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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소설 <대박산마루> 제 13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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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1건 조회 9,323회 작성일 15-12-16 2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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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13 회)

20

 

단군릉발굴조가 정식 무어지고 단군릉발굴이 기정사실화됐을 때 솔직한 심정으로 진웅은 일희일비한 감정이였다.

물론 단군릉발굴사업이 성과적으로 진행되여 우리의 반만년력사가 학술적으로 고증된다면 그것은 과학계의 일대 사변이며 민족적경사가 되겠으니 과학자인 그로서는 누구보다 기쁠것이다. 그래서 그는 발굴전야에 현지에까지 갔던것이다.

그러나 만약 단군릉발굴보고서가 완성될 때 거기에는 그자신의 몫이 없다. 고조선글자에 대한 연구를 아직 완성하지 못했으니말이다. 단군릉발굴보고서에 그것이 첨가될수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

그는 락심하지 않고 고조선글자연구에 박차를 가했다.

언어학연구소의 지도일군들은 그를 돕기 위한 조직적대책을 취했으며 오랜 박사 한명을 전임으로 붙여주었다.

그는 이에 힘을 얻고 자기의 연구를 심화시켜나갔으며 하나하나 연구성과를 고착시켰다.

그는 이미 훈민정음창제이전에 우리 나라에 한자와 구별되는 우리의 고유한 민족글자가 있었다는데 대해서는 론박할수 없는 근거를 확보하였다.

그러면 어떤 글자가 있었겠는가?

그의 연구는 여기에 집중되였으며 과학적인 결론에 이르렀다. 그는 그 결론을 《우리 민족은 고조선시기부터 고유한 민족글자를 가진 슬기로운 민족》이라는 론문에 고착시키면서 보충적으로 고조선시기의 글자와 존재에 대한 문헌적자료를 안받침하였다.

그는 론문에 썼다.

…15세기 후반기이래로 국가적으로 금지되였던 《삼성기》라는 책에서는 《단군때에 신전(신지전자, 신지글자)이 있었다.》고 하였으며 16세기 리맥의 《태백일사》(《태백유사》라고도 한다.)에서는 《단군때 신지전서, 신지전자, 신지글자가 있었는데 그것을 태백산과 흑룡강, 청구(조선), 구려 등 지역들에서 널리 썼다.》고 하였다.…

그는 론문에 또 썼다.

…신지는 신시라고도 표기하였는데 원래 《큰사람》이라는 뜻을 가진 말로서 처음에는 《임금》을 가리켰으나 나중에는 높은 벼슬이름으로 되여 지배자, 통치자를 가리키는 말로 되였으므로 《신지글자》란 《왕이나 지배자, 통치자의 글자》라는 뜻으로 된다.…

그러면 신지글자의 구체적인 모습은 어떠한가? 그는 녕변지에 전하고있는 신지글자 16자를 소개한 다음 계속하여 다음과 같이 썼다.

《글자수가 모두 16자밖에 되지 않는것으로 보아 이것이 신지글자를 다 보여주는 글자표는 아닌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글자짜임의 특성으로 볼 때 뜻글자류형이 아니라 소리글자, 그것도 소리마디단위의 마디글자류형이라는것을 알수 있다.…》

그는 밤낮이 없이 심혈을 바쳐 론문을 완성하였다.

완성된 론문을 보고 그를 도와주던 로박사는 경탄하였다.

《젊은 선생이 용쿠만! 단군릉발굴과 함께 론문이 완성된건 안성맞춤일세. 그새 수고했네!》

박사는 때이르게 이마에 주름이 잡히고 별로 나이가 들어보이는 그의 손을 잡고 한마디 물었다.

《자네 장가는 언제 들려나?》

언젠가 그의 론문을 보고난 박진규도 같은 말을 하였다.

장가? 얼마전까지만 하여도 몸이 달아있었다. 바들바들 떨리는 처녀의 뜨거운 손, 이 세상 향기란 향기는 다 모아 분무하는듯 하던 그 진한 녀자의 향기, 이 모든것이 지금까지도 그의 기억속에 생생하게 남아있다. 그 무슨 기념식사처럼 거리에 나오기만 하면 찹쌀기름튀기, 그것도 꼭 한개만 사서 둘이 나누어먹던 일, 펑펑 쏟아지는 함박눈을 우정 맞아가며 어린애들마냥 장난질을 치던 일, 무너지게 핀 진달래무지앞에서 손을 맞잡고 봄의 정서를 한껏 맛보던 일, 그 모든것들이 즐거운 추억으로가 아니라 심장에 모진 아픔으로 남아있다. 그는 그 모든것들을 상기하고싶지도 않았다. 상기할수조차 없었다. 왜냐하면 사랑의 불덩어리가 자리잡았던 곳에 지금은 얼음덩이가 꽉 들어차있기때문에…

그 녀자와 자기사이에 있었던 모든 일, 특히 즐거웠던 일일수록 그의 가슴을 더더욱 극동에로 몰아갔다.

그 녀자는 그의 첫 사랑이자 마지막사랑이라고 할수 있었다. 이제 그의 가슴이 더 차지면 그 어떤 녀자도 그것을 녹여내지 못한다. 설사 그 녀자가 되돌아선대도! 그렇게 되면 로총각인 그는 영원히 장가를 못들것이다.

그가 자기 가슴이 차지는것을 두려워하는것은 그때문이 아니다.

