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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번영의 시대 제34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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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0건 조회 3,646회 작성일 19-11-04 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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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7 장

4

 

허가이는 사무탁을 마주하고 앉아 침울히 창밖을 내다보고있었다.

1947년도 상반년계획이 초과완수된데 이어 미국의 녀류기자 안나 루이스 스트롱이 북조선의 농촌발전에 대하여 최대의 찬사를 올리고 간 다음부터 허가이는 병적인 우울증에 사로잡히기 시작하였다. 미국녀기자를 소똥내 나는 농촌지역에 보내지 말아야 한다는 말을 처음으로 한 사람이 바로 허가이 자기였다.

1947년도 인민경제발전계획에 대한 《시기상조론》과 《불가능설》을 제창한 《리론가》도 자기였다. 그는 공공장소에서는 발언을 삼가하였지만 뒤에서는 자주 인민경제계획의 비과학성에 대하여 이른바 원리적인 해설을 했었다. 장군님께서 그것을 모르실리 없을것 같았다.

들은바에 의하면 어느해인가 쓰딸린은 김일성장군님과 면담하는 장소에서 북조선간부들중에는 경력이 복잡하고 아리숭한 사람들이 많다고 하면서 쏘련태생의 조선간부들중에도 쓸만 한 사람이 별로 있는것 같지 않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 복잡한 사람들을 어떻게 처리하겠는가고 걱정할 때 김일성장군님께서는 웃으시며 자신께선 간부들의 과거경력에 대해서는 신경을 쓰지 않는다고, 사업을 통해 그들을 교양하고 검열하는것을 기본원칙으로 삼고있다고 말씀하셨다고 한다. 하다면 자기는 이미 검열된것이 아닐가? 김일성종합대학 물리수학학부장이 일부 쏘련태생의 간부들중에는 고전물리학에 굳어진 머리가 현대물리학을 리해하지 못하듯이 김일성장군님의 높은 정신세계를 리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조소하였다고 하는데 그것이 바로 자기를 념두에 두고 한 말이 아니였을가싶었다.

허가이는 불안하였다. 한낱 자연과학자가 허가이란 인간의 정치적준비상태에 대해 그만큼 알고있을진대 어찌 장군님께서 모르시겠는가.

시간이 얼마나 흘렀던지 허가이는 전화종소리에 생각에서 깨여났다.

그는 느릿느릿 굼뜬 동작으로 송수화기를 집어들었다.

박창옥이한테서 걸려오는 전화였다.

허가이는 반사적으로 얼굴을 찌프리였다. 그는 최근에 와서 박창옥이란 인간에 대해 경계심을 가지게 되였다. 가만히 지내보니 박창옥은 쏘련군 적산조사부 책임군사간부에게 붙어살면서 그의 지령에 따라 움직이고있는것 같았다. 자기가 모르는 비밀을 가지고있는 사람이였다. 박창옥이 방자하게 람발하는 불손한 말들, 과격한 행동들, 그 모든것이 쏘련군간부와 련결되여있는것 같았다.

이것은 허가이의 륙감이 알려주는 신호였다.

《무슨 일이요?》

허가이는 송화기에 거칠게 입김을 불며 언짢게 물었다.

《부장동지두 전달받았겠지요. 오후 4시까지 전기처청사앞으로 모이라는 지시 말입니다.》

허가이는 시계를 들여다보았다. 아침에 장군님의 서기로부터 그런 련락을 받았었다.

《받았소, 왜 그럽니까?》

《당중앙위원회 상무위원들과 인민위원회 위원들, 기타 많은 사람들이 모인다는데 무슨 일인지 모르십니까?》

허가이도 무슨 일인지 알고싶었으나 태연히 말하였다.

《가보면 다 알게 될텐데 무에 그리 안달아서 전화까지 걸면서 그러오.》

전화는 그것으로 끝났다.

그후 약속된 시간에 허가이가 전기처청사마당에 이르렀을 때 마침 장군님께서 현관문으로 나오시였다. 그이의 뒤로 김책, 박창옥, 전기처장, 외무국장, 재정국장, 기획국장, 중앙은행총재 등 여러 일군들이 따라나왔다.

김일성종합대학건설사업소 소장 겸 총경리부장인 정렴수의 얼굴도 보이였다.

《장군님, 제 좀 늦었습니다.》

허가이는 장군님께 인사를 올리며 민망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뭘 늦었다고 그러오. 제시간에 왔는데

장군님께서는 언제나와 같이 부드럽고 너그러우시였다. 그러면서도 웬일인지 그이의 안색이 어두워보이였다.

