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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번영의 시대 제15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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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0건 조회 6,276회 작성일 19-10-24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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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04.jpg

(제 15 회)

제 3 장

5

 

김책이 장군님의 집무실로 들어갔을 때 그이께서는 응접탁주위에 빙 둘러앉은 교직자들과 한자리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계시였다. 선거에 대한 이야기를 하신것이 아니라 교직자들의 생활형편에 대하여 알아보시던것 같았다.

검은 외섶양복을 입고 앉으신 장군님께서 불쑥 나타난 김책을 의아히 바라보시였다.

《김책동무가 어떻게 왔소?》

《예, 좀…》

김책은 대답을 얼버무리며 바른쪽벽가에 놓인 빈 의자에 앉았다. 응접탁을 가운데 놓고 타원형으로 둘러앉은 교직자들속에는 그가 여러번 만나본 고집불통의 목사, 장로들이 있었다. 양복을 입은 사람, 조선바지저고리에 대님을 맨 사람, 코수염을 기른 나비넥타이의 신사형의 사나이, 말총모자를 손에 쥔 구식때에 쩌들은 늙은이, 교직자들의 행색은 각양각이하였다.

이들은 카틀릭교, 장로교, 감리교, 성결교, 안식교 등 여러 교파의 교직자들이였다.

해방직전에 집계한 자료에 의하면 평양지구에 있는 각 교파의 교회총수가 71개나 되였다. 목사가 52명, 신부가 4명, 세례교인총수는 무려 18 950명이나 되였다. 이중에서 평양장로교는 48개의 교회와 1만 4천명의 교도를 가지고있는 가장 세력이 큰 교파였다. 장대재례배당도 장로교였다.

김책은 예수의 광신자들이 혹시 장군님께 욕된 말을 하지 않을가싶어 한껏 불안해진 마음으로 앉아있었다.

장군님께서 그들과 하시던 말씀을 계속하시였다.

《아직 물건값들이 비싸서 목사님들도 생활에서 곤난한 점들이 많을겁니다. 이제 한 일년만 꾹 참으면 우리 살림도 좀 펴일것 같습니다.》

장군님께서는 이제 현물세를 다 받으면 쌀값이 푹 떨어질것이다, 날을 따라 일용품생산도 늘어나고있어 천값, 옷값, 신값들도 내려가게 된다, 래년에 로임인상과 물가인하에 대한 법령을 채택하려고 한다, 이렇게 생활문제에 대한 이야기를 하시고 장대재례배당 홍목사에게 물으시였다.

《김장준비는 됐습니까? 소금이랑 사들였습니까?》

《예. 일전에 장군님의 령이라고 하면서 소비조합에서 평양시 각 주민들에게 눅은 값으로 소금을 팔아주어서 저희들도 소금걱정은 하지 않습니다.》

검은 두루마기를 입은 홍목사는 정중히 그리고 조심스럽게 대답을 올리였다. 코수염을 기른 그의 나부죽한 얼굴에는 불안의 기색이 떠돌았다. 장군님께서 자기들을 만나시려는 까닭을 짐작하고있기때문이였다.

《소금은 인민생활에서 한시도 없어서는 안될 상비품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나라에서 좀 손해를 보더라도 소금만은 아주 눅은 값으로 팔게 했습니다. 왜놈들은 소금과 같은 식료품까지 전매제도를 실시해서 인민들이 고통을 받게 하였습니다. 때는 나무는 어떻습니까?》

장군님께서 너그럽게 물으시였다.

《나무는 교인농민들이 례배보러 올 때마다 한단씩 지고오군 해서 그리 걱정이 없습니다. 이제 장군님께서 현물세이야기를 하셨는데 교인농민들의 살림이 부쩍 올라가고있습니나. 요즘 례배보러 와서 단번에 5전이상 성금을 내는 농민들이 있습니다.》

일요일 례배를 볼 때마다 기도드리는 교인들속으로 곤충투망 같은것을 들고다니면서 성금을 받는데 그안에 1전정도의 돈을 넣는것이 상례였다. 가난한 교인들은 한주일에 한번씩 1전의 성금을 내는것도 힘에 기운 일이였다.

