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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번영의 시대 제19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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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0건 조회 6,002회 작성일 19-10-28 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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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 장

1

 

방금 립춘이 지났으나 평양벌에는 아직 매운 서북풍이 불고 한겨울에 다져진 눈이 그대로 덮여있었다.

왕수복은 이날 아침도 낡은 골덴작업복을 입고 거리에 나섰다. 경상1동녀맹위원장인 그는 지난 1월 중순부터 동녀맹원들과 함께 화학원료공장복구건설을 지원하고있었다.

거리엔 출근대렬이 물결처림 줄지어 흐르고있었다.

전차정류소로 총총히 걸어가던 왕수복은 안경방 벽체에 크게 써붙인 1. 4분기계획을 넘쳐수행하자!》라는 구호를 띠여보고 몸을 흠칫하며 멎어섰다. 계획이라는 글자가 칼끝처럼 그의 가슴을 아프게 찔렀다. 요즘 남편이 국가계획문제로 마음고생을 하고있기때문이였다.

풀색도색을 한 전차가 달랑달랑 종을 울리면서 미끄러져왔다. 얼마후 전차에 올라 자리에 앉은 왕수복은 뒤쪽에서 울리는 말소리에 머리칼이 곤두섰다.

이번 1월계획총화가 아주 심각했다면서… 대학 경제법학부장이 되게 두드려맞았대.

굵고 웅글은 목소리였다.

《예. 허가이조직부장이 김광진학부장을 되게 욕했대요. 그 사람이 계획수자들을 잔뜩 높였기때문에 계획을 하기 힘들게 됐대요. 그 선생이 제자리에 붙어있을것 같지 못해요.

누구인가 걱정하는투로 말하자 비린청의 목소리가 김광진이란 선생이 왕수복의 남편이라면서요?》 하고 온 전차칸이 들썩하도록 고아댔다.

왕수복은 자기를 알고있는 사람들의 눈에 띌가봐 머리를 푹 수그리였다. 그다음에는 리문도가 어쩌구 장시우가 어쩌구 하는 말들이 오고갔다.

전차가 월향동 정류소에 도착하였을 때 왕수복은 사람들이 자기를 알아보지 못하도록 목도리로 얼굴을 반쯤 가리우고 내리였다.

월향동 전차정류소에서 인흥동쪽으로 300메터 떨어진 평지에 화학원료공장복구건설장이 있었다. 동녀맹원들은 아침일찌기 먼저 건설현장에 나갔으나 왕수복은 학생견학단을 데리고 남포제련소로 가는 남편의 길차비를 해주느라 늦어졌다.

보름전만 하여도 재더미뿐이던 건설장에 벽체가 일어서서 지금은 지붕공사와 미장작업들을 하고있었다. 운동장처럼 넓은 건물앞마당에서는 목고패, 질통패, 손수레패들이 복작거리며 분주히 뛰여다니고 벽체두리에서는 여러대의 목조기중기들이 긴 팔을 휘둘러대며 지붕우로 무슨 물건인가를 연방 들어올리였다. 반기계식목조기중기는 오천행이가 보통강개수공사때 창안도입한것으로서 건설장들에서 많이 리용하였다.

경상동녀맹원들은 2O여일째 화학원료공장복구건설을 돕고있었다. 녀맹원들의 로력조직은 모두 경상2동녀맹위원장인 최윤옥이가 하였다.

최윤옥은 해방후 공산당기관지 정로 교정원으로 있다가 민주조선》신문이 창간되면서 그곳에서 기자활동을 하던 녀성이였다. 왕수복이보다 일곱살이나 아래인 아주 젊은 녀성이였다.

김정숙녀사께서는 평양고보출신인 최윤옥을 여러번 만나주시였다. 최윤옥은 류다른 인연으로 김정숙녀사와 가까와지게 되였다. 《민주조선》 기자로 있을 때 평양시적으로 자기 집에서 기른 집짐승을 공장, 기업소에 제일 많이 지원한 모범적인 가두녀성이 김정숙이라고 하여 신문에 실으려고 찾아가보니 뜻밖에도 일성장군님의 부인이시였던것이다. 물론 신문기자인 그가 백두산의 녀장군이신 김정숙녀사의 존함을 모를리 없었지만 돼지를 길러 공장로동자들에게 지원하는 모범가두녀성이 바로 그분이실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것이다.

이렇게 녀사와 인연을 맺은 윤옥은 그후 남녀평등권법령이 발포될 때에도 녀사의 지도를 받아 민주조선》신문에 품격이 있고 내용이 절절한 큰 기사를 발표했었다. 그는 쟁쟁한 녀기자로 발전할수 있었으나 첫 아이가 생기면서 남편과 집안일로 손목이 잡히여 필봉을 놓고 동녀맹사업을 하게 되였다. 그의 남편은 평양연초공장 진료소소장이였다.

건설장이 점점 가까와오고있었다.

