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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청현 쟈피거우전투 (오백룡) 항일빨찌산참가자들의 회상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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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0건 조회 3,701회 작성일 19-09-01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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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청현 쟈피거우전투

오백룡                 

 

1933년 3월이였다. 나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령솔하시는 항일유격대에 입대하여 처음으로 그이께서 직접 지휘하시는 전투에 참가하게 되였다.

우리 중대가 왕청현 쟈피거우를 향하여 소왕청 마촌을 떠난것은 날이 어두워서였다. 우리는 수림속을 뚫고 북으로 행군을 계속하였다.

쟈피거우는 왕청동북쪽 약 40리지점에 위치한 산간부락이였는데 이 부락치기에는 아름드리나무들이 울창하게 들어서있었다.

당시 일본제국주의자들은 중국 동북을 영구히 강점하여 그것을 전 중국과 쏘련을 침공하기 위한 발판으로 만들기 위하여 군용철도를 부설하며 전주를 세우는 등 도처에서 군사시설공사에 광분하고있었다. 적들은 수많은 인민들을 강제로 동원하여 이곳 쟈피거우골짜기에서도 전주와 철길침목용목재들을 달구지로 실어내고있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여기 길옆에 매복하였다가 이 달구지행렬을 《호위》해다니는 적들을 불의에 습격하여 무장을 탈취할 계획을 세우셨다.

종전까지만 하여도 우리는 주로 소수인원으로 무장을 획득하였으며 집단적으로 한다고해도 10명내외의 인원들이 기습의 방법으로 무장을 탈취하였다. 그러나 김일성동지께서 제시하신 현명한 무장투쟁로선을 받들고 급속히 장성강화된 우리 유격대는 이 시기에 와서는 벌써 1개중대이상의 병력들이 집단적으로 무장탈취투쟁에 동원되기 시작하였고 그것도 이동하는 적을 매복전으로 기습하여 일시에 많은 무기를 탈취하는 등 그 규모가 커지고 방법이 퍽 발전되였었다. 위대한 수령님의 지휘밑에 진행된 왕청현 쟈피거우전투는 그의 전형적인 실례로 된다.

중대는 김일성동지의 친솔하에 쟈피거우골짜기에 도착하자 길좌우편에 진을 쳤다. 길 북쪽산릉선에는 2개소대가 매복하고 그 맞은편 길 남쪽산릉선아래 묵밭에는 1개소대가 매복하였다. 나와 김창섭동무는 길에서 한 20m가량 떨어진 홈타기에 마른 덤불로 위장을 하고 엎드렸다.

그리고 한개분대가량 되는 병력은 우리가 있는데서 왕청쪽으로 1㎞쯤 떨어진 길 북쪽산릉선에 방차대로 나가있었다. 방차대는 왕청쪽에서 오는 적을 감시하는 동시에 전투가 벌어졌을 때 적의 후속부대가 접근해오는것을 방어할 임무를 맡고있었다.

사령부지휘처는 길 북쪽무명고지에 있었다.

우리는 날밝기전에 만단의 전투준비를 갖추었다.

나는 김일성동지께서 계시는 고지쪽을 바라보기만 하여도 마음이 든든해지고 승리의 신심이 저절로 솟구쳐올랐다. 이것은 비단 나혼자만의 심정이 아니였다. 김일성동지의 지휘를 받게 된 전체 대원들이 이런 신심에 불타고있었던것이다.

어느덧 날이 훤히 밝아오기 시작했다. 어둠속에 가리웠던 물체들이 하나둘 그의 륜곽을 드러내놓았다.

우리의 뒤에는 군데군데 눈이 남아있는 경사진 묵밭이 수림으로 잇닿아있었는데 수림까지는 200m가 되나마나하였다.

동쪽산마루에 해가 솟아올랐다. 나는 긴장하여 적정을 살피면서 한편 손에 쥔 무기를 자주 내려다보았다.

당시 내가 가지고있은 무기는 토퉁이였다. 토퉁도 역시 보병총의 일종이기는 하였으나 탄알을 한발씩 재우는것으로서 적들이 가지고있는 38식보병총에 비하면 아주 락후한것이였다. 게다가 나는 탄알 5발밖에 가지고있지 못하였다. 그래서 나는 이번 전투에서 어떤 일이 있더라도 38식보병총과 많은 탄알을 적들에게서 빼앗아내야 하겠다고 결심하였다.

