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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소설 <아리랑> 29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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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0건 조회 6,197회 작성일 16-01-29 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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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사람은 살아가느라면 넘기기 괴롭고 삭이기 힘든 일이 더러 생기군 한다. 혁명가인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그게 언제적의 일이였던가? 김정일동지께서는 어스름이 내리기 시작한 창밖을 내다보시다가 들고있던 전상음의 편지를 집무탁에 놓으시였다.

옳아. 그때였지. 지난해초 일본당국은 외교적경로를 통하여 우리 해당 부문 일군들에게 조일수뇌회담이 성사되도록 노력해줄것을 요청해왔었다. 회담의 재개를 바라는 그 리면에는 조미핵협상의 급속한 전진, 6. 15시대가 도래한 조선반도정세, 우리와의 외교관계설정에 앞다투어 나서는 서방나라들에 뒤지는것 같은 초조감, 조일국교정상화의 조속한 실현을 요구하는 자국의 민심. 이러한것들을 료량해볼 때 반공화국일변도정책을 수정하지 않으면 안되는 필연이 깔려있었다.

동기가 어떻든 그 요청은 들어줄 필요가 있는것이였다. 회담탁에 마주앉아 의사소통을 나누느라면 조일 두 나라의 관계정상화, 동북아시아와 세계의 평화에 기여가 될 좋은 합의를 이룩할수 있지 않을가. 그런데 나는 왜 그런지 선뜻 만나고싶지 않았다. 일본으로 하여 우리 민족이 당한 아픔과 고통, 그 상실의 크기가 돌이켜져서였다.

우리 민족이 당한 아픔과 고통, 그 상실의 크기! 그이께서는 속으로 이 마지막말마디들을 다시 외우시였다. 그러자 그것들은 마치 어떤 음파로 변해버린듯싶었다. 이상한 공명을 일으키며 어디론가 계속 퍼져가더니 어떤 목소리들을 실어오는것이였다.

-어머니, 명화큰엄만 이자 왜 계속 우셨나요?

-아들을 만나게 되여 그런단다.

-…

-명화큰엄만 빨찌산에 들어가려고 그 애를 젖먹이때 남의 집에 맡겼댔다. 젖을 달라고 우는걸 들으면서도 떼놓았지. 빨찌산에서는 애기엄마를 받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듣고 혹 입대를 못할가봐 피눈물을 삼키며 그랬다.

-…

-유격대시절에 큰엄만 자나깨나 아들생각을 했다. 아버님께서 그걸 심중에 깊이깊이 새기셨다가 해방된 오늘 사람을 보내 애를 찾게 하셨구나. 그 멀고 넓은 동북땅을 샅샅이 훑어서 말이다. 명화큰엄마가 이 어머니의 손을 붙잡고 눈물을 쏟은것은 그때문이다. …

-어머니… 음- 음-… 그런데 어머니한텐 왜 외삼촌이랑 친척들이 없나요?

-그건 갑자기 왜 묻느냐?

-어머니생일날에랑 보문 명화큰엄마, 황순희아지미들은 오는데 어머니친척들은 하나도 없지 않나요?

-…

-우리두 친척들을 찾자요, 외삼촌이랑 네? 그리고 외할머니랑 할아버지두.

-…

-왜 말씀 안하시나요, 어머니. 아버님께 말씀드리면 되잖나요.

-안 계신다, 그분들은.

-?!

-외할아버님과 할머님은 왜놈들의 총에 맞아 돌아가셨고 큰외삼촌과 삼촌엄마도 그놈들에게… 작은외삼촌은 유격근거지에 달려드는 왜놈들을 다른데로 끌고가다가 그만… 작은외삼촌은 음악을 수태 좋아했단다. 나팔을 잘 불었지.… 인남이라는 외사촌형도 있었다. 그 애는 지금…

