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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군의 어머니 김정숙녀장군 5. 처창즈를 일떠세운 신념과 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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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0건 조회 5,907회 작성일 17-04-08 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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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창즈를 일떠세운 신념과 의지

 

위대한 김일성장군님께서는 주체23(1934)년에 일제의 악랄한 《위공작전》에 대처하여 적극적인 군사활동으로 적의 《토벌》거점들을 타격하는 한편 보다 유리한 지대에 새로운 유격구역을 창설하고 거기에 적의 《토벌》대상으로 되고있는 혁명군중을 옮길데 대한 새로운 조치를 취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명령을 받은 연길현의 조선인민혁명군 부대들은 그해 6월 안도지구에 진출하여 적들의 군사요충지인 대전자를 장악하고 이 일대의 적을 제압함으로써 백두산줄기의 원시림이 울창한 처창즈에 새 유격구역을 꾸릴수 있는 유리한 조건을 마련해놓았다. 1935년 봄에 연길현과 화룡현 등 여러곳에서 수많은 혁명군중이 이곳 처창즈로 옮겨가게 되였다.

김정숙녀사께서도 삼도만유격구역을 떠나 처창즈유격구역으로 가시였다.

김정숙녀사께서는 련대지휘부에 거처하시면서 작식대일과 함께 유격구역의 공청조직들에 대한 지도사업을 하시였다.

당시 처창즈유격구역의 형편은 매우 어려웠다.

처창즈에 새 유격구역이 서자 당황한 일제는 그것을 초창기에 없애보려고 대대적인 《토벌》공세를 취하는 한편 유격구역인민들을 굶겨죽이려고 유격근거지를 서둘러 《봉쇄》하였다. 일제의 발악적인 책동에 의해 처창즈사람들은 처음부터 혹심한 식량난을 겪게 되였다. 거기에다 대오안에 숨어있던 암해분자들과 혁명의 배신자들이 처창즈인민들을 굶주림속에 몰아넣으려고 악랄하게 날뛰고있었다. 부대가 원정을 떠나면서 유격근거지인민들을 위해 두고간 적지 않은 자금이 있었으나 책임적인 자리에 앉아있던 배타주의자는 그것을 내놓지 않고 사욕을 채우고있었다. 이자는 적통치구역의 인민들은 물론 혁명조직성원들까지 《민생단》련루자라고 하면서 그들과의 일체 련계를 중지하게 하였다. 결국 근거지로는 한알의 식량도 들어올수 없게 되였다. 내외원쑤들의 책동으로 하여 처창즈는 아사직전의 기근지대로 되여가고있었다.

유격대원들이 피로써 구해온 식량은 수요에 비해 너무나 적어서 집집에 숟가락으로 나누어주는 형편이였다. 사람들은 이른봄이라고 하지만 그대로 쌓여있는 눈속에서 풀뿌리를 캐고 도토리를 주었으며 나무껍질을 벗기고 마른 머루순을 뜯어먹었다. 소금도 없이 마른 머루순을 그대로 삶아먹을 때면 목구멍에서 피가 나왔다. 그러나 그것마저도 부족했다. 식량문제를 해결하는가 못하는가 하는것은 유격근거지의 존망과 관련되는 운명적인 문제였다.

김정숙녀사께서는 근거지에 들이닥친 이 엄혹한 시련을 뚫고나가기 위한 사업에 분연히 나서시였다.

처창즈유격구역에 봄이 와 쌓였던 눈도, 계곡의 얼음도 녹아내리고 파릇파릇한 풀들이 돋기 시작하였다. 봄철씨붙임을 해야겠으나 극도에 이른 식량난으로 하여 사람들은 굶어쓰러져 일어서지도 못했다. 그런데 더욱 엄중한것은 일부 사람들이 굶주림을 견디다못해 《농사군은 죽어도 종곡을 베고 죽는다》는 조상전래의 말도 잊고 인민혁명정부에서 그처럼 어렵게 구해다가 나누어준 종곡에까지 손을 대게 된것이였다.

김정숙녀사께서는 집집을 찾아다니며 종곡을 먹지 않도록 안타까이 이르시였다. 그리고는 살아서 끝까지 혁명을 하기 위해 기어이 밭을 갈고 씨를 뿌리자고 애타게 호소하시였다. 그러나 이런 방법으로서는 도무지 제철에 밭을 갈아엎을것 같지 못했다. 여러모로 생각하시던 끝에 김정숙녀사께서는 공청원들로 파종대를 조직하자고 조직에 제기하시였다.

공청파종대, 이는 확실히 처창즈사람들을 씨붙임전투에로 불러일으키는 전위적인 기수의 역할을 할것이였다. 비록 굶주리긴 하여도 젊고 끌끌한 청년들이 앞에 나서서 와짝 기세를 돋구면 맥을 추지 못하던 군중들도 스스로 따라일어설것이 아닌가.

