 수복동무의 나이는 이십대 후반으로 보였는데 직접 물어보지는 못했다. 내게도 편안하게 대해주었지만 손님들에게 참 친절하게 봉사하는 접대원이다. 참 아쉬운 것은 내가 수많은 사진을 찍었는데도 마침 수복동무의 사진을 찍지 못해서 여기서 나눌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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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복 접대원이 일하는 휴게실에서 조선대학교 한성구 조교와 함께. 휴게실 모습을

보여드리기 위해 이 사진을 미리 올림. 이후 한성구 조교에 관하여 소개하게 됨.



호텔 객실로 바로 향하려다가 마침 휴게실 안에 아무도 없기에 조금 한가한 시간 같아 보였다. 잘 되었다 싶어 내가 수복동무에게 부탁할 것이 있다고 하자 무슨 부탁이냐고 묻는다. 그래 사실대로 내가 북부조국의 인민들의 생활에 대해서 이번 여행 동안 직접 인민들을 만나서 대화하며 알고싶은 것이 있다고 했다. 이미 책을 통해서, 그리고 선양 목란각에서 잠깐 동안 질문을 하여 어느 정도 인민들이 어떻게 생활하는지에 대해서 파악하고 있긴 하지만 실제로 내가 북에서 살고 있는 인민들을 만나서 직접 대화하지 않고는 아직 제대로 감을 잡을 수가 없는데 때문에 이번 여행을 통하여 내가 직접 인민들을 만나서 물어보고 과연 북부조국의 인민들은 어떻게 의식주 생활을 해결해나가는지에 대해서 이것 저것 질문을 하고 싶다고 했다.


별로 크게 기대를 하지는 않았는데 수복 동무는 그렇다면 무엇이든지 물어보라고 한다. 이건 정말 큰 행운이 아닐 수 없다. 생각해보라. 북에서 어떤 사람이 서울이나 해외에 있는 우리들에게 찾아와서 우리는 자본주의 세상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알기 위해서 이것저것 물어보고 싶다고 한다면 과연 편안하게 무엇이든지 물어보라고 대답해줄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한달의 월급 혹은 수입이 얼마며, 어떤 집에서 살며, 집세로 얼마가 나가고, 아이들 교육비로 얼마가 나가고, 차량 유지비에 보험비, 전기세, 수도세, 하수도세,인터넷 , 셀폰, 식료품비, 술값, 교통비, 사교비…. 그야말로 돈이 없으면 불가능한 이런 숱한 비용에 대해서 편안하게 대답해줄 수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이건 개인의 사생활과 관계되는 문제다. 돈을 많이 벌면서 쓰기는 적게 쓰는 사람이라면 조금 답하기가 편하겠지만 그래도 자신의 경제적인 세세한 사항을 밝히기를 좋아할 사람이 과연 몇이나 있을까?


그래 이건 워낙 민감한 질문이고, 상대방에게 실례가 될 수도 있는 질문이기 때문에 수복동무에게 잠깐 더 이해를 구한다. “사실 북에 대하여 크게 관심을 갖고 있으면서 이렇게 북을 방문한 나도 북의 인민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잘 모르는데 대부분의 남쪽 동포 혹은 해외동포들은 더더욱 북의 생활에 대해서 바로 알지를 못하고 있다. 매스컴에서 왜곡해서 보도하는 그대로 모두들 믿을뿐인데 그 보도란 것이 북의 잘하는 것은 거론하지 않고 못살고 배고프다는 소리만 주로 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모두 북의 인민들이 고생하고 살면서 형편없는 생활을 하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 나는 이번 여행을 하면서 보고 들은대로 글을 쓰고 바로 알려서 우리 조국의 통일에 이바지하려고 한다. 내가 어려운 것을 묻는 것이 아니고 북의 인민이라면 누구든지 알고 있는 것이지만 바깥에선 모르는 것을 수복동무가 좀 알려주면 좋겠다.”라고 말해주었다.


다시 수복동무가 “그렇다면 무엇이든지 물어보세요”라고 나를 편안하게 해준다. 그래 바로 가장 중요한 질문부터 던졌다. 먼저 한 달 월급이 얼마나 되느냐고 물으니 선양 목란각의 접대원과 비슷한 대답을 해주었다. 월급은 적지만 상금이 많다는 것이었다. 월급은 6천원인데 상금은 5만원 정도 된다고 했다. 둘을 합하면 한 달에 5만6천원이다.


