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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번영의 시대 제3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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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0건 조회 4,044회 작성일 19-10-21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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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04.jpg

(제 3 회)

제 1 장

3

 

얼마후 리문도는 장군님을 회의실로 안내해드렸다. 채광이 좋은 넓고도 깨끗한 방에 60여명은 실히 됨직한 회사종업원들이 앉아있었다. 갑작스러운 비상소집에 영문을 몰라서인지 모두 긴장한 기색이였다.

긴 나무의자와 매연을 먹인듯 한 까만 탁자들이 여러줄 놓여있었는데 유리창으로 아침해빛이 밝게 비쳐들고있었다. 무대처럼 단을 올린 회의실앞단에 연탁이 마주 서있고 그옆에 등받이에 털가죽을 씌운 고급안락의자와 라크칠을 한 두개의 밤색탁자가 놓여있었다.

화려하게 꾸려진 회의장은 일제시기 서선전기회사 경영주들의 호화롭고 유족한 생활을 말해주고있었다.

장군님을 안락의자에 모시고나서 탁자옆으로 조금 비켜선 리문도는 군복을 입으신 그이께로 시선을 모으고있는 종업원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에, 오늘 우리들은 뜻밖에 귀빈을 맞이하였습니다. 명성높은 김일장군님의 빨찌산부대 정치위원선생님이 서선전기회사 직원들과 산하 종업원들을 만나시기 위해 친히 이 자리에 왕림해주시였음을 알리는바입니다.》

리문도가 박수를 치자 일시에 종업원들이 일어나서 열렬한 박수갈채를 올리였다. 그들이 앉은 다음 리문도는 《이제 정치위원선생님의 훈시가 있겠습니다.》 하고 장군님께 돌아서서 고개를 숙여 인사를 올리였다.

그이의 시야에 비친 군중은 거의다 넝마같은 허술한 옷을 입은 사람들이였다. 너덜이 난 로동화, 꿰여진 고무신, 그런것조차 신지 못한 시뻘건 맨발들이 수없이 눈에 띄였다.

그이께서는 아픈 가슴을 누르며 말씀하시였다.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해방된 조국땅에서 이렇게 만나니 참으로 반갑습니다. 제가 평양에 온지는 이제 이틀밖에 안됩니다. 저는 오늘 무슨 연설을 하자거나 훈시를 하기 위해 찾아온것이 아닙니다. 여러분들과 그동안 살아온 회포도 나누면서 어떻게 하면 해방된 이 땅에서 민주건국을 잘해나갈수 있겠는지 허심탄회하게 의견을 나누고싶어 왔습니다. 그러니 격식을 차리지 말고 옛친구를 만났다 생각하고 허물없이 이야기를 나누었으면 합니다. 그럼 전 앉겠습니다. 앉아서 자유롭게 이야기합시다.》

확성기를 설치하지 않았으나 그이의 우렁우렁하신 목소리는 방안을 크게 진동하였다. 자리에 앉으신 장군님께서는 《먼저 한가지 물어봅시다. 회의장이 아주 화려한데 여러분들중 일제시기 여기에 들어와서 회의를 해본 동무들이 있습니까? 그런 동무들은 손을 들어보십시오.》 하고 웃으시였다.

장내는 조용하였다. 손을 드는 사람이 한명도 없었다.

《왜 손을 들지 않습니까? 일본놈들과 마주앉아 회의를 했대서 친일파라고 할가봐 그럽니까? 허허허.》

그이께서 롱조의 맡씀을 하며 소리내여 웃으시자 장내에서도 웃음소리가 일어났다.

소탈하게 우스개소리도 하시며 너그럽고 인자한 표정을 지으시는 그이의 평민적인 모습은 《김일성부대 징치위원》이라는 어마어마한 표상으로 하여 긴장되여있던 종업원들의 기분을 대번에 흥그럽게 하였다. 그러나 리문도만은 웃을수 없었다. 일제시기 이 회의장에 들어와 왜놈들과 같이 회합을 해본 사람은 오직 자기 한사람뿐이였다.

《친일파라고 하지 않을테니 마음놓고 손을 들어보십시오. 몇명이나 되는가 봅시다.》

그이께서 재차 말씀하시자 회의장 한복판에서 기침소리가 울리더니 죄수복같은 재빛무명저고리를 입은 구레나룻이 더부룩한 사람이 일어났다.

