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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은 하나이다 (주도일) 항일빨찌산참가자들의 회상기 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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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0건 조회 3,613회 작성일 19-09-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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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은 하나이다

주도일            

 

1931년 가을, 내가 13살때였다. 하루는 우리 집으로 낯모를 청년 4명이 찾아왔다. 그들은 나의 형들과 무엇인가 토의하더니 그중 한 청년만 남고 나머지 청년들은 어디론가 가버렸다.

그날부터 우리 집에 남은 청년은 고방에 들어가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마반산골짜기에 외따로 있는 우리 집에는 그때까지만 하여도 찾아오는 사람이라고는 거의 없었다. 한적한 골짜기에서 소먹이 하나밖에 모르고 자라온 나는 호기심에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고 청년이 들어있는 고방문앞에서 서성거리기 시작했다. 나는 청년이 하고있는 일을 알고싶었다.

어느날 저녁이였다. 일찌기 소먹이를 끝마치고 돌아온 나는 우연히 고방문앞에서 청년과 마주쳤다. 나는 청년이 이끄는대로 고방으로 들어갔다. 석유냄새가 코를 찔렀다. 희미한 등잔불빛에 종이뭉테기들이 보였다. 청년은 삐라(그것이 삐라란것을 나는 후에야 알았다.)를 찍고있었던것이다.

《소먹이기가 싫지 않느냐?》

청년은 자기곁으로 나를 끌어앉히면서 이렇게 물었다. 나는 소먹이기가 싫다고 솔직히 말했다.

《넌 13살이나 되는데 학교도 못가니 참 안됐구나. 그러나 인제 학교에 갈 때가 올것이다.》학교에 대한 말이 나왔을 때 나는 우리 집에서 부치는 땅임자의 아들을 생각하게 되였다.

언젠가 그놈의 집으로 소를 끌고갔을 때 나와 동갑인 그애는 《학교도 못가는 바보야. 소달구지나 끌고다니는 바보야.》하고 나를 놀려주는것이였다. 만약 그때 지주가 곁에 없었던들 나는 그 애의 목을 비틀어놓았을것이다. 분통이 가슴에 치밀어오르면서도 나는 좋은 옷을 입고 가방을 메고 학교에 다니는 그 애를 얼마나 부러워하였던가!

그러던 내가 학교로 갈수 있다니… 나는 기쁨에 못이겨 청년의 곁으로 바싹 다가앉았다.

《아저씨, 언제면 학교로 갈수 있어요?》

《음 그건말이다. 일제놈들과 너의 집 땅임자와 같은 지주놈들을 때려부시면 된다. 그놈들은 우리를 못살게구는 나쁜 놈들이다.》

나는 일제놈들과 지주놈들때문에 소먹이는 일만 하고있으며 학교도 못가고있다는것을 알았을 때 불같은 적개심이 가슴속에 치밀어올랐다.

이때로부터 나는 희미하게나마 원쑤란 무엇인가를 알게 되였다.

그후 나는 청년과 자주 만났다. 나는 청년의 말을 한마디도 놓칠세라 명심해들었다. 그 말은 어린 나의 가슴에 꺼질줄 모르는 불길을 지펴놓았다.

밤이면 우리 집에는 혁명적인 청년들이 모여들었다. 그들은 회의도 하고 삐라도 날라갔다. 삐라는 아래부락 지주네집 대문짝에도 나붙었고 일제놈병영 담벽에도 붙었다. 나는 청년들속에 섞여 삐라도 붙였고 비밀련락도 다녔다.

나는 그것이 원쑤를 쳐부시는 길이라는것을 생각했을 때 무한히 기뻤고 자랑스러웠다.

그런데 청년이 온지 꼭 한해가 된 1932년 가을이였다.

하루는 지주들이 살고있는 아래부락에서 한 청년이 우리 집으로 뛰여올라왔다. 그는 형님들을 만나자 다급히 말했다.

