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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번영의 시대 제25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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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0건 조회 4,052회 작성일 19-11-01 0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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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6 장

2

 

남편의 조반상을 들고 방안으로 들어서는 왕수복의 마음은 어수선하였다. 어제 밤 남편은 온밤 잠을 이루지 못하고 이불속에서 뒤치락거리였다. 리문도가 왔다간 다음부터 남편은 밤마다 잠을 못 이루고 뒤채이였다.

왕수복이 새까만 개다리밥상을 아래방에 가져다놓자 외출복을 걸치고 서재에서 나온 김광진이 두부장이며 녹두나물이며 정성껏 차린 찬그릇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더니 말없이 손가방을 들었다.

조반을 먹지 않고 나갈 차비였다.

《여보, 너무 상심하지 마세요. 빈속에 어떻게 강의를 하겠어요.》

김광진은 한동안 덤덤히 서있다가 불쑥 입을 열었다.

《여보, 나는 깊이 생각하고 어제 아침 김일성장군님께 사죄문을 써올렸소.》

《사죄문이란요?》

왕수복의 눈이 둥그래졌다.

《상업국장의 말이 옳았소. 오천행이가 1. 4분기계획을 못한건 바로 나때문이였소.》

순간 왕수복은 다리맥이 빠져 방벽에 손을 짚었다.

《당신은 그게 무슨 소리예요?》

《그건 사실이요. 오천행이네는 나때문에 계획을 못했소.》

《그래 당신이 여기 평양에 앉아 발전소건설을 지휘했는가요? 무엇때문에 그 사람의 말을 인정하는가요, 왜 그런 자학적인 행동을 하세요?》

왕수복은 방바닥에 쓰러지듯 주저앉았다.

김광진은 눈을 꾹 감았다가 떴다.

《나의 낡은 경제가치관이 오천행의 머리속에 스며들었소.》

김광진은 방문을 열고 곡산공장쪽을 바라보았다. 돈벌이를 목적하고 곡산공장사람들에게 고급기름 《마조라》를 외국에 팔라고 부추겼던 부끄러운 추억이 갈마들었다. 자기는 기름을 팔라고 했지만 장군님께서는 그것을 한그람도 팔지 못하게 하시였다. 그리하여 지금 로동자들이 그 기름을 먹으며 탄을 캐고 비료를 생산하고 용광로에 불을 지피고있다. 결국 곡산공장의 고급기름은 수출리익금에는 대비할수 없이 값높은 재생산을 하고있었다. 이것이 자기와 다른 경제가치관이 가져온 뜨거운 현실이였다.

이것을 안해에게 이야기하는 김광진의 목소리는 오열하듯 떨리였다. 《나는 이미 그때 자신의 경제가치관에 대해 생각해봐야 했소. 그런데 오천행에게 경제적리익성 하나만을 일면적으로 강조했소. 그러다보니 그가 장군님의 뜻대로 일을 못했소. 내가 이 잘못을 숨겨서야 되겠소?》

왕수복은 울상을 한채 저고리고름을 물어뜯을뿐 아무런 대답도 못하였다. 그는 남편이 나가는것도 알지 못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던지 누구인가 부르는 소리에 정신을 가다듬었다.

문을 열고 내다보니 살색양복을 산뜻하게 차려입은 경상2동 녀맹위원장 최윤옥이 마당에 서있었다.

《언니, 빨리 나오세요. 사창장마당에 가보자요. 청명이 머지 않았는데 산소차례감도 살겸.》

아닌게 아니라 산소차례감도 차비할 때가 됐다. 왕수복은 평양주변에 일가친척들의 묘가 많았다. 일제시기 모두 페병으로 돌아간 친가 부모님들, 오빠, 언니의 묘와 시할아버지, 시아버지의 산소들이 있었다. 산소 볼 준비로 저자를 보기보다는 클클한 마음을 가시기 위에 장마당에 나가 기분도 전환하고 바람도 쐬고싶었다.

왕수복은 푸른 숙수치마저고리를 갈아입고 최윤옥을 따라나섰다.

청명을 앞둔 날이여서인지 사창장마당은 유난히 붐비였다. 장마당 앞골목에까지 쌀, 산나물, 잎담배, 바구니, 방비따위의 농산물들을 팔러온 농촌장군들이 비좁게 앉아있었다.

최윤옥은 고리버들로 곱게 결은 바구니 두개를 사서 한개를 빈손으로 온 왕수복에게 안겨주었다.