-…

-어머니는 그걸 생각하면 가슴이 막 아프다. 그러나… 이 어머니보다 더 큰 아픔을 가지고계시는분이 있다. 아버님이시다. 아버님은 일찌기 왜놈들때문에 부모님들을 잃으셨고 작은할아버지는 감옥살이를 하다가 돌아가셨다. 김철주라고 아버님의 동생분은 스무살도 못되는 꽃나이에 조선독립을 위해 싸우다가 어느 한 전투에서 희생되였구나. 아버님께서 말씀하기를 강반석할머님을 잃고난 뒤 아버님은 남모르는 눈물을 두번이나 크게 쏟으셨다누나. 곁에 있고싶어하는 철주동생분을 떼놓은 다음에 그랬고 기약없는 먼길을 떠나는 맏형을 계속 따라오는 막내동생분을 보내고난 담에 그랬다고 하셨다. 그래서인지 터진 문풍지와 두부를 보면 철주동생이 못 견디게 생각나 가슴이 아프고 감자를 보면 막내와 헤여지던 때가 떠오른다고 하신댔다.

어디 그분들만이겠니.

-…

-이젠 그만하자꾸나. 그러니 아버님께 그런 말씀을 올려서는 안된다. 그러면 아버님은…

-!

그래, 그것때문이였지. 김정일동지께서는 현실에로 돌아오시였다. 제국주의일본에 품은 구천에 사무친 민족의 원한, 여기에는 우리 일가분들의 천추에 닿을 한도 들어있는것이다. 정말 그렇지 않는가. 그네들은 빼앗긴 나라를 찾는 독립성전에 분연히 일떠선 우리 만경대가문, 백두산일가를 해치려고 얼마나 날뛰였으며 저질러놓은 짓거리는 또 얼마나 천인공노할 행위였는가.

하여 이것은 나에게 있어서 민족의 견지에서 보나, 나 개인적인 감정으로 보나 참으로 삭이기 힘든 문제였으며 정말 순편히 받아들이기 힘든 문제였었다. 하지만 나는 수락했다. 그러면 나는 무엇을 생각하며 그 심적고통을 이겨내고 그들의 요청을 받아들일 결심을 하게 되였는가. 김정일동지의 회상은 다른 곬으로 흘러갔다.

스무해전인가 되는 어느 가을날이였을것이다. 나는 그때 평양시당위원회의 사업을 료해하다가 모란봉구역에 살고있다는 한 로당원이 상급당조직에 올린 류다른 편지를 보게 되였다.

《…제가 이렇게 상급당조직에 펜을 들려고 결심한것은 로병당원으로서, 당세포비서로서 개인감정에 싸인 나머지 그만 수령님과 당이 바라는대로 사고와 언행을 쓰게 하지 못한 일을 심심하게 반성하고 자기를 가다듬기 위해서입니다.》

그이께서는 서두가 이러한 그 편지의 내용이 지금도 생생히 기억되시였다.

《며칠전에 저의 집에는 지난 조국해방전쟁때 함께 싸웠던 전우들이 찾아왔댔습니다. 해마다 전승절이면 늘 그러하듯 저는 음식을 나누며 그들과 전쟁때 이야기랑 옛 일들을 추억하였지요. 이런저런 얘기가 오가다가 그들중 한사람이 문득 제게 이러지 않겠습니까.

이보우 세포비서, 텔레비를 봤소? 방송을 들었소? 최덕신이 그 인간이 우리 조국에 온다고 하오. 아주 살려 말이요.

그 순간 저는 제 귀를 의심했습니다. 그가 어떤 사람입니까? 한생 조국과 민족앞에 못된짓만 해온 인간인데다가 직접적으로는 우리 지리산유격대렬사들에게 영원히 잊지 못할 원한을 남긴 사람이 아닙니까. 훌떡거리는 가슴을 겨우 진정하며 저는 진실여부를 캐여물었습니다. 어제저녁 텔레비도 보고 아침방송이랑 들어 알고있었는데 난 범상하게 생각했다는것, 세상에 이름이 같은 사람이 어디 한둘인가, 그 사람이 최덕신이라는걸 동무는 어디서 알았는가라고 말입니다. 하니 그는 불끈해서 노여움을 터뜨리는게 아닙니까.

