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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소설 <새나라> 5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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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0건 조회 7,303회 작성일 15-12-02 2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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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

 

로이문은 공사지휘부앞마당에서 세사람의 행동을 빤히 내려다보고있었다. 그리고 발파소리가 여느때만큼 울리자 케가 글렀다는것을 직감했다. 장혁수가 이 일을 덮어두지 않을건 뻔하고 그렇게 되면 자기는 빠져나갈데가 없었다.

그 즉시로 로이문은 공사장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누구도 자기 집을 모르기때문에 당분간은 안전하다고 볼수 있었다.

로이문이 반동이라는 소문은 이튿날 온 공사장에 퍼졌다.

그 소문에 제일 바빠맞은것은 봉수국수집령감이였다.

그동안 얼굴 한번 내밀지 않던 령감이 어제는 통돼지를 삶아가지고 나오더니 오늘은 국수버치를 머리에 인 로친네까지 데리고 나타났다.

《내가 눈먼 참봉이였수다. 그놈이 반동인줄도 모르고 은인대접을 했으니 이런 죽을 죄가 어디 있겠소?》

주인령감은 장혁수의 소매를 붙어잡고 징징 우는 소리를 했다.

《그놈이 그런 여우귀신인줄 누가 알았겠소.》

《아니우다. 난 그놈한테서 여우노린내를 맡았댔수다. 그래두 밑천을 대주면서 돈 잘 벌게 해주길래 더 캐보려구 하지 않았지요. 남들은 공사장에 나와서 애국자가 되는데 난 제 주머니 불쿨 생각만 했으니 천벌을 맞아두 할 말이 없수다. 내 그래서 부정한 돈으로 모았던 가산을 다 헐었수다. 아무리 국수사리나 만지며 돈에 환장한 놈이래두 반동새끼덕에 부자 될 생각은 없으니까요.》

주인령감은 정말 가산을 다 헐었는지 매일같이 공사장에 한짐씩 지고나오군 했다.

확실히 사람도 산천도 달라져가고있었다.

장혁수자신도 생활을 대하는 태도에서 그전보다 많이 달라졌다.

그중에서도 확실하게 달라진것은 정혜에 대한 립장이였다. 김정숙동지께서 정혜를 데리고 현장사무실에 오셨던 그날 혁수는 종시 그 녀자와의 간격을 좁히지 못하고 헤여졌었다. 혁수는 그 녀자가 자기의 언행에 모욕을 느끼고 다시는 나타나지 않을것만 같아 은근히 속을 태웠다.

그런데 며칠후에 정혜가 제발로 찾아올줄이야…

정혜는 어쩔바를 모르는 혁수를 본체도 않고 전번처럼 빨래감을 뒤져내서는 다 빨아서 널어놓고 가버렸다. 녀자들은 날 때부터 애정을 타고난다더니 그 말이 맞는것 같았다. 그날 혁수는 말한마디 붙여보지 못했지만 자기 운명이 결코 이 녀자와 떨어질수 없으리라는것을 행복과 두려움속에 예감했었다. 그때부터는 저도 모르게 그 녀자가 기다려지고 그가 일하는 기림리 녀맹작업장으로 발길이 향하군 했다. 그러나 녀맹돌격대가 일하는 곳에 직접 끼우지는 못하고 그옆의 중성리작업장에서 뚝심을 빼군 했다. 요즘엔 매일같이 거기에 붙어있어서 현장부원이나 지휘부에서 장혁수를 찾을 일이 생기면 거기로 찾아오는판이였다.

그래도 그는 창피하다는 생각이 없었다. 자기가 그새 좀 뻔뻔스러워졌는지…

그는 자기가 일하는것을 그 녀자가 보고있을거라는 생각에 삽질을 해도 자루가 부러질만큼 흙을 파올렸고 목고를 해도 목고채가 휘여들게 흙을 담았다. 일을 잘하면 정혜가 좋아할줄 알았는데 한번은 옆으로 슬쩍 지나가면서 한다는 말이 《무슨 사람이 그렇게 미욱해요?》하는것이였다.

혁수는 정혜가 저쯤 지나간 다음에야 고개를 젖히고 너털웃음을 웃었다. 그 말 한마디로 정혜는 제 마음을 명백히 표현했던것이다. 그 말 한마디는 오랜 세월 혁수의 가슴에 응어리져있던 서러운 인생에 대한 울분을 봄눈처럼 녹여주고 대신 행복한 삶에 대한 욕망을 북돋아주었다.

