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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2009년 제9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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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1건 조회 7,192회 작성일 23-03-19 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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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민혁은 안해가 살아있을 때에도 사무실에서 침식하는 날이 많았지만 그가 세상을 떠난 지금은 아예 사무실에 눌러있었다.

집은 늘 비여있다싶이 했다. 선경이가 있을 때는 그 나이또래동무들도 오가고 가끔 노래소리도 울려나오군 했지만 그마저 집을 떠나 살다나니 하루종일 가야 사람그림자 하나 얼씬하지 않았다.

집으로는 며칠에 한번 들어가군 했는데 덞어진 내의를 갈아입기 위해서였다. 성격이 덜렁대는것 같으면서도 일찌기 앓는 어머니를 대신하여 살림살이를 맡아안아서인지 여간만 손끝이 여물지 않은 선경이가 꼼꼼히 준비해놓은 내의들이였다.

하지만 자질구레한 빨래에는 손이 가야 했다. 안해가 긴병을 앓다보니 이제는 그 일도 어지간히 손에 익었다.

빨래는 세면장에 큰 몸집을 꽉 채우고 앉아 자기 손으로 하였다. 구내식당의 녀인들은 사무실에서 침식을 하면서도 늘 때식을 번지군하는 강민혁때문에 속을 썩이고있었다.

큰일을 하는 사람으로서 응당 그럴수 있는 일이지만 큰일을 하는 사람치고는 매우 다심한 편인 그는 식당녀인들을 만날 때마다 미안한 웃음을 지으며 바쁜 짬에도 몇마디 다정한 말을 해주기도 하였다.

어느날 밤이 깊어 부국장으로 새로 부임됐다는 사람이 그의 방으로 찾아왔다.

그를 대하는 순간 강민혁은 몹시 놀랐다.

《림태섭동무가?!》

《예.》

《됐소! 됐어.…》

강민혁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서 큰 눈에 광채를 담으며 약간 벗어질사 한 이마를 손바닥으로 슬슬 쓸었다.

흥분할 때마다 하는 그의 습관적인 동작이였다.

그는 림태섭이를 송림항에 파견한 사람이였다. 그때 림태섭을 직접 불러 무조건 중유를 퍼내라고 엄격히 지시했다. 그러한 강민혁은 그가 중앙검찰소에 기소되자 자기가 당한 일처럼 가슴이 철렁하여 윤진병을 찾아갔다.

일단 지시한 문제는 결과까지 함께 책임지는것이 일군의 자세라고 늘 말끝마다 강조하는 강민혁이였다. 자기가 지시한 문제를 놓고도 일이 잘못되면 집행한 아래일군에게 떠밀면서 구차하게 변명을 늘어놓는 일군들을 제일 질색하는 그였다.

우리 생활에는 아직도 생활의 모돌이를 묘하게 에돌며 무난하게 살아가는 일군들이 남아있다. 평생 과오없이 산다는것은 좋은 일이지만 무난히 산다는것은 투시해볼 문제이다.

망망대해에서 모재비로 서서 헤염치는 가재미야말로 얼마나 묘하게 택한 무난한 생활방식인가. 이런 일군들을 인민들은 좋아하지 않는다.

강민혁으로부터 사건전말에 대한 자초지종의 이야기를 듣고난 윤진병은 가타부타 말이 없었다. 하지만 컴컴하게 질려있는 그의 얼굴에서는 문제의 심각성이 무겁게 내배여있었다.

그랬던 기소가 취소됐을 때 사무국의 많은 사람들은 그것을 책임비서 윤진병과 련관시켜 생각했다. 이러한 사람들을 모아놓고 윤진병은 모를 박아 말했다. 그를 살린것은 어느 개별적인 일군이 아니라 바로 당이다.

그리고나서 윤진병은 이렇게 덧붙였다.

《죽기를 각오한 사람은 죽지 않는 법이요!》

윤진병의 이 말은 사람들의 가슴에 《모든것을 대고조의 승리를 위하여!》라는 의미로 새겨졌다. 그들은 윤진병의 말 아니, 림태섭에 대한 처리에서 누구나없이 이 전투적구호를 제시한 당의 의지를 알았고 격동되였다.

