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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조선의 힘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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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0건 조회 3,901회 작성일 19-12-07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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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서 불멸의 력사 가운데 장편소설 '조선의 힘'을 연재합니다.



제 1 편

 

1

 

 

전쟁의 포화로 불타던 50년 여름도 이제는 시진하게 물러가기 시작하였다. 격전이 휩쓸어간 휘우듬한 언덕우에 땅거미가 내릴 때면 화광이 얼른거리는 하늘가에서 올차게 여문 별들이 파랗게 눈뜨군 했다. 새벽에는 이슬이 내렸다. 한낮의 땡볕과 초연에 시들어버린 풀잎사귀들이 축축히 젖어들고 길가에 구겨박힌 미국제 땅크의 포탑도 번지르르해졌다.

가을이 오고있는것이다. 그러나 이해의 가을은 그저 조용히 오고있지만 않았다. 무엇인가 극적사변을 예고하는듯 별안간 태풍을 앞세우고 들이닥치고있었다.

9월 13일, 남태평양상의 마리아나군도 서쪽에서 발생하여 천천히 이동하고있던 태풍9호가 급속히 북상을 시작하였다. 중심기압 약 l 600mm, 폭풍우의 반경 약 108km로 추정된 강력한 열대성저기압이 무로또갑을 거쳐 마침내 조선해협에 이르자 치렬한 격전이 벌어지고있던 락동강전선은 미친듯 한 폭우속에 휘말려들어갔다.

골마다에서 탕수가 끓어번졌다. 바위돌이 굴러내리고 아름드리거목들이 뿌리채 뽑혔다. 하늘을 쩍쩍 가르며 창살같은 번개가 무시로 번쩍이고 하늘과 땅이 맞붙어 흐느끼듯 떨었다. 구름속을 파헤치며 뢰성이 사라져가면 지상에서는 또 열띤 포성들이 꽈당꽈당 화답하듯 울부짖었다.

달아오른 포신마다에서 비방울이 자글자글 끓었다. 구령소리, 욕지거리, 예광탄의 긴 불꼬리, 몸서리치는 비명, 폭발… 화광이 번뜩일 때마다 진창길에서 군화발을 철떡거리며 내달리는 인민군병사들의 모습이 언뜻언뜻 드러났다.

이따금 창백한 조명탄의 불빛이 그들의 머리우에 푸릿한 빛발을 확 뿌리기도 했다. 그러면 세찬 비줄기속에서 파들파들 떨어져내리는 하얀 종이장들이 보였다. 적들이 뿌린 삐라였다.

《유엔군 인천에 상륙!》

사품치는 락동강의 흙탕물우에, 짓이겨진 논밭과 탕수속에, 구겨박힌 포차들의 잔해우에 그리고 필사적인 공격에 내달리는 병사들의 젖은 군모우에, 어깨우에, 중기관총 총차우에 삐라들이 떨어졌다.

 

《북조선군 장병들에게 알린다!

강력한 유엔군 부대들이 인천에 상륙하여 서울로 진공하고있다.

보라! 당신들은 후방과 보급로를 차단당한채 포위속에서 전멸될것이다. 당신들을 구원해줄 힘은 이 세상에 없다. 투항하라!》

 

삐라에는 포연이 자욱한 서울시 전경, 인천앞바다에 꽉 들어찬 함선들의 사진이 찍혀있었다. 평양-서울-대전을 련결하는 철도와 자동차도로를 커다란 가위로 잘라버리는 그림까지 그려져있었다.

그러나 거기에 주의를 돌리는 사람은 없었다. 세찬 비바람이 그것들을 가랑잎처럼 쥐여뿌릴뿐 공격전에 나선 인민군전사들은 한시도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이제 조금만 더! 한걸음만 더!…

눈앞에 대구와 마산, 부산이 있었다. 하여 그들은 피흘리며 쓰러지면서도 한치 또 한치 전진해가고있었다.

이 시각 광란하는 태풍과 더불어 얼마나 엄중한 위험이 시시각각 커가고있는것인지 그들은 알지 못했다. 대구와 부산에 이르는 그 길이, 그토록 지척에 보이던 남해기슭에로의 그 하루길이 이제 아득히 멀리 뒤에 남게 되리라는것을 아직은 누구도 알지 못하고있었다.…

 

최현이 탄 승용차는 차체를 들썩거리며 어둠속을 내닫고있었다. 풍도 없는 차였다. 세찬 비줄기가 사선으로 엇비스듬히 얼굴을 때리고 목덜미로 마구 쓸어들었다. 그러나 최현은 입을 꾹 다물고 좌석등받이에 어깨를 꽉 눌러대고있었다.