이곳 호텔에서 일하는 시간은 어떻게 되느냐고 물어보니 하루 일하고 하루 쉰다고 한다. 출근은 아침 일곱시에 해서 저녁때까지 일하고, 밤 12시에 잠든다고 했다. 그러니까 일하는 날은 종일 일하고 잠도 호텔에서 자고 그 다음날 아침에 교대를 하여 집에 가서 쉰다는 것이다.


어떤 주택에서 살고 있는지 물어보니 지금 아파트에서 부모님들과 함께 산다고 했다. 당연히 그 아파트는 국가에서 무료로 제공하는 것이다. 아파트의 사용료는 들어보니 전기요금을 말하는 것 같았다. 수복동무 자신이 내는 것이 아니라 집에서 내는데 그건 너무 작은 금액이라 신경을 쓰지 않지만 대략 한 가구당 천원이 채 안된다고 한다. 수복동무의 수입에다 부모의 수입이 따로 있으니 그 사용료는 너무도 미미한 것이 확인된 셈이다.


그렇지만 북의 전기사정이 좋지 않은데 사용료가 적다해도 전기를 아끼면서 살지 않는가하고 물어보니 올해는 특별히 가뭄이 심해서 북이 수력발전에 의존해서 주로 전기를 생산하는데 전기가 부족하다면서 사용료가 적은 것에 상관 없이 평소에 종종 ‘적산전력계’를 보면서 절전을 하며 산다고 했다. 우리는 계량기를 잘 들여다보지 않는데 적산전력계라는 것이 우리의 계량기와 같은 모양으로 생겼는지 알 수는 없지만 북에서는 전기도 함께 온 인민이 나눠서 아끼며 사용해야 한다는 의식이 인민들 가운데 잘 자리하고 있는 것으로 여겨졌다.


내가 선양에서 미리 예습한 것처럼 쌀과 부식은 국가에서 무료로 제공하는데 노동의 양과 남자와 여자, 어른과 아이들에 따라 그 양이 다르게 배당되며, 가족당 배당되는 만큼의 배급표를 받는다고 했다. 부식배급에 대해서 물어보니 예를 들어서 이번에 배추가 들어왔다고 연락이 오면 배급표를 받아서 퇴근시간에 가지러 간다는 것이다. 만일 그때 출장을 간다거나 해서 제때 가지러 갈 수 없으면 어떻게 하느냐고 물어보니 그런 경우엔 다른 이웃이 받아온다고 말해준다. 부식의 공급에 대해서 더 상세한 부분은 이후 다른 글에서 설명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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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묵은 평양호텔 객실에서 내다본 시가지 풍경



주택과 먹는 것은 이렇게 해결되었으니 의식주 가운데 이제 옷에 대해서 물어보니 옷은 주로 가게에서 구입하거나 농민시장에서 구입한다고 했다. 그러니까 주식이나 부식 외 옷가지와 생활필수품들은 주로 그렇게 시장에서 구입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한데 북에서 의식주란 말을 쓰지 않는 대신 먹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해서 식의주라고 사용한다고 우리는 들어왔는데 장수복 동무의 말로는 의식주도 식의주도 잘 알아듣지를 못하더니 북에서는 그런 말을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고 한다. 의식주란 책에서나 나오는 이야기이지 일상에서 그런 단어는 거의 자취를 감췄다는 것이다.


입는 것이야 요즘은 옷이 귀한 시절이 아닌데다 주택이나 먹는 것은 국가에서 해결해주니 우리가 중요하게 여기는 의식주가 북부조국에선 개인적으로 염려할 필요가 없어서일까? 옷값이 싼 우리들은 먹는 것도 흔한 편이라 별로 걱정하진 않지만 주택 비용과 교육비나 그외 엄청나게 들어가는 비용들을 감당하기 힘들어 그런 것을 통털어 의식주 문제라고 부르는데 이곳 북부조국에선 주택도 교육도 무료에 의료도 무료이고 교통비도 싼데다 별로 크게 돈이 들 곳이 없어서 그런 단어조차 사라진 것인가?