《홍목사님이 토지개혁을 한데 대하여 만족스럽게 생각하신다니 저도 기쁩니다. 그러나 토지개혁을 비롯해서 인민정권에서 실시한 제반민주개혁과 시책에 대해서 불만스럽게 생각하는 목사, 장로님들도 있다고 합니다. 오늘 모처럼 자리를 같이한 기회에 여러분들의 고견을 좀 들어보자고 합니다. 우리가 잘못된것이 있으면 고쳐야 하니 조금도 서슴지 말고 말씀해주십시오.》

칼날처럼 예리해졌던 김책의 신경은 기껏 잡아당긴 활시위처럼 팽팽히 헤기워졌다.

그이께서 목사, 장로들에게 발언의 자유를 주셨으니 이제 저들속에서 무슨 말이 나올지 몰랐다. 허나 설사 적대자와 모임을 하는 경우에도 언제나 상대자에게 언권의 자유를 주시는 장군님께서 여기 예수의 광신자들앞에서도 례외의 일을 하지 않으시니 자못 불안스러웠다.

말총모자를 쥐고 앉아있던 늙은이가 채수염을 손으로 쓰다듬으면서 일어났다.

《저는 안식교의 장로 민덕선이라 하옵니다. 방금 홍목사님께서도 말씀하신것처럼 토지개혁이후 농민교인들의 살림이 펴이고있는데 대해선 저도 더할나위없이 기쁘게 생각합니다. 허나 예수님의 자비하신 복음을 선교하는 저로서 매양 괴롭고 죄스럽게 생각되는바가 있으니 그것은 지주의 토지를 빼앗아 하느님을 노엽힌것때문이옵니다. 하느님께서는 땅에 떨어진 1푼의 금전도 남의것이면 줏지 말라 하였거늘 지주에게서 빼앗은 토지를 가졌으니 이것이 민간의 재물을 토색질하여 부귀를 누리는 도적행위와 무엇이 다르겠는가싶어 토지받은 농민교인들을 볼 때마다 전전긍긍하게 됩니다. 미구에 하느님의 벌이 내려지게 될것 같사옵니다.》

방안이 술렁거리였다. 민덕선은 일어설 때처럼 채수염을 쓰다듬으며 앉았다. 김책은 기가 막히였다. 저렇게 일변도의 사고로 땅땅 굳어진 돌머리를 어떻게 풀어버릴수 있겠는가, 저 안식교의 장로도 이미 토지개혁에 대한 해설과 선전을 골백번 받았을것이다.

장군님께서는 여전히 인자한 표정을 지으신채 안식교의 장로로인을 바라보며 말씀하시였다.

《장로님은 하느님앞에서 조금도 죄스럽게 생각할건 없습니다. 물론 땅을 떼운 일부 목사, 장로들은 토지개혁에 대해 섭섭해하고 지어 반감을 가질수 있지만 토지개혁이 하느님을 노엽힐 일은 하나도 없습니다. 오히려 기뻐할것입니다. 교인들이 밤낮으로 외우는 말이 무엇입니까.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렵다는게 아닙니까. 락타가 바늘구멍으로 나가는것이 부자가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가는것보다 쉽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예수님은 네가 온전한 사람이 되고저 할진대 가서 있는것을 팔아 가난한이를 주라라고 하셨습니다.》

교직자들은 몸을 궁싯거리며 안식교 장로를 돌아보았다.

