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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소설 <대박산마루> 제 20-2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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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1건 조회 10,805회 작성일 15-12-20 2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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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20 회 )

 

31

 

박진규는 발굴현지에 와있었다.

안해 복순이가 실련당한 딸의 고민을 말해주지 않았기때문에 아무것도 모르는 그의 마음은 밝기만 했다.

그는 단군유골의 신빙성을 담보해줄 동시대의 유골을 찾으려는 오직 하나의 일념만으로 가슴을 불태우고있었다.

사회과학원에서는 련관부문 연구소들의 모든 학자들을 발굴사업에 망라시켰으며 당에서도 김일성종합대학 력사학부의 교원, 학생들을 동원시키는 조치를 취해주었다.

그리하여 력사학부의 연구사인 례영이도 이 사업에 망라되게 되였는데 박진규는 딸을 자기 발굴조에 포함시켰다.

그는 이번 기회에 딸에게 점찍어둔 진웅이를 붙여줄 즐거운 마음을 가지고있었다.

진웅이 몸성히 잘있는지, 나라에 위험이 닥쳐오자 인민군대에 탄원한 총각, 지내볼수록 마음에 드는 총각, 수령님께서 친히 소환해주시였으니 이제 곧 돌아올것이다. 나이가 좀 많으면 뭐라나.

이 시각 박진규는 진웅의 아버지가 누구이겠는지 하는데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만약 진웅의 아버지가 강동중학교 교원시절 자기의 조직문제를 제기했던 그 간부라는것을 알았더라면 과연 어찌 되였을것인가. 설사 그렇다해도 박진규는 오히려 이렇게 반문했을것이다.

《그래 진웅이한테 무슨 허물이란 말이요?》

박진규는 자기의 발굴조를 비류강일대에 데리고 갔다. 그의 학자적예감은 이 일대에서 무엇이 잡힐것 같았다. 이 예감은 진웅이를 비롯한 언어학연구소의 학자들이 찾아낸 이 일대의 지명들의 유래에 깊이 류의한데서 온것이였다.

이 일대에 있는 다물, 고불바위, 연나, 솔나, 부루동 등 지명들은 단군조선과 관계되여있고 단군조선의 력대왕들에 대한 이러저러한 이야기들을 담고있었다. 다물인 경우 이곳에 있던 샘물을 다물샘 또는 천황샘이라 하고 샘이 있는 지역을 천황동이라고 한것을 봐서 다물이 옛날 왕을 가리키는것으로 인정되였다. 실지 다물은 단군조선의 38대왕이였다.

이 지명에 다물임금이 성천땅에 사냥을 나왔다가 평양으로 돌아가는 길에 다물샘이 좋아서 며칠 묵어갔다는 이야기가 붙어있었다.

고불바위를 임금바위라고도 부른다. 고불은 단군조선의 14대왕이였다. 그러니 이 지명도 고불임금의 행적과 관련되여있었다.

《성천읍(주)도록》에 의하면 연나는 단군조선의 24대왕, 솔나는 단군조선의 25대왕의 행적과 관련되여있었다. 또한 부루동은 단군조선의 2대왕인 단군의 맏아들의 이름과 관련되여있었다. 아직도 부루동이라는 이름이 전해지고있는것이 매우 주목되는 점이였다.

박진규네는 지금까지 단군조선의 고대성인 황대성이 있는 남강 류역에서 발굴사업을 하다가 이상의 점들에 류의하여 이곳으로 시야를 돌렸던것이다.

그러나 며칠이 지나도록 어느 고분에서도 유골을 찾아내지 못하였다. 박진규는 이 사업이 결코 쉽게 이루어지리라고는 보지 않았다.

5천년전의 유골을 찾아낸다는것이 어디 간단한 일인가. 단군유골의 경우 그가 시조왕이였고 고구려후손들이 릉을 다시 꾸리면서 우연인지는 몰라도 중성질의 땅에 매장하였으니망정이지 그렇지 않았으면 5천년동안 보존되지 못했을것이다. 박진규는 여기 강동땅에 발굴의 첫삽을 박은 때로부터 지금까지 어느 한순간도 유골의 중요성을 잊은적이 없었다.

유골이야말로 가장 명백한 고고학적자료로 되는 까닭이였다. 그런데 그러한 유골이 단군유골을 내놓고는 더는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금수산의사당 협의회때 수령님께서 유골문제를 제기하시였음에도 불구하고 힘들게 대답을 올렸던것이다.

그러나 수령님앞에 결의한 이상 어떻게 하든 새로운 유골을 찾아야 했다.

박진규의 마음은 어지간히 조급해졌다.

