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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소설 <새나라> 4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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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0건 조회 8,181회 작성일 15-11-26 2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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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쏘련군 전권대표 슈띠꼬브대장은 자기 방에 앉아서 최근 주목되는 정세들을 더듬어보고있었다. 그중에서도 이틀전 서울의 좌익계에서 시민대회를 소집하고 쏘미공동위원회를 하루빨리 재개할것을 요구한 소식은 그의 머리를 무겁게 해주었다.

미국측의 생억지로 공동위원회가 무기휴회에 들어간지도 벌써 한달이 훨씬 넘었다. 대국의 수석대표로서 나라의 통일을 그토록 절절히 바라는 조선인민앞에 자기의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평양으로 돌아오던 때의 미안함은 아직도 그의 가슴속에 빚으로 남아있었다. 그런데 오늘 이렇게 서울소식을 듣고보니 자기가 그 빚을 물게 될 기회가 온것만 같아 자연히 생각도 많아진것이다. 슈띠꼬브는 머리를 돌려 철함옆에 세워놓은 모시퉁구리에 눈길을 주었다. 서울에 나가있을 때 통일을 소원하는 한 조선녀인이 그에게 선물한것이였다.

그런데 현시점에서 내가 과연 그때 그 녀인이 기대한바대로 그 막중한 책임을 다해낼수 있을가?

슈띠꼬브는 스스로 제기한 그 물음에 자신있게 대답할수 없었다. 시민들이 시위나 한다고 조선에 대한 미국의 립장이 달라지겠는가. 지구상에서 사회주의국가가 생겨나는것을 그렇게도 두려워하는 미국이 이제와서 태도를 바꾸지는 않을것이다. 만약 조선문제에서 미국의 립장이 변하지 않는다면 내가 할 일은 과연 무엇이란 말인가. 문기척소리가 나더니 부관이 조심히 들어왔다.

《무슨 일이요?》

부관은 차렷자세로 앞에 다가와서더니 북조선공산당기관지인 《정로》신문을 한장 내밀었다. 슈띠꼬브는 의아한 눈으로 부관을 바라보았다. 자기가 조선글을 모른다는것을 부관은 알고있었던것이다. 부관은 서류철에서 로어로 타자친 종이 한장을 신문우에 덧놓으며 보고했다.

《어제 보통강개수공사장에서 통수식을 진행한 보도기사가 실렸습니다. 전권대표동지께서 관심하시는 대상이기때문에 그 기사를 따로 타자했습니다.》

슈띠꼬브는 부관의 말을 리해하지 못했다. 말을 리해 못했으니 처음엔 놀라지도 않았다.

《이자 뭐라고 했소?》

부관은 방금 한 말을 반복했다.

순간 슈띠꼬브는 흠칫하며 상체를 뒤로 제꼈다.

숱진 눈섭이 당장 날아날듯 꿈틀하며 꼬리를 쳐들었다가 잠시후에 제자리로 돌아갔다.

《그럼… 공사가 벌써 끝났다는거요?》

《그런건 아닙니다. 1단계공사만 끝냈는데 어쨌든 물길은 돌렸다고 합니다.》

슈띠꼬브는 제앞에 놓여있는 《정로》를 성급히 끌어당겼다가 그중에서 로어로 타자친 종이장만 집어들었다. 큼직하게 확대된 기사제목이 그의 눈앞으로 육박해왔다.

 

보통강개수공사특보

《통쾌! 통수만세!

통수-민주주의조선의 발원지인 대평양을 수침의 위협으로부터 방비하는 보통강개수공사는 이 감격의 통수로써 절반이 완성되였다. 통수가 됨으로써 평양은 수침의 위협으로부터 벗어나게 되였으며 따라서 공사의 진행을 아니꼽게 노리는 민족반역자, 친일주구배 등 반동분자들의 코잔등을 찍어놓고만것이였다.

방향을 전환하는 옛 강물은 이 순간에 새 물길을 찾아 꿈틀거리고 7m깊이로 되여있는 배수로는 새 주인-강물을 맞으려고 대기하였다. 건설대원들은 하던 일을 멈추고 배수로 웃머리 좌우에 늘어섰다. 기록영화촬영기, 각 신문사 사진반들의 촬영기들은 이 력사적인 화폭을 영원히 기록하고저 대기하고있었다.