《실은 김정숙녀사께서 녀맹위원장들은 장마당도 자주 돌아봐야 한다구 하셔서 언닐 끌고왔어요.》

《녀사께서?》

왕수복은 저도 모르게 우뚝 걸음을 멈추었다. 웬일인지 가슴이 후드득 뛰였다. 그는 남편과 최윤옥을 통해 김정숙녀사에 대한 말을 많이 들었고 녀맹사업을 하면서 가끔 그이를 멀리서 뵈온 일은 있었지만 직접 몸가까이에서 만나뵈온적은 없었다.

《김정숙녀사께선 사창장마당에도 여러번 오셨어요. 저자도 보시고…》

최윤옥은 가쯘한 흰이를 드러내고 살짝 보조개를 지었다.

(녀사께서도 저자를 보신단 말인가?)

왕수복은 저으기 놀랐다.

장마당에선 구수한 기름내가 풍기였다. 첫탁에 지짐, 떡, 탁배기, 비지 등속의 음식장사군들이 주런이 잇대여 앉아있었다. 지짐판에서 방금 부쳐낸 녹두지짐을 훌훌 불며 혀안에서 굴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탁배기를 마시고 거나해져서 기분좋게 밭갈이타령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첫탁을 지나서부터 좌우로 농산물전들과 잡화전, 싸전, 포목전, 옹기전들이 널려있었다. 농산물전은 흥성거리였으나 잡화전이나 포목전들엔 사람들이 별로 없었다.

국영상점과 소비조합상점들이 늘어나고 국가에서 생산되는 일용품의 가지수가 많아지면서 장마당은 점차 퇴화되여가는것이 알리였다. 잡화전, 문방구전들은 절반이상 줄어들었다.

과실전 한끝에서 안경을 끼고 중절모를 쓴 중년사나이가 량손에 곶감꼬치를 들고 휘저으면서 익살스럽게 싸구려를 외웠다.

《곶감 사시오, 곶감이요. 산소차례에 곶감을 놓아야 립신양명(출세하고 이름을 낸다는 뜻)하고 장생불로합니다. 예로부터 감나무잎은 글을 쓰는 종이가 된다 하여 〈문〉이 있다 했고 나무가 단단해서 화살촉으로 쓰인다 하여 〈무〉가 있다 했으며 만천하의 과실가운데서 속과 겉이 다르지 않고 똑같이 붉은것은 감밖에 없다고 하여 〈충〉이 있고 이빠진 늙은이도 먹을수 있는 과실이라 하여 〈효〉가 있으며 서리를 이기고 늦가을까지 버티는 나무라 하여 〈절〉이 있다 했으니 곶감을 산소차례에 놓아야 집안이 흥합니다.》

산소차례감들을 사려고 농산물전에 모여있던 아낙네와 잡화전에서 어슬렁거리던 사내들까지 곶감장사군의 건드러진 싸구려소리에 하나, 둘 몰려왔다.

왕수복이와 최윤옥이도 웃음을 머금고 재미있게 구경하였다.

곶감장사군의 싸구려소리는 한층 더 고조되였다.

《손님네들, 감나무엔 다섯가지 길한 색이 있으니 들어보시오. 나무빛은 검은색이고 잎은 푸른색이요, 꽃은 노랗고 열매는 붉고 곶감에선 흰가루가 날리니 오색, 오행(물, 불, 나무, 쇠, 흙)이 있으며 오덕(지, 인, 용, 신, 엄), 오방(동, 서, 남, 북과 그 중앙)이 있습니다. 감을 자셔야 민주건국사업에서 이름 떨치고 인민경제발전계획을 초과수행합니다.》

숱한 사람들이 몰려와서 저마끔 곶감 한꼬치씩 사들었다.

《인민경제계획을 넘쳐수행할수 있다는데 우리도 한꼬치씩 사자요.》

최윤옥이 사람들을 비집고 들어가 곶감 두꼬치를 샀다. 한꼬치에 곶감이 열개씩 꽂혀있었다.

잡화점에 이르니 채수염을 기른 어딘가 졸망스러워보이는 중늙은이가 사무용잉크를 팔고있었다. 반리터짜리 병잉크도 있고 자그마한 단지잉크도 있는데 모두 화학원료공장 일용품직장에서 생산하는 제품들이였다.

예비로 가져다놓은 잉크지함이 네개나 쌓여있었다.