강민혁의 경우도 다르지 않았다. 그는 윤진병의 말을 그렇게 해석하였는데 다른점이 있다면 그 의미가 현실과 결부되면서 더 절박하게 그의 가슴에 새겨졌다는 사실이였다. 그는 차철군을 통해서 림태섭을 두고 하신 김정일동지의 말씀을 알고있었던것이다. 오늘의 경제전역은 림태섭이와 같은 일군, 그가 발휘한 결사각오의 정신을 요구하고있다고 하신 그말씀…

그는 림태섭이 가지고온 문건을 받아 펼쳤다.

문건은 첫머리에 김정일동지의 지시로 새로 첨가된 희천발전소와 평양시 살림집건설에 필요한 철강재의 량과 2. 8비날론, 남흥과 흥남의 가스화대상건설을 앞당기는것과 관련하여 불어난 철강재의 량을 포함하여 2009년도에 인민경제 각 부문에서 소요되는 철강재의 량을 써놓고 각 금속기업소들이 생산해야 할 할당몫을 세분화하였으며 기업소들의 현존생산실태와 제기되는 난항들을 렬거하고 그것을 극복할수 있는 방도와 가능성에 대하여 세세히 밝히였다.

그것이 어찌나 세분화되였는지 문건에는 금속련합기업소들에 속한 분공장들과 련관기업소들, 례컨대 큰 광산들은 물론 중소광산들의 형편과 거기서 제기되는 문제들, 모체기업소인 경우에는 각 직장, 용광로들과 제강로들의 생산과제와 그 수행에서 걸리고있는 문제들과 극복방도에 대하여 기술적문제들에 한하여서는 공정기사의 시점에서, 행정관리문제에 한하여서는 직장장 지어는 교대장이나 작업반장의 안목에서 서술하고있었다.

문건에는 성강의 주체철생산체계추진정형이 많은 지면을 차지하고있었는데 그것은 주체철을 성공시켜야 한다는 작성자의 의도를 엿볼수 있게 했고 기어이 그것을 성공시켜야 한다는 절박성과 가능성을 피력하고있었다.

문건에는 별지를 달고 성강에 가있는 리성민이 윤택호를 찾아갔던 이야기를 반영하고있었다.

연거퍼 앞머리를 쓸며 문건을 번져가던 강민혁은 이 대목에 와서 시선을 들어 숨을 죽이고 지켜앉아있는 림태섭을 바라보았다.

《윤택호란 누구요?》

《청강에 있을 때 알철생산을 처음으로 시작한 사람입니다.》

《좀더 자세히…》

강민혁이 다급히 재촉하였다.

《원래는 성강에 있었는데 지금은 다른 단위에 가서 새 삼화철생산방법을 성공시켰답니다.》

《몇톤로요, 그가 한게?》

강민혁의 어조는 여전히 다급하였다.

《한톤로입니다.》

《한톤? 한톤짜리라… 성강에서야 이미 수십톤로에서까지 성공시키지 않았소?》

강민혁이 머리를 기웃대며 시답지 않게 나오자 림태섭이 성급히 발을 달았다.

《문제는 내화물입니다. 성강동무들도 내화물재질때문에 애를 먹고있습니다. 그래서 성민부상이 윤택호를 찾아간것 같습니다.》

《그렇단 말이지.》

강민혁은 잠시 침묵에 잠겼다. 리성민의 이름이 나오자 말도 못 떼본 콕스탄수입문제가 다시 상기되였던것이다.

그는 콕스탄을 해결할 방도를 아직 찾지 못하고있었는데 그 문제는 납덩이처럼 그의 가슴에 들어앉아서 무시로 괴롭히고있었다.

출로는 성강의 주체철생산체계도입에 기대를 걸어볼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성강에 내려간 리성민은 이렇다할 견해를 내놓지 못하고있었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다그어댈수도 없는 일이였다. 김철을 비롯한 다른 단위들도 비콕스제철법완성을 위해 동분서주한다는 소식만으로 만족할수밖에 없었다.

한참후 강민혁은 림태섭에게 다시 물었다.

《침수된 재령광산과 은률광산, 안주탄광들의 물을 상반년안으로 풀수 있는 대책을 세웠소?》

《그밑에 썼습니다.》

림태섭이 그가 들고있는 문건을 가리켰다.

그러자 강민혁은 다시 문건을 들여다보다가 인차 시선을 들고 림태섭을 의문스레 바라보며 《전력?…》하고 반문하였다.

