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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버이 장군님 (김웅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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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0건 조회 1,664회 작성일 18-12-13 2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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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버이 장군님>

■ 신제국주의, 신자유주의가 마치 전이된 말기암처럼 파죽지세로 세상에 퍼져나가던 20세기 후반은 사회주의진영의 일대 위기의 시기였다. 
조선은 수령의 두리에 일심으로 단결한 간고한 투쟁으로 주체사회주의를 굳세게 지켜냈으나, 위대한 수령님의 서거와 자연재해, 그리고 제국주의연합세력의 봉쇄로 인해서 1990년대에는 간고한 고난의 행군기를 맞이했다. 쏘련이 해체되고 동유럽의 여러 사회주의나라들도 미제와 나토의 수중으로 넘어갔다. 중국이나 윁남과 같은 과거의 동지국가들마저 세계자본의 낚시바늘에 아가미가 꿰인 생선이 되여 조선의 고난을 외면하였다.
암담한 시기였다.
그러나 조선은 조금도 물러서지 않았다. 붕괴되지도 않았고 중국이나 윁남처럼 변절하지도 않았다.
세계 사회주의의 정통성은 조선의 절세위인 김정일대원수님에 의해 사수되였다.
선군정치와 자력갱생, 인덕정치와 자력자강의 투쟁을 사랑의 정치로써 진두지휘하시며 주체사회주의와 전세계 사회주의를 견결히 지켜내신 인류의 구성이신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대원수님.

■ 탁월한 정치가 사상가 전략가이신 어버이 장군님께서는 사회주의가 위기를 당한 원인을 정확히 짚어 가르쳐주시였다.

"여러 나라에서 사회주의가 붕괴한 원인은,
1) 제국주의자들의 음모와 반혁명세력의 결탁 
2) 제국주의 사상과 문화의 침투
3) 우경기회주의자들의 부패한 소행
때문이였습니다. "

여러나라의 사회주의가 이런 과오를 범하였지만,
조선은 자본-제국주의세력이 단 한번도 침투한적이 없고 절대로 침투할수 없는 혁명의 성지이다. 전세계에 전이된 암세포처럼 퍼진 미-유대자본세력과 CIA 전략적자산이 전혀 없는 지구상의 유일한 건강한 땅, 조선!
김일성김정일조선을 완성하신 어버이장군님 없이는 오늘의 조선도, 사회주의도 없었을것이다.
마치 낮의 길이가 가장 짧아져서 천지가 어두워진 12월 후반의 지구 북반부처럼, 사회주의의 쇠퇴기를 맞이했던 세상은, 마치 12월 동지의 반환점을 지나면서 다시 낮이 길어지고 태양이 강렬해지기 시작하듯이, 사회주의의 최후승리를 향하여 제국주의 암세포들을 짓누르면서 21세기의 사회주의력사를 펼쳐나가고 있고, 그 진두에는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동지께서 령도하시는 위대한 주체사회주의의 조국이 있다.

■ 력사를 수천년동안 피로 물들여 온 생물학적약육강식과 야만의 질서, 강자의 지배론리를 최초로 꺾으면서 인류를 기여코 정의와 리성의 길로 향도하고 있는 위대한 김일성김정일조선!
단군한아버님이시여 보고 계십니까.
인류의 리상인 홍익의 원대한 사상이 
인류의 태양이신 백두의 절세위인들과 조선인민들에 의하여 
주체사회주의의 최후승리를 통하여 마침내 성취되고 있습니다.