《왜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렵겠습니까. 그것은 부자야말로 가난한 사람들을 착취억압하여 살진 놀부와 같은것이기때문입니다. 물론 평양의 백선행과부와 같이 자수성가하여 부자가 된 이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부자는 천의 하나, 만의 하나와 같이 많지 못하며 또 그런 선량한 부자들은 토지개혁을 할 때 스스로 토지를 바쳤습니다. 생전에 자선을 많이 베푼 백선행과부도 살아있다면 자기가 가지고있던 토지와 돈을 나라에 바쳤을것입니다. 마음씨 고운 그분은 틀림없이 누구보다도 인민정권을 지지했을것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지주들은 조선사람들의 토지를 빼앗기 위해 왜놈들이 토지조사령이라는것을 발포할 때 친일매국행위를 해서 부당하게 많은 땅을 가지게 되였습니다. 실례로 장대재례배당 장로였던 오윤선이도 바로 그렇게 협잡을 쳐서 지주가 된 사람입니다.

하느님과 예수께서 부자를 미워하고 천국에 받아들이지 않는것은 그때문입니다.》

많은 교직자들이 고개를 끄덕이기 시작하였다. 안식교 장로로인은 말총모자를 주물럭거리며 무어라 혼자소리로 중얼거리였다.

김책은 《돌머리》들이 풀려지고있는것을 감촉하며 안도의 숨을 쉬였다.

《유감스러운것은.》

장군님께서 진지한 표정을 지으시였다.

《사랑을 선교하는 일부 목사들속에 지난 기간 가난한 농민들에게 소작료 7할을 주는것마저 반대할뿐아니라 마름을 시켜 농민들의 집에 가서 7할로 받은 쌀을 도로 빼앗아낸 일이 있은것입니다.》

그이께서는 이번에도 오윤선의 실례를 드시였다. 평남도 대동군 고평면에 많은 토지를 가지고있는 그는 자기의 마름 김인학을 시켜서 소작인들의 고간에 있는 쌀을 빼앗아내는 잔인한짓을 했었다. 그의 악착스러운 략탈행위를 신문 《정로》를 통해서도 폭로했었다. 조만식과 단짝인 오윤선은 평남도인민정치위원회 부위원장직에 올라앉아 인민에게 피해를 주는 나쁜짓만 하다가 남으로 도주하였다.

《놀부와 같은 행동을 하는 이런 사람이 과연 사랑과 자비를 신조로 하는 그리스도교의 장로가 될수 있단 말입니까?》

《그 사람은 본디 욕심이 많았습니다. 예수님의 뜻을 거역했습니다.》

홍목사가 얼굴을 붉히였다.

《그렇습니다. 목사님들의 얼굴에 흙칠을 했습니다. 내가 아까도 말했고 또 신문에도 소개되여 모두 아시겠지만 토지개혁을 할 때 인민정권의 뜻을 리해하고 자발적으로 가난한 농민들을 위해 땅을 바친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례배당의 목사, 장로라고 하는 사람들이 땅을 내놓기는커녕 토지개혁법령을 집행하는 사람들을 살해하고 곡식단에 불을 지르게 하였습니다.》

그이께서는 집무탁에서 그림책 한권을 가져다가 응접탁에 펼쳐놓으시였다. 레오나르드 다 빈치의 유명한 벽화 《최후의 만찬》을 축소모사한 유화가 교직자들의 시선을 끌였다.

장군님께서는 각이한 모습으로 형상된 열세사람의 그림을 가리키며 말씀을 계속하시였다.

《이 그림을 보십시오. 지금 예수께서는 12명의 제자들을 둘러보며 너희들가운데 나를 배신한자가 있다.고 말하고있습니다.》

장군님께서는 유화속에 형상된 뻬뜨로며 요한네 등 12제자들을 잠간 훑어보시고나서 교직자들에게 물으시였다.

《장대재례배당에도 이 그림을 붙여놓았다고 하는데 왜 붙였습니까? 유다와 같은 배신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이지요. 너희들중에 배신자가 있다고 한 예수의 말에 정신이 아찔해져 뒤걸음을 치면서 저도 모르게 예수의 오른손가까이로 왼손을 내밀고있는 저 비렬한 모양의 사나이가 유다입니다.… 목사, 장로들중에도 오윤선이와 같은 유다가 있을수 있습니다. 예수가 직접 가르치고 키워낸 제자들속에도 배신자가 나오는데 례배당의 목사, 장로들속에서 배신자가 나오지 않는다고 어떻게 단언할수 있겠습니까?》

교인들은 눈이 휘둥그래졌다. 장군님께서 그처럼 해박한 종교지식을 가지고계시는줄은 생각 못했던 그들이였다. 항일의 나날 반일민족통일전선형성을 위하여 교인들과의 사업에 깊은 심혈을 기울이신 장군님의 로고에 대하여 그들이 알리 없었다.

