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의 첫걸음  (오 백 룡) 항일빨찌산참가자들의 회상기 2-13 > 통일게시판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통일게시판

배움의 첫걸음  (오 백 룡) 항일빨찌산참가자들의 회상기 2-13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강산
댓글 0건 조회 6,217회 작성일 19-09-28 01:07

본문


배움의 첫걸음

 

오 백 룡

 

우리 속담에 《낳은 정보다 길러준 정이 더 크다.》는 말이 있다. 이는 참으로 뜻깊은 말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경애하는 수령 김일성동지의 깊은 사랑과 우리 인민을 오늘과 같은 행복의 길로 이끌어주신 그 위업은 그 어떤 말이나 글로도 다 표현할수 없다.

지난날 항일무장투쟁초기부터 그이께서는 우리들에게 조선혁명에 관한 전략전술을 가르쳐주셨으며 혁명적세계관의 넓은 안목을 키워주셨다.

위대한 수령님을 내가 처음 뵈온것은 1933년 초였다. 그때 안도에서 반일인민유격대를 조직하고 오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왕청에 있는 우리 중대와 소대, 분대에가지 내려오시여 대원들을 만나셨으며 먹고입는것, 총을 쏘고 글을 배우고 정치토론을 하는것 등 모든것을 일일이 보살펴주시고 유격대를 조직사상적으로 강화할데 대한 방침을 제시하셨다.

그중에서도 지금껏 생생히 기억하고있는것은 다음과 같은 말씀이다.

우리 유격대는 다만 적과 싸우기만 하는 군대인것이 아니라 인민의 리익과 념원을 실현하기 위하여 투쟁하는 공산주의투사가 되여야 하며 인민들을 혁명승리에로 불러일으키는 조직선전자로, 교양자로 되여야 합니다.

그런데 아직 우리들가운데는 일상 쓰는 우리의 글조차도 모르는 사람이 있습니다. 배우지 않고는 맑스-레닌주의과학의 높고 위대한 봉우리에 올라설수 없습니다. 유격대원들도 투쟁하면서 배워야 하며 우선 우리 글부터 빨리 배워야 합니다.

사실 그 당시 우리 중대에만 하여도 자기 이름조차 옮겨적을줄 모르는 동무가 적지 않았다. 나역시 나이는 19살이였으나 극빈한 가정에서 글한자 배우지 못한 처지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말씀을 듣게 되니 그때까지 배우지 못한것이 부끄럽기 짝이 없었다. 그래서 그이의 말씀대로 꼭 배워야겠다는 결심을 굳게 다지게 되였다.

그러면서 나의 마음 한구석에는 근심이 생겼다.

(대학에 가도 잘 배우지 못한다는 맑스-레닌주의를 우리가 어떻게 배우나. 20살이 가깝도록 글을 배우지 못한 내가 … 항차 적들과 싸우다나면 어느 여가에 글을 배우며 또 시간이 있다고한들 바위와 나무밖에 없는 첩첩한 산속에서 어떻게 종이나 연필을 구하겠는가.)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렇게 생각하는 우리들에게 글은 돈있는 사람만이 배우거나 학교에 가야만 배우는것이 아니라 우리도 잘 배울수 있다고 하시였다. 그리고 그날로 우리 대원들에게 소책자를 나누어주시고 학습장을 매여주셨다.

대부분 동무들이 거의 그러했지만 나는 이때 처음으로 이런 책과 학습장을 가지게 되였다. 그런데 나의 감격에 더 새로운것은 학습장에다가 《오백룡》이라고 큼직하게 친히 써주신 그이의 글씨였다.

그리고 학습장의 첫장을 펼치니 거기에는 《가갸》에서부터 《하햐》에 이르기까지의 우리 글자와 《1》에서 《10》까지의 수자가 깨끗한 글씨로 적혀있었다.

나는 학습장을 받아들자 위대한 수령님께서 적어주신 그 글씨를 익혀가며 《오백룡》이라는 내 이름자를 몇번 거듭외우고 써보면서 가슴을 들먹이였다.

신발 한컬레 사서 신지 못하고 돌각담과 가시덤불밭을 맨발로 걸어다니던 나에게 옷과 신발을 주셨고 원쑤를 갚으라고 무기를 주셨으며 혁명가가 되기 위해 배우라고 책과 학습장까지 매주셨을뿐만아니라 친히 이름까지 써주신 그 크나큰 사랑을 나는 잊을수 없다.