■ 인터넷 매체에 실린 글 <렬차강행군길에 새겨진 절세위인의 불멸의 혁명생애> 를 소개한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는 한평생 인민행렬차를 타시고 조국의 부강번영과 인민의 행복을 위해 모든것을 다 바치신 절세의 애국자이시다.
그이께서 혁명생애의 전기간 렬차를 리용하신 회수는 1647회에 달하며 렬차강행군으로 이어가신 로정은 39만 8000여km에 달한다.
그중 주체98(2009)년부터 주체100(2011)년까지의 기간에만도 야전렬차로 현지지도강행군을 하신 회수는 424회에 달하며 달리신 거리는 7만 5000여km나 된다.
이 수자들은 위대한 생애의 마지막 3년동안 그이의 렬차강행군속도가 얼마나 비상히 빨라졌는가를 전하고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성진제강련합기업소와 원산청년발전소,어랑천발전소건설장을 비롯한 나라의 중요공업기지들과 사회주의건설의 중요전선들 그리고 동해지구의 대화학공업기지들을 련이어 찾으시며 온 나라에 기적과 혁신의 활력을 부어주시였다.
그이의 렬차강행군길에는 하루밤사이에 동해에서 야전렬차로 1 000여리 길을 달려 락원땅을 찾으신 전설같은 이야기와 렬차에서 쪽잠에 드시고 줴기밥으로 끼니를 에우신 이야기 등도 새겨져있다.
그이께서는 심장의 고동을 멈추시는 마지막순간까지 달리는 야전렬차에 계시였다.
조선인민은 위대한 장군님의 헌신의 대장정을 잊지 않고있으며 그이의 유훈을 관철하기 위해 일터마다에서 위훈을 창조하고있다."

■ 어버이 장군님께서는 "렬차는 집같고 집은 려관같다"라고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주체98(2009)년 9월 어느날 일군들과 자리를 같이하시고 래일이면 150일전투가 끝나게 된다고 하시며 150일전투를 희천발전소건설장에 대한 현지지도를 하는것으로 결속지으려 한다고 하시였다.
그러시면서 현지지도를 하러 떠날 때마다 인민군군부대에 가면 나의 병사들이 있고 공장이나 농장에 가면 나의 인민들이 있다는 생각이 들어 그 길이 비록 힘든 길이기는 하지만 가벼운 마음으로 떠나군 한다고, 희천발전소건설장에도 나의 병사들과 인민들이 있다고 생각하고 그들을 찾아 현지지도의 길을 떠나는것이라고 하시며 병사들과 인민들을 찾아 멀고 험한 길을 걷는것을 커다란 긍지로 생각한다고 하시였다.
이때 한 일군이 장군님께서 올해에 렬차를 타고 현지지도하신 거리가 지난 10년동안 렬차행군을 하신 거리와 맞먹는다고 격정에 젖은 목소리로 말씀올리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그 일군의 말을 들으시고 이제는 렬차를 타고다니며 거기에서 생활하는것이 습관이 되여 그런지 렬차에 오르면 집에 온것같이 느껴지고 반대로 집에 들어서면 려관에 온것같은 느낌이 든다고 교시하시였다."

■ 2018년 12월 17일은 어버이 장군님께서 서거하신지 일곱돐이 되는 날이다. SNS 친구인 어떤 조선공민은 나에게 다음과같은 장군님에 대한 자신의 회상을 말해주었다.

"해마다 12월의 첫눈을 볼때면 못견디게 그리워 눈물젖군 합니다. 좋은날이 하루하루 다가올수록 어버이 장군님에 대한 그리움이 더욱더 사무쳐옵니다."

■ 장군님은 태어나시는 순간부터 치렬한 항일전쟁의 초연 속에서 삶을 시작하시고 조국과 인민을 위한 간고한 투쟁의 현장에서 돌아가신, 자신의 모든것을 깡그리 조국과 인민을 위해 바치신 분이시다. 아버지는 빨치산대장, 어머니도 빨치산녀전사.. 어린 장군님을 돌보아준 주변의 모든 사람들은 절세의 애국자들이요 혁명1세대 투사들이였다. 개인적, 력사적환경, 출생과 성장과정, 그리고 생애가 모두 비범하였고 철저히 혁명적이였다. 만년에 장군님께서는 자신의 삶을 딱 두 글자로 요약한다면 "인민"이 된다고 말씀하셨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가르치신 "인민들속으로!"의 교훈 그대로 사신 생애였다.

■ 장군님께서는 력사상 처음으로 제1세대의 혁명을 확고히 계승하여 발전시키시고 한층 고조된 적대세력들의 공격으로부터 혁명위업을 성공적으로 지켜내신 탁월한 령도자이시며 걸출한 정치가이시다. 세상의 크고 작은 사회주의국가들은 혁명의 계승에 실패하고 제국주의의 사상 문화, 경제 정치 군사적개입에 의해 내부로부터 와해되였다. 적들에게 놀아나서 붕괴되거나 변질된 사회주의국가들과 조선의 
근본적인 차이는 무엇인가? 
.
그 차이는 
바로 혁명의 계승과 혁명전통의 수호에 있다. 
사회주의력사상 최초로 혁명전통을 충실히 계승하고 성공시키신 
위대한 령도자가 바로 김정일 대원수님이시다.