물론 돈이 있으면 할 수 있는 것은 더 많아지겠지만 돈이 없어도 살아가는데는 별로 지장이 없는 사회다. 가족이 번 돈으로 사용하고 남는 돈은 저축해서 그것으로 필요한 전자제품도 최신형으로 구입한다거나 할 수 있겠지만 돈이 없다해서 집을 쫒겨난다거나 아이들 교육을 못 시키거나 헐벗고 굶주리지는 않는 곳이다보니 의식주 혹은 식의주란 말도 사라져가는 것인가? 내가 다른 사람들보다는 좀 더 북을 알긴 하지만 직접 살아보지는 못했으니 아직 이곳 인민들이 얼마나 의식주를 걱정하지 않고 스스로 행복하다는 생각을 갖고 사는지는 알 수가 없다. 단지 이후에 만나게 된 인민들과 더 많은 대화를 통해서 간접적으로 그들 모두가 살아가는 일에 별 걱정 없이 행복하게 산다는 것을 느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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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대극장 앞의 포스터



내가 한가지 더 궁금해하던 것을 물어보았다. 북부조국 인민들은 도시의 사무실에서 일해도 정해둔 기간 동안 노동으로 봉사하기 위해 농촌으로 간다고 들었는데 그것에 대해서 말해달라고 했다. 수복동무는 ‘농촌지원’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보통 1년에 열흘 정도 농촌지원을 나가서 직접 농삿일을 거들면서 농촌생활을 체험한다는 것이다. 무슨 일을 해보았는가하고 물어보니 벼농사와 옥수수, 고구마 농사 등 여러가지 일을 다 해보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신이 농촌지원을 나가서 알게되었다면서 농촌엔 국가에서 무료로 뜨락또르등 농기계를 제공하며, 그것이 오래 되어 못쓰게 되어 폐기하게 되면 다시 제공해준다고 말해준다. 농촌생활에 대해서는 이후에 내가 직접 답사하게 되어 잘 공부하였으니 이후의 방문기에서 다시 자세하게 쓰게 될 것이다.


내가 궁금해하였고 가장 알고싶어한 북부조국 인민들의 생활에 대해서 수복동무와 거의 대화가 끝나갈 무렵에 휴게실에 손님들이 찾아왔고 내 질문도 거기서 마치게 되었다. 사회주의 국가인 북에서 인민 각자의 월급이나 수입은 내가 인터뷰한 평양호텔 직원인 수복 동무보다 노동자들이 좀 더 대우를 받는 세상이었다. 그래도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기본적인 주택과 식료품이 제공되고 교육과 의료를 비롯한 여러가지 복지정책이 모든 사람에게 골고루 주어진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내가 모든 사람들 만나서 물어보고 대답을 듣지 못했지만 이후 농장과 공장을 방문하면서도 비슷한 질문을 던져서 대답을 들은 것으로 고려해볼 때 대부분의 인민들의 생활은 대략 비슷한 수준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 같다. 특히 고난의 행군이 끝난지 10여년이 된 지금 의식주 문제가 해결된 상황에서 북부조국의 인민들은 주어진 제도와 생활환경에 맞춰서 살아가는 것에 익숙해있고 그 안에서 의식주 걱정 없이 충분히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으로 보여진다.



자본주의 사회에 살면서 우리는 얼마나 많은 염려와 걱정을 하며 살아가고 있는가를 생각해보면 이 부분은 이후에 북부조국과 잘 대비해볼 필요가 있다고 여겨진다.  몇가지 기본적인 질문을 미리 던져본다.  우리가 살아가는 자본주의의 현실이 과연 이 사회가 민중에게 줄 수 있는 최선의 모습인가?  왜 우리는 한시도 걱정과 근심에서 벗어날 수가 없는 것일까?  과연 우리의 정치체제는 민중의, 민중에 의한, 민중을 위한 정치인가?  그런 정치를 정말 한다면 그런데도 우리가 걱정과 근심 가운데 살아야 할까?  지금의 정치제도가 우리에게 걱정과 근심이 사라지지 않게 만든다면 그래도 그것이 민주주의가 맞는가?  민주주의가 아니라면 어떻게 해야 민주주의를 이룰 수 있을까?



내가 떠나오던 날 잘 있으라는 인사를 수복동무를 찾아가 했는데 ‘선생님, 오늘 가십니까? 이제 언제 오십니까? 앞으로는 자주 오세요’라고 말하며 헤어지는 것을 아쉬워하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나의 불편했던 질문에 서슴없이 대답해준 평양호텔 5층 휴게실의 장수복 동무에게 이 글로 깊은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



아래 링크에서 방문기 18회를 읽으실 수 있습니다.


http://www.hanseattle.com/main/bbs/board.php?bo_table=freeboard&wr_id=11517

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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갯가용님의 댓글

