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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번영의 시대 제5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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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0건 조회 3,877회 작성일 19-10-21 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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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04.jpg 

(제 5 회)

제 1 장

5

 

리승철은 10호직장 출입문앞에서 별안간 놀라며 우뚝 멈춰섰다.

작업장안에서 난데없이 녀자의 애절한 노래소리가 울려나왔기때문이였다.

리승철이 출입문을 열자 노래소리가 뚝 끊어졌다. 기름탕크주변에서 축음기를 틀어놓고 무슨 일인가를 하고있던 여라문명의 로동자들이 리승철의 성난 얼굴을 보고 급히 축음기뚜껑을 닫아버린것이다.

조금후에 그이께서 들어서시자 작업장안에 있던 사람들이 엉겁결에 옆으로 비키면서 꾸벅꾸벅 절들을 하였다.

《수고들 하십니다. 그래도 여기 오니 사람들을 볼수 있구만. 그래 무슨 일들을 하고있습니까?》

《뭐 특별히 하는 일이 없습니다. 기름탕크에 녹이 쓸어 닦아내고있습니다.》

한 젊은이가 군복입은 사람들을 호기심에 차서 바라보며 대답하였다.

정제유직장의 설비들도 어마어마하였지만 시체처럼 싸늘하게 굳어져있었다.

리승철이 기름이 담겨있는 통 한개를 그이께 보여드리며 자랑하였다.

《이 10호직장에서 마조라(푸른 하늘)라는 기름을 생산했습니다. 그건 일본에서도 보통사람들은 못 먹고 일본황실에서만 먹던 최고급정제유입니다. 도인민정치위원회 상공부장인 김광진선생이 그러는데 앞으로 우리가 마조라를 생산해서 외국에 팔면 숱한 돈을 벌수 있다고 했습니다.》

《대단히 좋은 기름같은데 동무들은 그 기름을 자셔보았습니까?》

장군님께서 주위에 둘러서있는 로동자들에게 물으시였다.

《우리같은게 그걸 어떻게 먹습니까?》

넝마같은 옷을 걸치고 맨발로 서있는 애된 청년이 어림도 없는 일이라며 머리를 저었다.

《왜 못 먹는단 말이요. 이제는 동무네들이 주인입니다. 일제시기엔 우리 로동자들이 자기가 짠 기름을 한방울도 못 먹었지만 이제는 누구보다도 먼저 그들이 먹어야 합니다. 바로 동무들이! 마조라에서 아무리 큰 돈이 나와도 수출하지 말고 우리 로동자들에게 먹여야 합니다. 로동자들을 위해서 돈이 필요한거지 돈을 위해서 로동자가 필요한게 아닙니다.

조합장동무, 앞으로 마조라를 생산하게 되면 한방울도 수출하지 말고 몽땅 우리 로동자들에게 먹이도록 합시다. 그런데 설비들이 다 마사져서 기름을 언제 생산하게 되겠는지 모르겠구만.》

《예, 제일 곤난한것은 랭동설비가 고장난겁니다. 그게 없으면 아무것도 못합니다.》

리승철은 몹시 난감해하였다.

이때 장군님의 시선은 창문턱에 놓인 축음기에 향하였다.

《저게 뭐요, 축음기가 아닙니까?》

《예, 공장주놈의 집에 있는걸 가져다놓았습니다.》

제일 나이가 많아보이는 로동자가 불안한 기색을 띠고 어물어물 대답올렸다.

그이께서 검은색축음기뚜껑을 열어보시였다. 《포리돌》이라는 일본글 자호가 있는 소리판에 《칠석날》이라는 노래제목과 《왕수복》이라는 가수의 이름이 적혀있었다.

그이께서는 오래도록 소리판을 지켜보시였다.

로동자들의 얼굴빛이 컴컴하게 질리였다. 소리판을 들여다본 리승철이도 실색한 얼굴이였다.

공산당에서 엄중단속하는 련정비가, 더구나 왕수복의 노래 《칠석날》이였다.

언제인가 도당정치부장 장시우는 왕수복을 친일기녀라고 하면서 그의 남편 김광진에게 안해와 갈라지지 않는 조건에서는 공산당의 지붕밑에서 같이 일할수 없다고 하였다. 《칠석날》은 왕수복을 조선의 인기가수로 올려세워주고 《부르죠아계급》으로 되게 한 노래라고 했다.

(이제 큰 문제가 생길것 같군. 정신빠진것들, 이런것은 왜 가져다놓구.)

리승철은 로동자들에게 눈을 흘기였다. 로동자들도 어지간히 긴장된 얼굴들이였다.

그런데 정치위원은 손수 축음기태엽을 재워놓고 소리판을 돌리시였다. 가슴을 허비는 슬픈 곡조가 울려나오더니 일촌간장을 녹일듯싶은 녀인의 고운 목소리가 흐느낌처럼 울려나왔다.