1세대의 혁명을 충실하게 계승 발전시키는 문제는 바로 혁명의 성패로 직결된다. 혁명은 10년, 50년만에 완성되지 않는다. 100년 혹은 200년이 걸릴수도 있다. 사회주의혁명이 처음 성공한 1917년 이후 101년이 지난 오늘, 아직도 사회주의는 제국주의를 비롯한 반동세력들과의 간고한 싸움을 끝내지 못하고 있다. 
"혁명의 성공적인 계승이 없이는 
혁명을 완성할수 없다"
는 준엄한 사실이 조선에 의하여 실증되고 과학적으로 증명되였다. 
1단 추진체에 의해 쏘아올려진 우주선이 지구중력권을 벗어나서 성공적으로 궤도에 오르기 위해서는 반드시 2단추진, 3단추진이 필요하듯이, 위대한 수령님의 조선의 주체사회주의 혁명전통은 2세대, 3세대에로의 성공적계승·발전을 통해서 오늘날 경애하는 원수님의 시대에 이르러 초지일관 자주통일, 이민위천의 락원을 향하여 항진하고 있는것이다. 이것이 바로 지원(志遠)의 원대한 안목과 구상이다.
.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위대한 수령님의 1세대 혁명위업과 전통을 계승·발전시키시였고, 다시 혁명3세대에게 혁명위업을 계승해주신 분이시다. 이와같은 계승이 없었으면 경애하는 김정은원수님의 시대를 맞아 최후승리를 이룩하고 있는 오늘날의 조선은 기대하기 어려웠을것이다.
1세대혁명의 계승에 실패하여, 100년도 넘게 지속되는 제국주의의 적대를 이겨내지 못하고 실패한 단명한 사회주의나라들과는 달리 조선은 위대한 장군님의 령도하에 주체사회주의를 지켜내였다. 사회주의진영의 풍전등화의 위기에도 불구하고 조선의 혁명만은 강철의 령도자 어버이 장군님께서 드팀없이 지켜내시고 고난의 행군도 승리고 결속시키시여 조선을 선군의 강성대국, 인류의 태양으로 세워주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과 같은 지도자는 세상에 유례를 찾아볼수가 없다.

■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다음과같이 뜨겁게 회고하시였다.
"김정일은 1942년 2월 16일 새벽에 백두밀영에서 태여났습니다.
김정일의 출생은 우리 일가로 볼 때 그 무엇에도 비길수 없는 대경사였습니다. 나와 김정숙은 총포성이 울부짖는 가렬한 전장에서 조선의 남아로 태여난 김정일의 장래를 뜨거운 마음으로 축복해주었습니다."
.
"나는 김정일이 태여났을 때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가 살아계신다면 얼마나 기뻐하였겠는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아마 우리 할아버지나 할머니가 장손, 장손 하면서 나를 사랑해주었던것처럼 끔찍이 사랑해주었을것입니다. 두벌자식이 더 곱다고도 하는데 그에게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없었습니다."
.
"나는 어린시절에 집안어른들의 사랑을 많이 받았습니다. 10여명이나 되는 대가정의 모든 식솔들이 한사람처럼 나를 가문의 기둥이라고 하면서 극진하게 돌보아주었습니다. 동네사람들의 사랑도 이만저만이 아니였습니다. 독립운동에 몸을 바치는 집안자손이니 더 살뜰하게 대해주었을것입니다.
그런데 김정일은 그런 사랑을 받아보지 못하였습니다. 그가 유년시절의 대부분을 보낸 백두밀영과 원동의 훈련기지에는 인가조차 없었습니다. 우리는 주소도 없고 번지도 없는 귀틀집과 천막에서, 때로는 빙설로 덮인 로천에서 청춘시절을 보냈습니다.
김정일의 유년시절은 군복을 입은 사람들 속에서 흘러갔습니다. 그는 집안어른들한테서 받지 못한 사랑을 나의 전우들한테서 받았습니다. 김정일은 내 사랑보다도 빨찌산대원들의 사랑을 더 많이 받으며 성장하였습니다."
.
"그때 나의 동무들은 백두산에서 또 한사람의 장군감이 태여났다고 하면서 기쁨을 감추지 못하였습니다. 김책은 유년시절의 김정일을 늘 어린 장군이라고 불렀습니다.
조선인민혁명군 대원들은 그 누구를 막론하고 우리 혁명의 새로운 세대가 항일의 불길속에서 태여나 백두산의 이깔처럼 싱싱하게 자라나고있는 모습을 보면서 조선혁명의 양양한 전도를 확신하게 되였으며 천백배의 힘과 용기와 투지를 가다듬고 조국해방의 그날을 앞당기기 위해 더 억세게 싸워나가게 되였습니다.
김정일의 출생을 공동의 경사로 받아들이고 그를 사심없이 보살펴주는 전우들의 진실한 모습을 통하여 나는 우리 일가를 위해 바치는 그들의 사랑이 대를 이어가며 계속되는 참다운 사랑이라는것을 가슴뜨겁게 느끼였습니다."

