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련희 수기, 따뜻한 내나라] 17. 글을 마치며 > 통일게시판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통일게시판

[김련희 수기, 따뜻한 내나라] 17. 글을 마치며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강산
댓글 0건 조회 7,716회 작성일 16-12-13 19:09

본문



[김련희 수기, 따뜻한 내나라] 17. 글을 마치며

가 -가 +

김련희 북녘동포
기사입력 2016-12-13


 

▲ 김련희 북녘동포     ©자주시보, 이창기 기자

 

 

무엇이 나의 평양길을 재촉하고 있는가!

 

그것은 나서자란 정든 고향과 사랑하는 혈육들이 있는 삶의 터전, 인간의 존엄을 빛내여 주고 정을 기울여 따뜻이 안아 보살펴주는 인간사랑의 화원에 다시 안기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다.

 

공화국에서의 42년과 남쪽사회에서의 5년, 이 기간 나는 하늘땅처럼 판이한 두 현실에 대한 체험을 통하여 공화국이야 말로 사람사는 세상임을 통절히 절감하였다.

 

사람사는 세상, 그것은 물질만능이 아닌 인간사랑의 따뜻한 정이 한껏 넘쳐나고 생활의 웃음과 랑만, 꿈이 활짝 꽃펴나는 공화국과 같은 세상이다.

 

서로 돕고 이끌고 남의 아픔을 자기의 아픔으로 여기는 사회, 자식없는 늙은이들을 친부모처럼 돌보아주는 기특한 청년들, 부모 잃은 아이들의 친혈육이 되어주고 영예군인을 위해 아낌없이 자기를 바치는 아름다운 소행이 저 하늘의 은하수처럼 많고 많은 공화국이다.

 

몇 푼의 돈을 위해 자식이 부모를 살해하고, 부모가 자식을 죽여 암매장하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미친 일들이 끊이지 않고 있는 양육강식의 생존법칙이 난무하는 자본주의사회에서 어찌 공화국의 이러한 인간중심의 세상을 이해할 수 있으랴,

 

피를 나눈 친부모와 혈육들에게서까지 버림을 받고 사람들의 관심밖에 밀려나 지하철역과 같은 한지에서 나뒹구는 노숙자들과, 고학으로 피가 나게 공부해도 졸업 후 실업자로 전략되어 버리는 불행한 사람들을 보면서 공화국에 두고 온 사랑하는 딸이 후대들을 제일로 아끼고 사랑하는 은혜로운 품속에서 대학생으로 자라나 세상에 부럼 없이 마음껏 배우고 있는 모습을 그려보군 할 때마다 낳아키운 어머니 정보다 더 큰 사랑으로 어엿하게 키워 내세워준 공화국에 고마움의 큰절을 드리고 싶을 뿐이다. 

 

곁에 있어야 할 어머니가 없고 함께 보내야 할 딸이 없는 우리 가정의 생이별의 아픔과 절규는 모르쇠하면서도 “인권”과 “이산가족의 아픔”을 운운하는 남조선당국자들의 양면적 태도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 북 언론이 보도한 김련희 씨의 가족 사진     ©자주시보

 

과연 이들에게는 그토록 가슴을 치며 통곡하는 우리들의 눈물이 보이지 않고 간절한 호소가 들리지 않는가,

 

여기에 하루하루를 손꼽아 가며 애타게 엄마를 부르며 눈물 속에 안타까운 나날을 보내고 있는 나의 딸의 간절한 글을 싣는다.

 

▲ 어머니와 이제는 12명의 언니들까지 납치해갔다며 분노로 몸서리를 치는 김련희 씨의 딸 리연금 학생     ©자주시보

 

[돌아오지 못하는 어머니를 그리며]

                                                                            

  

온 나라 가정들마다 끝없는 행복이 넘치고 혈육의 뜨거운 정 오가는 이 땅에 어머니날이 왔다.

 

어디서나 자기를 낳아주고 키워준 어머니들에게 사랑의 꽃송이, 존경의 꽃다발을 안겨주며 건강과 장수를 기원하는 자식들의 정 넘친 모습들이 펼쳐지고 있다.

 

나도 그리운 정을 담고 담아 꽃다발을 정히 엮어놓았건만 어이하리 응당 곁에 계셔야 할 어머니가 지금 낯 설은 타향에 있다.