지난 1월초 화학원료공장에서 화재가 일어나 2월부터는 국영상점들에 잉크와 공책이 보이지 않았는데 개인장사군에게 가득 들어와있는것이였다. 국영상점가격보다 훨씬 비쌌지만 상점들에 잉크가 동이 났으니 구매자가 많았다.

《별 싱거운녀석 다 봤지. 남이야 잉클 팔든 무얼 팔든 무수 상관이야. 꼭뒤에 피두 마르지 않은 녀석이…》

잉크 파는 중늙은이가 방금 누구와 말다툼을 했는지 허리에 찬 주머니안에 각전을 넣으면서 쑹얼거리였다. 이때 돌아서가던 작업복차림의 젊은이가 되짚어와서 소리쳤다.

《령감, 뭐 어드래요? 정말 보안서에 일러서 붙잡아가게 하라요?》

《야 이놈아, 그래 고해바쳐라! 어따대구 날 잡아가? 개인기업과 개인장사를 마음대루 하라는게 인민위원회 시책이야! 그걸 못하게 하는 너같은게 반동이야!》

잡화상이 채수염을 떨면서 청년에게 삿대질을 하였다.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령감! 좀 똑똑히 알아두시우. 인민위원회에서 국가상품을 되거리로 걷어들여서 비싸게 파는 령감같은 모리간상배는 지주처럼 타도해버리라고 했어요.》

청년의 입에서 모리간상배라는 말이 나오자 잡화상의 눈알이 곤두섰다.

《뭐 간상배? 지금 공장에서 잉클 만들지 못한단 말이야. 잉크 없는 때 내다 파니 이게 국민에게 도움을 주는 애국상인이지 간상배?》

《자, 이런 답답한 령감이라구야. 허허, 참…》

청년은 령감의 막수에 억이 막히는지 사람들을 둘러보며 허거픈 웃음을 치고는 그의 죄상을 까밝히였다. 화학원료공장에 화재사고가 나자 당분간 잉크를 생산하지 못하게 되리라는것을 예견하고 상업류통기관에 있는 어느 협잡군과 거래하여 상점잉크를 되거리로 사들였다는것 그리고 상점에 잉크가 동이 날 때를 기다렸다가 오늘처럼 비싸게 팔아 폭리를 보고있다는것이였다.

《이게 간상배가 아니고 뭐요? 령감은 1. 4분기계획을 못하게 화학공장에 불을 지른 놈과 똑같은 반동이요, 반동!》

《이녀석 뭐 어드랬다구? 제 아버지같은 사람한테 뭐 반동이라구?》

채수염령감은 소리를 지르며 벌떡 일어섰다. 그러나 옆에서 구경하던 사람들이 젊은 사람의 말이라도 새겨들어야 한다고 채수염령감을 몰아대서 어쩌지 못하고 수그러들었다.

《화학원료공장이 살아난지도 오랜데 왜 아직 상점에 잉크가 안 나오는가?》

장군들속에서 누구인가 의문을 던지는 말이였다.

《이제 나올거요. 도매소창고에 잉크가 가뜩 들어왔답니다. 경상동 병잉크장사군이 녹아나게 됐소, 하하하…》

그 소리에 채수염령감의 눈이 올롱해졌다. 그는 왕수복이네 경상1동 녀맹원의 시아버지였다.

왕수복은 문득 마음속에 짚이는것이 있었다. 녀맹위원장들이 장마당도 자주 돌아봐야 한다고 하신 김정숙녀사의 말씀속에는 상인가정의 녀인들에 대한 교양을 잘하여야 한다는 뜻이 담겨있는듯싶었다.

한줄기바람이 장마당의 먼지를 쓸며 지나갔다.

왕수복은 기계적으로 최윤옥을 따라다녔다. 불현듯 싸전에서 왁작 떠드는 소리가 들려왔다.

잡화전에 쏠렸던 사람들이 그쪽으로 밀려갔다.

싸전의 장사군들이 무슨 일때문인지 저마끔 떠들어내며 쌀자루와 쌀포대들을 길목에 날라내왔다.

가죽잠바를 입은 한 사나이가 손을 흔들면서 설레발을 치는 싸전의 장사군들을 진정시키였다.

《자, 덤비지들 마시오. 내가 이 장마당의 쌀을 다 살테니 제 자리에 앉으시오. 차례차례로 회계를 맞춥시다. 저기 한길에 자동차가 와있으니 회계를 맞춘 차제로 실어내가겠습니다.》

가죽잠바는 먼저 싸전 맨 가녁에 가마니와 쌀자루를 쌓아놓은채 수판을 끼고 앉아있는 사람에게 다가갔다.

