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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소설 <대박산마루> 제 25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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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0건 조회 7,662회 작성일 15-12-25 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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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25 회 )

 

36

 

화는 쌍으로 온다.

그 무서운 화는 원사의 몸에서 산산쪼각으로 흩어졌다. 김석진과 당비서 한응삼은 꿈속에서처럼 허둥지둥하며 과학원의 층계를 내려갔다. 마당에는 승용차가 서있었다. 안에는 그 크고 시원하던 눈에 겁기를 가득 담은 례영이가 앉아있었다.

《아버지가… 아버지가… 아버지가…》하는 속삭임이 차안을 꽉 채우며 련속 울려왔다. 원사는 아무것도 듣지 못했고 그때까지만 해도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있었다.

다만 공손히 앉아서 금성거리를 지나 강동으로 뻗은 대통로로 달리는 차에 몸을 맡긴채 밖을 멍청하니 내다보고있었다. 여름은 물러갔으나 가을은 채 오지 않은 애매한 계절이였다. 차안에 앉아 밖을 내다보고있는 사람들에게는 모든게 신록을 잃고 흐리멍텅하였으며 절망적이였다.

가장 무서운것은 누구 하나 한마디 말도 입밖에 내지 않는것이였다. 한응삼이조차 입을 열지 않는다. 그들은 서둘렀으나 무엇때문에 서두르는지 말하지 않게 돼있는것 같았다.

인민보안성의 푸른 풍차가 불안감을 더욱 키질하였다. 당황한 모습들과 낮은 소리로 하는 보고… 절벽짬을 비집고 뿌리박은 관목가지에 걸려 데룽거리는 지팽이!

상위가 상급에게 현장조사정형을 말했다.

피해자는 비류강을 건너 성천땅인 룡산리로 가려고 했다. 거기에는 농촌마을을 빙 둘러싸고있는 신지성이라고 하는 옛 성이 있다. 그는 그중 강심이 얕고 폭이 좁은 이 벼랑가에서 강을 건느려고 단정한것이 틀림없다. 그래서 벼랑을 타고 내렸다. 하지만 그는 다른것을 몰랐다. 그만큼 이곳이 물살의 세기가 크다는것을… 김석진은 과학밖에 모르는 박진규가 그것을 응당 모를것이라고 짐작했다.

그가 왜 거기로 가려고 했으며 그것도 강물이 어방없이 불어난 때에 위험천만한 모험을 단행하였는지는 그들이 알수 없다. …

모든게 뽀얀 안개속에 뒤덮였다.

원사는 얼굴을 돌렸다. … 박진규를 찾으시며 여긴 만세를 부른 사람들만 왔다고 하시던 수령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올 사람은 왜 안 오는가?

한응삼은 그에게 말했다.

《최선을 다하고는 있습니다. … 원사선생, 내 말을 듣습니까?》

박진규는 다리를 잘 쓰지 못하고 늙었다. 그가 어떻게 절벽을 내려갈 궁리를 하였는지? 우리가 묘향산에 가있을 때, 그는 혼자서… 그가 우리와 함께 묘향산에 있었더라면… 그는 리관직이 찾은 유골을 믿지 않고 새로운 유골을 찾으려고 했을것이다. 신지성밑에서? 오만가지 착잡한 생각들이 꼬리를 문다. …

《<성당>의 <신관>이 왜 보이지 않습니까? 여기는 만세를 부른 사람들만 왔겠구만!》

그에게 또 수령님의 섭섭해하시던 목소리가 기억난다. 수령님께 이 사실을 어떻게 알려드린단 말인가. 그토록 뜨거운 심장이 어떻게 이 불행한 소식을 받아들일수 있으며 어떻게 견디여내실수 있겠는가.

원사는 한응삼을 부둥켜안고 마침내 울음을 터뜨렸다.

《원장선생, 마음을 굳게 가집시다! 난 어떻게 하겠습니까? 내가 그를 죽게 했으니… 기대를 걸어봅시다. 당중앙의 지시를 받고 의사들이 최선을 다하고있으니까…》

당비서의 말을 받아 언제 왔는지 리관직이도 울면서 원사를 애써 위로하였다.

《희망을 걸어봅시다. … 걸어보자요. …》

몰라보게 축간, 그래서 전혀 딴 사람으로 보이는 리관직.

땅도 비고 마음도 텅 비였다. 어두운 진공과도 같은 공간에 깨여진 기억쪼각들이 붙었다 떨어졌다 한다.

