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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청현 신안촌전투  (최 현) 항일빨찌산참가자들의 회상기 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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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0건 조회 4,002회 작성일 19-09-27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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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청현 신안촌전투

 

최  현

 

왕청현 신안촌은 백초구에서 남쪽으로 3km가량 떨어진 벌판가운데에 있는 부락이다.

일제는 이 부락에도 자위단을 조직하였다. 당시 일본군벌들은 자기들의 흉악한 침략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동북각지에 주구단체인 자위단들을 조직하였고 그들을 우리 유격대에 대한 《토벌》과 인민학살에 충실한 앞잡이로 리용하고있었다. 때문에 우리들은 일본군벌놈들을 쳐부셔야할것은 물론 그 주구인 자위단놈들과도 투쟁해야 하였다.

신안촌자위단 성원은 한 30명 되였는데 병실은 신안촌부락의 북쪽 한끝에 자리잡고있었다. 이곳 자위단은 부근 자위단들가운데서도 가장 악질적이였다. 자위단단장놈은 신안촌근방의 대지주의 아들이며 친일주구였다. 그놈은 자기와 같은 친일주구들을 모아 자위단을 조직하였다.

왜놈들은 매일같이 우리 유격근거지에 대한 《토벌》을 감행했는데 신안촌자위단놈들은 그 왜놈들과 같이 싸다니며 악랄하게 책동하였다.

부락이나 큰길로 다니는 사람들의 형색이 조금이라도 자기들의 눈에 거슬리기만 하면 《공산비적》이니, 《공비와 련락하는놈》이니 하는 허무맹랑한 죄명을 들씌워가지고 무참하게 학살하였다. 그리고 그 시체들을 길가에 파놓은 웅뎅이속에 쓸어넣었다. 그리하여 그 지방인민들은 자위단놈들에 대한 극도의 증오와 격분을 품고있었다. 놈들은 또한 이 지방에서의 우리 정치공작원들의 활동을 집요하게 방해하였다. 일제는 이놈들의 《공로》를 칭찬하여 자위단장놈을 비롯한 단원들에게 금줄을 두른 옷과 모자를 씌워주고 《상금》까지 주었으며 위만군경이상의 《특권》을 주었다. 철면피한 이 자위단놈들은 큰 벼슬이나 한듯이 우쭐대면서 매일같이 지방인민들의 재산을 로략질하였다. 그리하여 인민들의 원한은 날이갈수록 높아져 하루빨리 유격대가 와서 그 악귀같은 놈들을 없애줄것을 념원하였다.

조선인민혁명군 제2사 2련대의 지휘부는 그 지방 정치공작원들로부터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되였던것이다.

그리하여 우리 지휘부는 1934년 음력 3월 신안촌자위단을 섬멸하기로 하였다. 그렇게 함으로써 신안촌인민들은 물론이요 주변부락 인민들의 뼈에 사무친 원한을 풀어주기로 하였다.

그리고 인민들에게 우리 혁명군의 위력을 보여주며 승리의 신심을 높여주어야 하였다. 뿐만아니라 그 지방에 배치되여있는 우리 정치공작원들의 활동을 용이하게 해주는것도 중요하였다.

한편 군사적인 측면에서 볼 때는 신안촌자위단을 소멸함으로써 연길유격근거지에 대한 적들의 《토벌》계획에 혼란을 조성시킬수 있었다.

당시 우리들은 유격근거지에 의거하여 완강한 방어전투뿐만아니라 습격대를 조직하여 적통치구역의 성시나 《토벌대》들이 모여있는곳을 앞질러 공격함으로써 사처에서 적을 전률케하는 적극적인 활동을 전개했던것이다.

지휘부에서는 신안촌부락에 정찰원들을 파견했는데 그들이 가져온 자료에 의하면 아래와 같았다.

《자위단병실주위에는 높이 2m이상의 토성이 둘러있는데 그 토성 량쪽표면에는 두터운 판자를 대고 그속에 흙을 다져넣었다.

성벽두터이는 약 1m가량 되는데 총탄으로는 뚫지 못할것 같다. 그리고 성벽의 여러곳에는 화구가 있고 성벽 두귀에는 포대가 있다. 성문은 철문이다. 성벽에서 자위단 병실까지는 한 30m된다. 신안촌에서 불과 3km밖에 안되는 백초구에는 일본수비대와 위만군놈들이 주둔하고있어 총소리가 터지기만 하면 삽시간에 달려들수 있다.

부락주변은 벌판이다.》

이상과 같은 적정과 지형조건들은 습격전투를 할 우리들에게 있어서 매우 불리하였다. 그것은 우선 적병실이 견고한 토성으로 둘러싸여있는데다 포대가 있고 그런데다 토성주위로 화구들이 뚫려있었으므로 그것들을 돌파하고 병실을 습격한다는것은 쉬운 일이 아니였기때문이다. 게다가 우리들은 은페할 곳이 전혀 없는 벌판을 통해 성벽에 접근해야 하는것이였다. 여기에 백초구의 적응원대가 달려들것이라는것을 타산할 때 우리의 습격임무는 여간 곤난한 일이 아니였다. 그러니만큼 우리의 전투계획은 더욱 구체적이여야 하였으며 습격전투가 령활하게 진행되여야 하였다. 지휘부에서는 심중한 타산끝에 전투계획을 작성하였다.

이 전투계획은 《급행급습》의 전술에 기초하였다. 이 유격전술의 특징은 은밀히 적에게 접근하여 적이 어쩔사이없이 급습함으로써 신속히 목적을 달성하는데 있었다.

