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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번영의 시대 제17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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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0건 조회 3,912회 작성일 19-10-27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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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04.jpg

(제 17 회)

제 4 장

2

  

이해 정월에는 평양뿐아니라 겨울날씨가 비교적 온화한 해안도시들에서도 례년에 없는 추위가 계속되였다.

해안도시 원산시가에서도 날이 어두워지자 미친 바람이 더욱 기승스럽게 불어댔다.

날씨가 사나와서인지 저녁 8시가 조금 지난 때였으나 거리에는 행인이 하나도 보이지 않고 바람소리만 소연하였다.

인적기가 없던 거리에서 두런거리는 말소리가 들리였다. 원산 명석소학교로 가는 큰길에서 남쪽으로 꺾어들어가는 소로길은 높은 벽돌담장에 가로막혀 곧추 나가지 못하고 사각형으로 넓게 둘러친 벽돌담장옆으로 돌아갔다.

맨앞에서 걸어가시던분이 담장안을 넘겨다보며 뒤사람들에게 물으시였다.

《이건 무슨 건물이요?》

《모르겠습니다.》

뒤에서 따르던 사람이 대답올리였다.

물어보시는분은 일성장군님이시고 모르겠다고 대답을 올리는 사람은 철도처장 허희준이였다. 맨뒤에서 따라가는 사람은 김명준부관이였다.

지난 정월 14일부터 대소한의 추위도 무릅쓰고 현지지도의 길에 오르신 일성장군님께서는 먼 북방땅 청진지구를 거쳐 여기 원산에까지 오시였다.

1947년도 인민경제발전계획을 성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하여 이미 청진지구에서 철도공장, 제철소, 방적공장 등 중요 공업기업소들과 당, 정권기관들에 대한 현지지도를 하신 그이께서는 원산에 오시여서도 석유공장, 철도공장을 비롯한 많은 공장, 기업소들과 당, 정권기관, 교육, 문화, 출판보도기관들에 대한 현지시찰을 하시고 이밤에는 원산시주민들의 생활형편을 료해하시기 위해 거리에 나서신것이다.

《이게 무슨 건물인지 좀 알아보고 갑시다.》

장군님께서는 담장을 돌아서 정문앞으로 가시였다. 《청년정치간부학교》라는 간판이 외등에 비쳐 번쩍거리였다.

마침 정문 경비실앞에서 검은 외투에 털모자를 쓴 사람이 승용차를 세워놓고 누구를 기다리는듯 서있었다.

《수고하십니다.》

그이께서 정문안으로 들어서시자 그 사람은 소스라쳐 놀라며 얼른 털모자를 벗었다.

《여기가 청년정치간부학교입니까?》

《그렇습니다, 장군님!》

그 사람이 바로 여기 정치부교장이라는것을 알게 되신 장군님께서 문득 물으시였다.

《여기선 학생들을 어떻게 교양합니까?》

부교장은 당황해하였다. 그이께서 한마디로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을 하셨기때문이였다. 그는 한참 지나서 《요즘 저희들은 1947년도 인민경제발전계획을 수행하는데서 민청단체 간부들이 선전자, 집행자로 되여야 한다는데 대해 특별히 강조하고있습니다.》 하고 대답을 올렸다.

《그렇게 말만 해서야 무슨 소용이요. 동무네들은 청년정치간부가 될 사람들에게 인민의 길을 막는것부터 배워주고있소. 사람들이 다니는 길을 막는 법이 어디 있소?》

부교장은 나무처럼 굳어져 꼿꼿이 서있었다.

장군님께서 소로길을 가로막은 벽돌담장을 가리켰다. 《담장은 왜 저렇게 높이 쳤습니까? 인민들과 담을 쌓고 살라는거요? 당장 담장을 허물어서 벽돌은 인민들의 집을 짓는데 쓰게 하고 소로길을 다시 곧추 틔워주시오. 래일 저녁쯤에 다시 와보겠습니다.》

장군님께서는 부교장에게 다짐을 두시고 다시 소로길로 걸어가시였다. 그이께서는 불빛이 넘쳐나오는 시가의 창문들을 하나하나 여겨보시였다.

원산시 거리에도 곳곳에 《1947년도 인민경제발전계획을 초과수행하자!》, 《김일성장군님의 신년사를 받들어 생산전투에 총매진하자!》라는 구호들이 나붙어있었다.