《예, 그렇습니다. 전력입니다.》

림태섭이 마지막말에 력점을 찍었다. 강민혁은 별표식을 하고 부록으로 서술한 문건의 다음구절에 눈을 박았다.

《전력문제:

××만Kw

금속공업이 이 량을 받자면 나라의 전력총생산량 ×××만Kw (최고생산년도의 생산량)가 있어야 가능함.

방도: …》

다음 별표식을 한 부록에는 석탄과 철도에 대해서 쓰고있었다.

석탄부문은 전력의 련관부문이면서도 금속에 필수적인 원료들을 대주고있었다. 철도운수는 그 모든 부문의 선행관이고…

문건을 다 읽고난 강민혁은 머리를 숙이고 한참 생각에 잠겼다가 문득 물었다.

《동문 이 문건이 한갖 종이장으로만 남지 않으리라는걸 확신하오?》

《솔직히… 우려가 없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강선이 우리에게 호소하고있지 않습니까. 로동계급이 궐기했는데 우리가 주춤댈수야 없지 않습니까?》

《옳소, 키를 잡아야지.》

그의 말을 긍정하는 강민혁의 두눈에 점차 광채가 일기 시작했다. 이 문건이야말로 그의 작전도이다. 점령목표와 타격방향, 전투에 인입되는 유생력량과 전쟁장비, 예비대의 준비, 린접전선과의 협동, 전투행정이 시간이 아니라 분과 초로 치밀히 계산된 전쟁작전도이다. 전투는 일상생활이 아니라 비상생활이다.

전투는 일단 시작하면 무조건 이겨야 한다. 사생결단의 판가름인것이다. 그 승리의 기초가 바로 작전도에 있다.

내각의 보좌부서라고 볼수 있는 사무국에서 언제 이런 문건이 제출된적이 있었던가.

림태섭이 들고온 문건과 대비해보면 지금까지 사무국이 제출한 문건들이 많이는 정책적방향과 정책적요구를 담은 당의 문건들을 그시그시 따라가며 수자나 맞추는데 불과했다는것을 알수 있었다. 말하자면 내각의 뚜렷한 몫이 없었다. 사무국을 통해서 받은 국가계획초안도 그런 식으로 제출되였다.

당에서 2009년도인민경제계획초안을 거듭 부결한 사실을 무심히 지나보낼수 없었다. 지금까지 내각사업에서 나타난 본질적결함이 되받아넘기는 식의 계획작성으로부터 시작되였다는것이 명백하였다.

지금 강민혁은 눈이 번쩍 띄우는 새로운 작전도를 손에 쥐였다. 그는 흥분하였다.

《림동무는 언제 부국장으로 임명받았소?》

《사흘전에 발령을 받았습니다. 강선의 호소가 나온 다음날이였습니다.》

림태섭은 강선의 호소라는 말마디에 힘을 주어 말했다.

《그러니 사흘동안에 이 문건을 만들었겠소?》

《제가 만든건 아닙니다. 국가계획위원회와 련관성들을 찾아서 빨아낸겁니다.》

《그야 물론 그랬을테지.… 그러나 그게 어디 간단한 일이요?》

《…》

대답이 없는 림태섭의 얼굴에 그 어떤 벅찬 흥분이 내비치고있었다.

《강선의 호소에 호응하기 시작했구만.》

이 말을 혼자소리처럼 하며 강민혁은 자리에서 일어서서 서성거리였다. 넓은 이마를 연거퍼 쓸며… 그는 앞이가 빠져 별스레 후줄근해보이는 이 겉늙은 일군을 련인이기라도 한것처럼 꽉 끌어안아주고싶은 심정을 누를길 없었다.

이러한 그를 보며 림태섭은 오히려 어줍은 목소리로 말했다.

《부총리동지, 타자하지 못한 문건을 들고와서 미안합니다. 급한 나머지 제 생각만 하면서…》

그 말에 대한 강민혁의 대답은 이러했다.

《글씨는 개차반이구만. 헛허…》

새벽 2시가 되였다.

