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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소설 <대박산마루> 제 1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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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1건 조회 5,737회 작성일 15-12-14 2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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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11 회)

16

 

김일성동지께서는 안효식이 교기를 꺼내드는 순간 저도 모르게 소리치시였다.

《잠간 세우시오.》

아까부터 수령님의 안색을 불안하게 살피고있던 전기철이 침착한 동작으로 원격조종기의 단추를 눌렀다. 아쉽게도 안효식이 꺼내든 단군초상기는 기폭을 활짝 펴지 못하고 그의 가슴에 드리워진채 굳어졌다. 하지만 김일성동지께서는 그 초상기, 흰 바탕에 거인의 초상이 그려진 네귀에 불에 그슬린 기발을 똑똑히 알아보시였다.

《음…》

그이께서 괴로운 신음소리를 내시였다.

《수령님!》

전기철이 긴장하여 그이곁에 바투 다가섰다.

《저 기발이요, 저 기발!…》

기발을 앞가슴에 드리운채 백발을 날리며 굳어진 안효식의 근엄한 모습이 오래도록 그이의 망막에 비쳐들었다.

그이께서 다시 록화물을 돌리라고 손짓하시였다. 록화기가 돌아가기 시작했으나 전기철은 큰 심리적충격을 받으신 수령님의안색을 살피느라 언제 그것을 볼새 없었다.

김일성동지께서도 더이상 화면이 눈에 들어오지 않으시였다. 그이의 생각은 항일의 혈전장으로 달리고있었던것이다.

그때가 백두산근거지를 중심으로 놈들의 《동기대토벌》을 격파하기 위한 전투들을 벌릴 때니까 1937년초였다. 홍두산, 리명수전투를 금방 끝낸 1937년 2월말경이였다.

비상한 기억력을 지니신 그이께서는 단군초상기를 보는 순간 수십년전에 있었던 일을 어제 있은 일처럼 생생히 기억해내시였다.

…왜병기수가 쓰러지자 흰 천에 피빛동그라미 하나를 댕그라니 그려넣은 일장기는 눈판에 딩굴었다.

그우에 또다시 싸창이 불을 토했다.

무자비한 복수전이였다.

바로 몇시간전에 조선인민혁명군 사령관 김일성동지께서는 정가촌으로 불리우는 한 조선인마을이 초토화되였다는 보고를 받으시였다.

보고에 의하면 50여호의 마을이 집 한채, 사람 하나 남지 않고 다 불타고 전멸되였다는것이다.

정가촌의 소식을 들은 그이께서는 비분에 치를 떠시였다. 그이께서는 더 생각지 않으시고 부대의 출병을 명령하시였다. 정가촌의 참사는 그이로 하여금 류다른 복수심을 불러일으켰다.

그럴만한 사연이 있었다.

정가촌을 개척한 마을의 좌상 정익호는 자기를 고려의 충신인 정몽주의 25대자손이라고 자부하고있는 60대의 로인이였다.

그가 정몽주의 후손인지 아닌지는 정확히 몰라도 충신의 후손으로 자부하고있는것을 보면 충의를 귀중히 여기는 사람인것만은 틀림이 없었다.

그 충의로 말하면 두말할것없이 자기 조상, 자기 민족에 대한 충의라고 해야 할것이다.

정익호는 대종교인이였다.

대종교는 단군을 숭배하는 종교로서 1900년대초에 창제되였으나 일제의 단군말살책동이 우심했던 국내를 피하여 여기 동북지방에 들어와 독립운동자들속에 뿌리를 박고있었다. 독립운동자들이 이 시기 단기를 쓰고있는것을 보면 그것을 알수 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정익호에게 관심을 돌리시였다.

단군숭배는 민족숭배이며 민족숭배야말로 철저한 반일이고 진정한 애국이라는 지론을 지니고계신 그이께서 정익호와 같은 로인을 놓치실리 없었다.

때마침 부대가 정가촌일대에서 활동하고있던 때여서 김일성동지께서는 소문만으로만 듣고있던 로인을 만나려 정가촌을 찾으시였다.

그런데 뜻밖에 여기서 희한한 장면을 목격하게 되시였다.

정익호네 집 넓은 뜨락에는 울바자가 터지도록 사람들이 꽉 들어차서 처마끝에 매단 장대에 달린 흰 기발에 절을 올리고있었다.

그자체도 희한한 일이였지만 기발에 그려진 초상의 주인공이 단군이라는 사실이 더욱 희한하였다.

알아보니 정익호가 언젠가 마을에 온 화상쟁이(그림을 그려주고 살아가는 사람)에게 자기가 어릴적 구월산의 삼성사에서 본적있는 단군의 모상을 말해주어 이 초상을 그렸다고 한다.

정익호가 단군의 모상에 대한 기억을 얼마나 정확히 더듬었으며 또한 화상쟁이가 얼마나 생동하게 그것을 옮겼는지는 모를 일이지만 단군초상을 누구도 본적이 없는 조건에서 정익호가 단군초상이라고 하니 그대로 믿을수밖에 없었다.

바로 전날 국제올림픽 마라손경기에서 1등을 한 손기정의 장거를 놓고 국내에서 《일장기말소사건》이 터졌다는 놀라운 소식이 뒤늦게나마 이 구석진 마을에까지 날아들었다.