그 구호들을 지켜보시는 장군님의 마음은 무거우시였다. 지금까지 여러 공장, 기업소들을 돌아보신데 의하면 전국적으로 1월계획이 엄청나게 미달될것 같으시였다. 1월은 이제 10여일밖에 남지 않았으나 아직 30~40프로 계선도 넘지 못한 공장, 기업소들이 수두룩하였다. 원산철도공장과 석유공장도 계획수행률이 씨원치 못하였다. 이렇게 된데는 어느 하나의 원인이 아니라 여러가지 복잡한 원인들이 엉켜있었다. 또 그 원인은 공장마다 각이하였다.

순전히 반동들의 암해책동으로 하여 생산계획이 파탄된 공장들도 있었다.

이 모든 사실들은 인민경제발전계획을 수행하는것이 결코 단순하지 않다는것을 말해주고있었다.

무거운 마음을 안고 밤거리를 누벼가시던 장군님께서 변전소가 마주 보이는 길목에서 걸음을 멈추시였다.

불현듯 박영만의 얼굴이 눈에 선히 떠오르시였다. 동평양발전소를 목숨으로 지켜낸 박영만의 희생소식을 그이께선 사흘전 청진지구를 현지지도하실 때 보고받으시였다. 그날 밤엔 잠을 이루지 못하시였다.

장군님께서는 바람부는 길에서 오래도록 변전소를 지켜보고계시였다. 그이께 있어서 박영만은 너무도 인상깊은 사람이였다. 개선후 서선전기회사 현지지도의 날에 보신 관자노리에서 턱언저리까지 구두솔같은 시꺼먼 수염으로 덮여있던 그의 얼굴이 눈에 삼삼하시였다. 그 더부룩한 수염밑에 악착한 왜놈들이 새겨놓은 흉한 입묵이 있다는것을 알았을 때 그이께서는 얼마나 놀라고 격분하셨던가.

예민한 감수력으로 하여 흥분하기 잘하고 그러면서도 놀랄만치 자제력이 있는 그지없이 천진하고 솔직하고 청렴결백했던 사람이였다.

입묵을 없애기 위해 수술대우에 누웠을 때 그가 너무도 흐느껴 울어서 쏘련외과의사와 간호원도 함께 울었다고 한다. 예상의외로 수술이 잘되여 그는 얼굴 멀끔하고 의젓한 사나이로 되였다.

서른살이 훨씬 넘어 장가를 든 그에게 떡돌같은 아들이 생겼을 때 온 전기총국 종업원들이 축복해주었다. 장군님께서도 아들 돌생일에 입히라고 색동저고리를 보내주시였다.

박영만은 비록 기술은 없었지만 언제나 어렵고 힘든 일에 남먼저 어깨를 들이밀고 동지들을 끝없이 아끼고 사랑하던 세포위원장이였다. 사실 그는 앞으로 많은 일을 할수 있고 훌륭한 당일군으로 자랄수 있는 사람이였다.

장군님께서는 그의 미래를 크게 기대하고 계시던터여서 오늘 받아안으시는 상실의 아픔이 말할수 없이 큰것이였다.

(박영만이 사망되였을 때 리문도기사장이 그렇게 울었다고 했지.)

장군님께서는 희미한 외등빛에 우렷이 비쳐있는 변전소에서 그냥 눈길을 때지 못하시였다. 그것이 마치 박영만의 분신처럼 느껴지시였다. 실지 그는 자기 한몸을 변전소와 바꾸었다.

변전소어방에 서있는 전주대와 전선줄들이 우릉우릉 구슬프게 울고있었다. 그이께서는 그 소리도 박영만을 조상하는 울음소리처럼 들리시였다.

《장군님, 날씨가 몹시 찹니다. 이제는 어느 집에라도 들어가 몸을 좀 녹이셔야 하겠습니다.》

철도처장 허희준이 조심스레 말씀올렸다. 그는 장군님께서 바로 자기때문에 이 엄동설한에 고생하신다고 생각되여 줄곧 죄스러운 마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있었다. 물론 그는 장군님께서 지금 이 나라의 한 평범한 세포위원장의 죽음을 놓고 마음을 쓰고계시는줄은 알수 없었다.

《그래. 거리는 이만큼 돌아보고 이제는 집구경을 좀 합시다. 저기 저 초가집에 들어가봅시다.》

그이께서는 여느 집들과는 달리 전기불이 아니라 등잔불같은 희미한 빛이 간신히 내비치고있는 초가집을 가리키시였다.

