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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시 《나의 고백》과 로병시인 (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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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0건 조회 5,921회 작성일 19-11-27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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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시 《나의 고백》과 로병시인 (1)

 

얼마전 조선중앙텔레비죤에서는 서정시 《나의 고백》을 읊으면서 아버지, 어머니를 도와 나무를 많이 심고 좋은 일을 많이 한 산골마을소년을 소개하는 소개편집물이 방영되였다.

그 산골마을소년이 늘 읊으며 조국애를 키워간 서정시 《나의 고백》은 1986년에 발표된 시이다.


스스로 자신에게 물어보노라

너 이 땅에 태여나서

밟은 땅 얼마이고

사귄 사람 얼마인가


정든 사람이 인민이고

마음붙인 고장들이 조국일진대

너 거기에 남긴것 무엇이고

너 그들에게 바친것 무엇인가

시는 발표되자마자 누구나 즐겨읊는 시로 되여 청년들과 인민군군인들이 있는 곳이라면 그곳이 석수쏟아지는 물길굴건설장이든, 수천척지하막장이든, 도로건설장이든 그 어디서나 울려퍼졌다. 이 시기 청춘시절을 보낸 사람이면 그 누구의 수첩을 펼쳐보아도 이 시가 적혀있었다. 예술영화 《청춘의 자서전》과 텔레비죤련속극 《수업은 계속된다》에서도 이 시가 울려나온다.

그러면 30여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공화국인민들속에서 널리 애송되는 서정시 《나의 고백》을 창작한 시인은 과연 누구인가.

그는 평양시 모란봉구역 개선동에서 살고있는 전쟁로병 오영환로인이다.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전쟁로병들은 불타는 전호가에서 최고사령부를 그리며 혁명가를 부르던 그때처럼 로쇠를 모르는 열정과 기백으로 당과 조국을 받들며 후대들에게 백옥같은 충정의 일편단심과 죽어도 버리지 않는 혁명신념, 불굴의 조국수호정신을 피줄기로 넘겨주어야 합니다.》

그토록 만사람의 심금을 울린 서정시 《나의 고백》은 바로 전쟁로병시인 오영환로인의 인생관이 응축된 심장의 고백이다.

오영환로병의 고향은 그 옛날 평양의 보통문기슭에 위치한 토성랑이라 불리우던 곳이다. 해방전 그의 아버지는 인력거를 끌면서 겨우 생계를 유지했는데 그가 1살때 병으로 사망하였다. 빌어먹는 거지신세라 학교공부는 엄두조차 낼수 없었다.

주체34(1945)년 8월 15일!



해방의 은인, 민족의 어버이이신 위대한 수령님께서 조국을 찾아주시고 인민의 나라를 세워주신 덕에 거지소년이였던 오영환은 비로소 학교에 가고 12살이 되여서야 처음으로 우리 글을 배웠다.

해방후 공화국북반부에서는 국가적인 사회보험제가 실시되면서 곳곳에 휴양소, 정양소, 야영소들이 생겨났는데 1947년 여름 소학교 학생이였던 오영환은 장수산에 있는 학생휴양소에 입소하게 되였다.

아름다운 장수산기슭에 아담하게 자리잡은 학생휴양소의 전경은 어린 소년의 눈에 마치 옛말에 나오는 신선들이 사는 집처럼 황홀하게 비꼈다. 산해진미가 다 오른듯 풍성한 식탁을 마주하고 푸짐하게 배를 불리우고 호실에 들어서면 눈같이 흰 백포가 씌워진 폭신한 침대가 기다렸다. 따스한 담요로 온몸을 가리우고 잠자리에 누웠어도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았다. 느끼는바가 너무 커서 흥분으로 높뛰는 가슴을 진정할길 없었던 그는 조용히 밖으로 나왔다. 어디선가 시내물소리가 들려왔다. 산골의 깊은 밤에 고요한 정적을 깨치며 들려오는 시내물소리는 14살소년으로 하여금 저도 모르게 연필을 쥐고 동시를 쓰게 하였다.

장수산의 큰 바위를 돌고 푸른 숲을 지나서 강으로 흘러가고 바다로 가는 시내물아 너처럼 나도야 희망찬 바다로 가리라, 새 나라의 주인이 되리라고 쓴 동시를 선생님은 큰 종이에 붓으로 써서 휴양소 벽보판에 붙여놓았다.