멀지 않은 산너머에서 불그레한 화광이 확 솟구쳤다. 쿵!- 쿠궁- 하는 둔중한 폭음이 울려왔다. 최현은 반사적으로 몸을 쑥 일으켰으나 차가 들추는바람에 털썩 주저앉았다. 군복바지에 스며들었던 비물이 뿜어나오며 거품처럼 부글부글 끓었다.

《음-》

저도모르게 신음하듯 웅글진 소리를 내질렀다. 그리고는 두툼한 손바닥으로 비물이 철철 흐르는 얼굴을 뻑 문질렀다. 웬일인지 마음이 불안하였다. 그런데 그것이 무엇때문인지 딱히 찍어 말할수 없었다.

급변하는 정세때문인지 아니면 홍수로 불어난 강물때문인지?… 지금 그의 사단은 락동강을 강행도하하여 공격전면의 넓은 지역에 교두보를 차지하고있었다. 그런데 보병직접지원땅크와 포차들의 도하가 지체되여 보병들만으로 힘겨운 싸움을 치르고있었다. 그리하여 최현은 기본지휘소를 떠나 도하장으로 달려가는 길이였다. 그는 가만히 앉아서 보고를 기다리는 성미가 아니였다. 흔히 전화로 료해할수 있는 일도 직접 총탄이 비발치는 전장에 나가 확인하고 결심을 내리군 했다. 그러한 최현사단장을 전사들은 존경하고 신뢰하였으나 상급지휘관들은 못마땅해할 때가 많았다. 특히 전선사령관 김책은 최현이 지휘소를 떠나있는것을 질색해하였다. 련합부대장이 목숨을 내걸고 공격선에 나가있을 리유가 없으며 또 그만큼 시야가 좁아진다는것이였다. 하지만 지금 지원땅크와 포차들이 아직 도하장에 처박혀있는판에 어떻게 전화통이나 들고 앉아있을수 있겠는가!… 도하장에 직접 나가보기로 결심하고 지휘소를 나섰을 때 그는 담당간호장 림정옥이 뒤늦게야 알고 비옷을 들고 달려나오는것을 보면서도 그냥 차를 몰아대게 했었다. 사단장의 건강때문에 무던히도 속썩이는 간호장의 마음을 모르거나 무시해서가 아니였다. 웬일인지 마음이 어수선하고 조바심만 자꾸 앞서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그러면 느닷없이 갈마드는 이 불안은 무엇때문인가? 혹시 전선사령관 김책에게서 받은 명령때문이 아닐가?… 방금전에 김책은 전화로 정황보고를 받고나서 말했었다.

《최현동무, 제2제대부대들의 도하와 전투전개가 끝나면 차후임무를 대기하시오!》

놀라운 일이였다. 교두보를 차지하면 제2제대부대들의 전투전개를 엄호하고 종심성과확대를 위한 전투행동을 계속해야 한다는것은 하나의 군사적상식이다. 그런데 김책은 《…차후임무를 대기하시오!》라고만 했었다!…

차는 어느덧 락동강을 옆에 끼고 달리고있었다. 어둠때문에 격랑치는 강물은 보이지 않아도 무시무시한 그 흐름이 온몸에 느껴졌다. 수천수만의 말떼가 초원을 질주하는듯 뒤흔들고 진동하며 움씰거리는 위엄찬 소리가 파동쳐오고있었다.

온통 패운 길로 승용차는 달려갔다. 숱한 물웅뎅이들때문에 운전사는 자주 속도를 죽이지 않을수 없었다.

《왜 이리 굼떠, 냅다 밟으라!》

최현이 독촉했다. 참을수 없는듯 목을 빼들고 퍼붓는 비발속을 내다보았다. 그때 하늘에서 눈부신 섬광이 소리없이 번쩍했다. 파란 불의 화살이 어둠을 쫙- 찢어버리더니 순시에 새까매졌다. 길가녁으로 탄약상자를 메고가던 전사들이 주춤했다. 강기슭에 멎어선 마차우에서는 한 녀병사가 얼결에 귀구멍을 틀어막는듯 했다. 그러나 그토록 무시무시하게 터지리라고 생각했던 천둥소리를 최현은 듣지 못했다.

《차를 세웟!》

도하장 접근로에 이른것이다. 차가 멎기바쁘게 그는 뛰여내렸다. 뒤따라 내려선 키큰 부관과 련락병을 피끗 돌아보았다.