한편 강동읍지구와 락랑구역일대에서는 리관직의 지휘하에 여러개의 발굴조가 움직이고있었다. 자기를 개조할것을 결심한 리관직의 열성은 보통이 아니였다. 그는 이전과는 달리 자기도 어느 한 발굴조에 속해서 직접 손에 삽을 잡았다.

사회과학원 본원에 다녀온 박진규네 발굴조성원 한사람이 그의 조에서 벌써 여러 개체분의 유골을 찾아 년대측정실에 넘긴 사실을 전달했다. 박진규는 그 소식을 들었지만 언제나와 같이 덤덤한 표정이였다. 그러나 그의 속마음은 번거로왔다.

리관직이를 만나고난 다음부터 박진규는 태도를 달리하였다. 그는 리관직이 자기의 결함을 진정으로 고치기를 바랐다.

그의 일이 잘되여야겠는데.

그런데 과학원 본원에 갔다가 자기가 직접 본 하나의 사실을 놓고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리관직이가 년대측정실에 넘겼다고 하는 유골들이 하나같이 고구려의 무덤떼가 집중되여있는 남강류역의 1호구역(편의상 발굴지역을 여러개로 나누어 번호를 붙이였다.)의 돌각담무덤에서 파낸것으로서 이미 박진규가 손을 댔던것들이였다. 그는 여기서 나온 여러 개체분의 유골들이 그것이 묻혀있는 무덤의 구조형식으로 봐서 고구려때의것이 명백했기때문에 구태여 년대측정에 넘기지 않았다.

리관직이 이것을 모른단 말인가.

박진규는 그가 또 무슨 일을 저지를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그는 리관직을 찾아가 만났다.

관직은 의외에도 밝은 표정을 짓고 반갑게 그를 맞아주었다.

《동무도 소식을 들었겠지?》

《그래서 찾아왔네.》

《참 잘 왔네, 잘 왔어. 그러지 않아도 동무를 만나 론의해보자던 참이였는데…》

관직은 득의양양했다. 그는 자기를 뚫어지게 바라보는 박진규의 시선을 느끼자 범잡은 포수같던 좀전의 기상을 버리고 진중해졌다.

《앉으라구.》

박진규가 자리를 잡고 리관직은 뚜걱뚜걱 발소리를 내며 가운데 위치한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이로써 그는 이 좌석이 공적인 자리며 이제부터 자기가 하는 말이 부원장으로서 공식적인 발언이라는것을 암시했다.

《나도 놀랐네, 이번에 남강1호구역에서 고조선시기의 무덤이 발굴될줄은…》

《부원장동무!》

박진규도 진중한 목소리로 그의 직함을 불렀다.

《남강1호구역에 대한 조사는 우리가 이미 한것이요. 그곳 고분은 명백히 고구려무덤이지 고조선무덤일수 없소. 그 발굴보고서를 보았겠지요?》

《보았소. 그런데 진규동무, 동무는 발굴을 하면서 놓친게 있소. 이번에 우리는 그곳에 대한 발굴을 심화하는 과정에 그 무덤이 고조선시기, 그것도 고조선초기의 무덤이라는 움직일수 없는 증거를 쥐게 되였소.》

리관직은 느슨하고 배포유한 웃음을 지었다.

《그게 뭐요? 그래 거기서 비파형단검이라도 발견됐소?》

《그보다 더 귀중하고 중요한것이 나타났소, 비파형창끝! 그리고 또 미승리형단지가 나왔단 말이요, 비록 쪼각이지만.…》

《그게 사실이요?》

《아직두 날 믿지 못하겠소?》

리관직이 진정으로 섭섭한 표정을 지었다.

비파형창끝과 미승리형단지(조롱박형단지라고도 함.)는 고조선시기의 대표적인 유적이다.

남강1호구역에서 이 두가지 유물이 동시에 나왔다는것은 그 고분이 의심할바 없는 고조선무덤이라는것을 말해준다.

《그렇다면…》

박진규는 말을 이을수가 없었다.

《이건 엄연한 사실이네. 또 이것은 리관직이 혼자서 한 일도 아니구. 얼마나 기쁜 일인가, 자넨 기쁘지 않나?》

박진규는 착잡한 생각에 빠졌다.

혹시 깊이 파고들어가면 고구려무덤떼에서도 그 이전시기의 유물이 나올수 있지 않을가, 지탑리와 성현리의 토성밑에서 고대성터가 발굴된것처럼!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관직동무! 수고했소, 정말 수고했소!》

《고맙네!》

두사람은 처음으로 진정의 손을 잡았다.