김정숙녀사의 제기는 공청조직의 열렬한 찬동을 받았다.

김정숙녀사께서는 그날부터 공청원들과 청년들을 찾아다니시며 정력적인 해설사업을 하시였다.

《우리는 어떤 일이 있어도 이 봄에 씨를 뿌려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를 굶겨죽이려고 날치는 원쑤놈들의 야망을 짓부시고 살아서 끝까지 혁명을 할수 있습니다.

이 봄의 농사전투는 삶과 혁명을 위한 결사전입니다. 이 결사전에서도 우리 공청원들이 앞장서서 군중을 이끌어나갑시다.

모두다 공청파종대에 한사람같이 떨쳐나섭시다!》

김정숙녀사의 불같은 호소는 공청원들과 청년들의 심장에 뜨거운 불길을 지폈다.

다음날부터 처창즈의 들판에 공청파종대가 하얗게 붙어 일자리를 푹푹 냈다. 공청원들이 앞장서자 근거지인민들도 자연히 그들을 따라나섰다. 근거지인민들은 이를 악물고 밭에 나가 공청파종대와 함께 씨를 뿌렸다. 인민들은 일어날 힘이 없어 밭고랑을 기여다니면서 씨를 뿌렸다. 밭고랑에서 쓰러져 그대로 숨져버린 사람들도 있었다. 실로 처창즈의 땅에 뿌려진것은 단순한 씨앗이 아니라 처창즈인민들의 넋이였고 피와 땀이였으며 혁명승리에 대한 희망이였고 신념이였다.

뿌린 씨앗은 드디여 움터올라 처창즈의 밭들에는 보리, 감자, 조들이 푸르게 자라났다. 그러나 그것이 낟알로 여물 때까지는 아직 많은 시일이 걸려야 하였다. 기근은 극한점에 이르렀고 사람들은 개구리는 물론 개구리알까지 모두 건져먹었다. 인간의 상상을 초월하는 기근의 지대로 된 유격구역에는 쥐와 뱀도 한마리 남지 않았고 풀도 제대로 남지 않았다.

그 고난을 처창즈에서 이겨낸 항일혁명투사 백학림은 후일에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처창즈사람들이 겪어온 항일전쟁시기의 참상을 모른다면 그 무슨 생활난에 대해서 감히 입밖에 내지도 말라. 처창즈의 군민이 봉쇄속에서 어떻게 기아를 이겨내고 추위를 이겨내고 적의 <토벌>을 이겨냈는가를 알지 못한다면 그 어떤 곤난극복에 대해서도 감히 자랑하지 말라!》

그때 처창즈사람들앞에 다른 길이 없는것이 아니였다. 고개를 한두개만 넘어가면 먹을것도, 입을것도 있는 적구의 땅이 있었다. 적들은 유격근거지를 버리고 나오면 편안한 생활을 보장해준다고 떠들었다.

그러나 처창즈사람들은 굶주려 쓰러지면서도 그 시련의 땅, 기근의 땅을 떠나지 않았으며 쓰러져도 유격근거지에서 쓰러지고 죽어도 유격근거지에서 죽었다.

처창즈사람들은 비록 3년안팎의 짧은 세월이였으나 위대한 수령님께서 안겨주신 인민의 새세상, 왜놈과 지주, 자본가가 없는 자유의 세상이 너무도 소중하였기에, 유격근거지하늘가에 나붓기는 붉은기가 너무도 귀중하고 그 붉은기를 날리며 수령님을 모시고 해방된 조국으로 돌아가게 될 승리의 날을 반드시 맞이하게 되리라는 굳은 신념이 있었기에 쓰러지면서도 죽으면서도 유격근거지의 땅을 그러안고있었다.

죽으면 죽었지 버릴수도 떠날수도 없는 우리 세상, 우리 주권, 우리 땅, 백번 쓰러져도 내리울수 없는 혁명의 붉은기, 이 불굴의 정신을 지닌 처창즈인민들의 앞장에는 언제나 김정숙녀사께서 서계시였다. 김정숙녀사는 처창즈인민들속에서 힘과 용기와 신념의 상징이시였다.

김정숙녀사께서는 밭에 심은 보리가 파랗게 자라나자 그 파란 잎사귀를 뜯어가지고 집집마다 다니시며 《보세요. 벌써 보리가 이렇게 자랐어요.》라고 하시였고 보리이삭이 패자 그것을 눈앞에 내보이시며 이제 조금만 더 참고 견디면 낟알을 털게 되니 기운을 내라고 말씀하시였다.