장혁수는 그 말을 다시 듣고싶었다. 열번이고 백번이고 듣고싶었다. 그러자면 미욱스레 일을 해야 했다.

그래야 정혜가 자기를 관심해주고 사랑해줄수 있었다.

정혜를 제 사람으로 인정하고나니 그 녀자에게 제 마음을 표현하는 방법은 별로 힘들지 않았다.

어제 오후 혁수는 남들이 보건말건 질통을 지고 달리는 정혜를 불러세웠다.

온통 사람천지여서 조용히 따로 만나고싶어도 그럴수가 없었던것이다.

그는 밑도끝도없이 정혜에게 강박하는 투로 말했다.

《래일 점심에 현장사무실로 오우. 나랑 같이 갈데가 있소.》

그리고는 녀자의 마음이 얼마나 활랑거리겠는가 하는것은 생각지도 않는듯 범상한 표정으로 제 먼저 자리를 떴다.

오늘 점심에 정혜는 혁수를 찾아왔다. 오지 않을수 없었던것이다.

혁수는 정혜를 뒤에 달고 봉수산중턱에 안치되여있는 안해의 묘를 찾아갔다. 올봄에 떼장을 입힌 봉분에는 손질할게 없었다. 그래도 혁수는 봉분을 한바퀴 돌며 새로 돋아난 잡초들을 뽑고 자기 손으로 준비한 간단한 음식들을 상돌우에 올려놓았다.

혁수는 술을 붓고나서 정혜에게 말했다.

《오늘이 이 사람 제사날이요. 4년전 오늘 토성랑을 휩쓴 물란리때 아이를 업은채루 그만 저세상사람이 됐소. 그때 내가 할수 있는 일이라는게 처와 자식을 보통강감탕밑에 묻는것뿐이였소. 그것두 깊은 밤중에… 그런데 김일성장군님께서 여기에 다시 잘 안장하도록 해주시였소. 이젠 공사도 끝나게 되였으니 이 사람의 혼두 편히 잠들수 있을거요. 거기서두 한잔 붓고 위로해주오.》

장혁수는 정혜에게 자리를 내주었다.

정혜는 조심히 술을 부었다.

두근거리던 가슴도 이상하게 평온해졌다.

한쪽무릎을 끓고앉으며 다소곳이 절을 올렸다.

천천히 일어났다가 다시한번 더…

그리고는 일어날념을 하지 않고 봉분의 잔디를 어루쓸며 조용조용 무덤속의 녀인에게 자기의 진정을 헤쳐보였다.

《언니! 언니나 나나 해방전엔 비참하게 살수밖에 없었지요. 그건 우리 녀자들이 팔자가 사나워서가 아니라 나라가 없었기때문이예요. 이젠 그런 못된 세월이 끝장났어요. 김일성장군님께서 나라를 해방시켜주시고 보통강개수공사도 완공하게 해주시였어요. 언니도 성학이도 다 살아서 오늘같은 세상을 보았으면 얼마나 좋았겠어요.

언니! 김일성장군님께서랑 김정숙녀사님께서랑 성학이 아버지가 누구보다도 행복하기를 바라고계신답니다. 이제부터는 내가 성학이 아버지를 위해드리려구 해요. 가난한 세월탓에 언니가 성학이 아버지한테 해드리지 못하고 마음속에만 품고있던 소원들을 제가 다 풀어드리겠어요. 물론 난 언니만큼은 못하겠지만 세상이 하도 좋아서 언니의 소원을 풀어줄수 있을거예요. 그러니 마음을 놓으세요.

성학이 아버지가 아파하면 약이 되여주고 추워하면 불이 되여주고 더워하면 시원한 바람이 되여주고 배고파하면 제일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주고… 그렇게 살면서 나도 행복해지고싶어요. 언니! 그래도 되지요?!》

몇걸음 떨어진 곳에서 장혁수는 갈퀴같은 손으로 터슬터슬한 소나무껍질을 쥐여뜯고있었다.