무식과 조급성이 빚어낸 그 전률한 《고조선시기 유물과 유골》! 과학원이 생겨 이처럼 큰 화가 닥친적 있었던가?

과학협의회는 방금전에 시작되였다. 늙은 교수들, 젊어보이는 부교수들, 과학원안의 모든 지식인이 다 동원되여 말을 주고받으며 암시적인 표현들과 고개의 끄덕임, 의미가 깊은 침묵이 흘렀다.

김석진은 자기의 좌우를 둘러보았다. 응당 있어야 할 당비서가 보이지 않았다. 오늘의 화를 불러온 장본인인 리관직이가 원사의 곁에 앉아있다. 한응삼은 박진규의 불상사를 전달받기 전에 자기의 비판서를 당중앙위원회에 제출하였다. 그리고 일체 사업을 부비서에게 맡기고 자기를 반성하고있었다. 그러던중에 박진규의 불상사를 통보받았으니 그의 심중은 누구보다도 무거울것이다. 그는 지금 당위원회 사무실에서 당중앙위원회에서 내려온 일군들앞에 앉아있을것이니 그는 생각하지 말자.

리관직은 어떤 인간인가.

대학시절 리관직은 자기의 능력이 조직자적재능에 있다고 믿고있었다. 그는 마음 내키는대로 행동하였다. 자기 행동의 목적도 깨닫지 못한채… 모름지기 어느 부문에서나 조직자들에게 실력이 더 필요하다는것을 알지 못했을것이다. 그는 늘 어딘가 돌아치며 부산을 떨고 앞머리를 추슬러올리며 여전히 학업과는 관계가 없는 다른 일의 조직지휘에 분주했다. 옆구리에는 항상 수수께끼같은 책이 들려있고…

그는 《부득이》하게 강의에 빠지기도 하고 저녁에는 드문히 처녀들과 함께 영화를 보러 다니기도 했다. 때로는 도서실에 들려서 책을 한아름씩 가져다가 책상에 쌓아놓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는 그것을 대충 훑어보기만 하였다. 심도있게 파고들자니 시간이 없었다. 《통 짬이 나지 않》아서…

리관직이 어디 가나 모르는 사람이 없었고 야회나 그러루한 모임 등 여기저기에 초대되였다. 그에 비하여 박진규는 때벗이를 못한 촌바우였다. 사실이 그랬다. 그러나 어쩌는 도리가 없었다.

리관직이 졸업시험은 무난히 치르었다. 최우등이 한 과목도 없었으나 락제점수도 없었다. 그래서 그는 세상은 이렇게 살고 과학은 이렇게 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그런데 박진규는? 그는 놀랍게도 전과목 5점을 받았다. 최우등졸업증을 받자 모두가 눈을 크게 뜨고 박진규를 바라보았다.

학년의 남학생들은 아주 손을 들었고 처녀들, 특히 공부가 괜찮은 축들은 정도이상의 놀라움을 표시했다. 학년의 모든 처녀들이 그에게 홀딱 반했다. 그런데 박진규는 주위의 분위기를 전혀 알지 못했다. 약삭바르고 꾀있는 청년들은 그의 《얼뜨기》행동을 좋은 기회로 써먹었다.

리관직이 그런 사람중의 하나였다. 그는 처녀들을 끄는데 성공하였다. 그러면서 그는 박진규의 기본결함은 우둔성이라고 규정했다. 벼랑에서 떨어진것도 그래서일거라고 생각하는것은 아닌지? 무식으로 하여 치명적인 상처를 입은 진짜 우둔한것은 누구인가?

부원장으로 출세한 그는 달라졌다. 앞머리를 학생때처럼 그리 거칠고 오만하게 흔들지도 않았으며 그 거동도 느리고 유해졌다. 상하를 불문하고 먼저 인사를 하고 미소를 보냈다. 모든 사람에게 선량하려고 했고 박진규에게도 선량하려고 했다. 그래서 한응삼이 그를 좋게 보았는가?

지금 두 제자가 죽어가고있다. 한 제자는 육체가, 다른 한 제자는 육체는 살았지만 정신이…

스승이며 선배인 원사의 인생이 허물어지고있었다. 누군가가 곁에 다가와 조용히 그의 귀에 대고 속삭였으나 그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그 사람은 하는수없이 리관직에게 몇마디 하였다.

《원장선생님!》

리관직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김석진이도 무의식중에 그를 따라 일어섰다.

