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길현 왕우구어귀전투 (최 현) 항일빨찌산참가자들의 회상기 1-22 > 통일게시판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통일게시판

연길현 왕우구어귀전투 (최 현) 항일빨찌산참가자들의 회상기 1-22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강산
댓글 0건 조회 4,032회 작성일 19-09-06 09:17

본문

연길현 왕우구어귀전투

최   현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항일유격대를 조직령도하시는 첫시기 우리 유격대에 있어서 중요한것은 우선 더 많은 무기를 로획하는것이 긴요한 일이였다. 그것은 우리 유격대의 력량을 강화하여 일본침략자들에게 더욱 강력한 타격을 가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1932년경에는 적의 무기를 한자루한자루씩 탈취해냈다면 1933년에 들어서면서부터는 많은 무기를 단꺼번에 탈취하는 방법을 적용했다. 이것은 물론 쉬운 일이 아니였다. 많은 무기를 단꺼번에 탈취하려면 무장한 일만군대를 상대로 하여야 했는데 우리 유격대는 그때까지도 토퉁, 양포와 같은 락후한 무기, 심지어는 도창무기까지도 사용하는 형편이였다.

우리에게는 좋은 무기라고는 얼마 없었다. 이러한 까닭에 우리 유격대원들은 적의 약한 고리를 기습하여 무기를 탈취하여야 하였다.

이때는 무기를 로획하기 위한 투쟁에 유격대원들뿐만아니라 자위대원들을 비롯하여 광범한 조직군중이 망라되였었다.

1933년 봄이였다.

이러한 시기에 나는 건강이 좋지 못하여 부대와 같이 출정하지 못하고 자위대원들을 데리고 왕우구에서 근거지를 방어하는 일을 지도하고있었다.

어느날 자위대원 몇명이 나에게 달려와 왕우구어귀의 인민들이 전한 정보를 알렸다.

정보에 의하면 왕청현 백초구에서 연길쪽으로 향해가던 위만군 15명이 왕우구어귀에 있는 주막집에서 밤을 보낼 모양이라는것이였다. 자위대원들은 놈들을 습격하여 무기를 탈취하자고 거듭 제기하였다.

그런데 이때 유격대장이하 전체 대원들이 해란구쪽으로 출정한 때였으므로 왕우구에는 유격대원이 나혼자밖에 없었으며 무기도 또한 내가 가지고있는 칠성자1정과 작탄 몇개와 창 몇자루밖에 없었다. 그리고 자위대원들은 전투에서 단련되지 못했었다.

그런데 적들은 비록 위만군이라고는 하지만 일정한 훈련을 받은데다가 좋은 무기까지 가졌으므로 서뿔리 놈들을 습격할수는 없었다. 그러므로 나는 우선 정찰을 보냈다. 그 부근에 다른 적정이 있는가 없는가, 적의 경계상태가 어떠한가, 그리고 적들을 감쪽같이 습격할만 한 조건이 있는가를 잘 탐지하라고 지시하였다.

몇시간후에 정찰대원이 돌아와서 보고하는바에 의하면 근방에 다른 적정은 없고 적보초는 집앞대문에 서있으며 뒤켠 울타리에 구멍이 나있다는것이였다.

그리고 집은 중국집인데 적들은 량쪽 캉(중국식온돌방)을 차지하고있으며 캉에는 중창(가운데 창문)이 달려있다고 하였다.

나는 잠시 생각했다. (적들이 깊이 잠든 밤중에 그 울타리구멍으로 감쪽같이 들어가 작탄을 중창문으로 던지면 될것이 아닌가. 그런데 문제는 대문에 서있는 보촌놈이 눈치를 차리지 못하게 해야 할것이다. 만약 그놈에게 발각되는 날이면 싸움은 커질것이다. 그러니까 전투행동에서 은밀성을 보장하는것이 매우 중요하겠다.)

나는 자위대원 두 동무를 그 주막집근방에 또 파견하였다.

우리가 습격하기전에 다른 적정이 나타나지 않는가를 감시케 한것이다. 그리고 다른 대원들에게는 입을 막을 천쪼박을 준비시켰는데 그것은 그때 우리가 사용한 폭탄이 무쇠쪼각에 고추가루를 혼합하여 만든것이기때문에 그 고추가루에 의한 피해를 없이 하기 위해서였다. 밤에 주막집방안에서 행동할것이므로 전지도 준비시켰다.