 

×

 

공사는 바야흐로 마감단계에 들어섰다. 장마비에 불어난 물은 서포천과 형제산강이 합수되는 곳에서 남교제방에 막혀 태질하다가 할수 없다는듯 새 통수로를 따라 사품치며 흘렀다.

김일성장군님께서는 평양시민들에게 공사를 완공하기 위한 최후돌격전을 벌릴것을 호소하시면서 공산당원들이 돌격전의 앞장에 설데 대하여 지시하시였다. 그에 따라 평양시당에서는 평양시내 2 500명의 공산당원들로 《보통강개수공사 공산당원돌격대》를 조직하였다.

공사장에서는 대자연과의 마지막결사전이 벌어졌다.

당원돌격대원들은 억수로 쏟아지는 비속에서도 일손을 놓지 않았다. 낮과 밤의 경계도 없었다. 남자들이 기진하여 비틀거리면 녀자들이 대신하여 목고를 메였다. 번개치고 우뢰우는 한밤중, 쏟아지는 폭우속에서 기름불망치로 앞을 밝히며 웃으며 달리는 사람들…

《정로》 1946년 7월 17일부 1면 《보통강개수공사특보》

《최후돌격전이다. 7월 14일에는 아침부터 각 기관과 직장세포에서 조직된 공산당원돌격대를 선두로 수천명 돌격대원들이 참가하였다. 먼저 평안남도당과 중앙당학교에서 돌격대를 조직하여 출동한것을 비롯하여 인민위원회 돌격대, 기관, 직장들과 직맹, 민청돌격대 등 단체돌격대들이 앞장서고 전체 시민돌격대원들이 그뒤를 따라 전투기세를 올리면서 치렬한 돌격작업을 벌렸다.

최후돌격전은 낮에 이어 밤에도 계속되였다. 7월 14일 밤 임성민동무를 비롯한 선교4리의 야간특별돌격대는 공사의 운명을 좌우하는 합수터의 큰 물속에서 치렬한 결사전을 벌렸다.》

《정로》 1946. 7. 18일 《보통강개수공사특보》

《보통벌에 비는 끊임없이 내린다. 오늘(15일)이 획기적공사 보통강애국제방공사의 최후돌격일이다. 현장은 10여일동안이나 내리는 장마비로 발을 얽어매는 진흙탕이다. 이 불리한 조건하에서 최후제방돌격공사는 엄숙히 진행되였다.

이날 최후의 결실을 맺으려고 총동원한 평양시내 공산당원들은 이 위대한 공사를 자기들의 손으로 완성한다는 감격의 얼굴로 홍조되였고 만신은 긴장의 화신이다. 완만히 늘어진 제방에 최후 한덩어리의 흙은 쌓인다.…

<우리는 대자연에 도전하여 이를 정복하고 강물을 돌렸다. 앞으로 우리는 우리의 앞을 막는 곤난한 모든 장애물을 격파분쇄할것이며 반드시 승리를 획득할것이다.>

1946. 7. 15일 오후 5시. 보통강반에 성벽처럼 솟아오른 10여리 애국제방우에는 수천수만년을 두고 제멋대로 행패하던 재난의 강을 길들인 기적의 창조자들, 력사의 새 주인들이 <우리의 위대한 령도자 김일성장군 만세!>, <보통강개수공사 만세!>를 소리높이 웨치고있다.

끝없는 격정에 목메여 서로 부둥켜안고 감격의 눈물을 흘리는 전체 건설자들의 얼굴마다에는 42만 900여㎥메터의 토량을 불과 55일동안에 파올리고 10리가 넘는 보뚝을 예정동원로력의 절반으로 쌓아올렸으며 공사계획을 보름이나 앞당겨 끝낸 승리자의 자랑찬 기쁨이 어리여있다.

쏟아지는 비발속에서 수천의 삽날을 하늘높이 추켜올리며 건설자들이 웨치는 함성은 민주조선건설의 첫 개가였으며 새 조국건설을 위한 김일성장군님의 위대한 구상의 빛나는 첫 승리였다.…》

비는 여전히 그치지 않았다. 장혁수를 비롯한 지휘부성원들은 저녁에도 남교제방에 나와있었다. 남교제방공사를 맡아했던 임성민네 돌격대원들도 제방에서 떠나지 못하고있었다.

강물이 시시각각으로 불어나는 조건에서 새로 쌓은 제방이 아직은 마음놓이지 않았던것이다.