세월의 힘이 참 무섭긴 무섭구려. 그 사람의 이름을 무심하게 들은걸 보니. 정환(저의 형님입니다.)동지가 누구때문에 어떻게 돌아갔는지 벌써 잊었소? 그 사람이 틀림없소. 외교부(당시)에 다니는 내 아들이 그럽디다. 미국에서 무슨 배달민족회 회장인가를 하다가 뼈는 조국에 묻겠다며 공화국영주를 요청했다고 말이요.

정환동지의 희생과정을 전에는 입에 올리기 힘들어서 구체적으로 전해주지 못했소만 오늘은 사실그대로 말해야겠소. 똑똑히 아시오. 정환동지는 두벌, 세벌죽음을 당하고도 온갖 수치와 오욕을 다 받았단 말이요. 놈들은 부상당한 정환동지를 장갑차뒤꽁무니의 쇠바줄에 매달아 끌고다니다가 그가 숨지자 사지를 잘라 굶주린 군견들에게 던져주고 머리는 운봉읍 장거리입구에 가져다놓고 침을 뱉든지 돌을 던지든지 하라고 오가는 사람들에게 강박했소. 금수도 낯을 돌릴 만행을 감행한 그놈들의 우두머리가 지리산유격대 〈토벌〉을 총지휘한 최덕신이였다는걸 그래 몰랐단 말이요? 섭섭하오, 너무하구만. 아무리 시간의 흐름이 강하다 해도 잊을게 따루 있지 세포비서가 어떻게 그걸 잊는단 말이요라고 말입니다.

그날 저녁에 저는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지리산유격대 대대장이였던 맏형의 사후이야기를 전우들에게서 세세히 들으니 어찌 마음편히 잠을 청할수 있었겠습니까. 눈을 감으면 떠오르는것은 괴뢰군악당들에게 학살당한 부모형제와 안해 그리고 여섯살잡이 귀여운 딸애의 얼굴이였고 눈을 뜨면 귀전에 들려오는것은 평시 그리두 착하고 인정깊었던 전우들의 분노에 찬 절규였습니다. 하여 저는 눈에 피물이 고였던 일들은 잊지 말고 새겨둬야 하며 어느때든 꼭 계산을 해야 한다는것, 더우기 그 사람이 한 행위는 시효가 없는 대역부도의 죄이므로 철저히 공화국의 법대로 처리해야 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뜬눈으로 밤을 새운 저는 당에 편지를 올려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무엇이겠습니까. 펜을 들어 일사천리로 사연을 쓴 다음 그걸 되읽어보니 속이 불편해나며 무엇인가 못할짓을 하는것 같았습니다. 이미전에 수령님께서 그의 마음속에 바르게 살려는 의지가 있는걸 헤아려보시고 어서 오라 하셨겠는데 우리가 이 무슨 망녕된 행위를 하는겁니까.

수령님께서는 혁명을 해오시면서 한줌도 안되는 못된 인간들때문에 적지 않게 속을 태우시였습니다.

먼데의 일은 그만두고 해방후며 전쟁시기, 전후복구건설때, 사회주의공업화를 실현하던 시기를 놓고봐도 권력에 환장이 되여 왼새끼를 꼬며 엇드레질을 하다못해 무엄하게도 당과 정부를 뒤엎으려 했던자들, 신념과 지조가 없이 두길보기를 하면서 제 배를 채우다가 끝내는 끈 떨어진 뒤웅박신세가 된자들, 밖으로는 미국놈의 총대잡이가 된줄도 모르고 혈육의 가슴에 총부리를 들이대며 동족살륙에 동조한자들. 참으로 엉덩판에 뿔이 난 송아지처럼 못된 인간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우리 수령님께서는 아량을 베풀어 품에 안아주셨습니다. 죄를 인정하고 개심하려는 한쪼각의 량심을 크게 여겨 지난날에 저지른 세상 나쁜짓도 용서해주고 믿음을 주셨습니다.

