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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2009년 제32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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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1건 조회 10,791회 작성일 23-04-29 0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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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야전지휘소에서는 근위부대의 군정간부회의가 열리고있었다.

장령들이 참가한 회의였으나 의자에 앉지 않고 선채로 진행되는 회의였다. 모든것이 높은 속도로 진행되는 희천전투장에서는 회의도 때에 따라 선채로 하군 하였다.

희천속도를 창조하는것은 사회주의경제건설의 기본전투형식인 속도전으로 2012년까지의 전반적인 경제건설목표를 실현하려는 작전적의도와 함께 전력공업에서의 수령님의 리상을 기어이 실현하려는것이였다.

벌써 50여년전 조선로동당 제3차대회의 높은 연단에서 우리 나라의 전력자원탐사와 개발사업을 힘있게 밀고나가기 위하여 대동강상류와 압록강, 장자강, 청천강류역에서 전력자원조사사업을 진행할데 대하여 가르쳐주신 수령님이시였다.

지난 시기에는 희천발전소와 같은 발전능력이 큰 대규모수력발전소를 건설하려면 10년나마 걸렸는데 이 발전소건설을 3년동안에 끝낸다는것은 아름찬 과제가 아닐수 없다.

그렇지만 우리는 수령님의 탄생 100돐이 되는 2012년까지 무조건 끝내야 한다. 당에 충실한 군대와 인민이 있고 또 수령님께서 마련해주신 강력한 주체공업의 뒤받침이 있는것만큼 얼마든지 3년안에 끝낼수 있다.

《수령님을 찾아갑시다!》

아직 정예사단들이 도착하기 전에 험한 강변길을 헤쳐 희천발전소터전을 잡아주시면서 하신 최고사령관동지의 불같은 말씀이시였다.

그날 김정일동지께서는 또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멀고 험한 건설장들에 남먼저 찾아가는것이 이제는 나의 습관으로 되였습니다. 초행길을 남먼저 헤쳐나가야 모든것이 석연하고 결심도 제때에 세울수 있습니다. 그러니 최고사령관이 앞장에 서지 않고 누가 서겠습니까? 승리는 언제나 전투전에 마련되는 법입니다.》

근위부대장병들이 녕원을 떠나 이곳에 도착했을 때 희천에서 만나자시면서 먼저 떠나신 김정일동지께서 기다리고계시다가 부대의 전투임무를 주시였다.

수십키로메터의 물길굴공사!

그날로부터 속도전의 열풍이 일어났다. 그러나 엄혹한 자연은 한키로메터이상의 붕락구간으로 부대의 진격로를 막아나섰다.

권혁이 속한 중대 두개 소대의 좌절이 이 붕락구간돌파전에서 일어났다. 드디여 그 붕락구간이 권혁의 돌격조에 의해 한시간전에 돌파되였고 최고사령부에 이 승리를 송신할 전신보고가 작성되였다.

지금 지휘소의 풍막으로 된 나들문가에는 보고문을 받아가려고 온 참모가 비물이 뚝뚝 떨어지는 비옷을 쓴채 기다리고 서있었다.

밖에서는 폭우가 억수로 쏟아지고있었다. 때없이 쏟아지는 산골비였으나 이날 밤은 류달리 번개와 우뢰까지 몰고왔다.

지휘소안은 카바이드등불을 켜놓았다. 태천발전소사고로 나라의 전반적인 전력사정이 긴장해진 속에서 공사용전기도 극력 절약하지 않으면 안되였다.

군정회의참가자들은 등불밑에서 전신보고를 돌려가며 보았다.

그러나 누구도 얼른 입을 열지 않았다. 그랬을뿐아니라 그들의 얼굴빛은 하나같이 컴컴했으며 그 어떤 괴로움으로 이그러들었다.

침묵이 흘렀다. 무거운 침묵이였다.

기쁨의 보고를 올리면서 전혀 어울리지 않은 분위기가 지휘소안을 먹장구름처럼 내리누르는 까닭은 무엇인가?

그것은 전신보고의 마지막 한줄때문이였다.

그 어떤 괴로움이나 희생일지라도 사실대로 즉시 보고하는데 습관된 오랜 군사복무자들이고 장령들이였다.

그렇다면 지금 무엇때문에 군사규률의 요구이기도 한 그 보고를 지체시키고있는가? 그것은 권혁이 아직은 사경을 헤매고있기때문이다.

