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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의 명승 룡악산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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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0건 조회 1,691회 작성일 19-05-08 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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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의 명승 룡악산을 찾아서 (1)

 

얼마전 우리는 예로부터 그 경치가 하도 아름다워 《평양의 금강산》으로 불리우는 룡악산으로 기행의 길을 떠났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룡악산은 봄에는 진달래로 유명하고 가을에는 단풍이 붉게 물들어 경치가 아름답습니다.

우리를 손저어 부르는듯 한 룡악산의 웅자가 점점 가까워올수록 우리의 눈가에 비낀 봄의 정취를 함뿍 머금은 명산의 모습은 바라볼수록 장관이였다.



룡악산이라는 이름은 산봉우리가 마치 룡이 하늘로 날아오르는것처럼 기묘한 생김새를 이루었다는데로부터 유래된것이다.

룡악산기슭에 도착한 우리를 반겨맞아주며 이곳 룡악산유원지관리소 안내원은 룡악산에서의 즐거움은 뭐니뭐니해도 등산에 있다며 우리 일행을 등산길로 안내하였다.

그를 따라 등산의 첫 자욱을 뗀 우리의 눈앞에 듬직한 룡악산의 봉우리를 배경삼아 자기의 독특한 건축미를 자랑하는 평양시전쟁로병보양소가 나타났다.

특색있는것은 전쟁로병보양소와 은정호를 련결하는 구름다리였다. 훌륭한 건물과 아름다운 호수를 이어주는 구름다리의 모양새 또한 자연풍치에 잘 어울리게 기암절벽으로 이채롭게 형상되여있었다.



은정호의 경치를 부감하느라니 보이는것마다 탄성을 자아냈다. 파아란 호수에 하늘하늘 춤추며 날아내려서는 물결을 따라 동동 배놀이하는 꽃잎들, 산뜻한 은정각에서 시작되여 100m나 되게 뻗어나간 외랑, 봄바람에 흐느적이는 수양버들이며 망울을 한껏 터친 꽃송이들로 아름다운 무지개동산을 펼친 갖가지 꽃나무들…

은구슬들이 쏟아져내리는듯 폭포수가 물보라를 일으키는 절벽면의 한쪽에 새겨져있는 《평양의 금강산 룡악산 이천십칠년 오월 십이일》이라는 글발 또한 이채롭게 안겨왔다.

은정호에서 발걸음을 돌려 합각지붕을 듬직하게 떠이고선 유원지문루를 지나니 삼룡골이 나졌다.

여기서 안내원은 우리에게 예로부터 전해내려오는 세마리의 룡에 대한 전설을 들려주었다.

먼 옛날 바다의 룡이 처음으로 바깥세상구경을 하러 조선서해를 따라 거슬러올라오다가 여기 룡악산기슭에서 솟구쳐오르게 되였는데 그만 명산의 아름다운 경치에 이끌려 떠날념을 못하고있다가 돌로 굳어지고말았다는 이야기였다.

구수한 전설에 심취된채 몇걸음 더 올라가는데 또 두개의 룡조각이 나타났다.

그 룡조각을 가리키며 안내원은 《이 두마리의 룡들도 돌로 굳어져버린 룡을 찾으러 왔다가 룡악산의 경치앞에 넋을 잃어 먼저 왔던 룡의 신세를 면치 못했다고 합니다.》라고 웃으며 이야기했다.

등산길을 이어갈수록 세마리의 룡이 그 절경에 반하여 돌로 굳어졌다는 전설처럼 룡악산의 경치는 정말 아름다웠다.

등산길을 따라 얼마간 가느라니 산듯하게 꾸려진 휴식터들에서 즐거운 휴식의 한때를 보내는 근로자들의 모습이 이채롭게 안겨왔다.



가는 곳마다 명소이고 명소마다 야외휴식터들이 그쯘히 갖추어져있으니 룡악산은 말그대로 오를수록 절승이요, 바라볼수록 명산이였다.

미끄러질세라 등산길바닥에 갖가지 문양을 도드라지게 부각해놓고 또 아찔한 바위등판같은데는 란간들이 촘촘히 설치되여있어 우리는 안전하고도 흥겹게 등산길을 이어갈수 있었다. (계속)




평양의 명승 룡악산을 찾아서 (2)

 

힘든줄 모르고 걸음을 다우쳐오른 우리는 룡악산 남쪽중턱에 자리잡은 력사유적 법운암에 다달았다.



우리 민족의 재능이 깃들어있는 귀중한 민족문화유산으로서 국보로 보존관리되고있는 법운암은 고구려시기에 처음 세워지고 조선봉건왕조시기에 고쳐지은것이라고 한다.

법운암 뒤뜰에는 룡악산의 산신령과 하늘의 북두칠성에게 제를 지내는 《산신각》과 《칠성각》이라 부르는 두채의 자그마한 집이 있고 법운암주변에는 천연기념물들인 룡악산느티나무, 룡악산참중나무, 룡악산회화나무, 룡악산은행나무가 푸르싱싱히 자라고있었다.