《정치위원선생님!》

그의 목소리는 처음부터 흥분을 띠고있었다. 《일제시기 로동자들은 말할것없고 웬간한 사무원들도 이런 회의장에시 회합을 한다는건 생각조차 할수 없는 일입니다. 왜정때 매해 세네번씩 여기서 서선, 북선, 남선 전기회사경영자들이 모여 회합을 하군 하였는데 적어도 회사 과장급이상의 관리들만이 참가할수 있었습니다.

저희들같은것이 어떻게 회합엘…》

그는 갑자기 재채기같은 기침을 하였다. 한참만에 기침을 진정시킨 그는 손바닥으로 수염덮인 입귀와 눈언저리를 문대면서 자리에 앉았다.

《저 동무의 말이 옳습니다.》

장군님께서 정색을 짓고 말씀하시였다. 《일제시기 여러분들은 인간이하의 천대를 받으며 설음과 눈물속에서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세상이 바뀌여져 왜놈들은 쫓겨나고 여러분들모두가 새 조선의 주인이 되였으며 이 회사의 주인이 되였습니다. 이제는 여기에 있는 모든것이 여러분들의것입니다.》

장군님께서는 손을 들어 폭넓게 반원을 그리시였다.

《하지만 보다싶이 지금 여러분들의 생활은 몹시 곤난합니다. 나라의 금고와 창고가 텅 비여서 아마 여러분들은 해방후 로임과 쌀배급을 온전히 타보지 못했을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은 한푼의 로임도 받지 못하고 굶으면서도 새 조선을 일떠세우려는 애국의 한마음을 안고 매일과 같이 회사에 출근하고있습니다. 저는 이에 대해 심심한 감사를 드립니다.》

또다시 박수갈채가 울리였다. 그이께서는 요란한 박수소리가 가라앉았을 때 말씀을 계속하시였다.

《가슴아픈 일은 왜놈들이 중요산업시설들을 모조리 파괴해버려서 그것을 복구하기가 힘들게 된것입니다. 게다가 아직 질서도 잡히지 않아 별의별 복잡한 일들이 많이 생겨나고있습니다. 지금 나라형편이 얼마나 복잡하고 어려운가 하는가를 다 같이 상기해보기 위해 제가 어저께 받은 무기명신소편지 하나를 이 자리에서 읽어드리자고 합니다.》

장군님께서는 탁자밑에 내려놓은 군용가방에서 십여장 되는 편지를 꺼내시였다. 무기명신소편지라는 말에 종업원들은 호기심이 어린 표정들을 하고 술렁거리였다.

장군님께서는 편지종이를 들고 《김일성부대 정치위원귀하, 소인은 흉중에 쌓인 울화와 고충을 어디에 하소할 곳이 없어…》 하고 방안의 모든 사람들이 정확히 들을수 있도록 큰 목소리로 천천히 읽어나가시였다.

술렁이던 종업원들은 숨소리도 없이 조용히 앉아있었다. 그들의 긴장도는 점점 높아졌다. 신소편지의 내용이 대단히 심각하고 현 치안기관들에 대한 책망과 항의의 목소리가 너무도 기탄없고 날카롭기때문이였다.

리문도는 속이 후련하였다. 한것은 신소자가 시보안서 감찰과장에게 공격의 화살을 겨누고 규탄하였기때문이였다.

그는 감찰과장 변대걸이와 왜정때부터 아주 사이가 나빴다.

어느해인가 리문도는 전기세를 가지고 협잡질을 하는 변대걸을 주먹으로 쳐갈겨 그의 대문이 두대를 부러뜨려놓았다. 지금 변대걸의 입에서 번쩍거리는 두대의 금이발은 리문도의 주먹에 얻어맞은 수치스러운 표적이였다. 협잡상습자인 변대걸은 끝내 해방전야에 민간세금을 사취한 협잡건으로 감옥에 끌리여들어갔다. 해방과 더불어 출옥한 그는 혁명가로 둔갑하여 시보안서 감찰과장자리에 올라앉게까지 되였다.

운명이란 참으로 기이한것이였다. 감찰과장의 칼자루를 쥔 변대걸은 수풍발전소 자치관리위원장(지배인격이다) 리문도가 서선전기회사에 와있다는 말을 듣고 금이발을 악물었다. 일제시기 전기부문에서 한자리 해먹던 친일파가 어떻게 활개치며 나다닐수 있는가고 당장 잡아가두겠다고 하였다. 리문도가 마당에 서있는 군복입은 사람들을 보고 화를 내며 2층창문을 닫아버린것은 자기를 잡으러 온 보안서사람들로 착각했기때문이였다.