한두사람도 아닌 수많은 유격대원들에게 그이께서는 어떻게 처음부터 그렇게도 깊고 인자하게 대하여주셨던지 우리는 그날저녁 늦도록 잠을 이루지 못하고 글을 읽고 쓰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후 우리는 주머니를 하나씩 만들었다.

그리고 산아래에 있는 강변에 내려가서 주머니에 모래를 넣어다가 땅에 펴놓고 나무가지로 글을 썼다. 사실 그때에 주신 그 학습장 한권이 얼마나 소중한것인지 오늘과 같이 넉넉한 환경에서 살거나 또는 그때 간고한 생활을 체험하여보지 못한 사람은 짐작하기 어려울것이다.

이렇게 하여 우리는 글을 배우기 시작했고 한자두자 익히게 되였으며 차차 재미가 나서 때로는 혼자있을 때에도 모래우에 손가락글을 쓰군 하였다.

겨울이면 행군을 하다가도 휴식시간에 모여앉아 눈우에 막대기로 글을 썼고 사격련습을 할 때에도 《가갸》, 《거겨》하고 장탄과 퇴탄을 하는 식으로 우리는 글을 외웠다.

어두운 수림속으로 행군할 때에는 앞동무의 배낭뒤등에다 큼직한 글을 쓴 흰 수건이나 천쪼박을 매달아놓고 따라가면서 입속으로 구구표도 외웠다. 이렇게 걷는 행군은 또한 힘도 덜들었고 앞동무의 배낭을 주의해보며 따라가야 하므로 거리와 행군속도도 자연히 잘 보장되였으며 뒤떨어질 념려가 없어서 좋았다.

이렇게 배운 글은 또한 좀체로 잊혀지지 않았다. 글공부에 점점 재미를 붙이고 열중하게 되니 때로는 밥을 굶고 행군하면서도 배고픈 생각마저 잊어버릴 때가 많았다.

그러나 적에 대한 경각성은 항상 높여야 했다. 말하자면 행군을 하면서도 글을 배워야 했고 글을 배우면서도 항상 적정을 감시하고 전투준비를 하는 등으로 학습과 훈련, 학습과 전투를 철저히 병행시켜야 했다. 혹 어떤 동무들은 글을 외우기에 열중하던 나머지 지휘관의 구령도 못듣고 선자리에서 글을 외우는 동무도 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에 대하여 매우 엄격하셨다.

글을 외우기에 열중하는것은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글을 외우는데만 열중하여 적들속에서 싸운다는것을 잠시라도 잊고 혼자생각에 잠기거나 행동에서 일치성을 가져오지 않는다면 그것은 산 학습이 못됩니다.

이렇게 어려운 행군이나 전투가 진행되고 학습과 훈련이 끝난뒤에도 그이께서는 대원들의 위생과 다음날 전투준비에 사소한 결함이라도 있으면 엄격히 타이르시고 일일이 보살펴주셨다.

그렇기때문에 발이 부르트거나 몸에 상처가 생긴 동무들이 그것을 숨길수 없었다.

강행군이 진행되던 어느날 휴식시간이였다. 대원들을 돌아보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기관총수인 천동무의 앞에서 걸음을 멈추시였다. 그리고 천동무가 묵묵히 앉아있는것을 보시자 《동무는 집생각을 하는군!…》하고 말씀하시였다.

《예.》

천동무는 몸을 바로잡으면서 솔직히 말씀올렸다.

《그래! 어떻게 집생각을 해보았소.》하고 물으시며 그이께서는 그와 마주앉으시였다.

《글을 배우고보니 고향집에 편지를 쓰구싶은 생각이 났습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천동무의 말을 들으시고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바로 그러한 생각이 조국을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그러한 생각은 많이 할수록 좋은것입니다. 어머니의 품에서 어린아이를 떼여낼수 없는것처럼 그 무엇으로도 우리를 조국의 품에서 떼여낼수 없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바로 그 어머니의 품을 그리워하며 그것을 찾기 위해 싸우고있습니까. … 비록 오늘은 우리가 적고 또 무장도 미약하지만 인민들이 모두다 우리를 믿고 우리와 함께 싸우게 될것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투쟁이 인민을 위한것이고 정당한것이기때문입니다.

