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번영의 시대 제9회 > 통일게시판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통일게시판

장편소설 번영의 시대 제9회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강산
댓글 0건 조회 4,084회 작성일 19-10-22 21:06

본문

2019-08-04.jpg

(제 9 회)

제 2 장

4

 

장군님께서는 삭주군 당, 정권기관, 사회단체 책임일군들의 협의회를 지도하시는 도중 철도처장으로부터 긴급전화가 걸려왔다는 련락을 받으시였다.

그이께서는 발전소 사무실에서 송수화기를 드시였다.

《장군님, 철도처장 허희준이 버릇없이 전화를 겁니다. 용서하십시오.》

저편 전선끝에서 들려오는 철도처장의 목소리는 자신의 불손함에 대한 죄책감때문인지 저으기 떨리였다.

장군님께서는 너그럽게 응대하시였다.

《일없소. 그런데 무슨 일이요?》

《장군님께서 계시지 않을 때 제가 지난 8월 수풍발전소에서 일류수문을 다 개방하여 철도와 도로를 파괴시킨데 대하여 당중앙위원회에 보고하고 평안북도당에도 알렸습니다. 아마 지금 거기 지배인, 기사장이 수풍에 없을겁니다.》

《그것때문에 전화를 겁니까?》

《그것때문만은 아니고 저 장군님, 원동에서 들어오던 기관차용 고열탄납입이 중단되였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요?》

장군님께서 저으기 놀라시였다.

원래 기관차용 석탄은 5천쥴이상의 발열량을 가지고있는 점결성고열탄만을 쓸수 있는것으로 되여있어 일제시기부터 조선에서는 중국동북지방의 고열탄을 실어다 썼었다. 그런데 중국에서 내전이 일어나 지난 6월부터는 쏘련원동에서 고열탄을 받아오도록 납입계약을 맺았었다. 그후 계약이 순조롭게 리행되여왔는데 갑자기 중단되였다니 영문을 알수 없으셨던것이다.

《장군님, 무역일군들의 말에 의하면 고열탄납입이 중단된데는 복잡한 내용이 있는것 같습니다. 김일성종합대학 경제법학 학부장 김광진이와 정준택동지들이 그전에 쏘련군 적산조사부와 사업을 할 때 일처리를 잘못한 후과라고 하는데 그게 뭔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고열탄납입문제에 대해서는 알아봅시다. 현재 수입고열탄이 얼마나 남아있소?》

장군님께서는 걱정에 잠겨 물으시였다.

《다섯달분이 남아있습니다. 래년 3월이 지나면 완전히 바닥이 납니다. 지금부터 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철도가 아예 마비될수 있습니다.》

수화기에서 울리는 철도처장의 목소리는 거의 울음에 가까왔다.

장군님께서는 부지중 긴 숨을 내쉬시였다.

고열탄난, 기관차, 객화차부족, 기관사, 기술자부족 이것은 해방된 첫날부터 철도부문에서 제기된 《3대애로》였다.

래년도부터 시작하는 첫 인민경제계획을 수행하느냐 못하느냐 하는 성패의 운명은 중요하게 물자수송을 담당한 철도운행에 달려있었다.

그런데 철도부문의 《3대애로》가 여전히 풀리지 못하고있고 더우기는 애로와 난관이 조성될 때마다 스스로 타개대책을 생각하지 않고 절망에 빠져 우에다 하소연만 하는 철도처장의 결함이 고쳐지지 않아 걱정되시였다.

문득 지난 4월 경제부문 책임일군협의회에서 있었던 일이 상기되시였다.

김책이 협의회를 지도하였는데 그때도 철도처장이 기관차용 고열탄이 조만간 거덜이 난다면서 우는소리를 하였다. 동북지방에서 받아오던 고열탄을 중국의 내전으로 하여 가져올수 없게 되였던것이다. 이때 전기총국 기사장 리문도가 일어나서 철도처장을 비판하였다.