알량주 조선바지저고리에 하늘색중절모를 쓴 중늙은이는 《계량할게 없수다. 여기 가마니쌀은 대두 너말씩이고 자루쌀은 두말이요.》 하고 가죽잠바에게 이르고 하나요, 둘이요 하고 성수가 나서 가마니짝과 쌀자루를 세여나갔다.

사창장마당에서 첫 손가락으로 꼽는 쌀장사군인데 그 역시 경상동사람이였다.

가죽잠바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안주머니에서 수염이 수북한 령감을 그린 지전 몇장을 장사군에게 던져주었다. 그때까지도 북남조선이 모두 일제시기에 발급한 《조선은행권》을 사용하였다.

그밖에도 북조선에서는 쏘련군표도 류통하였지만 장사군들은 붉은 돈(쏘련군표)을 좋아하지 않았다.

《금방 찍어낸 새 돈이로군. 근간에 이런 새 돈을 쥐여보긴 처음인걸.》

빨각빨각한 새 지전을 여러장 손에 쥔 장사군은 기분이 좋아서 벙글거리였다.

장사군과 회계를 맞춘 가죽잠바는 허술한 작업복을 입은 두 젊은이에게 쌀가마니를 나르라고 지시하고는 다음차례로 그 옆에 앉은 30대의 젊은 녀인에게로 발을 옮기였다.

그 녀자는 최윤옥이네 경상2동 녀맹원이였다.

구경군들이 가죽잠바를 보며 수군거리였다.

《무슨 사람인데 장마당의 쌀을 다 걷어갈가?》

《남조선에서 넘어온 놈이 아닌지 모르겠어요. 금방 찍어낸 새 돈이 많은걸 보니 이상스러워요.》

왕수복이도 심상치 않게 생각하고있었다. 남편의 말에 의하면 지금 미군정과 남조선의 반동들은 북조선과 똑같은 《조선은행권》을 통용하고있는 유리한 조건을 리용하여 최근 무려 280억원에 달하는 지페를 마구 찍어가지고 간첩들을 파견하여 북조선의 상점과 시장에서 식량을 비롯한 여러가지 물품들을 남조선으로 빼돌리고있다고 하였다. 놈들이 이런 방법으로 저들의 통화팽창을 메꿔보려 한다고 남편이 늘 걱정했었다.

《손님!》

윤옥이 싸전으로 다가갔다.

젊은 쌀장사녀인의 어깨에 상체를 기대고 앉아 쌀흥정을 하며 수작을 하고있던 가죽잠바가 눈을 치떴다.

《날 찾소?》

《예, 실례이지만 어디 계시는분인데 장마당의 쌀을 다 실어갑니까?》

《그건 왜 묻소? 남이야 걷어가건 말건 녀자가 새빠지게 나서서 그래?》

가죽잠바는 쌀장사녀인의 몸에 그냥 상체를 기대고 앉은채 눈을 부라리였다. 그는 최윤옥을 우습게 여기는것 같았다.

《뭐, 녀자가 새빠지게 나선다구요?》

최윤옥이 매섭게 그를 쏘아보며 한걸음 앞으로 나섰다.

《국가기관이건 개인이건 단번에 쌀을 몇섬씩 사고 팔고 하는데 대해선 엄격히 통제하게 되여있어요. 북조선의 공민으로서, 평양시민으로서 손님에게 물어볼 권리도 있거니와 의무도 있어요. 불순한 모리간상배가 아니고서야 뭣때문에 이렇게 많은 쌀을 걷어가겠어요.》

이때 잡화전에 앉은 채수염령감이 싸전을 건너다보며 소리쳤다.

《옳소, 저런 모리간상배가 활개치며 다니니 쌀값이 올라간단 말이요. 나도 저녁에 장을 파할 때쯤 쌀을 두어말 사가지고 가자고 했는데 쌀을 되거리로 다 걷어가믄 어케 하는가 말이야. 허참.》

리해관계로 해서 간상배가 간상배에게 공격을 들이대는 기이한 광경이였다. 모여섰던 사람들이 모두 가죽잠바를 보안서에 끌고가라고 하였다.

군중이 소동을 일으키자 가죽잠바가 머리를 내저으며 마주 고함을 쳤다.