 

이 땅의 자식들이라면 누구에게나 기쁜 날이건만 남조선당국의 극악한 반인륜적 만행으로 하여 남조선에 끌려가 돌아오지 못하는 어머니에 대한 생각으로 나의 가슴은 막 찢어지는 것만 같다. 무남독녀 외딸이라고 나를 그리도 사랑해 주던 어머니 또한 지금 이 자식을 얼마나 그리워하실까, 

 

“저의 이름은 김련희이고 나이는 47살입니다. 저는 여기서 살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습니다. 나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공민입니다.
공화국은 천만금을 준다 해도 한시도 떠나서 살수 없는 나의 조국이고 나를 낳아준 부모와 사랑하는 가족이 사는 귀중한 땅입니다. 제가 지금은 남조선에 억류되어 있지만 죽어서라도 조국의 품, 사랑하는 가족의 품에 기어이 안 길 것입니다...”

 

그렇게도 애타는 그리움 속에 기다리던 어머니는 이렇게 4년만에 안타까운 호소로 나타났다.

 

처음에는 과연 나의 어머니가 맞는가? 의심했고 다음에는 걷잡을 수 없는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나왔다.

 

지난 4년 세월 금시라도 문을 열고 들어설 것만 같아 잠 못 든 밤 그 얼마이며 밥이 식을세라 꼭 그러안고 시계를 쫓던 때는 그 얼마이던가. 꿈속에서도 어머니를 찾다가 깨어나군 하는 이 딸의 가긍한 정상을 보며 아버지가 눈굽을 적시던 일은 또 그 몇 번이던가, 

 

(어머니, 어머니는 왜 돌아오지 못하나요? 땅길, 하늘길, 바다길이 멀어서 못 오나요?) 

 

생각할수록 극도의 개인리기주의와 황금만능이 지배하는 사회, 고상한 인간의 정이 사멸되어가는 암흑의 세상에 던져진 어머니의 불행한 운명으로 하여 잠을 이를 수 없고, 가슴속에는 우리 가정에 혈육 간의 생리별이라는 고통을 들씌운 남조선당국에 대한 분노만 끓어 번진다.

 

4년 전 이 딸이 받은 상급학교 추천을 두고 그렇게도 기뻐하던 어머니, 이제는 20대의 처녀로 다자라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첫 발을 내디디게 된 이 딸의 모습을 볼 수 없다고 언제 한번 생각해 보았겠는가.

 

병든 자식, 상처 입은 자식을 탓하지 않고 더 마음을 쓰며 사랑과 정으로 품어주고 아픈 상처를 감싸주는 고마운 품이 있어 우리 가정이 훌륭한 새 집에서 행복 속에 사는 것을 과연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어머니는 내 곁에 없어도 우리 당은 친어머니보다 더 따뜻한 사랑으로 나를 품어주고 아껴주고 사랑해 주었다. 위대한 어머니 품이 나를 어엿하게 키워주었다.

 

그럴수록 이 기쁨, 이 행복을 어머니와 함께 누리고 싶은 마음은 더욱 간절해진다.

 

한 밤 자면 올까 두 밤 자면 올까, 이제나 저제나 기다리는 이 딸자식처럼 어머니도 이 딸을 얼마나 보고 싶어할까!

 

어머니는 꿈결에도 오고 싶어하고 죽어서라도 그리운 조국의 품에 기어이 안기고 싶어한다. 이 시각도 어머니는 어느 침침한 셋방에 외로이 앉아 눈물을 흘리며 가족을 그리고 부모형제를 생각하고 계시리라... 

 

“나를 내 고향, 내 조국으로 보내달라”

 

이것이 어머니가 피터지게 외치는 목소리다.

 

눈물로 호소하는 이 간절한 소원을 들어줄 양심과 정의가 없는 인권불모지에서 어머니는 하루하루를 백날 천날 맞잡이로 보내고 있다. 

 

그 어느 인간이나 혈육과 정을 나누며 사는 것을 인생의 가장 큰 낙으로 여긴다. 그래서 사람들이 언제 어디서나 제일 그리워하는 것도 물질적 부가 아니라 인간의 뜨거운 정이고 사랑하는 가족이다. 

 

인륜을 놓고 보아도 그토록 조국으로 돌아가기를 간절히 바라는 어머니를 하루빨리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내는 것은 천만번 응당한 것이 아닌가. 

 

남조선당국은 걸핏하면 “이산가족의 슬픔”을 운운해대고 있다. 만일 그것이 진심이라면 다름 아닌 우리 어머니문제부터 해결하는 것이 옳은 처사이다.