《그 유골이 정말 단군시기의것이라면 얼마나 좋겠나!》

《진규동무, 난 의심치 않네. 지금 년대측정에 넘겼으니 이제 결과가 나오겠지. 아, 우리 수령님께 한시바삐 기쁨의 보고를 올려야 할텐데…》

박진규의 치하까지 받게 되자 관직은 눈시울이 다 벌겋게 달아올랐다.

《난 가겠네. 기쁜 소식을 들으니 힘이 막 솟는구만. 우리 발굴조에 이 사실을 알리고 고무해줘야지!》

박진규는 헤덤비며 리관직과 헤여졌다.

발굴현지로 돌아온 박진규는 노상 기분이 들떠있었다. 휘파람까지 불며 천막안을 거니는 그 모양을 보고 례영이가 웃음을 터뜨렸다.

기분이 더욱 흥그러워진 박진규는 딸을 불러앉히였다.

《여기 좀 앉거라.》

《왜 그러세요? 아버지.》

《너하고 긴히 할 이야기가 있다.》

아버지의 얼굴에 웃음이 피여있었으나 례영은 저으기 긴장해졌다.

《례영아, 우리 과학원에 진웅이라는 총각이 있다.》

이렇게 첫말을 뗀 박진규는 그의 됨됨에 대하여 례영이가 알고있는 이상으로 많이 말하고나서 딸에게 물었다.

《네 의향은 어떻니?》

《…》

이 순간 례영은 진웅에게 버림당한 자기의 처지를 솔직히 털어놓자니 아버지의 기대가 너무도 큰것이고 여기로 올 때 단군연구가 끝나기 전에는 절대로 그 사실을 말하지 말라던 어머니의 당부까지 있어 어쩔바를 몰라하였다.

갑자기 눈물이 솟구쳤다.

《왜, 너무 좋아서? 허허허.》

딸의 속마음을 알 까닭이 없는 박진규는 딸의 눈물을 보고 제나름으로 기뻐하였다.

《그가 이제 곧 돌아올게다. 수령님의 분부로 말이다. 그게 어디냐? 진웅이 그 사람은 이젠 수령님과 경애하는최고사령관동지께서도 아시게 된 사람이다.》

그리고는 천막기둥에 걸려있는 기타를 벗겨들고 뚱땅거리기 시작했다.

례영은 아버지가 기타를 타는것을 처음 보았다. 전쟁시기 화선악기도 만들고 그것을 다룰줄도 안다는 어머니의 말을 듣긴 했지만.

그러한 아버지가 지금 기타를 타고있다. 화선에서 타시였을 전시가요의 선률이 아버지의 기쁜 마음인양 금선우에서 울려나오고있었다.

아버지는 기타의 선률우에 흥얼흥얼 노래를 태우기까지 한다.

                                            …

                                            전선에서 찾아온 한장의 편지를

                                            처녀가 받은줄 아무도 몰라

                                            …

례영은 오열이 터져올라 더 앉아있을수 없었다. 그는 벌떡 일어섰다. 때마침 번개가 번쩍이더니 천둥소리가 울렸다.

 

×

 

바람에 나무우듬지가 울부짖고있었다.

아버지를 피해 정신없이 천막을 뛰쳐나온 례영은 강가의 뽀뿌라나무를 부여안고 몸부림치고있었다. 왜서 그의 버림을 받지 않으면 안되였던가.

수정천가에서 생명의 은인으로 어린 넋속에 간직됐던 그이, 대학에서 다시 인연을 맺은 후 오랜 세월 보물처럼 마음속에 새겨안고있던 그이, 그이가 지금은 피하지 않으면 안되는 존재로, 누구나 례사롭게 그이의 표정을 볼수 있고 그의 진지한 목소리를 들을수 있었지만 자기에게만은 먼 지경밖의 존재로 되여버렸다.

강풍이 례영이의 얼굴을 사정없이 후려치고있었다.

굵은 비방울이 우박처럼 아프게 얼굴을 두드려대고있었으나 마음의 아픔으로 하여 례영은 그것을 느낄수 없었다.

차라리 그 아픔이 더하여 마음의 아픔을 눌러버릴수만 있다면…
  영식이가 무엇인가 성의를 표하고싶다며 돈을 꺼내줄 때 자기도 그가 경박한 청년으로 변하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이 없지 않았다. 그러나 《난 례영이같은 훌륭한 학자들이 초라하게 입고 다니는것이 싫어서 그래.》하는 그의 말에 순간적으로 현혹되였다.
  진웅이가 떠올랐다. 자기앞에서 송구해하고 어줍어하던 그 수집은 사람, 오죽하면 무도회장에서 자기 애인에게 멋쟁이짝패를 붙여줄 생각까지 하였겠는가. 그는 다른것을 생각해볼새 없었다. 단지 진웅이를 위해서 그를 깜짝 놀래울 멋있는 일을 할수 있다는 생각으로 돈의 출처나 돈속에 비낀 검은 속심을 무시하였다.