출발에 앞서 나는 습격대원들에게 우리는 적들보다 무장이 약하기때문에 은밀하고도 민첩하게 접근하여 적들이 행동하기전에 우리가 먼저 손을 써야 한다고 주의를 주었다.

날이 어둡자 나는 자위대원 30여명을 데리고 왕우구를 떠났다. 우리는 칠성자 1정과 창들 그리고 작탄 몇개를 휴대했었다.

지척을 가릴수 없을만큼 캄캄한 밤이엿다. 우리가 왕우구어귀에 이르렀을 때는 밤이 퍼그나 깊었었다.

나는 일부 대원들을 보내여 백초구와 연길쪽에서 오는 길을 지키게 하였다. 나머지 대원들을 인솔한 나는 은밀히 주막집근처에 도착했다. 이제부터는 정말 소리를 내지 말고 울타리 있는데로 접근해야 한다. 그러나 그 일이 쉬운것은 아니다. 캄캄한 밤길이니 더욱 그랬다. 조금만 발을 헛디뎌도 무엇에 부딪치는 소리가 일어나는데 그 소리가 우리에게는 굉장히 크게 느껴지였다. 얼마후 우리는 쥐도새도모르게 그 울타리구멍으로 들어가 주막집 중창문밑으로 다가들었다. 중창문안에서는 코고는 소리가 새여나왔다.

나는 아래쪽창문밑으로 몇동무를 보내여 작탄을 들여뜨리게끔 준비하게 하였다. 그리고 준비가 끝났을 때 나는 신호를 하였다. 창문안으로 일시에 작탄들이 날아들어갔다. 그러자 요란한 폭음이 조용한 밤공기를 찢었다. 우리는 비명을 지르는 놈들의 방안에 뛰여들었다. 전지불을 비쳐보니 아직 살아있는 놈들이 연신 재채기를 하면서 눈을 붙잡고 돌아가면서도 허겁지겁 벽에 걸려있는 무기를 잡으려고 덤비고있었다. 그러나 적들은 창을 든 우리앞에서 거꾸러지고말았다.

그리하여 대문에 서있던 보초놈과 약삭바른 한두놈이 도망쳤을뿐 기타는 전부 녹아나고말았다.

우리들은 1명의 부상자도 내지 않고 그처럼 귀중한 장총(마레샹) 12정과 2,000여발의 탄환을 로획하였다.

첫 습격전투에서 승리하고 그처럼 부러워하던 총을 어깨에 멘 자위대원들의 기세는 여간 높지 않았다. 우리들이 돌아오면서 어찌나 기운차게 노래를 불렀던지 도로주변 인민들이 밤중인데도 모두 뛰여나와 우리의 승리를 기뻐하면서 대오를 따르는것이였다.

나는 적들이 반드시 우리를 추격해오리라는것을 예견하고 무척 피로해하는 자위대원들을 쉬우지 않았다. 나는 그들에게 로획한 새 무기의 사용법을 가르쳐주고 사격련습을 시켰다.

아니나다를가 이날밤의 참패를 만회해보려고 일본《수비대》놈들 100여명이 위만군을 앞세우고 이튿날 아침일찍부터 왕우구로 밀려들어왔다. 하지만 그때는 벌써 적이 집요하게 달려들것을 미리 예견하고 로약자들을 사방대쪽으로 대피시킨 뒤였다.

적들은 력량상 압도적으로 우세하였다. 그렇기때문에 우리는 적과 정면으로 전투할수는 없었다. 그래서 나는 자위대원들을 지휘하여 사방대방향으로 조직적으로 철수하면서 힘에 겨운 방어전을 진행하였다.

우리는 전날밤 적들에게서 로획한 바로 그 무기를 손에 잡고 싸웠다. 우리는 사격하기에 유리한 지형에 적을 유인하여가지고는 본때있게 불벼락을 안기군 하였다.

우리가 사방대의 밀림속까지 철수하였을 때 해가 졌다. 그러자 적들은 마침내 기진맥진하여 돌아가버렸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서비스이용약관 모바일 버전으로 보기 상단으로


Copyright © 2010 - 2023 www.hanseattle1.com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