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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번영의 시대 제23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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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0건 조회 3,763회 작성일 19-10-30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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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 장

5

 

김책은 북조선인민위원회 제1부위원장사업을 쌀생산의 명줄을 쥐고있는 흥남비료공장에서부터 시작하였다.

20여일째 흥남비료공장에 와있는 김책은 이날도 지배인을 아침에 잠간 만나보고 곧장 류산직장으로 들어갔다. 그는 지금 삿갓을 젖혀놓은것 같은 거대한 앙립포화기안으로 농류산이 콸콸 흘러들어가는 모양을 하염없이 지켜보고있었다. 포화기 밑구멍으로는 100마력 송풍기가 몰아오는 암모니아가스가 솨솨 폭풍같은 소리를 내며 쓸어들어가서 포화기안의 농류산액을 휘저었다. 그 세찬 바람에 휘말려 무섭게 소용돌며 고패질하는 농류산이 점차 노란색으로 변하다가 우유빛으로 되더니 밑으로 눈같이 하얀 앙금이 가라앉기 시작하였다. 그 앙금은 인차 진공관으로 빨리워들어가 나래치는 원심분리기에 의해 류산의 물기가 말짱 빠져버리고 하얀 가루만이 남는다. 이것이 바로 이 나라 농민들이 기다리고있는 류산암모니아 즉 질소비료였다.

질소비료는 화학의 요술과 물리학의 장수힘이 서로 협력하여 만들어내는 과학의 산아였다.

등산모같은 검은 모자를 쓴 밀차운반공이 빈차를 끌고 슬금슬금 김책이 앞으로 다가왔다.

김책은 밀차운전공이 다가오는것도 모르고 생각에 잠겨있었다.

그는 1. 4분기생산계획때문에 요즘 한시도 마음을 놓지 못하고있었다. 1. 4분기는 이제 보름밖에 남지 않았는데 아직 40프로, 50프로 계선도 넘지 못한 공장, 기업소들이 수두룩하였다.

김일성장군님께서는 계획수행을 위해 이해 정초부터 대소한의 추위도 무릅쓰시고 현지지도의 길을 이어가셨지만 대부분의 간부들은 방안에 들어앉아 전화질로 생산을 지휘하였다. 산업국에서 전화질을 얼마나 하였는지 두개의 전화통이 마사졌다고 한다.

김책은 1월과 2월 절반은 거의 현지에 나가지 못하고 실내에서 고려의사의 치료를 받았었다.

장군님께서는 대동군 와우리에 있는 용한 고려의사를 친히 부르시여 김책의 위병을 치료해줄데 대한 과업을 주시였다. 그리고 김책에게 한 두어달동안은 현지에 나가지 말고 실내에서 일을 보며 치료를 착실히 받도록 엄하게 이르시여 어쩌지 못하고 방안에 갇히여있었다. 그이께서 병약해진 안길, 김용범들에 대해 못내 걱정하시면서 애바르게 부탁하신 일이여서 그는 병치료를 하나의 전투과업으로 삼았었다. 그 덕에 위병은 한결 나아졌지만 1. 4분기계획이 기울어지고있는것을 보니 후회되는것이 많았다. 인민경제계획에 대하여 《시기상조론》과 《불가능설》을 주장하던 사람들이 이제 어떻게 나올것인가 하는것은 불보듯 뻔하였다.

진작부터 북조선이 《허망한 꿈》을 꾼다고 고아대던 내외의 반동들은 또 얼마나 소리를 모아 악담을 퍼붓겠는가.

《김책동지!》

누구인가 부르는 소리에 김책은 생각에서 깨여났다.

원심분리기밑에 방금 밀차를 가져다놓은 운반공이 김책에게 깍듯이 인사를 하고 시물시물 웃으면서 비위살좋게 물었다.

《김책동지, 절 모르시겠습니까?》

《가만, 누구더라?》

김책은 살갗이 검고 우둥퉁하게 생긴 젊은이를 찬찬히 살펴보았다. 생각이 나지 않았다.