저는 이런 사실들을 형상한 소설책이나 영화를 볼 때면 그이의 속을 말리는 인간들의 처사를 두고 매번 분격스러워하군 하였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제가 뜻밖에도 그런 인간이 될번 하였습니다. 평시에 늘 어버이수령님을 받드는 마음가짐새가 깨끗했고 언제나 당이 바라는대로 일을 해왔다고 자부해온 제가 말입니다.

그날중으로 저는 전우들을 모여놓고 털어놓았습니다. 우리들이 잘못 처신하고있다는것을 말해주었습니다.

다 울었습니다. 수령님께서 민족의 단합을 위해서 한평생을 바쳐오신 로고가 되새겨져서였고 어버이의 뜻을 어기는 일이라는것도 모르고 맺힌 제 속만을 앞세운 우리들의 망녕된 처사가 후회되여서였습니다. 그날로 전우들의 령전을 찾은 저희들은 당원답지 못하게 처신한 일을 반성했으며 당에 사죄의 편지를 올리자고 토론하였습니다. …》

김정일동지께서는 그날 수령님의 집무실에 들어가 사업정형을 보고하시던중에 편지내용을 말씀드리시였다. 수령님께서는 안경을 벗어들고 창밖을 내다보시다가 그런 일이 있었구만, 우리는 정말 좋은 인민을 가지고있소,… 그 동무의 말이 옳소, 내 민족을 하나로 단합시키는 일을 하면서 남모르는 마음속 괴로움을 많이 체험했지, 속도 꽤나 썩였고. 무슨 일인들 안 당해봤겠소, 그래도 근본이 좋은 사람은 한때 갈 지자걸음을 해도 뒤날에는 개심하고 바르게 걷더구만라고 뇌이시는것이였다.

그 저녁 김정일동지께서는 수령님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시였다. 대체로 수령님께서 말씀하시였는데 혁명을 하는 과정에 당하시였던 불유쾌하고 즐겁지 못했던 일들, 분을 삭이고 아량을 베풀어 용서해야 했던 일들에 대한 추억이였다. 리종락이며 엄광호, 림수산이들의 배신을 놓고서는 쓰디쓴 교훈을 이야기하시였으며 빨찌산의 유명한 싸움군인 강홍석기관총소대장의 안해가 일제의 위협공갈에 떠밀려 사령부를 해치러 들어왔다가 죄를 뉘우치고 혁명가의 참된 안해로, 동지로 변모된것을 감개한 음성으로 추억하시였다. 수령님께서는 그밖에도 항일무장투쟁이후의 준엄한 년대들에 있었던 일들도 실례드시였다.

이날 김정일동지께서 다시금 절감하신것은 수령님은 참으로 위인중에 위인, 인간중에 인간이시라는것이였으며 혁명가라면, 인간이라면 누구나 그분앞에 자신을 항상 비추어보며 살아야 한다는것이였다.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사고하고 행동해야 하는가라고 자문자답을 해보았다. 우리 수령님을 생각했고 그분앞에 자신을 세워보며 정신적괴로움의 고개를 넘기였다.

그런데 림진우는 다르게 처신하고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사색을 처음에로 되돌리시였다. 수령님의 품에서 큰 예술가로 성장한 그가, 한생을 민족의 대단합에 바쳐오신 수령님의 업적이 그대로 초석이 되여 오늘의 6. 15시대가 마련되였다는것을 어느 누구보다 잘 아는 다름아닌 림진우가.

김정일동지께서는 괴로운 심정을 금할수 없으시였다. 그이께서는 본능적으로 탁에 놓여있는 전상음의 편지를 집어들려다가 그만두시였다.

벌써 이 하루동안 몇번이나 읽으셨는지 모른다. 허나 보면 보실수록 전상음이라는 한 인간이 조국과 민족, 벗과 인간앞에 머리를 숙이고 청하는 속죄에 믿음이 가시였으며 반면에 진우의 처사가 못내 마음에 들지 않으시였다.