이마에 벌써 실주름이 건너갔고 메마르고 즙이 없어보이는 칼칼한 외형과는 달리 그는 남에게 없는 인간애를 지니고있었다. 이러한 그가 얼음덩이를 안고 산다는것은 죽기보다 괴로운 일이라고 할수 있다. 그래서 자기의 가슴 한구석에 얼음덩이를 꽉 채워놓은 그 녀자에 대한 추억을 그리도 두려워하는것이였다. 그러나 과학계의 원로들인 존경하여 마지 않는 두 학자가 연거퍼 마치 약속이나 있은듯 장가문제를 꺼내자 그는 굳게 닫았던 추억의 문을 더 지켜낼수 없었다. … 그들은 실버들이 연두색으로 물든 보통강공원 네모진 앞탁이 있는 의자에 나란히 앉아있었다.

맞은편의자와 량옆의자는 비여있었는데 공원에 의자가 남아돌아가서가 아니라 한쌍의 청춘에게 호젓한 기회를 주려는 사람들의 고운 마음씨때문이였다. 사랑이란 당사자들은 더 말할것도 없지만 곁에서 보는 사람들에게도 즐거운 법이다.

애타게 기다려온 4년이였다. 그에게는 더 하였다. 그는 이 4년이라는 나날에 20대에서 30대로 넘어섰으며 수염터는 더 검어졌고 이마의 주름살은 더 짙어졌다.

나이드는데서 오는 초조감, 고독감 그리고 자포자기… 그러나 이 모든것이 방금전 처녀의 《기다려줘 고마워요!》라는 진정어린 말 한마디로 흔적없이 사라졌다. 하늘을 헤염쳐간 구름처럼… 말이 없었다.

숨가쁜 순간이 천년인듯 흘러간다.

처녀가 견디지 못하고 먼저 단김이 섞인 말로 입을 뗐다.

《오빠, 왜… 아무 말도 없어요?》

다음 처녀의 가슴이 몸에 닿는것이 느껴지는 순간 그는 길고 억센 두팔로 처녀의 허리를 꼭 감았다. 그의 가슴에 안긴 처녀의 머리카락이 볼을 간지럽혔다.

그는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떠듬떠듬 속삭였다.

《례영이, 례영이도 알지? 아버지가 왜 처벌문제가 제기되였댔는지? 바로 아버지를 문제삼은 강동군의 간부가 나의 아버지야, 알았어?》

진웅은 자기가 못난짓을 하고있다고 생각지 않았다. 처녀에게 실망과 분노를 주기 위해서가 아니라면 부디 이런 자리에서 두 가정사이에 엉켜있는 불미스러운 과거사를 꺼낸단 말인가. 하지만 언제건 말해야 했다. 더는 참고있을수가 없었다. 활 뱉아버리고나니 속이 후련해졌다. 그는 모든것을 체념해버렸다. 그 어떤 운명이 차례진대도 탓하지 않으리라. 숙명적인 필연은 피할수 없는것이다. 수정천가에서 그가 처녀를 구원해준것은 우연이였다.…

순간 처녀는 흠칫 몸을 떠는듯 했다. 그러나 그의 눈표정을 볼수가 없는것이 안타까왔다. 처녀의 얼굴은 그의 어깨너머 있었다. 지금은 그의 볼을 간지럽히는 처녀의 머리카락에서 풍겨오는 연한 비누냄새만이 그를 자극하고있었다.

…《머리통에 무엇이 차있는가! 속에 품고있는게 뭔지 말하라. 복고주의를 제창하는가? 로동당시대에!》

책상을 치며 고함을 지르는 자기 아버지앞에 처녀의 아버지는 죄인처럼 고개를 숙이고있어야 했다.…

일이란 얼마나 불가사의한것인가.

진웅은 처녀의 달아올랐던 심장이 싸늘하게 식어들리라는것을 각오했다. 처녀가 자기의 몸을 콱 밀어던지며 서리를 풍기는 환각이 떠올랐다.

《우리 집에 아물수 없는 상처를 남긴 사람… 그것때문에 아버지가 얼마나 고민했고 어머니는 얼마나 타격받은줄 아세요? 딴사람들처럼 안타까움과 억울함을 활 드러내놓지 못하고 묵묵히 새길줄밖에 모르는 우리 어머니는 그때 심장병을 얻었어요!》

설사 그런다해도 그것을 묵묵히 감수하리라 결심하고있었다.

진웅은 그가 몸을 바르르 떠는것을 감촉했다. 처녀는 진웅의 품에 안겨 흐느끼고있었다.

《이따금 례영이의 모습을 상기했었지. 대학입학시험장에서 만났을 때 반가왔어. 그래서 아무 생각없이 나를 알려주었구… 그담부터는 불안속에서 살았지. 언제건 내가 누구의 아들이라는것을 알텐데… 순진한 례영이의 가슴에 상처를 입히는 행위로 되지나 않을가 하는 불안, 과연 내가 례영이를 행복하게 해줄수 있을가 하는 걱정, 난 참으로 오늘까지 힘겨운 나날을 보내야 했소.》

그담에야 진웅은 자기의 몸에 붙어있는 처녀를 떼내여 처녀의 얼굴을 똑바로 들여다보았다. 크고 그윽한 눈동자, 물기가 어려 더욱더 아름답게 보이는 그 눈동자에 푸른 하늘이 통채로 담겨져있었다. 변함없이 천진한 그 눈동자에서 진웅은 천만마디 말로도 표현할수 없는 그의 마음을 읽었다.

《내 맘이 변할줄 알았어요?》

아! 사랑이란 이런것인가. 진웅은 자기를 잊어버렸다.

《왜 한마디 말이 없어? 무슨 말이래두 좋으니 시원하게 소리라도 질러. 욕을 해두 탓하지 않을테니.》

《됐어요, 좀 더 말을 하면 정말로 소릴 지르겠어요.》

처녀는 눈을 꼭 감아버렸다. 하지만 진웅의 눈앞에는 그냥 푸른 하늘이 펼쳐져있었다.