 

그러나 남조선당국은 고상한 인간의 권리를 무참히 짓밟으며 불법무법의 반인륜적 만행으로 어머니를 끌어다가 온갖 정신 육체적 고통과 불행을 들씌우고 있다. 북녘의 한 가족을 생이별시키고 인간의 천륜을 짓밟고도 모자라 돌아가겠다고 몸부림치는 어머니를 계속 남녘에 가두어놓은 자들이 과연 “인권”과 “인도주의”, “이산가족의 슬픔”을 떠들어댈 자격이 있는가,

 

어머니의 눈물은 똑똑히 말해주고 있다.

 

대대로 하나의 강토에서 하나의 민족으로 살아온 우리 겨레가 장장 70년 세월 헤어져 눈물과 고통 속에 사는 것은 다름 아닌 미국과 그에 추종하는 반통일세력들 때문이라는 것을,

 

오늘도 북과 남으로 갈라져 혈육 간에 가슴터지는 생이별을 강요당하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 아니 민족분열의 아픔과 불행을 당하고 있는 온 겨레의 원한과 분노는 극악한 인권교살자들이며 반통일분자들인 남조선 보수당국에게 무서운 철추를 안기고야 말 것이다. 

 

온 나라의 어머니들이 자식들의 축복 속에 행복의 미소를 짓는 오늘 나는 저 남녘에서 고통 속에 몸부림칠 어머니에게 말하고 싶다.

 

“어머니, 하루빨리 조국으로 돌아오세요. 온 가족이 손꼽아 기다리고 있어요. 조국의 대문은 언제나 열려있어요”

 


보십니까? 그리고 들으십니까?

 

과연 당신들에게는 엄마를 찾으며 그토록 가슴을 치며 통곡하는 저 어린 딸의 눈물이 보이지 않고 뼈를 깎는 절절한 호소가 들리지 않는가,

 

우리 가정도 생이별의 고통 속에 몸부림치다가 지난 세기의 흩어진 가족, 친척들과 같은 백발노인이 되어야만 속 시원한가!

 

남조선당국자들은 그 무슨 “인권”이나 “이산가족의 아픔”에 대해 입에 올릴 자격도 없다.

 

저들의 체제선전을 위해 부모자식간의 인륜을 끊어놓고 있는 남조선 당국자들은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

 

옛 사람들이 이르기를 남의 눈에 눈물 내면 제 눈에는 피가 난다고 하였다.

 

아직도 이 땅에는 외세에 의한 민족분열의 수난자들, 생이별의 한을 안은 채 반세기이상 가슴에 재를 안고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런데 남조선 당국자들은 그것으로서도 모자라 불순한 목적 밑에 북조선 주민들을 대상으로 인신매매행위를 배후조종하고 부추기며 인권유린행위를 공공연히 감행하면서 화목하게 살던 가족들을 강제로 떼여놓고 생이별의 고통을 들씌우고 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누가 감히 남의 일이라며 못 본 체 할 수 있으랴, 분단시대이기에 감내해야 한다고 과연 누가 말할 수 있단 말인가? 전쟁 시기도 아닌 21세기 문명 시대, 인위적으로 가족을 생이별시켜 가슴 찢어지는 고통에 몸부림치게 하는 이 반인권·반인륜 행패를 어찌 용납할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남조선당국자들은 그 무슨 “자유의사”이니 “현행법으로서는 보낼 수 없다”느니 말도 안 되는 구실을 붙여가며 끝끝내 고향으로의 나의 귀향길을 가로막고 있다.

 

내가 자신의 의사에 반하여 한국에 입국한 정황은 한결같은 언론사 인터뷰 말고도 국가기관인 법원의 판결문, 중국에서 함께 입국한 탈북자 등 여러 증언으로 입증된다.

 

먼저, 대구고등법원 제1형사부(재판장 이범균)는 이른바 국가보안법 위반혐의 항소심 선고에서 “피고인은 입국 과정에서 대한민국에 입국하여 짧은 기간에 많은 돈을 벌어 중국으로 돌아가 재 입북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입국하자마자 국가정보원을 찾아 재 입북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청했지만, 당국으로부터 재 입북을 위한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 있지 않아 피고인의 요청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답변을 듣게 되었다....”고 함으로써 국정원에 오자마자, 본의 아니게 속아서 왔음과 북으로의 송환을 요구한 사실이 확인되었고, 국정원도 본국 송환 요구에 ‘재 입북 제도 장치가 없어 보낼 수 없다’고 함으로써 본의 아니게 한국에 왔음을 증명해 주고 있다.