오후 5시 30분 평안남도인민위원회 리주연부위원장과 공사지휘부일군들이 새 통수로의 물머리를 헐었다. 그에 뒤따라 대동군인민들과 건국로력대원들이 웃고 떠들며 손으로 물목을 터치자 강물은 꿈틀거리며 새길로 힘차게 흐른다. 만세! 보통강통수 만세!》

슈띠꼬브는 한동안 생각에 잠겨있다가 다급히 송수화기를 들었다. 김일성동지로부터 직접 설명을 듣지 않고서는 이 모든것을 사실로 믿을수 없었던것이다.

그런데 장군님의 집무실은 비여있었다. 그는 힘없이 송수화기를 내려놓고 기사를 다시 더듬어내려갔다.

과연 그럴수 있을가. 공사가 시작된지 한달도 안됐는데 벌써 통수식이라니… 그는 자리에서 일어서며 옷걸개에서 모자를 벗겨들었다. 암만해도 제 눈으로 보지 않고는 견딜수 없었던것이다.

《나가보자구.》

잠시후에 슈띠꼬브의 승용차는 서평양조차장다리를 넘어섰다.

그는 공사장의 전경이 바라보이는 곳에 차를 세웠다. 그리고 환상적인 현실앞에서 말없이 굳어져버렸다.

그는 공사가 시작되기 전에 이곳에 와본적이 있었다. 그때는 분명 허허벌판뿐이였다. 그 벌판 한가운데로 구불구불한 강줄기가 아무런 통제없이 태평스레 흐르고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어디서 솟아났는지 일직선으로 뻗은 제방이 눈앞에 펼쳐져있었다. 이럴수가 있을가? 이런걸 두고 신의 기적이라고 하는가.

강바닥과 제방에서는 흰옷입은 사람들이 분주히 움직이고있는데 눈짐작으로도 두개 사단인원은 될것 같았다. 그러니 분명 신의 행위는 아니다. 하다면…

슈띠꼬브는 입을 꾹 다물고 차주위를 오락가락하며 보통강개수공사문제로 김일성동지와 나누던 대화를 상기해보았다.

그때 자기는 보통강개수공사를 조선사람의 힘만으로는 할수 없다는 견해였고 김일성동지께서는 할수 있다고 믿으시였었다. 자기는 정치의 본질을 폭력의 은페된 형태 즉 정권장악을 위한 권력으로 보았고 김일성동지께서는 인민대중의 리익을 지켜주고 그들을 자주적존재로 내세우는것이라고 주장하시였다. 그 대화가 있은 후 슈띠꼬브는 암만해도 강건너 불보듯 할수 없어 쏘련정부에 굴착기를 다문 몇대라도 보내줄것을 요구하였다. 그런데 오늘까지도 아무 소식이 없었다. 하긴 쉽지는 않을것이다. 조국에서도 전쟁의 후과를 가시기 위해 할 일이 얼마나 많겠는가. 그리고 독립을 쟁취한 동유럽의 형제나라들을 돌봐주어야 할 책임까지 걸머지고있는 조국이다. 바로 한주일전에도 쏘련과 유고슬라비아사이에 경제원조협정이 조인되였다.

너도나도 도와달라고 손을 내미는판에 유독 북조선에서만은 자체의 힘으로 나라를 일떠세우겠다는 의지를 표명하였고 그것을 현실적으로 눈앞에 펼쳐보이고있다. 그럴수록 하나라도 더 도와주고싶은데 오히려 얼마전에도 쏘련군표의 람발과 적산이양협정문제로 김일성동지로부터 심각한 의견을 받았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그것이 북조선경제와 인민생활에 부정적영향을 끼치고있는데 대하여 원칙적립장에서 맵짜게 지적하시였다.

슈띠꼬브는 이제부터라도 북조선을 진심으로 도와주고싶었다. 전대미문의 기적이 코앞에서 일어나는줄도 모르고 대국의 전권대표라는 사람이 구경군처럼 앉아있다가는 남들의 웃음거리로 될것 같았다. 그런데 무엇을 도와주어야 하는가?

슈띠꼬브의 마음속에는 문득 자기가 그토록 희망을 걸고있는 쏘미공동위원회도 북조선에 별로 도움이 못될것 같은 회의심이 갈마들었다.

김일성동지의 령도밑에 보통강개수공사를 제힘으로 해제끼는것만 봐도 북조선은 당당한 자주독립국가의 자격을 갖추고있으며 따라서 그 어떤 보모의 보살핌이 필요없다는것을 증명한셈이다.

(그러니 지금상황에서 내가 조선인민을 도와줄수 있는 일이 과연 무엇이겠는가?)