58

 

구진배는 경상골 로이문네 집에서 떠날 차비를 끝내고 술상에 마주앉았다. 그는 이것이 이승과의 리별주로 될수도 있다는 불길한 예감을 털어버릴수 없었다.

어제 그는 버취의 비밀지령을 받았다. 버취는 지령에서 보통강개수공사를 무조건 파탄시켜야 한다는것, 임무를 수행하지 못하면 돌아올수 없다는것을 명백히 밝혔다. 그러니 제방을 폭파시키지 못하면 제집으로 돌아갈수도 없었다. 생각할수록 기가 막혔다. 자기로서는 이를 사려물고 공사를 파탄시키려 해보았지만 결국은 실패하고말았다. 지금에 와서 보면 그것은 닭알로 바위치기였다.

그런데도 자기는 닭알로 바위를 까부시지 못했다고 해서 죽어야 하는것이다. 버취중위가 그렇게 명령했으면 그것은 곧 법이였다. 버취의 지령이 아니라도 구진배는 이제 와서 빈손털고 나앉을수 없었다. 그는 이미 폭약도 준비해놓았고 예비방안도 세워놓았었다. 결사의 각오를 품고 스스로 이 길에 나섰다고는 하지만 구진배는 자기가 지금 미국상전들의 채찍에 쫓기워 단말마적인 발악을 하고있다는 생각에서 벗어날수 없었다. 만약 죽음이 기다리는 그 벼랑끝에도 관세음의 손길이 뻗쳐있다면 자기를 구원해줄것이라는 허황한 기대라도 가져보는수밖에…

공산주의자들과의 혈전에서 화랑도의 용맹을 떨쳐보리라던 장한 기상은 어디로 가고 왜 이렇게 비참한 처지에 몰리우게 됐단 말인가. 구진배는 또 한번 술잔을 기울이고 생각에 빠졌다. 돌이켜보면 자기는 오늘까지 강한자에게 운명의 고삐를 맡기고 노예로 살아왔었다. 그러니 비참해질수밖에 없지 않는가. 일본에서 공부할 때 보았던 고대그리스법인 《고르툰시법전》의 구절이 생각났다.

《노예는 산 재산이다.… 노예와 집짐승의 용도에는 차이가 없다. 어떤자는 날 때부터 자유인으로 되며 어떤자는 노예로 된다고 하면 노예로 되는것이 도리에 맞는다는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미군이 주인노릇을 하는 세상에서 인간답게 살기가 부담스러워 스스로 노예가 되였은즉 이제와서 누구를 탓하랴. 일단 내짚은 걸음이니 이제는 피를 물고라도 공산정권과 싸워야 했다.

구진배는 오늘 밤 남교제방을 폭파하고 로이문과 함께 남으로 나갈 계획이였다. 운명적인 이밤에 발목을 잡는것이 있다면 제곁에 앉아 술을 쳐주는 로이문의 처였다.

자기들의 행동계획을 알고있는 녀자를 그냥 놔두고 떠날수도 없었고 도적고양이처럼 행동해야 할 남행길에 데리고가는것도 거치장스러웠다.

방법은 단 한가지 죽여야 했다.

두달가까이 자기를 숨겨주고 여러가지로 헌신한 녀자를 죽여버린다는것이 안되긴 했지만 세상에 억울한 일이 한둘이라더냐? 나만 봐도 제방을 폭파시키지 못하면 죽어야 할 처지인데 이런 원통한 일을 왜 나만 겪어야 한다더냐.… 로이문은 구진배의 뜻을 거역할수 없어 고개를 푹 수그렸다. 이렇게 된바에는 남아답게 처신할수밖에 없었다.

구진배는 독약을 마신 그 녀자의 몸부림을 보고싶지 않아 로이문을 데리고 먼저 밖으로 나왔다. 뒤따라나오는 다른 놈에게 그는 나지막하게 명령했다.

《방안에 석유를 치고 불을 달게.》

그들이 경상골을 빠져나와 만수대중턱쯤에서 뒤돌아보니 로이문네 집근방에는 화광이 충천하고있었다.