《가서 지휘관을 찾아와!》

말이 떨어지자 련락병이 발뒤꿈치를 딱 소리나게 모았다. 그리고는 전투장에서 그러듯이 허리를 굽힐사하고 퍼붓는 비속으로 사라져갔다.

최현은 잠시 무시무시하게 사품쳐가는 강물의 흐름소리를 듣고있었다. 엊그제 이곳에서 강행도하를 하기 전엔 이렇듯 세찬 물결소리를 상상하지 못했었다. 넓은 강물은 지친듯 느리게 흘렀었다. 전투가 있을 때에만 포탄과 폭탄에 뒤집히고 솟구치고 부글부글 끓어번지군 했었다. 교두보를 점령하자 보위성직속 도하대대가 이곳에 배떼다리를 설치하기 시작했었다. 군집단을 지휘하는 무정장령이 나와서 앞으로의 총공격을 위한 발판이 될 이 도하장위치를 정해주었었다. 이들 공병대대는 무정에게 직속되여있었던것이다.

별안간 최현은 소스라쳤다. 만약 세찬 물결에 배떼다리가 떠내려갔다면 어떻게 할것인가?!... 그러면 교두보를 차지한 강 저쪽의 선견대와 구분대들이 위험하다. 지금 치렬한 싸움을 벌리고있는 그들에게 배떼다리는 피줄과도 같은것이다.

그는 배떼다리가 있음직한 곳으로 바삐 걸어갔다. 그쪽에서 격한 웨침소리가 들려오고있었다. 무섭게 성난 목소리다. 반가운 기대가 불길처럼 가슴에 타들었다. 가까운 곳에서 포차 한대가 강물쪽에 전조등을 켜주고있다. 그러나 세찬 비줄기에 가리워 유령같이 얼른거리는 사람들만이 보일뿐이다.

그때 련락병이 물속에서 솟아난듯 눈앞에 나타났다. 뒤이어 키가 늘씬한 사람이 숨가쁘게 달려왔다. 련락병이 보고하자 그도 역시 최현과 부관 두 사람쪽에 어방대고 경례를 붙였는데 키가 큰 부관쪽에 더 가까왔다.

《대대장인가?》

최현이 물었다. 그러자 그는 반쯤 몸을 홱 돌렸다.

《아닙니다, 사단장동지! 보위성직속도하대대 제…》

《간단히!… 대대장은?》

《전사했습니다.》

《그럼?…》

《2중대장 류현수! 당신의 명령대로 왔습니다!》

《배떼다리는 무사한가?》

《옛, 무사합니다!》

최현은 얼굴의 비물을 뻑 훔쳤다. 비로소 안도의 숨을 내그으며 공병중대장의 팔소매를 끄당겼다.

《자, 가면서 얘기하지. 헌데 이름이 뭐라구?》

《류현수입니다!》

《오- 형수!-》

최현은 자기가 이름을 틀리게 부르고있는줄 몰랐다. 다만 빨리 땅크와 포차들을 교두보에 넘겨야겠는데 하는 생각만 하고있었다.

《그런데 중대장! 왜 땅크와 포차들이 제때에 건너가지 못해?》

《사단장동지! 물이 너무 불어 제가 중지시켰습니다.》

《뭐 동무가?… 감히!?》

최현은 걸음을 멈추었다. 공병중대장 역시 멈춰서서 꺼리낌없이 마주보는데 어둠속에서도 감때사나운 눈빛이 알렸다. 그는 겁내지 않고 청높은 소리로 재빨리 설명했다.

《사단장동지! 배떼다리가 위험하게 됐습니다. 지금 견인쇠바줄을 더 보강하는중입니다. 목숨걸고 곧 도하를 보장하겠습니다!》

《…》

최현은 말없이 그를 쏘아보기만 했다. 결패있고 고집도 있는 젊은이같다. 그러나… 두고보자!… 그는 또 성큼성큼 걸어나갔다. 이윽고 배떼다리가 나타났다. 공병전사들이 굵은 쇠바줄을 늘이느라고 벅쩍 떠들고있다. 힘껏 손세를 써가며 고함을 지르기도 했다.

흙탕물이 최현의 장화목을 철썩철썩 후려쳤다. 세찬 바람에 휘뿌려진 물보라가 흙탕물우에 분수비처럼 흩어져내렸다.

최현은 배떼다리우로 걸어올라갔다. 몸의 균형을 잡기가 어려웠다. 견인고리가 금시 끊어져나갈듯 삐걱거렸다. 부관이 소리쳤다.