군의들은 그의 사망이 분과 초를 다투는 시간문제일뿐이지 거의 확정적이라는 의학적결론을 내렸다.

전신보고의 마지막줄은 그 결론에 의해 작성해야 했다.

그런데 군정간부회의가 숨가쁜 침묵속에 빠진것은 권혁의 어머니 지은희의 완강한 부인에 의한것이였다.

방금전에 그가 회의장에 나타났다.

지은희: 《당원증을 저에게 주세요.》

장령①: 《당원증이라니…》

장령②:《아까… 정치위원동무가… 그의 가슴에서 피묻은 당원증을 꺼내 건사했습니다.》

장령①: 《내가… 그랬던가요?》

지은희: 《네, 그걸 저에게 주세요.》

장령①: 《어쩌자는겁니까?》

지은희: 《권혁의 가슴에 놓아주겠어요.》

모두: 《?!》

지은희: 《어렸을 때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관에 데리고간적이 있었어요. 한 당원증앞에서 떠나려 하지 않았어요. 원쑤의 총탄에 찢기고 포화에 그슬린 피묻은 당원증이였어요. 수여받은지 3일밖에 안되는… 당원증을 수여받아 3일, 생의 순간이라고 할수 있는 그 3일속에 30년, 300년이 흘러도 이 땅의 후대들이 값높이 추억할 참된 당원의 한생이 어려있는…

저는 어린 권혁에게 알아들을수 있게 이야기해주었어요. 당원이란 어떤 사람인가, 조국을 위해 생명을 바친 당원은 죽지 않는다는것을.

그때부터 그는 당창건기념일이라든가, 건군절같은 때면 꼭꼭 그 당원증을 찾군 했어요, 인민군대에 입대하는 날도.…》

장령①: 《권혁의 어머니, 알만 합니다.》

지은희: 《우리 권혁인 죽지 않습니다. 그는 갱으로 들어가면서 당원증을 품고 들어간다고 하였어요. 그 당원증을 그의 가슴에 얹어주자요. 그는 죽음을 이겨낼거예요. 정치위원동지!…》

그 당원증의 힘인가! 군의들이 분초를 다툰다던 권혁의 생명이 한시간나마 견지되고있는것이다.

군정간부회의참가자들은 무거운 침묵속에서 하나의 회의를 돌이켜보고있었다.

그 회의는 바로 며칠전 이 장소에서 있었다. 참가자들도 지금의 군정간부들이였다. 돌격대를 자기가 이끌겠다고 권혁이가 자청해나섰기때문에 열린 회의였다. 부대의 지휘관들이 그의 요구를 가볍게 다루지 않고 회의에까지 상정시킨데는 원인이 있었다.

권혁의 아버지 권철민장령은 근위부대의 초대부대장이였다.

수령님서거소식에 혼절하여 쓰러졌던 장령앞에는 뜻하지 않은 정황이 생겼다. 장마가 들이닥쳐 금방 올라가기 시작한 녕원발전소언제를 위협하고있었던것이다.

무엇보다 골재장의 굴착기와 벨트콘베아 등 수령님께서 애써 마련해주신 건설설비들을 구원해야 했다. 장령은 사생결단으로 물에 뛰여들어 마지막설비 한대까지 끌어낸 다음 큰물에 휘말리웠다.

물에서 건져냈을 때 그가 마지막숨을 몰아쉬면서 부탁한것은 공사와 아들이였다. 공사는 완공되여 전기를 생산하고있고 아들은 군관이 되고 당원이 되여 전도가 양양하였다.

그때 그의 눈을 감긴것이 지금 국방위원회 위원인 차철군이였고 조총을 쏜것은 지금의 부대장과 정치위원인 장령들이였다.

권철민은 전사시절 수령님을 몸가까이에서 호위한 호위전사로서 그이로부터 각별한 사랑을 받았다. 수령님께서는 총명하며 용감하고 헌신적인 그를 키워 부대에 근위칭호가 수여될 때 장령의 군사칭호를 주어 부대장으로 임명하시였다.

최고사령관김정일동지께서도 전사때부터 그를 잘 알고계시며 그런 정깊은 인연으로 하여 권혁을 친히 몸가까이 불러주시기까지 하셨다는 사실을 군정간부회의참가자들치고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이러한 권혁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긴다면

인간중에서도 참인간이신 그이께서 당하실 상실과 슬픔을 어찌한단 말인가!