《협의회를 뒤로 미루겠습니다.》

원장이 곁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부원장이 회의를 결속하였다.

여름도 아니고 가을도 아닌 애매한 계절이다. 그들의 눈에서 신록은 사라졌다. 태양마저 휘뿌옇다. 공허, 끝없는 공허…

소생실도 침묵에 잠겨있다. 원사는 박진규의 꾹 다문 입을 좋아했다. 침묵으로 자기의 과학적주견을 세우는 그를 좋아했다. 박진규는 그 침묵으로 언제나 믿음과 신뢰를 주었고 진리를 말했다.

지금은 그 침묵이 꺼져가는 생명을 말해주고있다.

흰색의 병실벽과 흰 붕대, 모든것이 희였는데 아직 살아있으나 거의거의 꺼져가고있는 그의 입술만이 새까맸다. 그리고 가볍게 경련을 일으킨다. 그의 마지막심혼이 말하고있다. 고구려무덤떼에서 나온 그 유골을 믿을수 없다! 믿을수 없다! 믿을수 없다!

그 유골에 수령님께서 의문을 표시하시였고 그 의문이 사실로 되였다는것을 알면 그가 뭐라고 할것인가?

여울목의 사품에 희말려들면서 박진규는 무엇을 생각했을가? 어떤 말, 어떤 신음, 어떤 아픔이 그의 의식의 한끝을 건드렸을가? 그의 마지막 심혼이 비류강을 건너가 5천년전 유골에 닿았으리라.

거기에 꼭 5천년전의 유골이 있을거라 믿었을것이다. 그래서 길을 당기느라고 벼랑을 탔을것이다.

아, 사랑하는 제자는 가고있다. 영원히 되돌아올수 없는 길을 가고있다. 그는 이 세상에서 사라질것이다.

그가 가버리면 그의 뒤에 무엇이 남을가?

그는 이름을 남길 생각도 없었다. 그의 동년배들이 박사요. 교수요 하고 이름앞에 요란한 칭호들을 붙일 때도 그는 부러워하지 않았다. 말년에야 박사칭호를 받았다. 그는 한생 자기《성당》에 있었다.

거기에 모든것을 다 바쳤다. 시간도 정력도 생활도 이 세상에서 누려야 할 복락도 다 바쳤다. 그 모든 헌신과 희생의 응결체가 있다면 그것은 무엇이겠는가?

이제 그가 평생토록 갈구해오던 《단군릉발굴보고》가 나가고 단군릉이 웅장하게 일떠설것이다. 그의 인생은 수천수만개로 이루어진 그 석조물에 하나의 작은 돌로 놓여질것이다. 이것은 한생 바쳐온 그의 노력의 응결체이다.

로동으로 인류의 물질문화적재부가 창조되고 세월의 흐름과 더불어 끊임없이 풍부화되여왔다. 반만년 민족사에 매 시기를 살아온 인간은 로동으로 자기 자리를 차지했다.

반만년 민족사가 남긴 물질정신적인 유산속에는 매 인간의 노력이 깃들어있다. 인간은 로동으로 위대하고 로동으로 행복하며 로동으로 영원하다. 일만이, 로동만이 그를 일으켜세울수 있다고 생각되였다.

과학원에서 일한 수십년간은 물론 톱밥을 불태워 언 땅을 녹이던 때로부터 시작하여 이해도 그는 일을 손에서 놓을줄 몰랐다. 일을 위해서라면 그 꼬불꼬불한 지팽이마저 집어던지고 달려오던 그였다.

《진규, 일을 해야지. 일을… 유골을 새로 찾아야 한단 말이요!》

벌떡 일어나 앉을상싶었으나 그는 여전히 누워있었다. 입에서는 가느다란 대답조차 나오지 않았다. 까맣게 되였던 입술이 창백한 빛으로 변해가고있었다. 입술에 몰렸던 피마저 사라지는것이였다.

죽지 마오! 죽지 마오!

원사는 소리없이 부르짖었다.

이미 죽은 사람을 두고…

의사는 가족들을 불렀고 갈아입힐 새옷도 가져오라고 조용히 선언했다. 마치 그것이 자기의 본분인듯이 아무런 감정도 섞이지 않은 극히 실무적이고 례사로운 어조로…

슬픔에 짓눌린 원사는 아무 생각도 하지 못했다. 지어 그가 숨이 꺼졌다는 사실도 잊고있었다.

지금에 와서야 그는 사실상 박진규에 대해서 관심을 두지 못했다는것을 깨달았다.