장군님께서는 걸음을 옮기시려다가 문득 허가이를 돌아보시였다.

《참, 김용범동무한테 가보았소?》

허가이는 가슴이 뜨끔하였다. 당중앙위원회 검열위원회 위원장 김용범의 병상태가 악화되고있다는 말을 들었으나 간다간다하면서 아직 가보지 못하였다.

《못 가봤으면 오늘 밤에라도 가보시오. 며칠을 넘기기 힘들것 같소.》

장군님께서는 무겁게 걸음을 옮기시며 침통히 뇌이시였다. 허가이는 그제야 그이의 안색이 좋지 못한 까닭을 알아차리고 긴 숨을 내쉬였다.

허가이는 김용범이와 별로 좋은 사이가 아니였지만 그의 생명이 오래가지 못할것 같다고 하니 가슴이 아팠다.

장군님께서는 청사 맞은켠 멀리에 있는 고압전주탑을 바라보시였다. 여러개의 굵은 전선들을 걷어쥐고 높이 서있는 전주탑우에서는 흰 작업복을 입은 두사람이 보선작업을 하고있는것 같았다.

일상시 허가이가 무심히 스쳐보는 고압전선이다. 그 전선들이 어느 산업지역들과 련결되여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장군님께서 전주탑을 중심으로 남과 북으로 길게 뻗은 고압전선들을 줄곧 생각깊이 지켜보고계시였다. 다른 간부들의 시선도 그쪽에 가있었다.

반시간 지나서 전주탑우에서 일하던 흰 옷 입은 로동자들이 내려왔다. 그제서야 장군님께서는 청사마당에 널려서있는 간부들을 가까이 모이게 하시였다.

장군님께서는 손을 들어 고압전선을 가리키시였다.

《모두 알고있는지 모르겠는데 저 고압전선을 통해 전기가 남조선으로 흘러들어갑니다.》

허가이는 새삼스레 고압전선들을 바라보았다. 문득 지난 6월에 있은 북남전기회담이 상기되였다. 그때 미군정과 남조선대표는 이해 8월 31일전으로 2년동안 물지 않은 전기대가부채를 몽땅 지불하겠다고 조약했었다.

그런데 미군정대표 후레 드리크는 8월이 다 가고 9월초에 이른 오늘까지도 한푼의 돈도 물지 않고있을뿐아니라 전기부채를 재촉하는데 대하여 래년 8일 31일까지 빚을 무는것으로 잘못 알고 조약문건에 수표하였다고 철면피한 답변을 하였다는것이다.

리문도는 분격한 나머지 아무런 토의도 없이 남조선으로 보내는 전기를 당장 잘라버리라고 송전부에 지시하였다. 그리고나서 장군님께 보고를 올리였다.

장군님께서는 리문도의 무규률적인 행동에 대하여 호되게 비판하시고 끊어진 전기를 다시 이어놓으라고 지시하시였다.

흰 작업복을 입은 두 로동자는 방금 남으로 나가는 경성송전선 보선작업을 하고 내려온것이였다.

장군님께서는 이상의 전말이야기를 하시고 규률문제도 강조하고 전기문제도 토론하기 위하여 간부들을 모이게 하였다고 하시였다.

장군님께서는 선자리에서 격식없이 간단히 토론하고 헤여지자고 말씀하시였다.

《요즘 일부 우리 일군들속에서 무규률적인 현상이 나타나고있습니다. 얼마전 함경남도와 강원도인민위원회에서는 북조선인민위원회의 승인도 받지 않고 량곡 한말에 5원씩 쳐서 현물세를 돈으로 받아들인 사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전기처에서 또 북조선인민위원회와 아무런 토론도 없이 자의대로 남조선에 보내는 전기를 끊어버리는 엄중한 행위를 하였습니다.

모든 화근은 무규률에서부터 오게 됩니다. 규률은 형식인 동시에 내용입니다. 전기처장동무는 이에 대하여 심각히 반성하여야 합니다.

우리가 놈들의 파렴치한 행동을 보면서도 왜 전기를 자르지 않는가. 그것은 남조선에 우리 동포들이 있기때문입니다. 우리가 전기를 자르면 남조선의 산업이 다 죽어버리고 인민들은 불을 보지 못하고 까막나라에서 살게 됩니다. 동무들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우리가 당장 전기를 잘라야 하는가 참아야 하는가? 이에 대한 합의를 봅시다.》

일군들은 긴장해서 잠자코 서있었다. 잠시후 박창옥이가 심리적고통을 참는듯 얼굴을 찌프리며 입을 열었다.