그 재미동포가 제스스로 만나기를 단념한것은 어찌보면 다행스러운 일이다. 림진우는 말하기를 후에는 고쳐마음먹었다지만 편지를 본 다음에도 여전히 불신하는걸 봐서는 설혹 만났다 해도 상봉이 잘될리가 만무한것이다.

한데 림진우는 편지에 담겨있는 친구의 진정을 정말 보지 못했을가. 아닐것이다. 아까 새벽에 상음이와 있었던 지난 일을 말할 때 즘저리며 서두를 뗀것은 틀림없이 가슴속 어딘가에 편지에서 받은 충격이 조금이라도 있어 그랬으리라. 하지만 진우는 믿음이 가지 않는다고 그냥 고집하고있지 않는가. 누구보다 인간의 내면세계를 속깊이 헤여볼줄 아는 예술가인 림진우가 왜 그것을 느끼지 못했을가.

답답해나신 김정일동지께서는 야전복상의의 쟈크를 한뽐가량 내리끄시였다. 갑자기 진우가 낯이 선 사람처럼 느껴지시였다. 그이께서는 깊은 우려에 싸여 진우의 처신을 재음미해보지 않을수 없으시였다. 무릇 인간은 제 손으로 만들어내는 창조물에 자기를 그대로 쏟아넣는다. 취미며 개성, 습관까지도. 하물며 인간정신을 반영하는 가장 고급한 예술작품의 경우에는 더욱 그렇지 않은가.

김정일동지께서는 은연중 무심히 스치면 안될 이 문제가 통일장창작에 근본적인 영향을 주었으리라고 직감하게 되시였다. …

집무실의 정적을 흔들며 문기척소리가 들려왔다. 문을 열고 들어선것은 《아리랑》국가준비위원회 참모장 원석현이였다.

김정일동지께서 그를 부르신것은 지난해에 진행하였던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백전백승 조선로동당》의 재현공연과 관련하여 제기되는 여러가지 실무적인 문제들을 구체적으로 알아보시기 위해서였다.

《동무네가 올린 문건을 보았습니다. 료해해보니 공연에 필요한것들이 더 있겠는데 나라형편을 고려해서 그러는지 몹시 소극적이더구만.》

《애로되는것이 없습니다, 장군님.》

《왜? 그 레이자조명기랑 사용년한이 지나 이젠 구실을 변변히 못하지 않소? 공기방석식무대도 새로 만들어야 할거고.》

《그건 준비위원회 과학자, 기술자동무들이 원상대로 정비해서 쓰도록 하겠다고 결의해나섰습니다. 그 나머지것들도 어떻게 하든 우리자체의 힘으로 풀자고 합니다.》

《그것 보오. 내 추측이 틀리지 않구만.》

김정일동지께서는 가볍게 웃으시였다.

《그러지 말고 〈아리랑〉에도 그것들이 필요할텐데 이번 기회에 갖춰놓읍시다. 새로 만들건 만들고 정 힘든것은 사오고. 20세기의 우리 조선혁명을 총화한 작품인데 그런것때문에 손색이 가면 되겠소. 그러니 마음놓고 자그마한것이라도 제기되는것이 있으면 주저하지 말고 이야기하시오.》

김정일동지께서는 원석현의 제기를 들으시며 도중도중 문건여백에 요점을 써넣기도 하셨고 어떤 문제에 대해서는 전화로 해당 전문기관을 찾아 즉석에서 풀어주기도 하시였다. 반시간이 가까이 흘러서야 그이께서는 원석현과의 실무적인 담화를 기본적으로 끝내실수 있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백전백승 조선로동당》의 중요성을 간곡하게 강조하시였다.

