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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도에 대한 이야기》 (김철호) 항일빨찌산참가자들의 회상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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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0건 조회 3,498회 작성일 19-08-31 2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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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도에 대한 이야기》

김철호             

 

1937년 5월중순경에 있은 일이였다. 내가 속한 조선인민혁명군 제4사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작성하신 국내진출계획에 의하여 두만강을 건너 무산군일대에서 활동하였다.

어느날 우리 부대는 무산군 붉은바위라는곳에 진출하여 일제가 경영하는 목재판을 습격하였다. 우리는 그곳에서 일제놈들과 악질주구놈들을 소탕하고 많은 식량과 물자들을 로획하였다.

동시에 우리 유격대원들은 인민들속에서 조선인민혁명군에 대한 해설선전사업을 진행하였다. 우리는 로획한 식량과 물자를 운반하기 위하여 자진해나선 100여명의 인민들과 함께 유유히 두만강을 건넜다.

다음날 아침에 뒤에 남겨둔 방차대동무들이 강을 건너와 산에 올랐는데 그때에야 일본《토벌대》놈들이 마구 총을 쏘아대며 미친개모양으로 따라오다가 강기슭까지 왔다가는 비실비실 돌아가고말았다.

유격대원들은 로획한 물자를 정리하며 한편으로는 식사들을 했다. 여기서 우리는 40여명의 인민들만 남기고 나머지인민들은 고향으로 돌아가게 하였다. 점심때가 거의 되였을 때 지휘부에서는 《토벌대》놈들이 추격해오리라는것을 예견하고 행군명령을 내렸다.

우리는 밀림속을 헤치며 서남쪽으로 행군해갔다. 이 지대는 밀림바닥이 대부분 속새판이였으므로 한번쯤 디뎠다놓아서는 풀이 다시일어나 발자국이 나지 않았다. 때문에 우리는 대개 횡대를 지어 속새판을 지나갔다.

저녁녘에 우리 부대는 대마록구하 상류지대에 당도하였다. 밀림속을 벗어나니 후련하게 넓은 진펄 새밭이 깔린 골짜기가 나타났다. 그 건너편은 다시 수림이 덮인 산에 잇닿아있었다. 우리 부대는 새밭을 헤치며 건너가서 산밑에 제방처럼 둔덕진곳에 자리잡고 숙영하게 되였다.

우리는 소나무를 찍어다가 여기저기에 초막을 치고 숙영준비들을 하였다.

유격대원들은 오매에도 잊지 못하던 조국땅을 밟아본 감격과 국내진출의 첫전투에서 성공한 기쁨으로 하여 노래도 부르고 유쾌한 이야기꽃을 피우며 흥성거렸다.

저녁에 소를 잡아 각 중대에 분배하여 오래간만에 푸짐하게 식사들을 하였다. 날이 어둡자 초막들에서는 활활 우등불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당시 련대장이였던 최현동지는 지휘부에 회의하러가고 피곤한 대원들은 우등불가에 발을 모으고 곤히 잠들기 시작했다.

그날 나는 식사당번이였으므로 식기들을 치우고는 다음날 아침식사준비를 위하여 소고기를 손질했다. 뼈를 갈라내고 탕을 쳐야 하겠는데 식칼이 없었으므로 나는 《치도》(일본군대 총창)를 사용하기로 했다. 당시 우리 유격대원들은 일제놈들에게서 로획한 《치도》를 무기로 사용하는 한편 흔히 생활도구로도 사용하였었다. 그런데 나의 《치도》하나만 가지고서 탕치기가 퍽 불편하였다. 나는 생각다못해 가까이에 누워자는 련대나팔수 김자린동무의 《치도》를 잠시 사용하고 돌려줄 생각이 났다.

도마우에 고기를 올려놓고 량손으로 탕을 치는데 왜그런지 그날밤 나의 마음은 명절이나 맞는것처럼 즐겁고 유쾌하였다.

나는 고기를 다 손질하자 《치도》를 물에 잘 씻어서 내것은 칼집에 꽂고 김자린동무의것은 나무단우에 올려놓았다. 일하던것을 다 치우고난후에 초막으로 가지고들어가려는 심산이였다. 그런데 일을 끝내고는 그만 《치도》생각을 깜빡 잊어버렸다.

나는 초막에 들어가서 총을 안고 배낭에 기대여누웠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회의에 갔다온 련대장이 일어나서 뭐라고 말하는바람에 나는 눈을 떴다. 련대장은 보초장을 불러 무슨 정황이 없는가고 물었다. 보초장은 《새밭에서 설렁거리는 소리가 났으나 아무리 살펴도 인기척은 없습니다. 아마 노루같은 짐승이 싸다니는 모양입니다.》하고 대답했다. 련대장은 머리를 기웃거렸다. 이때 새밭속에서 버스럭소리가 들려왔다. 순간 련대장은 《언덕밑으로 넘어섯!》하고 구령을 쳤다. 그러자 유격대원들은 벌떡 일어나 모두 총들을 들고 언덕밑으로 넘어섰다. 이와 거의 동시에 우등불무지에 수류탄이 날아와 터지면서 불무지가 헤쳐지고 갑자기 사방이 캄캄해졌다.