《목사님들은 이 그림을 걸어놓고 례배를 보시면서도 유다에 대하여 경계하지 못하고있습니다. 목사님들이 지금 가지고있는 예수의 계시문은 유다와 같은 놈들이 허위날조한 글입니다. 예수를 롱락한 글입니다.》

그이께서 응접탁우에 손을 얹으시며 새삼스레 교직자들을 쭉 둘러보시였다.

홍목사가 급히 일어섰다.

《장군님, 예수의 계시문은 예수님의 복음이 틀림없습니다. 성서에 밝혀있는 그대로입니다. 제가 이제 보여드리겠습니다.》

머리를 세차게 내저은 홍목사는 컴컴하게 질린 얼굴을 하고 응접탁밑에 놓인 가지빛가죽가방안을 뒤적거리였다.

김책은 다시 긴장해졌다. 홍목사가 가지고있는 《예수의 계시문》을 그도 읽어보았던것이다.

《나의 피로 적어서 너희들에게 이르노니 하느님의 섭리를 거역하여 안식일에 선거장으로 가는자 3대를 내려가며 죄가 이어져 벌을 받게 되리라!》

홍목사가 어느날 낮잠을 자고 일어나니 책상우에 그런 《계시문》이 얹혀있더라는것이였다.

드디여 홍목사가 붉은 천으로 정중히 싼 물건을 장군님께 올리였다. 그이께서 붉은 천을 헤치고 까만 나무함뚜껑을 여시였다. 그이께서는 《예수의 계시문》을 오래도록 들여다보시였다.

방안은 물을 뿌린듯 조용하였다.

몇초이면 읽으실수 있는 계시문을 장군님께서 왜 저렇게 오래도록 들여다보고계실가?

김책은 마음을 조이였다. 마침내 장군님께서 《계시문》에서 눈길을 떼고 홍목사를 바라보시였다.

《이것은 반동놈들의 조작이 틀림없습니다. 왜 그런가?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례배를 보는 외에 무리를 지어 다른 잡일을 해서는 안된다고 한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내가 길림에 있을 때 손정도목사님한테서 들었는데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에도 사람을 위해 좋은 일을 하는데 대해서는 장려한다고 하셨다고 합니다,

목사님들은 예수님의 그 말씀이 기억나지 않습니까?》

《옳소이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나이다.》

안식교 장로 민로인이 소리치며 일어나더니 눈을 감고 복음을 외웠다.

그리고는 눈을 뜨고 목사, 장로들을 둘러보며 자리에 앉았다.

《그렇다면 모두 생각해보십시오. 11월 3일에 실시하는 도, 시, 군인민위원회 위원선거가 사람들에게 리로운 일인가 해로운 일인가. 이것은 의심할바없이 좋은 일입니다. 왜 좋은 일인가? 이 선거는 지난 기간 선거를 거치지 못한 림시적인 인민정권이였던 림시인민위원회를 법적으로 공고시키기 위한 선거입니다. 지금까지 우리 인민정권이 한 일들을 돌이켜보십시오. 모두다 인민에게 리로운 일만을 하였습니다. 토지개혁을 해서 우리 나라 인구의 70~80프로의 비중을 차지하는 가난한 농민들에게 땅을 나누어주었고 로동법령을 발포해서 지난날 마소처럼 천대받던 로동자, 사무원들을 자본가들의 착취와 억압에서 완전히 해방시켜주었습니다. 남녀평등권법령은 일제와 봉건제도의 2중적인 억압을 받던 녀성들을 해방시켜 남자와 동등한 권리를 가지고 사회사업에 참가할수 있게 하였고 산업국유화는 중요공장, 기업소와 철도, 운수, 체신 일체를 인민의것으로 되게 하였습니다. 소학교, 중학교, 전문학교를 많이 늘이고 종합대학을 창설하여 로동자, 농민의 아들딸들이 공부하게 되였는가 하면 병이 나도 약 한첩 써보지 못하고 죽어야만 했던 로동자, 사무원들이 약값근심을 모르고 치료를 받을수 있게 되였습니다.