《고마워요. 난 이걸로 좋은 일을 할래요. 그리고 꼭 갚겠어요.》
  《그건 나의 성의에 대한 모욕이요.》
  얼마나 고마운 동창생인가. 그는 그가 내미는 돈을 떨리는 손으로 받아들었다.
  풍족하지 못한 과학자의 집안의 막내딸인데다가 자기자신이 또한 과학자여서 그에게 빛이 나는것을 해줄수 없는 처지여서 그랬는지 몰랐다.
  처음 안경을 받아들고 진웅이가 짓던 표정에서 례영은 자기를 다잡았어야 했다. 그러나 그는 또다시 양복을 사들고감으로써 두번씩이나 그를 모욕했다.
  그의 마음이 어떠했겠는가? 그에게서 버림을 당한 지금 례영은 그 아픔을 자기의 체험으로 느끼였다.
  가슴에 칼을 맞은들 그처럼 아플건가.
  례영은 그가 무엇을 증오하고 무엇을 용납하지 않는가를 알고있었다. 그러니 자기의 행동이 그에 대한 배신이 아니고 무언가?
  강풍은 여전히 사납게 휘몰아치고있었다.
  번개가 하늘을 가르고 천둥소리가 땅을 울린다. 큰 나무밑에서는 벼락을 맞는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 회오의 눈물을 흘리고있는 례영에게는 아무것도 무섭지 않았다.
  아 번개여, 나를 쳐다오!
  돌이켜보면 진웅의 사랑에는 이성의 열정과 함께 오빠의 자애가 포함되여있다. 그래서 그 사랑은 땅과 같이 후더분하고 불과 같이 뜨거운것이였다.
  그는 언제나 너그럽고 아량이 있었으며 진지하고 선량하였다. 이제 열번을 다시 산다 해도 그러한 사랑을 얻지 못할것이다.
  례영은 평양역에서 마지막으로 바라보았던 그의 모습을 눈앞에 그려보았다. 군복입고 빨간 령장을 단 10년은 더 젊어보이던 그 모습, 시대의 부름이라면 그처럼 사랑하던 펜대를 총으로 바꾸어질줄 아는 그 당당하고 름름한 모습을 고급양복에 은빛넥타이를 멘 그 모습에 어찌 비기랴.
  보석을 잃었구나!
  수령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시였다고 한다. 수령님의 안중에 있는 그, 이제 그가 전선에서 돌아오고 단군연구가 끝나면 처녀들이 줄을 설것이다. 땅에 떨어진 보석은 다시 잡을수 있겠지만 잃어버린 사랑은 쏟아버린 물과 같아서 다시는 주어담지 못한다.
  아, 이 사실을 아버지가 알게 된다면…
  례영은 천둥번개속에 서서 회오의 눈물을 흘리고 또 흘리였다.





( 제 21 회 )

 

32

 

높이 쳐든 가을하늘아래 묘향산의 단풍은 절경이였다.

천고마비의 계절이다. 머루, 다래, 오미자, 찔광이 등 산열매들이 가지가 부러지게 달려 울긋불긋 무르익었다.

골짜기아래로 내려다보이는 벌판에는 오곡이 풍성하였다.

묘향산은 옛날부터 우리 나라 명산의 하나로서 백두산, 금강산, 지리산 등과 더불어 그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명산이다. 묘향산은 금강산의 신비로운 조각미와 지리산의 웅장한 모습을 다 갖추고있는 절승의 산이다.

소나무, 전나무를 비롯한 바늘잎나무들로 꽉 들어찬 울창한 밀림, 흰구름을 허리에 휘감고 아아히 솟아있는 웅장한 메부리들,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며 뻗어나간 높낮은 산발들, 골안마다 수천만의 구슬들이 일시에 부서져내리는듯 아슬한 벼랑우에서 산울림하며 떨어지는 폭포들, 깊은 골짜기마다 서정을 담아싣고 속삭이며 흘러가는 주옥같은 맑은 물, 산말기와 계곡들에서 기묘하고 웅장한 자태를 자랑하는 큰 바위들, 신록이 짙어가는 봄철의 연분홍 진달래와 주홍빛두봉화, 눈속에 피여난 비로봉의 만병초와 초여름의 목란, 한여름의 불볕을 막아주는 울창한 록음, 눈부신 꽃비단을 필필이 늘여놓은듯 한 가을의 단풍바다, 은백색눈무지속에서도 소나무, 전나무들이 청초한 빛을 뿌리고 흘러내리던 폭포들이 그대로 얼어붙어 수정궁을 방불케 하는 겨울의 절경, 마냥 기쁨만을 가슴 가득히 안겨주는 뭇새들의 지저귐과 여울물소리, 이 모든 자연미들은 사계절 어느때 보아도 좋은 절경이다.