《난 지금 오빠말이 하나두 들어오지 않아요. 하나두…》

그담에는 정말 두사람이 말 한마디없이 두손을 맞잡은채 굳어져있었다. 시간이 좀 흘러 진웅은 진정된 목소리로 계속했다.

《례영이가 모든것을 리성적으로 판단할수 있게 될 때까지 기다렸소. 례영이, 여기에 나의 아버지가 무슨 관계가 있겠소? 둘이 사랑하면 그만이지… 물론 지금껏 속여와서 정말 미안하오. 죄스럽소!》

《오빤 똑똑한 바보!》 례영이는 부르짖듯 말하며 그의 품에서 빠져나왔다.

진웅은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물기를 머금은 례영의 크고 검은 두눈이 진웅의 시선을 끌었다. 아, 아름답기란!

진웅은 그를 놓칠가 겁나하며 주저하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 말을 어떻게 들어야 하오?》

《오늘의 이 자리가 어떤 자리인줄 알고 나온 처녀가 그래 그 모든 사실을 모르고 나왔겠어요? 그동안 내가 오빠의 아버지에 대해서만 알아보았을것 같애요? 나비를 잡겠다고 제 죽을줄 모르고 물에 뛰여들었던 어제날의 철부지소녀가 아니란 말이예요.》

《아, 그렇지! 그렇지!》

진웅은 감격하여 연방 부르짖었다.

《똑똑한 바보!》례영은 정어린 눈으로 어린애처럼 좋아하는 그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오빤 학문에서는 최우등생이지만 생활에선 락제예요. 우리 아버지처럼. 그렇지만 나는 아버지가 좋아요!》

《그럼 나도 좋소?》

《응…》

《사랑하오?》

《그 말을 꼭 들어야겠어요?》

《그렇소, 대답하오!》

《전 물에 빠졌던 저를 건져준 그 일을 잊을수 없어요. 그때 입었던 오빠의 그 후렁한 솜저고리를, 전 마음속에서 그걸 영원히 벗지 않겠어요. 진심이예요!》

《진심이란 말이지…》

진웅은 그때 진심이란 말을 사랑이란 의미로 들었다. 처녀로서 그 이상의 진정을 어떻게 표현한단 말인가?

진웅은 례영이와 지낸 날들에 사랑한다는 말을 들은적이 한번도 없었다. 처녀는 진심이란 말만 써왔다. 그와 갈라질 때도 처녀는 진심만은 변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들은 모란봉으로 올랐다. 칠성문으로 해서 을밀대, 최승대 사랑의 발걸음은 끝간데 없었고 지침도 몰랐다.

진웅은 추억을 더듬었다.

추억의 문은 여전히 열려있고 그는 열려진 문턱에 무방비상태로 앉아있었다. 이름도, 검은 눈동자도, 그 고운 목소리(지금 생각하면 그의 목소리는 인상적이였다.)도 다 지워버린 지금 그게 무슨 대수랴!

어디쯤이였던가? 그는 소개받았던 한 상대를 거절한데 대해 처녀에게 말했다.

강동에 살고있는 아버지는 점점 나이들어가는 아들이 걱정스러워 여기저기 줄을 놓아 처녀의 사진 한장을 조심스레 들려주었다. 따라붙은 설명은 요란하지 않았지만 은근히 마음을 끌어당겼다.

처녀가 고생을 많이 해본지라 근면하고 생활력이 강하고 더우기 가풍이 좋고 마음씨 고와 아는 사람들은 누구나 맏며느리감이라고 한다는 등…

처녀의 사진을 들여다보니 정말로 호감이 가게 생겼다. 외유내강의 인정미와 강직성이 그대로 조화를 이루고있었다. 하지만 진웅은 완강히 반대했다.

그때 례영이가 자기의 이 말을 좀더 심각히 새겨들었더라면 우리들사이가 지금과 같이 되지 않을수도 있지 않았을가… 진웅은 이런 생각으로 잠시 멈추었던 추억을 다시 계속하였다.

그 말을 했을 때 례영은 《고마워요.》하고 검은 눈에 물기를 담았다. 그리고는 침묵하고있었다. 진웅은 례영의 눈, 눈에 담긴 침묵을 좋아했다.

그 눈으로 자기를 애무해주었고 무엇인가 끝없이 속삭여주었었다. 그 검은 눈동자의 깊고깊은 속에서 타오르는 불빛은 언제나 그만을 위하여 꺼질줄 몰랐다.

그는 자기에게 티없이 맑고 깨끗한 반려가 있다는 희열에 잠기였다. 그러나 다음순간 생활에서 무능한 자기는 아무것도 그 녀자에게 줄것이 없다는것을 깨달았다.

진웅은 마음을 가다듬고 새로운 결심을 내렸다. 그는 지금까지는 누구도 관심하지 않고있었으나 앞으로는 관심하게 될 고조선의 고대글자를 찾아낼 결심을 가지고 그 연구에 달라붙었다. 이것은 어김없이 처녀를 깜짝 놀래울것이며 처녀에게 주는 가장 훌륭한 선물로 될것이였다.

그런데 처녀와의 관계는 과학연구로 굴곡없이 흘러가던 단조로운 종래의 생활률동을 마치 그 어떤 발작을 일으키듯 파괴해버렸다. 1주일씩이나 책속에 파묻혀 세상과 담을 쌓고있던 그의 앞에 례영이가 나타나 그 아름다운 눈을 흘기며 그를 말없이 질책하는것이였다. 그럴 때면 둘이서 아무 말없이 보통강유보도와 거리를 거닐다가 모란봉기슭으로 가군 하였다. 거기서 그들은 늙은 느티나무에 매혹을 느꼈다.

