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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에로 진군하던 길에서 (백 학 림) 항일빨찌산참가자들의 회상기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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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0건 조회 1,620회 작성일 19-09-13 2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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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에로 진군하던 길에서

 

백 학 림

 

생각은 어제 같은데 벌써 많은 세월이 흘러갔다.

그러나 세월이 얼마를 더 거듭해도 나의 가슴을 그렇게 격동시킨 항일무장투쟁의 그 모든 나날과 특히 경애하는 수령 김일성동지의 친솔밑에 조국땅 보천보에 진공하여 일제를 무찌르던 그때의 감격은 언제나 잊을수 없다.

1937년 봄이였다.

경애하는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중국 동북일대와 조선국내의 광활한 지역에 조직된 조국광복회 조직들과의 련계밑에 유격투쟁을 일층 강화하고 조선인민에게 광복에 대한 굳은 신심을 북돋아주기 위한 국내진공을 준비하시였다. 그리하여 조선인민혁명군 주력부대는 경애하는 수령 김일성동지의 친솔밑에 조국을 향하여 행군을 개시하였다.

무송현과 림강현 접경지대를 지나 장백현 지양개에 도착한 우리 부대는 조국의 땅 보천보에로 진군할 전투준비를 갖추고있었다.

이때는 5월이였다. 그러나 백두밀림의 기후는 아직 차거워서 대원들은 밤이면 우등불을 피우고 지냈다. 우리 호위병들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계시는 천막가까이에 둘러앉아 우등불을 피웠다.

처음에는 불길이 잘 일지 않고 습한 연기만 삼타래처럼 피여오르면서 바람결을 따라 이리저리 몰리군 했다.

《꼬마대원》지봉손동무는 자기쪽으로 연기가 몰릴 때면 얼굴을 뒤로 돌리고 손을 휘휘 내저었다.

《내굴은 저쪽 집으로 가라! 내굴은 저쪽 집으로 가라!》

그가 손시늉을 하면서 유쾌하게 웃는바람에 옆에서 동무들의 이야기를 듣고있던 나도 따라 웃었다. 그러다가 나는 문뜩 위대한 수령님께서 계시는 천막을 바라보고는 웃음소리를 거두며 봉손동무의 팔을 당겼다. 천막쪽을 바라본 봉손동무는 물론이고 다른 동무들도 인차 조용해졌다. 그리고 초불을 켜고 앉아계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천막쪽으로 모두들 시선이 쏠렸다.

불빛에 비친 그이의 모습이 조용히 움직이고있었다. 국내진공을 계획하시면서 더욱 잠을 잊으신 경애하는 수령 김일성동지! 이날밤 지휘관들과 대원들을 일일이 보살피시고 또 밤이 깊도록 작전계획을 짜시던 위대한 수령님의 모습은 오늘도 그대로 내기억에 생생하다.

이윽고 우등불이 활짝 피여올랐다.

밤은 깊어가고있었으나 동무들은 저마다 나직한 소리로 이야기를 계속하고있었다. 이때 나는 아직 밟아본적이 없는 조국땅을 그리면서 묵묵히 앉아있었다.

우리 할아버지가 살았다는 함경북도의 어느한 어촌마을을 머리속에 그려보았으나 그앞에 펼쳐진 바다가 얼마나 넓으며 어떠한 고기들이 잡히는지조차 짐작할수 없었다. 다만 일제침략자들과 지주들의 참을수 없는 악착한 만행의 정경만이 눈앞에 증오스럽게 떠올랐고 그곳을 떠나서 중국으로 오던 때 할아버지가 겪었다는 울분만이 그대로 내가슴에서 소용돌이쳤다.

이럴 때였다. 우등불가에서 불덩이를 뒤지고있던 전달장(호위병 책임자)김봉석동무가 나를 잠시 건너다보더니 어린 동생을 애무하듯 다정하게 《학림동무는 아직 조선에 가본 일이 없다지? 그러니까 우리들보다 더 조국이 그리울거야.》라고 말하면서 나를 찬찬히 살펴보았다.

《그럼 내가 알고있는 우리 고향이야기라도 들려주지.》하고 전달장동무는 내곁에 가까이 다가와앉으며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했다.

… 그의 고향은 함경남도의 어느곳이였는데 집뒤에는 그의 할아버지가 심어놓은 큰 배나무가 있었다.

그 배나무에서는 해마다 주먹같이 큰 배가 많이 열리였다. 그런데 40리밖에 사는 최가라는 지주놈은 그 나무에 열린 배를 한알도 다치지 못하게 하면서 전부 자기에게 바치라고 하였다. 어린 봉석동무는 그 까닭을 몰랐다.