김정숙녀사께서는 아무리 어려운 환경에 놓였어도 위대한 수령님께서 계시는 한 꼭 혁명은 승리할수 있다는 신념을 간직하시였고 그런 신념을 인민들에게 심어주기 위해 애쓰시였다.

어느날 유격근거지녀성들과 함께 오도양차의 깊은 수림속에까지 들어가 나물을 캐시던 김정숙녀사께서는 맥을 놓고 주저앉은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동무들, 김일성장군님을 모시고 붉은기를 펄펄 날리며 조국에 개선할 승리의 날을 생각해보세요.

나는 시련이 겹치고 간고할 때마다 혁명이 승리하고 조국이 해방될 그날을 눈앞에 그립니다.

그러면 온몸에 힘이 솟구 기운이 나요. 민족의 태양 김일성장군님께서 우리를 이끄시니 우리는 기어이 승리할것입니다.

승리의 날 장군님을 모시고 조국에 돌아가면 조국인민들에게 오늘 처창즈에서 고생하던 일을 옛말삼아 이야기해줍시다.》

녀사의 말씀은 녀성들의 가슴에 민족의 태양 김일성장군님에 대한 열렬한 흠모의 정을 안겨주었으며 그들로 하여금 위대한 수령님을 모시고 조국으로 개선할 해방의 그날을 그리면서 희망에 넘쳐 다시 일어나게 하였다.

녀성들만이 아니라 공청원들, 아동단원들 아니 전체 근거지인민들모두가 맥을 잃고 쓰러졌다가도 김정숙녀사의 음성이 울리면  신심과 용기를 얻어 다시 일어나군 하였다.

김정숙녀사께서 처창즈의 그 간고한 나날에 유격근거지인민들을 굶주림과 싸워이기고 반혁명과 싸워이기도록 불러일으키는데서 중요한 수단의 하나로 리용하신것은 혁명의 노래, 투쟁의 노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일찌기 한편의 시가 천만사람의 가슴을 격동시키며 총칼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서도 우리의 노래가 적의 심장을 꿰뚫을수 있다는것을 항상 명심해야 한다고 가르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가르치심을 언제나 명심하고계시는 김정숙녀사께서는 공청원들을 봄씨붙임전투에로 조직동원하실 때도 이 봄의 농사전투는 삶과 혁명을 위한 결사전이라고 하시면서 그들이 주린 배를 그러안고 밭을 갈고 씨를 뿌리다가 맥없이 주저앉으려고 하면 노래와 춤으로써 다시 일어나도록 하시였다.

부녀회원들이 밤새워 만든 붉은 기발이 길다란 장대끝에서 바람을 안고 펄럭이는것을 보며 혁명가요를 부르고 춤판을 벌리면 맥없이 쓰러졌던 사람들의 가슴에 새힘이 솟구쳤다.

김정숙녀사께서는 아동단연예대공연으로 군중들과 유격대원들을 투쟁에로 불러일으키는 사업도 자주 조직하시였다.

어느날 밤 인민혁명군병실앞에서는 김정숙녀사께서 조직하신 아동단연예대공연이 시작되여 유격대원들과 인민들을 기쁘게 해주고있었다.

그런데 공연이 고조될 때 《총동원가》를 부르며 유희를 하던 아동단원들가운데 제일 나이어린 소녀가 쓰러졌다. 혹심한 굶주림은 어린 소녀의 마지막 기운마저 진해버리게 하였던것이다. 노래소리는 끊어지고 아동단원들은 당황해하였다.

이때 무대로 뛰여오르신 김정숙녀사께서는 그 소녀를 안아일으키시였다. 그러자 김정숙녀사께 안긴 소녀는 눈물이나 신음소리대신 파랗게 질린 입술을 떨며 다시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였다.

 

나가자 나가자 싸우러 나가자

용감한 기세로 어서빨리 나가자

 

유격대원들과 인민들은 눈물속에서 어린 소녀와 함께 노래를 불렀다.

나어린 아동단원들까지 굶어쓰러졌다가 다시 일어나 노래를 부르는 그 모습은 김정숙녀사께서 처창즈사람들에게 안겨주신 불굴의 신념과 의지의 발현이였다.

김정숙녀사께서는 한편 근거지의 식량사정을 더 어렵게 만드는 배타주의자들과 종파사대주의자들과의 원칙적인 투쟁을 과감히 벌려나가시였다.

어느날 지휘부에서는 식량난을 해결하기 위한 방도를 토의하는 모임이 있었는데 많은 일군들이 적구의 지하혁명조직과 련계를 가지고 식량을 구해와야 한다고 제기하였다. 그러나 배타주의자들은 또다시 적구의 지하조직원들은 거의다 《민생단》련루자들인데 절대로 그들과 손을 잡아서는 안된다고 무작정 그 제기를 눌러버리려고 들었다.