하늘에서는 여전히 비가 내리고있었다. 비옷을 뒤집어쓴 두 악마들은 서성교를 넘어 공사장으로 향했다. 구진배의 계획은 제법 치밀했다. 이미 서재골 무당집 아들은 다른 한패를 데리고 보통강상류로 떠났다. 강물이 불어난것을 리용해서 강변에 무져놓았던 통나무를 떠내려보내면 그것들이 새로 쌓은 남교제방을 직각으로 들이치게 된다.

하늘이 도와준다면 그것만으로도 제방을 무너뜨릴수 있었다. 어쨌든 제방이 위험해지면 사람들이 그쪽으로 쏠려서 통나무를 밀어내느라 소동을 벌릴것이고 자기는 그 기회에 수문기계실을 폭파한다. 수문이 폭파되면 남교제방도 순식간에 허물어지게 된다. 구진배는 제손으로 제방을 파괴하는것이 고향에 대한 모독이라는것을 모르지 않았지만 그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이제는 목숨을 내건 마지막도박판에서 제발 살아남게 해달라고 비는수밖에 없었다.

그날 밤 공사장에는 예상치 않았던 정황이 발생하였다.

형제산강상류에서 떠내려오는 통나무들이 남교제방을 위협하고있었다. 통나무들은 미처 빠지지 못하고 주변에서 맴돌면서 제방을 건드리는데 그것들이 자꾸 불어나면 언제 무슨 일이 생길지 알수 없었다.

《홰불을 더 밝히라!》

제방에 나와있던 장혁수는 누구에게라없이 소리치고는 제먼저 강물에 뛰여들었다. 처음에 잡히는 통나무를 새 통수로쪽으로 힘껏 떠밀었다. 그리고는 또 다음통나무로 헤염쳐갔다. 어제날에는 떠내려가는 가산을 건져보겠다고, 물살에 휘말려간 안해와 자식을 찾아보겠다고 필사적으로 허우적대던 장혁수, 그가 지금은 내 나라를 위하여, 제손으로 쌓은 제방을 구원하기 위하여 횡포한 자연의 광란에 몸을 내댄것이다. 정녕 이 제방은 목숨을 바쳐서라도 지켜내야 할 소중한 자기의것이였던것이다.

사품치는 강물이여! 맞서보자! 나 이젠 네가 무섭지 않다! 나 이젠 너보다 더 강하다! 나는 너를 이길수 있다! 김일성장군님께서 세워주신 새 나라가 나를 장수로 키워주었다. 나 이젠 더이상 너의 광란을 용서하지 않을것이다!

그때까지 흙가마니를 더 쌓아올리며 제방을 보강하던 임성민네 돌격대원들도 서슴없이 강물속에 뛰여들었다. 그날 밤은 오성재도 명덕이도 모두 제방이 걱정스러워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있었다.

오성재는 새로 만들어두었던 홰불망치를 기름초롱에 담그려고 수문기계실로 달려갔다. 거기서 그는 구진배와 정면으로 맞다들었다.

《반동이다! 반동놈이다!》

그때 임성민은 제방에 흙가마니를 날라다놓고 물속에 뛰여들려던 참이였다. 오성재의 고함소리를 들은 그는 손에 잡히는대로 삽자루를 거머쥐고 수문기계실로 달려갔다.

그앞에서는 홰불망치를 든 명덕이가 성난 사자처럼 내달리고있었다. 수문기계실앞에 다달은 명덕은 오성재를 깔고앉은 로이문을 알아보았다.

《요 생쥐새끼야!》

로이문은 명덕의 발길에 채워 저만큼 나가떨어졌다. 분노에 눈이 뒤집힌 명덕은 로이문을 타고앉아 사정없이 짓조겨댔다.

《이 반동새끼야! 죽어라, 죽어!》

그사이 구진배는 기계실에 폭약을 장치하고 불을 달았다. 문밖으로 나오던 그는 칼을 뽑아들고 명덕에게 달려들었다. 도화선에 불을 달았으니 공연히 총소리를 내지 말고 여기서 빨리 달아나야 했다.

구진배가 칼을 높이 드는 순간 《명덕아!》하는 고함소리와 함께 임성민이 구진배에게 육박했다. 본능적으로 뒤를 돌아보던 구진배는 임성민의 삽날을 겨우 피했다. 구진배와 임성민이 맞붙어 돌아갈 때 명덕은 씩- 하고 도화선이 타는 소리를 들었다.

