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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번영의 시대 제1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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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0건 조회 3,958회 작성일 19-10-24 0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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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04.jpg

(제 11 회)

제 3 장

1

 

물매미처럼 류선형으로 풍이 넙적하게 퍼진 소형뻐스 한대가 모란봉언덕길을 톺아오르고있었다. 언덕길주변에는 살맹이나무가시덤불이 엉클어져있고 누렇게 말라가는 잔디밭 군데군데에는 오랜 세월 비바람에 고삭은 나무등걸들이 돌뿌다구니처럼 삐죽삐죽 돋혀있었다.

언덕길을 치달아오르던 소형뻐스는 을밀대가 저앞에 바라보이는 곳에서 길이 좁아져서 더 올라갈수 없게 되였다. 이윽고 차문이 열리더니 북조선림시인민위원회 경제부문 국장들과 소비조합중앙위원회 위원장 장시우 그리고 북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상무위원이며 선전부 일군인 박창옥이들이 내리였다.

그들은 요즘 부문별로 계속 토의되고있는 래년도인민경제발전계획작성과 관련한 종합협의토론을 하기 위해 모란봉으로 찾아왔다. 늘 사무실에만 붙박혀있다나니 오래간만에 씨원한 산바람도 맞으면서 생각들을 넓혀보자고 의견들이 모아져 이렇게 장소를 정했던것이다.

《아직 시간이 좀 있는데 이 어방에서 바람을 쐬다가 4시에 루대로 올라오십시오.》

협의회를 주관하게 된 산업국장이 차에서 내린 간부들에게 이르고 을밀대로 걸음을 옮기였다.

박창옥은 차곁에 서서 주변의 경치를 둘러보고 뜨직뜨직 국장들의 뒤를 따라갔다.

이국태생인 박창옥은 지금까지 멀리에서 을밀대를 바라보았을뿐 이렇게 직접 올라와보기는 오늘이 처음이였다.

정교롭게 쌓아올린 높은 축대우에 날아갈듯 한 합각지붕을 떠받들고 서있는 을밀대를 멀리서 볼 때에는 마치 공중에 둥실 떠있는 루각처럼 보이였다. 쏘련원동에서 출생한 박창옥은 따슈껜뜨에서 경제부문 고등교육을 받은 다음 그곳 구역당에서 지도원사업을 하다가 1945년 12월 허가이, 남일 등과 같이 재쏘조선인들중 제일 선참 조선으로 나왔었다. 평양에 온지도 1년이 가까와오지만 이래저래 다른 일에 몰리여서 을밀대나 최승대 같은 금수산의 높은 봉우리들에는 여태 올라와보지 못했었다.

을밀대에는 이미 여라문명의 사람들이 와있었다.

《협의회가 넓은 범위로 진행되는가봅니다. 대학교원들까지 왔습니다. 저기 김일성종합대학 경제법학부장도 왔구만요. 김광진이 말입니다.》

박창옥이와 나란히 걸어올라온 소비조합위원장 장시우가 루각앞에 서있는 안경 낀 사람을 가리키였다. 그의 옆에서는 전기총국 기사장 리문도가 무슨 해학담을 하고있는지 손짓을 하며 크게 웃고있었다.

《저 김광진이가 사람이 점잖은것 같으면서도 고집이 너무 세더군.》

박창옥이 실눈을 짓고 김광진쪽을 바라보며 입귀를 실그리였다. 그는 김광진, 정준택들이 쏘련군적산조사부와 공동조사를 할 때 북조선에 있는 단 하나의 산업시설도 쏘련군의 전리품으로 등록하는데 대해 양보하지 않아 말썽을 일으켰다고 하였다.

《그걸 보면 사람이 그릇이 작고 좀 막힌것 같아. 대외관계에서 조그마한걸 아끼면 큰것을 잃어버린다는걸 모르거던. 그러다보니 쏘련사람들이 원동에서 보내던 기관차용고열탄을 이 구실 저 구실 대며 안 보내지 않소. 이제 온 나라 철도가 동결될판이요. 이거 야단이 아닌가!》

《그릇이 작다고 할지?… 저 사람에겐 반쏘감정이 있습니다. 저는 저 사람을 이상하게 본지가 오랩니다.》

장시우도 하나의 불쾌한 사건을 상기하고있었다. 그는 자기가 평남도당에 있을 때 평양거리 곳곳에 《모두다 공산주의기발밑에 뭉치라!》라는 구호를 내붙이게 했는데 김광진이가 돌아다니며 모조리 떼버렸다고 하였다.

《김광진은 왕수복이라는 인물이 반반한 젊은 배우를 데리고 사는데 그 하나만 보고도 김광진의 인간상을 들여다볼수 있지요.

제가 해방직후 당사업을 할 때 그 사람을 불러다놓고 여러번 충고했습니다. 이제라도 왕수복이를 내보내라, 왕수복이때문에 당신의 인격이 얼마나 손상을 받고있는지 아는가, 털어놓고말해서 왜정때 감상적인 류행가나 부르던 녀자를 데리고 사는 당신과 우리가 어떻게 공산당지붕밑에 함께 앉아있겠는가 하고요.