여러분들이 직접 눈으로 본 보통강개수공사도 인민정권의 령도밑에 진행된것입니다. 지난 수백년세월 해마다 장마철이면 물란리에 집을 잃고 목숨을 잃군 하던 평양주민들이 이제는 보통강물란리걱정을 하지 않게 되였습니다.

물론 아직 우리 인민들의 생활이 유족하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인민정권의 령도밑에 날을 따라 인민생활이 높아지고있으니 머지 않아 살기 좋고 문명한 새시대가 이 땅에 찾아오게 되리라는것은 불보듯 뻔합니다. 그래서 지금 남조선에서 많은 사람들이 북조선으로 넘어오고있습니다. 남조선으로 넘어갔던 사람들도 미제와 리승만역도들이 하는짓을 보고 도로 북조선으로 넘어오고있습니다. 혹시 여기 앉아있는분들중에도 남조선으로 갔다가 넘어온분들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있습니다. 제가 바로 해방직후 남조선으로 갔다가 지난 8월 김일성종합대학으로 찾아가는 서울법정대학생들속에 섞여 평양으로 돌아온 남산재례배당 장로 리승환입니다.》

연미복모양의 제낀옷에 나비넥타이를 맨 신사풍의 중년사나이가 일어나서 하는 말이였다.

《남조선은 지옥이라면 북조선은 천당입니다. 장군님께서 계시는 이 방에서 제 어찌 거짓말을 하겠습니까. 해방전에 그렇게 많던 평양거지가 지금은 다 없어졌는데 서울에는 거지아이들이 욱실거립니다. 밝은 대낮에도 미군병사들이 길가는 녀자들을 겁탈하는가 하면 죄없는 사람들을 감옥으로 끌고갑니다. 왜정때보다 감옥이 더 많아졌습니다. 학교의 많은 교실들을 미국군대가 차지하고있습니다. 미군정은 교육의 자유까지도 억제하고 저들의 식민지교육을 강요하고있습니다. 서울에서 일어난 국대안사건이란 량심적인 교수, 학생들이 미국의 식민지교육을 반대하여 일으킨 정치운동입니다. 그래 지난 여름 법정대학 학생 수십명이 떼를 지어 북조선으로 넘어온것입니다.》

그는 목사, 장로들을 돌아보며 《예수의 계시문》은 선거를 파탄하기 위해 반동놈들이 꾸며낸것이 틀림없다고 하며 거기에 속아넘어가지 말자고 하였다.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눈을 감고 고개를 숙이고있는 사람도 있었다. 아마 기도를 드리며 하느님께 문의해보는 모양이였다.

김책은 리승환장로옆에 앉아있는 팔자수염을 기른 중늙은이를 주의깊이 바라보았다. 그는 안식교 목사로서 제일 못되게 놀던 교직자였다.

그는 종교는 우주의 최고원인으로서 신을 주장한다, 따라서 유신론은 유물론과 피차 용납되지 않는다, 한편은 신이고 한편은 무신, 한편은 그리스도교, 한편은 비그리스도교인데 어떻게 용납되겠는가, 북조선에서 하도 많은 날중에 안식일을 택해서 선거날을 정한것도 종교에 타격을 주려는것으로밖에 해석할수 없다고 하였다.

그는 지금도 맞갖잖아하는 표정으로 팔자수염을 손으로 비틀고있었다. 그러나 장군님앞에서는 감히 도전해나서지 못하고 속을 썩이고있는것 같았다.