정익호는 격동되였다. 너무도 가슴이 끓어번져 온밤 잠들지 못하다가 이튿날 아침 마을사람들을 자기 집뜨락에 모이게 하고는 대종교의 교법에 따라 손기정의 의거와 국내 애국적문인들의 소행을 칭송하고 마을사람들속에서 민족정신을 각성시키려고 했던것이다.

정익호의 이 소행은 김일성동지의 마음을 대번에 울렸다.

그이께서는 정익호의 두손을 잡고 손기정의 소행도 장거이지만 정익호의 소행도 하나의 장거라고 높이 평가하시고 앞으로 민족정신을 버리지 말고 조선인민혁명군을 도와 반일성전에 떨쳐나설것을 당부하시였다.

정익호는 이에 흔연히 응하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이러한 정익호에게 류다른 정을 품으시였다.

그가 아버님의 발자취가 찍혀진 구월산의 삼성사를 찾아갔었다는 사실이 이역에 와계시는 그이께 혈육과도 같은 뉴대감을 주었으며 잃어진 단군초상을 모조로나마 살려놓았다는 사실이 또한 항일혁명선상에 계신 그이로 하여금 혁명적인 동지감을 갖게 하는것이였다.

김일성동지께서 정가촌의 소식을 듣고 달려가시였을 때 마을의 다른 집들과 함께 정익호네 집도 재더미로 되였고 정익호자신은 뜨락의 정자나무에 결박을 당한채 두눈알을 뽑히운 상태에서 숨져있었다.

그의 발밑에 불에 타서 새까만 숯이 된 이 집 열한명 식구의 시체가 널려있었는데 올망졸망한 시체들은 정익호의 아들들과 며느리들 그리고 어린 손자, 손녀들이였다. 불과 한달전 그이의 바지가랭이에 매달리던 귀여운 모습들. …

어찌하여 정익호의 온 가족이 이처럼 참혹한 죽음을 당하였는가?

김일성동지께서는 놈들의 단군말살책동의 일환으로 단군초상을 가지고있는 이 조선인마을이 초토화되였으리라는것을 대뜸 짐작하시였다. 조선민족의 력사를 말살하려는 일제의 책동은 참으로 집요하고 악착하였다. 조선강점과 함께 시작된 일제의 단군말살만행은 수십년을 이어져오면서 국경을 넘어 여기 동북땅에서까지 감행되고있었다. 1930년대에는 일제가 그 일을 전담하는 관동군 헌병대소속의 별동대까지 두고있다는것을 알고계시였던것이다.

그 별동대놈들이 그러한 만행을 저지른것이 분명하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온몸을 부르르 떠시였다.

어릴적에 강동땅에서 체험하시였던 분노가 되살아났다.

그때에는 마음속으로 증오의 총을 쏘시였던 그이이시였다. 그이께서 틀어쥐고계시는 총에는 그날의 증오까지 장약되여있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복수전을 결심하시였다.

친히 한개의 부대를 인솔하시고 하루밤을 꼬박 추격하여 멀리 달아나버린 별동대놈들을 따라잡으시였다.

무자비한 소탕전이 벌어졌다.

그이께서는 권총을 뽑아들고 적의 선두를 향해 달리시였다.

거기에는 수십년간 증오의 표적으로 되여온 일장기가 펄럭이고있었다.

그이께서는 명중탄에 쓰러진 왜병기수의 머리맡에 가랑잎마냥 처량하게 펄럭이는 일장기를 밟고 서시였다.

《한놈도 남기지 말라!》

그이의 목소리가 울렸다.

일장기가 눈앞에서 재가루로 날려갔으나 그이의 직성은 풀리지 않으시였다.

증오는 아직 앞에 있었다.

한 지휘관이 포로를 심문하여 얻어낸 놈들의 만행자료를 보고해왔다.

애당초 놈들은 온 마을을 도륙할 심산이였던만큼 무차별적으로 불을 지르고 총을 쏘았다.

정익호의 식구들만 살려서 뜨락에 모아놓고 단군초상을 내놓으라고 위협하였다.

정익호는 물론이거니와 그의 안해와 아들, 며느리, 손자, 손녀들까지 응대를 안하자 놈들은 정익호를 정자나무에 비끄러매놓고 그가 보는 앞에서 식구를 한사람씩 끌어내였다.

먼저 정익호의 늙은 안해를 불속에 던져놓고 끄슬려서 꺼멓게 된 시신을 그의 발앞에 던졌다.

그 다음 맏아들, 맏며느리, 다음은 둘째아들, 둘째며느리, 나중에는 손자손녀들… 이렇게 열한명이나 되는 식구들을 불에 태워 발앞에 던졌으나 정익호는 황황 불타는 눈길로 놈들을 쏘아볼뿐 단군초상을 숨긴 곳을 대지 않았다. 그를 굴복시키지 못한 놈들은 마지막으로 그의 두눈알을 뽑아 학살하였다.

포로에 대한 심문자료를 보고받으신 김일성동지께서는 고통을 참으시려고 눈을 꼭 감으시였다. 그이의 고통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이날의 소탕전에서 아군은 녀대원 한명을 잃었다. 젖먹이까지 두 어린것을 떼두고 입대한 녀성이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연거퍼 들이닥친 고통을 억누르시며 추도문을 한자한자 쓰시였다.