《전에도 내 동무에게 일렀지만 이번 공연수준이 지난해보다 떨어져서는 안됩니다. 공연이 그때처럼 응당한 수준이 보장되여야 수령님을 모시고 단결의 사상으로 백전백승을 떨쳐온 조선로동당의 영광스러운 력사를 예술적으로 감명깊게 보여줄수 있소.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아리랑〉은 사실 백두에서 시작된 조선혁명이 무엇을 가지고 민족의 새 력사를 열어놓았는가를 예술적으로 해명한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백전백승 조선로동당〉의 계승입니다. 그러니만치 〈백전백승 조선로동당〉을 전에 하던 수준으로 복원하여야 할것입니다.》

 

×

 

《원동무, 내 하나 묻고싶은것이 있는데.》 김정일동지께서는 화제를 바꾸시였다. 《석현동무는 요즘 림동무에게 재미동포와의 상봉문제가 제기된것을 알고있습니까?》

《알고있습니다.》

《음- 알고있다?! 그래 석현동무는 림동무에게 뭐라고 조언을 주었습니까?》

무척 기대를 가지시였던 그이께서는 실망감을 금치 못하시였다. 또다른 림진우형의 처신을 듣게 되시였던것이다. 몇분정도 묵묵히 서계시던 김정일동지께서는 원석현을 부르시였다.

《원동무, 우리 속을 툭 헤쳐놓고 어디 한번 말해보기요. 림진우동무는 상처가 커서 그랬다치고 적지 않은 책임일군인 동무는 어째서 권고하는데만 그쳤습니까. 나는 이 문제에 대한 석현동무의 솔직한 견해를 듣고싶습니다.》

《…》

원석현은 그이의 물으심이 엄하여 조금 갑자르다가 힘들게 대답올리였다.

《진우동무네의 상봉문제를 대수롭지 않게 여긴것은 6. 15북남공동선언발포이후 전격적으로 호전된 북남관계의 분위기를 볼 때 평범한 해외동포음악가, 그것도 어려운 때 조국을 등지고 달아난 그런 사람까지 끌어안지 않아도 력사는 순리에서 탈선되지 않을것이라고 보았기때문이였습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원석현의 솔직한 견해를 들으시면서 심각한 우려에 잠겨계시였다. 직급으로 보나 나이를 봐도 혁명의 2세라고 볼수 있는 석현이 민족문제를 이렇게 대할진대 원석현의 세대중 동류의 견해를 가지고있는 사람들이 과연 없다고 볼수 있겠는지. 있다면 분렬의 아픔을 직접 체험해보지 못한 후대들에게 어떤 영향이 미치겠는가, 그것이였다.

후대들, 우리의 다음세대, 김정일동지께서는 통일문제를 생각하실 때면 의례히 먼저 떠오르시는것은 민족의 바통을 이어나가야 할 새 세대들이였다.

물론 우리 당은 새 세대들속에 참된 통일의식을 심어주기 위하여 사상사업을 진지하게 해왔었다. 하지만 그것은 어떤 의미에서 볼 때 어디까지나 간접적인데 불과하며 어찌보면 이것은 체험으로, 생활로 체득한것만큼은 못한 경우가 있을수 있지 않는가. 그런데 우리 혁명의 2세들중의 한사람인 석현의 견해가 이 정도인것을 미루어보면 새 세대들의 통일의식에서 공백이나 무관심, 권태 같은것들이 생기지 않았다고 장담할수 있겠는가.

한 인간의 혈통은 생리적으로는 이어질수 있으며 한 가문의 생리적인 계승 역시 얼마든지 이어질수 있다.

그러나 민족의 혈통은 참된 민족의식, 통일의식속에서만이 계승되는것이다.

《민족통일의 주체에 대한 그른 인식, 그래서였을거요. 그로 인해 남의 일처럼 무관심했을거고.》

김정일동지께서는 침통하게 뇌이시였다. 그이께서는 석현에게 돌아서시였다.

《원동무, 동무생각엔 왜 통일이 이렇게 힘든것 같소? 그리고 왜 통일이 안되는가, 이에 대한 내외의 여론을 들어본적 있습니까.》

그의 대답을 들으신 김정일동지께서는 부정하시였다.