림태섭은 돌아갔으나 강민혁은 잠들수 없었다. 그날 강선의 호소를 들으면서 자기는 무엇을 생각했던가. 호소문을 읽던 청년용해공의 불같은 목소리, 열광적으로 호응하던 수천군중의 결의, 우뢰와 같은 함성, 텔레비죤이 아니라 주석단에 서서 강민혁이 생각한것은 과연 무엇이였던가.

그것은 자기반성이며 후회였다. 리대원로인의 편지에 뭐라고 대답해야 하는가고 하시던 장군님의 무거우신 그 말씀에 어찌하여 무거운 침묵만 지키였던가?

2009년 1월 5일 김정일동지께서는 새해의 첫 현지지도로 눈덮인 원산청년발전소를 찾으시였고 이어 발전설비를 생산하고있는 대안중기계련합기업소를 찾으시였다.

이것은 새해의 주타격방향을 시사한것이며 이 전선을 자신께서 직접 맡으실 결심을 표명하신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두고 강민혁은 생각이 깊어지지 않을수 없었다. 특출한 실력으로 정치강국, 군사강국을 건설하신 김정일동지께서는 경제강국건설의 첫걸음부터 또다시 비상한 예지를 보여주고계시였으니 그것은 항상 경제사업만 해온 오랜 경제지도일군으로서도 도저히 따를수 없는 새로운 경지였다.

정신력이 강성국가의 대문을 열기 위한 혁명적대고조의 추동력이라는 그이의 선포는 얼마나 독창적이며 정당한것인가!

강민혁은 이밤 종전같으면 한달을 두고도 못 만들어낼 문건을 불과 사흘간에 만들어낸 림태섭을 보면서 실로 큰 충격을 받지 않을수 없었다.

그 충격은 딸 선경으로부터 받은 편지로 하여 더 증폭되였다.

인편으로 전달되다나니 늦어진 편지에서 딸은 이렇게 썼다.

《…아버지, 이번 양력설은 어떤 일이 있어도 집에 가서 아버지에게 어머니를 대신해서 술 한잔이라도 부어올리려 했는데 그렇게 못합니다.

지금 여기서는 삼화철을 생산에 전면적으로 도입하기 위한 우리 식 생산체계를 세우기 위해 부글부글 끓고있답니다.

책임비서동지와 기사장동지를 비롯한 제강소일군들은 섣달 그믐날밤까지 우리와 함께 시험산소용융로의 쇠물을 끓였습니다. 그러면서 책임비서동지가 뭐라고 말했는지 아세요? 설날아침에는 우리가 끓인 쇠물로 강철컵을 부어 축배를 들자고 했어요. 성강사람들만이 할수 있는 말이지요. 쇠물을 끓이는 사람들은 말투부터 다른것 같아요.

이번 설은 정말 굉장했습니다. 설날아침 5월17일공장에 온 제강소사람들이 다 모인것 같았어요.

며칠전부터 설에는 꼭 집에 와야 한다고 신신당부하던 리대원할아버지(그는 옛 로장이였다고 합니다.)도 이른아침 집에서 준비한 설음식을 다 가지고 나왔답니다.

현장휴계실이 비좁아 회전로옆에 있는 눈덮인 넓은 공지에 설음식을 펴놓았어요. 무엇인들 없었겠나요. 물고기만 해도 동해의 물고기는 다 이곳에 모여온것 같았어요.

날씨도 후덥게만 느껴졌어요. 그런데 이것을 보고 책임비서동지가 말했어요. 사철 쇠물을 끓이는 우리가 식은밥을 먹을 멋이야 있나! 하고말이예요. 그리고는 음식그릇들을 다 금방 구워낸 시편강괴더미에 올려놓게 하였어요. 아지랑이가 피여나는 강괴우에서 음식들이 재벌 익고 데워지며 구수한 냄새를 풍겼답니다.

책임비서동지가 다가오더니 내 밥곽을 열어보았어요. 나는 얼마나 당황했는지 몰랐답니다. 그 밥곽에는 전날에 합숙에서 싸준 통강냉이밥이 골숨하게 담겨져있었으니까요. 책임비서동지의 얼굴이 대번에 엄해졌어요. 후방사업과 관련해서는 엄격한분이랍니다.