 

그밤 장군님께서는 원산시내의 세 집을 돌아보시고 숙소로 향하시였다. 마음이 가볍지 못하시였다. 세 집중 두 집은 저녁에 죽을 쑤어먹었다. 왜정때 《조반석죽》이면 아주 잘사는 집으로 보았다면서 그들은 만족해하였지만 장군님께서는 몹시 가슴에 걸리시였다. 청진지구에도 죽을 먹고있는 로동자가족들이 있었다. 옷과 신발도 부족했다. 하지만 가는 곳마다에서 인민들은 끼를 번지지 않고 사는것만도 더없이 행복스러워하며 우리 정권을 고맙게 여기였다.

장군님께서는 그것이 오히려 눈물겨우시였다. 지난날 너무도 못 살았던탓에 오늘의 생활을 두고도 만족스럽게 생각하고있었다.

《조반석죽이라?… 가난하게 사는 집들이 아직 많소.》

장군님께서는 밤거리를 걸으며 안타까이 뇌이시였다.

바람은 한결 잦아졌으나 차거운 공기는 칼끝처럼 볼을 찔렀다. 총총한 별들도 추위에 떠는듯 했고 가로등불빛에 검푸른 륜곽을 드러낸 시가지의 모든 건물들도 혹한에 얼어붙어 한자리에 굳어진듯 서있었다.

그이를 따라가는 허희준의 마음도 무거웠다.

그는 리씨성을 가진 어느 한 로인의 집에서 봉변을 당한 일때문에 장군님앞에서 머리를 들수가 없었다.

로인의 아들이 원산철도공장에 다닌다는 집이였는데 장군님께서는 친히 부엌에 내려가 솥뚜껑을 열어보시며 아들이 한달에 로임은 얼마나 타는가(아들은 밤일을 나가고 집에 없었다.), 배급으로 꽤 살아갈수 있는가 일일이 생활형편을 알아보시고 장과 소금은 떨구지 않는가고 물으시였다.

그러자 로인은 《예, 메주를 쑤어 장은 두어독 담그었습니다. 소금은 좀 바릅니다. 평남도 서해쪽엔 소금이 산처럼 쌓여있지만 미처 실어오지 못한답니다. 올여름 원산에선 고등어가 썩어났는데 강계쪽에선 반찬 한꽁다리 먹디 못해 밸안에 털이 난다고 야단쳤답니다. 히허허… 우리 아들애랑 말하는걸 보믄 철도를 책임진 량반이 일을 쓰게 못하는것 같소이다.

그 량반두 원산에 몇번 왔댔다는데 송도원구경을 하고 아래사람들한테서 음식대접이나 받구 갔답니다.

그런 사람이 철도꼭대기에 있으니 무슨 일이 잘되겠소이까.》

허희준은 별안간 눈에서 불이 일도록 귀뺨을 얻어맞은것 같았다. 아니, 후려치는 쇠몽둥이에 머리통을 얻어맞은것처럼 눈앞이 아찔해졌다.

그는 장군님을 뵈옵기가 부끄러웠다. 한주일남짓이 그이의 현지지도를 수행하는 기간 무안을 당하고 량심의 가책을 받은적이 한두번 아니였으나 이처럼 된벼락을 맞아보기는 처음이였다.

사실 그는 원산에 세번이나 왔댔으나 철도사람들에게 몇마디 훈시를 하고 송도원과 철도공장, 석유공장을 구경삼아 돌아보고 갔었다. 여기 철도사람들과 송도국수집에서 술을 받쳐 랭면을 먹은적이 있었다. 인민들의 여론이 이렇게까기 험악한줄은 몰랐다.

멀리서 울리는 기적소리에 허희준은 생각에서 깨여났다.

이때 장군님께서는 깊은 밤의 정적을 깨치는 기적소리에서 기관차연료를 련상하신듯 문득 허희준에게 물으시였다.

《처장동무, 지금 수입고열탄이 얼마나 남아있소?》

《겨우 두달분밖에 없습니다. 고열탄을 교섭하러 원동으로 간 사람들이 어떻게 됐는지 그것이 튀는 날에는 정말 야단입니다.》

허희준은 자기를 꾸짖던 리씨로인의 목소리가 귀전에서 메아리치는듯 했다. 철도처장을 모두 죽일놈이라고 하는데 이제 고열탄이 떨어져 기차가 멎는 날에는 어떤 욕을 보게 될것인가?