쏘련에서 사회주의혁명이 수행될 때에도 처음부터 많은 사람들이 훌륭한 무기를 가지고 싸운것은 아닙니다. 레닌동지와 그의 몇몇 전우들은 전체 쏘련인민들을 꾸준히 그리고 완강하게 짜리제도의 타도와 사회주의혁명승리의 위업에로 불러일으켰던것입니다. 우리도 조국을 광복하고 그러한 새 사회를 건설하자면 일제를 쳐부셔야 하며 일제를 쳐부시려면 간고한 투쟁을 계속 완강하게 전개해야 합니다.

혁명을 쉬운것으로, 조급히 수행할수 있는것으로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그것은 적과 싸우기도전에 실패하는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그러기에 더욱더 잘 배우고 자신이 인민을 위한 충복이 되도록 힘써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우리가 자기갈길을 정확히 찾을수 없으며 인민과 떨어져서는 간난신고를 뚫고 승리에 도달할수 없습니다.

이렇게 그이께서는 우리에게 투쟁의 첫걸음부터 하나하나 가르쳐주셨다.

내가 입대한지 두달쯤 되는 어느날이였다. 그이께서는 그날 우리들을 모아놓고 이제는 글을 읽고 쓰게 되였으니 정치학습을 해야 하며 배운것을 가지고 인민들속에 들어가 선전하고 그들을 교양할줄 알아야 한다고 하시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그런데 우리가 선전을 한다고하여 누가 가르쳐준 말이나 적어들고나가서 류창하게 내려엮는 《연설쟁이》가 되여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선전하고 교양하는것은 우리자신의 《박식》을 자랑하거나 뽐내자는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맑스-레닌주의의 진리를 인민들에게 알려주며 우리 혁명의 승리를 위해서 일제를 반대하여 함께 싸우게 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인민들이 당하는 고통을 진실로 뼈아파하고 그들과 함께 호흡하면서 혁명승리를 위한 모든 문제를 마치 자기 부모형제들과 의논하듯 진지하게 토론해야 합니다.

그후부터 우리 신입대원들도 구대원들이나 지휘관들처럼 그이의 가르치심대로 적들을 소탕한 해방지역이나 기타 부락들에서 인민들에게 해설선전하고 그들을 교양하는 사업에 참가하였다.

그러나 이역시 쉬운것은 아니였다.

때로는 적의 앞잡이들이 인민들속에 끼여들어서 방해를 할 때도 있었고 또 주민들속에는 일제침략자들의 후환이 무서워서 동요하는 일부 락후한 층들도 있었다.

그리고 우리 동무들가운데서도 준비가 부족하거나 대상을 깊이 연구하지 못하고 서두르다가 성과를 거두지 못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러한 동무들을 꾸준히 가르치시고 고무하여주셨다.

모든 일이 생각처럼 쉬운것은 아닙니다. 첫번에 잘되면 더욱 좋지만 한두번 하여보고 성과가 적다하여 실망해서는 안됩니다. 이는 혁명가의 품성이 아닙니다. 잘못을 통해서는 응당히 교훈을 찾고 한걸음 나아가 더 배우고 노력해서 고쳐야 합니다. 의사가 병을 고치는데도 환자의 성격, 체질, 년령, 성별, 직업 등을 고려하고 병을 보며 약을 짓는 법인데 혁명을 한다는 우리들이 자체준비를 잘하지 않고 대상을 깊이 고려함이 없이 나선다면 어떻게 좋은 결과를 바랄수 있겠습니까?

그러자면 역시 많이 배우고 노력해야 합니다.

그러던 어느날 달밝은 밤이였다. 부대에는 휴식명령이 내렸다. 열심히 총을 닦으며 닥쳐올 전투를 생각하는 동무도 있고 고향이야기를 하거나 혹은 군데군데 모여앉아서 혁명가요를 부르는 동무들도 있었다.

이러한 때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리들이 휴식하고있는 장소에 오셔서 대원들을 돌아보시다가 맞은편 산비탈에 서서 열심히 연설련습을 하고있는 동무에게로 가셨다.