《고열탄이 없으면 철도처장이 나서서 해결해야지 우는소리만 하면 되겠는가? 그런 철도처장이야 있으나마나하지요.》

자존심을 심히 건드리는 리문도의 야멸스러운 비판에 허희준이 울뚝하였다.

《여보시오, 기사장동지! 당신네는 세상에서 제일 흔한 물을 가지고 전기를 생산하지만 우리는 조선에 없는 점결성고열탄을 가지고 기차를 움직입니다. 너무 쉽게 말하지 마시오. 어디 기사장동지가 철도처장의 자리에 올라앉아 고열탄을 풀어보시지요. 그렇게 하겠다면 제가 기꺼이 자리를 내놓겠습니다. 허허허.》

철도처장은 써늘한 표정을 짓고 야유의 웃음을 힘있게 터치였다. 그는 통쾌한 일격을 가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리문도의 대답은 너무도 뜻밖이였다.

《내가 고열탄을 풀겠소. 그러나 철도처장자리에 올라앉진 않겠소. 전기총국 기사장이 무엇때문에 철도처장자리에 올라앉겠소.》

리문도의 이 뜻하지 않은 발언은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다. 회의를 지도하던 김책도 놀랐다.

철도처장 허희준은 불의에 귀뺨을 맞은 사람처럼 한손으로 볼을 비비며 눈을 꺼벅거리였다.

리문도는 좌중을 둘러보며 자신있게 말하였다.

《지금 장개석국민당놈들이 우리 전기를 쓰고있으면서도 전기료금을 한푼도 물지 않고있습니다. 제가 동북에 가서 전기료금값으로 대신 고열탄을 실어보내겠습니다.》

그는 수풍의 전기가 대련선, 안산선, 단동선 등 세개의 선으로 동북지구에 들어가고있고 평양송배전을 거쳐 38도선이남 경기도 전역과 그밖의 많은 남조선지역에 송전되고있으나 해방후 오늘까지 그들이 한푼의 전기료금도 물지 않았다고 하였다.

《제가 직접 돌아다니며 받아내겠습니다. 그것을 다 받아내면 굉장한 돈이 나옵니다. 만약 그들이 전기세를 내지 않으면 전기를 잘라버리겠습니다. 그래서 전기없는 세상이 어떤것인지 맛을 보게 하겠습니다.》

리문도는 비단 전기세뿐아니라 다른 긴박한 문제도 있어 남조선에 꼭 가야겠다고 하였다. 해방직전에 수풍의 발전기 두대분의 스라스트베아링 12개를 《인천시바우라전기기계제작소》에 수리의뢰한것이 있으므로 그것을 찾으러 가면서 전기세도 받아오겠다고 하였다. 스라스트베아링은 발전기의 가장 중요한 부속품으로서 베아링 1개의 무게가 수십키로나 되는 큰 물건이였다.

《스라스트베아링이 다 마모되여서 두석달 지나면 수풍발전기 두대가 멎어버리게 됩니다. 그 베아링내막은 저밖에 아는 사람이 없으니 제가 꼭 가야 합니다.》

김책은 이 사실을 장군님께 보고드리였다.

장군님께서는 전쟁이 일어난 동북지방에 가서 전기세를 받아내고 고열탄을 실어오겠다는것은 무모한 일이라고 하시였다. 그러면서 기관차용 고열탄은 원동에서 가져오도록 쏘련사람들과 거래를 가지는 한편 앞으로 기관차연료를 국내탄으로 리용하기 위한 기술연구사업을 조직하고 전망적으로는 철도를 전기화하기 위한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하시였다.