하지만 권혁은 소대를 이끄는 지휘관이였다. 돌격전의 앞장에는 지휘관이 서야 했다. 이것은 그 누구도 어길수 없는 군률이였다.

우리의 백두산혁명강군안에서 대를 이어 계승되는 전통이며 최고사령관동지께서 세워주신 군풍이였다. 하여 권혁은 소대의 앞장에 섰다. 그런데…

기쁨의 보고를 올려야 할 이 시각 군부대지휘관들이 전혀 어울리지않는 분위기에 휩싸인것은 바로 이때문이였다.

밖에서는 여전히 천둥이 치고 번개가 일며 대줄기같은 비가 쏟아져내리고있었다.

나들문가에서 참모가 긴장하게 전신보고가 비준되기를 기다리고있었다.

회의참가자들은 무엇을 생각하며 침묵에 잠겨있는가.

이때 부대총직일관이 기척도 없이 풍막으로 된 나들문을 벌컥 열어제치며 들이닥쳤다. 그가 덤벼치면서 누구에게라없이 크게 보고했다.

《전화입니다! 최고사령관동지의…》

둘러섰던 사람들의 시선이 그에게로 쏠리는 가운데 직일관이 반복했다.

《최고사령관동지께서 전화를 걸어오셨습니다.》

때마침 책상우의 전화에서 신호가 다급히 울렸다. 교환수가 그이의 전화를 여기로 넣었다는것을 누구나 알아차렸다.

장령①이 장령②에게 다급히 말했다.

《받으십시오, 부대장동무!》

장령②가 겉치레가 없이 군인식으로 재빨리 송수화기를 잡았다.

장령②: 《최고사령관동지, 부대장 중장…》

김정일동지: 《됐소, 붕락구간은 돌파됐소?…》

장령②: 《옛, 돌파됐습니다!》

김정일동지:《언제?》

장령②: 《한시간 됐습니다.》

김정일동지: 《왜 보고가 늦었소?》

장령②: 《…》

김정일동지:《사고요?》

장령②: 《예, 최고사령관동지…》

김정일동지: 《희생이요?》

장령②:《뇌진탕과 전두부렬창, 전신압좌상… 가망이 없긴 하지만…》

김정일동지: 《…》

장령②: 《그의 어머니는 희망을 잃지 않고있습니다.》

김정일동지: 《어머니가?》

장령②: 《김만유병원의 유능한 외과의사입니다.》

김정일동지: 《부상자는 누구요?》

장령②: 《최고사령관동지께서 아시는…》

김정일동지: 《무슨 군소리요?》

장령②: 《알겠습니다. 중위 권혁입니다!》

김정일동지:(오랜 침묵끝에)《명령을 들으시오. 착륙장을 준비하시오. 직승기는 30분후에 도착할것이요!》

장령②: 《알았습니다!》

장령의 이 마지막대답은 그이께서 송수화기를 놓으신 후에 울렸다.

30분후…

뢰성과 번개, 폭우는 멎었으나 골짜기에는 두터운 안개가 꼈다.

여러개의 모닥불을 피워올린 착륙장주변에는 수많은 장병들이 하늘을 원망스레 쳐다보고있었다.

드디여 비행기의 동음이 우뢰소리처럼 크게 울렸다.

그 소리로 봐서 비행기는 착륙장상공에서 날고있음이 분명했으나 비행기동체에서 발산하는 빨간 신호등이 보이지 않았다. 그러니 비행기에서도 여기의 불빛을 보지 못할것이였다.

이때 하늘에서는 석대의 직승기가 날면서 교대별로 착륙지점을 찾고있었다. 한대가 착륙하려다 실패하고 상승하면 다른 한대가 하강하고 그 직승기가 실패하면 꼬리를 물며 세번째 직승기가 하강하였다. 그사이 두대의 직승기는 선회하며 자기 차례를 기다리는 전쟁시기에도 흔치 않을 초긴장의 전투를 벌리고있었다.

비행기승조원들도, 착륙장의 병사들도 불안속에 숨을 죽이고 긴장한 한초한초를 보내고있었다.

그러나 이 순간 가슴에 재가 앉을 지경으로 속을 태우고계시는분이 있다는 사실을 누가 알것인가.

김정일동지께서는 전선동부의 철길우를 달리는 렬차에서 이해에 들어와 자주 쓰시는 말씀 《수령님께서 도와주실거요!》라는 말씀으로 자신을 진정하고계시였으니 정녕 수령님은 언제나 그이와 함께 계시는 마음속 의지이시였다.