《미군의 남조선강점과 조선반도문제에 사활적인 리해관계를 가지고있는 대국들의 끊임없는 간섭, 남조선의 반통일세력들, 옳소. 그렇지만 그건 일면적이요. 여론은 이렇게 말하고있습니다. 백성들에게는 아무런 죄가 없다, 그들은 어디서 살든 만나면 피가 통하고 언어가 통하여 스스럼없이 하나가 된다, 문제는 땅과 재산, 무제한한 권력을 가지고 사회의 상층에 군림하고있는 사람들에게 있다, 이들은 통일이 되면 저들이 상상 못할 피해를 입게 된다는것을 잘 알고있다, 그렇기때문에 이들은 물리적인 힘만이 통일의 가장 큰 함수라고 주장하면서 외세를 등에 업고 새라새로운 무기들을 사들이며 분렬을 합리화하고있는것이다라고 말이요.

정말 의미심장한 요구가 담긴 여론이요.

석현동무, 그래 6. 15시대가 어떻게 마련된것입니까. 나나 동무 그리고 저기 남조선의 당국자들을 비롯해서 몇몇 정치가들이 바라고 모여앉아서야 비로소 이룩된것이요? 아니요. 6. 15의 창조자는 인민대중입니다. 앞으로 그것을 떠밀고나가야 할 담당자도 명실공히 민족을 이루는 그들이고.》

《…》

《글쎄 진우동무의 심정이 리해는 되오. 내가 체험해본데 의하면.》

김정일동지께서 문득 말씀을 멈추시였다. 집무실에는 정적이 무겁게 흘렀다. 그이께서는 한참 사이를 두셨다가 힘겹게 다시 계속하시였다.

김정일동지의 어조는 비록 높지 않았지만 몹시 침중하였으며 내용 또한 하도 심각한것이여서 원석현은 숨조차 쉬기를 저어하며 굳어져 서있기만 하였다.

《내가 왜 이런 말을 꺼내는가. 우리 혁명은 자기 위업의 담당자들에게 민족문제앞에서는 제도와 리념은 물론이고 개인감정까지도 초월해야 한다는것을 엄격히 요구하고있소.

나는 오늘 수령님의 한생을 돌이켜보며 그이앞에 나를 세워보았고 사람들을 세워보았습니다. 사실 민족성원이라 일컫는 사람들치고 민족분렬을 놓고 우리 수령님만큼 속눈물을 많이 흘리고 잠을 이루지 못한이 몇이나 되오. 그런데 동무들은 처신을 그렇게 하다니. 늦게나마 갱생의 길을 걸으려고 하는 그를 허물이 있는 사람이라고 젖혀놓고, 림진우동무에게는 권고나 하다마는데 그치고. 어쩌면 다들 얼음장처럼 그리 랭랭하오.》

《!》

《작소. 통일문제를 대하는 점도 그렇고, 인간을 대하는 점도 작품창작도 역시.

어째서 동무나 진우동무가 원인을 찾지 못했는가 하는걸 이제야 알겠습니다. 동무들은 작품을 살려보려고 애는 많이 썼지만 결국 공시간을 보냈소. 업은 아이를 찾는 격이 되였거던.》

김정일동지께서는 원석현의 가까이로 다가가시였다.

《림진우동무에게 전하오. 통일장을 완성할수 있는 방도는 오직 하나, 생활에서, 그 동포음악가와 림동무 당자의 생활에서 찾아야 한다고 말이요.》

원석현이 집무실에서 나간 다음에도 김정일동지께서는 진우가 걱정되여 인차 집무를 보지 못하시였다.

진우가 꽤 해내겠는지. 뿌리깊이 박혀있는 그 감정을 하루이틀사이에 털어버린다는것은 참으로 힘든 일일것이다. 이제 작품은 림진우가 새로운 눈으로 현실을 감각했을 때에야 비로소 나오겠는데 과연 그때는 언제이겠는지.

그이께서는 통일장창작을 진우에게만 방임할것이 아니라 자신께서도 탐구해봐야겠다고 결심하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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