《어째서 우리 할아버지가 심은 배나무가 최가의것이란 말인가.》하는 생각으로 그는 배를 마음대로 따먹었다. 이것을 안 지주놈은 어린 봉석이를 몹시 때렸다. 그리고 그가 따먹은 배값의 몇갑절이나 되는 돈을 물라고 그의 부모를 몰아댔다.…

어린 시절에 있은 이런 일을 회상하면서 김봉석동무는 격분하여 말하였다.

《이제 고향땅에 가면 그 최가라는 지주놈의 모가지를 비틀어놓고 말테야!》

그의 말을 듣는 다른 동무들도 모두 격분을 참지 못했다.

《아무렴, 일제와 지주, 자본가놈들을 모두 때려없애야 해. 우리가 싸우는 목적이 바로 그것이니까.》

이렇게 말소리가 높아졌을 때 경애하는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천막밖으로 나오셨다.

우리들은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앉소!》

그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면서 우리들과 함께 우등불가에 앉으셨다.

그리고 우리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살펴보셨다.

《그래 동무들은 무슨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하고있었소?》

위대한 수령님의 이 물으심에 봉석동무가 선뜻 대답하였다.

《예. 고향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있었습니다.》

《아아 그래, 고향집은 참 좋은곳이지.》하시면서 고향에 대한 회상을 더듬으시는듯 잠시 말씀을 끊으셨다가 다시 우리를 돌아보셨다.

우리는 언제나 그이께서 하시는 이야기를 듣는것을 매우 기뻐했다.

동무들이 모두 그이를 우러러보고있을 때에 나는 자세를 바로잡으며 평양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말씀드렸다.

《그래 학림동무는 이국태생이고 어려서 혁명군에 들어왔으니까 평양은 구경도 못했겠구만.》하고 나를 바라보시면서 평양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셨다.

그때 경애하는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하신 말씀을 나는 지금도 잘 기억하고있다.

평양은 고구려의 도읍지로서 우리 나라의 고대문화를 자랑하는 고적과 유물이 많은곳입니다. 이런 고적들과 유물들은 인류문화의 보물고에 크게 기여하고있습니다. 또한 예로부터 평양인민들은 조국을 열렬히 사랑하였습니다. … 당나라의 대군이 평양을 침범했을 때 평양인민들은 영용하게 싸워서 적군을 물리쳤습니다. 임진조국전쟁때에도 평양인민들은 왜적을 영용하게 물리쳤으며 그때 김응서장군의 용맹과 계월향 같은 녀인들의 애국적인 절개는 그의 훌륭한 모범으로 되고있습니다. 평양인민들은 또한 대동강하류로 침입해온 미국해적선《셔먼》호를 격파한 일도 있고 3.1인민봉기때에는 일제를 반대하여 대중적으로 힘차게 일어나 싸웠습니다.

위대한 수령님의 이러한 말씀은 우리들의 가슴마다에 민족적긍지감을 더욱 높이 불러일으켜주었으며 국내진출을 앞둔 우리들의 전투사기를 더욱더 고무하여주었다.

이야기는 어느덧 저마다의 고향의 순박한 풍속이며 아름다운 산천에 대한 회상으로 넘어갔다.

우리들의 이야기를 듣고계시던 그이께서는 나의 곁에 앉은 전달장을 바라보시며 물으셨다.

《그래 동무의 고향에서는 어떤 음식을 제일 일러주오?…》

그런데 봉석동무가 미처 대답할 사이도 없이 《꼬마대원》봉손동무가 불쑥 나섰다.

《우리 고향에서는 귀밀떡을 제일 좋아합니다.》

그바람에 모두들 와그르르 웃음보를 터뜨렸다.

사실 궁벽한 화전촌에서는 귀밀떡이 찰떡을 대신했다.

경애하는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크게 웃으시며 평양에서는 랭면을 제일 일러준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평양의 자연경치의 아름다움에 대하여 말씀을 계속하시였다.

평양의 모란봉은 마치 모란꽃처럼 기묘하게 생겼습니다. 우리의 선조들은 모란봉을 사랑하여 이곳을 꽃이 만발하고 록음이 우거진 아름다운 동산으로 가꾸었습니다. 깎아지른듯 한 청류벽밑으로는 물맑은 대동강이 굽이쳐흐릅니다. 청류벽우에 자리잡은 부벽루에 오르면 구름을 타고앉은듯한 감을 느끼는 경개좋은곳입니다. 그런데 바로 이 모란봉이 지금은 일제놈들의 술놀이터로 되고있으며 고역에 시달리는 우리 인민들은 그곳에서 휴식조차 못하고있습니다.

그러시면서 그이께서는 어렸을 때에 독립운동을 하시던 아버님께서 일제경찰에 체포되여 감옥에 투옥당한 비보를 듣고 통분해하시던 때의 이야기도 하셨고 고향인 만경대에서 일제의 참을수 없는 탄압과 수모를 받고계시는 조부모님과 숙부님에 대한 말씀도 하셨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두리에 모여앉아 이야기에 열중하고있던 우리들은 모두 흥분하고있었다.