《곧 피하우. 앞잡이들이 우리를 일러바쳤소. 적들이 여기로 올라올것이요.》

고방에 있던 청년과 형님들은 등사기를 안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집에는 나와 어머니가 남았을뿐이였다.

그날저녁 어둠이 마반산골짜기를 뒤덮기 시작할무렵 일제장교놈을 선두로 한 10여명의 위만군놈들이 우리 집으로 달려들었다. 놈들은 우리들을 보자 다짜고짜로 형들이 간곳을 대라고 을러멨다. 그러나 형들이 간곳은 모르기도 하거니와 설마 안다고 하여도 누가 대주겠는가!

우리는 모른다고 내뻗쳤다. 말로써는 굴복시킬수 없다는것을 안 놈들은 드디여 매를 치기 시작했다. 나는 더 참지 못하여 어머니를 때리려고 서두르는 적의 팔에 매달렸다. 그놈은 내 허리를 발로 찼다. 그래도 나는 그놈의 팔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모진 매도 끝끝내 우리의 입을 열지는 못하였다. 적들은 가장집물을 짓부시면서 집안을 온통 뒤집어놓았다. 그러나 단서가 나올곳은 아무데도 없었다.

허탕을 친 놈들은 초조하게 집안팎을 돌아치더니 마당에 쌓인 나무단을 집안으로 끌어들였다. 그리고 불을 달아놓았다. 초가집은 삽시간에 무서운 화염속에 싸여버렸다. 룡마루가 떨어지고 지붕이 타내려앉는것을 보고야 놈들은 너털웃음을 치면서 물러갔다.

우리는 알몸뚱이만 남게 되였다. 어머니는 허리에 상처까지 입었다.

원쑤는 내가 생각해오던것보다 비할바없이 악랄하였다. 그놈들은 인간의 탈을 쓴 야수였다.

분통이 치밀어오른 나는 미친 사람처럼 맴돌아쳤다. 그놈들을 몽땅 잡아치울수 있는 위력한 힘을 가지지 못한것이 여간만 안타깝지 않았다.

나는 타버린 집터에 림시초막을 짓고 어머니를 간호했다. 그리고 채 거두어들이지 못한 곡식들을 날라들였다. 그러면서 형들이 돌아오기만 기다렸다. 그들이 돌아오면 원쑤를 쳐부실 좋은 방도가 나오리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며칠을 기다려도 형들도 청년들도 돌아오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날 우리는 뜻하지 않은 소식에 접하였다. 둘째형과 우리집 고방에 있던 청년이 적들에게 체포되여 총살을 당하였고 맏형과 셋째형은 유격근거지로 들어갔다는것이였다. 집을 불살랐고 가장집물을 태워버린 원쑤들은 사랑하는 나의 형과 그 청년의 목숨마저 빼앗아갔다. 나는 어머니의 주름진 얼굴에서 소리없이 흘러내리는 눈물을 보자 그만 참지 못하여 울음을 터뜨리였다.

그러자 어머니는 내 어깨를 쓰다듬어주면서 말하는것이였다.

《도일아, 울지 말아. 인젠 우리도 네 형들을 따라가야 하겠다. 이 골안에서 더는 살수 없게 됐다.》

어머니는 병석에서 일어났다. 나도 눈물을 씻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더 무엇을 기다리겠는가. 형들도 오지 않고 집도 없어진 이 마반산골짜기에서 우리는 떠나야 했다. 비록 어머니는 몸에 상처를 입었고 나는 14살의 어린 몸이지만 우리의 생명재산을 마음대로 빼앗아가는 원쑤들을 어찌 보고만 있겠는가!

나는 그길로 어머니와 함께 연길현 왕우구유격구로 들어갔다. 유격근거지에서의 간고하고 긴장된 생활은 나의 사상정치적각성을 비상히 촉진시켜주었다. 나는 아동단에 입단하여 부지런히 배웠고 부지런히 일하였다. 나의 소원은 단 하나 어서 커서 적을 무찌르는 유격대원이 되는 그것이였다.