참으로 묘향산은 산과 물, 바위와 동식물, 계절의 변화무쌍한 조화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모든 아름다움을 다 지니고있다.

지난날 우리 조상들의 유적유물들이 많이 남아있는 묘향산지구에는 7세기경부터 불교사원들이 건설되기 시작하였다. 처음에는 비로봉의 북쪽 뒤면과 내향산의 깊은 골짜기에만 절들이 세워졌으나 11세기이후에는 오늘의 보현사구역내에도 크고작은 사찰들이 일어섰다.

고려시기 보현사구역에는 24개의 사찰들이 있었으나 조선봉건왕조시기에 들어와서 봉건정부의 불교제한정책으로 그것이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묘향산에는 본사구역내의 절들과 함께 여러 골짜기들에 산재한 절들도 많았다. 비석들에 새긴 기록들에 의하면 묘향산에는 360개의 사찰들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력사기록들에 그 이름이 전해지고있는 절은 모두 150여개이다.

말사가운데 대표적인 절은 내원암과 상원암, 빈발암, 불영대 등이요 그가운데서 건축규모에서나 불교계의 영향권으로 보아 으뜸가는 절은 내원암이다.

내원암에는 향산운사와 서래각, 청아영각, 정무진처 등 건물과 사리탑이 있으며 이 절에는 4굴(금강굴, 관음굴, 라한굴, 반아굴), 5적(은적암, 년적암, 원적암, 향적암, 우적암)이라고 부르던 9개의 작은 암자들이 속해있었다. 이 절들은 모두 조용히 앉아서 불교의 도를 닦는 이른바 좌선하는것을 위주로 하는 승려들이 사는 작은 암자들이였다. 16세기말의 중 서산대사가 와있으면서부터의 이 절에 많은 중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출판인쇄를 담당한 빈발암과 경치좋은 곳에 자리잡은 상원암 그리고 한때 《리조실록》을 보관하고있은 불영대 등 모두 특색있는 절들이였다. 묘향산의 사찰들은 18세기 후반기부터 쇠퇴하였다.

봉건정부 종이공물착취가 심해짐에 따라 그 부담을 견딜수 없게 된 승려들이 모두 도망쳐버렸으므로 수많은 절들이 페지되였다. 또한 여러차례에 걸치는 화재로 많은 절들이 타버렸으며 1915년의 큰물로 내원암을 비롯한 수많은 암자들이 파괴류실되였다. 특히 일제침략자들의 조선민족말살정책과 착취자들의 유흥으로 묘향산의 옛 건물들이 많이 손상되였다.

묘향산지구의 명승고적이 근로자들의 즐거운 문화휴식터로, 선조들의 재능에 대한 연구대상으로 된것은 해방이후시기 로동당시대가 시작되여서부터이다.

로동당시대에 력사의 풍운속에서 사라져버렸던 많은 유적유물들이 복구, 복원되였으며 명승구역들에 문화휴식터가 꾸려졌다. 우리 인민뿐아니라 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는 절승경개의 묘향산은 향토애, 조국애를 국사의 초석으로 내세운 조선로동당의 자랑이였다.

                                    로대우에 올라서니 천하절승 예로구나

                                    묘향산절경이야 태고부터 있는것을

                                    전람관 여기 솟아 푸른 추녀 나래펴니

                                    민족의 존엄 빛나 비로봉 더욱 높네

 

                                    만산에 붉은 단풍 가을마다 붉었으리

                                    로동당 새시대에 해빛도 찬란하니

                                    단풍도 고와라 더욱 붉게 물들면서

                                    산천에 수놓누나 이 나라 새 력사를

 

                                    사대로 망국으로 수난도 많던 땅에

                                    온 세계 친선사절 구름같이 찾아든다

                                    5천년력사국에 처음 꽃핀 이 자랑을

                                    금수강산 더불어 후손만대 물려주리

 

김일성동지께서는 언젠가 자신께서 지으신 시를 조용히 읊으시였다.