리문도는 내심으로 신소자를 고맙게 생각하였다. 그가 변대걸에 대하여 일본세무서장의 발바닥을 핥아먹던 천하의 협잡군이라고 규탄하였으니 그것이면 정치위원이 감찰과장의 인간상을 들여다보기에 충분할것 같았다.

편지를 다 읽으신 장군님께서는 편지종이들을 두손으로 모두어잡아 탁자우에 그루를 쳐서 가쯘히 간종그리시고 종업원들에게 물으시였다.

《신소편지를 들어보니 감상이 어떻습니까?》

장내는 수선거리였으나 일어서는 사람은 없었다.

얼마후 방금전에 일어섰던 구레나룻이 쿨렁쿨렁 기침을 하며 일어섰다.

《음, 동무가 또 일어섰구만.》

《예, 제가 여기 로동조합장입니다. 박영만이라고 합니다. 저는 이 회사의 첫 공산당원으로서 정치위원동지앞에서 소감을 말씀드리고저 합니다.》

그가 아까는 《정치위원선생님》이라고 하였지만 이번에는 《동지》라고 불렀다.

《저는 신소자가 평양에서 벌어진 실태에 대해서는 사실그대로 말했다고 봅니다. 그러나 그는 아주 나쁜놈입니다.》

박영만은 움켜쥔 주먹으로 가슴을 치면서 분격을 터뜨렸다.

《왜 나쁜놈인가?》

그는 폭발되는 기침때문에 말을 잇지 못하였다.

《너무 흥분하지 말고 차근차근 말하시오.》

장군님께서 그를 진정시키시였다.

《예, 제가 감옥살이를 하면서 페가 좀 나빠졌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신소자는 지금이 왜놈때보다 더하다는데 나는 왜놈때 로조운동을 하다가 감옥에 끌려가 매를 맞고 피를 토했지만 지금은 이렇게 마음 편히 살고있습니다. 여러분, 그렇지 않습니까? 왜놈때 우리는 인간이하의 천대를 받았지만 지금은 일성장군님부대 정치위원선생님을 모시고 국사를 의논하지 않습니까. 그래 왜놈때보다 못하단 말이요?》

《아니요. 그놈은 정말 나쁜놈이요!》

누구인가 웨치자 종업원들이 일시에 호응하였다.

리문도는 무서운 기세로 소리치는 종업원들을 놀랍게 바라보았다. 그가 놀란것은 군중의 고함소리때문이 아니라 사고와 리해관계에서 자기와 엄청난 차이가 있는 종업원들을 발견하였기때문이였다. 자기는 신소자에게 무한히 공감되고 그래서 내심으로 열렬한 지지를 보냈지만 종업원들은 지금 무섭게 분노하고있지 않는가.

리문도는 박영만의 목소리가 그 어떤 심연의 저쪽 먼 대안에서 메아리쳐오는것 같았다.

《물론 신소자에게는 자산가들을 숙청해버리는 오늘이 왜놈때보다 못할수 있습니다. 그들은 왜놈때 배를 곯지 않고 떵떵거리며 잘 살았으니까요. 그러나 우리 절대다수의 로동자, 농민들은 지주, 자본가와 일제군경들의 채찍에 얻어맞으며 살아왔습니다. 생활의 고통을 더는 참을수 없어 로동쟁의, 소작쟁의를 일으키면 감옥에 끌어다가 때리고 죽이였습니다. 신소자가 이런 맞을 보았겠습니까?

지금 전염병이 돌고 모두 굶고있고 교통이 마비되였다고 하면서 책임을 공산당에 묻고있는데 얼마나 나쁜 놈입니까?

그래 그게 공산당탓인가요? 보안서때문인가요?》

박영만은 정치위원이 아니라 숫제 종업원들을 대상하여 질문을 들이대고는 스스로 대답하였다.

《아니지요. 왜놈들이 다 마사버려서 이 모양이 되였지요.