이럴 때에 《꼬마대원》봉손동무가 또다시 그이께 만경대이야기를 들려달라고 졸랐다.

경애하는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시면서 다음과 같이 말씀을 계속하시였다.

만경대는 내가 자란곳이요. …동무들도 다 제 고향을 사랑하듯 나도 만경대를 사랑하오! 풀 한포기, 나무 한그루에도 모두 고향사람들의 뜻과 지성이 깃들어있는것이요. 내가 심은 나무들도 지금은 퍽 컸을것이니까. 왜 이런것을 생각하지 않으며 사랑하고 소중히 여기지 않겠소.

그이께서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시며 다음과 같은 말씀을 들려주셨다. 그것은 만경대에 대한것은 아니였으나 우리에게는 잊을수 없는 감명깊은 말씀이였다.

우리 조선은 아름답기로 세계에 이름난곳이여서 《조선의 금강산을 한번 보았으면 죽어도 원이 없겠다.》고 한 어느 외국의 귀족도 있었습니다. 또한 조선은 예로부터 문명하고 례의도덕이 밝은 나라로 알려져왔습니다. 지방에 따라서 차이는 있으나 조선의 어느곳, 어느 마을을 찾아봐도 모두다 맑고 푸른 산천과 아름다운 풍습을 가지고있어서 처음보는 사람으로하여금 잊을수 없는 인상을 받게 합니다. 이 훌륭하고 소중한것들은 만경대에도 있고 봉석동무나 봉손동무의 고향에도 있고 학림동무의 할아버지가 살던 함경북도의 바다가에도 있을것입니다. 이 아름답고 소중한것들은 우리의 부모형제들이 피땀으로 이루어놓은것들입니다. 그런데 지금 이 모든것은 일제와 그 주구들에게 무참하게 짓밟히며 략탈당하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민족문화와 슬기로운 력사대신에 일제의 《동조동근》이니 《내선일체》니 하는 등의 참을수 없는 치욕이 강요되고있으며 이를 반대하여나선 애국자들은 학살되고있습니다. 또한 조선의 청년들은 일제의 강요에 의해서 전쟁의 대포밥으로 될 위험에 직면하고있습니다. 이 모든것은 조선사람들이 죽지못해 억지로 살아가고있다는것을 말해줍니다. 우리가 이런 국내형편을 보고만 있을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만난을 극복하고 일제와 싸워서 조국을 반드시 광복함으로써 우리 민족을 망국노의 처지에서 벗어나게 해야 합니다.

우리는 광범한 지역들에 조국광복회를 조직하였고 국내에 많은 지하공작원들을 들여보내여 수많은 인민들을 반일투쟁에 일으켜세웠습니다. 이제 우리는 압록강을 건너서 조국땅에 들어가 일제의 아성에 불을 지르려 합니다. 물론 우리가 한번의 전투를 통해서 일제를 소멸하리라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국내에 진출함으로써 자기들을 구원해줄것을 손꼽아기다리고있는 인민들에게 커다란 승리의 신심을 불어넣을수 있게 됩니다.

그리하여 일제를 무찌르고 압박받는 우리 동포들에게 나라를 찾을수 있다는 희망과 신심을 북돋아주어야 합니다.

말씀을 끝마치시고 우등불앞에서 열기오른 우리들을 돌아보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문득 《봉손동무!》하고 부르시며 그의 바지를 가리키셨다. 그의 바지에서는 연기가 문문 나고있었다.

그는 위대한 수령님의 말씀에 열중한 나머지 불꽃이 튀여 바지에 당긴것도 모르고있었던것이다.

지봉손동무는 그제서야 《아야아야》하면서 불티를 털기 시작했다.

《경각성이 없군.》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고 봉손동무를 바라보시며 웃으시였다.

이 말씀은 우등불앞에서는 언제나 옷을 주의해야 한다는 유격대규률에 대한 요구이기도 하였다.

우리들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들려주시는 이야기를 듣기에 밤이 깊어가는줄을 몰랐다.

얼마후에 그이께서는 우등불가에서 일어나셨다. 우리들도 따라일어섰다.

하늘에는 별들만이 총총이 반짝였다.

우리는 모두 조국에로의 진격의 벅찬 감격을 안고 남쪽-조선의 하늘을 한참동안이나 바라보았다.

그후 며칠만에 우리는 그립던 조국땅, 보천보로 진군하였다. 그리하여 승리의 개가를 온 세상에 떨쳤다. 이날 보천보거리에서 일어난 승리의 만세소리며 경애하는 수령 김일성동지의 두리에 모여든 수많은 인민들의 감격어린 모습이며 조국땅의 흙을 두손으로 움켜쥐고 뺨에 비비던 일이며 그 흙을 배낭에 넣고떠나던 그 모든 일들이 오늘에 와서도 나의 회상을 불러일으키며 가슴을 두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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