《사단장동지!》

어느새 공병중대장이 그를 막아나섰다.

《위험합니다, 사단장동지!》

최현은 그를 떠밀쳤다.

《저기선 전사들이 피를 흘리고있어!》

부관과 련락병까지 달려들어 막아나섰으나 그는 막무가내였다.

《잔말 말고 전지불이나 비쳐!》

두다리가 뻣뻣해지고 사뭇 휘청거렸으나 그는 걸어나갔다. 객기를 부려보는것이 아니다. 전쟁에서는 흔히 순간의 지체가 만회할수 없는 후과를, 심대한 파멸을 가져오기도 하는것이다.

그는 이제 당장이라도 전선사령관 김책이 《즉시 밀양계선으로 진출전개할것!》하는 명령을 내릴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마음속에 갈마드는 까닭모를 위구심때문에 그것을 굳이 믿어보는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쨌든지간에 명령이 내렸을 때 사단의 진출이 늦어져 전반적전선의 공격이 불균형적으로 발전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배떼다리는 안에 들어갈수록 더 세차게 요동쳤다. 부관과 공병중대장이 량쪽에서 그를 붙들고 련락병은 엉금엉금 기여나가며 전지불을 비치군 했다. 쇠바줄, 견인고리, 최현은 그것들을 하나하나 눈여겨살폈다. 배떼다리에 부딪친 파도의 물갈기가 온몸에 들씌워지군 했다. 아차 실수로 파도에 밀려나가면 소용돌이치는 강물속에 휘감겨들것이다. 차차 걸음이 흔들리고 허궁 뜨면서 위태로와졌다. 부관이 소리쳤다.

《사단장동지! 안됩니다. 위험합니다!》

그러건말건 최현은 자기에게 들씌워지는 물벼락을 막느라고 안깐힘을 쓰고있는 공병중대장을 끌어당겼다. 그의 귀전에 대고 고함치듯 물었다.

《쇠바줄이 왜 이 모양이야… 어째서 이렇게 늘어졌어?》

《사단장동지, 그이상은…》

말끝이 폭풍에 날렸다.

《쇠바줄을 더 당기면 되겠나?…》

《사단장동지!…》

최현은 공병중대장의 어성으로써 대답의 뜻을 짐작했다. 그랬으면 위험을 피할수 있겠으나 자기네 힘만으로는 어쩔 도리가 없다는 의미일것이다. 최현은 또 무슨 말인가 하려다 그만두었다. 배떼다리가 서로 부딪쳤다. 요동치며 한켠으로 쏠린 배떼다리우에 거센 물의 담벽이 들부어졌다.

최현은 팔을 허둥거리며 부르짖었다.

《인젠 됐어… 나가자!-》

서로 붙안고 비청거리며 겨우 되돌아나왔다. 그러나 최현은 한결 마음이 개운해져있었다. 무엇인가 기발한 생각이 떠올랐던것이다. 그런 리유로 최현은 늘 참모부의 지도앞에서가 아니라 총포탄이 무시로 쏟아지는 최전방에서 날카롭게 생각을 굴리고 단호히 결심하는것이다.

그는 물이 줄줄 흐르는 공병중대장의 팔소매를 끄당겼다.

《중대장! 이름이 뭐랬더라?》

《옛, 류현수…》

《아, 형수!… 쇠바줄만 바싹 당기면 된단 말이지?》

《예.》

《틀림없겠다?》

《예, 사단장동지!》

《그렇다면 땅크로 끌면 될거 아닌가. 엉?》

《예?!…》

《빨리 말해! 되겠나 안되겠나?》

《사단장동지, 됩니다. 얼마든지 됩니다!… 하지만…》

《그럼 됐어!》

최현은 몸을 홱 돌려 부관을 불렀다. 가서 물이 줄기를 기다리는 땅크병들중 누구 한사람 당장 붙들어오라고 명령했다.

얼마후 다부진 체격의 한 땅크병이 불리워왔다. 멋지게 경례를 하고 최현의 말을 귀담아들었다. 그러다가 불현듯 사단장 최현이 무엇을 요구하는지 깨달았다. 공격전에 나가기 위해 만단의 준비를 갖추고있는 중형땅크를 떼여 배떼다리쇠바줄을 잡아끌라는것이다. 그는 말도 못하고 굳어져버리고말았다. 쩍- 벌어진 입으로 세찬 비물이 쓸어들어갔다. 그러다가 최현이 또 벼락같은 고함을 지르자 화닥닥 놀라며 머리를 꼿꼿이 쳐들었다.