그 나무는 안락의자마냥 뿌리들이 땅겉면으로 솟아나와있었다. 진웅이와 례영이는 말 한마디 없었지만 그 《안락의자》에 앉았고 처녀의 머리는 기다란 가지에 핀 꽃송이마냥 진웅의 어깨에 드리워졌다.

그들은 한시간이고 두시간이고 그렇게 앉아있을수 있었다. 지척에는 고층아빠트들의 불밝은 창문들이 반짝거렸다.

아빠트들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웃고 떠들고있을것이다. 그러나 그들 두사람에게 평양의 거리는 물론 온 세계에 오직 자기들만이 있는것으로 느껴졌다. 그들은 지금까지 서로 너무나도 적게 알고있었다. 진웅은 물에 빠져 언 몸을 바들바들 떨던 그 조그마한 소녀애와 대학의 교수, 박사가 되겠다는 이 수수께끼같은 처녀를 암만해도 상상속에 련결시킬수 없었다.

례영이 역시 더이상 자기를 알려고 하지 않는것 같았다. 자기가 잘 생겼는지 못생겼는지 그리고 총각치고는 주름살이 너무 많지 않는가 하는 따위는 애당초 무시했다. 처녀에게는 거리에 번쩍이는 장식들의 아름다운 불빛, 장대재우에 걸린 은은한 달빛, 나무잎새들의 설레임, 밤새들의 우짖음과 대비할수 없는 즐거움만이 있을뿐이였다.

진웅이 보건대 그 녀자에게는 감성적인데가 많았다.

그러나 진웅은 처녀와 같이 지내면서 그가 중학교시절에 전국에 이름을 떨쳤던 사실을 상기시키는 대단한 지식가로서 나비를 잡겠다고 물에 뛰여들었던 당돌한 모습을 드러내며 이리저리 자기의 지혜를 타진해보려는 학구적인 질문앞에 여러번 서게 되였다.

그 질문이 너무 엉뚱한것이여서 쩔쩔 매게 될 때도 있었다. 그러면서도 그 질문에 언제 한번 막힌적없이 차근차근 대답해주면 처녀는 매혹된 눈으로 바라보군 하였다.

그래서 처녀가 자기를 왜 좋아하는가고 물으면 나의 학문과 나의 지식을 리해해주고 높이 사주기때문이라고 대답하였다.

그 대답뒤끝에는 언제나처럼 침묵이 깃든 처녀의 매혹적인 눈길이 자기를 애무해주었다. 이럴 때면 진웅은 처녀가 자기의 과학세계를 더 사랑한다고 믿게 되였으며 총각다운 젊은 티가 전혀 없는 자기의 외모에 안심하였고 자기보다 퍽 젊고 아름다운 처녀앞에서 느끼던 미안함과 죄스러움을 굼때였다.

이상하였다.

진웅이가 자기의 생활률동을 깨버리면서까지 시간을 허비하던때보다 신지글자연구가 마지막단계에 이르러 례영에게 단 1분도 바칠수 없게 된 때 그들의 사랑은 더 열정적으로 불타오르는것이였다. 두사람의 만나는 회수는 절반으로 줄어들었다가 그마저 또다시 줄이지 않으면 안되였다.

하지만 두사람은 드물게나마 《안락의자》에 앉게 되는 순간이면 문자 그대로 경련적인 기쁨을 느꼈다.

이 짧은 순간에 그들은 다른 사람들이 몇해를 두고도 체험할수 없는 행복을 맛보았다.

진웅에게 있어서 례영은 지금도 소녀애였고 례영이가 곁에 있으면 대학교원의 경력을 가진 공화국과학원의 연구사, 사회과학계에서 초미의 연구과제를 맡고있는 권위있는 연구사로서의 자존심과 권위 같은것을 말짱 잊어버리고 자기도 어린애가 되는듯싶었다.

어린애는 몰라도 다섯살만 젊었으면…

처녀의 사랑을 폭포처럼 들쓸 때마다 느끼는 감정이였다. 진웅은 처녀의 지지 아니, 요구에 의해 조선고대글자연구에 시간을 깡그리 바치게 되였다. 처녀는 《행복한 시간》을 줄일것을 단호히 요구했다.

그러나 만나서는 짧은 순간에 가슴속깊이 모아두었던 그리움과 사랑의 감정을 터치여 진웅이에게 아름이 차게 안겨주었다.

그와 갈라질것을 결심한 후 진웅은 모란봉에서 끝내 그 느티나무를 찾아내지 못하였다. 그 나무 비슷한것이 눈에 띄우기는 했으나 그보다는 느티나무가 서있는 급한 경사지가 그를 놀라게 했다. 지나간 그 밤들에 어떻게 자기들 두사람이 그 경사지에서 아무 불편도 느끼지 않고 가볍게 앉아있을수 있었을가 하는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그때 앞으로 결별이 있으리라고 어찌 생각할수 있었겠는가!

진웅은 박진규에게 례영이와의 사이에 있었던 일을 말해줄가 하는 생각에 잠겼다가 인차 지워버렸다. 아무것도 모르는 그에게 말해줄 필요가 없을것이다.

언어학연구사로서 누구보다 많은 속담과 격언, 어휘들을 알고있는 진웅에게 도리머리를 젓게 되는 속담이 있었으니 그것은 《그 부모에 그 자식》이라는 말이였다. 속담이 그를 때도 있는것이다.

