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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녀자축구대표팀 책임감독 김광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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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0건 조회 2,470회 작성일 16-03-07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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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녀자축구신화와 더불어 빛을 뿌리는 체육영웅(3)

  -국가녀자축구대표팀 책임감독 김광민-

 

검은머리처녀들과 함께 누빈 격동의 시대

 

언젠가 어느 한 나라의 잡지는 이런 글을 실었다.

《…경기장을 누비는 조선처녀들의 머리를 보라, 모두 검은머리이다. 아시아의 여러 나라 팀선수들이 자기들의 토배기머리색갈을 버리고 여러가지 색으로 머리를 물들이고 나섰지만 조선처녀들은 그 순수한 검은머리칼을 흩날리며 자기식의 전법과 전술로 싸웠다. 드디여 그들은 시상대우에서 그 칠흑같은 머리칼너머로 금메달을 자랑스럽게 목에 걸었다.》

참말로 검은머리처녀들에게는 자존심이 있었고 결코 남들이 흉내낼수 없는 고유한 모습이 있었다.

백번 쓰러지면 백번 다시 일어나 내달리는 완강한 공격정신, 끝까지 굴하지 않는 강철의 의지-이것은 위대한 당의 품,위대한 시대의 토양이 그들에게 준것이였다.

김광민은 이렇듯 강하고 순수하고 아름다운 검은머리처녀들과 함께 아시아와 세계의 녀자축구무대에 주체체육의 이름을 빛내이며 눈부신 격동의 시대를 열어놓았다.

2007년 9월 중국에서 진행된 제5차 녀자월드컵경기대회에 참가한 우리 나라 팀은 미국, 스웨리예, 나이제리아팀들과 함께 《죽음의 조》에 속하였다.

당시 나이제리아팀을 제외한 3개 팀은 국가녀자축구대표팀들의 최신세계순위 1~5위에 있는 팀들로서 온 세계가 이 조의 경기를 지켜보았다.

우리의 검은머리처녀들은 2004년이래의 국제경기들에서 《전승》을 기록해왔다며 으시대던 미국팀을 경기에서 기절초풍시켰으며 《죽음의 조》에서 빠져나와 대안까지 헤염쳐가겠노라고 장담하던 북유럽의 《상어》―스웨리예팀을 조별련맹전에서 돌려세웠다.

완력을 자랑하던 나이제리아의 《매》들도 우리 팀의 중거리포사격에 넋을 잃고 0:2로 패하고말았다.

《죽음의 조》를 통과하여 8강에 진출한 우리 나라 팀의 눈부신 경기모습을 두고 세계는 《매우 빠른 속도로 세계축구의 령마루에 올라선 조선팀》이라고 격찬하였다.

조선녀자축구의 신화는 계속되였다.

김광민은 검은머리처녀들과 함께 2008년 아시아녀자축구선수권대회에서 우승을 거둠으로써 세번째로 되는 이 대회의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2013년에 있은 동아시아축구련맹 녀자동아시아컵경기대회에서 우리 팀은 불패의 성적으로 우승을 쟁취했으며 같은해 10월에는 동아시아경기대회 녀자축구경기에서 우승하였다.

2014년에 있은 제17차 아시아경기대회녀자축구경기에서 아시아의 강팀들을 모두 눌러앉힌 검은머리처녀들은 또다시 우승하였다.

2015년 동아시아축구련맹 녀자동아시아컵경기대회에서 김광민감독은 또다시 팀을 우승에로 이끌었다.

월드컵을 보유한 전적이 있는 일본팀을 4:2로, 다시 부활하여 아시아의 꽃이 되리라던 중국의 《장미》들을 3:2로, 우승의 꿈을 꾸던 남조선팀을 2:0으로 타승한 우리 팀의 장쾌한 전승기록은 아시아녀자축구계의 패권을 10여년동안 놓지 않고있는 신화적《처녀군단》이 격동의 시대에 아로새긴 또 하나의 자랑스러운 페지였다.

우리 나라의 녀자축구선수들이 세계곳곳의 경기장들에서 기쁨과 환희로 빛나는 우승컵을 들어올릴 때마다 김광민감독 역시 격정의 눈물을 흘렸다.