《나는 목사, 장로님들이 교인들의 모범이 되여 선거에 참가하기를 바랍니다. 나라를 사랑하는 교인이라면 마땅히 선거장에 나가야 할것입니다.

서산대사와 사명당을 보십시오. 그들은 임진왜란때 위험에 처한 나라를 지키기 위해 승병을 조직하여 왜적과 싸우지 않았습니까. 승병지휘관이였던 사명당의 시 한편을 제가 읊어보겠습니다.》

그이께서는 맞은편 벽에 시선을 보내며 조용히 한시를 읊으시였다.

 

    10월 의병을 거느려 물을 건너매

    호각소리 기발모습 강성을 흔드네

    칼집안의 장검 밤하늘에 부르짖노니

    원쑤를 무찔러 나라에 보답하리

 

《오늘까지도 조선인민은 누구를 물론하고 서산대사와 사명당을 무한히 존경하고있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불교를 믿어도 조선을 위해 믿었고 교리를 지켜도 조선을 위해 지킨 애국자들이였기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은 이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무슨 종교를 믿든 조선을 위해 믿어야 하고 어떤 주의를 하든 조선을 위해 하여야 합니다. 그러면 후손대대로 인민의 사랑을 받을것이요, 그렇지 않으면 미움과 저주를 받을것입니다.》

목사, 장로들의 얼굴에 강한 파문이 일어나고있었다. 조용히 울리는 장군님의 저력있는 목소리가 그들의 가슴에 계속 충격을 일으켰다.

《나라가 없으면 종교의 자유도 없습니다. 독실한 교인들인 안창호선생과 평양의 주기철, 최봉석목사들이 다 왜놈들때문에 희생됐지요. 내가 알고있기에도 여기 평양에서 일제말기에 29명이나 되는 목사, 감로, 녀전도사, 평신도들이 신사참배에 응하지 않은 죄로 체포되여 감옥살이를 했습니다. 나라가 없으면 여러분들의 신앙도 짓밟힙니다.

목사님들, 어떻습니까? 나라와 인민을 위한 선거에 참가하여야 되겠습니까, 하지 말아야 되겠습니까? 나라를 배신하면 그짓 또한 유다입니다.》

《여러분!》

불현듯 홍목사가 응접탁을 짚고 일어서며 엄청나게 큰 목소리로 교직자들을 불렀다. 그는 웬일인지 가쁜숨을 쉬며 가슴을 여러번 문지르더니 두팔을 쭉 벌리며 《우리 다같이 일어나 참회의 기도를 올립시다.》 하고 교직자들을 둘러보았다. 모두가 숙연한 얼굴들을 하고 술렁술렁 일어섰다.

김일성장군님께서는 교직자들과 따뜻한 눈인사를 나누며 작별하시였다.

홍목사는 눈을 내리감고 흐느끼는듯 한 목소리로 기도를 올리였다.

《거룩하고 자비하신 주님이시여? 일시 사탄의 꾀임에 들었던 죄많은 어린 양들은 이제 비로소 어리석은 소행을 깨닫고 참회의 눈물을 흘리며 주님께 속죄하나이다.

주님의 가르치심을 소홀히 한 죄로 저희들의 눈이 어두워져 사탄의 꾀임을 가려보지 못했나이다.

이제 김일성장군님께서 저희들의 눈을 밝혀주어 온몸이 밝아졌으니 캄캄한 어둠속에서도 간특한 사탄을 가려볼수 있게 되였나이다.

자비로운 주님이시여! 11월 3일 안식일에 주님의 뜻을 받들어 좋은 일을 하기 위해 주님의 자식들인 북조선의 전체 교인들을 모두 이끌고 선거장으로 가겠나이다. 아멘.》

이날은 1946년 10월 25일이였다.