《45년 9월 김책동지가 김제민이라는 가명을 가지고 정렴수지배인과 함께 여기로 오셨을 때 제 이름을 물어보지 않았습니까. 그때 정렴수지배인은 함남도인민위원회 지방부장이였습니다.》

《그래, 그때 여기 왔댔지. 동무의 이름이 뭐드라?》

《리은철입니다.》

《리은철이?》

김책이 그의 이름을 외우며 1년반전의 과거를 더듬고있는 사이에 원심분리기에서 쏟아져내린 비료가 밀차에 가득 채워졌다.

《김책동지, 제 갔다오겠습니다. 꼭 말씀드릴게 있습니다.》

리은철은 회전기계가 있는 곳으로 밀차를 끌고갔다.

1945년 9월! 잊을수 없는 가을이였다. 그때는 우리 나라의 전반지역이 그러했듯이 함흥지구에서도 일대 시련을 겪고있었다.

김일성장군님의 지시를 받고 함남도에 파견된 김책의 일행이 여드레팔십리걸음을 하는 기차를 타고 며칠만에 겨우 함흥역에 닿아 나들문을 빠져나오니 역전마당은 이사보따리를 싼 려행손님들과 본국으로 돌아가려고 모여든 일본사람들이 인산인해를 이루고있었다. 그속에서 여라문살 되여보이는 조무래기들이 《해방놀이》를 하고있는데 잔등에 《O, K, S》라는 영어문자를 모두 써붙이였다. 알아보니 그 영어문자가 함경남도공산당책임비서 오기섭의 명함장과 같은것이라고 하였다. 그는 공문에 수표할 때는 물론이고 지면에 글을 발표할 때에도 이름대신에 그 영문자를 쓴다는것이다. 그런데 아이들이 그것을 잔등에 붙이고 《해방놀이》를 하고있으니 웃음거리로 되고있었다.

김책이 함남도당에 가서 알아보니 실지 오기섭이란 사람이 책임비서였다. 접수실 일직원이 김책의 파견장을 보고 즉시 오기섭에게 전화로 조선인민혁명군 누구누구가 찾아왔다는 도착보고를 하자 그는 일이 바빠 이틀후에 만나도록 하자는 지시를 주고 전화를 끊어버렸다.

김책은 그의 무례한 태도에 불쾌하기보다는 아연하였다. 살아가다 자기한테 찾아온 손님을 그렇게 랭대하는 사람은 처음 보았던것이다.

아침에 기차칸에서 먹은 주먹밥이 다 꺼져서 허기가 진 김책일행은 거리에 나가 국수 한그릇을 사먹고 돌아오다가 마침 함경남도인민위원회 간판이 붙은 2층집을 띠여보고 그쪽으로 갔다. 마당에서 씨름군처럼 몸이 실한 장정이 런닝그바람으로 장작을 패고있었다.

김책은 그가 도인민위원회 잡부일것이라 생각하고 여기 간부동지들을 만날수 없는가고 물었다.

《위원장동진 방금 댁으로 들어갔습니다. 무슨 용무인지 저에게 말씀하면 안되겠습니까? 제 여기 도인민위원회 지방부장입니다. 정렴수라고 합니다.》

《아, 그렇습니까?》

김책은 반색을 지으며 《김제민》의 이름으로 된 조선인민혁명군사령부의 파견장을 내놓았다. 눈시울을 움씰거리며 파견장을 다 읽고난 정렴수는 환성을 지르듯이 말하였다.

《야, 이거 정말 반갑습니다. 참 점심들을 못하셨겠는데 우리 집으로 갑시다.》

정렴수는 첫인상부터 김책의 마음에 드는 서글서글한 쾌남아였다. 도지방부장이 잡부처럼 마당에서 장작을 패는것만 보아도 틀이 없고 근면한 사람임을 알수 있었다. 그는 나무에 걸어놓았던 와이샤쯔와 곤청색 제낀옷을 서둘러 벗겨입더니 짜장 김책이네를 자기 집으로 데려가려고 하였다.

