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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관을 뚫고 (지경수) 항일빨찌산참가자들의 회상기 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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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0건 조회 6,587회 작성일 19-09-04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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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관을 뚫고

지경수               

 

1940년 11월이였다.

당시 내가 속한 소부대는 동녕현 오배일대에서 지방인민들과 튼튼한 련계를 맺고 지하정치공작을 진행하고있었다.

이 시기 적들의 《토벌》은 극심하였다. 우리 부대가 활동을 전개하고있던 동녕, 녕안, 왕청현 등지에서는 적들의 대부대가 개떼처럼 싸다니면서 산과 부락을 샅샅이 훑고있었으며 지방인민들을 《통비자》라 하여 체포학살하고 부락들을 불살라버리는 만행을 감행하였다.

이리하여 지방인민들과의 련계는 차차 끊어져가고 식량조차 보충받을곳이 없게 되였다. 그러나 이러한 속에서도 우리의 소부대는 활동을 멈추지 않았고 인민들을 승리에로 불러일으키는 지방정치공작과 적에 대한 정찰사업을 멈추지 않았다.

이러한 어느날이였다. 우리 소부대는 맡겨진 임무를 끝내고 지휘부가 있는 녕안현 대화첨구로 이동하게 되였다.

이때 우리 소부대가 처한 정황은 각각으로 위험에 직면하였다.

우리 소부대성원은 전부 18명이였으며 개중에는 부상자와 환자들이 적지 않았다. 게다가 투쟁경험이 적은 신입대원들까지 7~8명이나 있었다.

이러한 력량으로 수백배에 달하는 적들과 싸울수도 없었으며 또한 적들과 정면충돌을 하는것은 우리 소부대의 임무가 아니였다. 어떻게 하여서라도 우리는 적들을 피하면서 지휘부를 찾아가서 수행한 임무와 동녕현일대의 적정에 대한 보고를 해야만 하였다.

우리 소부대는 행군을 시작했다. 나는 두명의 대원을 데리고 대렬앞에 서서나갔고 그뒤에는 군의외 몇동무가 4명의 환자를 업거나 부축하면서 따라섰다.

수림속에는 《토벌대》놈들이 싸다닌 발자국이 여기저기에 널려져있었다. 밤이 어두워지자 《토벌대》놈들은 사방에서 우등불을 피웠다.

우리들은 놈들의 우등불사이사이를 피해가면서 행군을 계속하였다. 이렇게 하면서 우리가 목릉현과 동녕현경에 있는 밀림지대에 들어선 어느날이였다.

쉬임없이 내리는 눈은 허리를 쳤고 몰아치는 눈보라는 걷는 사람들의 뺨을 사정없이 휘갈겨서 앞길을 살피기가 곤난하였다. 이러한 때였다. 우리앞에서 갑자기 《누구냐!》하는 소리가 들렸다.

《너는 누구냐!》하고 나는 서슴없이 맞받아웨쳤다.

그러자 놈들은 무작정 총을 쏘기 시작하였다.

이때 군의동무와 나는 불의에 조우한 적들을 대항하여 싸우면서 환자들과 신입대원들을 급히 후퇴시켰다. 그리고 우리를 뒤따르는 적들을 향하여 맹렬한 반격을 가하면서 후위를 담당한 우리들도 후퇴를 시작하였다.

가렬한 전투는 약 30분간이나 계속되였다. 어둠이 뒤덮이고 우리가 완강히 응전하게 되자 적들도 더는 추격하지 못하였다. 이러한 조우전은 세번이나 거듭되였다.

그러나 난관은 적과 전투를 자주 한다거나 굶주리는 그것뿐만이 아니였다. 령하30℃의 혹한이 계속되는 속에서 《쫄라병》(영양부족과 추위에서 오는 병으로서 사지가 가다들어 몸을 움직일수 없다.)환자들을 간호해야 하는 문제엿다. 그런데 약이나 죽은 고사하고 눈을 녹인 더운물 한모금조차 권할수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될수 있는대로 《쫄라병》환자들을 계속 업고걸었으며 잠시 쉴 때에도 그들을 끼고 앉아서 자기 몸으로 그들의 몸을 녹여주거나 팔다리를 주물러주기에 노력하였다. 그중에서도 김만수동무는 행군 첫날부터 《쫄라병》이 생겨서 한걸음도 걸을수 없게 되였다. 그는 한사코 자기를 수림속에 남겨두고 가라고 하였다.