《…나라를 찾는 투쟁은 빼앗긴 땅을 찾는 투쟁일뿐아니라 민족의 유구한 력사와 찬란한 문화, 전통을 찾는 투쟁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이 투쟁에서 피를 뿌렸습니다. 우리 겨레는 망국의 시대에 산 민족의 아들딸들이 흘린 이 피를 잊지 않을것입니다. …》

희생된 녀대원과 영결하는 조총소리가 울렸다. 긴 메아리였다. 그것은 그이의 온 생애에 한번도 멎지 않았고 또 멎을수도 없는 영원한 메아리였다. …

그 메아리가 지금 그이의 마음을 아프게 흔들고있었다.

저 기발이 어떻게 안효식의 품에서 나올수 있는가. 아마 그때 그 정가촌의 사람들중에 누군가 살아남은것이 틀림없다. 그 기발이 대종교의 교기로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 단군겨레의 넋을 지켜 목숨을 바치고 사선을 헤쳐야 했겠는가를 더듬어보시며 그이께서는 록화기가 꺼진 후에도 한참동안이나 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하시였다.

 

17

 

리금순이 남쪽땅에서 남편의 옛 친구인 허진경을 만난것은 전쟁이 끝난 직후였다.

그때 경상남도 진해의 묵도라는 자그마한 무인도에서 명주천에 그린 옛 그림 한상이 발견되였다.

조선남해는 섬이 많아서 다도해라고 한다. 우리 조상들은 다도해의 사람이 살지 않는 손바닥만 한 섬에도 이름을 달아놓았는데 이 사실을 통해서도 우리 조상들이 국토의 한쪼박 땅도 살점처럼 귀중히 여겨왔다는것을 알수 있다.

옛 그림은 무인도인 묵도에 원족을 가서 보물찾기를 하던 진해읍 보통학교 아이들에 의하여 아츠랗게 높은 벼랑짬에서 발견되였는데 그림을 돌돌 말아서 명주천에 싸고 그우에 봇나무껍질로 덧싸서 보관한것이였다. 그림은 수염을 길게 기르고 행건같은 모자를 쓴 옛 거인의 초상이였다.

묵도에서 괴화가 발견되였다는 소문을 들은 리금순이 즉시로 현지에 달려갔다. 거기에 한발 먼저 온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바로 허진경이였다.

리금순은 허진경과 경성제대 동창이며 같은 력사학자였고 김석진의 안해로서 허진경이 월남할 때만 해도 북에서 살고있었다.

금순이도 놀랐지만 허진경은 그의 출현에 몹시 당황해했다.

단군묘에 말뚝을 박고 월남할 때 김석진이 그를 얼마나 타매했던가. 필경 금순이도 남편으로부터 그 사실을 전해들었을것이리라.

《금순씨가 어떻게?》

허진경의 놀람에 금순은 대답대신 이상한 눈으로 허진경을 바라보았다.

《허진경씨가 어떻게 단군초상에 관심을 가졌는가요?》

허진경은 대답을 못하고 머리를 푹 떨구었다. 리금순이 지금 단군묘에 말뚝을 박은 그리고 북의 제도와 동창생들의 따뜻한 충고를 외면하고 다른 길에 들어선 자기의 소행을 지탄하는것이다. 월남해서도 얼마나 많은 글을 써서 북의 제도와 정치를 비난했던가.

허진경은 자기를 변명하지 않았다. 그는 자기앞에 서있는 어제날의 동창생을 찬찬히 훑어보았다. 그 곱던 얼굴은 시들은 호박꽃이 되고 람루한 차림에 고뇌가 어린 눈빛, 때이르게 희여진 귀밑머리… 불과 몇해사이에 너무도 변모된 모습이였다.

《그런데 금순씨는 어떻게 여기 나타났소?!》

《…》

《월남했소? 나처럼? 북이 싫어서? 석진이가 싫어서? 아니면 석진씨와 같이?》

허진경은 연거퍼 질문소나기를 퍼부었다.

《더 묻지 마세요. …》

그 녀자는 대답할 용기도 기력도 없는듯 스르르 눈을 감았다. 두눈귀로는 눈물이 새여나왔다. 자기가 왜 그때 수령님의 말씀을 새겨듣지 않고 남행길을 했던가.

리금순은 이제나저제나하고 남편의 소식을 기다렸다. 수령님의 분부를 받고 고서적구출을 위한 사업에 동원되였던 남편이 책들만 실려보내고 돌아오지 못했던것이다. 수령님께서 우정 시간을 내시여 리금순을 만나 위로의 말씀을 해주시였다.