《우린 방금 도당에 들렸다가 거리에서 국수를 먹고 오는 길입니다. 우린 여기서 바람을 쐬며 기다릴테니 어서 점심을 하고 오십시오.》

《도당에 들렸댔습니까? 책임비서를 만나보셨습니까?》

김책이 책임비서를 만나지 못하고 돌아나온 이야기를 그대로 하였다. 정렴수의 얼굴에 어두운 그림자가 스치고 지나갔다.

《제 방으로 갑시다.》

그는 아래층 세번째칸으로 손님들을 안내하였다. 책상 두개와 개별의자 두개 그리고 긴 나무의자 하나가 놓여있는 휑뎅그렁한 방한쪽 구석에 설계도면 같은것이 높이 쌓여있었다.

《저건 무슨 도면인데 저렇게 많습니까?》

김책이 그가 권하는 의자에 앉으며 물었다.

《비료공장 류산암모니아직장 설계도면입니다.》

바로 어저께밤에 일본인기술자 두명이 저 설계도를 가지고 배를 타고 도망치는것을 쫓아가서 빼앗아왔다고 하였다. 그러느라 바다물에 빠지면서 격투를 하였다는것이다.

《큰일날번 했습니다. 왜 혼자서 갔습니까? 사람들을 데리고 갈것이지.》

《언제 누굴 데리고 갈 사이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선천적인 건강체력이기때문에 일본아이 두명쯤은 해제낄 자신이 있었지요. 허허허… 지금 함흥바닥이 이렇게 어수선합니다.》

그는 함흥지구의 실태를 이야기하기 시작하였다.

함흥지구에는 비료공장, 화학공장, 카바이드공장, 화약공장, 제련소 5개 공장이 있었는데 일제는 패망하면서 5개 공장을 동시에 전면폭파하려다가 실패하자 공장들을 개별적으로 폭파하고 기술문건과 특수제품들을 불사르거나 바다에 처넣어 한톤의 비료도, 화학제품도 생산할수 없게 만들었다. 놈들은 닭알 노란자위인 류산암모니아직장 설계도면만은 불사르지 않고 본국으로 가져가려다가 정렴수에게 걸려들었던것이다.

5개 공장이 빈사지경에 이르다보니 함흥지구에 있던 4만 5천명에 달하는 로동자들이 산지사방으로 흩어져나가 걷잡을수 없게 되였다. 징병, 징용으로 끌려갔다 돌아온 사람들까지 살 마련이 없어 깜챠뜨까의 어업로동자로 떠나갔다. 반대로 동북과 북조선의 각지방에 있던 일본패잔병들과 그의 가족들은 일본에 가기 편리한 항구도시 흥남으로 모여와 해방전에는 2만 4천명이였던 일본인이 현재는 3만 5천명으로 급격히 늘어났다. 게다가 일제가 끌어온 오스트랄리아와 영국인포로병들까지 겹쳐들어 식량문제가 더욱 긴장해졌으며 엎친데덮치기로 콜레라와 티브스같은 전염병이 퍼져서 수많은 사람들이 굶어죽고 병들어 죽었다.

《지금 함흥지구의 실태가 이 모양입니다. 그런데 억이 막히는 일은 도공산당책임비서라는 량반이 미친짓을 하고있는겁니다. 파견원동지! 공산당의 간부를 비난하는데 대해 용서하십시오.》

정렴수는 다소 주저하는 기색을 보이였다.

《일없습니다. 기탄없이 다 말하십시오.》

《그 량반은 저와 같은 흥원사람입니다. 일제시기 감옥살이도 많이 하고 흥원지구뿐아니라 국내 여러 지역을 다니며 농조, 로조운동도 지도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감옥살이의 분풀이를 괜히 애매한 사람들한테 하고있습니다. 일제시기 공업, 경제기관에서 복무한 기사급의 지식인들은 말할것 없고 로임을 조금 많이 탄 기능로동자들에 대해서까지 우리 혁명가들이 감옥안에서 피를 토할 때 너는 일본놈밑에서 잘 먹고 잘산 놈이다, 그래서 용서할수 없고 조국의 하늘아래서 같이 살수가 없다고 하고있습니다. 일제시기 허천강발전소 소장을 하던 윤일중이란 사람은 조선의 몇명 안되는 전기전문가인데 순전히 그 량반때문에 남쪽으로 넘어갔습니다. 사실 그는 반일사상이 강한 사람이였습니다.