<합숙에서 싸준거요?>

<아, 아닙니다.>

내가 당황하여 어쩔줄 몰라하는데 외래자합숙의 주방장어머니가 설음식을 이고지고 허겁지겁 달려왔어요. 그제야 책임비서동지의 얼굴색이 풀리더군요. 정말 잊지 못할 설날이였어요. 비록 쇠가루 묻은 작업복을 입고 언땅에 앉아 드는 음식이였지만 어데 가서 이런 맛을 볼수 있겠나요. 모든것이 류다른 풍경이였어요. 그래서 나는 생각했어요.

사람들은 흔히 설날에 한해의 번성을 가늠해본다고 한다, 그러니 필경 류다르게 시작된 설은 류다른 한해로 이어질것이다 하고 말이예요. 호호호… 제가 꼭 무슨 예언자 같지요?…》

딸애는 웃었지만 편지를 본 강민혁은 웃을수 없었다.

어머니 없는 설음을 안고있으면서도 아버지의 마음을 위안해주자고 그답지 않게 다사를 떠는 딸의 심정도 심정이지만 그속에 담긴 생활의 진실이 뜨겁게 가슴에 미쳐와서였다. 시작부터 류다른 새해였다. 새로운 경제전역을 선포하시고 진두에 서신 장군님을 따라 온 나라가 산악같이 일떠섰다. 여기에 강선에서 울려퍼진 진군가가 온 나라에 메아리치고있다.

이튿날 강선로동계급의 호소에 호응하는 내각사무국 종업원들의 궐기모임연단에서 강민혁은 자기의 격동된 심정을 이렇게 말하였다.

투쟁을 결사적으로 한것만큼 쟁취하는것이 승리이고 피땀을 바친것만큼 얻는것이 행복의 열매이다. 쌓는것만큼 오르는것이 실적이고 당기는것만큼 앞당겨지는것이 미래이다.…

×

강선경은 벌써 몇번째나 전화기를 들었다.

외래자합숙에 밤이 깊어 공동전화를 리용하는 사람들이 없어지자 전화를 독차지하고 앉아 연거퍼 번호를 눌렀다.

텔레비죤에서 아버지를 본 강선경은 목소리라도 듣고싶어 집에 전화를 걸고있었다.

어머니의 장례를 치르고 내려온 후 여러번 전화를 걸었으나 한번도 만나지 못했다. 아버지가 그리웠다. 오늘까지 만나지 못하면 더 견뎌낼것 같지 못했다.

뜻밖에 텔레비죤에서 아버지를 보았으나 그것이 오히려 그리움의 동을 터친듯 더욱 못 견디게 그리웠다. 어머니가 살아계실 때는 이렇게까지 그리움에 속을 태우지 않았다. 어머니없이 홀로 고독해하실 아버지를 생각하니 금시 눈물이 쏟아질것만 같았다. 몇번이고 사무실에 전화를 걸어보려다가 참았다. 어머니는 자신은 물론 선경이도 아버지의 사무실에 전화질을 못하게 엄금하였다.

이것은 생전에 어머니가 세워놓은 법도였다. 선경은 이 법도를 어길 용기가 나지 않았다. 어머니생각이 간절했다.

선경은 아버지사랑을 얼마 받아보지 못했다. 아버지는 늘 밖에 나가살다싶이 했다.

어쩌다 들어온 날도 밤늦어 왔다가 새벽에는 출근했다. 명절날 아이들이 아버지, 어머니의 손을 잡고 거리구경을 나갈 때도 선경은 병약한 어머니의 머리맡에서 고적을 달래기가 일쑤였다.

어린시절 아이들은 선경이에게 아버지가 승용차를 타는 높은 간부여서 좋겠다고 했다. 선경은 머리를 기웃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리해할수 없는 말이였다. 어머니에게 물어보았다.

《좋기도 하고 나쁘기도 하단다.》

어머니는 아리숭한 대답을 했다.

《그건 무슨 소리나?》

《큰일을 하는 사람들일수록 자식들을 위해 바칠 시간이 적어진다.》

선경은 머리를 까닥이였다. 아버지야말로 한집에 살면서도 늘 나가있어 가까우면서도 보기 힘든 아버지로 되였다.

《그럼 좋다는건?》

선경은 더 바투 다가앉았다.

《그건 네가 크면 알게 된다. 아버지가 왜 그렇게 사시는지.》

그때는 어머니의 말을 리해할수 없었다. 하지만 오늘은 리해한다. 이러한 아버지를 모시고있는것이 더없이 긍지스러웠다.