신소자는 일본세무서 서장의 발바닥을 핥던 천하의 협잡군이며 방탕아인 털보세무관 변대걸이가 어떻게 일조에 보안서 감찰과장이 되였는지 알수 없다고 했는데 그에 대해선 제가 설명해줄수 있습니다. 그는 해방직전에 돈협잡건으로 감옥에 들어왔는데 실지 알아보니 일제시기 협잡군, 방탕아로 가장하고 지하운동기금을 모으러 다닌 사람이였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지금 도공산당 정치부를 책임지신 장시우동지도 인정합니다. 그분은 변대걸과장의 매형벌이 된다고 합니다.》

잠시 말을 끊었던 박영만은 리문도에게 시선을 돌리며 어성을 높이였다.

《감옥에서 어떤 고생을 했는지 아십니까? 저, 저 리문도선생님은 언제인가 저더러 수염을 깎고 외모를 단정히 하라고 권고했지요? 제가 왜 수염을 깎지 않는지 오늘은 솔직히 말하겠습니다. 이 수염을 깎으면 제 얼굴에 공산마귀를 입묵한 흉칙한 허물이 보인단말이요. 왜놈들이 감옥에서 내 얼굴에 그런걸 입묵했단 말이요! 나도 도덕을 모르는 사람이 아니요. 이 모양을 하고 정치위원선생님앞에 나서는것이 무엄한줄…》

박영만은 가슴을 움켜쥐며 발작적인 기침을 하였다. 경악한 종업원들이 모두 들썩거리며 떠들어댔다. 리문도의 놀라움은 누구보다도 컸다.

《제가 오죽하면 이 더부룩한 수염을 가지고 귀한분을 모시고 진행하는 이 회의에 참가했겠습니까. 정말 죄송합니다.》

박영만은 장군님을 향하여 깊이 머리를 숙이였다.

《나쁜 놈들!》

별안간 뢰성처럼 울리는 정치위원의 노한 웨침소리에 리문도는 몸을 움츠리며 눈을 꾹 감았다.

《내가 혁명을 하면서 감옥살이를 한 사람들을 수없이 보았지만 저 동무처럼 얼굴에 입묵을 받은 사람은 보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중세기적인 자자형벌입니다.

우리가 어떤 일이 있어도 저 조합장의 얼굴에서 자자를 지워버립시다. 백만금의 돈을 모아서라도 수술을 시킵시다.》

박영만은 오한에 몸을 떨듯 전신을 부들부들 떨면서 주먹으로 눈언저리를 문질렀다.

장군님께서는 옷이 없어 아직 감옥안에서 입었던 죄수복을 그대로 입고있는 박영만을 련민의 눈길로 지켜보며 말씀을 이으시였다.

《신소자를 규탄하는 조합장동무의 심정이 리해됩니다. 그려나 마음을 진정하고 생각해봅시다. 신소자가 구한국시대와 왜놈때보다도 지금이 더 가혹하다고 한것은 미군정의 폭정을 두고 한 말입니다. 그 대목을 다시 읽어줄테니 잘 들어보시오.》

장군님께서는 편지종이를 몇장 번지시여 해당한 대목을 찾아 읽으시였다. 그것을 마지막까지 읽으신 장군님께서는 편지종이를 다시 간종그려 탁자우에 올려놓으시였다.

《조합장동무, 신소편지를 받고 즉시 료해해보았는데 시보안서 감찰과장은 상습적인 협잡군이였습니다. 왜정땐 세금을 가지고 협잡하고 해방후엔 권력을 가지고 협잡을 했습니다. 그는 송대관이뿐 아니라 숱한 개인기업가들을 친일파라고 하며 잡아다가 재물을 빼앗아내서 제 안주머니에 집어넣고 모모한 사람들에게 뢰물을 바쳤습니다. 지하운동을 했다는것도 거짓말입니다. 순전히 돈협잡건으로 감옥에 들어갔댔습니다.》  회의장이 소연해졌다.

《감찰과장이 공산당은 중소기업가들까지 죄다 숙청하며 모든것을 네것내것 없이 공유하는 신사회를 건설한다고 했다는데 이건 잘못된 말입니다. 물론 친일지주, 매판자본가들은 숙청해버려야 하지만 량심적인 민족자본가, 중소기업가들은 타도할것이 아니라 오히려 기업을 잘하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양말 한컬레, 천 한필이라도 더 생겨나지 않겠습니까. 지금 우리에게는 식량도 없으며 소비품도 없습니다. 지어 연필 한자루도 없습니다. 지금 여기에도 신발이 없어 맨발로 와앉은 사람이 많습니다. 이런 형편에서는 빨리 수공업이라도 차려놓아서 우선 인민들이 먹고 살수 있는 조건부터 마련하고 그 기초우에서 산업부흥을 일으켜야 합니다. 그런데 아무 죄도 없는 민족기업가들을 잡아다 일을 못하게 하였으니 이게 잘된 일입니까? 이에 대해 규탄하는 신소자가 무엇이 나쁜가?