 

21

 

김석진원사는 박진규와 함께 평양을 종자(학술적기초)로 하여 단군릉발굴보고서를 완성해가고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뜻밖에도 혁명연극 《승리의 기치따라》를 함께 보자는 수령님의 부르심을 받게 되였다.

전기철책임서기가 내려와 과학원에서 제출한 참가자명단을 검토하고 지도일군들의 이름을 거의나 빼고 몇명의 과학자들을 직접 선발하였다.

《머리쉼을 좀 합시다.》하시며 김일성동지께서 극장휴계실에서 그들을 맞이하시였다.

《앉으시오.》

그들이 자리잡자 김일성동지께서 한사람한사람 눈주어 보시였다.

《하나같이 몸이 약하구만. 우리 과학자들은 하나같이 자기 건강에 관심이 없단 말이요.》

《과학자들속에서는 몸이 나면 과학을 못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김석진원사가 반쯤 몸을 일으키며 어줍게 웃었다.

《그래도 몸이 약해가지고는 과학을 못하지요. 박진규선생이 어느분이시오?》

《예.》

박진규가 옆에 놓았던 지팽이를 짚으며 일어섰다.

《제가 이래저래 수령님께 걱정을 드린 박진규입니다.》

《선생에 대해 잘 알고있습니다. 전쟁때 부상당했다지요? 선생의 〈성당〉에 대한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보잘것 없는것이였습니다. 수령님께서 단군연구에 직접 깊이 관심하시는 지금 그 〈성당〉이 수령님의 서재로 옮겨진셈입니다. 저의 외람된 생각이지만…

수령님, 고맙습니다.》

박진규는 허리를 굽혀 인사를 올렸다. 지팽이가 그의 잔등우에 솟아올랐다.

《이러지 마시오. 인사는 내가 해야 합니다. 앉으시오. 어서…》

김일성동지께서는 그가 앉기를 기다려서 말씀을 이으시였다.

《이번 발굴은 민족의 원시조를 잊지 않고 마음속에 간직해온 선생과 같은 애국자들이 있어 이루어진것입니다. 원사선생.》하고 김일성동지께서는 김석진에게로 시선을 돌리시였다.

그이께서는 당에서 아끼는 영예군인인것만큼 과학원에서도 박진규의 건강을 특별히 돌봐주어야 한다고 이르신 다음 여러 과학자들의 나이와 안부, 그들의 연구사업에 대하여 일일이 료해하시였다.

그이께서는 마지막으로 진웅에게 물으시였다.

《선생이 제일 젊어보이는데 몇살입니까?》

《서른셋입니다.》

《장가는 갔습니까?》

《아직…》

《늦은감이 드는구만. 과학을 하자면 동반자를 잘 선택해야 합니다. 그래 봐둔 자리는 있습니까?》

《…》

진웅의 뇌리에 박례영이라는 이름 석자가 류성처럼 쭉 흘러갔다. 이럴 때 그의 이름을 댈수 있었다면! 그는 쩌릿한 아픔속에 오래도록 서있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웃으시였다.

《없는 모양이구만. 과학자들에게도 련애가 있고 생활이 있어야 합니다. 무엇을 연구합니까? 이런 인사불성이라구야. 선생의 이름부터 물어본다는게.》

《신진웅입니다.》

《그래 무엇을 연구합니까?》

《고대조선의 글자에 대한 연구입니다.》

《신지글자?》

김일성동지께서 받아주시자 진웅은 말을 끊고 기쁨에 넘쳐 그이를 우러러보았다.

이때 부관이 들어와 공연시간이 되였다는것을 그이께 알려드렸다. …

공연이 끝난 뒤 학자들은 휴계실에 다시 모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먼저 연극을 본 소감을 말씀하시였다.

《연극이 잘되였습니다. 여러발의 총탄을 맞고도 살아난 전사의 형상이 잘되였습니다. 정말 우리 전사들은 불사신이였습니다. 불사신의 인민, 불사신의 전사들이 있어 지난 전쟁에서 승리할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문학예술작품에서 인민들을 많이 내놓으라고 요구하고있습니다. 이전에 한번 보고 지적한대로 최고사령관선을 많이 뽑고 정리하니 연극이 좋아졌습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언제나 력사의 창조자는 인민이라는것, 오직 인민만이 절대적인 존재이며 오직 인민의 뜻만이 절대적인 진리라는것을 강조하시고 어조를 낮추어 계속하시였다.

《력사를 창조하는것도 인민이지만 력사를 고수하는것도 인민입니다. 다들 아시겠지만 여담삼아 그 이야기를 하지요.》

묘향산의 보현사도 그렇게 지켜졌다.

해방후 력사의 반동들과 그에 동승한 무식하고 편협한 일군들이 절간의 기둥을 뽑아내고 기와장을 들어내며 곡괭이로 유적들을 마구 파헤칠 때나 1960년대 복고주의를 반대하는 투쟁을 극좌적으로 몰아가는 속에서 같은 놀음이 벌어졌을 때 두팔 벌리고 막아나선것 역시 인민이였다.

단군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단군연구의 시발로 된 단군신화를 누가 창조하고 전해왔는가. 단군과 관계된 력사기록들중 많은 분량이 인민구전들을 옮긴것이다. 멀리 볼것이 있는가. 강동의 단군릉을 거두어온 사람도 중학교의 평범한 교원이였다.

전쟁의 준엄한 환경에서 서울의 귀중한 력사문헌들을 안전한 자리로 옮겨온것도 평범한 군인들이다. 전쟁에서 파괴된 옛성들과 사찰들, 루정들을 복구복원한것 역시 인민들이다.

《그러니》하고 김일성동지께서는 결론적으로 말씀하시였다.