아, 어머니!… 아버지!

권혁이는 휴가를 온다고 했는데 웬일인지 그의 집도 전화를 받지 않는다.

이젠 밤 12시이다. 선경은 끝내 눈물을 쏟고말았다. 빈방이여서 마음놓고 소리내여 울수 있었다.

그때 전화신호가 울렸다.

선경은 딱 한번 아버지가 걸어준 전화를 받은적이 있었다. 아버지는 권혁이가 써놓고간 노래가사를 급히 알려줄 필요를 느꼈던 모양이다.

사사로이 문안전화나 걸 아버지가 아님을 선경은 잘 알고있었다. 그런데 전화신호가 울리는 순간에 그 어떤 필요로 아버지가 또 전화를 걸어올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화에서는 뜻밖의 목소리가 울렸다.

《나 권혁이요.…》

권혁은 선경의 중학교동창이며 인민군대전우였다.

강민혁은 두 아들을 군대에 내보낸 후 막내인 선경이마저 입대시켰다. 당시 기계공업부문에서 일하던 그는 당의 선군정치를 앞장서 받들려는데로부터 자식모두를 입대시켰던것이다.

그때 선경이와 권혁은 같은 부대에 입대하였다. 그 부대는 평양가까이에 주둔하고있는 근위부대였는데 어버이수령님의 유훈에 의하여 건설되고있는 녕원발전소건설에 동원되고있어 그들은 입대 첫날부터 녕원에 가서 살았다. 중학교에서 콤퓨터소조에 들어있던 선경은 부대작전실에서 콤퓨터를 다루었으며 뚝심이 셌던 권혁은 착암기를 잡았다.

선경은 수재교육조치로 먼저 제대되여 김책공업종합대학 금속공학부를 졸업하고 대학의 연구사로 되였다. 그의 특별한 두뇌가 녀성제대군인으로 하여금 흔치 않은 경력을 소유한 과학자로 되게 하였다. 그사이에 군관학교를 졸업한 권혁은 다시 자기 부대에 배치되여 소대장사업을 하고있다.

그들사이에 련정이 싹트고 깊어진것은 군사복무라는 인생의 계기가 있었기때문에 가능했다. 어려서부터 장난이 벌차 쩍하면 처녀애들을 올려놓군 하던 권혁을 선경은 좋아하지 않았다.

하지만 군사복무기간에 발휘되는 그의 위훈을 지켜보며 생각을 달리했다. 군사복무야말로 인간의 진가가 유감없이 발휘되는 사상단련의 용광로였다.

이 용광로를 거친 사람들은 차거나 미적지근한 사람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들은 28살 동갑나이였다. 이렇게 나이가 든것은 권혁이가 발전소건설이나 끝난 다음에 보자고 미루어왔기때문이다.

높은 과학적경지를 바라고있던 선경이로서도 좋은 일이였다.

그들은 전화로 말을 주고받았다.

《선경동무, 나는 오늘 부대로 돌아가오.》

《휴가가 끝났어요?》

《아니. 할아버지는 고향에 나들이 가서 없고 어머니는 희천에 이동치료대로 나보다 한걸음 앞서 떠났소. 나 혼자 빈집에 남아서 뭘하겠소.》

《그렇게 됐군요.》

《섭섭해마오. 경애하는 최고사령관동지께서 완공된 녕원발전소에 오실수 있소. 그러니 빨리 돌아가는게 좋소. 나들이간 할아버지도 매일 전화로 독촉이요.》

선경은 할아버지말이라면 옴짝을 못하는 권혁이 생각나 부지중 웃음이 피

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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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산님의 댓글

강산 작성일

(위에서 계속)

웃음이 피여났다.

《그참 기쁜 일이군요!》

《한가지 기쁜 일이 또 있소. 돌아가서 우리 둘사이의 관계를 동무아버지에게 다 털어놓을 결심이요. 발전소건설이 완공되였으니 이젠 떳떳할수 있단 말이요.》

《피, 내가 승인하지 않는데두…》

《난 동무자체를 승인으로 받아들이고있소.》

《엉터리…》

선경은 좀더 이야기를 나누고싶었으나 급한 일이 생겼는지 합숙생 한사람이 전화를 걸려고 들어오는 바람에 그에게 전화를 넘겨주고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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