《내가 쓰딸린에게 말하면 고열탄을 당장 해결할수 있소. 그러나 나는 말하지 않기로 결심했소. 고열탄이 너무 쉽게 해결되면 국내탄으로 기차를 움직이기 위한 연구사업을 하지 않을수 있소. 허허허… 그전에 흥남비료공장에서도 급해맞으니 기적적인 창안을 하더란 말이요. 전두현동무가 변압기를 쓰지 않는 아시아에서 제일 큰 전기보이라를 창안하지 않았소. 동무네들도 좀 더 혼나봐야 해. 허허허.》

허희준은 장군님께서 롱담을 하신다고 생각하였다.

《정주기관구에서 하는 일은 어떻게 됐소? 김회일동무가 국내탄으로 기차를 움직여보겠다구 안주탄광에 다닌다는데 실험이 어떻게 됐소?》

《그건 승산이 안보입니다. 믿을게 못됩니다.》

장군님께서 우뚝 멈춰서시였다.

《철도처장동문 여전하구만.… 나한테 그만큼 말을 들었으면 생각을 좀 달리한줄 알았는데.》

《장군님, 용서하십시오. 제 장군님의 사랑을 너무 받다보니 응석받이가 됐습니다.… 그런데… 사실 김회일은 그걸 못합니다. 기대하시지 말아야 합니다. 오죽하면 제가 이렇게 버릇없이… 장군님! 지금형편에서는 원동밖에 믿을게 없습니다.》

장군님께서는 묵묵히 서계시였다. 어쩐지 속이 허전하시였다.

《난 사실 철도처장을 비추어보고 김회일이가 기관차연료를 풀수 있다고 믿었소. 철도처장동무도 일제시기 기차시간표짜기 현상모집에서 일등을 하지 않았소. 공과대학을 나오지 않았지만 일등을 했단 말이요.》

허희준은 불현듯 전류가 흘러가는듯 온몸이 저릿저릿하였다. 사실 그는 어렸을 때 동네에서 신동이라 불리울만큼 머리가 좋았지만 집이 가난하여 소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하고 철도로동을 하면서 독본책으로 자습을 해서 중학교졸업정도의 지식을 소유하게 되였다. 고역에 시달리던 그 시기 어느날 기차시간표짜기 현상모집광고가 신문에 나서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응모하였는데 철도경영전문가들도 참가하는 그 만만치 않은 현상모집에서 천만뜻밖에도 그가 1등으로 당선되였던것이다. 그의 수학적두뇌가 가져다준 《월계관》이였다.

일제시기 운영된 조선의 철도시간표는 비전문가인 허희준이가 짠것이였다. 이렇게 되여 허희준은 철도 막로동자로부터 관리성원으로 등용되였으며 해방후에도 유일무이한 《철도경영전문가》로서 철도부문을 책임지게 되였으나 사실은 철도교육이라고는 전혀 받아보지 못한 사람이였다.

《나는 독학으로 왜놈들을 누르고 기차시간표짜기에서 1등을 한 동무야말로 김회일동무의 혁신적인 발기를 적극 지지해주리라고 생각했소. 그런데 전혀 그와 반대이니 참 놀랍소.

김회일동물 왜 그리 믿지 못하오?》

갑작스레 눈보라가 일며 바람이 울부짖었다.

장군님께서 무겁게 걸음을 떼시였다. 그이의 뒤를 따라가는 허희준의 마음은 괴롭기 그지없었다. 그이를 모시고 다닌 이번 현지지도의 길에서 처음으로 받아보는 꾸중이였다. 그이께서는 크게 꾸중을 하신것도 아니지만 허희준은 눈물이 나올 지경이였다.

장군님께서도 가슴이 아프신지 숙소로 돌아오실 때까지 아무 말씀도 하시지 않았다.

뜻밖에도 강원도인민위원회 위원장이 현관복도에서 기다리고있었다.

《이밤중에 위원장동무가 어떻게 여기 와있소?》

장군님께서 시계를 들여다보시였다. 자정이 가까와오고있었다.

《장군님! 기쁜 소식이 날아왔습니다.》

도인민위원장의 얼굴에 웃음이 가득 넘쳐있었다.

《기쁜 소식이라니?》

장군님께서는 반색을 지으면서도 몹시 의아해하시였다. 허희준이도 이밤중에 무슨 기쁜 소식이 날아왔는지 알수 없어 도위원장을 빤히 지켜보았다.

《정주기관구장 김회일동무가 수입고열탄 대신 국내석탄으로 기관차를 움직인답니다. 성공했답니다.》

허희준은 경악에 가까운 놀라움으로 전률을 일으키듯 몸을 떨며 눈을 흡떴다.