오기섭 그 사람이 어떤 때는 너무 지나친 행동을 해서 혹시 감옥안에서 고문을 받으면서 정신이 좀 잘못되지 않았는가 하는 의심이 들기까지 합니다. 감옥살이를 했으니 일제에게 복무한 사람이라면 눈에서 불이 일수 있지만 좀 지나칩니다. 털어놓고말하면 저는 그 사람보다 감옥년한이 더 많습니다. 여기서 문제는 도당책임비서가 미쳐버리니 그 밑에 있는 여러 사람들이 잠간새에 같이 미쳐버리는겁니다. 말만 들어서는 표상이 오지 않을수 있습니다. 저하고 같이 비료공장만이라도 한번 가봅시다.》

김책은 그 길로 정렴수를 따라 비료공장을 찾아갔다. 모든것이 사실이였다. 공장은 파괴되여 생산이 중지되였고 공장 자치관리위원회는 오기섭의 광병에 오염된 극단분자, 우연분자들로 꾸려져있었다.

그후 10월초 당창립대회준비사업으로 평양에 올라온 김책으로부터 함흥지구의 실태와 흥남비료공장의 중요기술설계도면들을 희생적으로 지켜낸 정렴수의 경력에 대한 보고를 받으신 장군님께서는 그를 평양으로 부르시여 친히 만나주시였다.

장군님께서는 사상도 견고하고 투신력과 통솔력도 있는 정렴수에게 흥남 5개공장 총지배인사업을 맡기겠다고 하시면서 우선 흩어진 로동자, 기술자들을 찾아오고 공장을 빨리 복구하여 비료를 비롯한 화학제품들을 많이 생산하여야 한다고 하시였다.

총지배인 임명장을 받고 1945년 10월 20일 흥남으로 내려온 정렴수는 장군님의 가르치심대로 이전에 서울에 있었던 조선인기술자들인 김두삼, 강영창, 리재업, 두순종, 윤정섭들을 포섭하여 공장의 기술참모부를 튼튼히 꾸리는 한편 핵심로동자들을 발동하여 흩어진 로동자, 기술자들을 찾아오게 하면서 황페화된 공장을 복구하기 시작하였다. 그때 정렴수가 사람을 파견하여 남조선에 있는 기술자를 데려온것만 하여도 적지 않았다.

이것은 1년반전에 있은 일이였다. 그때에 비하면 공장은 룡으로 되였다. 한톤의 비료도 생산하지 못하던 공장이 지금은 하루 500~700톤을 생산하고있었다. 이 공장에서는 1. 4분기계획을 벌써 다 해제꼈다.

김책은 문득 맞은편 벽을 바라보았다. 하얀 벽체에 《영명하신 지도자 일성장군님의 1945년 12월 6일, 1946년 4월 17일 현지교시를 철저히 집행하자!》라는 구호와 장군님께서 이 공장에 와서 하신 연설제목 《새 조국 건설에서 모두다 로동영웅이 되라》라는 글발이 붉게 새겨져있었다.

《김책동지!》

리은철이 어느새 밀차를 몰고 원심분리기밑에 와있었다.

《저 평양에 올라가신 정렴수지배인이 김일성종합대학 총경리장 겸 대학건설사업소 소장으로 임명됐다는게 사실입니까?》

그것은 사실이였다. 비료공장이 자기 궤도에 들어서게 되자 장군님께서는 지난 12월 정렴수를 평양으로 소환하여 전기총국장 사업을 맡겼다가 최근 김일성종합대학의 경리 및 건설책임일군으로 임명하시였다.

《그렇소, 그런데 그건 왜 묻소?》

김책이 리은철의 곁으로 다가갔다.

