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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철올림픽경기대회의 아시아 첫 수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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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0건 조회 1,665회 작성일 18-02-05 1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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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철올림픽경기대회의 아시아 첫 수상자​

 

이제 머지않아 남조선에서는 온 민족의 기대와 뜨거운 관심속에 제23차 겨울철올림픽경기대회가 진행된다. 여기에는 수십명의 우리 공화국선수들도 참가하게 된다.

겨울철올림픽경기대회라고 하면 우리 인민들의 마음속에는 지금으로부터 50여년전 《은반우의 혜성》으로 세계에 명성을 떨쳤던 한필화선수에 대한 추억과 긍지가 먼저 떠오르군 한다.



주체31(1942)년 1월 21일 남포시에서 평범한 로동자의 딸로 태여난 한필화선수는 어려서부터 운동감각이 예민하고 달리기속도가 매우 빨라서 륙상을 배우게 되였다.

꾸준하고 헌신적인 노력과 천성적으로 힘이 센것으로 하여 륙상경기의 여러 세부종목에서 우승의 자리를 차지하군 하던 한필화선수의 남다른 특기를 포착한 학교의 체육교원은 그를 새로 꾸린 스케트소조에 인입하였다.

속도빙상선수의 적성체질을 가지고있던 그는 훈련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 기초기술동작들을 완성하고 전국적인 청소년경기들에서 1등을 하여 《스케트를 잘 타는 소녀》로 불리웠으며 당시 모란봉체육단에서 자기의 재능을 마음껏 꽃피우게 되였다.

주체47(1958)년에 한필화선수는 처음으로 국제경기에 참가하였는데 아쉽게도 성과를 거두지 못하였다.

그는 가슴이 아팠다. 전후 그처럼 어려운 시기이지만 나라일에 바쁘신 어버이수령님께서 몸소 최상급의 경기용스케트까지 보내주시였는데 기술이 모자라 높은 성과를 거두지 못하였으니 이름할수 없는 죄책감이 그의 가슴속에 밀려들었다.

그후 지칠줄 모르는 열정을 안고 은반우를 끝없이 달리고 달린 한필화선수는 주체52(1963)년 2월 일본의 하꼬다데에서 진행된 국제속도빙상경기대회에서 미국선수를 타승함으로써 세계적인 파문을 일으키고 같은 곳에서 련이어 진행된 세계속도빙상선수권대회 녀자 500m경기에서는 세계기록을 두번이나 세워 선수권후보자로 지목되던 강한 적수를 물리치고 대회기록을 0. 7초나 갱신하였다.

그로부터 1년후인 주체53(1964)년 2월 그는 오스트리아의 인스부르그에서 진행된 제9차 겨울철올림픽경기대회 녀자속도빙상 3 000m경기에서 2등을 하여 은메달을 수여받았다.



이것은 주체13(1924)년 프랑스에서 처음 진행된 때로부터 40년동안 계속되여온 겨울철올림픽경기대회에서 유럽나라들이 독점하였던 은반우의 장벽을 뚫고 아시아사람으로서는 처음으로 메달을 쟁취한것으로 하여 세계빙상계에 커다란 파문을 일으켰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주체58(1969)년 11월에 진행된 전국체육인대회에서 한필화선수의 토론을 들으시고 높이 평가하시면서 몸소 그를 자신의 곁에 세우시고 기념사진도 찍어주시였다.

제11차 겨울철올림픽경기대회를 비롯해서 여러 국내경기들과 국제경기들에서 20여개의 금메달을 포함하여 수십여개의 메달을 쟁취한 한필화선수,

백두산절세위인들의 크나큰 사랑의 품속에서 한필화선수는 김일성상계관인, 인민체육인,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으로 성장하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한필화선수가 병으로 앓고있을 때 우리 당이 아끼는 체육인이라고 하시며 치료대책을 세워주시여 그가 체육무대에 다시 나설수 있도록 뜨거운 사랑을 베풀어주시였다.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원수님께서는 온 나라가 위대한 장군님을 잃고 피눈물속에 잠겨있던 그 나날 그의 생일 일흔돐을 맞으며 은정어린 생일상을 보내주시는 뜨거운 사랑을 베풀어주시였다.

어제날 은빛주로를 힘차게 달리며 민족의 영예를 만방에 떨쳤던 그는 오늘도 체육부문의 지도일군으로 청춘의 기백과 열정에 넘쳐 나라의 겨울철체육종목발전에 적극 이바지해가고있다.


본사기자  조선의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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