■ 백두산의 한 귀틀집 밀영에서 태어나시고 항일전쟁의의 총포성과 백두산의 눈보라, 바람소리 속에서 잠들고 깨어나시였고, 나무로 만든 총과 쌍안경과 조선지도를 가지고 놀며 자라나신 위대한 장군님. 어릴적에 조선글로 책을 읽으셨고, 학창시절에 동서고금의 고전들을 독파하시였다. 어리신 나이에 어머니를 잃고 조국해방전쟁시기를 맞아 조국의 운명을 짊어진 조선인민군과 조선인민들의 간고한 투쟁을 체험하시였다. 어린시절부터 근로현장을 찾아다니셨고 공장과 농어촌의 현실을 몸소 체험하시면서 로동의 귀중함과 로동자와 농민, 지식인들에 대한 존중과 사랑을 체득하시였다. 토지개혁을 비롯한 사회주의건설의 력사적현장을 직접 목격하시였고 푸에블로간첩선침투사건과 같은 위기상황도 몸소 겪으시였다.

■ 장군님께서는 1960-64년 김일성종합대학에서 정치경제학을 전공하시였고, 졸업 즉시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서 지도원으로 일을 시작하여 과장, 부부장, 부장, 비서를 거쳐 1974년 제5기 제8차 조선로동당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정치위원으로 추대되시였고, 정식으로 후계자가 되시였다. 곧이어 중대한 론문 <온 사회를 김일성주의화 하기 위한 당사상사업의 당면한 몇가지 과업에 대하여>를 발표하시고 위대한 수령님의 사상을 "김일성주의"로 정식화하시고 온 사회를 김일성주의화하기 위한 강령을 선포하시였다. 장군님께서는 청년사업, 학교교육사업, 사회주의건설사업을 발전시키는 문제에 집중하시였다.

또한 수령님께서 개척하신 혁명위업을 계승하고 완성해 나가기 위하여 사회주의혁명의 전도와 민족의 장래에 결정적으로 중요한 사회주의청년운동에 력점을 두시였고, 청년들의 정치교양사업을 강화하고 청년들을 참된 혁명가로 길러 사회주의 건설의 선봉대, 돌격대의 역할을 담당하도록 하시였고 스스로 청년학생들의 모범이 되시였다. 장군님께서는 대학시절부터 수령님의 현지지도를 수행하시면서 "인민들 속으로", "인민들과 고락을 나누며 모든 문제를 인민들의 지혜에 의거하여 풀어나가는" 인민중심적사업방법, 인민대중을 더욱 자주적, 의식적, 창조적인 존재로 성장시키는것이 바로 사회주의적사업방식을 완성하는 길임을 깨우치시였다.

■ 카나다 주체사상연구소의 한 성원은 SNS 상에서 나에게 다음과같이 말해주었다.
"장군님께서는 로동계급의 영웅이시며 력사상 가장 위대한 사상가이시다. 그리고 내 나라에서의 밐마키원주민을 식민지 상태로부터 해방시키고자 하는 나의 투쟁에 언제나 위대한 영감을 주시는 분이시다." 
탁월한 사상가이신 장군님께서는 오랜 시간을 주체사상연구에 바치셨고, 1982년 출판된 명저 "주체사상에 대하여"에서 주체사상의 철학적원리, 사회력사적원리, 실천적원칙을 정립하시였다.