2개중대의 력량이 연길현 북동을 출발하여 밤 12시경에 신안촌근방에 도착하였다. 50리 길이였다. 《큰보따지》(별호)동무는 한개중대의 력량을 두조로 나누어 백초구방향과 연길쪽 세멘트다리목에 방차대로 내보냈다. 백초구방향에 나간 방차대의 임무가 더 중요하였는데 그것은 백초구의 적응원대를 결정적으로 차단하느냐 못하느냐 하는데 이번 습격전투의 승패가 좌우될수 있기때문이였다.

내가 책임진 한개 대는 직접 자위단병실을 습격할 임무를 맡았다. 나는 우선 습격대를 여러 조로 나누고 매 습격조의 임무를 설정하였다.

내가 중요하게 고려한것은 포대와 성벽의 화구를 우리가 먼저 장악하고 급습해야 하겠다는것이였다. 그런데 여기서 주의할것은 성벽까지 접근하는데 최대의 은밀성을 보장하는것이였다.

기침소리 하나도 허용할수 없었다.

캄캄한 밤이였다. 병실습격조원들은 숨소리마저 죽이고 사면에서 성벽에로 접근하였다. 우리 동무들은 어둠속에 솟은 성벽이며 포대를 노려보면서 재빨리 기여나갔다.

나는 한 습격조를 직접 데리고 성벽의 서쪽화구에로 살금살금 접근하였다. 사위는 의연히 조용하였는데 다만 성안의 적병실쪽에서 음탕한 노래소리가 이따금 들려왔다. 놈들은 밤이 새는줄도 모르고 놀음에 빠진 모양이였다. 성벽밑에 바싹 붙은 나는 화구의 동태를 살펴보았다. 화구는 텅 비여있었다. 나는 그 화구를 재빨리 차지하고 사격준비를 하였다. 나는 그때 경기관총을 가지고있었다. 우리 습격조들이 각기 자기 맡은 성벽, 성문, 포대들에 완전히 접근하자 나는 자위단병실을 겨누어 기관총련발사격을 들이댔다. 이 기관총성은 습격개시신호이기도 하였다. 그리하여 성벽주위의 화구들로부터는 우리 동무들이 발사하는 멸적의 화력이 자위단병실에로 집중되였고 포대와 성문으로는 위력한 우리의 폭탄이 날아들어가 터졌다.

실로 그 폭음은 천지를 진동하는듯 하였다. 우리는 맹사격을 퍼부었다. 어둡고 캄캄하던 신안촌의 밤하늘은 폭탄들이 터지는 섬광으로하여 갑자기 환해졌다.

불의의 집중화력을 받은 놈들은 무리로 쓰러졌다. 그리고 살아남은 놈들이 병실의 방탄벽(탄알을 막기 위하여 흙, 벽돌 같은것으로 쌓아올린 벽)에 숨어서 총질을 하였다.

급습할 때는 왔다. 더 시간을 지연시켜서는 안되였다. 나는 돌격나팔을 불게 하였다. 나팔소리가 나자 용감한 우리 동무들이 6척이상이나 되는 성벽을 서로 어깨를 디디고 삽시에 뛰여넘어 성안에 돌입하였다. 잠시후 폭탄은 총질하는 적병실안의 방탄벽주변에로 연거퍼 날아들어가 굉장한 소리를 내며 터졌다. 문들이 날아났다. 벽은 허물어졌고 포연자욱한속에서 저주로운 놈들의 신음소리가 들려왔다.

이날밤 인민들의 재산을 로략질하러 밖에 나갔던 몇놈을 제외하고는 단장놈을 비롯하여 전체 자위단놈들이 몰살했다.

자위단병실을 습격하는 총소리와 폭탄소리를 들은 신안촌인민들은 전투가 끝나자 저마다 앞을 다투어 병실주변으로 밀려들어왔다.

인민들은 우리들을 막 붙안고 돌아갔다. 이때 《큰보따지》동무는 자위단장놈의 더러운 시체를 군중앞에 끌어내다놓고 무고한 인민들을 학살하고 인민들의 재산을 무지하게 략탈하던 살인마들을 몽땅 박멸하였다는것을 선포하였다. 그리고 그는 우리 조선인민혁명군은 김일성장군님의 지휘밑에 일제와 그 주구들을 격멸소탕할것이라는것을 말하고 인민들은 원쑤놈들의 억압과 착취를 박차고 이 투쟁을 적극 지지하여나서야 한다는것을 소리높이 호소하였다.

군중들속에서는 《김일성장군 만세!》, 《혁명군 만세!》하는 웨침소리가 터져나왔다. 인민들은 우리를 열광적으로 환호하였다.

이날의 습격전투는 약 20분만에 끝이 났다.

20여자루의 무기와 다량의 탄약을 로획하여가지고나오면서 우리는 자위단병실에 불을 질러놓았다.

삼단같은 불길은 밤하늘을 태웠으며 인민들의 원한깊은 살인마들의 소굴은 재더미로 변하였다. 우리는 지체없이 신안촌에서 철수하였다.

이날밤 백초구의 적들은 신안촌자위단이 녹아난다는것을 알면서도 겁에 질려 꿈쩍을 하지 못하였다.

악명높은 신안촌자위단이 전멸되였다는 소문은 순식간에 동만각처에 퍼졌다. 이 소식을 들은 사람들은 저마다 《신안촌자위단놈들이 전멸되였다지.》, 《그저 우리 인민혁명군이라야 우리의 소원을 풀어주지.》라고들 하면서 우리 조선인민혁명군의 위력과 원쑤들에 대한 통쾌한 복수전에 기쁨을 금치 못해하였다.

신안촌습격전투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령도를 받는 우리 조선인민혁명군이 인민의 생명재산을 보호하며 인민들의 원한을 풀어주기 위하여 헌신적으로 싸운 그러한 전투들중의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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