나는 신소를 받고 깊이 생각해보았습니다. 무엇을 생각했는가?》

장군님께서는 회의장을 둘러보시며 편지종이를 들어올리시였다. 《신소자는 정사를 바로 잡기 위해 일성장군님을 빨리 찾아가 달라고 했지만 나는 일성장군이 아니라 서선전기회사와 평양곡산공장 사람들을 빨리 찾아가야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됐는가?》

장내는 물을 뿌린듯 조용해졌다.

장군님께서는 리문도가 보는 앞에서 신소편지 여백에 《天之天》이라고 쓰시였다.

《예로부터 우리 조상들은 먹는것을 천지천 즉 하늘의 하늘이라고 했습니다. 왜 그랬는고 하면 뜻이 있는 사람들은 백성을 하늘이라고 하고 어진 백성들은 먹는것을 하늘이라고 했기때문에 결국 먹는것이 하늘의 하늘로 된다는것입니다.

이것은 인간생활에서 먹는것이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나는 하늘의 하늘을 생각하면서 여러분들을 찾아왔습니다.

왜? 곡산공장은 쌀을 생산하는 농민들과 같이 사람이 먹는 엿, 사탕, 과자를 생산하는 공장이고 전기회사는 산업의 식량을 생산하는 기업소이기때문입니다. 사람이 먹는것을 생산하는 곡산공장도 전기가 있어야 합니다.

전기는 산업의 식량, 산업의 원동력, 하늘의 하늘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리문도선생?》

리문도는 강한 충격을 느끼며 방금 정치위원이 만년필로 써놓은 푸른 세 글자 《천지천》을 다시금 지켜보았다.

누구나 알아들을수 있는 통속적인 말로 민족적색채가 짙은 옛성구도 인용하면서 전기의 절대적인 필요성에 대하여 강조하는 정치위원의 독특한 선동력에 리문도는 경이감을 금치 못했다. 그는 여태 알지 못하고있던 새로운 전기의 세계를 보는듯 했다.

그이께서는 두개의 백촉전기등이 매달려있는 천정을 올려다보며 말씀을 계속하시였다.

《현시대에 와서 전기를 쓰지 않는 공장, 기업소는 하나도 없습니다. 중기기관차를 움직이는 석탄도 전기가 없이는 생산할수 없습니다. 이렇게 놓고 볼 때 여러분들의 임무가 대단히 중요합니다. 지금 평양사람들은 모두 전기회사를 바라보며 언제면 전기가 살아날가 하고 기다리고있습니다. 그래 언제면 전기를 살려낼수 있겠습니까? 언제면 전기불도 보고 전차도 다닐수 있겠는가?》

장군님께서 절절하게 물으시였으나 누구도 대답을 드리지 못하였다. 리문도도 눈을 내리깔고 가만히 앉아있었다.

가슴답답한 침묵이 그냥 계속되여 장군님께서 리문도에게 물으시였다.

《무엇보다도 수풍발전소를 살려내야겠는데 거기 실태는 어떻습니까?》

《발전소의 파괴상은 대폭격을 받은것과 같습니다.》

리문도는 침통한 표정을 지은채 중얼거리였다. 일제는 수풍발전소 발전기들의 고정자와 회전자사이에 장약을 하여 폭파해버리는 귀축같은짓을 하였다. 수풍발전소만이 아니라 북부지역의 모든 대형발전소들에서 그따위짓을 하였고 평양, 함흥, 청진 등 주요 산업도시들에서는 수만크바짜리 변압기의 배유변들을 개방하여 불을 질러버렸다.

리문도가 이런 사연을 장군님께 말씀올리고있을 때 회의장 맨 앞줄 창문곁에 앉아있던 몸이 장대한 젊은이가 불쑥 일어났다.

《저 정치위원선생님, 제 한가지 버릇없는 질문을 해도 일없겠습니까?》

방안사람들의 시선이 그에게로 쏠리였다.

굵은 종다리가 드러난 깡퉁한 홑잠뱅이에 누덕누덕 기운 베적삼을 입은 젊은이의 옷차림은 비록 허술해도 균형이 잡힌 큰 체구에 얼굴이 끼끗하게 잘 생긴 미남자였다.