그때로부터 꼭 한달이 지난 11월 25일 김일성장군님께서는 북조선림시인민위원회 제3차 확대위원회를 소집하시여 민주선거의 빛나는 승리를 총화하시였다. 그이께서는 이날 회의에서 인민위원회를 더욱 강화할데 대한 연설을 하시면서 지난날 일본제국주의가 남겨놓고간 모든 퇴페적인 유습과 생활태도를 없애고 생기발랄하고 약동하는 새 민주조선의 인간다운 풍모와 도덕, 애국적인 전투력을 기르기 위한 전인민적인 사상개조운동, 건국사상총동원운동을 벌릴데 대한 방침을 제시하시였다.

장군님의 연설이 나가자 온 나라 방방곡곡에서 건국사상총동원운동의 열풍이 불기 시작하였다.

1946년 12월 하순에 북조선림시인민위원회 기획국(이날 기획부로부터 기획국으로 승격되였다.)에서 1947년도인민경제발전계획예정장성수자들을 각국에 통보하면서 이렇게 서두를 달았다.

《…1946년 11월 25일 북조선림시인민위원회 제3차 확대위원회에서 하신 김일성장군님의 연설은 각계각층 인민들에게 강한 충격을 주었다.

3일후 11월 28일 장대재 홍목사를 비롯한 평양시 목사, 장로들이 주동이 되여 맹원 35 118명으로 구성된 민주주의민족통일전선 기독교련맹(위원장 강량욱, 부위원장 박상수)을 창설하면서 건국사상총동원운동에 합류하자!라는 구호를 제시한것은 그 하나의 실례로 된다.》

그무렵 정주철도기관구장 김회일은 기관차우에 올라서서 기관구로동계급에게 이렇게 호소하였다. 《우리가 선참으로 이 기관차에 건국사상총동원운동의 기발을 꽂고 달리자! 우리의 최대임무는 기차를 움직이는것이다. 기차가 정지되는 날에는 우리들의 생명도 정지된다. 우리의 끓는 피로 기차를 움직이자!》

이튿날 김회일은 정주기관구의 수십명 로동자들을 데리고 안주탄광으로 달려갔다.

동북이나 원동의 고열탄이 아니라 가까이 있는 안주석탄으로 기관차를 움직이겠다는것이다.

바로 그 시각 황해도 재령군에서는 김제원농민이 애국미야적더미우에 올라서서 소박한 연설을 하여 수백명 농민들의 가슴을 울리였다.

《어저께 기자선생이 나더러 어떻게 되여 많은 애국미를 바치게 되였는가고 물어봅디다. 나는 그저 나라없이 조선사람이 살수 없다는걸 생각했을뿐이외다. 장군님께서 수수밥을 드시는걸 보구 내집의 남은 쌀을 다 나라에 바쳐야 되겠다구 생각했수다. 우리 농군들이 이러한 성의도 없이 어떻게 나라를 건설하겠소. 아직까지도 우리 농민들중에는 제집의 여유곡을 아깝다고 지리끼고있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게 짧은 생각이외다. 우리 농민들이 애국미를 헌납하면 장차로 더 행복하게 잘살게 된다는걸 모르고 하는 우둔한짓이외다.》

김제원농민의 연설을 듣고 황해도 봉산군의 3개 리에서만도 하루동안에 1 445가마니의 애국미가 들어왔다. 하여 1946년 12월 13일 김일성장군님께서 김제원농민과 황해도 재령군 농민들에게 감사편지를 보내시였다.

북조선림시인민위원회 기획국 통계부에 제출된 1947년도 1개년 인민경제발전계획예정장성수자들은 거의 모든 부문에서 1946년에 비해 2배, 3배, 지어는 5배, 6배에 달하고있으니 인민들의 애국열의가 얼마나 높은가를 알수 있다.

그러나 이 장성수자들은 어디까지나 펜으로 적어놓은 예정수자에 불과했다. 그에 대하여 반신반의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북조선림시인민위원회에서 망상을 하고있다고 비방하는 사람들까지 있었다.

어려운 력사적과제를 안고 1946년이 저물어가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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