배타주의자들의 책동은 단순한 식량해결의 저애가 아니라 국내와 적통치구역인민들과의 사업을 강화하여 무장투쟁의 대중적지반을 축성할데 대한 위대한 수령님의 전략적방침실현을 방해하는것이였으며 수령님께서 가르쳐주신 반《민생단》투쟁의 원칙과 방도에 대한 무엄한 도전이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사상과 로선, 방침과 어긋나는 그자들의 행동에 격분하신 김정숙녀사께서는 주저없이 단호한 반격을 가하시였다.

김정숙녀사께서는 적구의 지하혁명조직들과 련계를 가지고 식량공작을 하자고 하는데 대하여 적구지하조직성원들은 거의다 《민생단》련루자라고 하면서 그들과 손을 잡을수 없다고 하는것은 혁명동지를 믿지 않는 옳지 못한 태도이며 사실상 혁명을 하지 않겠다는것과 같다, 적의 살벌한 경계속에서 목숨걸고 싸우는 지하조직원들이 어찌하여 모두 《민생단》련루자들이겠는가,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우선 동지들을 믿고 투쟁속에서 검열하고 단결하여야 한다고 가르치시였다, 우리는 지방조직에서 일하는 동무들을 믿고 그들과 대담하게 손을 잡아야 한다고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가르치심을 자로 하여 사리정연하게 론박하시는 김정숙녀사의 견결하고도 원칙적인 비판에 배타주의자들은 더는 입을 열지 못하였다.

그것은 정녕 모든 반혁명적인것, 비원칙적인것과는 추호도 타협할줄 모르며 위대한 수령님께서 제시하신 로선과 방침을 견결히 고수하고 대중의 리익을 지키기 위하여서는 자기 한목숨도 아끼지 않고 칼날우에라도 서슴없이 올라설수 있는 참된 혁명가, 견결한 투사만이 할수 있는 대용단이였고 오직 우리에게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계신다, 처창즈사람들이 있다, 이렇게 생각한 사람만이 지닐수 있는 불굴의 담력이였다.

김정숙녀사의 원칙적이며 헌신적인 투쟁에 의하여 유격근거지에서는 소부대들이 적구로 떠나가고 지하혁명조직과의 련계밑에 식량해결에서도 일정한 전진이 있었다.

피와 땀과 눈물로 씨를 뿌린 처창즈의 밭들에 햇곡식이 여물었다. 기아를 밀어내며 승리의 가을이 온것이다.

장군님께서 계신다는 마음의 기둥이 없었던들 처창즈사람들은 죽음에서 일떠설수 없었을것이였다.

김정숙녀사께서는 잊지 못할 처창즈의 나날을 감회깊이 더듬으시며 후날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처창즈는 정말 삶과 죽음, 혁명과 반혁명의 대결장이였어요.

굶어쓰러지면서도 혁명의 노래를 부르고 죽으면서도 혁명의 품을 떠나지 않던 사람들, 필승의 신념과 밝은 미래를 간직했기에 혁명의 붉은기를 끝까지 지킨 그 사람들을 나는 일생 잊을수 없습니다.

력사는 처창즈를 결코 잊지 않을것입니다.》

처창즈사람들이 삶과 죽음, 혁명과 반혁명의 대결장에서도 밝은 미래를 내다보며 혁명의 붉은기를 끝까지 지킬수 있었던것은 바로 투쟁의 기수가 되시여 그들에게 인간의 상상을 초월하는 모든 고초를 이겨낼수 있는 정신적량식을 주시고 힘과 용기를 북돋아주신 김정숙녀사의 피타는 노력이 있었기때문이였다. 하기에 처창즈사람들은 내외원쑤들의 책동으로 죽음의 문어구에 서있던 처창즈가 온갖 고난과 시련을 이겨내고 혁명의 붉은기를 꿋꿋이 지켜낼수 있은것은 위대한 김일성장군님께서 계시는 한 반드시 이긴다는 철의 신념과 혁명에 자신의 모든것을 깡그리 바치려는 불굴의 의지를 지니신 김정숙녀사께서 자기들을 이끌어주었기때문이라고 한결같이 말하군 하였다.

정녕 혁명을 위해서는 그 어떤 시련과 난관도 과감히 헤쳐나가시는 억센 투지와 불같은 혁명적열정, 대중을 위해서는 자신의 모든것을 기꺼이 바치시는 높은 헌신성과 희생성, 이것이 바로 준엄한 처창즈의 나날에 김정숙녀사께서 보여주신 숭고한 모범이였으며 그 모범이 기발이 되여 처창즈는 력사우에 영웅의 땅, 불굴의 땅으로 높이 솟아오르게 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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