장군님께서는 맨발로 서있는 젊은이를 측은히 바라보시였다.

《좋소, 무엇이든 다 물어보시오. 그런데 동무의 이름은 뭐고 지금 무슨 일을 하고있습니까?》

《오천행이라고 합니다. 여태 별루 하는 일 없이 건둥건둥 지냅니다. 여긴 재미가 없어 이제 리문도선생님을 따라 수풍엘 가자고 합니다.》

《재미가 없어 수풍에 가다니? 여기도 할일이 많겠는데 건둥건둥 지낸다는것도 모를 소리요. 동문 생활이 몹시 곤난해보이는데 부모님이랑 계시오?》

《저 동문 친부모가 없습니다. 천행이란 이름에도 사연이 있습니다.》

리문도가 오천행의 기구한 운명에 대해 아는껏 말씀올리였다.

수풍발전소건설이 한창이던 1938년이였다. 수전공사장에 30키로짜리 세멘트포대 두개를 헐하게 메고다니는 오천행이라는 열세살의 소년힘장사가 나타나서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다,

당시 그곳에서 현장기사로 복무하고있던 리문도는 그 기이한 소문을 듣고 일부러 소년장사를 만나보았는데 그는 갓난아기때 보통강물란리에 량부모를 잃어버리고 이모의 품에서 자라난 불쌍한 소년이였다. 천행이란 이름은 천행으로 살아났대서 토성랑사람들이 지어준 이름이였다. 열일곱살에 남편을 잃고 소작살이를 하면서 겨우 생계를 이어나가는 그의 이모는 늘 장리빚에 시달렸다고 한다.

오천행은 어렸을 때부터 먹을것이 없어 평양주변의 논밭과 야산에서 메뚜기, 개구리, 뱀, 족제비, 토끼, 참새따위의 온갖 산짐승 날짐승, 벌레들을 잡아먹었다. 그는 사람이 먹을수 있는 풀이란 풀은 다 뜯어먹었다.

그는 날아가는 새도 고무총으로 쏘아떨구는 백발백중의 《명사수》이고 《일람첩기》의 비상한 기억력과 리해력을 가진 보기드문 수재였다. 제 이름자도 쓸줄 모르던 소년이 리문도에게서 글을 배우기 시작한지 넉달사이에 한문이 많이 섞인 조선글 신문, 잡지들은 물론 일본글 전기기술서적까지도 읽고 리해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리문도는 건강한 육체와 비상한 재능을 겸비한 이 소년장사를 체육계로 발전시킬것인가 전기기술자로 키울것인가 하고 궁리해보고있는데 어느새 소문을 듣고 서선전기회사 사장이 오천행을 자기 개인급사로 데리고 갔다.…

리문도의 이야기를 들으신 장군님께서는 맨발로 서있는 오천행을 한동안 묵묵히 내려다보시였다.

《일본사장놈은 저 동물 급사로 데려다 부려먹으면서도 옷 한벌, 신발 한컬레도 변변히 주지 않았던 모양이구만.》

《애당초 그놈은 특출한 재능과 힘을 가진 조선소년의 육체와 정신을 마사버리기 위해 자기 곁에 끌어들였던것 같습니다.》

그이께서는 긴 숨을 쉬시고 장내의 모든 사람들이 들을수 있도록 말씀하시였다.

《오천행동무, 나라가 해방되였으니 앞으로 배움의 길도 활짝 열리게 될거요. 마음껏 배워 훌륭한 전기기술자가 되시오. 아까 뭐 묻고싶은게 있다고 했는데 아무거나 다 물어보시오.》

《예. 그러면…》 하고 오천행은 넉가래같이 크고 넙적한 손으로 목덜미를 몇번 문지르더니 흥분을 띤 어조로 말하였다.

《수풍발전소는 말짱 우리 조선사람들의 피땀으로 건설된겁니다. 저두 수전공사장에서 일했습니다. 발전소엔 조선인부들의 피가 배있습니다. 그런데 왜 쏘련군대가 적산이요, 전리품이요 하고 발전설비들을 쏘련으로 실어가는가 하는겁니다.》

회의장이 일시에 술렁거리였다.