휴양소에 온 교원, 학생들모두가 오영환의 시를 읽고 손벽을 치며 축하해주었고 소장은 장수산학생휴양소에서 시인이 나왔다고 기뻐하였다.

해방전 토성랑의 거지소년은 해방과 더불어 안겨진 꿈같은 행복, 가슴에 차넘치는 희망을 동시에 담는것으로 작가로서의 첫 걸음을 떼였다. (계속)


서정시 《나의 고백》과 로병시인 (2)

 

민주건국의 마치소리 우렁차게 울리고 어디서나 행복의 노래소리 아름답게 울려퍼지던 이 땅에 전쟁의 불구름이 밀려왔다.

하지만 그 불비속에서도 배움의 종소리는 랑랑히 울리고 어머니조국은 인재들을 빠짐없이 찾아내여 대학교정에 세워주었다. 하여 오영환도 전쟁이 한창이던 때 평안북도의 산골에 자리잡은 평양사범대학(오늘의 김형직사범대학)에 입학하였다.

포연이 흐르는 하늘가 멀리로 울려가는 배움의 종소리는 그의 심장의 피를 끓게 하였다.

(얼마나 많은 이 나라의 아들딸들이 전선에서 조국의 한치땅을 지켜 피를 흘리고있는가. 그런데 나는 이 준엄한 포화속에서도 대학으로 불러준 당과 조국의 고마움에 대하여 감지덕지해하고만 있으니…)

그는 분연히 펜대를 총대로 바꿔들고 교정을 떠나 전선행렬차에 올랐다.

그는 폭탄이 비오듯 쏟아지는 속에서도 즉흥시를 읊으며 전우들을 고무하였고 짬짬이 시를 창작하여 전선신문에 발표하였다. 전선은 문학청년 오영환을 정치사상적으로 성장시킨 학교였고 참다운 문학이 무엇인가를 배워준 강의실이였다.

전쟁이 승리한 후 그는 그토록 희망하던 작가가 되였다.

작가!

꿈만 같았다. 토성랑거지소년을 작가로 키워준 그 믿음과 사랑에 보답할 일념이 그의 가슴을 항시 불태웠다.

문학예술출판사에서 아동문학, 조선문학, 청년문학편집원으로, 청년문학편집부 부장으로 30여년간 사업하면서 그는 수많은 시작품들을 창작하였으며 문학후비육성에 지혜와 열정을 아끼지 않았다.

이 과정에 시집 《숨쉬는 땅》을 내놓았으며 인민기자의 명예칭호도 받게 되였지만 자만을 모르고 쉼없이 탐독하였고 붓끝을 끊임없이 벼려나갔다.(계속)


서정시 《나의 고백》과 로병시인 (3)

 

우리가 오영환로병에 대하여 관심한것은 청년교양과 문학후비육성에 이바지하는 좋은 시와 책들을 많이 써낸 공로가 커서만이 아니라 그의 현재의 모습이 새 세대들에게 거울이 되기때문이다.

올해 그의 나이는 86살이다. 정년이 지나 집에 들어온지도 20여년이 되였다.

10대홍안의 시절에 총을 메고 조국수호전에 용약 나서서 피를 바치였으며 수십여년간 청소년학생들과 근로자들의 사상교양과 문화정서교양에 이바지하는 수많은 문학작품을 창작하고 문학후비들을 육성하여 인민기자칭호를 받은 그 공로만으로도 그는 한생을 떳떳이 살았다고 말할수 있다.

허나 오영환로인은 현직을 놓고 집에 들어온 날부터 오늘까지 20여년을 하루도 손에서 펜을 놓지 않았다.

깊은 밤에도 이른 새벽에도 글을 썼고 다른 로인들이 낚시터와 유원지에서 즐거운 휴식으로 날과 달을 보낼 때에도 그는 앉은책상을 마주하고 산더미같은 자료에 파묻혀 탐구와 사색의 나날을 보냈다.

만경대구역에 사는 제대군관 한성룡은 우리에게 자기가 목격한 사실을 들려주었다.