그는 검은머리칼을 아름답게 흩날리는 처녀들과 함께 명실공히 조선녀자축구의 눈부신 시대를 열어놓았으며 세계녀자축구력사의 새 페지를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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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신화를 낳았는가?

 

2015년 8월, 전세계의 사람들은 조선중앙TV방송이 내보내는 화면앞에서 커다란 충격을 느꼈다.

우리 당과 국가, 군대의 최고령도자이신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 2015년 동아시아축구련맹 녀자동아시아컵경기대회에서 우승하고 돌아온 우리 팀 선수들과 감독들을 비행장에서 직접 맞이하셨던것이다.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영예의 금메달들을 어머니조국에 안고온 우리의 장한 녀자축구선수들과 책임감독의 손을 일일이 잡아주시며 열렬히 축하해주시고 그들과 함께 뜻깊은 기념사진을 찍으시였다.

치렬한 경기의 나날 언제나 마음속에 그리며 뵙고싶었고 우승의 시상대에 올라 조국의 하늘을 그려볼 때에도 자애로운 그 영상이 후덥게 어려와 격정의 눈물속에 우러르던 경애하는 김정은동지를 조국땅에 도착하는 첫순간 제일 먼저 뵈옵게 된 김광민감독은 감격과 흥분을 누르지 못하며 원수님의 품에 와락 안겨들어 격정의 눈물을 흘리고 또 흘렸다.

세상에 이런 일은 없었다.

이것은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인민의 령도자와 그 품에 안긴 행복한 체육인들사이에 태여난 또 하나의 영광의 전설이였다.

그 뜨거운 사랑의 품이 이 나라의 체육인들에게 얼마나 크나큰 힘과 용기를 주었는가.

절세위인의 사랑과 믿음속에서 얼마나 많은 체육인들이 경기들에서 우승의 영예를 떨쳐왔고 온 나라가 아는 사람들로 되였는가.

김광민감독이 크나큰 흥분을 안고 보통강반에 새로 일떠선 멋쟁이체육인아빠트의 자기 집으로 들어서는 순간 그의 어머니는 아들을 한품에 안으며 긍지스럽게 말했다.

《광민아, 정말 용쿠나!》

광민은 어머니의 손을 꼭 감싸잡으며 눈물이 그렁한 눈으로 대답했다.

《아닙니다, 어머니! 제가 잘나서 이룩한 승리가 아닙니다. 우리의 모든 승리는 경애하는 최고사령관동지께서 안겨주신것입니다.》

철부지시절 달리기에서 1등을 하고 탄 시상품을 어머니앞에 꺼내놓으며 《이건 내가 탄거예요.》라고 자랑스레 뻐기군 하던 소년은 영광과 행복의 수십년세월속에서 귀중한 진리를 알았다.

자애로운 어버이의 크나큰 사랑의 품―이것이 축구감독 김광민의 모든 영예와 명성, 기쁨을 안아왔던것이다.

바로 이것이 온 세계가 경탄하는 조선녀자축구의 신화를 낳았고 그 품에 안겨 경기장을 달리고달린 모두를 신화의 주인공으로 되게 한것이였다.

 

 

마감이야기

 

평양외국어대학에서 영어를 전공하는 올해 21살난 딸은 아버지에 대해서 몹시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김광민은 2015년 8월 김정일상을 수여받았다.

그는 두차례에 걸쳐 위대한 수령님의 존함이 모셔진 시계표창을 수여받았으며 2003년 10월에는 위대한 장군님의 표창장을 받아안는 영광을 지니였다.

그는 2014년 10월에 로력영웅이 되였다.

이보다 앞서 광민은 1987년에 공훈체육인의 칭호를, 1991년에 인민체육인의 칭호를 수여받았다.

국가에서는 그에게 현대적인 고급살림집과 고급승용차를 안겨주었다.

군관의 별이 새겨진 군복앞섶에 빛나는 수많은 훈장과 메달들을 쓸어보며 딸은 아버지에게 물었다.

《아버지가 이제 또 받을수 있는 훈장은 뭐나요?》

광민은 지그시 눈을 감았다.

그랬다, 사랑하는 딸은 아직 많은것을 모르고있는것이다.

잠시후 광민은 딸의 손을 꼭 잡고 말했다.

《얘야, 이 아버지는 너무도 분에 넘치는 사랑과 믿음을 받아왔다. 이제 나에게는 보답하는 길만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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