《다른게 아니라 제 김일성종합대학에서 공부하고싶어서 그럽니다.》

《그러니 비법적으로 정렴수소장한테 사업을 해서 들어가자구 하오? 그건 허망한 꿈이요. 동무도 잘 알겠지만 정렴수소장은 비원칙적인 일은 절대로 하지 않는분이요.》

김책이 짐짓 엄한 표정을 지었다.

《저는 정렴수소장이 아니라 김책동지의 도움을 받고싶어서 그럽니다. 저를 김일성종합대학에 추천하도록 지배인동지한데 말해주십시오.》

《대학추천은 민청조직과 공산당위원회에서 결정하오. 동무가 일도 잘하고 앞으로 나라의 기둥감이 될수 있다고 보면 저절로 추천이 될거요.》

밀차에 비료가 가득 채워졌다.

《동문 대학입학시험에 응시할 자격은 가지고있소? 중학굘 졸업했소?》

김책이 은철이의 밀차를 같이 밀고가며 물었다.

《전 소학교도 못 다녔지만 자습으로 중학교 2학년 교과서까지 다 뗐습니다. 그러니 예과엔 들어갈수 있습니다. 일을 잘하라고 하는데 저는 금년도계획을 상반년도전으로 해제낄수 있습니다. 지금 제가 하고있는 창의고안이 완성되면 10배의 능률을 낼수 있습니다. 실내 비료운반을 기계화하겠습니다.》

밀차가 회전기계앞에 이르렀을 때 김책은 새삼스레 리은철의 얼굴을 지켜보았다.

《동무, 진짜 그렇게 할수 있소?》

《사실 이 동무의 머리가 비상합니다. 수학은 중학교졸업생 찜쪄먹습니다.》

회전기계주변에서 일하면서 김책과 리은철이의 대화를 듣고있던 기계공이 리은철을 추어올리였다.

《은철동문 식구가 많소? 장가갔소?》

《총각입니다. 친척이라군 평양곡산공장에 누나 하나가 있을뿐입니다.》

리은철은 회전기계에 공중 들리워 올라가는 밀차를 올려다보며 대답하였다.

《누나가 곡산공장에서 무슨 일을 하오?》

김책은 회전기계에서 내려보낸 빈차곁으로 다가갔다.

《업무부 통계원입니다.》

《업무부 통계원?》

김책은 눈을 치떴다. 지난해 가을 장대재례배당 출입문에서 만나보았던 한 녀인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 녀자의 이름이 리은실이라는것을 아직 깊이 새겨두고있는 김책이였다. 곡산공장 업무부 통계원이라고 한 그 녀자에게 황금태심부름을 시킨 업무부장 김춘선의 이름도 잊지 않고있었다. 그후 알아보니 리은실은 일제시기 춤과 노래를 팔던 녀자이고 김춘선은 중국에서 좌익운동을 하다가 1946년초 조선으로 넘어온 중국공산당적을 가지고있던 사람이였다.

《동무 누나의 이름이 리은실이 아니요?》

《아니, 제 누나의 이름을 어떻게 아십니까?》

리은철은 눈이 커졌다.

《곡산공장 업무부장인 김춘선이라는 사람도 아오?》

《압니다. 김춘선부장동진 정말 좋은분입니다.》

리은철이 빈 밀차를 원심분리기쪽으로 밀고가면서 말하였다.

《그 사람은 일성장군님께서 유해직장 로동자들에게 우선적으로 고급기름을 공급하라고 하셨다면서 매달 어김없이 기름통을 차에 실어가지고 오군 합니다. 노래와 술을 파는 기생이였던 저의 누님을 옳은 길로 이끌어준 사람도 춘선부장동집니다. 부서에서 제기되는 힘든 일을 다 부장자신이 맡아한다고 누님은 편지때마다 칭찬입니다.》

리은철이 김춘선에 대한 칭찬을 한창 하고있을 때 문득 어디선가 노래소리가 들려왔다.