《석진선생은 돌아옵니다. 우리 동무들의 말을 들으니 석진선생은 규장각에 보관된 책들을 다 실은 다음 도서들을 더 찾아볼데가 있다고 하면서 자릴 떴답니다. 그때 놈들이 들이닥치고… 그래서 할수없이 그를 떨궈둔채 돌아서지 않으면 안되였는데 아마 지금 적후에서 싸우고있을것입니다. 내 그래서 전선사령부에 명령을 떨궜습니다. 력사학자 김석진선생을 찾으며 그의 신변을 철저히 보위하여 최고사령부까지 무사히 보내라고 말입니다.》

리금순은 수령님의 말씀을 들으며 눈물을 흘렸다. 그러나 그에게는 수령님께 말씀드리지 못한 한가지 사연이 있었다. 그는 남편 김석진이 그 엄혹한 형편에서 왜 굳이 떨어졌는지 너무도 잘 알고있었던것이다. 남편은 해방후 서울에서 가지고 들어오지 못한 고서들에 대해 몇번이나 후회의 말을 했었다. 그 책들은 자기 친정에 있었다. 그는 분명 그 책들을 마저 가지고 오기 위해 시간을 지체했을것이다. 자기가 남에 나가면 남편의 행처를 알수 있었다.

우리 군대가 재진격을 시작하여 다시 서울을 해방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리금순은 더이상 주저하지 않고 서울로 떠났다. 그때 그는 자기 남편이 제2전선부대들에 의하여 무사히 전선을 넘고있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고있었다. 인간은 이렇게 한순간의, 한걸음의 잘못으로 하여 운명의 궤도가 엄청나게 달라지는 경우들이 있다. 금순이 바로 그렇게 되였다. 그는 서둘러 결심을 내린 결과 조금만 더 기다리면 만날수 있을 남편과 기약할수 없는 리별을 하게 된것이다.

그가 자식들까지 거느린채 간난신고를 다하여 서울에 와서 친정을 찾아갔을 때 그를 맞이한것은 무너진 자기의 옛집자리뿐이였다. 그때부터는 남편의 행방을 쫓기보다 자기 부모들의 행방을 찾아헤맸다. 그래야 남편에 대한 바늘귀만 한 소식이라도 알수 있겠기에…

정전이 되고 북에서 남편이 건재한 몸으로 과학연구사업을 계속 하고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에야 금순은 땅을 치며 자기를 후회하였다. 그동안 무슨 고생인들 하지 않았으랴.

하지만 이 모든 내막을 알수 없는 허진경은 자기의 심중을 알아줄수 있는 지기를 만난데 대하여 사뭇 반가와하였다. 리금순도 처음에는 단군초상에 흥미를 가지는 허진경을 이상스럽게 여겼지만 그의 내심을 알고나서는 속을 터놓았고 힘을 합쳐 나섰다.

허진경의 심중도 금순이 못지 않게 복잡하였다. 남으로 나온 허진경은 처음 괴뢰《문교부》소속의 력사학회에 적을 두었다. 그가 속한 력사학회는 당국이 주도하고있다고는 하지만 소속회원들의 푼전으로 겨우 유지되고있는 사조직이나 다름없었다.

매국정권이 민족사연구에 관심을 둘수는 없었던것이다.

이리하여 허진경의 후회는 월남직후부터 시작되였다. 조국해방전쟁이 일어나자 당국의 명색상 관심마저 없어지고 허진경은 생계조차 유지하기 어려운 가련한 처지에 빠져들었다.

누구도 돌보지 않는 어려운 조건에서도 량심적인 학자들은 민족사연구를 버리지 않았다. 허진경도 이러한 학자들속에 속해있었으니 그에게도 학자적인 량심이 남아있었다고 봐야 할것이다.

전후에 와서 당국은 정권유지필요성에서 민족사연구에 낯을 돌리기 시작했으나 자기들의 목적이 있었던만큼 학자들에게 력사에 대한 외곡과 위조를 강박하였다.

정권당국에 필요한것은 우리 인민의 민족성 다시말해서 민족자주정신과 우수한 민족문화전통인것이 아니라 괴뢰정권의 사대매국적행위의 합리성을 보여주기 위한 《민족성》이였다. 그것은 점차 보편성을 띠기 시작했다. 당국은 예로부터 우리 민족은 단일국가로 존재해온것이 아니잖는가, 그 제후국들중에 통일을 표방하고 방법상에 따르긴 하지만 《통일》을 이룩한 국가가 정통국가가 아니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신라가 당나라를 끌어들여 민족《통일》을 이룩한것이 공적이 아니겠는가 하는데로 력사를 평가할것을 강요해나섰다. 그리하여 《신라정통성》을 내세우는 어용학자들이 점차 남조선 력사학계의 주류를 이루게 되였다.

허진경은 자기를 후회하였다.

자기가 이 길에 들어서지 않으면 안되였던 구체적인 동기를 곰곰히 돌이켜보았다.

1946년초였다. 나라가 해방되여 모든 사람들이 해방열에 떠서 저저마다 건국에 보탬을 주겠다고 떨쳐나섰을 때 허진경은 일제의 통치아래 무시당하고있던 단군릉발굴을 누구보다 먼저 결심하였다. 그것은 과거 일제의 력사위조책동으로 하여 조선민족의 력사가 무참히 말살되여오는것을 직접 목격하여온 조선의 력사학자로서의 피맺힌 한이 있은데다가 고고학을 전공한 그로서 우리 나라 력사에서 제일 오랜 조상의 무덤으로 간주되는 이 단군릉이 그에게 류다른 관심을 주었기때문이였다. 그는 몇몇 사람들과 함께 강동땅에 도착하여 현장을 답사하였다. 그리고 단군릉주변에 새끼줄을 늘이고 발굴준비를 하였다. 그런데 그 누구인가가 이 문제를 우에다 상정시켰다.