《우리는 여러차례 전기처장동무의 무분별한 행동에 대해서 비판도 하고 인간적인 충고도 주었습니다. 그런데 왜 고치지 못하는가? 동문 전기에 무식한자들이 전기줄을 쥐기 두려워하는것처럼 계획화에 무식한자들이 인민경제계획작성을 무서워한다고 말했다더니 전기에 유식한 사람이여서 그렇게 전기줄을 쥐고 장난질하기를 좋아하는가?》

박창옥은 넉달전에 장시우한테서 전해들은 말을 아직 가슴에 새겨두고있었다. 그의 눈에서 파란 불찌가 날리였다.

리문도의 입술이 푸들푸들 떨렸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전기대가부채청산날자가 지나간데다가 너무 분격한 나머지 합의도 없이 독단적으로 남조선송전선을 끊어버리게 했습니다. 이것은 심한 월권위법행위였습니다. 그런데 저는 참아내기가 힘들었습니다.》

《동문 자기반성을 할 대신 뭘 잘했다고 변명인가? 장군님을 모신 자리에서 엉?… 비판에 대해 무슨 의견이 있는가?》

박창옥이 그를 마주 쏘아보며 소리쳤다.

리문도는 몸을 부르르 떨면서 박창옥의 시선을 피하였다. 그는 자기가 쓴 《동양전기발전사》의 한 대목을 생각하며 치를 떨고있었다.

…19세기말 우리 나라 수공업자들은 극소형타빈으로 전기를 생산하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리조통치배들은 그들도 《사문란적》이라고 하면서 처형해버리고 미국자본가놈들에게 왕궁전등가설권을 넘겨주는 망동을 부렸다. 그리하여 1898년 5월 골부라운이라는 미국놈이 서울에 미국전기회사를 들여앉히고 서울왕궁에 전등불을 켜준다음 서울 서대문에서 종로사이에 전차를 움직이게 하여 우리 나라의 국고와 조선사람들의 주머니를 털어먹었다. 미국놈들은 그후 전기가설권을 가지고 마음대로 우리 나라의 자원을 략탈하였는데 대표적인 실례로 값눅은 조선의 로동력으로 청천강지류인 구룡강에 500키로와트의 소형수력발전소를 건설하여 평북 운산군의 북진금광을 개발략탈하였다. 그후 구룡강하류에 500키로와트 발전기 두대를 더 놓아가지고 금을 대대적으로 략탈하였다. 그때부터 우리 나라 광산에는 《노다지》라는 말이 떠돌게 되였다. 그것은 금광맥이 나타날 때마다 미국놈들이 절대로 다치지 말라는 뜻에서 소리치군 한 영어 절반 조선말 절반이 뒤섞인 얼치기 낱말이였다.…

일제는 《동양전기발전사》에서 미국자본가들의 침략성을 발가낸 대목들은 삭제하지 않았다.

장군님께서 오한에 떨듯 하는 리문도를 측은히 바라보시였다.

《전기처장동무는 우리 나라 전기공업의 수난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있기때문에 오늘 전기대가부채를 가지고 롱락질하고있는 미국것들의 철면피한 행동에 격분을 참지 못하고있습니다. 우리는 그 심정을 리해할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절차도 밟지 않고 합의도 없이 전기를 끊어버려서야 되겠습니까. 그런 무정부주의적인 행동은 백해무익합니다. 전기를 잘라버리는것이 뭐가 그리 급한가? 남조선에는 동무의 부모, 자식들도 있지 않습니까?》

장군님의 목소리는 갈리였다. 그이께서는 분연히 남쪽하늘을 바라보시였다. 일제시기에도 마음대로 오고가던 남과 북이 해방된 오늘 둘로 갈라져 전기선마저 수난을 겪고있으니 가슴이 미여지는듯하시였다.

《장군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리문도가 번쩍 머리를 쳐들었다가 전신을 떨면서 다시 고개를 수그리였다.

《장군님의 아픈 가슴을 이 미련한 사람이…》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박창옥이도 눈을 내리깔고 송구하게 서있었다.