 

    비료는 옥백미 옥백미

    우리는 옥백미를 생산한다네

 

술에 취한듯 한 웬 사람이 비칠거리며 김책이 있는쪽으로 마주 걸어오고있었다. 그는 고개를 건둥거리며 노래를 부르다가는 딸꾹질을 하였다. 헌 양복에 낡은 쪽도리모자를 쓴것이 무슨 어리광대처럼 보이였다. 그는 포화기곁에 있는 나무의자에 털써덕 주저앉더니 《비료는 옥백미 옥백미》하고 계속 비료타령을 하였다.

《저 사람은 뭐요?》

김책이 눈섭을 치켜올리며 리은철에게 물었다. 대낮에 술을 마시고 작업장에 나와 돌아가는 사람이 있으니 놀라왔던것이다. 마침 이때 지배인이 들어오다가 그 사람을 띠여보고 소리쳤다.

《저걸, 빨리 끌어내가라!》

그러자 포화기 발브를 조절하던 운전공이 술취한 사람의 목덜미를 쥐고 끌어내갔다.

《이거 왜 이래? 류산직장에선… 술을 먹어야 한단 말이야. 술은 알카리야. 중화시키거던. 비료는 옥백미 옥백미…》

그 사람은 끌리여가면서도 비료타령을 하였다.

《저 사람의 이름은 차철근인데 오기섭동지가 있을 때 로동조합장까지 하던 사람입니다.》

리은철이 출입문쪽에 시선을 주며 말하였다.

《오기섭동지는 그가 감옥경력이 있다고 로동조합장을 시켰지만 알고보니 왜정 말기 아편장사를 하다가 감옥에 들어갔던 사람입니다.》

그러고보면 차철근은 평양시보안서 감찰과장을 하던 변대걸이와 비슷한 사람이였다. 이처럼 도덕적으로 불량하여 일제시기 감옥살이를 하던 사람들이 해방후 혁명가행세를 하며 으시댄 일이 더러 있었다.

《정렴수동지가 저 사람을 떼내까렸댔습니다. 그런데 오기섭동지가 해방후 핵심들을 갈아치운데 대해 나무람을 해서 할수없이 명색상 류산직장 기술안전원이라는 직제를 붙여준것 같습니다. 정말 골치거립니다. 밤낮 술을 마십니다.》

리은철은 더욱 참을수 없는것은 평양곡산공장 업무부장이 이 공장에 찾아올 때마다 돈을 꿔달라고 시뻘건 손을 내밀어 비료공장로동계급의 명예를 더럽히는것이라고 하였다.

《김춘선부장동지가 저 차철근이한테 숱한 돈을 떼웠습니다. 딱한 사정을 말하며 돈을 꿔달라고 하니 마음이 모질지 못한 사람이라 돈을 꿔주군 했는데 하나도 받지 못했습니다.》

공장지배인이 김책의 곁으로 찾아와서 리은철은 이야기를 더 잇지 못하였다.

《부위원장동지! 산업국장동지한테서 전화가 왔습니다.》

《산업국장한테서?》

김책은 뜻모르게 마음이 불안해졌다. 그가 지배인방에 들어가 송수화기를 들자 꽉 쉬여버린 목소리가 들려왔다.

《부위윈장동지, 다른게 아니라 저, 아무리 타산해도 1. 4분기계획은 다 글러진것 같습니다. 지표별 계획을 무시하고 액상계획으로 맞추면 비슷하게 맞추어낼것 같은데

《국장동무, 지표별 계획이 기본입니다. 앞으로 총화도 지표별로 하지 액상으로 하지 않습니다. 지표별을 무시하면 인민경제의 균형을 보장할수 없지 않습니까?》

수화기는 오래도록 잠잠했다.

마침내 저편에서 울려오는 산업국장의 목소리는 흐느낌처럼 떨리였다.

《부위원장동지! 알겠습니다. 제 전화를 놓겠습니다.》

김책은 송수화기를 든채 이윽토록 서있었다.

얼마후 그는 지배인책상우에 놓여있는 일력장을 내려다보았다.

일력장은 그후 무섭게도 빨리 번져졌다.

4월 1일 아침 김책은 1. 4분기계획이 미달되였다는 기획국장의 통보를 받고 함흥-평양행렬차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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