그러나 1933년 겨울, 나의 소원이 이루어지기도전에 적들은 또다시 왕우구유격구로 쳐들어왔다. 우리는 부득불 사방대의 밀림속으로 옮겨가지 않으면 안되였다.

추위와 기아 그리고 병마와 싸우면서 우리 모자는 이해 겨울을 밀림속 나무밑에서 지냈다. 어떠한 모진 고난도 원쑤격멸의 일념에 불타오른 우리 두 모자의 투지를 꺾을수는 없었다.

그러나 그후 처창즈에서 병마와 싸우던 어머니는 《쌀…쌀밥 한숟가락만 먹어봤으면 병이 낫겠다.》고 되뇌이면서 앓더니 더 지탱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왜놈들과 싸우던 맏형과 셋째형마저 전사하였던것이다.

간악한 원쑤들은 나에게서 어머니도 형들도 모두 빼앗아갔다.

그러나 나는 눈물 한방울 흘리지 않았다. 칼이면 칼, 몽둥이면 몽둥이, 그 어느것이나 마구 잡아쥐고 찌르고 때리고 또 찔러도 속시원치 않을 그 악독한 원쑤를 눈앞에 두고 어찌 눈물을 흘릴수 있겠는가!

내 나이는 비록 어리였으나 가슴의 원한은 너무도 컸다.

활화산처럼 솟구쳐오르는 적개심을 안고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순간 내눈앞에는 내가 만나본 항일유격대의 긴 행군대렬이 떠올랐다. 그리고 대렬선두에서 나아가시는 위대한 김일성장군님의 거룩한 모습이 보였다. 인자하시고 너그럽고 영명하신 그 모습 ㅡ 일찌기 그이에 대한 이야기만 들어도 승리의 신심으로 가슴이 부풀어오르던 내가 아니였던가!

아! 그이. 조선인민의 념원과 투지를 한몸에 지니시고 민족해방의 성스러운 무장투쟁을 령도하시는 김일성장군님께서 가까이 계신다.

(더는 기다릴수 없다. 원쑤를 치러나가자. 하루속히 유격대로 들어가자. 그것은 나의 어머니와 형들의 원쑤를 갚는 길일뿐만아니라 착취받고 압박받는 모든 인민들의 원한을 풀어주는 길이다.)

나는 그길로 김일성장군님의 항일유격대에 입대할것을 결심하였다.

이리하여 나와 함께 20여명의 고아들이 유격대에 입대할것을 결의해나섰다. 나어린 소년소녀들의 대렬은 유격대를 찾아떠났다.

눈내린 산길은 험하였고 식량은 떨어졌다. 적들은 도처에서 우리를 위협했다. 우리의 길은 처음부터 간고했다. 그러나 어떠한 모진 곤난도 우리의 투지를 꺾을수는 없었다. 마침내 우리는 20여일의 어려운 고생끝에 한시도 잊을수 없던 유격대를 만났다.

나어린 우리들의 굳은 결의에 감동된 유격대원들은 저마다 우리를 붙안고 놓지 않았다. 나는 미더운 그들의 가슴에 안겼을 때 지나온 고통이 일시에 날아나버리는것 같았다.

《여기가 나의 집이다. 인제 나도 무장을 들고 원쑤와 싸울수 있게 됐다!》나는 솟구쳐오르는 흥분과 기쁨을 가라앉힐수가 없었다. 나는 이 위력한 대오속에서 목숨바쳐 싸우리라고 굳게 결의했다. 이렇게 하여 나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령도하시는 영광스러운 항일유격대의 한 성원으로 되였던것이다.

나는 그후 이 영광스러운 대오에서 원쑤에게 섬멸적타격을 줄 때마다 내가 택한 그 길이 얼마나 정당하였는가를 재삼 느끼군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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