이른아침이였다. 느닷없이 숙소에 들이닥친 승용차에서 공교롭게도 자기의 면전에 입당청원서를 내던졌던 그 사자머리가 내리였다.

《누군가 했더니 당신이였군.》

그래도 초면이 아니니 반갑다는건지 아니면 불쾌하다는건지 모를 소리를 쓰겁게 내뱉은 그는 아직 승용차에서 내려서지도 않은 사람을 경건하게 가리키며 《중앙에서 오신 간부동지요.》하고 알으켜주고나서 저쪽으로 그를 끌고가더니 당중앙위원회 박아무개부위원장께서 친히 왕림하셨으니 사람들을 모이게 하라고 했다.

허진경은 사자머리를 두번다시 보지 않았으면 했으나 일단 그의 출현으로 하여 중앙의 관심사를 알게 된것만큼 다소간 마음이 풀어졌다. 사람들이 모여왔을 때 박부위원장이란 사람이 마침내 승용차에서 내려섰다.

중키에 몸도 그리 좋지 못하였는데 행동거지는 진중한듯 하였다. 단군묘를 돌아보고난 그는 쓴웃음을 지었다.

《여보, 난 또 시조릉발굴을 제안해나섰다고 하길래 에짚트의 피라미드를 상상했지. 시조릉이라? 듣기가 좋소. 이게 어디 왕의 무덤이요? 이렇게 초라한게… 당신들이 중앙아시아의 력사유적들을 보지 못했으니 할수 없지.》

이따금씩 로어를 섞어쓰는것으로 보아 그는 쏘련의 중앙아시아에서 살다 온듯싶었다.

손을 홰홰 저으며 릉을 내린 그는 사람들이 모여서있는 곳에 이르러 문득 물었다.

《누구요? 조선의 트로이발굴기를 쓰겠다는 사람이?》

허진경이 한발자국 앞으로 나섰다.

《이 동뭅니다. 언젠가 말씀드린…》

사자머리가 옆에서 훈수를 들었다.

《경성제대에서 력사학을 전공했다지?》하고 질문인지 혼자소린지 모를 말을 던진 박부위원장은 아래턱을 슬슬 매만지며 이렇게 말했다.

《그래 이런 초라한 무덤을 발굴하려는 의도가 어디 있는지 좀 말해보우.》

허진경이 말하기 전에 사자머리가 또 나섰다. 보매 그가 이 문제를 상정시킨듯싶었다.

《단군이 실재한 인물이라는것을 확인하겠다는겁니다.》

《당신의 공상은 어리석은짓이요. 단군이 신화적인 인물이라는것은 초보적인 상식이 아닌가. 이미 왜놈들이 이 릉을 도굴했다고 했지. 그런데도 당신은… 그래 당신은 경성제대를 나온 사람이 맞긴 맞소?》

박부위원장은 자기가 력사에 그리 어둡지 않으며 어지간히 학식이 있다는것을 시위하자는것인지 허진경이 모를수 없는 이전에 장지연에 의해 폭로된 일제의 도굴자료까지 꺼들였다.

《전 그렇기때문에 더더욱 발굴을 계획한것입니다. 왜놈들은 그때 말그대로 략탈을 목적으로 도굴을 했단 말입니다.》

허진경은 너무도 기가 막혀 말을 채 맺지 못했다. 그는 뒤틀린 심사를 애써 감추며 한마디 보탰다.

《이젠 나라도 찾았는데 우리 손으로 자기의 력사도 찾아야 하지 않습니까?》

그가 반박조로 나오자 박부위원장이란 사람보다도 사자머리가 펄펄 뛰며 끼여들었다.

《여보, 그만큼 좋게 말했으면 알아들어야지. 어디다 대구 삿대질이요, 엉? 어디다 대구 감히…》

그 사자머리를 점잖게 제지시키고난 박부위원장이 끼고있던 가방을 그에게 맡기며 손을 들어 가리켰다.

《저길 좀 보오.》

그가 한손을 들어 가리키는 곳에 토지개혁을 축하하는 농민들의 대렬이 보였다. 장새납소리도 울리고 프랑카드들이 우줄우줄 춤을 췄다. 그는 그 장쾌한 대렬이 보기만 해도 흐뭇한지 웃음을 지었다.

《우리는 지금 기나긴 중세기적몽매에서 깨여나고있소. 모든 낡은것, 봉건적이고 식민주의적인 모든것과 결별하고있단 말이요. 바야흐로 새시대가 도래하고있소. 이 벅찬 숨결을 느낄줄 모르고 이 시대의 랑만을 외면하는것은 시대를 역행하는것이요. 알겠소?》

허진경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제가 단군릉을 발굴하자는것이 어떻게 중세기로 돌아가자는것으로 됩니까? 그렇게 본다면 력사연구가 무엇때문에 필요하겠습니까? 농민들을 땅의 주인으로 만드는것도 중요하지만 그 땅에 깃들어있는 조상들의 력사를 알려주는것도 해방된 이 나라의 지식인들인 우리가 마땅히…》