《남조선에는 가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나 무턱대고 맨 주먹으로 친척집 찾아가듯 해서는 안됩니다.》

그이께서는 쏘미공동위원회를 통해 전기료금과 스라스트베아링을 받아오자고 하시였다. 그러나 이때 적지 않은 간부들이 리문도를 서울에 내보내면 게도 구럭도 다 놓칠수 있다고 걱정하였다. 그것은 서울에 리문도의 량부모와 형과 동생 그리고 두자식이 있는 조건에서 그가 혈육들에게 발목을 잡혀 들어오지 못할수 있다는 말이였다. 심지어 일부 편협한 간부들은 리문도가 남조선으로 도주하기 위하여 일부러 그런 간특한 연극을 꾸민것 같다고 의심하기까지 하였다.

김책까지도 불안해하였다.

《장군님, 열이면 열사람이 리문도 대신 남조선에 친척이 없는 다른 사람을 내보내야 한다고 강경히 제기하고있습니다.》

《스라스트베아링의 내막에 대해선 리문도기사장밖에 아는 사람이 없다고 하는데 사람을 믿지 못해 딴 사람을 보내서야 되겠습니까. 해방후 리문도의 아버지가 토지를 팔고 남조선으로 갈 때 온 가족이 그를 데리고가려고 별말을 다하였지만 그는 뿌리치고 가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의 두 자식을 데리고간것도 리문도기사장을 끌고가기 위한것이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누구도 한번 먹은 그의 마음을 굽히지 못하였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리문도를 믿지 못하기때문에 나는 더욱 그를 남조선으로 보내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그를 믿지 않으면 누가 믿겠습니까?》

이렇게 되여 리문도를 위시하여 6명의 성원이 북조선림시인민위원회 공문서를 가지고 공식적으로 38도선을 넘어 서울로 들어섰다.

리문도는 그이의 믿음대로 스라스트베아링 12개를 가지고 돌아왔다. 그러나 《인천시바우라전기기계제작소》에 베아링을 수리할수 있는 고급기능공이 없기때문에 수리하지 못한채 그대로 가지고왔었다. 그 베아링은 일본인고급기능공들만이 수리할수  있다는것이였다. 전기료금도 받아오지 못하였다. 미군정에서 스라스트베아링은 순순히 내주었지만 전기료금은 후에 보자고 하면서 종시 말을 듣지 않았다. 그때 적들은 리문도를 서울에 붙잡아두려고 음흉한 뒤공작을 하고있었기때문에 그는 가족들도 만나보지 못하고 북조선으로 돌아왔었다.

놈들은 그 이후에도 남조선인민들에게서 계속 고률의 전기세를 받아먹으면서도 우리에게는 한푼의 돈도 바치지 않았다.

리문도는 남조선에 보내는 전기를 당장 잘라버리겠다고 하였으나 장군님께서 허락하시지 않았다. 남조선에는 미군정만이 있는것이 아니라 우리 동포들이 살고있기때문이였다. 중국동북지구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일본의 고급기능공만이 수리할수 있다는 스라스트베아링은 그후 장군님으로부터 과업을 받고 함흥기계공장로동계급이 두달동안에 손색없이 수리하였다.

그리고 고열탄은 원동에서 받아오도록 계악했었다. 그런데 그동안 순조롭게 리행되던 고열탄납입이 갑자기 중단되였다는것이다.

《처장동무, 원동지구에서 무엇이 걸려 고열탄납입을 중단하였는지 구체적으로 알아보고 대책을 세웁시다.

그전 그렇고 국내석탄으로 기관차연료를 쓰기 위한 연구사업을 해보라고 했는데 어느 정도 추진됐습니까?》

철도처장은 무엇인가 갑자르는듯 오래도록 숨소리도 없이 잠자코 있더니 《저… 정주역 기관구장 김회일동무가… 실험을 한다면서… 안주탄광에랑 드나드는걸… 제가 그만두라고 했습니다.》 하고 혀가 굳어진것치림 떠듬거리였다.