이 땅우에 발굽에 불길을 일구며 달렸다는 전설의 룡마가 날고있다.

김정일동지의 거룩하신 자욱이 새겨지는 곳마다에서 번개가 치고 우뢰가 울며 변이 일고있었다.

그 모든 변들의 근저에는 어버이수령님을 향하는 마음들이 놓여있었으니 진정 수령님은 하늘이고 태양이시며 영원한 승리의 기치이시였다.

《수령님을 찾아갑시다!》

사람들은 그이를 따라 수령님을 찾아가고있었다. 저기, 2012년의 언덕우에서 어버이수령님께서 환히 웃고계신다. 그런데

《힘을 내거라. 권혁아, 쓰러져서는 안된다. 수령님을 만나뵈워야지.》

그이께서는 마음속으로 같은 말씀만 거듭 외우시였다.

이튿날 이른새벽.

머리를 맞대고있던 강민혁과 사무국장은 불쑥 들어서는 차철군을 보고 놀라서 굳어졌다.

두사람은 다같이 의아해하였다. 차철군이 내각에 나오는 일이란 별로 없었으며 혹 김정일동지의 긴요한 지시를 가지고 총리의 방에 잠간 들리군 하였을뿐이다.

그런데 이른새벽에 아무런 예고도 없이 강민혁의 방에 나타났으니 놀라운 일이 아닐수 없었다. 그의 행동은 물론 얼굴에 비낀 표정이 또한 심상치 않았다.

안온한 성미에 덤비는 일이란 거의 없는 그의 일상적인 행동거지에 익숙한 강민혁이 놀란채 조심스럽게 물었다.

《차동무… 웬일이요?》

차철군은 대답이 없이 창가에 놓인 쏘파에 가앉았다. 보매 숨을 돌리려는것 같았다.

그러자 강민혁이 그의 곁에 가앉고 사무국장은 방에서 나가려고 책상에 펴놓았던 문건을 걷어들고 일어섰다.

차철군이 손짓으로 그를 제지하며 앉으라고 하였다.

사무국장이 도로 앉자 차철군은 지금까지의 행동거지와는 달리 침착하고 조용한 어조로 누구에게라없이 물었다.

《태천은 어떻게 할 작정입니까?》

《지금 그 문제를 토의하던중입니다.》

사무국장이 일어서서 대답하였다.

《아직 토의하고있으면 어떻게 합니까. 전개해야지요.》

차철군이 상대방의 말을 존중하면서도 못마땅한 투로 말하였다.

사무국장이 대답했다.

《이미 전개했습니다. 지금 보장조건과 구체적인 작업일정을 토의했습니다.》

《앉으십시오.》

사무국장이 앉고 차철군이 강민혁이를 바라보았다.

《군대를 들이밀지 않아도 되겠소? 강동무의 주장에 따라 내각이 도맡기로 했다는데…》

강민혁이 대신 사무국장이 대답했다.

《내각상무회의에서 합의를 보았습니다.》

《그렇다면 좋은 일입니다. 위대한장군님께서는 그것만 제끼면 내각이 룡이 된다고 하시였습니다.》

차철군은 사무국장을 대상하여 말을 이었다.

《그렇지만 장군님께서는 마음을 놓지 못하십니다. 전시의 정황으로 말하면 태천의 사고를 불의에 맞다든 적의 지뢰원이라고 하시였습니다.

전진이 좌절될수 있다는것입니다. 수십만키로와트가 어딥니까? 한와트가 귀중한 때에… 군인들이 도와줄게 뭐 없겠습니까?》

두사람의 이야기를 묵묵히 듣고있던 강민혁이 대화에 끼여들었다.

《이전 같으면 열번은 손을 내밀었을것이지만 차동무, 마음을 놓으시오. 내각의 힘으로 해내겠습니다. 지금 군인들의 부담이 얼마나 큽니까. 희천과 석탄전선… 그밖에 중요대상건설에 동원된 군인들이 얼마요.》

《고맙소, 정세가 아직도 편안치 않은 때 군인력량을 그만큼 뽑아낸다는것은 장군님의 용단이 아니고서는 힘든 일이요. 그러나 태천사고퇴치가 중요한것만큼 걸린 문제가 제기되면 나에게 말하오. 장군님께서는 내각에서 맡아하겠다는 결심을 지지하시면서도 사실상 마음은 못 놓고계시오.》

《그렇다면 한가지… 됐소.》

《말하오.》

《힘든건 아니요. 한가지 합의해주면 되는거요. 필요할 때 제기하겠소.》

《그렇다면 그 문제를 그렇게 보고드리겠습니다!》

이렇게 말한 차철군이 《사실은 강동무에게 일이 생겨 급히 들렸소.》하고 화제를 바꾸려 하였다.