《여보시오, 난 모리간상배가 아니요. 룡강수산작업소에서 왔단 말이요. 자, 보라!》

가죽잠바는 신분증을 높이 쳐들어보이였다.

《동무, 룡강수산작업소에서 사창장마당의 쌀을 걷어오랍데? 수산작업소면 물고기나 잡을게지 쌀장사는 왜 하는가? 1. 4분기계획때 수산부문이 제일 망태기쳐서 장군님한테 비판을 받았다는 말이 있는데 물고긴 안 잡구 모리간상배짓을 하니 반동이지 뭐야. 빨각돈을 한뭉치 가지고있는걸 보믄 간첩같아!》

누구인가 이렇게 소리치자 여러 장정들이 우르르 달려나와 가죽잠바와 쌀가마니를 나르는 두 청년의 멱다시며 팔을 거머쥐고 장마당밖으로 끌고나갔다.

싸전의 장사군들은 일시적이나마 모리간상배와 《공모》했다는 죄의식때문인지 모두 얼굴빛이 컴컴하게 질려있었다.

최윤옥이 자기 녀맹원인 쌀장사녀인에게 핀잔을 주었다.

《동무, 쌀장사 똑똑히 하라요. 동문 녀맹모임에 한번도 참가하지 않으니 저런 나쁜놈들을 도와주지 않나요.》

장사군녀자는 고개를 숙이고 아무런 대답도 못하였다.

이윽고 최윤옥은 다시 농산물전으로 걸어갔다. 거기서 고사리와 버섯을 한근씩 사서 이미 사두었던 곶감과 함께 그것을 왕수복의 바구니에 넣어주었다.

《얼마 안되지만 광진선생한테 맛보이세요. 김정숙녀사께선 요즘 광진선생이랑 언니랑 마음고생이 많을거라고 하셨어요. 힘을 잃지 않고 녀맹사업을 잘하도록 언니를 고무해주라고 하셨어요.》

《!》

순간 왕수복은 눈뿌리가 확 달아올랐다. 녀사께서 하셨다는 그 몇마디 따뜻한 말씀에 가슴속이 쿵하고 울리더니 연기처럼 서리였던 시름이 씻은듯이 가시여지는것이였다.

녀사의 다심하신 사랑이 헤아려졌다. 녀사의 사랑은 그대로 김일성장군님의 믿음이시였다. 그 믿음으로 자기네 부부를 보살펴주시는 녀사의 다정한 모습을 지척에서 뵈옵는것만 같아 저자바구니를 쓰다듬는 그의 손등으로는 자꾸만 뜨거운것이 떨어져내렸다.

김정숙녀사께서도 이날 한 녀맹일군을 데리고 동평양의 하선교리시장, 신리시장, 남구역의 류선시장들을 돌아보시였다.

녀사께서 수수한 무명치마저고리차림을 하시고 시장에 자주 다니시는것은 저자를 보시는 목적도 있지만 더 중요하게는 시민들의 생활형편과 군중의 목소리를 그대로 장군님께 전해드리기 위해서였다.

장군님께서는 밤 10시가 퍽 지나서 댁으로 오시였다.

마당에서 장군님을 맞으신 녀사께서는 얼른 부엌으로 들어가 나무소반에 장군님의 저녁진지를 차리시였다.

진지상이 들어오면 언제나 하찮은 음식도 별맛이라고 치하하시는 장군님께서는 이날도 《두부장국내가 구수하구만.》 하시며 진지상을 받으시였다. 비록 검소하지만 정성스레 저녁을 차린 소반에는 이날 녀사께서 저자를 보신 버섯과 고사리나물도 올라있었다.

《시장을 돌아본게로군.》

장군님께서 대뜸 알아차리시고 하얀 접시에 정갈하게 담아놓은 버섯채를 저가락으로 집으시였다.

《산나물이 별맛이요. 그래 시장을 돌아보니 어떻소?》

장군님께서 진지상을 물리신 다음 천천히 말씀올리시려던 녀사께서는 물으시는 그이의 표정이 하도 곡진하시여 시장의 쌀가격이 아직 안정되지 못하고있다는것, 모든 시장들에 모리간상배가 들어앉아있으며 특히 남조선에서 람발한 새 지페들이 많이 보인다는것 등 시장에서 목격하신 사실들을 그대로 말씀올리였다.