그이와 함께 여기 묘향산의 산책길을 걷고있는 사람은 대선사 최형욱이였다. 로동당의 덕으로 풍만한 말년을 맞이한 그에게 있어서 수령님께서 읊으시는 시가 새삼스럽게 가슴을 울렸다. 그 시가 그대로 자신의 심정을 담고있기때문이였다. 백발에 장삼을 걸친 그의 몸에는 아직도 젊음이 넘쳐나고있어 말그대로 묘향산의 청아한 정기가 슴배여있는듯 했다.

그가 김일성동지를 처음으로 만나뵈옵게 된것은 해방직후였다.

20대의 젊은 중으로서 보현사를 지키고있는데 하루는 그이께서 찾아오시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그의 생활을 료해하시다가 식량공급을 받지 못하고있는 사실을 알게 되시였다. 편협한 일군들이 인민들에게 줄 식량도 확보되지 못한 어려운 시절에 중한테까지 관심을 돌릴 겨를이 없다고 하면서 식량공급명단에서 그의 이름을 그어버렸던것이다.

그이께서는 새 세상에서 새 나라가 중을 먹여살리지 않으면 그들은 죽어야 하는가고 하시며 당장 식량을 공급해주며 군당에서 그의 생활을 책임적으로 돌봐주라고 엄하게 분부하시였다.

그때로부터 최형욱은 그이의 보호속에서 한평생 아무런 불편이 없이 종교활동을 해왔다. 1960년대 반당분자들에 의해 반복고주의투쟁이 극좌적으로 벌어질 때에도 은인의 손길이 그도, 보현사도 지켜주시였다.

은인께서는 묘향산을 찾으실 때마다 어김없이 그를 가까이 불러 허물없이 담소도 나누고 종교활동에 대한 고견도 주시였다. 장삼을 걸친 중으로서 이 나라 당과 국가의 정치활동가들도 쉽게 만날수 없는 그이를 때없이 만나뵙는 사실이 그의 위엄을 높여주었고 사람들로 하여금 그를 함부로 건드릴수 없는 신성불가침의 존재로 느껴지게 하였다.

남조선의 문익환목사가 그리스도교인이지만 보현사의 불상앞에서 합장하고 앉았던 사실을 무심히 넘길수 없는것이다. 캄보쟈의 시하누크도 여기에 왔었고 신앙과는 관계가 전혀 없는 세계의 각계 정객들이 또한 찾아왔었다.

이것은 위인의 권위가 보현사의 뜨락과 이 절의 중인 최형욱의 몸에 반사되고있는 까닭이였다.

최형욱은 동양에서 몇 안되는 불교의 최고교직인 대선사이며 그의 이름은 세계의 모든 불교도들속에 널리 알려져있었다.

로동당시대의 중으로서의 그의 인생은 성공한 인생이라고 할수 있었다.

지금 그의 인생은 울긋불긋한 가을열매처럼 한껏 무르익었으며 가슴은 포만감으로 그들먹했다. 그러니 로동당시대에 대한 찬가인 그이의 시에 어찌 심취되지 않을수 있겠는가!

최형욱이 격정에 넘쳐 말씀올렸다.

《시가 저의 심정 그대로입니다. 로동당 새시대와 더불어 묘향산의 절승경개만이 아니라 저의 인생도 빛났습니다.》

《그렇다니 고맙습니다. 로동당은 이 나라의 모든 사람들에게 신앙의 자유를 주었고 종교활동을 국가적으로 보장해주었습니다. 승려들의 생활은 물론이거니와 절을 비롯한 교당들의 유지비도 국가가 부담하고있는 나라는 우리 나라밖에 없는것 같습니다.》

《예, 다른 나라들에서는 종교활동이 교인들의 교비에 의해 근근히 유지되고있습니다.》

《그것 보십시오. 그런데도 미국은 해마다 〈인권보고〉라는데서 우리 나라의 종교문제를 거들고있으니 그야말로 심술궂은 나라입니다. 허허…》

김일성동지께서는 쓰거운 웃음을 짓고나서 화제를 돌리시였다.

《나는 일찍부터 종교와 그 교리의 창시자들에 대해 생각해보았습니다. 국가시대, 문명시대에 들어섰지만 인류는 지옥같은 세상에서 살고있습니다. 그래서 생각해낸것이 천당과 극락인 래세였습니다. 이것은 당시 사람들의 요구였고 지향이였습니다. 이 지향과 요구를 반영하여 성경과 불경, 코란이 나왔습니다. 그리스도와 석가, 마흐메트가 이 종교의 교리를 찾아냈다고는 하지만 이것은 오랜 기간에 걸친 인류의 지혜가 다듬어낸 인류공동의 정신적재부라고 할수 있습니다. 아무 시기에나 인류의 지향과 요구를 반영한것은 진보적인것입니다.