《들었습니다, 사단장동지!… 곧 집행하겠습니다.》

《좋아, 동무네 사단장한텐 내 말해주겠소. 내가 철수명령을 줄 때까지 쇠바줄을 붙들구있어야 돼. 잘하면 훈장을 내신하구 도망치는 날엔 기어이 잡아다가 총살하겠어!…》

땅크병은 다시 멋지게 거수경례를 붙이고 어둠속으로 사라졌다. 얼마후 부릉부릉하는 발동소리와 함께 《떼-32》형땅크가 접근로에로 굴러왔다. 공병중대장이 땅크에 뛰여올라 신호를 했다. 땅크가 이쪽저쪽 방향을 바꿀 때마다 무한궤도에서 찌꺽찌꺽하는 쇠소리가 사납게 울리군 했다. 드디여 공병들이 쇠바줄을 고리에 걸었다. 땅크가 배기가스를 세차게 뿜으며 자갈판을 굴러나가자 공병들이 와!- 환성을 질렀다.

이윽고 최현은 요동이 덜해진 배떼다리우로 승용차를 내몰았다. 전조등의 불빛에 드러난 강물은 무시무시했다. 싯누런 흙탕물이 소용돌이치며 거품을 날렸고 다리에 부딪친 통나무가 허궁 솟구쳐오르기도 했다. 비는 여전히 억수로 퍼부어졌고 무시로 번개불이 번쩍이며 어둠을 찢었다. 그러는 가운데 도하가 시작되였다. 류현수의 공병중대전사들이 배떼다리의 요소요소에 표기병처럼 서서 신호를 했다. 최현의 승용차에 이어 곡사포를 견인한 포차들과 땅크들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배떼다리우에 올라섰다. 배떼다리가 흠씰흠씰했다. 그것이 철썩철썩 물속에 잠길 때마다 세차게 솟구쳐오른 물갈기가 쏴- 하고 차체우에 쏟아져내렸다.

그때 최현은 뒤따르던 포차가 다리중간에서 멎어선것을 보았다. 불그레하게 들뛰며 쫓아오던 전조등불빛이 멎어서있다. 무슨 일이 생긴 모양이였다.

최현은 차에서 내려 곧추 뻗어있는 전조등불빛을 향해 걸어갔다. 멎어선 포차에서는 운전사가 벌써 기관실덮개를 열어젖히고 우물거리고있었다. 포병들이 차에서 내려 기웃거렸다. 공병들과 날파람있는 중대장도 다가왔다.

《무슨 일인가, 어데가 고장이야?》

최현이 물었다.

《제-길, 기화기가 또 말썽이요.》

운전사는 돌아보지도 않았다.

《인차 되겠어?》

《그걸 어떻게 알아!… 뜯어봐야지.》

최현은 격노했다. 당장이라도 결전진입이 있겠는데 태평스레 뜯어봐야 안다는것이다. 그는 버럭 소리질렀다.

《이녀석, 당장 내려와!》

운전사가 고개를 돌렸다. 비로소 자기 차의 전조등불빛으로 최현을 알아보고 당장 자라목처럼 쑥 움츠러들었다. 최현이 손짓하자 그는 후닥닥 뛰여내렸다. 최현의 어깨우 장령견장에서 물보라가 일고있었다.

최현은 가까이에 서있는 공병중대장을 손짓했다.

《이봐 형수! 포는 떼내고 고장난 차는 물속에 처박소!》

《들었습니다, 사단장동지!》

최현은 자기 차있는데로 걸어갔다. 뒤에서 영싸!-하는 고함소리들이 들려왔다. 최현은 승용차에 오르려다 말고 운전사에게 소리쳤다.

《후진해가서 포를 끌어오라!》

《알았습니다!》

승용차가 배기가스를 힘껏 내뿜었다. 눈치빠른 련락병이 차의 뒤꽁무니쪽으로 달려가 운전사가 빗나가지 않도록 신호를 해주었다. 승용차는 조심스럽게 후진해갔다.

최현은 두손을 허리에 짚고 배떼다리우에 버티고 서있었다. 산너머쪽에서 화광이 펑끗거렸다. 허나 격렬한 총포성은 들리지 않았다. 얼굴의 비물을 훔치며 귀를 강구었으나 세찬 비바람과 사품치는 물소리때문에 전혀 가려들을수 없었다.