리문도는 가슴이 철렁하였다. 오천행의 질문이 너무도 반발적이고 날카로왔기때문이였다. 하면서도 그자신이 오천행이와 같은 의문을 가지고있은터여서 고개를 수굿한채 정치위원의 대답을 기다렸다. 그런데 로동조합장이 또 참지 못하고 일어섰다.  《오천행이, 너 일본사장놈의 급사질을 하디니 친일파가 다 됐구나. 어디앞에서 쏘련군대한테 험구질을 해?》

오천행이 천천히 뒤를 돌아보았다.

《조합장형님, 자꾸 삐치지 말구 앉으시라요. 내가 뭐 없는 소리를 합니까. 이건 죄다 사실이란 말입니다.》

오천행은 주먹으로 가슴을 치며 소리쳤다. 《난 이게 다 리해되지 않아 정치위원선생님한데 허락을 받구 물어보는건데 뭐 일본사장놈의 급사라구요? 친일파라고요? 리문도선생을 붙잡아가겠다는 변대걸은 애국자이고?… 난 그런 협잡군을 내세우고 두둔하는 조합장형님도 장시우도당부장도 모르겠시요.》

오천행의 시커먼 눈섭이 푸들거렸다.

《저… 저런 버르장머리 없는 녀석이 있나. 덜된 녀석, 너 그러면 못써!》

박영만은 화가 나서 죄수복 웃단추를 와락 잡아뜯었다. 성미가 과격한 다혈질의 기질인 그는 쉽게 리성을 잃어버리는 사람같았다.

회의장 뒤쪽에서 반백의 중늙은이가 불쑥 일어났다.

《임자네들 정신이 있나? 명성높은 김일성장군님부대 정치위원선생님앞에서 이 무슨 불손한 언동인가? 언감 어디 앞에서? 천하법도를 모르구 도덕두 없는 녀석들! 임자네들이 지금 우리 회사망신을 다 시켜!》

중늙은이의 준절한 꾸중을 듣고 비로소 박영만은 자기의 분수없는 행동에 대한 잘못을 알아차린듯 주석단을 향해 정중히 절을 하고 자리에 앉았다. 그러고보면 흥분과 억제의 반응이 빠르고 뒤끝이 없는 사람이였다. 그러나 오천행은 여전히 얼굴을 찌뿌둥한채 박영만에게 눈을 흘기며 서있었다.

장군님께서는 무질서로 혼란되여있는 회사의 실태와 회의적인 분위기에 휘말려있는 회사종업원들의 불안정한 정신상태를 간파하시였다. 그이께서는 이것이 온 나라의 실태를 반영하고있는듯싶어 사뭇 마음이 무거우시였다.

전국을 휩쓴 이 혼란과 무질서를 어떻게 수습할것인가? 허나 그이께서는 내색을 하지 않고 너그럽게 웃으시였다.

《정치위원이라고 뭐 특별한 사람이 아닙니다. 론쟁을 못할건 없습니다. 상반되는 의견이 있으면 자유롭게 론쟁을 벌려 합의점을 봐야 합니다. 하지만 함부로 인격적모욕을 해서는 안됩니다.》

장군님께서는 허리를 꺼꺼부정하고 불안스레 서있는 오천행을 자리에 앉히시고 말씀을 계속하시였다.

《천행동무가 중요한 질문을 했는데 그에 대해 이야기를 좀 합시다. 쏘련군대가 조선의 산업시설들을 뜯어간것이 사실이라면 그것은 쏘련당과 정부의 뜻에 어긋나는 행동입니다.》

장군님께서는 이렇게 전제하고 계속하시였다.

《그런데 왜 쏘련군대들이 우리의 산업시설들을 떼갔는가? 두가지 원인이 있는것 같습니다. 하나는 쏘련군대들속에도 아직 낡은 사상을 뿌리빼지 못한 사람들이 있기때문에 략탈행위를 하는 사람들이 있을수 있습니다. 다른 하나는 쏘련군대의 일부 사람들이 쓰딸린과 쏘련공산당의 의도를 잘 모르고있고 조선에 대한 인식을 잘못 가지고있는것과도 관계됩니다.

일제가 소유하고있던 이른바 적산은 두말할것없이 조선인민의 피땀이 어린 조선의 재산입니다.

여러분! 똑똑히 알아두시오. 조선의 모든것은 조선사람의것입니다.

우리는 당당한 조선의 주인입니다. 쏘련군대들이 우리의 산업시설들을 전리품이라고 하며 뜯어가는 일이 북조선의 그 어느곳에서도 앞으로 다시는 생겨나지 않으리라는것을 여러분들앞에서 확언합니다.》

갑자기 온 장내에 요란한 박수소리가 울렸다.