슈띠꼬브는 괴로운 마음으로 아까와 같은 질문을 자신에게 반복하였다. 그래도 대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눈앞에 보이는 제방이 그의 입을 얼어붙게 했던것이다.




50

 

보통강통수에 대한 소식은 구진배의 심기를 몹시도 불편하게 만들었다. 그는 소식을 안고온 로이문의 존재도 잊고 혼자 생각에 잠겼다.

도대체 인간이란 어떤 신기한 존재이길래 예전같으면 몇년씩 걸려야 할 공사량을 한달도 안되는 기간에 절반이나 해제꼈단 말인가.

《인간이란 쉽게 변하지 않는 동물이다. 같은 인간들이 같은 장소에서 같은 일을 하는 조건에서 암만 때려몬다 해도 10년동안에 못한 일을 두달동안에 해제낄수 없다.…》

이 말은 자기가 떠나올 때 하지중장이 한 말이였다. 자기도 그렇게 믿었다. 그래서 슬슬 류언비어나 퍼뜨리면서 장마철까지 공사를 지연시키면 된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천지조화로밖에 설명되지 않는 기적이 일어날줄이야… 더 놀라운것은 그 기적의 창조자들이 자기가 무지렁이로 치부해오던 오성재와 같은 보통벌사람들이라는것이였다.

구진배는 기적적인 공사속도에 경악을 금할수 없었고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 하는데 대해 생각해보지 않을수 없었다. 해방전엔 돈을 받고 일하면서도 느렁뱅이처럼 움직이던 사람들이 어째서 지금은 돈 한푼 못 받으면서도 흙 한삽이라도 더 나르려고 뛰여다니는가? 이게 다 백성들이 이렇게까지 달라지리라고 계산하지 못한 하지의 과오였고 자기의 잘못이였다.

떠나던 날 아버지가 하던 말이 생각났다.

《공산당이 보통강토목공사를 주관해서 백성들이 그 덕을 보면 저희들이 살기 좋은 세상을 지켜보겠다구 기를 쓰고 덤빌텐데 그럼 우린 영영 제땅을 못 찾아!》

아버지가 옳았었다. 누구에게나 자기의것은 소중한 법이고 그것을 지키기 위해서는 이발을 사려무는 법이다. 백성들도 나라의 주인이라는 강심제를 맞고 너도나도 장수가 되였으니 제 보금자리를 제손으로 꾸리고 제힘으로 지키는데서 기적을 창조할수밖에 없을것이다. 그러니 맑스라는 령감이 계급투쟁의 불가피성이라는 리론만은 정확히 명중한셈이다.

구진배는 자기도 자기의것을 되찾기 위해 일어서야겠다고 다짐하였다. 개도 자기에게 차례진 뼈다귀를 빼앗기지 않으려고 으르렁거리는데 하물며 사람이야…

지금까지는 장마철전에 이 공사를 끝내지 못할줄만 알고 로이문과 서재골 무당집 아들같은 작자들이 쏠라닥질을 하게 했는데 이제는 자기도 용사가 되여 나서야 했다.

밤이 이슥한 뒤 구진배는 로이문과 함께 그의 집을 나섰다.

《조심하세요.》

로이문의 처 춘미가 대문을 잠그려고 따라나와서 제 서방에게 하는 소리였다. 구진배는 기분이 언짢아졌다. 그래도 로이문에게는 신상을 념려해주는 계집이라도 있지만 자기는 죽건살건 누구 하나 거들떠보지 않을 개밥의 도토리신세라는 생각에 마음이 서글퍼졌던것이다. 허나 그것도 한순간이고 이따위 감상적인 기분에 젖어있을 때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면서 온몸에 광기가 더 살아나는것 같았다. 《가자!》 그는 신경질적으로 내뱉고 품안의 권총을 더듬어보며 어둠속으로 녹아버렸다.

서성교근방에 와서 로이문을 서재골 무당집으로 보내고 자기는 아래토성랑으로 향했다. 오성재네 움막을 찾아가는 길이였다. 구진배가 오늘 밤 거사에 오성재를 끌어들이려는것은 제딴의 타산이 있기때문이였다.

《공사에 필요하다면야 가야지요. 그런데 무슨 일이시우?》

오성재는 구진배에게 본능적인 경계심을 품으며 물었다. 오성재 생각엔 공사를 반대하던 사람이 어째서 한밤중에 찾아와 공사일을 도와달라고 하는지 선뜻 납득되지 않았던것이다.