《나 하나때문에… 시간이 늦어지면 어떻게 합니까!》

그러나 우리는 환자들때문에 가끔 위험에 처하기는 하였으나 그렇다고하여 적들이 싸다니는 수림속에다 동지를 남겨둘수는 없었다. 군의동무와 오준옥동무는 그를 설복하여가면서 계속 업고 걸었다.

《잠시만 더 참소! 이제 대화첨구까지는 얼마 남지 않았으니까 그곳에 가면 몸을 녹일 장소도 있고 우리가 지난번에 묻어둔 식량도 있을거요.》

군의동무의 이 말은 비단 김만수동무에게만 하는 말이 아니였다. 며칠째 낟알한알 먹어보지 못한채 끝모를 심산수림속으로 환자들을 업고가는 동무들을 고무하는 말이기도 했다.

차디찬 눈과 솔잎을 뜯어먹으면서 우리는 10여일만에 대화첨구근방 수림에 도착하였다.

그러나 《토벌대》놈들은 여기에서도 산을 뒤졌으며 우리가 묻어두었던 식량을 파헤쳐갔고 작은 무쇠솥마저 파괴하여버렸다.

우리는 놈들이 파가다가 흘린 벼알을 주어모았다. 그것은 불과 한두줌을 넘지 못하였다.

밤이 어두워진뒤에 우리들은 눈을 파헤치고 마른 나무가지에 불을 달아놓고 깨여진 솥쪼각에 벼알을 닦았다. 여러날동안 차디찬 눈과 솔잎으로 끼니를 이어오던 때이라 벼알을 닦는 불기운과 고소한 냄새가 참을수 없이 속을 뒤집히게 하였다.

이때 군의동무와 오준옥동무는 거뭇거뭇하게 된 뜨거운 벼알을 손에 쥐고 비볐다. 그리고 그것을 또 다른 솥쪼각을 리용하여 가루를 냈으며 눈녹인 물에 다 풀었다. 그리고 그것을 환자들에게 약간씩 나누어마시게 하였다. 그런데 불과 한그릇을 넘지 못하는 미음은 네사람의 환자들이 골고루 입을 대고도 거의그대로 남았다. 김만수동무는 떨리는 손으로 미음그릇을 쥐고는 물끄러미 들여다보다가는 도로내놓았다. 몇번을 거듭 권했으나 그는 입을 다물고 거절했다. 귀중한 음식을 희망없는 자기에게 권하지 말고 다른 동무들이나 기운을 돋구게 하라는것이였다.

군의동무는 피기없는 그의 얼굴을 가슴아프게 들여다보다가 의리상으로 보아 어떻게 혁명동지를 뒤에 두고가느냐고 하면서 김만수동무의 손발을 주물러주고 가슴도 문질러주었다. 그러면서 그는 옆에 모여앉은 다른 동무들도 다 들을수 있는 말로 이야기를 하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친솔하신 조선인민혁명군의 한 부대가 1938~1939년 겨울에 적들이 첩첩히 포위한속에서 하루에 10여차씩이나 전투를 하면서도 끝내 어려운 행군에서 승리한 이야기며 이른봄부터 가을까지 열달동안이나 밥구경을 제대로 못하였고 나중에는 풀뿌리, 나무껍질마저 없어졌을 때에도 희망을 잃지 않고 싸워이긴 1935년 처창즈유격근거지인민들의 불굴의 투지 등을 상기시켰다. 그는 계속하여 혁명승리에 대한 확고한 신심을 가져야 한다는것과 《쫄라병》이나 굶주림쯤은 능히 극복할수 있는 난관이라는것을 일깨웠다.

다음날 우리들은 몇개의 조로 나뉘여져 지휘부를 찾아떠났다. 그 다음날도 찾았다. 그러나 몇십리주위를 찾았으나 수림속은 간곳마다 《토벌대》놈들이 미친개떼처럼 싸다닐뿐 지휘부를 만날수 없었다.

그러나 우리들은 투쟁을 멈출수 없었다. 어떻게 해서든지 적들속에서 벗어나야 하며 지휘부를 찾고 임무를 보고해야만 하였다.

우리들은 또다시 적들속을 뚫고 밤을 새워가면서 대밀림지대를 걷고있었다. 환자들을 업고 신입대원들을 부축하면서 계속 걸었다. 아마도 5~6일은 걸은듯 하였다. 그러나 불과 몇십리를 걷지 못하였다. 그러는 사이에도 《쫄라병》환자들의 증상은 시시각각으로 심하여졌고 신입대원들은 몇발자국씩 걷다가는 쓰러지군 하였다.

