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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굴의 인간의 고귀한 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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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0건 조회 2,665회 작성일 17-08-24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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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오늘>

불굴의 인간의 고귀한 한생​

 

- 조선인민군 종군기자였던 비전향장기수 리인모동지의 전생애를 더듬어 -


주체6(1917)년 8월 24일 ~ 주체96(2007)년 6월 16일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세상에 리인모처럼 신념이 확고하고 의지가 강한 사람은 없을것입니다.》

전 조선인민군 종군기자이며 비전향장기수인 리인모동지는 1917년 8월 24일 량강도 풍산군(오늘의 김형권군) 화전농의 가정에서 출생하였다.

일제식민지통치의 암담한 시기 갖은 민족적멸시와 천대를 받으며 살아오던 리인모동지는 위대한 김일성대원수님께서 조직령도하신 항일무장투쟁의 영향하에 일찍부터 반일투쟁에 참가하였으며 조국광복회에 망라되여 나라의 해방을 위하여 용감하게 투쟁하였다.

1930년 8월 불요불굴의 혁명투사 김형권동지께서 인솔하신 조선혁명군 무장소조가 단행한 파발리 내중경찰관주재소습격사건을 직접 목격하고 김형권동지의 격동적인 연설을 들으며 반일투쟁에 나설 결심을 다진 리인모동지는 1931년 8월 파발리에서 조직된 《적색독서회》에 망라되여 소년부책임자로 활동하였으며 1932년과 1933년에 《적색독서회사건》으로 두차례에 걸쳐 일제경찰에 체포되여 1년간 감옥생활을 하였다.

그후 리인모동지는 풍산지구혁명위원회 성원으로서 파발리분회와 황수원언제로동자돌격대, 안산후치령생산유격대 등 혁명조직들에서 정력적으로 활동하면서 투쟁을 중단하지 않았다.

1937년 7월과 1938년 9월에 국내에 나와 활동하시던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동지를 만나뵈운것은 리인모동지의 인생에서 새로운 분기점으로 되였다.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동지로부터 조국광복회조직을 확대강화하며 적구에서의 활동을 령활하게 벌릴데 대한 귀중한 가르치심을 받아안은 그는 조국광복회 하부조직들을 늘이기 위하여 조선인민혁명군의 주요공작대상의 하나였던 《서울콩그룹》에 조국광복회로선을 전달하고 서울의 운동권에 영향을 주었으며 서울지구의 금속, 방직, 섬유, 인쇄, 염색, 피복 등 여러 부문 공장 로동자들속에 들어가 선진분자들로 로조조직을 꾸리고 전민항쟁준비를 위한 기틀을 마련하는 사업을 적극 벌렸다.

해방을 맞이한 리인모동지는 1945년에 북조선공산당에 입당하였으며 위대한 김일성대원수님께서 제시하신 건당, 건국, 건군로선을 받들고 1945년 10월부터 1950년 6월까지 면당위원장, 군당선전부장, 시당선전부장으로 사업하면서 당조직을 튼튼히 꾸리고 광범한 군중을 새 조국건설에로 불러일으키기 위하여 헌신적으로 투쟁하였다.

리인모동지는 미제의 무력침공을 반대하는 조국해방전쟁시기 조선인민군 종군기자로 활동하면서 인민군군인들과 인민들을 원쑤격멸에로 힘있게 불러일으켰으며 1950년 10월 전략적인 일시적후퇴시기 지리산유격대에 들어가 피어린 적후투쟁을 벌리다가 1952년 1월 총상을 입고 적들에게 체포되였다.

그는 광주포로수용소와 형무소를 거쳐 대전, 대구, 마포, 부산, 서울, 청주 등의 형무소로 옮겨지면서 34년간의 옥고를 치르는동안 위대한 김일성대원수님을 언제나 마음의 기둥으로 삼고 그이의 전사답게 조선로동당원의 고귀한 칭호를 빛내이며 원쑤들의 온갖 유혹과 고문, 악형, 전향강요책동에도 굴하지 않았다. 1988년 10월에 페인의 몸으로 석방된 후에도 지리산빨찌산의 투쟁을 소개한 수기를 써서 남조선출판물에 게재함으로써 놈들의 가혹성과 야만성, 반동적인 남조선사회상을 온 민족과 세계의 량심앞에 고발하였다.

투철한 애국의지와 통일의 신념을 안고 변심없이 한생을 바쳐 싸운 불굴의 인간 리인모동지는 위대한 수령님들의 숭고한 혁명적동지애와 의리, 현명한 령도에 의하여 1993년 3월 19일 군사분계선을 넘어 사회주의조국의 품에 안겼으며 당의 크나큰 은정속에서 빠른 시일안에 건강을 회복하게 되였다.

그는 1993년 4월 15일 몸소 병원에 찾아오신 위대한 김일성대원수님을 만나뵙고 기념사진까지 찍는 영광을 지니였으며 입당당시의 당원증번호가 새겨지고 수령님께서 친히 수표하신 새 당원증을 받아안았다. 또한 전승 40돐에 즈음하여 진행된 전국로병대회와 1994년 새해 설맞이공연에 참가하여 또다시 위대한 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의 접견을 받는 영광을 지니였다.

어머니조국의 품에 안긴 리인모동지는 종군기자의 변함없는 자세와 열정으로 자신이 실지 체험한 사실들에 기초하여 당과 수령의 위대성을 칭송하는 문필활동을 정력적으로 벌렸다.

날과 달이 갈수록 더해만지는 혁명전사에 대한 뜨거운 어버이사랑에 매혹된 리인모동지는 헌시 《나의 운명을 두고》, 《사랑에 대한 생각》, 《신념과 의지의 찬가》와 가사 《당신만 있으면 우리는 이긴다》를 써서 위대한 수령님과위대한 장군님께 삼가 드리였다. 또한 기사 《우리는 수령복이 있습니다》, 《우리 나라에 당복이 차넘칩니다》, 《우리 민족의 대행운은 장군복입니다》, 《우리는 태양복에 삽니다》 등을 집필하여 당보 《로동신문》에 발표하였으며 장편회상록 《신념과 나의 한생》(1996년)을 써서 출판하였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장군님의 은정에 의하여 그가 공부하던 파발소학교가 리인모소학교로 명명되고 거기에 위대한 장군님의친필비가 세워졌다. 또한 그에게 공화국2중영웅칭호(1990년, 1997년)와 영예의 김일성훈장(1993년), 3. 1월간상(1993년), 조국해방전쟁승리 40돐기념훈장(1993년)을 비롯한 높은 국가표창과 조국통일상을 안겨주었다.

신념과 의지의 화신 리인모동지는 남조선의 감옥에서 당한 고문의 후과로 2007년 6월 16일 애석하게도 우리곁을 떠나갔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자신의 명의로 화환을 보내주시고 장의식을 우리 당과 조국력사에 일찌기 있어본적 없는 새로운 형식인 인민장으로 하도록 하시고 그의 유해를 애국렬사릉에 안장하도록 크나큰 사랑과 은정을 베풀어주시였다.

2008년 7월 23일에는 평양의 통일거리에 리인모동지의 투쟁모습을 형상한 반신상이 건립되였다.

리인모동지의 전생애는 사람들에게 혁명가는 자기 수령, 자기 당을 신념과 의리로 받들어야 하며 당과 혁명앞에 다진 맹세를 끝까지 지켜갈 때만이 조국과 인민의 기억속에 영생한다는 고귀한 인생철리를 가르쳐주고있다.


 

- 애국렬사릉에 안치된 리인모동지의 묘와 통일거리에 세워진 그의 반신상 -

본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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