《력사는 그 어느 위정자들이 아니라 인민이 보관했다고 볼수 있습니다!》

이 말씀을 듣고있는 사람들은 거의나 박사의 학위를 가진 학자들이다. 그들은 김일성동지께서 인민관을 피력하고계실 때 인민을 이끌고 시대를 향도하는 당과 수령에 대하여 생각지 않을수 없었다. 반만년의 오랜 력사단계에 오늘과 같이 위대하고 현명하고 정의로운 인민의 향도력이 존재했던적이 있었던가.

우리 력사 반만년이라 해도 일찌기 그러한 력사적시대는 없다.

김일성》, 《김정일》이라는 존함과 더불어 불리우는 그 향도력은 사회주의사회인 오직 오늘에만 있다. 이 향도력이 있었기에 반만년의 력사를 옳게 찾고 지켜나갈수 있게 되는것이다. 향도적력량인 당과 수령이 계시기에 옳바른 과학정책과 력사유적유물보존정책이 있는것이 아니던가! 오늘 사회주의제도에 대한 제국주의자들의 악랄한 비방이 있고 이러저러한 오도가 있다해도 력사가들은 오늘의 이 진실을 외면하지 못할것이다. 지금 학자들은 똑같이 이 하나의 생각만을 하고있었다.

김석진원사만은 다른 하나의 생각을 더 하고있었다.

…대기장소에는 수십명의 장령, 고급군관들이 위장망에 전투모를 쓰고 작전도를 펼쳐든채 호출이 있기를 기다리고있었다.

서울이 해방된 직후였으니 전쟁이 터져서 며칠되지 않는 그날 그는 림시로 꾸린 최고사령관실의 대기장소에 몇몇 일군들과 함께 신들메를 든든히 하고 앉아있었다.

그런데 제일 마지막에 왔으며 유독 사민복을 입고있던 그들이 먼저 호출을 받았다. 그들이 최고사령관실의 문을 열고 들어설 때 뒤에서 웅성웅성하는 소리가 들렸다.

최고사령관 김일성동지께서 의자를 권하지 않고 다급히 군인들에게 명령하듯 말씀하시였다. 앉으라고 할 사이가 없으시였던것 같다.

《서울로 떠나야겠소. 당장… 최고사령부 련락군관의 차를 타고가시오.》

숨차게 말씀하시던 그이께서 잠시 숨을 돌리고나서 임무를 말씀하시였다.

《임무는… 서울에 가서 력사책들을 찾아내여 무사히 평양으로 가져오는거요. 불탈수 있소. 벌써 탔을수도 있소. 빨리 가서 한권이라도 살려야 하오! 자, 떠나시오. 차후행동은 다시 지시하겠소.》

그때의 그 다급해하시던 모습…

총포소리가 그칠새 없는 시내 한복판에 한개 중대의 군인들이 화물자동차를 가지고 서울대학교 도서관으로 달려가던 일이며 력사문헌들을 찾아 싣던 일이 어제일처럼 생생히 떠올랐다.

적후에 떨어졌다가 무사히 돌아왔을 때 그를 만나주신 수령님께서 정말 수고많았다고, 차에 싣고온 귀중한 력사책들을 보고 그렇게도 기뻐 그날 잠을 다 못잤다고 하시며 오히려 자기를 치하해주시지 않았던가. 그 구출전투는 모든 기관, 구분대들이 이 사업을 무조건 보장할데 대하여 친필로 쓰시고 수표하신 최고사령관 《신임장》과 수시로 전화명령을 내려주신 수령님에 의해 진행되였음에도 불구하고…

실로 그이가 아니시였더라면 리조 500년의 긴긴 세월의 력사가 하루도 빠짐없이 기록되여있는 1 763권의 《리조실록》을 비롯한 방대한 력사문헌들을 잃어버릴수 있었다. 그이가 아니시였더라면!

그런데도 그 모든 공헌을 인민에게로 돌리시다니…

석진이 자신은 《리조실록》을 실어보낸 후 부상당하여 적구에 떨어져 병치료만 하다 돌아왔을뿐인데도 기회가 있을 때마다 국보를 지켜낸 영웅이라고 내세워주신다.

원사는 이런 잊지 못할 회억에 잠겼다가도 소스라치듯 놀라며 다른 생각에 잡히군 하였다.

그는 이 자리에서 당에 편지를 올렸던 사실을 사죄하고 단군릉발굴보고서를 완성하는데서 제기되는 일련의 문제들에 대한 가르치심을 받고싶었다.

원사는 초조히 그 기회를 기다렸다.

《신지.》 드디여 그이의 목소리가 울렸다.

김석진은 처음에 영문을 몰랐다가 그이의 눈길이 신진웅이한테로 향한것을 보고 그의 이름 대신에 그렇게 부르신것임을 알아차렸다. 이것은 그이께서 고조선의 글자라고 하는 신지글자에 관심을 두셨다는것을 의미한다.

원사는 진웅이와의 첫 대면시에 그이께서 신지글자를 연구한다는 말을 인차 받아주시는것을 보았을 때 그렇게 느꼈던것인데 다시금 그에 대하여 관심을 두시는것을 보는 순간 자기가 작성하고있는 보고서의 허점 하나를 발견하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진웅이와 이야기하고계시였다.

《신지글자에 대한 연구를 어떻게 하고있습니까?》

《고조선에 신지글자라는 고유한 우리 민족의 글자가 있었다는 사실을 립증하는데 중점을 두었습니다.》

진웅은 자기가 쓴 론문의 내용을 요약해서 말씀올리였다.

진웅은 이 말씀을 올리는 동안 내내 흥분상태에 있었다.