새밭속으로 기여든 《토벌대》놈들은 마구 사격하기 시작했다. 조금후에 우리가 있는 뒤산에서도 적들이 사격하며 내려왔다. 우리는 만약의 경우를 예견하고 미리 행동방향을 지시받고있었으므로 언덕밑 웅뎅이를 끼고 날쌔게 옆으로 빠져나갔다. 놈들은 우리를 꼼짝못하게 포위하려고 계획한 모양이였다. 그런데 앞뒤에서 달려들던 적들은 우리가 감쪽같이 옆으로 빠져나간것을 모르고 어둠속인지라 저희들끼리 서로 맞불질을 하기 시작했다. 점점 더 세찬 총성이 일어나고 제놈들끼리의 개싸움은 일층 격렬해졌다.

이리하여 숙영지는 수라장이 되고 총소리가 콩볶듯이 밤하늘에 울렸다. 유격대원들은 총한방 쏘지 않고 놈들의 개싸움을 구경하면서 산으로 빠져올라갔다. 이때 나는 밀림속으로 달리다가 문득 《치도》생각을 하고 멈춰섰다. 《치도》는 귀중한 무기의 하나요, 또 그것은 더구나 김자린동무의것이다. 무기를 잃은데 대하여 엄한 처벌이 있을것도 사실이지만 그러나 그것보다도 동지의 무기를 사용하다가 잃어버렸으니 2중3중의 죄과를 범하는것이며 또한 동지에 대하여 한없이 미안한 일이 아닐수 없었다. 거기에는 또한 소고기를 탕쳐놓은 그릇도 있었다. 이런 생각을 하니 나는 그냥 갈수가 없었다. 나는 가던 길을 돌아서서 《치도》를 찾아오기로 결심했다. 우리가 숙영하던 부근까지 가보니 거기에서는 한창 격렬한 싸움이 벌어지고있었는데 바로 우리 초막이 있던 자리는 탄알이 날아오고 날아가는 중간지대로 되고있었다.

나는 생각다못해 총을 잔등에 지고 탄우속을 뚫고 기기 시작했다. 앞이 캄캄하여 어방을 잡을수가 없었다. 탄알이 금방 내 잔등을 스치는듯 싶었다. 나는 땅에 납작 몸을 붙인채 한치한치 기여나아갔다. 나는 두손으로 앞을 더듬으며 여기저기 헤맸다. 얼마후에 소고기를 탕치던 칼도마가 손에 잡혔다. 계속 그 근처를 살펴보는데 탕쳐놓은 소고기소랭이가 손에 닿았다.

나는 그것을 한손으로 끌면서 다시 《치도》를 찾아돌아갔다.

한참후에 나무단이 손에 잡히기에 그것을 끌어당기니까 털썩 하고 《치도》가 땅에 떨어졌다. 나는 그것을 손에 쥐니 얼마나 기쁜지 막 소리라도 치고싶었다. 이때 적탄이 나의 머리를 스치며 군모를 벗겨버렸다. 나는 다시 어둠속에서 군모를 얻어내고야 말았다. 나는 《치도》와 고기소랭이를 안고 다시 그곳을 빠져나오기 시작하였다. 적들의 개싸움은 그칠줄을 모르고 밤새 계속되였다. 나는 산으로 빠져올라가 새벽녘에야 우리 부대동무들을 만났다.

나는 련대장에게 이 사실을 보고하고 처분을 기다렸다. 련대장은 무경각하게 그런 사고를 저지른것은 유격대원으로서 수치스러운 일이라고 엄하게 책망했다. 나는 아무 대꾸도 하지 못하고 서고만있었다. 그는 다시 《이번 일을 앞으로의 교훈으로 삼으시오. 그〈치도〉를 자린동무에게 돌려주고 사과하시오.》하고 부드러운 어조로 말하였다.

엄격한 처벌이 내릴줄로만 생각했던 나는 련대장의 관대한 처분에 감격하지 않을수 없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자기 잘못을 뉘우치고 다시는 그런 과오를 범하지 않을것을 굳게 다짐하였다.

나는 김자린동무에게 《치도》를 돌려주고 나의 잘못을 심심히 사과하였다.

나는 날아드는 총탄을 헤치고 꺼내온 소고기로 아침식사를 준비하여 동무들에게 대접하였다. 어떤 동무들은 《남의 〈치도〉를 쓰다가 잃었던 사실은 좋지 못한 일이지만 하여튼 그 복새통에 들어가서 소고기소랭이까지 안고나온것을 보니 철호동무의 담통도 보통이 아닌걸.》하고 말하는것이였다.

적들은 날이 밝은후에야 개싸움을 그쳤는데 낮에 내려가보니 놈들의 추악한 시체가 너저분하게 널려있었다. 우리는 숙영하던 자리에서 배낭들을 얻어내여 지고왔다.

이 일이 있은후부터 나는 순간도 자기 무기를 소홀히 생각하지 않게 되였으며 그야말로 자기 생명과 같이 아끼고 보호하게 되였던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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