리문도도 눈물이 글썽해서 손바닥이 피멍이 들만큼 힘있게 오래오래 손벽을 치면서 생각하였다. 모든 어려운 질문들과 복잡하게 얽혀있는 인간문제의 미지수에 대하여 방정식으로 답을 풀어내듯이 명확한 해답을 주고 쏘련이라는 대국의 군대가 하는 일도 제동시킬 자신을 가지고있는 저 정치위원이야말로 아직 내가 조선에서는 보지 못한 거장이시다, 위인이시다.

장군님께서는 흥분된 어조로 말씀을 계속하시였다.

《이제는 우리가 나라의 주인이 되였으니만큼 주인구실을 똑똑히 해야 합니다.

왜놈들은 조선의 산업시설들을 마사버리고 쫓겨가면서 미개한 조선사람들의 힘으로는 백년이 걸려도 현대산업경제를 운영할수 없다고 모욕했습니다. 미국대통령도 조선사람들은 자기 힘으로 독립할수 없다고 하면서 수십년동안 신탁통치를 하여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래 우리가 과연 자기 힘으로 조선독립을 할수 없고 현대산업을 경영할수 없단 말인가?》

장군님께서 손바닥으로 탁자를 두드리며 일어서시였다.

《우리가 왜 못하겠는가, 이제 우리가 힘과 지혜를 합치면 무엇이든 다 할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여러분들이 전기를 살려내지 못한것도 기술이나 자재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힘과 지혜를 합치지 못한데 원인이 있다고 봅니다. 방금도 박동무와 오동무가 친일파요 뭐요 하며 티각태각했는데 서로 화목하고 단합해야 합니다.》

장군님께서는 회의장벽에 붙어있는 《공산당기발밑에 뭉치자》라는 구호를 가리키며 말씀을 이으시였다. 《저 구호는 떼버리고 애국의 기발밑에 뭉치라는 구호를 써불이는게 좋겠습니다. 예로부터 백성이 뭉치면 하늘도 이긴다고 했습니다. 모두 한데 뭉쳐서 돈이 있는 사람은 돈을 내고 여기 리문도선생처럼 기술이 있는 사람은 기술을 내고 저 오천행동무처럼 힘이 있는 사람은 힘을 내고 이렇게 누구나가 다 자기에게 있는것을 하나씩 내서 합치면 무슨 일인들 못하겠습니까. 능히 전기를 살려낼수 있습니다. 전기를 살려내면 공장을 살려낼수 있고 전기료금을 받아서 여러분들의 로임을 풀수 있습니다. 한편 농민들의 소작료 3. 7제운동을 지원하면 쌀도 나옵니다. 일제시기에도 이런 구호를 들고 싸웠는데 로동자, 농민의 세상이 된 오늘에야 왜 못하겠는가?》

장군님께서는 평양지구에 6천여호의 적산가옥이 있으므로 그것이면 집없는 로동자들과 류랑민들의 집문제도 풀수 있다고 하시였다.

《다시 말하지만 오늘 나라의 운명이 전기에 달려있습니다. 그러니 애국의 기발밑에 모두 뭉쳐 없는것은 찾아내고 부러진것은 붙이고 구멍난것은 때고 모르는것은 서로 배우고 배워주면서 기어이 전기를 살려내야 합니다. 방금 듣자니 하나밖에 없는 전기기사인 리문도선생을 붙잡아가겠다는 시람이 있다고 하는데 그게 사실이라면 매우 옳지 못합니다. 그는 우리와 함께 먼길을 가야 할 사람입니다.》

리문도는 불시에 인두에 지지우는듯 눈부리가 확 달아올랐다. 정치위원의 목소리가 그냥 그의 가슴을 세차게 울리였다.

《여러분! 힘을 합칩시다. 그래서 조선사람들은 제 힘으로 독립도 못하고 경제운영도 못한다고 하는 놈들에게 본때를 보여주어야 합니다.》

장군님께서 주먹을 들어보이시자 박영만이 벌커덕 일어나더니 두주먹을 머리우로 올리뻗치였다.

《전기를 살려내자!》

《살려내자!》

일시에 화답하는 종업원들의 웨침이 단결의 위력을 보여주듯 회의장에 메아리쳤다.

장군님께서는 시계를 들여다보시였다. 평양곡산공장으로 가실 시간이 박두해오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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