《글지도를 받기 위하여 어느날 오영환선생님의 집을 찾아갔는데 그는 밤이 깊도록 앉아서 글을 쓰고있었습니다. 순간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선생님, 꼭 이렇게 글을 써야 하겠습니까?〉 하고 말했더니 그는 〈써야지. 내가 남은 생에 할수 있는 일이 뭐겠나. 한건이라도 글을 더 많이 써서 후대들에게 넘겨주어야 하지 않겠나.〉라고 대답했습니다. 머지않아 90고개를 바라보는 그가 지금까지 글을 쓰는것은 누가 시켜서도 아니고 또 그 무슨 보상을 바라서는 더욱 아닙니다.

그러면 과연 그 무엇이 이 고령의 로인으로 하여금 창작활동을 순간도 멈추지 않게 하는것이겠습니까. 저는 이 물음에 주는 대답을 그가 쓴 서정시 〈나의 고백〉의 구절을 마음속으로 읊으며 스스로 찾았습니다.

돌이켜보라, 되새겨보라

네가 아껴둔 힘이 얼마인지

네가 피해서 돌아간 길이 얼마인지

네가 허송세월한 날이 얼마인지

오영환동지는 젊어서는 물론이고 지금도 이렇게 량심에 채찍질을 하며 심장을 불태우고있습니다.》

말과 글은 곧 그 사람이라는 말이 있다. 그것은 말과 글에 그 사람의 사상이 반영되고 지적, 도덕적수양정도가 실리기때문이다.

서정시 《나의 고백》은 제목 그대로 시인 오영환의 서정의 분출일뿐아니라 공민 오영환의 심장의 고백이다.

30여년전, 명작창작전투를 벌리던 때였다. 깊은 밤 청신한 공기를 마시며 숲속을 거니는 그의 머리속에 소년시절 장수산의 학생휴양소에서 동시를 짓던 생각이 불쑥 떠오르며 가슴이 후더워졌다.

(위대한 수령님들께서는 어제날 토성랑거지소년이였던 나를 시인으로 키워주시였는데 너는 지금껏 무엇을 하였는가. 도대체 네가 이 땅에 남긴것 무엇이냐.)

순간 창작적령감이 번개의 섬광과도 같이 번쩍이며 시구절이 터져나왔다.

이제라도 깨달아라

먼 후날 너를 두고

기억할 사람 이 땅에 몇이고

추억할 고장 이 땅에 몇평방인가를


아, 피땀을 묻은 땅이 없다면

너의 인생은, 너의 한생은

하늘에 흘러간 구름같고

땅우에 스쳐간 바람 같으리니

이렇듯 조국과 인민, 후대들을 위해 언제나 심장을 불태우는 그였기에 지난 수십년동안 자료작업을 하여 수집한 명문장들을 체계화하고 정립하여 새 세대들의 지적, 도덕적수양에 도움이 될 《작가의 문체》, 《작가의 생활철학》, 《생활의 진리에 대한 묘사명문장집》을 집필하였으며 장편소설 《포연삼천리》, 장편실화문학 《강자로 사는 길》을 창작하였다. 머지않아 새 도서가 또 독자들에게 안겨질것이다.

인생의 황혼기에 그토록 왕성한 투지와 정열에 넘쳐 창작을 계속할수 있은 힘의 원천이 무엇인가고 묻는 우리에게 오영환로인은 말했다.

《전쟁로병들을 금은보화에도 비길수 없는 나라의 귀중한 보배라고 하신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원수님의 말씀에서 저는 전쟁로병들에 대한 그이의 크나큰 사랑과 믿음, 기대를 온몸과 마음으로 받아안았습니다.

숨이 지는 순간까지 지식과 능력을 깡그리 짜내여 조국의 재부로 되고 후대들의 성장발전에 자양분이 될 좋은 책을 써야 한다는 자각이 저로 하여금 힘이 들어도 주저앉지 않게 하였습니다.》

우리는 자기를 키워주고 내세워준 어머니조국을 받들어 진한줄 모르는 열정을 바쳐 로당익장하는 백발의 로병시인의 모습을 존경의 마음안고 오래오래 바라보았다.

그러느라니 그의 심중의 목소리- 서정시 《나의 고백》의 구절이 다시금 심금을 울렸다.

살아라 살아라 네 모습에

너를 낳은 어머니모색이 남아있듯이

어머니조국의 불멸할 모습속에

네 사랑 영원히 살아있도록!

                                                                       조선의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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