나는 이제나저제나 하고 적들이 나타나기만 기다렸다. 그러나 적들은 얼른 나타나지 않았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나는 더 자주 지휘처쪽을 바라보았다. 우리의 심정을 꿰들고계시는 김일성동지께서 새로운 대책을 취해주실것만 같이 생각되였기때문이였다. 그러던차에 나는 그 언젠가 김일성동지께서 하시던 말씀을 문득 생각하고는 저도모르게 얼굴을 붉혔다.

아는것이 힘이요. 모르는 사람은 언제나 지는 법이요. 우리는 배워야 하오. 우리는 용감한 빨찌산대원일뿐만아니라 인민들을 교양하는 선전자이며 조직자가 아닌가. 그럴수록 우리에게는 지식이 필요하며 리론이 필요하오.

그러나 행군과 전투가 일과나 다름없는 우리 유격대원들에게 언제 학습할 시간이 따로 있겠소. 한가한 시간을 보아서 학습하자는것은 결국 학습을 하지 않겠다는거나 마찬가지요.

우리는 길을 걸으면서도, 싸움을 하면서도 짬만 있으면 배워야 하오.

나는 지나치게 긴장하여 귀중한 시간을 헛되이 보낼번한 자신을 꾸짖었다.

나는 이미 배운 문제들을 머리속으로 열심히 복습하였다. 그럴 때였다. 아래쪽골짜기에 적들이 나타났다는 신호가 왔다. 그것은 오전 10시경이였다.

(그럼 그렇지. 이놈들 어디 갈데 있나.)

나는 하마트면 소리를 지를번 하였다. 흥분과 기쁨으로 뒤설레는 가슴을 지그시 눌러가면서 나는 그쪽을 주시했다. 약 20명가량의 자위단놈들이 총을 메고 걸어오고있었다. 그놈들의 뒤에는 흰옷을 입은 인민들이 달구지를 몰고 련달아섰다. 달구지는 얼핏 보아도 70대는 넘는듯 그 행렬의 끝이 잘 보이지 않았다.

나는 자위단놈들이 어깨에 멘 보병총들을 보자 저도모르게 가슴이 울렁거렸다. 나는 총가목을 으스러지게 틀어쥐였다. 맨앞에 서서 걸어오는놈은 권총을 찼는데 어깨로부터 가슴으로 붉은 천을 둘러치고있었다. 나는 첫눈에 그놈이 자위단장이라는것을 알았다.

적들은 점점 가까와왔다. 나는 자위단장놈의 가슴팍에 총구를 겨누고 사격명령만 기다렸다.

적들이 바로 내 눈앞에 이르렀을 때였다. 갑자기 무엇을 생각하였는지 자위단장놈이 우리쪽 길옆으로 터벅터벅 걸어나왔다. 무슨 냄새를 맡은것이나 아닌가 하고 나는 숨을 죽이고 그놈의 동정을 뚫어지게 살폈다.

자위단장놈은 내가 있는데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좀 언덕진곳에 올라서더니 몸을 뒤로 제끼고는 길게 늘어선 자위단원들과 달구지의 행렬을 거만하게 바라보면서 제혼자 뇌까리는것이였다.

《흠. 공산당이 나타나만 봐라. 모조리 잡아치우겠다.》

그놈은 자기들의 력량이 대단히 강한줄로 믿는 모양이였다. 자위단장놈은 손으로 권총집을 탁 치더니 길을 향해 다시 걸어나가는것이였다.

그놈의 얄미운 꼴을 보니 나의 가슴속에서는 당장 쏘아눕히고싶은 충동이 일어났으나 아직 사격신호가 없으므로 기다릴수밖에 없었다.

바로 그때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사격개시를 알리시는 총소리가 골짜기에 울려퍼졌다. 다음순간 묵밭 여기저기서 일제사격이 터져나왔다. 나는 우선 눈앞에서 얼른거리던 자위단장놈을 첫방에 쏘아눕혔다. 삽시에 자위단장놈을 비롯한 7~8명의 적들이 쓰러졌다. 실로 통쾌한 장면이였다. 단장놈이 쓰러지는것을 본 나머지 적들은 혼비백산하여 숨을곳을 찾아돌아쳤다. 자위단놈들이 습격을 당하자 달구지군들은 길옆으로 피하였다. 살아남은 적들은 되는대로 몇방씩 총질을 하기 시작했다.