건설장으로 돌아가는 길목에 신문게시판이 서있는것을 보고 수복은 잠간 걸음을 멈추었다. 송대관, 고영훈 애국상공인들이 양덕에서 수력발전소건설을 하고있는 전기총국산하 청년작업대에 일식으로 솜옷과 털모자를 만들어 보냈다는 소식이 실리였다.

해방직후 남조선으로 갔다가 다시 평양으로 돌아와 연필공장을 세운 송대관이도 그래, 고영훈이도 그래 모두 일성장군님과 특별한 연고관계가 있는 기업가들이였다.

해방직후 장군님께 무기명신소편지를 올린 사람이 바로 평양 기림동에서 양주업과 메리야스업을 하고있는 고영훈이였다. 그는 김일성장군님께서 개선연설을 하신 날에 사죄의 편지를 올리고 집에 간수해두고있던 금을 나라에 바쳤었다.

남편의 말에 의하면 고영훈기업가의 아버지와 고모는 모두 19세기 80년대초부터 개화혁신파와 련계가 있었다고 한다. 고모 고씨는 왕궁의 비밀을 정상적으로 개화당에 통보해준 궁녀였고 아버지는 개화파들과 련계를 가지고 서울에서 양주업과 직물업을 한 수공업자였다. 갑신정변이 실패되자 아버지는 양덕군의 두메산골에 피신하여 은둔생활을 하면서 술을 빚어 상적거래를 하였다. 양덕술이 유명해진것은 고씨가문과 관련되여있었다.

양덕군 두메산골에서 출생한 고영훈은 아버지로부터 신구학문을 배우고 양주업과 직물업의 기술을 물려받았다.

지금 오천행이네가 수력발전소를 건설하고있는 양덕군 동양리가 바로 고영훈의 출생지였다. 아마도 그래서 고영훈이가 수력발전소건설자들에게 유별한 관심을 가지고 솜옷과 털모자를 만들어 보냈는지도 모른다.

갑자기 왁작 떠드는 소리에 왕수복은 신문에서 눈길을 뗐다.

수십명의 녀인들이 건설장에서 한무리 밀려나오고있었다. 경상동녀맹원들이였다.

아니, 왜들 다 나와요?》

왕수복은 어리둥절히 녀맹원들을 둘러보았다. 이때 뚱뚱한 녀인이 걸걸한 남자목소리의 흉내를 내며 왕수복에게 구령을 쳤다.

왕수복동지! 뒤로 돌앗! 평양철도공장을 향해 앞으로 갓!》

무슨 일이야?

왕수복은 녀맹원들속에 서있는 최윤옥에게 눈길을 보내였다.

언니, 평양철도공장 로동과장이 자기네 공장에 녀성들의 손을 빌려야 할 일감이 많다면서 우리 경상동녀맹원들을 보내달라고 우에 제기했다는군요. 우리 경상동이 일 잘하는줄은 어떻게 알고, 호호호…

깔깔거리는 최윤옥의 입에서 흰 김이 날리였다.

모두가 명랑하게 웃고 떠들었지만 왕수복의 마음은 울적하였다.

경상동녀맹원들은 아침 8시경에 철도공장에 도착하였다.

최윤옥은 50여명되는 녀맹원들을 마당에서 기다리게 하고 왕수복이와 함께 공장로동행정과에 찾아갔다.

사무실이 텅 비여있었다. 과장이하 직원들이 모두 3호작업장에 로력지원을 나갔다고 하였다.

3호작업장은 공장본채의 마지막끝에 있었다.

최윤옥을 따라 3호작업장으로 들어서는 순간 왕수복은 저도 모르게 놀란 소리를 질렀다. 요란한 기계소리와 어마어마한 진동이 그를 놀라게 한것이다. 쇠를 깎는 절삭기계들의 아츠러운 소리, 단쇠를 내리치는 기계함마의 지진파같은 진동, 거푸집안에서 부글부글 끓고있는 붉은 화염의 눈부신 빛발… 그 시기는 선반, 단조, 주물 등 여러가지 작업들을 한방에서 같이하였다.

평양철도공장은 해방전 서울철도공장의 부속공장으로서 원산철도공장보다도 훨씬 작은 공장이였었다. 그러나 해방후 1년남짓한 사이에 공장의 규모가 커지고 성능도 높아져 기차기관들과 부속품들을 수리제작하는 공장으로 발전하였다. 해방직후 반동놈들의 꾀임에 넘어간 로동자들이 쌀을 내라고 소요를 일으켜서 장군님께서 직접 그들을 만나 건국도상에 가로놓인 난관을 뚫고나가자라는 유명한 연설을 하신 공장이 바로 이 공장이였다.

쭈글쭈글한 낡은 중절모를 쓴 로동과장이 주물공들이 일하는 불가마옆을 분주히 왔다갔다 하였다.