오랜 세월의 풍파를 이겨내며 꿋꿋이 자라 룡악산의 풍치를 더한층 돋구어주고있는 이 나무들에는 가지가지 전설들이 깃들어있었는데 그중에서도 세그루가 하나의 나무처럼 합쳐진 룡악산은행나무에 대한 이야기는 우리에게 참으로 의미심장한 여운을 안겨주었다.



원래 그 은행나무들은 지난 임진조국전쟁시기 나라를 지켜싸울 뜻을 품은 세 중이 산을 내리기에 앞서 각각 씨를 뿌린것들이였다고 한다.

이들은 얼마후 평양성탈환전투에 참가하였는데 그 전투에서 세 중은 자기의 한목숨을 다 바쳐 승병부대의 지휘기를 서로서로 넘겨주고 넘겨받으며 끝끝내 을밀봉마루에 꽂고야말았다고 한다.

그런데 이 세 중의 장렬한 최후에 대한 소식이 룡악산에 전해진 다음날부터 놀랍게도 세그루의 은행나무들이 자라면서 서로 가까이로 조금씩 죄여들더니 얼마 안가서는 아예 한뿌리에서 돋은 나무들처럼 합쳐지고말았다는것이였다.

오늘도 이 고장사람들은 이름과 나이, 태여난 곳도, 생김새도 서로 다른 그들이였지만 나라를 지켜싸운 애국의 마음은 하나이기에 이들의 넋이 깃든 나무도 하나로 뭉쳐 자라게 된것이라고 말하고있다.

그래서인지 이 세그루 은행나무앞에 가서 가만히 귀를 기울이면 나서자란 이 땅을 지키는 싸움에서는 누구나 한마음, 한모습이 되여야 한다고 속삭이는 소리가 들려오는것만 같았다.

룡악산의 아늑한 곳에는 조선봉건왕조시기 량반자식들을 교육할 목적으로 세운 사립교육기관인 룡곡서원도 자리잡고있었다.



룡악산의 력사유적들과 천연기념물들은 우리 민족의 열렬한 애국심과 뛰여난 재능, 훌륭한 건축술을 후손들에게 깊이 새겨주고있다.

법운암을 돌아보고난 우리는 대봉으로 향했다.

룡악산정점인 대봉으로 가는 등산길은 모두 세갈래로 되여있는데 안내원의 말에 의하면 첫번째 등산길은 비교적 경사가 급하고 기묘하게 생긴 바위들사이로 가야 하고 두번째 등산길은 세길가운데서 제일 짧은것으로 하여 대체로 학생들이 많이 리용한다고 한다. 그리고 세번째 등산길이 제일 길고 험한데 등산길의 경사도는 대체로 45°~60°, 지어 80°가 되는 곳도 있다고 한다.

우리는 경사가 보다 급하고 비좁은 굴길로 되여있다는 제일 험한 등산길을 따라 대봉에 오르기로 하였다.

얼마 안가서 우리앞에는 정말 경사각이 80°가 넘는다는 바위굴길이 나졌다. 일명 《개미굴》로 불리운다는 이 굴길은 한사람이 겨우 지날만큼 비좁았는데 두손을 짚어가며 꼬불꼬불한 굴길을 통과하고나니 이마에 송골송골 땀이 내돋았다.

듣던바대로 룡악산등산길에 올랐던 사람들이 두고두고 잊지 못하며 즐겁게 추억할만 하였다.

마침내 우리는 대봉정점에 자리잡고있는 《송덕정》에 다달았다.



《송덕정》에 오른 우리의 눈앞에 한폭의 그림처럼 아름다운 평양의 일만경치가 펼쳐졌다.

주체사상탑과 과학기술전당의 장쾌한 모습이며 웅장화려하게 일떠선 려명거리와 미래과학자거리의 고층살림집들, 창전거리, 문수거리, 통일거리, 광복거리의 현대적인 고층건물들이 눈뿌리 아득하게 바라보였다.

굽어볼수록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원수님의 령도따라 자력갱생의 기치를 높이 들고 사회주의강국의 령마루를 향하여 비약해가는 평양의 벅찬 숨결, 내 조국의 약동하는 기상이 그대로 한눈에 다 안겨오는것만 같았다.

예로부터 그 경치가 하도 좋아 《평양의 금강산》으로 불리워온 우리의 룡악산.

허나 룡악산은 결코 자연의 경치로만 아름다운 산, 유구한 력사로만 자랑높은 명산이 아니다.

오로지 우리 인민들에게 기쁨과 행복만을 안겨주시려 한평생 온갖 심혈과 로고를 다 바쳐오신 위대한 수령님들과 경애하는최고령도자 김정은원수님의 은혜로운 사랑이 그대로 쌓이고쌓여 명소를 이루고 명승이 된 곳이여서 그 이름 더욱 정답고 자랑스러운것이다.

《평양의 금강산》- 룡악산은 오늘도 절세위인들의 숭고한 인민사랑의 세계를 전하며 인민의 행복넘친 명산으로 빛을 뿌리고있다.

본사기자  조선의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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