사무국장이 제꺽 일어나서 《그럼 전…》하고 인사를 하고 방에서 나갔으나 차철군은 그에게 관심을 돌릴 사이가 없었다.

별로 무거워진 그의 안색을 살피며 강민혁은 잠자코 기다렸다.

잠시 침묵.

마음이 초조해진 강민혁이 참을수 없어 물었다.

《말하오, 무슨 일이게… 그리 심각해서 그러오?》

《권혁이

《권혁이가 어쨌다는거요?》

《지난 밤 김만유병원으로 실려왔소. 석대의 직승기가 동원되였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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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산님의 댓글

강산 작성일

(위에서 계속)

《…》

《치료정형을 보고드리고 병원으로 다시 가는중에 들렸소.》

강민혁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렇다면 빨리 가야지!》

《앉소, 앉아서 내 말을 듣소.》

차철군이 조용히 타이르듯이 말했다.

그는 그냥 서있는 강민혁의 손을 잡아 앉히고 말하기 시작했다. 탁 갈린 목소리는 울음이 엉킨듯 떨리였다.

《아침에 수술이 시작되오. 총지휘는 보건상동무가 하고 수술립회는 당을 대표하여 당중앙위원회 책임일군이 서게 되였소. 이것은 우리 장군님의…지시이시오. 그렇소. 권혁의 수술립회자는 바로 당이요! 강동무…》

차철군은 손수건을 꺼내 눈굽을 훔치고나서 《흥분하지 말고 내 말을 마저 듣소.》하고 강민혁을 타이르고는 오히려 자기가 흥분하며 계속하였다.

《그런데 이 일을 어떻게 하면 좋겠소. 가망없는 수술이니…지금까지 완강히 주장하던 지은희선생마저도 손맥을 놓은 상태요. 모든 생명지표들이 최악이요.…유능한 의사들이 다 모였으나 결론은… 오직 우리 장군님께서만이… 그이께서는 무조건 살리라, 최고사령관의 명령이다, 의사들에게 자신의 명령을 전달하라고 하시였소. 그이라고 왜 의학을 무시하시겠소. 그러시면서도 명령이라고 하시는것이였소. 그때 나는 명령이 아니라 그이의 피타는 음성만을 가려들을수 있었소, 흐흑!》

차철군은 또다시 손수건을 눈굽에 가져갔는데 이번에는 퍼그나 오래도록 떼지 못하였다.

강민혁은 자기도 눈물이 터질가봐 창가에 가서 밖을 내다보고 서있었다.

차철군의 목소리가 다시 울렸다.

강민혁이 그의 곁에 와서 진정하고 앉았다.

《지난밤 나는 장군님께 150일전투진행정형을 보고올리고있었소. 동무네 내각에서 제출한 문건을 놓고 말이요. 그때 희천에서 권혁이의 소식이 올라왔소. 그러자 그분께선 문건을 활 밀어놓으시면서 뭐라고 말씀하셨는지 아오? 우리가 무엇때문에 건설을 하는가? 무엇때문에…》

《그만하오! 이거야 가슴이 터져와서…》

차철군이 입을 다물고 괴로움을 누르고있었다.

강민혁은 그의 말을 중단시킨것이 미안해서 《말하오, 속이 내려가게 할말은 다 하오!》라고 하였다.

《다 말했소, 난 가겠소!》 차철군이 손목시계를 들여다보며 일어섰다. 강민혁이도 따라일어서며 《나도 같이 갑시다.》라고 하였다.

그러자 차철군이 비로소 생각난듯 《한가지 잊은것이 있소.》라고 하며 강민혁이를 끌어앉히고 자기도 앉았다.