《그건 왜 그만두라고 했소?》

《왜놈의 열공학기사들도 우리 나라 석탄을 써보자고 했지만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소학교도 못나온 기관사가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래 그건 동무가 할 일이 아니니 기관차나 잘 몰라고 했습니다.》

그이께서는 잠시 묵묵히 계시다가 《소학굘 못나온 사람은 실험을 해볼 자격도 없다? 흥남비료공장의 전두현동무는 지난해 12월 석탄이 걸려 증기관들이 다 얼어터질 위험에 처했을 때 변압기를 쓰지 않는 아시아에서 제일 큰 전기보이라를 창안제작하여 비료공장을 살려냈는데 그 동무의 학력은 전기강습소 석달 다닌것이 전부요. 그래 이걸 어떻게 보아야 하겠소?》

철도처장은 대답을 못 올리고 가쁜숨만 톺았다.

김회일은 기관차화부노릇을 여러해 하였기때문에 석탄불에 대한 경험이 많았다. 장군님께서는 김회일이야말로 기관차연료문제를 해결할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시였다.

《처장동무, 우리는 래년부터 인민경제발전계획을 작성하여 나라의 경제를 계획화하자고 하는데 그러자면 철도가 풀려야 합니다.

그런데 철도처장이 철도문제를 자체의 힘으로 풀어나갈 생각은 안하고 안된다는 소리만 하면 되겠는가. 지어는 하겠다는 사람의 뒤다리까지 잡아당기니 한심하지 않소. 내가 협의회를 하다가 나와서 그러는데 전화는 이만합시다. 김회일동무한테 실험을 계속하라고 하시오.》

장군님께서는 무거운 마음을 안고 협의회장소로 가시였다.

그이께서는 일본기술을 절대시하고 자기 사람들을 허무주의적으로 대하는 이 낡은 병집을 들어내지 않고는 한걸음도 전진할수 없다는것을 더욱 깊이 느끼게 되시였다. 이것은 기술분야에서의 사대주의였다.

우리 나라에서 사대주의는 거의 천년의 력사를 두고 사상, 경제, 문화, 교육 등 각 방면으로 깊이 침습된 악성종양이였다.

사대주의때문에 나라가 망하고 많은 사람들이 치매증과 같은 어리석은 사고를 하게 되였으나 아직도 교훈을 찾지 못하고있는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였다.

더우기 쏘련, 중국, 미국, 일본 등 해외에서 살던 많은 사람들이 해방후 사대주의의 병균을 묻혀가지고 국내에로 밀려들어와 사대주의문제는 매우 심각하고 엄중한것으로 되였다.

사상개조운동에서 첫째 대상은 사대주의였다. 그것을 뿌리뽑기 위해서도 국내용 탄으로 기관차를 움직이기 위한 연구사업을 성사시켜야 했다.

이튿날 장군님께서는 평양으로 가시는 도중 정주기관구에 들려 김회일을 만나시였다. 철도기관구란 기관차에 물과 석탄을 공급해주는 철도의 심장이고 《식량》공급소였다.

장군님께서는 김회일을 데리고 역구내를 걸으시면서 국내탄으로 기관차연료를 해결하고 무사고정시운동을 벌려 철도부문에서 대변혁이 일어나게 하라고 고무해주시였다.

《철도문제를 해결하는데서 우리가 믿을것은 동무네 로동계급밖에 없소. 부차적인 원료들은 다른 나라에서 수입해서 써도 무방하지만 국가의 동맥인 철도의 식량(석탄)을 수입에 의존하는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요.

보다싶이 고열탄수입때문에 벌써 몇번째 말썽이 일어나고있소. 그러니 대중의 힘을 합쳐 기관차용 석탄을 풀어보시오.》

장군님께서는 날이 어둡도록 이야기하시였다.

밤하늘엔 별이 돋고 거리엔 전등불들이 무수히 반짝이였다. 불밝은 읍거리로는 그밤에도 벼가마니를 실은 현물세달구지들이 줄을 지어 굴러갔다.

역전마당에서는 학생가창대가 그마적에 나온 농업현물세노래를 부르고있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서비스이용약관 모바일 버전으로 보기 상단으로


Copyright © 2010 - 2023 www.hanseattle1.com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