어떤 동무들은 단 하루만이라도 쉰 다음에 가자고 간청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군의동무는 쉬지 말고 계속 걸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굶주리고 지친 몸이며 특히 《쫄라병》환자들이 혹한속에서 운동을 정지한다는것은 스스로 위험을 초래하는것이기때문이였다. 그리고 원쑤들이 우리의 발자국을 발견하고 뒤따를수 있었다. 우리들은 혁명가들이다, 우리의 행군은 혁명을 위한 행군이다, 앞으로는 이보다 더 큰 난관도 있을수 있다, 우리들은 모든 난관을 뚫고 일제놈들과 싸워이겨야 한다, 우리들은 이렇게 서로 고무하며 산등성이로 해서 동쪽에 솟아있는 큰 고지를 향하여 올라가고있었다. 약 30분간 행군한듯 하였을 때 오준옥동무가 적들이 누렇게 산으로 기여오르고있는것을 보았다. 그는 《적이다!》하고 큰소리를 쳤다.

군의동무는 몇동무를 시켜서 《쫄라병》환자들을 부축하여 가게 하고 나와 오준옥동무를 불러 부대후위를 담당하라고 하였다.

적들은 우리가 후퇴하는 등성이와 량쪽골짜기에서 포위태세를 취하면서 악랄하게 달려들었다. 적과의 거리는 지척이였다. 적들은 달려들었다가는 우리의 강한 반격앞에서 쓰러지군 하였다.

우리들은 진대나무를 의지하여서 쏘고 또 얼마큼씩 가다가 숨어서는 쏘군 하였다. 이럴 때에 《쫄라병》이 심한 김만수동무는 자기때문에 부대의 전진이 지연되여 위험한 처지에 있음을 알고 동지의 잔등에서 굴러떨어졌다. 그는 우리의 손을 뿌리치며 앉은 자리에서 진대나무에 의지하여 싸창으로 달려드는 적과 싸웠다. 원쑤들은 김만수동무에게 투항하라고 소리쳤다. 그러나 유격대는 투항을 모른다고 웨치면서 달려드는 적들에게 련속 복수의 불벼락을 퍼부었다.

이런 때에 김만수동무는 우리에게 어서 그 자리를 떠나달라고 웨쳤다. 그러자 이 소리를 들은 적들은 만수동무에게 화력을 집중하였다.

《김만수동무를 구하라! 적들에게 죽음을 주라!》는 소리가 사방에서 일어났다. 수림속을 얼마쯤 빠져나갔던 신입대원동무들도 되돌아선것이다. 이 강력한 반격에 적들은 물러섰다.

이사이에 우리들은 서로 엄호해가면서 령마루에 올랐다. 우리들은 동쪽에 펼쳐져있는 무연한 활엽수림속으로 자취를 감추었다.

그러나 우리의 용감한 전우 김만수동무는 여러곳에 부상까지 당하여 더욱 위급해졌다. 우리들은 그를 번갈아업으며 약속된 지점에 이르렀다. 얼마후에 뒤떨어졌던 동무들도 도착하였다.

우리는 여기서 오래 머무를수 없었다. 비록 적들의 포위에서는 벗어났으나 우리의 귀중한 전우인 김만수동무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서는, 아니 그보다도 사업보고와 적정보고를 지휘부에 1분이라도 급히 전하여 적들에게 백배천배의 복수를 주기 위해서는 우리들의 사소한 지체도 용납될수 없었다.

다시 행군을 시작한 우리들은 동녕현 2도구근방에서 끝내 부대지휘부를 만났다.

이렇게 우리는 중첩되는 난관을 뚫고 자기에게 맡겨진 임무를 수행하였다.

무엇이, 그 어떠한 힘이 우리들을 이 첩첩한 포위속에서 20여일씩 굶으면서 그리고 4명의 환자까지 업고 이끌면서 끝끝내 난관을 뚫게 하였는가!

그것은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현명한 령도를 따르는 우리의 혁명위업은 반드시 승리한다는 확고한 신념, 억천만번 죽더라도 원쑤를 치자는 일념, 사랑하는 조국을 짓밟고 인민을 노예화하는 일제침략자들에 대한 참을수 없는 분노가 우리 가슴에 불타고있었기때문이다.

만일 이것이 아니였더라면 우리는 한걸음도 전진을 못했을것이라고 지금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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