《장군님께서는 선경에 대해 말씀하시였소.》

《우리 선경이?》

《누구누구해도 제일 큰 타격은 선경이가 받을거라구, 그렇게 되면 겨우 고쳐놓은 눈을 망칠수 있으니 그에게 말하지 않는게 좋겠다구 하시면서 생각해보라구 하시였소.》

《장군님께서 그 애 생각까지…》

《그분의 정의 세계는 정말 끝이 없소. 강동무, 내 생각에는 그 애를 빼돌려야겠는데 그 일은 동무가 맡소.》

《장군님의 뜻이 그러하시니 알겠소.》

《나하구 같이 갑시다. 같은 병원에 있으니 잘못하다간 선경의 귀에 권혁이의 소식이 들어갈수 있소. 들어갔는지도 모르오.》

《빨리 갑시다!》

그런데 말은 이렇게 하면서도 강민혁은 움직이지 않았다. 차철군이 이상하게 여겨져 바라보니 그는 울고있었다.

김정일동지의 다심하신 정을 생각한 강민혁의 가슴에 걷잡을수 없는 격정이 새삼스럽게 끓어번졌던것이다.

그 격정이 달아있는 차철군의 가슴에도 미쳐왔다.

그가 가슴을 치면서 입을 열었다.

《한마디 더 하지 않구는 못 견디겠구만!》

《말하오. 아무 말이나… 이거야 어디!》

《우리가 무엇때문에 건설을 하는가고 하시던 그 광경을 말이나 글로써는 다 표현 못할거요. 그 감정을, 그 억양을, 그 표정을… 그 격렬함을! 나는 그때 문건이 찢어져나가는줄 알았소.…》

차철군은 부르짖듯 말했다.

《아…》

강민혁의 입에서 주체 못할 격정이 울려나왔다.



아침해살이 눈부시게 흘러드는 창가에 앉아 두 처녀가 소곤소곤 담소를 나누고있었다. 창턱에 놓인 화분의 활짝 핀 꽃도 곱지만 꽃시절 처녀들의 모습이 더욱 눈부셨다.

방안에는 꽃향기가 아니라 처녀들의 향기가 풍기고있었다.

붕대를 풀어던진 선경의 눈은 더욱 영채로와보였고 로앞에서 노상 검실검실해있던 얼굴이 병원생활에 해말쑥해져서 백옥처럼 보였다.

간호원의 얼굴도 선경이 못지 않게 이쁘다.

그들의 즐거운 웃음소리…

《아이, 아버지!》

문기척소리와 함께 들어서는 강민혁을 보고 선경이 소녀처럼 깡충 뛰였다.

《아버지가 어떻게?!》

《해가 서쪽에서 뜨지 않았나 보려무나.》

《호호호.》

부녀가 상봉하는 사이에 강민혁이를 안내하여 들어왔던 녀의사가 간호원을 손짓해 데리고나갔다.

병실이 금시에 호젓해졌다.

《눈이 더 이뻐졌구나!》

《그래요? 보이는것도 더 잘 보여요. 시력검사소견도 그렇게 나왔어요.》

《됐구나!》

강민혁은 진정으로 기뻐했다. 권혁의 일이 아니라면 춤이라도 출 기분이였다. 그러나…

아버지의 내심을 알길 없는 선경이 재잘거리듯 말했다.

《오늘부터 풀어놔주겠다고 하더니 더 엄격한 계엄령이예요. 제강소일이 하루가 급한데 이 꼴이 뭐예요.》

《그렇긴 하다.》

《아버지, 그렇지요?》

《내 말해보마.》

《아이, 정말?》

《정말 아니면…》

《아이, 좋아라!》

선경은 아버지의 목에 팔을 감고 돌아갔다.

강민혁의 내심은 더욱 끓어번졌다.

그러나 시침을 따고 태연히 말했다.

《그렇지 않아 너를 데려가려구 왔다.》

《…》

선경은 믿어지지 않아 빤히 보기만 했다.

《제강소에서 사람이 와있다, 너의 대학에. 윤택호아바이 있잖니…》

《그 아바이가?!》

《너 대신 다른 연구사라도 데려가자고 말이다. 그런걸 내가 너를 보내겠다고 약속했다.》

《고마와요, 아버지…》

선경의 고운 두눈에 대번에 맑은 눈물이 고였다.

강민혁은 손수건을 꺼내 그의 눈물을 훔쳐주었다.

그런데 갑자기 선경의 맑은 얼굴이 흐려지더니 문득 말했다.

《아버지, 지난밤 희천에서 중상자가 실려왔다나봐요. 비행기로… 군관이래요!》

《그래?!》

강민혁은 놀라는척 할수밖에 없었다.

선경은 아버지의 표정을 살필 사이가 없이 자기 생각에 잠겨 말했다.