《아, 나도 그새 시인민위원회 토목과에 한자리 잡았지요. 아무래도 이북에서 살아가려면 나도 건국을 해야 할게 아니요. 고장난 전동기를 오늘 밤중으로 수리소에 실어가야 래일중으로 고칠수 있단 말이우다. 달구지를 얻을수 있겠지요?》

《글쎄… 꼭 써야 한다면야…》

오성재는 뭔가 석연치 않았지만 딱히 거절할만 한 구실도 없었다. 그래도 자기를 생각해서 돈도 주고 구문선의 빚문서도 전해준 사람이 부탁하는건데 무작정 안 가겠다고 할수야 없지 않는가. 더구나 공사장일이라는데…

세상리치를 자기처럼 두리뭉실하게만 대해오던 오성재에게는 이 사탄의 무리가 얼마나 나쁜 놈인가를 판별할 계급적안목이 없었다. 그는 더이상 묻지 않고 소달구지를 얻어가지고 구진배를 따라나섰다. 구진배가 달구지와 함께 현장에 도착하니 벌써 로이문과 무당집 아들이 전동기의 고정틀나사를 다 풀어놓고있었다.

《어떻게 됐는가?》

《준비됐수다.》

구진배는 태연하게 분부했다.

《달구지를 이쪽에 들이대오. 소리를 내지 말고.》

오성재는 더럭 의심이 들었다. 소리는 왜 내지 말라고 하는가? 좋은 일을 하면서 왜 도적고양이처럼 조심하는가?

그는 지금껏 공사장에서 반동들의 책동을 경계하라는 말을 들으면서도 자기와는 상관없는것으로 생각해왔었다.

(혹시?…)

오성재는 께름한 생각을 감추지 못하고 우정 큰소리로 물었다.

《그런데 이걸 왜 밤에 날라가는거요?》

《령감! 조용하라는데…》

《글쎄 왜 도적놈들처럼 이러는가 말이우다?》

어둠속에서 두런두런 하는 말소리를 들었는지 공사장을 순찰하던 보안서원의 전지불이 이쪽으로 향해졌다.

《거 누구요?》

《젠장!》

전동기를 훔쳐가려던 계획이 틀어지자 졸개들은 전동기틈새에 흙모래를 쓸어넣었다.

《이게 무슨짓들이요?》

구진배는 오성재에게 총구를 겨누었다가 생각을 고쳐하고 전지불을 목표삼아 둬방 갈겼다.

평화롭던 공사장에 처음으로 울린 총성이였다.

땅! 땅!

구진배는 제 먼저 돌따서면서 소리쳤다.

《뛰라!》

총소리에 와뜰 놀란 황소가 구진배의 명령을 알아듣기라도 한듯 화닥닥 뛰쳐달아나는 통에 그는 하마트면 소발통에 채울번 했다. 졸개들도 달구지를 멘 황소와 달리기경주를 시작했다.

《서라!》

날카로운 고함소리에 잇달아 보안서원이 쏜 총알이 구진배의 귀뿌리를 스치며 지나갔다. 극도의 공포감을 안고 구진배는 숨이 턱에 닿아 내달렸다. 오성재는 보안서원이 달려올 때까지 그 자리에서 와들와들 떨기만 했다.

자정이 훨씬 넘어 로이문의 집에 들어박혀서야 구진배는 자기가 살았다는것을 느낄수 있었다. 전동기를 훔치지는 못했지만 대신 총성을 울리고 오성재를 현장에 내버렸으니 전혀 소득이 없는것은 아니였다. 달구지를 끌고왔던 오성재는 입이 있어도 반동들과 결탁되였다는것을 부인하지 못할것이다. 오성재는 법대로 처리될것이고 그것이 공사장에 주는 영향은 자못 클것이다. 공산당은 자기가 주인으로 내세워준 백성에게 뺨을 맞은셈이니 암만 부처님같이 자비로운 공산당이라도 배신감에 격분할것이고 그렇게 되면 무자비한 독재를 실시할것이다.

잠시후 구진배는 자기가 오늘의 실패를 억지로 합리화하려 한다는것을 깨달으며 쓰겁게 웃었다. 공산당의 지지기반이 그렇게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는것을 알기때문이였다.

그날 밤 구진배는 버취의 지령을 무전으로 받았다.

《제방을 폭파할것.》

버취는 서울에 앉아서도 보통강개수공사장의 기적을 다 알고있는게 분명했다. 그러니 민심파괴가 실패한 현시점에서 유일하게 남은 방도는 물리적파괴뿐이였다.

결국 오늘일은 공사장에 보내는 마지막경고장과 같은셈이였다. 그는 로이문에게 폭약구입을 재차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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