부글부글 끓는 쇠물을 담은 모래거푸집이 여러개 되였다. 거푸집들에서 황색연기가 피여오르면서 번쩍번쩍 불꽃을 일으켰다. 황색증기가 설피여질 때마다 벽에 써붙인 1. 4분기계획을 넘쳐수행하자!》라는 붉은 글자가 보이군 하였다.

《로동과장동지!》

최윤옥이 손나발을 하고 서너번 소리쳤을 때 쭈그렁중절모를 쓴 사람이 일손을 멈추고 이쪽을 돌아보더니 깜짝 놀란 시늉을 하였다.

그는 급히 윤옥이쪽으로 달려왔다.

경상동녀맹원들이 온다는걸 내가 그만 깜빡 잊어버렸댔구만요.》

일손이 딸리지 않는 모양이군요. 그걸 잊어버리는걸 보니.》

원 무슨 말을… 몇명이나 왔습니까?

52명이예요.

52명?!

일순 놀라는듯 하던 로동과장의 입이 함지박처럼 되였다.

기름칠작업이 걸려서 우리 공장두 1월계획을 80프로밖에 못했습니다. 이젠 살아났습니다. 녀맹원들이 어디 있는지 가봅시다.

최윤옥은 로동과장을 데리고 마당으로 나왔다.

로동과장은 공장본채와 떨어져있는 함석지붕을 얹은 콩크리트벽체의 건물앞으로 걸어갔다. 그 건물뒤로는 철도인입선이 바라보이였다.

자, 여기로들 들어오시오.》

로동과장은 운동장처럼 넓은 작업장안으로 녀맹원들을 데리고 들어갔다. 기관차와 객화차의 각종 기관들과 대차부속들이 가득 들어있었다. 어떤것은 높이 무져있고 어떤것은 대렬을 짓듯 질서있게 정렬되여있었다.

아, 이 기계들이 다 철도공장에서 만든거예요?》

왕수복이 희한해하며 물었다. 그는 운동장같이 넓은 방에 가득차있는 각종 철제품들을 보자 우리 나라가 결코 빈한한 나라가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작업장 벽에는 일성장군님의 1945년 11월 10일 현지교시를 철저히 관철하자!》라는 표어가 크게 씌여져있었다.

예, 이 모든건 다 우리 공장에서 수리하거나 만든거웨다. 아주머니네들은 저기 저 아주머니처럼 장갑을 끼고 기계에 기름칠을 하면 됩니다.

로동과장은 안쪽 구석에서 장갑을 끼고 기차바퀴에 기름칠을 하고있는 녀인을 가리켰다.

로동과장은 푸른 수건을 쓰고 기계에 기름칠을 하고있는 저 녀인은 애어린 처녀때부터 철도공장에서 갖은 천대를 받으며 일해온 녀성로동자인데 지금은 공장의 보배로 꽃으로 떠받들리고있으며 신문에도 몇번 났다고 자랑하였다.

봉숙동무! 여기 좀 오라구.

일에 옴해있던 녀인은 고개를 쳐들더니 숱한 녀인들속에 서있는 로동과장을 보고 의아해하였다.

여기로 오라는데!》

로동과장이 손짓을 하며 재차 부르자 녀인은 기름장갑을 낀채로 출입문쪽으로 걸어왔다. 그는 통통한 몸매에 얼굴이 동실한 3O대의 녀인이였다.

경상동녀맹원들이 고맙게스리 우리 공장을 도와주러 왔소. 동무가 아주머니들을 데리고 기름칠작업을 시키시오.

로동과장은 최윤옥에게 한주일만 도와달라고 하였다. 지금 제품은 이렇게 가득 들어왔지만 기름칠을 못해서 조립작업장에 보내지 못한다고 하였다.

구슬도 꿰야 보배란 말이 있듯이 이 기계부속들도 맞추어놓아야 제구실을 하거던요. 내 창고장한테 가서 넉넉히 장갑을 50여컬레 보내게 할터이니 그동안 봉숙동문 아주머니들한테 작업방법을 가르쳐주오.

로동과장은 성수가 나서 창고장을 만나러 갔다.

50여명의 입살 센 녀인들이 작업장안의 기이한 물건들을 만져보며 찧고 까불고있을 때 누런 보안서정복을 입은 사람이 불쑥 나타났다.

여기 왕수복이란 녀자가 왔습니까?

법석 떠들던 녀인들의 눈이 일시에 올롱해졌다.

《예, 제가 왕수복이예요.

왕수복은 별스럽게 엄한 표정을 하고 서있는 보안서원을 의아하게 지켜보았다.

시보안서 감찰과에서 왔습니다.

그가 내미는 신분중에는 시보안서원 독고칠성이라는 넉자의 성명이 밝혀져있었다.

저리 좀 갑시다.

그는 골덴옷을 입은 왕수복의 차림새를 날카로운 눈으로 훑어보더니 돌따서 걸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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