《당신은 상아탑속에 사는 인간이요. 학문의 상아탑 말이요. 이 무덤을 발굴하면 건국에 어떤 도움이 되겠는가 하는것을 먼저 생각해봐야 했소. 이걸 발굴해서 어찐다는거요?》

《부위원장동지, 더 길게 말할게 없습니다. 이 사람은 가만 보니까 해방된 나라에 리왕조를 다시 복귀해야 한다고 하는 그런 어리석은 사람들의 편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할아버지만 봐도 유생이였구요.》

《력사학자선생, 뭐니뭐니해도 지금은 계급혁명의 시대요. 시대의 관조자란 있을수 없소. 당신도 명백히 자신을 밝혀두는것이 좋겠소. 해방된 이 땅을 농민들에게 나누어주는 민주주의혁명의 편인가, 이따위 새끼줄이나 늘여놓고 케케묵은 무덤에서 있을지도 없을지도 모를 지배계급의 뼈다귀를 들추는 반혁명의 편인가. 점잖게 말할 때 마음을 돌리오. 그리고 동무!》

그는 동행한 강동군의 일군을 찾았다.

《오늘중으로 저 새끼줄들을 다 걷어내오. 그리고 이 주변의 토지들을 등록하고 분배를 실시하시오.》

그는 중앙의 일군답게 단호한 결론을 주었다. 허진경은 더이상 말을 붙이지 않았다.

그로부터 며칠후 허진경은 단군묘에 아무런 내용도 없는 우상이라는 말뚝을 박았다. 그것은 박부위원장이나 사자머리같은 인간들이 있는 한 아무리 단군릉을 발굴한다 해도 조상을 두번다시 욕보이는 결과밖에 가져올것이 없다는 생각으로 누가 더이상 손을 대지 못하도록 하자는 의도에서였다.

그 길로 남행길을 택한 그는 세월이 흐를수록 자기의 탈북행위가 쥐새끼 밉다고 독을 치고 날이 덥다고 해를 향해 침을 뱉은것과도 같은 어리석은 행위였음을 깨닫게 되였다. 그러나 허진경은 남조선 력사학계의 흐름을 거슬릴수 없었고 더구나 자기를 반공《영웅》으로 내세우는 당국의 찬양과 우대를 물리칠수 없었다.

그는 운명에 순종하는수밖에 없었다.

반공으로 탈북한 그의 여생길은 이미 확정지어진것이나 다름없었다. …

금순은 허진경과 함께 그림을 고증하기 위해 뛰여다녔다.

사실은 삼성사가 불타기 며칠전 구월산으로 수학려행을 왔던 진해군의 보통학교 학생들중 한 아이가 단군초상을 감춰가지고 돌아왔는데 그가 바로 허진경의 형이였다. 허진경의 형이 9살나는 어린 나이에 그러한 기특한 일을 하게 된것은 민족주의운동을 하고있던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서였다. 구월산으로 수학려행을 떠난다는 말을 들은 아버지는 어린 아들에게 너무나도 어려운 일을 맡겼던것이다. 허진경의 형은 담임선생의 방조를 받으며 그 그림을 무사히 품에 안고 돌아왔다.

어릴적 허진경은 아버지와 형이 쉬쉬하는 말속에서 묵도라는 이름이 자주 오르군 하는것을 들었다. 형과 아버지는 그 이상의 말은 더 하지 않았는데 일제가 알면 멸족지화를 당할 일이였기때문이였다. 허진경의 아버지는 일제가 패망하기 퍽 이전에 병으로 사망하였고 형은 징병에 걸려 태평양상의 외진 섬에서 해방직전에 무주고혼이 되고말았다.

허진경은 묵도에서 괴화가 발견되였다는 소문을 듣는 순간 옛적에 아버지와 형이 쉬쉬하던 말을 상기하였고 뭔가 짚이는데가 있어 선참으로 달려왔던것이다.

리금순과 허진경은 여기저기 뛰여다니며 지금까지 남아있는 솔거의 다른 그림들과 묵도의 그림을 대조하였고 단군초상이 솔거의 진품그림임을 과학적으로 고증해냈다.

리금순이 곧 고증서를 작성하여 허진경에게 제출하였다.

허진경은 이 사실을 당시 괴뢰정부의 《문교부》장관이였던 안효식에게 직접 보고하였다. 그가 력사학회 회장이나 《문교부》의 해당 부서를 뛰여넘어 최고당국자에게 보고한것은 가슴속 깊이에 감춰두고있는 큰 죄(김일성동지의 예측대로 그는 강동의 단군릉을 발굴해보지도 않고 아무것도 없는 빈 무덤이라고 공포하였던것이다.)에 대한 속죄의 마음에서였다. 그의 보고를 받은 안효식이 진해로 내려왔다.

안효식은 그림이 발견된 묵도의 현지를 직접 밟아보고 그림을 여러번 관찰하였으며 리금순이 작성한 고증서를 깐깐히 확인한 다음 허진경에게 그림을 서울로 올려가 국립력사박물관에 전시할것을 지시하였다.