저 사람은 진정한 동지적충고에 대해 오히려 고깝게 생각하고 저에게 많은 피해를 입혔습니다. 제가 당기관에 있다가 상업기관에 옮기게 된것도 저 사람의 모함때문입니다.》

《그러니까 김광진의 줴나(안해)가 민요가수 왕수복이란 말입니까?》

박창옥은 돌연 놀라면서 눈시울을 움씰하였다. 그들은 김광진이와 멀어지는쪽으로 걸어갔다. 청류벽을 감돌아흐르는 맑은 대동강과 릉라도가 바라보이였다.

해방초부터 의견이 잘 맞지 않아 김광진에 대한 개인감정을 품고있는 장시우는 계속 그의 인격을 헐뜯었다.

《왕수복이가 김광진의 색시라는걸 아직 모르고있었습니까? 좋게 말하면 민요가수이고 가혹하게 말하면 친일기생이지요.》

박창옥은 쏘련에 있을 때부터 왕수복을 알고있었다. 따슈껜뜨의 조선주민들속에서도 왕수복의 노래를 취입한 축음기를 듣는 사람들이 있었다.

《왕수복이를 나도 좀 알고있습니다. 그 녀자가 지금은 뭘합니까?》

《여태 부끄러워 나다니지도 못하다가 얼마전부터 경상1동 녀맹위원장을 한다는것 같습니다.》

《그 녀자가 녀맹위원장을 한단 말이요?》

박창옥은 우뚝 걸음을 멈추며 중절모를 이마우로 올리제꼈다. 이때 전기총국 기사장 리문도가 곁으로 다가오는 바람에 그들의 대화가 끊어졌다.

《박창옥동진 쏘련에 있을 때 을밀대에 대한 이야길 들어봤는가요?》

느닷없이 던지는 리문도의 물음에 《쏘련에서 언제 그런 한담이나 하며 놀새가 있소. 나는 오늘 처음 여길 올라와보오.》 하고 뻣뻣한 태도로 시큰둥하게 응대하였다. 그는 장시우와 같은 나이가 있는 간부들도 쏘련의 후광을 받고있는 자기를 어렵게 대하는데 같잖은 리문도가 버릇없이 덜렁거리는것이 기분에 거슬렸던것이다.

《아니, 을밀대에 여직 한번도 올라와보지 못했단 말이요? 조기천선생은 을밀대에 대한 시까지 썼는데… 을밀대의 원래이름은 사허정이였다고 합니다. 사면이 탁 틔여보인데서 유래된 이름이지요. 정말 사허정입니다. 얼마나 시계가 좋습니까.》

리문도는 북쪽을 향해 돌아서며 저기 멀리 동북쪽에 듬쑥하게 앉아있는 제일 높은 산이 대성산이고 그 북쪽으로 더 나가 동서방향으로 길게 뻗어있는 산이 아미산이라고 하였다. 그 서쪽에 우뚝 돋아있는것이 감북산이며 거기서 련달아 룡마처럼 줄달음치고있는것이 장산이였다. 장산 서쪽으로는 새로 쌓은 민주의 보뚝, 보통강 십리제방이 뻗어있었다. 그 서편에 보이는 맨숭맨숭한 낮은 산이 도두산이고 그 서북쪽 뒤에 련달아 들쑹날쑹한 봉우리를 솟구고있는 산들이 두운봉의 련봉들이였다. 방향을 바꾸어 서남쪽을 바라보면 평양역 서쪽에 채봉이 솟아있다. 이 채봉의 서남단이 만경대였다.

시가 한복판을 관통하고있는 대동강 바른편에는 북에서 남으로 내려가면서 만수대, 장대재, 남산재, 해방산, 창광산 등 낮은 언덕산들이 련구를 이루고있고 평양준평원이 펼쳐진 강외편 미루벌에는 봉싯봉싯 돋아있는 무수한 구릉들이 기복을 이루며 아물하게 물결쳐갔다.

리문도는 평양주변의 여러 산들을 한참 둘러보고나서 박창옥에게 고개를 돌리였다.

《약 40년전에 윤두수라는 사람이 쓴 평양지를 보면 평양시일대의 모든 산들에는 나무가 무성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리조 말기와 왜정시기에 나무를 가꾸지 않고 람벌을 해서 보다싶이 여기 모란봉에도 나무보다 나무등걸이 더 많습니다.》

리문도는 을밀대아래 붉은 흙밭에 삐죽삐죽 돋아있는 썩은 나무등걸을 가리켰다.

《장군님께서는 나무를 심어야겠다고 하셨습니다. 주변산들을 둘러보십시오. 모두 벌거숭이가 됐으니 해마다 홍수가 나고 수재를 입을수밖에 없지요. 장군님께서는 온 나라의 산을 푸른 나무로 뒤덮이게 해야 된다고 수차 말씀하셨는데 이번에 농림국에서 올라온 인민경제계획에 식수계획이 빠졌다지 않습니까.》

리문도는 불만스러운듯 언덕이마에 주름을 모았다.

박창옥은 입을 실그린채 시틋이 서있다가 계획이라는 말이 나오자 장시우에게 《올라갑시다.》하고 찬기운을 풍기여 자리를 떴다.

때마침 여러곳에 흩어져있던 사람들이 루대로 모여들었다. 협의회시간이 된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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