《금년농사까지만 잘되면 국가가 배급을 못 타는 소시민들에게도 눅은 값으로 쌀을 팔아줄수 있소. 그러면 시장의 쌀가격은 자연히 안정되고 모리간상배도 없어질거요.》

장군님께서는 화페제도에 대해서도 깊이 생각하시였다. 나라안에 여러 화페가 류통되고 통량조차 알수 없는 일제시기의 《조선은행권》이 북남조선에 다같이 통용되는 화페제도를 그냥 두고서는 인민생활을 향상시킬수도, 시장가격을 안정시킬수도 없었다.

북조선유일의 새 화페를 발행하기 위한 준비사업을 하자고 해도 올해 인민경제계획을 완수하여 국가자금을 넉넉히 마련하여야 하였다.

《정숙동무의 생각은 어떻소. 우리가 2. 4분기에는 계획을 제대로 할것 같소?》

장군님께서는 의논조로 물으시였다. 한무릎을 세우고 단정히 앉으신 녀사께서는 밝은 웃음을 지으시였다. 《장군님,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2. 4분기에는 모든 일이 잘될것입니다.》

장군님께서는 생각에 잠겨 천천히 진지를 드시였다. 그이께서는 요즘 잠시도 마음을 놓지 못하고계시였다. 그것은 어느 부분을 물론하고 어려운 조건에서 인민경제계획을 수행하고있기때문이였다.

며칠전에 가보신 황해제철소 복구현장이 눈앞에 떠오르시였다. 그곳 로동계급은 19세기 쇠부리업자들이 하던 방법으로 림시적인 몇개의 철덕(수공업적인 용광로)을 만들어놓고 재래식으로 철을 뽑으면서 1호평로와 압연기를 복구했었다. 지금 하고있는 용광로와 해탄로복구사업은 몇배나 더 어려운 작업이였다.

올해 인민경제계획에는 용광로 1기, 해탄로 2기, 전기로 2기를 복구하고 선철생산을 2배이상 높이게 되여있는데 이것은 헐치 않은 일이였다. 최근 서해조선소에도 들려보았는데 거기서도 금속절단기 하나를 가지고 메망치로 철판을 두드려서 배를 건조하고있었다.

현재 계획수행에서 난관으로 되고있는것은 단지 기술자와 자재, 자금이 부족한것뿐이 아니였다. 우리 인민은 중국혁명에 막대한 인적물적지원을 하고있고 흉악한 미제와 대적하고있는 어려운 환경에서 첫 인민경제계획을 수행하고있었다. 지금 이 시각에도 38도연선에서는 총소리가 울리고있고 중국동북지구에서는 조선인민혁명군출신의 지휘관들과 대원들이 피를 흘리며 중국혁명을 도와주고있었다. 지금 동북지구에서 중국인민해방군이 쓰고있는 무기와 폭약은 거의다 조선에서 지원한것이였다. 해방초 그 어려운 조건에서도 우리는 왜놈들에게서 로획한 10만정의 무기를 조선의 군건설에 쓰지 못하고 동북지구에 보냈었다.

며칠전에도 우리에게 폭약을 요구하여 우리 나라에서 생산하는 폭약을 수백상자 동북지구에 보내주었다.

《장군님,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깊은 생각에 집착되여 거의 무의식적으로 진지를 드시던 장군님께서 다정히 올리는 녀사의 목소리에 눈길을 돌리시였다. 녀사께서 그윽한 웃음을 머금고 여전히 진지상곁에 단정히 앉아계시였다.

《해방후 지금까지 우리는 남들이 못한다는것을 다 하지 않았습니까. 민주개혁도 보통강개수공사와 김일성종합대학 설립도… 모란봉극장도 3년전에는 건설하지 못한다는것을 우리는 40여일동안에 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니 인민경제계획도 꼭 할것입니다.》

《그래, 그래. 정숙동무의 말이 옳소. 우리 인민이 나라의 주인이 되였기때문에 무궁무진한 힘을 발휘하고있소. 우리는 당초에 그것을 믿었지. …》

장군님께서는 밝은 웃음을 확 피여올리며 고개를 끄덕이시였다.

며칠후 장군님께서는 북조선인민위원회 제32차회의를 소집하시여 인민경제계획수행의 진격로를 열기 위한 방도를 제시하시고 그날로 모든 국장, 처장들을 현지에 파견하시였다. 그이께서도 황해도와 평안남도의 여러 공장, 기업소들과 농촌지역들을 현지지도하시였다.

공장에서 농촌으로, 농촌에서 공장으로 끊임없이 현지지도의 길을 이어가는 과정에 김제원농민의 집도 방문하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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