그는 바로 《말재주가 적어서 선전사업을 못하겠으니 다른 임무를 맡겨달라.》고 조르던 동무였다. 이날도 그는 전투후에 부락인민들앞에서 선전사업을 했으나 역시 성과를 거두지 못했던것이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 동무의 연설련습이 끝나기를 기다리시다가 《참 좋은 일입니다. 무엇이든지 하려고만 하면 그앞에는 산도 물러앉는 법입니다.》라고 하시면서 그 동무가 련습한 연설내용을 하나하나 시정해주시였다. 그리고나서 그이께서는 《그래 지금 동무가 하는 연설을 듣고 군중들이 어떻게 생각하는것 같습니까?》하고 물으셨다.

그러자 그 동무는 잠시 의아해하다가 《저… 저는 지금 수림을 향하여 련습을 해보았습니다.》라고 대답을 올렸다.

《옳습니다. 그거야 내가 왜 모르겠습니까. 나는 지금 동무의 연설을 듣는 대상인 군중들이 무엇을 생각하는가 그걸 묻는것입니다. 사람들의 얼굴이 보이는가, 그들의 표정은 어떠한가, 듣고 감동하며 호응하는가 안하는가, 그것을 모르면 안됩니다.》

이렇게 말씀하시면서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 동무를 일깨워주셨다.

앞에 있는 나무들을 보면서 인민들을 생각해봅시다. 그들이 지금 어떠한 처지에 있는가, 누구에게 어떻게 고역을 당하고 탄압을 받으며 고문과 학살을 당하는가, 이것을 잘 알기만 하면 그들의 얼굴뿐만아니라 그들의 마음이 곧 동무의 마음으로 될것입니다. 그러면 동무가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그중에는 로인들도 있고 젊은이들도 있습니다.

로동자, 농민을 비롯하여 여러가지 직업을 가진 사람이 있고 중국에서 오래산 사람도 있으며 조선에서 방금 쫓겨온 사람도 있고 끌려온 사람도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우리 유격대가 어떠한 군대인지도 잘 모르는 사람도 있고 적들의 허위선전에 넘어가서 우리를 나쁘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혹 있을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우리가 누구를 반대하여 싸우며 어떻게 승리하였는가를 직접 목격한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또 우리는 적들에게서 로획한 식량과 피복도 그들에게 나누어주었습니다. 그러면 그들에게 무엇부터 알려주어야 하겠습니까?

《우리는 공산주의사회를 건설해야 한다!》, 《우리는 프로레타리아헤게모니를 쟁취해야 한다!》는 식으로 그들이 짐작조차도 못할 먼앞날의 일이나 또는 알아듣지도 못할 이야기를 할것이 아니라 그들이 직접 보고 느끼고 감격하는 그것부터 자세히 알려주어야 합니다.

일제가 어째서 나쁘고 우리 인민은 누구때문에 헐벗고 굶주리며, 어떻게 해야 조국을 찾아 잘살수 있는가, 우리 유격대원들은 어떠한 사람들이며 누구를 위해 피흘려 싸우는가, 지금은 일제놈들에게 속아서 우리를 잘못 인식하는 사람들이라도 그가 자기 잘못을 깨닫고 우리를 지지하면서 우리와 함께 싸우려고만 하면 우리는 그런 사람을 어떻게 환영하는가, 이러한것들부터 가르쳐주어야 합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들이 하는 선전이고 교양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인민을 가르친다고만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인민에게서 항상 배워야 합니다. 자기자신이 배운것을 인민앞에서 검열받는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그래야 진실성과 긴장성을 가지고 일할수 있고 잘못된것이나 부족한것도 스스로 발견할수 있습니다. 그래야 또 그것을 고칠것이 아닙니까.

그리고 우리는 인민의 실정을 잘 알아야 할뿐만아니라 그들이 하는 일을 무엇이나 다 잘할줄 알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우리에게 옷과 밥을 주는 근로자들에 대한 고마움과 로동이 얼마나 고귀한것인가를 모르며 사회가 누구의 힘에 의하여 어떻게 발전되는가를 모르게 됩니다.

이러한 각오와 준비가 없이 선전을 한다면 자기도 모르는 말을 하게 되고 혁명을 해도 신심을 가질수 없으며 결국 인민에게서 멀리 떨어지게 될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하나하나 배워나갔고 나도 그속에서 성장해갔다.