 

또한 나와 함께 입국한 탈북자 ‘ㅈ’씨의 증언이다. 중국 국경을 넘어 한국으로 오며 나를 지켜본 탈북자 ‘ㅈ’씨는 “련희는 (중국에서) 브로커에게 도로 북한으로 가겠다고 말했지만 거절당했다. 브로커가 련희의 ‘여권’을 돌려주지 않았다. 브로커들은 문을 잠그고 지켰다. (련희가) 도망칠 형편이 못되어 어쩔 수 없이 한국으로 온 것이다. 련희는 다른 탈북자와 다르다”고 말했다(한겨레신문, 7월 4일)

 

또한 국정원 정보원으로 활동하는 ‘ㅇ’씨의 증언도 있다. 그는 “김련희가 여권이 안 나와서, 국정원에 좀 알아봐 달라고 부탁한 적이 있다. 국정원은 김련희가 합동신문센터에 있을 때 북한으로 돌아가고 싶다 해서 여권발급이 어렵다고 답변했다”고 증언했다(한겨레신문, 7월 4일). 이 증언이 확인해주듯이, 국정원은 내가 북으로 돌아가겠다고 선언했으므로, 여권을 내주면 나중에라도 북으로 도망간다며 ‘신원특이자’로 규정하고 지금까지 5년 동안 여권을 내주지 않고 있다.

 

이처럼 내가 탈북하여 남한에 정착하려 했다는 통일부의 주장을 뒤엎을 증거들은 수없이 많다.  

 

▲ 평양에 들어간 신은미 씨 페북으로 김련희 씨와 문자를 주고 받았던 평양의 가족 남편과 딸  

 

남조선 당국자들에게 말하고 싶다.

 

‘세계인권선언’에서는 ‘모든 사람은 생명, 자유 및 신체의 안전에 대한 권리를 가진다’(3조)고 했다. 또한 ‘사람은 누구를 막론하고 어떤 나라(자국을 포함한)에서든지 떠날 수 있으며, 또한 자국으로 돌아올 권리를 가진다’(13조 2항)고 했다.

 

‘시민적 및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에서도 ‘모든 사람은 신체의 자유와 안전에 대한 권리를 가진다. 누구든지 자의적으로 체포되거나 억류되지 아니한다’(9조 1항)했으며, ‘모든 사람은 자국을 포함해서 어떠한 나라로부터도 자유로이 퇴거할 수 있으며(12조 2항), 어느 누구도 자국에 돌아올 자유를 자의적으로 박탈당하지 않는다’(12조 4항)고 했다.

 

우리 헌법에서도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10조), ‘모든 국민은 거주 이전의 자유를 가진다’(14조)고 했으며, 거주 이전의 자유는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여행, 해외 이주의 자유, 바로 대한민국의 통치권이 미치지 않는 곳으로 여행하거나 이주할 수 있는 자유가 포함되어 있다.

 

이 같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거주 이전에 대한 권리 등 국제법 또는 국내법 조항을 열거하기 전에 인권이 옳게 보장되려면, 본인 의사에 반하여 억지 입국시킨 반인권, 반인륜 행패에 오히려 법적인 책임을 물어야 하며, 피해자는 조건 없이 원상회복시키는 것이 정답일 것이다.

 

비록 오늘 우리 민족은 본의 아니게 남북으로 갈리어 수많은 가족 친척들이 남북으로 흩어져 고통을 안고 살고 있지만, 언젠가는 아니 빠른 시일 안에 자주통일 세상을 이루어야 할 수천 년을 한 핏줄로 살아온 혈연공동체이다.

 

남에 살든 북에 살든 해외에 살든, 그 어떤 이유로도 같은 동포로서의 유대감은 억지로 떼어놓을 수 없다. 기쁨도 슬픔도 끝내는 함께 나누어야 할 불가분의 관계이다. 이 같은 인도주의 실천을 통해서 남북관계 발전의 또 다른 계기가 될 수 있게 동포애 정신으로 송환시켜야 할 것이다.

 

끝까지 나를 잡아두고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내지 않는다 해도 나는 기필코 나의 고향으로 돌아갈 것이다.

 

당신들이 아무리 나의 앞을 가로막고 탄압을 한다 해도 나는 이 나라 당국자들에게, 세계에 똑똑히 보여줄 것이다.

 

부모, 자식 간의 천륜이 어떻게 이어지는가를, 가족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그리하여 남조선당국자들에게 부모 자식 간의 천륜은 그 무엇으로서도 끊을 수 없다는 것을 나의 온 넋으로 보여줄 것이다.

 

나는 꼭 돌아갈 것이다.

 

나의 어머니 조국에, 사랑하는 가족의 품으로.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서비스이용약관 모바일 버전으로 보기 상단으로


Copyright © 2010 - 2023 www.hanseattle1.com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