당시 괴뢰정부의 기관원들에는 친일친미매국노들과 함께 상당한 수의 민족주의경향을 가진 사람들이 들어가 좌파진영을 이루었는데 3. 1인민봉기때 《독립선언서》를 작성발표한 33인중의 한사람의 후예인 안효식도 바로 이 진영에 속해있었다. 그러므로 단군초상의 국보적가치를 놓치지 않고 서울로 가져갈것을 결심했던것이다.

허진경이 그의 지시를 집행하려고 국립력사박물관측과 한창 교섭을 하고있던 어느날 금빛넥타이를 두른 미국신사 하나가 찾아와 남조선주재 미국대사관의 문화담당관이라고 하면서 죤 버든이라고 자기 이름을 소개하였다.

버든은 첫 대면인 허진경에게 대번에 서리발처럼 날카로운 눈길을 박으며 한장의 인물료해서를 내놓았다.

그것을 받아 읽고난 허진경은 왜서인지 오한을 만난 사람처럼 몸을 떨었다.

버든이 내놓은 인물료해서는 허진경의것이였다.

거기에는 허진경의 탈북경위, 월남한 이후의 고민, 최근의 사상동향이 그자신으로서도 놀라울 정도로 상세히 그리고 정확하게 적혀있었다. 허진경은 공포에 질려 물었다.

《버든씨, 이걸 어떻게 다?》

《미스터 허, 당신은 천진하오. 미국의 귀와 눈이 어디에나 박혀있다는것을 모르고있으니.》

《그렇지만… 이북에서 있었던 일을…》

《당신은 38°선을 넘을 때 국군경비대에 단속됐던 일을 잊었소? 그때 심문조서에 뭐라고 썼소, 그 조서를 보여줄가요?》

《그 조서가 미국대사관에 들어갔단 말이요?》

《당신은 천치가 아니요? 허허…》

잠시 쓴웃음을 짓고난 버든은 다시 눈길에 날을 세웠다. 허진경은 자기가 독거미에 걸려들었다는것을 의식하였다. 이남땅이 미국이라는 독거미의 보이지 않는 그물로 덮여있다는 사실을 월남후 수년세월 그도 보고 듣고 느꼈다.

그는 엄습해오는 공포감을 털어버리려고 애쓰며 말했다.

《버든씨, 당신의 용건은요?》

《한가지 충고를 하자고 하오.》

《어떤…》

《묵도의 그림에 대한 고증서를 불태워버리시오. 그리고 당신 손으로 그 그림이 허상이라는것을 세상에 공포하시오.》

《그게 어디 충고요?》

《그렇소, 이건 요구요!》

《거절한다면?》

《당신이 이 요구를 거절하는 경우 우린 당신이 이북에서 저지른 죄, 조상의 무덤을 파보지도 않고 가짜무덤이라고 말뚝까지 박아놓은 사실을 세상에 공포하겠소. 그렇게 되면 력사학자로서의 당신의 존재는 끝나는거요.》

공포에서 벗어나려던 허진경은 이 가혹한 요구앞에 정신을 잃을 지경이였다.

그의 속마음을 들여다본 버든은 한수 더 떴다.

《밥통을 잃는것은 문제로도 되지 않소. 지금 남에는 북의 스파이들이 득실거리고있소. 우리가 당신의 죄를 공포하는 즉시 그들은 쥐도 새도 모르게 당신의 목을 베여다가 평양의 대동문기둥에 매달것이요!》

허진경은 허둥거렸다.

《버든씨… 저는 문교부의 지시를 받고있습니다.》

《그건 념려마시오.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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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산님의 댓글

강산 작성일

(위에서 계속)