 

    칠석날 떠나던 배 소식없더니

    바다가 저쪽에는 돌아오는 배

    배사공 노래소리 가까웁건만

    한번 간 그 옛님은 소식없구나

 

리승철은 불안한 마음으로 정치위원의 표정을 살피였다. 2절까지 노래를 다 들으신 장군님께서는 한동안 묵묵히 서계시였다.

그것은 결코 나쁜 노래가 아니였다. 견우직녀가 갈라지듯이 떠나간 님을 애타게 기다리는 외진 섬마을의 순진한 녀인의 한많은 사랑을 노래한 《칠석날》에는 민족수난의 시대가 비껴있었다. 노래에 나오는 사랑하는 님은 인격화된 조국이기도 하였다. 한번 간 옛님은 소식이 없다는 그 애절한 하소는 망국의 한이 피덩이처럼 가슴에 응어리진 겨레의 설음을 터뜨린것이였다. 하여 《칠석날》은 음반을 타고 전국에 퍼져가면서 조선인민의 마음을 한껏 들쑤셔 일제에 대한 분노로 바꾸어지게 하였다.

《이것은 련정비가라고 하지만 실상은 나라잃은 슬픔을 터놓은 노래입니다.… 어떻게 이 소리판이 공장주의 집에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 사람이 쫓겨갈 때 제 집에 있는 물건은 마사버리지 않았는가요?》

장군님께서 한참만에 로동자들을 돌아보며 물으시였다.

더러는 마사버리고 더러는 그대로 놓아두었습니다. 축음기는 개차반이 된걸 제가 고쳤습니다.》

그이의 곁에 긴장하게 서있던 애된 젊은이가 약간 떨리는 소리로 대답올리였다. 맨발로 서있는 그 젊은이는 언제 리발을 했는지 머리가 까치둥지같고 입주변에 보슴털도 아니고 수염도 아닌 가늘고 연한 털이 보르르하니 덮여있었다.

《동무, 축음기기술이 있는 모양이구만.》

그이께서 웃음을 띠고 젊은이를 지켜보시였다.

《아닙니다. 난생처음 만져봤습니다. 축음길 듣고싶어 가져다가 동무들과 같이 여러날 씩딱질을 해서 겨우 고쳤습니다.》

《그렇소? 동문 여기 제유직장에 있소?》

《아닙니다. 원동작업장 배전공입니다.》

《발전기가 있는 원동직장? 그런데 축음긴 고치면서 타빈실의 기계는 왜 못 고칩니까?》

그이께서 축음기덮개를 닫으며 물으시였다.

《고쳐볼 생각이 있었습니다. 구멍이 뚫린 증기관들을 땜질하고 선반으로 쇠를 깎아서 부러진 타빈날개들을 용접해붙이면 될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전기설비들을 주먹치기로 두드려맞추면 되려 못쓰게 만든다고 해서…》

젊은이는 힐끔힐끔 리승철의 눈치를 살피였다.

《못 고치게 하는 사람이 누구요?》

젊은이는 대답을 못하고 주밋거리였다.

《저, 제가 그랬습니다.》

리승철이 무안을 타는 소년처럼 얼굴을 붉히면서 한걸음 앞으로 나섰다.

그이께서 부드럽게 리승철을 나무라시였다.

《다 마사진 타빈인데 고쳐보게 할게지 그걸 왜 막소. 저 동무가 축음길 고친걸 보면 타빈도 고칠수 있을것 같소. 이름이 뭐요?》

《강도득입니다.》

《도둑?

그이께서 이름을 외워보시고 《이를 도, 얻을 득자를 쓰는것 같은데 뜻은 괜찮지만 귀맛이 나쁘구만. 도둑이라는 소리로 들리거던, 도적놈이라는 도둑.》 하고 웃으시였다.

《그러지 않아 제 별명이 강도입니다.》

순간 작업장안에 폭소가 터지였다.

그이께서도 크게 웃으시고나서 《안되겠소, 이름을 고쳐야겠소. 강건국이라고 고치면 어떻소? 나라를 건설한다는 뜻이요. 실지 동문 건국의 주인이 됐소.》 하고 정겹게 강도득을 바라보시였다.

《정치위원선생님, 참 좋습니다.》

젊은이의 눈언저리가 불깃해졌다.

《그럼 이제부터 모두 저 동무의 이름을 건국이라고 부릅시다. 건국의 주인이 되여 인생의 새 출발을 하시오!》

약속이나 한듯 모두가 밝은 웃음을 지으며 박수갈채를 올리였다.

장군님께서 청년의 어깨를 두드리시였다.