나는 종교 그자체를 나쁘게 보지 않습니다. 그것이 지배계급의 정치적도구로 될 때는 문제가 다릅니다.

주체사상은 인류의 모든 사상정신적재부를 총화한 기초우에서, 또 그 제한성을 극복한 기초우에서 나온것입니다. 후생가외란 말도 있는것처럼 주체사상의 견인력은 그래서 강한것입니다.》

최형욱은 너무도 감동되여 그이를 우러르기만 하였다.

《나는 요즘 남조선의 대종교에 대해서도 관심을 돌리고있습니다. 대종교는 민족의 원시조인 단군을 숭배하는 민족종교입니다. 나는 남조선에서 이러한 교인들이 불어나기를 희망합니다. 이들이 민족성을 살리는데 이바지하고있기때문입니다. 우리 당은 조국통일을 위해서 사상과 제도, 신앙을 초월하여 대단결을 이룩할것을 제기하고있습니다. 민족대단결의 기초가 바로 민족성입니다. 하나의 피줄로 한강토에서 살아온 단일민족이라는 자각입니다. 나는 민족대단결을 이미 〈조국광복회 10대강령〉에서 정치강령화하였습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최형욱을 불러놓고 잠시 동안을 두시였다가 계속하시였다.

《이제 곧 단군이 신화적존재가 아니라 실재한 인물이라는 중대발표가 있게 됩니다.》

《예?!》

《단군에 대한 연구사업을 내적으로 진행하면서 아직 소리를 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젠 소리를 낼 때가 되였습니다. 우리 학자들이 마지막작업을 하고있습니다. 나는 오늘 오전에 여기 묘향산에서 정무원과 문화유적유물보존부문 일군들로 단군릉개건준비위원회를 조직하고 단군릉을 시조릉답게 웅장하게 개건할데 대한 과업을 주었으며 형성도안도 비준했습니다.》

《희한한 소식입니다! 이거야말로 민족의 대경사입니다!》

최형욱은 소리치듯 말씀드렸다. 그의 눈에서 대번에 물기가 번쩍이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만면에 환한 웃음을 담고계시였다.

석양을 받은 비로봉의 아아한 봉우리가 신기루처럼 빛나고있었다. 그 신기루들을 스쳐지나는 바람소리, 계곡을 흐르는 물소리가 더욱 유정하였다. 깃을 찾아드는 산새들이 노래하듯 지저귀고있었다.

어디선가 풀벌레소리가 들려왔다. 저녁공기는 더욱 맑고 시원했다. 그이께서는 내리막길을 걷고계시였다.

그이의 팔을 낀 간호원이 재잘대며 손녀처럼 귀엽게 굴었다.

그이께서는 마냥 즐거운 표정을 짓고계시다가 부지중 풀벌레소리에 귀를 기울이시였다. 이윽고 은은한 목소리가 산책길의 고요를 깨뜨리였다.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뛰여난 슬기와 지혜를 지니고있었습니다.》

그이께서는 선조들의 뛰여난 감각과 슬기에 대하여 말씀하기 시작하시였다. 그이의 말씀에 의하면 우리 선조들은 비의 음색, 음질, 음조와 각이한 곤충들의 울음소리를 듣고도 자연의 리치를 밝혀낼줄 알았다.

초가집처마에 떨어지는 비소리의 강약과 비줄기의 굵기를 보고 비끝에 뒤담의 배나무잎이 떨어질것이고 비가 그치면 고추가 독이 오를것이라고 미리 짐작하였다. 곤충들의 울음소리를 듣고도 가을의 짙어져가는 정도를 감별할줄 알았는데 돌담에서 꺼덩이라는 벌레가 울면 김장고추를 말려야 할 철이고 울안의 나무뿌리에서 마당비라는 벌레가 울면 콩타작을 할 때라고 보았다.

만약 땅치가 우는 철을 놓치면 콩알이 저절로 튀여나와 손실이 많아지는것으로 알았으며 마루밑에서 깽끼라는 벌레가 울면 여름옷을 겨울옷으로 바꾸어입었다.