갯가용 작성일

장수복씨로부터 여러 대답을 들었으나 전반적 감이 잘 잡히지 않습니다.
북한에서 5만6천원 정도 금액의 월수입이면 그 수준이 어느정도인지
알았으면 하는 궁금증이 있습니다. 만약 한국으로 친다면 어느 정도 부류의
생활수준이 될까 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광산등지에서 힘들게 일하는 육체노동자들은  장수복씨같은 업무자들보다
급여를 더 많이 받는다는데 그런 경우 금액으로는 어느 정도가 되는지

또한 그렇게 차이있는 급여를 받는 노동자와 장수복씨 같은 사람과의
사회에서의 실질적 생활은 어떤 면에서 어떻게 차이가 나는 것인지
그리고 시장이랄지 법원의 판사같은 사람들은 어느정도의 급여를 받는지

상기의 의문에 그런대로 객관적 수치가 나올 수 있다면 보다 북한의 생활
수준을 좀 더 윤곽있게 짐작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한국처럼 돈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사회가 아니므로 그런 잣대에 의한
절대적 비교를 하기가 어려운 점이 있다고 여겨집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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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산님의 댓글

강산 작성일

갯가용 님, 질문 고맙습니다.

북한에 어떤 직업은 얼마나 받는다는 통계가 있을 것 같은데 제가 지금 접하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예전에 방문기로 읽은바에 의하면 광산 노동자나 위험한 바다에서 일하는 어부들은 일반인들의 6배에 가까운 임금을 받는 것으로 되어있었습니다. 

제가 앞으로 소개할 공장 노동자들은 장수복씨의 두 배가 된다고 들었고, 농촌에 갔을 때 농민들의 수입이 노동자보다 낫다고 들었습니다.

한편 의사, 교사, 사무원들은 위험한 가운데서 일하는 노동자들보다는 훨씬 보수가 적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아무튼 돈을 더 받으면 그것으로 우리들처럼 좋은 집이나 차를 구입하는 것이 아니라해도 삶의 질을 좀 더 높게 유지할 수 있겠지요.  장마당에서 구입할 수 있는 것도 많을 것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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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산님의 댓글

강산 작성일

북한이 평등을 추구하면서 그 가운데 힘든 일을 하는 사람에게 그만한 대우를 해준다는 것은 무엇보다 온 세상이 본받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 사회에선 못 배우고 가진 것이 없는 사람이 험하고 힘든 일을 하면서 대우도 못받는데 실제로 그들이 세상에선 꼭 필요한 사람들입니다.  광산에서 아무도 일하지 않고 배타고 고기를 잡으려 하지 않고, 농사를 짓지 않으려 한다면 지구는 종말을 고하겠지요.  그러니 북한의 힘들고 어려운 일을 하는 인민을 위한 정책이 바른 방향이라고 여기지 않을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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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산님의 댓글

강산 작성일

이후에 거론하게 되겠지만 북한에서 어떤 부류라는 말은 해당되지 않는다고 봅니다.  북에서 가장 타파하려한 것이 바로 계급사회라고 하더군요.  그래 북에는 중산층이나 상류층 등의 부류나 계층이 없다고 봐야 합니다.  돈을 조금 더 받으면 편하긴 하겠지만 계층이 없으니 우리식의 성취감이 없을 것으로 느낄 수도 있겠지만 인민을 위해서 더 힘든 일을 한다는 그것이 바로 성취감이 될 것 같습니다. 그것을 인민들은 귀하게 여기고 또한 노력영웅 등의 명칭으로 영예를 주는 것이니 명예로운 삶이라 여기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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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산님의 댓글

강산 작성일

위의 수복동무의 5만 6천원은 그리 큰 돈은 아닐 것입니다.  보통 결혼을 하기 전엔 부모님들과 함께 살게 되니 온 가족의 수입은 그 두 세배가 된다고 봐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결혼을 한 후라면 남편과의 수입으로 그 두 배가 더 될 것입니다.  보통 남자들이 여성들보다 더 받는다고 알고 있으니까요.  노동의 강도도 더 셀 것이니까 그런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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갯가용님의 댓글

갯가용 작성일

잘 이해하겠습니다.
어떤 '부류' 라는 개념이 거의 없다는 말씀이 아주 인상적입니다.
그리고 의식주라는 말을 잘 사용하지 않는다는 점도 아주 새롭습니다.

보다 많은 분들이 본 여행기를 읽고 마음속에 있는 이질감이나(?)
반발심들을 겉으로 드러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와중에 보다 이해가 깊어지게 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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