《건국동무! 타빈을 자기 손으로 고쳐보시오. 그걸 빨리 살려내야 하오. 여기 랭동설비도 어데서 가져오려니 생각말고 모든걸 자기 힘, 자기 손으로 고칠 결심을 가져야 합니다. 하자고 결심만 하면 못해낼 일이 없다는것이 우리가 산에서 싸울 때 깨달은 진리요! 자, 그럼 원동기직장으로 가봅시다.》

장군님께서는 출입문을 열고 복도로 나오시였다. 긴 복도를 걸어가시던 그이께서는 문득 걸음을 멈추시였다. 복도 맞은편으로 곧추 바라보이는 류세직장에서 여러명의 로동자들이 마사진 설비들을 걸레로 닦고있었다.

《정치위원선생님! 점심시간이 다 됐습니다.》

리승철이 그이의 곁으로 와서 조심히 말씀드리였다. 그러나 배 곯는 어린이들때문에 그토록 가슴아파하시던 정치위원에게 차마 식당으로 가시자는 말은 꺼내기가 힘들었다.

장군님께서 시계를 들여다보시였다. 한시가 가까와오고있었다. 마침 이때 복도계단을 밟아올라온 예닐곱살 되여보이는 사내아이가 류세직장 출입문으로 들어가더니 마사진 기계를 어루만지고있는 한 젊은 녀인의 입에 무엇인가를 가져다댔다.

《엄마, 이거! 구운 고구마야…》

갓난애기 주먹만 한 노란 물체가 장군님의 눈에 밟히시였다. 저 철없는 어린것이 자기 배도 고프련만 점심을 굶으며 일하는 어머니를 위해 어디서 그런걸 구해온 모양이였다.

그 광경을 지켜보시는 장군님의 가슴은 몹시 아프시였다. 하지만 그보다 더 가슴아프신것은 어린 자식을 굶기면서도 공장에 나와 생산설비들을 지키고있는 녀인의 모습이였다.

공장의 주인이라는 자각이 있어 굶으면서도 저렇게 기계를 지키고있을것이다.

장군님께서는 리승철을 돌아보며 힘주어 말씀하시였다.

《지금 이 공장 로동자들은 점심도 건네가며 공장을 지키고있습니다. 나라의 주인이라는 자각이 없이는 상상도 못할 일입니다. 주인이라는 자각, 그게 중요합니다. 그것만 있으면 공장은 꼭 복구됩니다. 이다음 곡산공장에서 사탕, 과자, 엿이 꽝꽝 쏟아져나오고 로동자들모두가 배불리 밥을 먹게 될 때 나는 동무네 식당에 찾아가서 스스로 점심밥을 청하겠소.》

장군님께서는 목이 메이시여 잠시 말씀을 끊으시였다. 《그것이 먼 미래에 있을 일이겠는가? 아니요, 래년 가을쯤 되면 어려운 고비는 넘기게 될거요. 래년 가을을 기다리시오. 그때면 이 공장으로 강냉이원료가 차판으로 들어오게 되고 로동자들은 점심밥을 싸가지고 다닐거요. 나는 그것을 확신합니다.

자, 원동기직장을 마저 돌아봅시다.》

그이께서는 복도를 지나 마당으로 나오시였다.

높이 열린 9월의 맑은 하늘에서 태양이 빛나고있었다.

김일성부대 정치위원이 찾아왔다는 소식이 퍼졌는지 구내길에 많은 사람들이 나와있었다. 강냉이 야적더미우에까지 사람들이 올라가앉아 원동기직장으로 걸어가시는 그이께 친근한 웃음을 보내며 손을 흔들었다.

《래년 가을!》

그이께서는 마음속으로 다시금 외워보시였다. 과연 무엇을 믿고 래년 가을을 기다리라고 자신있게 말씀하셨던가?

장군님께서는 나라인구의 80프로를 차지하는 농민들모두를 땅의 주인으로 만든 1946년의 만풍년가을을 눈앞에 그려보시였던것이다.

땅은 농민들의 인간적가치를 규정해준다. 땅없는 농민은 한낱 부림소와 같은 존재이다.

이제 당과 인민정권을 건설하고 이 나라 모든 농민들에게 땅을 주면 그들은 땅의 주인으로 될뿐아니라 나라의 주인으로 된다. 따라서 그들은 자기들에게 그러한 혜택을 베풀어준 인민정권을 위하여 모든것을 다 바치게 될것이였다.

땅은 그런것이였다. 또한 이것이 장군님께서 확신있게 내다보고계시는 땅과 련결되여있는 인민정권과 농민들의 혈연적관계였다.

그렇다, 이제 건설하는 인민정권은 먹는 문제로부터 출발하여야 하며 그래서 농민들을 땅의 주인으로 만드는 토지개혁을 민주개혁의 첫 공정으로 내세워야 한다.

장군님께서는 여기저기서 환호하는 곡산공장사람들에게 손을 흔들어 답례하시며 원동기직장으로 걸어가시였다.

이튿날부터 전기회사와 곡산공장에서 복구건설의 불길이 타오르고 평양시 주변농촌들에서는 소작료 3. 7제투쟁이 벌어졌다.

역경을 디디고 오르는 건국의 새 력사가 시작되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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