가을철 새벽바람에 집마당에서 가랑잎 구으는 소리를 듣고도 그것이 자기 집 뜨락에 있는 돌배나무잎인지 이웃집 밤나무잎인지 분간할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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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산님의 댓글

강산 작성일

(위에서 계속)

가을에는 타작한 벼를 가마니에 담을 때 가마니속으로 쏟아져 내리는 미묘한 벼알의 부딪치는 소리를 듣고 그 소출량을 가늠하였다.
이처럼 우리 민족은 뛰여난 감각을 가지고 그것을 자연의 리치와 생활에 밀착시킬줄 아는 예지를 지니고있었다.
최형욱은 그이의 말씀이 끝나자 다시 깊이 감심되였다.
저이께서 민족의 슬기와 지혜에 대하여 저처럼 깊이 알고계신단 말인가! 필시 저것은 하고 최형욱은 생각하였다. 저이의 슬기이고 감각이며 지혜이시다.
이때 김일성동지께서는 그를 보고 말씀하시였다.
《대선사, 이처럼 슬기롭고 지혜로운 민족의 후손인 우리가 자기의 시조를 이제야 찾는다는것은 매우 후회막급한 일입니다. 나는 죄책감을 금할수 없습니다.》
최형욱은 그이의 앞이라는것도 잊고 손을 내저으며 항변하듯 말씀올렸다.
《아닙니다. 이것은 로동당시대가 이룩한 또 하나의 업적입니다! 그렇습니다, 업적입니다!》
《대선사, 로동당의 좌우명이 이민위천이라면 로동당의 정치리념은 민족통일전선입니다. 말하자면 민족대단합입니다. 이 정치리념에 의해 로동당은 일심단결이라는 토양에 뿌리를 박고있습니다. 바로 그래서 나는 민족의 력사를 우선시하는것입니다.》
저 웅지야말로 《불》이다. 저런 웅지의 체현자가 또 있었던가? 없었다. 오직 민족의 아들, 절세의 애국자이신 저이께서만이 20세기의 령마루에 우뚝 솟아 전무후무한 예지의 빛발로 민족의 원시조를 밝혀내고 반만년의 민족사를 바로잡아나가시니 지나온 반만년의 력사여, 여기 20세기에 시선을 모으라! 그리고 숙연히 머리숙여 경의를 드리라!
최형욱은 무한한 격동속에서 그이를 우러르다가 말씀올렸다.
《제가 악청이지만 수령님께서 지으신 시를 다시한번 읊어보겠습니다.》
최형욱은 그이의 응답을 기다릴사이없이 《묘향산 가을날에》를 읊기 시작했다.
시를 다 읊고난 그는 시정을 가슴에 안은채 흥분에 찬 목소리로 말씀드리는것이였다.
《오늘을 당하고보니 이 시가 더욱 명시라고 여겨집니다. 수령님, 제 진정인데 참으로 훌륭한 시입니다.》
《이거 너무 과찬하지 마십시오. 김정일동지의 시를 한번 들어보십시오.》
《그건 어떻게 하시는 말씀인지?》
김일성동지께서 그 물음에는 대답하지 않고 간호원에게로 시선을 돌리시였다.
《간호원, 〈제일강산〉 알지? 그걸 읊어봐.》
간호원이 그이의 분부를 받고 옷매무시를 바로 잡고 감정을 가다듬었다.
이윽고 처녀의 맑고 고운 목소리가 골짜기를 울리기 시작했다.
                   
                    봄산에 진달래
                    여름산엔 하얀 밤꽃
                    한창 꽃계절이 그만이더니
                    단풍이 불타는 가을은 더 좋아
 
                    산은 산마다 울긋불긋
                    골은 골마다 맑은 물소리
                    푸른 하늘 떼지어 나는 산새도
                    이 강산이 하좋아 노래하는가
 
                    내 나라는 어디 가나 절승경개라
                    사람들 자랑높이 안고사는 금수강산
                    천하의 아름다움 여기 다 모여
                    세상에 다시 없는 제일강산아
 
                    수려한 이 절경이 자연의 조화더냐
                    로동당의 해빛이 하도 따뜻해
                    인민의 기쁨은 일만단풍에 어리고
                    누리는 행복은 산상끝에 닿았구나
 
                    아, 세계가 부러워 너만을 바라보게
                    내 너를 더 높이 안아올리리
                    조선아, 조선아!
                    너는 나의것
                    나는 너의것
 
처녀의 목소리를 김일성동지의 우렁우렁한 목소리가 뒤받았다.
《김정일동지가 학생때 지은거요. 과시 후생가외입니다. 후생가외! 내가 여러번 말했지만 21세기는 김정일세기로 빛날것입니다! 우리 민족의 미래도 더욱 번성할것입니다.》
이때 전기철이 뛰여와 그이께 알려드렸다.
《수령님, 과학원으로부터 5천년전 유골을 찾았다는 보고가 올라왔습니다.》
《갑시다, 어서!》
최형욱이 미처 작별인사를 올릴 사이도 없이 김일성동지께서는 젊은이와도 같은 걸음으로 씨엉씨엉 숙소를 향해 걸어가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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