이때 적 한놈이 내앞으로 곧추 뛰여오더니 나있는데서 불과 5m도 못되는 피짚낟가리속에 머리를 틀어박았다. 밖으로 환히 드러난 그놈의 궁둥이가 류달리 흉하게 보였다. 나는 재빨리 그놈을 겨누었다. 그 순간 그놈은 피짚낟가리에서 황급히 뛰쳐나오더니 이번에는 내 뒤켠에 있는 피짚낟가리로 뛰여가 그속에 또다시 머리를 틀어박는것이였다. 나는 날쌔게 그놈을 겨누어쐈다. 요란한 총성과 함께 피짚부스레기들이 풀썩 날아오르자 그놈은 무기를 내동댕이치고 비칠거리면서 수림속으로 몇발자국 내뛰더니 앞으로 푹 꼬꾸라졌다.

적들이 이렇게쯤 되자 우리는 총쏘는것을 멈추고 함화를 웨쳤다.

《우리는 무기를 요구하지 생명을 요구하지 않는다!》

《일제침략자놈들때문에 개죽음을 하지 말라. 집에서는 너희들의 부모처자가 기다리고있다!》

이 웨침소리를 듣자 어떤 놈들은 땅바닥에 엎드린채 총만 꼿꼿이 쳐들고 어서 가져가라고 하였다. 그러나 몇몇 악질적인 놈들은 계속 발악하였다.

이때 돌격나팔소리가 랑랑하게 울렸다. 우리는 땅을 차고일어나 만세를 부르면서 적들에게로 뛰여나갔다. 나는 발악하는 적들을 쓸어눕히고 38식보병총을 4정이나 로획했다. 우리가 한창 싸우고있을 때 왕청방향길쪽에 배치되였던 방어대에서는 달구지행렬의 뒤를 따르던 일제수비대와 싸우고있었다. 이날 탄약과 밀가루포대들을 실은 달구지행렬의 맨뒤에는 10여명의 일제침략군놈들이 경기관총 1정을 가지고 따라왔는데 더러는 달구지에 올라타고 더러는 걸어오고있었다. 별로 전투준비도 갖추지 않고 따라오던 이놈들은 우리 방어대의 불의의 사격을 받자 곤경에 빠진 자위단놈들을 구출할 생각은 못하고 제놈들만 살겠다고 부리나케 왕청쪽으로 도망쳐버렸다.

전투는 오후 1시경에 끝났다. 총성이 요란하던 쟈피거우골짜기는 또다시 깊은 정적속에 잠겨버렸다.

우리는 이날 전투에서 수많은 38식보병총과 적지 않은 탄약을 로획하였다.

전투가 끝나자 우리는 승리의 기세드높이 귀로에 올랐다.

나는 토퉁대신에 38식보병총을 멨다. 너무도 마음이 흐뭇하여 걸으면서도 몇번이고 총을 만져보았다.

사실 우리가 단꺼번에 그렇게 많은 38식보병총을 로획한것은 이번이 처음이였다.

마촌이 가까와왔다. 붉은기를 휘날리며 나팔소리를 울리면서 승리하고 돌아오는 우리의 대오를 보자 유격근거지내 인민들은 남녀로소 할것없이 모두 떨쳐나와 환영하였다. 넥타이를 목에 메고 허리에 곤봉을 찬 아동단대렬이 일제히 손을 쳐들고 《항상준비!》하고 우리를 마중하였다.

마중나온 군중에게 둘러싸이신 김일성동지께서는 손을 높이 드시고 그들의 열광적인 환영에 답례하시였다.

기쁨에 넘친 인민들의 얼굴을 보니 우리의 가슴은 한없는 기쁨으로 뒤설레였다.

밀림속을 뚫고온 행군의 피곤도 아랑곳없이 우리는 성수가 나서 어쩔바를 몰랐다.

(인민들을 위해서 싸우는것이 이래서 좋구나!)하고 나는 몇번이고 마음속으로 되뇌였다.

그날 저녁이였다. 유격대의 승리를 축하하여 유격근거지내 인민들이 푸짐하게 음식을 만들어 우리를 대접하였다. 변변치 못한 살림살이에 그들이 얼마나 우리를 믿고 사랑하였으면 이같이 환대해주었겠는가! 그뿐이 아니였다. 소년선봉대원들과 아동단원들은 다채로운 연예공연으로 우리를 축하해주었다. 공연을 관람하는 나의 마음은 한량없는 감격과 흥분으로 가득찼었다.

(우리의 진두에 김일성장군님께서 서계신다. 그리고 우리를 이처럼 열렬히 받들어주는 미더운 인민들이 있다. 이제는 무기도 새것으로 바꾸어멨다. 내 무엇이 부족하여 적과 싸워서 이기지 못하랴!)

나의 가슴속에서는 승리에 대한 확고부동한 신심이 더욱 세차게 타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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