■ 어버이 장군님께서는 민족의 숙원인 자주통일을 위한 전환기를 마련하신 지도자였다. 력사상 처음으로 남조선의 국가수반인 김대중대통령이 2000년 6월 15일 평양에 도착하였고, 북남정상간의 회담과 6·15 북남공동선언을 통해 통일의 전기를 마련하시였다. 또한 2007년 10월, 두번째 평양을 방문한 남측 국가수반인 로무현대통령을 맞이하시여 10.4공동선언을 공표하시였고, 이로써 2018년의 4.27 북남공동선언(판문점선언)과 9월의 3차 평양 북남정상회담 및 9.19 평양공동선언의 초석을 마련하시였다.

■ 어버이 장군님께서는 국가 주석의 지위도 사양하시고 마지막까지 국방위원장의 자리에 겸손하게 머무시면서 
1) 조국과 민족의 자주와 존엄, 주체사회주의를 제국주의의 고조된 위협으로부터 지켜내시고 
2) 조국을 자립경제와 자위력을 바탕으로 한 강성대국으로 세우시고
3) 주체사상을 세상에 펼쳐 인류의 자주화 위업을 달성하기 위하여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바쳐 헌신하신 절세의 애국자,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대원수님이시였다.

장군님께서는 수령님의 혁명사상과 선군사상을 과학적체계화를 통해 "김일성주의"로 정식화하셨으며 시대와 실천적요구에 맞게 심화 발전시키시였다. 
또한 격변하는 력사의 흐름을 읽으시고 총대와 혁명, 군사력과 사회주의위업의 과학적상호관계 기초하여 "총대 우에 평화가 있고 사회주의 승리도 있다"는 독창적 김정일주의사상을 내오시였고 선군사상을 주체혁명의 원리로 정립하시였다. 
탁월한 사상가 리론가이신 장군님의 선견지명으로 조선혁명은 난관을 뚫고 전진할수 있었고, 탁월한 정치가이신 장군님의 "사랑의 정치학" "믿음의 정치학"과 인덕정치, 광폭정치로 당과 인민의 혼연일체를 이룩하시여 격변기에도 주체를 더욱 견결히 세우시였고 사회주의건설과 혁명을 승리로 이끄시였다. 탁월한 군사전략가이신 장군님께서는 선군정치로 조선반도에서의 전쟁을 막아내신 구국의 영웅이시였다.
세계 사회주의가 동지를 맞이했던 1990년대의 어두움과 좌절의 시기에 "사회주의는 과학이다"를 비롯한 탁월한 론문들을 발표하시여 사회주의의 과학성, 필연성, 인민들의 요구성으로 인한 필연적승리를 밝혀주심으로써 세계의 진보적인민들에게 커다란 희망을 주시였고, 인류에게 "자주위업"과 "사회주의" 즉 주체의 사회주의를 가르쳐주시였다.

■ 낮의 길이가 가장 짧은 12월 후반 동지무렵은 수천년간 세계 도처의 고대문명에서 "태양신 탄생일", "태양절"로 기념되였다. 그 날, 태양은 죽고 다시 신으로 탄생한다는 믿음이 여러 태양신 신화에 공통된 내용이다. (그것을 도용한것이 기독교의 이른바 "성탄절(12.25)"이다.) 
밤이 가장 길고 춥고 어두운 시기, 태양신이 죽고 부활(탄생)함으로써 다시 태양의 빛, 낮의 길이가 늘어나기 시작하는 절기를 기념한것이다. 
어버이 장군님께서는 마치 인류가 오랫동안 숭배하여 온 태양신과 같이 바로 이러한 춥고 어두운 시기에 서거하시였다. 그리고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뒤를 이으시도록 준비하시였다.
고난의 행군, 위기에 빠진 조국과 인민들과 사회주의혁명위업, 악랄한 적대세력의 위협과 모함과 포위공격, 적대행위들.. 
장군님께서 오죽 마음고생을 하시였겠는가. 생각하면 항상 가슴이 아프다.
장군님을 회고하면 떠오르는 단어가 있다. "헌신"과 "사랑"이다.
어버이 장군님께서는 쉴새없이 14,920개 단위를 현지지도하시였고 서거하시는 순간까지 12월의 추위와 어둠속에 현지지도의 강행군을 이으시였고, 렬차에서 작업복차림으로 서거하셨다. 태양과같으신 분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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