이름없는 젊은 연구사로서 이 자리에 참석한것도 그지없이 황송한 일인데 김일성동지께서 자기에게 특별히 관심하여 첫 말씀을 건네신것은 물론 손자벌이 되는 자기를 손우 사람처럼 귀중히 대해주고계시니 어찌 그렇지 않으랴.

《젊은 선생인데 용소.》하고 김일성동지께서 말씀을 이어나가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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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산님의 댓글

강산 작성일

(위에서 계속)

《우리 선조들이 기원전 수천년전에 자기의 고유한 고대글자를 모색하고 만들어쓸 때 이웃이였던 아시아의 큰 나라들은 아직 변변한 글자가 없었습니다. 따라서 우리 선조들이 원시적인 시초글자를 만들어쓴 경험을 가지고 고유한 글자를 완성했다는 사실에 주의를 돌려야겠습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우리 선조들이 처음부터 자기식의 고유한 글자를 만들어냈다는것은 대단한것이다, 내가 알기에는 고대에짚트의 글자는 그 뒤시기 유럽과 아프리카의 수많은 나라들에 전파되였고 세계의 수많은 글자들이 이 에짚트의 글자를 모방하여 생겨났다, 유프라테스강과 티그러스강사이의 남부지역에서 국가를 세운 슈메르사람들이 만든 슈메르쐐기형글자는 바빌노니야글자, 아씨리야글자, 페르샤글자, 헤트글자 등 주변의 많은 글자들로 전파되였다, 고대인디아의 글자도 불교의 영향밑에 스리랑카, 먄마, 캄보쟈, 티베트글자를 만들게 하였다. 그러나 우리 신지글자는…
그이께서 하시는 말씀을 들으며 김석진원사는 자기생각에 빠져버렸다. 저처럼 중요한 내용이, 그보다 더 중요한 내용들이 발굴보고에 빠지고있지 않는가. 이 순간 원사는 몇차례나 추고를 거듭한 발굴보고서에서 무수한 허점을 발견하고있었다. 어디 고조선의 글자뿐인가. 단군의 출생과 활동, 그에 의한 고조선의 성립, 고조선의 정치, 경제, 문화 등등… 단군이 실재한 인물이라는것을 확인하는데 급급했고 그것이 확증되자 현훈증에 걸렸다.
그이께서 진웅이로부터 자기에게로 시선을 돌리시는것이 느껴지자 원사는 생각에서 깨여났다. 그리고 자책어린 어조로 말씀드렸다.
《수령님, 일전에 외람된 편지를 올려서 정말 죄송스럽습니다.》
《허허…》
김일성동지께서는 너그럽게 웃고나서 지나가는 말처럼 한마디 하시였다.
《과학자들에게는 주견이 있어야지요.》
김석진원사는 마음이 놓이지 않아 한마디 더 말씀올리려 하였으나 그이께서 인차 말씀을 이으시였다.
《난 오히려 그 편지를 보고 마음을 놓았습니다. 발굴보고서를 잘 만들어야겠습니다.》
《예, 지금 애를 쓰고있습니다.》
《우리는 완벽한 보고서를 세상에 내놓아야 합니다.》
《단군이 어디서 출생하였으며 수도를 어디다 잡았는가를 립증하는데 중심을 두고있습니다.》 원사의 말을 듣고있던 대다수 학자들이 놀라서 굳어졌다.
단군이 료동에서 출생했으며 료동에서 나라를 세우고 료동에서 수도(왕검성)를 잡았다는것은 이미 내려진 학계의 결론이 아닌가? 그런데 지금 원사는 그 결론에 이의를 표시하고있다. 아니, 전부 부정하고있었다. 그렇다면 원사는 결국 지금까지의 학계의 결론과 모든 학술적성과를 뒤집겠다는것이 아닌가.
고대조선사연구의 학술적기초를 이루고있는것은 료동의 광활한 대지에서 발굴된 유적과 유물이였다. 이 유적과 유물들에 의해서 단군(실재한 인물로 전제하고)이 료동에서 나라를 세우고 료동에 수도를 잡았으며 료동을 중심으로 고대조선이 번성하였다는 과학적(학술적)결론이 내려졌다.
이제 원사의 말대로 한다면 그 모든것을 버려야 했다.
그렇다. 강상무덤, 루상무덤 등 순장무덤들, 수많은 청동기와 토기들, 옛 력사기록들은 물론 그에 기초하여 서술된 수많은 저서들과 론문들, 학교의 교과서들, 수십년간의 고심어린 탐구로 이루어놓은 고대조선사연구의 모든 성과들을 버려야 했다.
좌중에는 침묵이 흘렀다.
김석진이 확신성어린 어조로 뒤를 이었다.
《원시조의 성지를 평양으로 보자는것입니다.》 그러자 학자들은 더욱더 굳어졌다.
좌중에는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드디여 그 침묵을 깨뜨리는 조용한 목소리
《다른 선생들 생각은 어떻습니까?》
굳어졌던 학자들이 그 어떤 보이지 않는 힘에 이끌리듯 김일성동지쪽으로 몸을 돌렸다. 그들은 그 대답을 자기들이 해야 한다는것을 잊은듯 그이만을 우러르고있었다.
그이는 수령이시였다. 우리 나라에 수령의 령도가 미치지 않는 분야란 있을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이께서는 과학분야에서만은 학자들을 존중하여 당일군들이 학술문제에 간참하여 감놔라 배놔라 하는것을 시종일관 반대해오시였으며 그이 자신이 심사숙고하시였다.
《어떻습니까?》
그이께서 조용히 다시 말씀하시였다.