수령님께서 영예군인인 그를 잘 돌봐주라고 분부하신 다음에조차… 사업과 사색, 머리의 초인간적인 긴장이 그의 시간을 앗아갔다. 반만년력사의 풍운을 가시고 공백을 메꾸기 위하여 달리고 뛰여오르며 냅다 밀고 들이치며 온갖 도전을 이겨내는데 바쳐야 했던것이다.

간혹 박진규를 위해 그것도 토막시간을 낼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조차도 그의 건강과 가정, 그의 사생활이 아니라 일과 관련해서 그를 생각했다. 그저 일! 일! 일이였다!

박진규가 한평생 일만 생각한것처럼 원사도 한평생 그렇게 했다. 오직 일만을 위해온 한 인간이 떠나가고있었다.

이게 과연 잘된 일인가?

례영이가 울고있었다. 갈아입힐 옷을 가지러 간 또 한 녀인은 언제 오려는지? 새옷이 있기나 한지?

석진은 그에게 새옷이 있다는것과 무엇때문에 그의 가정에서 큰 용단을 내려 마련한것인지 모르고있었다. 몰라도 원사는 비통했다. 드디여 그는 참고있던 울음을 터뜨렸다. 누구도 그의 괴로운 심정을 몰랐다. 슬픔만이 가득찬 그의 심중에 또 다른 하나의 괴로움이 있다는것을 알수 없었다.

새로운 유골을 찾지 못하면 어쩐단 말인가? 이러한 걱정이 머리한구석을 집요하게 차지하고있으면서 슬픔에 자리를 내주지 않았다. 그 걱정의 바위우에 슬픔의 파도가 덮쳐들어 물갈기를 일으켰다.

 

×

 

두분께서 전화로 대화를 나누고계시였다.

무겁고 갈린 목소리로 이어지는 대화!

김정일동지;《어제 올린 보고문건을 보셨습니까?》

김일성동지;《보았소. …》

김정일동지;《수령님, 너무 마음을 쓰지 마십시오. … 장례를 기관장으로 잘 하라고 지시했습니다.》

김일성동지;《잘했소. 고맙소!》

김정일동지;《문제는 새로운 유골을 찾는것입니다. 남강유물을 버려야 하는 조건에서…》

김일성동지;《가만, 고인에 대한 이야기를 좀 더 합시다. 내 기억에는 그에게 시집을 가야 할 딸이 있는데…》

김정일동지;《그 문제 말입니까? 저도 알고있습니다. 장례를 치른 다음 당에서 그들의 결혼식을 도와주려고 합니다.》

김일성동지;《정말 고맙소. 우리가 아버지로 되여야 할것 같소.》

김정일동지;《예.》

김일성동지;《유골문제를 말합시다. 남강유골때문에 시간을 많이 허비했소.》

김정일동지;《무식이 빚어낸 결과입니다.》

김일성동지;《옳소.》

김정일동지;《그 부원장동무는 공부를 시키려고 합니다. 그리고 당일군문제는 수령님의 의견을 듣고싶습니다.》

김일성동지;《물론 백번 잘하다가도 한번 잘못하면 당일군인 경우에는 용서받을수 없소.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당일군의 과오에 대해서는 엄중하게 대해야 하오. 당일군의 과오는 곧 우리 당의 권위와 관련되여있으니 말이요. 그래서 사람들이 당일군을 존경하는것이고 당일군하기가 그만큼 힘든것이 아니겠소. 당일군이 사람평가를 잘못하는 경우에 만회할수 없는 결과를 가져올수 있소. 나는 이번 희생을 그 연장선우에서 보고있소. 그러나 그 당일군은 너무 아깝지 않소? 능력도 있구 지난날에 많은 성과도 거둔 사람인데…》

김정일동지;《수령님,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수령님, 여기 김석진원사가 저에게 보낸 편지가 있습니다.》

김일성동지;《뭐라고 썼소?》

김정일동지;《용서해달라고 청원했습니다. 원사는 쓰기를 그를 잃는다면 어디 가서 그런 당일군을 다시 만나겠는가고 하였습니다.》

김일성동지;《역시 원사답소. … 그의 청원을 들어주는게 어떻겠소?》

김정일동지;《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대신 되게 비판하겠습니다. 다른 당일군들에게도 교훈이 되게.》

김일성동지;《그게 좋겠소. 내가 늘 말하지만 당일군이라구 해서 다 만능의 인간일수야 없으니까. 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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