《이런 때 훌쩍 퇴원하자니 어쩐지 죄스럽군요. 의사, 간호원들은 물론… 많은 환자들이 그 군관이 입원한 호동으로 밀려갔어요, 나도 들려보구 갈가요?》

《됐다. 빨리 나가서 일을 하는것이 그를 도와주는거다. 승리를 앞당기는것이! 그 군관은 경제전역의 승리를 위해서 피를 흘린게 아니겠느냐! 지금 숱한 애국자들이 조국의 강성부흥을 위해 피와 땀을 바치고있다. 지어 목숨까지도!》

《아버진… 울고있군요?!》

아무런 기미도 느끼지 못한 선경은 아버지가 그저 격동되여 그러는줄 알고 고운 손으로 그의 두눈에서 눈물을 찍어내고있었다.

이때 간호원이 들어왔다.

그가 받쳐들고 들어온 옷! 그것을 본 선경은 아버지를 놓고 간호원에게 달려들어 빼앗듯 자기 옷을 받아들었다.

《어서 바꿔입고 따라나오너라!》

강민혁이 서둘러 방에서 나갔다.

×

차철군의 종군기.

…김정일동지께서는 오늘 나에게 의학계의 권위있는 학자 여럿을 부르도록 하시였다.

그이께서는 당중앙위원회청사 정원에서 우리들을 맞이하시였다.

해가 재글재글 타는 한낮이였다.

지난밤에 있은 일과 이 시각에 진행되고있는 일을 알고있었던 우리는 그이의 존안부터 우러렀다. 하루밤새 수척해지신 존안은 어두워보였고 고뇌가 너무 짙어서 가슴이 떨릴 지경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중 그 누구도 위안의 말을 찾지 못하였다.

무슨 말씀을 드릴수 있으랴.

괴로운 침묵만이 계속되고있었다. 변이면 이런 변이 어데 있겠는가.

한참만에 그이께서 먼저 말씀하시였다.

《혼자 견딜수가 없어서 선생들을 찾았소. 수술이 몇시간 계속되고있소? 의학에는 최고사령관명령도 통하질 않소?…》

누구도 응답드리지 못하였다.

우리의 머리속에서 언어가 금시 다 새나가버린듯 하였다.

《장군님!》하는 한마디가 남아서 뱅글뱅글 돌고있었으나 공허하게 느껴져 누구도 입밖에 내지 못하였다.

그이의 말씀을 듣기만 하는 난처한 시간이 흘렀다.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 많은 영웅들을 배출한 어느 한 무명고지전투총화에서 지휘관들은 무섭게 비판을 받았소. 희생을 많이 낸 전투였으니까. 그런데 전시도 아닌 평시에 그것도 경제전선에서… 수령님께서 계시지 않으니 누가 우리를 비판하겠소?…》

그이께서는 더 말씀을 잇지 못하시였다. 또다시 오래도록 침묵이 흘렀다.

그 어떤 언어의 명수도 위안의 말을 찾아내지 못할것이다.

이윽하여 그이께서 말씀을 계속하시였다.

《어떤 글을 보면 나에 대한 글을 쓰면서 배짱이 어떻소, 담력이 어떻소 하면서 제나름대로 쓰는데 나의 천성은 사실상 누구보다 무르오.

단지 참는다뿐이지. 하지만 이런 일을 당하고보니… 그는 앞길이 구만리같은 청년이요. 우리의 미래란 말이요.》

우리의 입은 더욱 얼어붙었다.

때마침 전화기의 신호가 울리자 그이께서는 두려우신듯 송수화기를 조심스럽게 귀에 대시였다. 전화를 듣고계시는 그이의 표정이 종잡을수없이 착잡해보이시였다. 한참만에 그이의 간청하시는듯 한 음성이 울리였다.

《의사들에게 맥을 놓지 말라고 하시오. 최고사령관이 명령하는게 아니라 사정한다고 하시오. 알겠소? 사정한다고… 안되오, 안돼. 내가 못견디오, 내가…》

그이의 손에서 송수화기가 떨어졌다. 그이께서 비칠하시였던것이다.

내가 얼른 부축하여 그이를 의자에 앉혀드렸다.

그이께서 말없이 손을 저으시였다.

우리는 조용히 자리를 떴다. 자신의 괴로움을 남에게 보이는것을 질색하시는 그이이시였다.

그이는 홀로 괴로움을 묵새기려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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