《김회일동무가? 그게 사실이요?》

장군님께서도 놀라시였다.

《예. 김책동지한테서 전화를 받았습니다. 장군님의 숙소에 전화를 했으나 계시지 않아 저한테 알려준다고 했습니다.》

도위원장은 성수가 나서 벙글거리면서 전화내용을 말씀올렸다.

김회일을 선두로 한 정주기관구로동자들은 동지섣달의 강추위도 무릅쓰고 안주탄광으로 달려가 그곳 탄부들도 감히 범접 못하는 위험개소인 19호채굴장에서 발열량이 높은 석탄을 수백톤 캐내고 국내석탄을 기관차에 쓰기 위한 실험을 거듭한 끝에 마침내 성공하였다는것이다. 석탄을 분쇄하여 5천카로리삐치를 약간 섞어서 알탄을 빚은 다음 화구에 증기를 뿜어주면서 불을 때는 방법으로 정주에서 평양까지 시운전을 하였는데 수입고열탄을 쓸 때와 마찬가지로 정시에 평양에 도착하였다. 일부 간부들의 압력을 받으면서 20여차의 실패끝에 얻어진 피와 눈물의 결실이라고 한다. 김회일은 이것이 성공되자 전국의 철도부문 로동계급에게 렬차의 무사고정시운행운동을 호소하고 자신이 솔선 국내탄으로 기관차를 몰면서 무사고정시운행의 모범을 보여주고있다는것이였다.

《성공했구만, 성공했소.… 화구에 증기를 뿜어주면서 불을 땐다? 옳소. 내가 길림에 있을 때 본 일이 있는데 불이 잘 붙지 않으면 기관차화부가 소금을 조금 섞은 물을 뿌리군 했소. 그러면 수소가 생겨 불이 잘 붙는 모양이요. 이건 오랜 화부의 경험을 가진 김회일이만이 할수 있는 일이요. 철도처장동무, 그렇지 않소?》

장군님께서는 기쁨을 억제할수 없으신듯 현관복도를 왔다갔다 하시였다. 허희준은 머리가 자꾸 밑으로 수그러졌다.

《철도처장동무! 김회일동무 얼굴의 볼을 만져보았소? 이 볼을 말이요.》

장군님께서 손으로 볼을 가리키시며 말씀을 계속하시였다. 《그 동무의 두볼은 굳은살이 박혀 돌처럼 딴딴하오. 왜놈들한테 15년동안 매일과 같이 귀뺨을 얻어맞았기때문이요. 나는 그 소리를 들은 다음부터 일체 인간이 인간의 뺨을 치는 버릇을 없애버리자고 했소. 일제시기엔 상관이 부하의 뺨을 치고 교원이 학생의 뺨을 치는것은 보통 일이였소. 아마 철도처장동무도 왜정때 철도에 있으면서 숱한 뺨을 맞아봤을거요.》

허희준은 눈을 감았다. 실지 그는 많은 뺨을 맞았었다.

《그러나 민주조선에서는 남의 뺨을 치는자를 용서하지 않소. 교원이 화김에 학생의 뺨을 쳐도 용서하지 않소. 그래서 오천행이도 크게 처벌했댔지.》

허희준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언제인가 그는 김회일이 석탄실험문제로 너무 고집을 써서 《동무가 지금 옆에 있으면 귀뺨을 쳐갈겼을게요.》 하고 화를 낸적이 있었다.

《철도처장동무! 정주철도동무들이 영웅이요! 건국사상총동원운동의 선봉기수입니다. 온 나라가 이 동무들을 본받게 합시다. 김회일운동이라고 부를가? 내가 이제 당장 축하문을 쓸테니 처장동무가 책임지고 래일 아침까지 정주기관구에 편지가 가닿게 하시오. 로동신문에도 크게 소개합시다.》

그이께서는 서둘러 숙소로 들어가시였으나 허희준은 얼친 사람처럼 복도에 멍하니 서있었다.

며칠후 1947년 1월 22일 《로동신문》에 《건국사상총동원운동을 그대로 실천한 김회일동지의 장거》라는 기사가 크게 실리였다. 장군님께서 김회일을 그처럼 내세우게 하신것은 그가 단지 기관차연료를 해결했대서가 아니라 일본기술자들도 하지 못하던것을 자기 힘과 기술로 해냈으며 나라를 위하는 애국정신이 있으면 무엇이든 해낼수 있다는것을 전국인민들에게 보여주었기때문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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