《그건 념려마시오. 이 시각 문교부의 각하도 우리 대사관에 불리워왔을테니까.…》
버든이 그를 안심시켰다.
이 비밀상면이 있은 후 허진경은 울며겨자먹기로 리금순이 애써 고증한 자료를 불태워버리고 미국사람의 요구대로 장문의 글을 써서 주요 매문지에 냈다.
리금순은 허진경에게 침을 뱉았다.
《너절한 놈! 조상을 두번다시 욕보일가봐 본의아닌 죄를 지었다고?! 바로 네가 조상을 두번이나 욕보이지 않았느냐!》
그 이후 허진경은 금순을 두번다시 볼수 없었다.
안효식은 미국대사관에 불리워 갔다온 후 스스로 사표를 내고 《문교부》장관직의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리하여 단군초상이라고 하는 솔거의 그림은 그의 보호를 받지도 못하게 되였다.
그러나 진해군의 인민들은 미국대사관에 의해 경찰무력까지 동원된 방해책동에도 불구하고 읍거리에 자그마한 사당을 짓고 그림을 소장하였으며 이 사당으로는 매일과 같이 수많은 사람들이 찾아가 제사를 지내였다.…
그후 40년세월이 흘러…
1993년 1월 ×부 남조선 신문들에는 다음과 같은 기사가 일제히 실렸다.
《오래전에 구월산 삼성사에서 실종된것으로 알려진 단군초상(신라의 이름있는 화가 솔거의 진품그림)이 어제 서울력사박물관에 A급 국보로 정히 소장되였다.
이 그림은 한국전쟁직후 남해의 무인도에서 발견되여 지금까지 경상남도 진해군에 보관되여있다가 민족원시조의 초상을 지방도시에 묻어둠은 후손의 도리가 아니라는 민심의 기류에 실려 드디여 서울로 올라온것이다.》
삼성사의 국보가 살아있다니?
기사를 보신 김일성동지께서는 몹시 흥분하시였다.
며칠전에 안효식의 뉴욕기자회견을 록화실황으로 보시고 정가촌의 단군기가 살아있다는 사실을 아시였다. 이 기적같은 사실들은 그이의 혁명생애에 아물지 않고 남아있던 또 하나의 상처를 가시여주었다.
세월은, 력사는 참으로 기이한 사연을 엮어놓았다. 그 력사를 인민이 창조한다. 살아남은 국보들은 력사가 자기의 창조자에게 주는 선물이고 보상이라고 해야 할것이다.
그이께서는 록화실황에서 문제의 허진경이라는 인간도 눈여겨보시였다. 허진경의 증언회피는? 그의 번민은?…
자본주의가치관과 반공리념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번민한다는것은 그가 월남도주하기는 했으나 그 세상에 완전히 동화되지 않았다는것을 의미한다. 리금순이 살아있다는것 역시 기쁜 일이다. 강동의 단군릉발굴을 앞두고 이런 기쁜 일이 생긴것은 일이 잘될 조짐이다.
김일성동지께서는 흥분속에서 생각을 계속하시였다.
민족의 넋이란 무엇인가. 매개 사람들을 정의로운 존재, 힘있는 존재, 매국자가 아니라 애국자로 만드는 생명선이다. 민족의 넋을 가졌기에 안효식은 정의의 길, 애국의 길을 걷고있다. 공화국에 대한 미국의 선전포고를 전민족에 대한 선전포고로 간주한다는 그의 웨침은 얼마나 의로우며 당당한가! 남조선에 안효식이와 같은 사람이 한둘이 아닐것이다. 거기에서도 민족의 넋을 잃지 않는 사람들의 대하가 흐르고있다.… 진해의 단군초상이 민심에 실려 서울로 올라온 사실은 무엇을 말해주는가?
민족의 넋이자 민족성이며 민족성은 민족단합의 구심점이다. 인민이 민족성을 견지하면 그 나라는 정의롭고 위대하며 힘있는 자주독립국가로 될수 있다. 민족성을 견지하는것이 막을수 없는 지향으로 되고있는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그 지향은 이젠 자그마한 실개천이 아니라 대하이다. 대하는 태동하며 더 크게 사품치려 하고있다.
이 힘에 의하여 사상과 제도, 리념과 주의주장으로 흩어진 이 나라가 하나로 합쳐질것이다. 그이께서는 주체성과 민족성을 견지하는것을 민족번영의 근본원칙으로 내세운 조선로동당정책의 정당성을 다시금 확신하며 기쁨을 금치 못하시는것이였다.
밤중에 김정일동지께서 전화로 자신께서 올려보낸 남조선신문기사를 보셨는가고 물어오시였다.
《보았소, 단군릉발굴이 성공하면 로동당이 우리 민족앞에 큰 공헌을 하게 될것 같소!》라고 흥분속에 한마디 하신 김일성동지께서는 좋은 자료를 보내주어 감사하다고 하시면서 화제를 돌리시였다.
《정세는 어떻소?》
정세는 미국의 호전분자들이 우리의 핵시설을 선제타격하겠다는 폭언에 대응하여 인민무력부대변인성명이 나갔고 그를 지지하는 각 정당, 근로단체들의 성명과 담화, 집회가 련달으는 속에서 많은 청년들이 인민군대에 탄원하는 등 나라에 총동원령이 내린것 같은 긴장한 상태에 있었다.
허나 김정일동지께서는 짤막하게 대답하시였다.
《적들의 동태를 계속 주시하고있습니다.》
《남조선의 민심이 우리를 지지하고있소. 그 힘도 큰거요.》
《수령님께서 민심을 얻는것은 천하를 얻는것과 같다고 가르치시지 않았습니까. 그 천하는 핵과 미싸일보다 강한것입니다.》
《그렇소, 미국이 더 못되게 나오면 이미 토의한대로 대응책을 취하시오. 민심이 우리 편에 있는데 두려울게 없소. 난 최고사령관을 믿겠소!》
《알겠습니다.》
국사를 론의하시는 두분의 대화는 심각하고 긴장한 문제일수록 짧았다. 그것은 두분의 뜻과 의지가 언제나 같았으며 서로 제기된 문제에 대한 사전연구를 깊이 하시는 관계로 언제나 의사소통이 빨리 되기때문이였다. 나라의 중대사에 대한 론의를 이처럼 빨리 끝내신 두분께서는 단군릉발굴문제에로 화제를 돌리시였다.
먼저 김정일동지께서 당선전선동부에서 발굴현지에 보도진을 파견하겠다는걸 막으신데 대하여 보고하시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기뻐하시였다.
《이런 일은 조용히 하는게 좋소. 우리가 떠들지 않아도 떠들 사람이 따로 있는 법이요. 그래서 내 아침에 김석진원사에게 발굴을 조용히 시작하라고 당부했댔소.》
그러자 김정일동지께서 한마디 더 하시였다.
《제가 촬영단 한조를 파견해서 발굴정형을 록화해서 저녁마다 수령님께 올려보내드리라고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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