《우리는 다시한번 인내성을 발휘하여 미군정이 전기대가부채를 스스로 물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 해봐야 합니다. 외무국에서도 팔장을 끼고 가만히 앉아있지 말고 미군청에 공식적으로 독촉도 하고 추궁도 해야 합니다.》

《장군님, 그렇게 하겠습니다.》

외무국장 리강국은 꼿꼿이 몸을 세우고 대답을 올리였다.

《외무국에서 정신을 차려야 하겠습니다. 이번에 미국녀류기자 안나 루이스 스트롱에 대한 자료와 의견서를 제공한걸 보아도 아메리카주담당부서가 사상적선이 잘 서지 못했습니다. 국장동무, 알겠습니까?》

장군님께서 엄한 표정으로 리강국을 지켜보시였다. 순간 허가이는 등골이 오싹하였다.

《장군님, 일 잘하겠습니다.》

리강국의 입에서는 연방 일을 잘하겠다는 말이 흘러나왔다.

《다 모인 기회에 몇가지 문제를 더 강조하겠습니다.》

일군들은 일제히 수첩을 꺼내들었다.

《3. 4분기도 이제 한달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3. 4분기계획을 넘쳐수행해야 합니다. 뭐니뭐니해도 농사를 잘 지어야 합니다.》

장군님께서는 동평양시가 저편으로 무연히 펼쳐진 누런 논벌을 바라보며 말씀을 이으시였다. 《우리는 지금까지 50만톤의 쌀이 부족해서 소시민들의 식량문제를 풀어주지 못했는데 올해엔 작년보다 농사가 더 잘 되였으니 이제 만기작물현물세 징수가 끝나면 그것을 해결할수 있을것 같습니다.》

장군님께서는 국가가 50만톤의 쌀을 시장에 내놓으면 거기에서만도 많은 수입을 얻을수 있다고 하시였다. 그러면 소시민들의 식량문제를 해결하고 나라는 자금을 축적하고 쌀값을 올리던 모리간상배들에 타격을 주니 일거삼득이였다.

《그만한 자금이 확보되면 계획한 큰 건설을 마음대로 할수 있습니다.

종합대학청사건설에 계획된 자금을 투자하자고 합니다. 종합대학설계도가 완성되였으니만큼 지체하지 말고 이달중으로 건설기공식을 해야 하겠습니다. 기공식 첫삽은 김제원농민이 뜨게 하는것이 좋을것 같습니다.》

김일성종합대학건설사업소 소장 정렴수가 김제원농민에게 첫삽을 뜨게 하겠다고 말씀올리였다.

장군님께서는 계속하여 간부들속에서 관료주의적사업작풍을 없애는 문제, 로동의 질과 량에 의한 분배원칙을 철저히 지키는 문제 등을 강조하고 말씀을 마치시였다.

《제기할것이 있으면 말하시오.》

장군님께서 소매를 올리고 시계를 들여다보시였다.

《제 한가지 말씀올리고싶은것이 있습니다.》

리문도가 불쑥 입을 열어 모두가 의아해하였다.

《어서 말하시오.》

《양덕군 동양마을이 완전히 전기화되여 며칠후 발전소건설준공식을 할수 있게 되였습니다. 저희들은 밤에 준공식을 하자고 생각하고있습니다. 동양리 산골마을에 전기불을 환히 켜놓고 행사를 하면 의의가 있을것 같습니다.》

《나도 반대가 없습니다. 내가 이미 몇달전에 전구 세 상자를 보내주었습니다. 오천행동무가 끝내 해냈구만.》

장군님께서 북쪽하늘에 눈길을 보내시였다.

한숨속에 흘러온 고콜불의 지리한 밤들이 멀리 과거로 떠내려가고 광명과 문명의 불이 이 나라 외진 화전마을에도 찾아오고있는것이다.

그이께서는 아득한 유년시절부터 수없이 보신 이 나라 농촌마을들의 어둡고 슬픈 밤들을 추억에 떠올리시며 몇발자국 걸음을 옮기시였다.

《양덕군 동양리에 나도 가보겠습니다.》

그이께서 미소를 지으며 조용히 뇌이시였다.

3. 4분기가 시작되는 7월초부터 황해제철소, 문평제련소, 서해조선소 등 평남도, 황해도, 강원도 일대의 공장, 기업소와 농촌지역들을 수없이 현지지도하신 장군님께서는 3. 4분기를 결속하는 이 마지막 9월에는 북조선의 남북 길이를 관통하고 동서 너비를 횡단하는 대장정의 현지지도를 단행하실 작정이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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