그후 1934년 봄 어느날이였다.

우리는 지방인민들로부터 당홰부락(왕청현소재지 동남쪽 신선동)에 일본장교놈이 지휘하는 위만군 한개부대가 증강하여왔다는 정보를 받았다.

우리들은 이 사실을 즉시로 상부에 보고하는 한편 급속히 적을 소멸하여 이 지구를 해방시키고 무기를 로획할 준비를 서둘렀다.

이때 위대한 수령님께서 우리 중대에 나오셨다. 우리들의 전투계획을 자세히 들으신 그이께서는 지휘관들을 모아놓고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하셨다.

전투사기가 높은것도 좋고 정보를 더 확인하기 위하여 적들내부로 정찰원들을 파견하려는것도 좋습니다.

그러나 크고 중요한것을 잊고있습니다.

인민들을 믿고 인민들에게 의거하면서 사업을 옳게 하기만 한다면 전투는 더 쉬울수 있고 승리는 더 크리라는것을 타산하지 못하고있습니다. 이것은 실패할수 있는 전제입니다. 지금은 봄이고 밭갈이때여서 인민들은 거의다 성밖에 나와 일을 하는데 성안에 들어가 정찰을 한다는것은 위험도 하거니와 인민들의 진정한 목소리를 들을수 없으니 정확한 정찰을 할수도 없습니다.

어떻게 몇명의 정찰원이 그안에서 오래 살았고 적들의 탄압과 박해를 받아온 수많은 인민들만큼 적정을 알아낼수 있겠습니까. 그러니까 우선 밭갈이하는 농민들을 찾아가서 바쁜 일손도 도와주며 정찰도 하고 싸움할 때에는 인민들을 어떻게 조직동원하겠는가 하는것을 잘 타산해보아야 합니다.

위대한 수령님의 이러한 교시를 실행한 결과 우리는 적들속에 들어가서 위험한 행동을 하지 않고도 예상외에 훌륭한 성과를 거두었다.

우리는 그때 아편 몇덩이를 적들에게 던져줌으로써 놈들끼리 서로 싸움질을 하게 하고 또한 그날은 소위 일본천황의 생일날인《명절》이여서 술과 아편에 취해넘어진 틈을 리용하여 놈들을 몽땅 소멸하고 120여정의 무기와 수많은 군수물자를 로획할수 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후 이 무기를 가지고 1개중대를 더 무장시켜 안도현과 무송현일대에서 싸우고있는 부대들에 새로운 력량을 증강하여주셨다.

그이의 가르치심을 명심한 우리는 항상 이와 같이 배우고 인민을 위해 일하며 인민들에게 튼튼히 의거하여 싸운다면 언제나 승리할수 있다는것을 더욱 확신하게 되였다.

길고 고난에 찬 혁명의 길에서 위대한 수령님의 현명한 령도로 밝아온 영광찬란한 오늘까지도 이 길을 앞서 걸어오신 그이에 대한 감명깊고 영광스러운 이야기는 잊혀지지 않으며 그때를 회상할 때마다 그이에 대한 흠모의 정은 더욱 깊어진다.

그이께서는 오늘도 우리 혁명의 진두에 서계신다. 그때나 오늘이나 우리들의 사업을 현지에 나가 일일이 몸소 보살피시고 또한 밤이 깊도록 잠을 잊으시며 우리 인민을 행복과 번영의 길로 이끌어주신다.

그리고 그이께서는 항상 인민에게 무한히 충실한 충복이 되며 조국을 사랑하고 건설에 몸바쳐 싸우는 광범한 대중들속에 들어가 그들을 존중하고 도와주며 항상 그들속에서 당정책을 선전하고 교양하여야 한다고 오늘도 가르쳐주시고 몸소 모범을 보이시며 우리를 고무해주신다.

나는 그이를 우러러 지난날을 돌이켜보고 오늘을 생각할 때 휘황하고 영광스러운 우리 조국의 앞날을 명확히 내다본다.

오늘도 전체 인민은 그이께서 가리키시는 길을 따라 천리마의 대진군을 계속하고있는것이다.


image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서비스이용약관 모바일 버전으로 보기 상단으로


Copyright © 2010 - 2023 www.hanseattle1.com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