귀로 들었는지 아니면 심지가 타는 냄새를 맡았는지 어쨌든 발파공의 직감으로 명덕은 기계실에 눈길을 돌렸다.

《폭약?!…》

명덕은 황황히 기계실로 뛰여들었다. 어둠속에서 타들어가는 도화선을 발견한 그는 주저없이 그것을 와락 잡아당겼다. 그런데 놈들이 어떻게 해놓았는지 심지가 잘 빠지지 않았다. 명덕은 더 생각할새없이 폭약꾸레미를 안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제방으로 달려가며 그 저주로운것을 사품치는 강물에 집어던졌다. 순간 요란한 폭음이 울리며 물기둥이 솟구쳐올랐다.

구진배는 일이 틀어졌다는것을 알았다. 정녕 이렇게 끝장이란 말인가.… 이제는 목숨이라도 건져야 했다. 지금은 목숨이외의 그 어떤 고귀한것도 있어보이지 않았다. 그러자면 여기서 빠져나가야 했다.

구진배는 이상한 괴성을 지르며 임성민을 떠밀쳐버리고 주머니에서 권총을 뽑아들었다. 그 순간 그는 뒤통수에 강한 타격을 받으며 정신이 아찔해졌다. 그는 어둠속에서 몸의 중심을 잃고 수문쪽으로 몇걸음 비칠거렸다. 발밑에는 아찔한 허공이였지만 구진배는 알수 없었다. 한발을 잘못 짚는 순간에 몸의 중심이 앞으로 쏠렸다. 지옥으로 날아떨어지는 육체에서 혼이 빠져나간듯 구진배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

수문아래로 떨어진 구진배는 강물에 거품처럼 떠내려갔다. 수문기계실앞에는 몽둥이를 틀어쥔 오성재가 아직도 온몸을 부들부들 떨고있었다.

제방에서는 숱한 사람들이 강물에서 통나무를 밀어내느라 이쪽에 주의를 돌리지 못하고있었다. 그곳에서는 아직 위험이 가셔지지 않았던것이다.

임성민은 구진배의 칼에 맞아 팔에서 피가 흘렀지만 제방으로 급히 달려갔다. 상처를 돌볼새가 없었다. 무작정 강물에 뛰여든 그는 제멋대로 흥떡이는 통나무들을 아래로 밀어내기 시작했다. 캄캄한 밤인데다 강물이 소용돌이치는 곳이여서 통나무 한대를 밀어내기가 조련치 않았다. 한대 또 한대… 제방을 구원해야 한다는 오직 한가지 생각에 몰두했던 그는 기운이 진해서야 자기가 팔에 상처를 입었다는것을 상기했다. 아까는 너무 위급한 정황이여서 상처에 신경쓰지 못했는데 물속에 들어와있으면서 피를 많이 흘린 모양이였다.

그는 자기에게 제방까지 헤염쳐나갈 힘도 남지 않았다는것을 알았다. 누구든 소리쳐불러서 구원을 청할수 있었지만 자기 하나때문에 소동을 피울수 없었다. 지금은 자기 목숨보다 제방의 안전이 더 중요했다. 가까이에 통나무라도 있으면 붙잡으련만 서너메터앞에 떠있는 통나무까지 헤염쳐갈 자신도 없었다.

(이렇게 죽는단 말인가?)

그는 살고싶었다. 정말이지 그는 죽고싶지 않았다.

해방덕분에, 김일성장군님덕분에 사람다운 삶을 시작했는데, 푸른 들판과 같은 미래가 있고 리정표가 뚜렷한 행복의 대통로가 곧바로 뻗어있는데 죽는다는게 웬말인가? 하지만 이렇게 죽는게 아쉽기는 해도 후회되지는 않았다.

소용돌이에 휘말려 빙그르르 돌던 통나무가 그의 어깨를 떠박질렀다. 임성민이 마지막으로 그려본것은 고래등같은 기와집에서 비단옷을 입고있는 안해와 자식들의 모습이였다.

(순일아, 순옥아, 부디 행복하게 살아라. 여보!…)

임성민은 미소를 지으며 조용히 물속으로 가라앉았다.

제방에 홰불을 밝히긴 했지만 거리가 멀고 통나무와 사람들이 물속에 한데 뒤엉켜있어서 임성민이 없어진것을 누구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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