《인민은 당과 외교를 할줄 모릅니다. 손발을 놀리는 로동자와 농민, 머리를 쓰는 학자들을 비롯한 근로인민대중은 진실만을 말합니다. 그래서 과학문제를 론의할 때이면 학자선생들을 만나는겁니다. 말씀들을 해보십시오. 원장선생주장대로 단군조선연구를 180° 방향전환을 한다면 어떤 문제들이 제기됩니까? 솔직한 의견들을 듣고싶습니다.》
학자들처럼 주견이 센 사람들은 없다. 그들은 머리속에서 결론이 주어지지 않은 이상 절대로 입을 먼저 열지 않는다. 그것은 주견이라기보다 신념, 과학적신념인것이다. 그러나 너무 오래도록 함구무언이였다.
더우기 지금 수령님께서 솔직한 대답을 요구하심에야…
김석진원사는 그들을 리해하였다.
자기도 애써 방향전환한 문제를 그들이라고 쉽게 납득하겠는가.
그가 입을 열었다.
《단군유골의 발굴은 많은 면에서 고조선의 성지가 평양이라는 사실을 증명해주고있습니다. 만일 그것을 부인한다면 우리는 자가당착에 빠지게 될것입니다.》
《옳습니다. 나는 원사선생의 그 방법론들을 지지합니다.》
《수령님!》
이렇게 부르는 원사의 목소리가 갑자기 젖어들었다. 그는 젊은이들처럼 벌떡 일어섰다.
《그 방법론을 주신분은 다름아닌 … 수령님이십니다!》
그이께서는 그저 미소를 지으실뿐…
김석진원사는 목멘 소리로 계속하였다.
《그렇습니다. 수령님의 친필서한이 저를 깨우쳐주었습니다!》
《그렇다니 한마디 합시다. 나는 당정책을 한시도 잊지 않고있습니다. 선생들도 다 아시는바이지만 력사과학에 대한 로동당의 지도원칙은 주체성입니다. 나라의 리익, 민족의 리익입니다. 그래서 단군릉발굴사업을 적극 떠밀어준것입니다.》
당의 로선과 정책은 수령이 제시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정책의 작성자이신 저분께서 지금 그 당정책을 두고, 나라의 리익, 민족의 리익을 두고 생각하고 또 생각하였다고 하신다. 저것이야말로 민족의 아들로서의 효성이 아니겠는가. 아, 민족의 효자, 절세의 애국자! 수령님에 의해 원시조의 실체가 발견된것은 너무나 응당하다.
원사는 왕무한의 편지를 읽을 때의 충격을 다시한번 체험하며 가슴이 뭉클해지는것이였다.
사람들이 박수를 치기 시작하였다. 장내에는 경탄과 환희의 선풍이 일고 계속되는 박수소리는 멎을줄 몰랐다.
장내가 조용해지자 그이께서는 원사에게 말씀하시였다.
《원사선생, 나의 편지가 도움이 되였다니 다행한 일입니다. 감사합니다!》
《아니 이런…》
원사가 그이를 향해 황황히 머리를 굽혔다.
부관이 들어와 그이의 귀전에 소곤거렸다.
《수령님, 관중들이 극장에서 나가지 못하고있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요?》
《수령님께서 계시는데 그들이 어떻게…》
《할수 없구만, 우리가 일어서는수밖에 우리 일이란 늘 이렇다니까.》
수령님께서는 탄식하듯 말씀하시며 웃으시였다.
학자들의 전송을 받으실 때 김일성동지께서는 김석진원사에게 고대조선사연구의 기초를 바꾼것만큼 평양지방에 대해 시급히 연구를 심화시켜 보다 완성된 발굴보고서를 내놓을데 대하여서와 학자들속에서 의견이 없을수 없으니 잘 알아보고 전화로 알려줄것을 당부하시였다.
그날 저녁.
김일성동지께 보고올린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료동중심설의 기초가 거기서 나온 유적유물이 기본인만큼 평양지방에서 그 이상의것이 나오면 문제될것이 없다고 본다.
둘째, 《한사군》문제이다. 《한사군》문제란 기원전 108년에 고조선의 마지막왕조인 만왕조가 무너진 후 고조선을 멸망시킨 한나라가 세운 군, 현들을 말하는데 그중 하나가 고조선의 수도에 세웠다는 락랑군이였다.
그런데 평양을 고조선의 수도로 인정하는 경우 평양이 한나라의 지배를 받은것으로 된다. 이것은 력사적사실과 어긋나는것으로서 락랑군은 원래 료동에 있었으므로 심중한 정치적문제로 될수 있다고 본다.
셋째, 고조선의 중심을 평양으로 옮겨오면 광활하였던 고조선의 령역이 좁은 조선반도에 고착될수 있다는 문제이다. 학자들이 솔직히 털어놓은데 의하면 그것이 두려워 지금까지 평양중심을 생각해온 사람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감히 그런 주장을 내놓지 못하였다.
이 세가지 문제에 대한 보고를 받으신 김일성동지께서는 즉시에 전화로 다음과 같이 대답하시였다.
《우리 당은 조상의 땅을 정확히 알자는것이지 령토야망을 가지고있지 않습니다. 나는 우리 당의 지도원칙에 력사주의원칙도 있다는것을 상기시키는바입니다. 력사적사실을 부인할 필요는 없습니다. 문제는 평양에 대한 연구를 심화시키는것입니다. 멀지 않아 개천절입니다. 이날을 맞으며 단군릉발굴보고서가 나갈수 있다면 아주 의의있는 일로 될것입니다. 선생들은 어디까지나 력사앞에 책임적인 사명을 지니고있다는것을 명심하고 거듭 당부하건대 심사숙고해야겠습니다. 나는 선생들이 완벽한 단군릉발굴보고서를 내놓게 되기를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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