배떼다리가 흠씰거리며 찢어지는듯 한 소리를 질렀다. 이윽고 불그레한 전조등불빛이 비발속을 뚫고 흔들거리며 다가오기 시작했다. 땅크와 포차들이 다시 강을 건너는것이다.

최현은 가볍게 한숨을 내그었다. 뜻하지 않던 위험은 가시였으나 마음속불안은 여전히 송곳처럼 가슴을 찌르고있다. 애써 그것을 잊으려 하나 뜻대로 되지 않는다.

그는 푸푸거리며 입에 쓸어든 비물을 내뿜었다. 포를 견인한 그의 승용차가 가까이 굴러왔다. 인상적인 공병중대장이 수기신호를 하며 차를 끌어오고있다. 마치 그의 의지에 따라 포차들과 땅크들이 이끌려오는듯 했다. 최현은 뒤따르는 포차의 전조등불빛으로 처음 그의 얼굴을 자세히 뜯어볼수 있었다. 턱이 뽀족하고 코마루가 날카로운것이 먼저 눈에 띄였다. 비물에 젖은 볼편은 자귀로 찍어낸듯 우묵져들어갔는데 그때문에 더욱 감때사나와보였다.

(녀석이 괜찮아!…)

최현은 이렇게 북받쳐오르는 애정을 품고 생각하였다. 그리하여 도하장을 떠날 때엔 우정 그를 불러 말을 걸기까지 했다.

《이봐 중대장, 지금 몇살인가?》

《23살입니다, 사단장동지!》

《봐둔 체넨 있나?》

《예?… 저… 전 아직…》

《원, 못난이로군!》

그 순간 최현은 자기의 담당간호장 림정옥을 생각했다. 어인 일로 느닷없이 그 얌전때기가 떠올랐는지 알수 없었다. 최현은 소리없이 웃으며 공병중대장의 어깨를 툭 쳤다.

《또 만나자- 형수!》

《고맙습니다, 사단장동지!》

최현은 차에 올랐다. 부릉부릉 발동소리를 울리고있던 승용차는 곧장 비줄기속을 뚫고 달리기 시작했다. 최현은 교두보에 전방지휘소를 정하고 거기에 눌러있을 생각이였다. (빨리 종심에로 공격성과를 확대해야겠는데!…) 이 하나의 생각만을 집요하게 거듭하면서 어둠속을 쏘아보고있었다.…

그러나 날이 밝을 때까지도 기다리는 차후임무는 내리지 않았다. 전례가 없는 일이였다. 필사적인 노력끝에 강을 도하하여 교두보를 점령하고 확대했는데 종심돌파임무가 아직 내리지 않는것이다.

최현은 전화기의 발전자돌리개를 움켜잡았다. 그러나 그대로 굳어지고말았다. 정작 김책이 나온다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생각나지 않았다. 무턱대고 《전선사령관동지, 왜 명령을 주지 않습니까?》하고 소리쳐 물을수도 없는 일이다. 그는 입을 꽉 다물고 가쁘게 숨을 몰아쉬고있었다. 젖은 군복에서, 잔등과 어깨우에서 뜬김이 문문 솟고있었다.

참모장과 부관도 말 한마디 없이 전화수곁에 서있었다. 병사용 개인천막을 대충 쳐놓은 출입구에서는 담당간호장이 오도카니 서서 입술만 깨물고있었다. 처녀는 사단장이 흠뻑 젖은 군복그대로 이따금 후들후들 다리를 떨고있는것을 지켜보며 울상이 되여있었다.

별안간 최현은 몸을 흠칠 떨었다. 전화종소리가 《따르릉!-》하고 맵짜게 울린것이다. 송수화기를 틀어잡자바람으로 《최현입니다!》하고 소리쳤다. 다음순간 숱진 장미가 꿈틀거렸다.

전화를 걸어온것은 배속포병구분대의 지휘관이였다. 집중사격준비를 다 끝냈다는 뻔한 소리였다. 그 역시 명령을 기다리다 못해 한가지 구실을 만들어본것이였다. 최현은 투미한 어조로 좀 기다릴줄도 알라고 소리쳤다.

송수화기를 놓고 감시구쪽으로 다가갔다. 문턱에 쏟아져내린 비물이 마구 얼굴에 튀였으나 개의치 않고 앞만 쏘아보았다. 날이 밝고있었다. 비는 좀 뜸해졌으나 바람은 여전히 극성스럽게 불어쳤다. 비탈면에서는 적들의 인천상륙을 알리는 삐라장들이 어수선하게 굴러다니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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