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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조선의 힘 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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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0건 조회 6,103회 작성일 19-12-16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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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날이 어둡기 바쁘게 공격이 시작되였다. 좌익에서는 척후로 나가던 보병대대가 산밑에서 포위를 기도하고있던 적의 한고리를 타격했다. 우익에서는 고개마루에 주저앉아있던 190명전사들이 벼랑을 타고내려 적들의 105mm곡사포진지를 덮쳤다. 보총사격의 불꽃들이 령밑에서 바늘끝처럼 번쩍이였다. 중기와 경기들에서 내쏘는 예광탄의 불꼬리들이 골안의 어둠을 쩍쩍 갈랐다. 수류탄이 튀고 불길이 솟구쳐오르군 했다.

최현은 대오에서 리탈되여있던 190명전사들의 공격선 뒤에서 전투를 지켜보고있었다. 벼랑끝이였다. 발밑의 어둠은 스산하리만큼 깊고도 음침했다. 그 아찔한 골바닥에서 콩볶듯 하는 총소리가 그의 귀전을 후려치고있었다. 이따금 눈먼 탄알이 그의 머리우로 날아오르며 휘파람을 불군 했으나 그는 천근만근 무거워진 몸을 앙버티고있었다. 머리속에서 끊임없이 쇠소리가 울리고 견딜수 없이 쑤셔댔어도 한사코 참아냈었다. 간혹 입술을 찌긋하고 웃을 때도 있었다. 키가 장대같은 부관이 놀라서 서둘러 말을 걸었다.

《좌익에서 포위망을 뚫었다는 신호입니다.》

《그래?》

《곡사포진지도 까부셨습니다.》

《그건 나두 보구있어.》

《인젠… 내려가야겠습니다.》

《그래, 음…》

최현은 여전히 벼랑 한끝에 서서 움직이지 않고있었다. 발밑의 깊고깊은 어둠속에서 불빛들이 스러져가고 굽인돌이 한끝에서 불타던 자동차도 검은 연기속에 잠겨버렸다.

《이봐, 부관!》 최현의 목구멍에서 가르릉거리는 소리가 끓고있었다. 《동무생각엔 어떤가?… 이왕 우리 사단이 방차대 임무를 받은 이상… 지금처럼 계속 놈들을 족치면서 가는게 더 좋지 않아?!》

《사단장동지! 아까는 대렬앞에서 한시바삐 장군님의 새 명령을 받으러 가야 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래, 그렇게 말했지… 그랬어.》

참모장일행이 왔다. 도로가 열렸다는 보고였다. 그들은 벼랑을 에돌아 산허리를 굽이굽이 에돌아내린 도로에 나섰다.

최현은 힘겹게 걸었다. 병마는 집요하게도 그의 목을 졸라매고있었다. 늘큰해지는 몸을 다잡고 휘청거리는 다리를 무겁게 들면서 최현은 방금 들부셔놓은 적의 105mm곡사포진지를 돌아서갔다. 온통 파헤쳐지고 뒤집혀져있었다. 짜개진 포탄상자들, 사방에 널려진 누런 포탄들, 방순이 우그러들고 복좌기에 구멍이 난 포 한문은 한쪽 바퀴를 찌글써 들고 파다만 흉장안에 구겨박혀있었다.

만신창이 된 적들의 시체도 사처에 널려었었다. 각이한 소속의 전사들, 령마루에 주저앉아있던 그 190명전사들이 해제낀것이다. 방금전까지 적들이 도로를 차단하고 무력을 증강하는것을 보고 어쩔바를 모르던 전사들, 최현이 《비겁분자》라고 마구 다몰아대던 사람들이였다. 그러나 일단 대오를 짜주고 구령을 내리자 꽉 부르쥔 하나의 강철주먹이 되여 적들을 타격하였다.

최현은 전장을 수색하며 바삐 돌아치는 전사들에게 소리쳐물었다.

《누가 지휘관인가?》

어깨에 로획한 미식소총을 두자루씩이나 멘 하사관이 앞으로 나섰다.

《동무요?》

《아닙니다. 사단장동지! 저기… 누워있습니다.》

습관된 화약가스냄새와 더불어 기름타는 냄새, 또 무엇인지 알수 없는 누더기를 태우는것 같은 역한 냄새가 풍겼다. 하사관을 따라가니 생생한 포차가 서있는 비탈면에 여러 전사들이 뭉쳐있었다. 사단장이 다가서자 모두 한옆으로 비켜섰다. 그들 가운데 한 군관이 방수포를 깔고 누워있었다. 누워있는 군관은 풀무처럼 씩씩 숨을 들이긋고있었다. 최현은 화광에 비추인 생기없이 퍼렇게 된 그의 눈이며 비좁은 이마우에 한벌 덮여있는 누런 땀방울들을 살펴보았다.

《중대장?!…》

《예, 사단장동지!… 내무국 제3경비려단에서 8중대장으로 있던… 김정렬…》 그는 웃어보이려 했다. 《글쎄 파편이… 전투가 다 끝날 때 하필… 분하게두…》

그가 아까 알은체를 할 때 어색하게 실쭉거리던 미소가 떠올랐다. 그때 최현은 내가 아는 사람가운데 비겁분자는 없노라고 무뚝뚝하게 잘라버리고 그곁을 떠났었다. 그것이 가슴에 무딘 송곳처럼 박혔다.

《응급처친 했소?》

그를 대신하여 위생병이라고 짐작되는 군인이 구구히 설명했으나 그는 귀담아듣지 않았다. 보지 않고도 상처가 매우 위독하리라는것이 느껴졌다. 부상자는 사단장앞에서 안깐힘을 쓰며 태연해지려 했으나 자꾸 이발을 앙다물지 않으면 안되였다. 툭 불거진 광대뼈에는 아픔의 눈물이 고드름처럼 맺혀있었다.

《용기를 내라구. 동문 용감한 지휘관이 아닌가! 이제 군의소에 가서 수술을 하면 돼, 당장… 자동차루 실어보내지, 응?!… 용감하게 싸운것처럼… 참아내라구.》

최현은 로획한 자동차로 부상자들을 실어가게 했다. 영동간도로를 따라 먼저 떠나간 후방부서들이 대기할 지점까지 이르도록 지시했다. 다른 자동차에는 한개소대 호송인원들을 태웠다. 그림자처럼 묻어다니는 나어린 간호원도 그편에 보낼 생각이였다. 참모장이 아직 로획한 자동차가 13대나 더 있다고 넌지시 귀띔했으나 최현은 그저 간단히 《모두 불태워버리오.》하고 말했다. 창황중에도 그는 줄곧 무엇인가 생각하고있었다. 어느것이 옳은 처사겠는가? 산발을 타고 거침없이 북상하겠는가, 아니면… 사단이 온통 찢기여 피투성이 될지언정 놈들의 발걸음을 얽매놓으며 방차대의 임무를 끝까지 안고 가는것이 더 옳을것인가?!…

구분대들이 어둠속으로 사라져가고있었다. 전투에 끼우지 않고 대기해있던 구분대들이 먼저 떠났다. 최현의 눈에는 서둘러 눈앞을 지나가는 그들의 얼굴이 희뜩희뜩한 얼룩들처럼 보였다. 또다시 구역질과 함께 뼈를 쑤시는 경련이 목줄띠를 치달아올랐다. 그는 부득부득 이를 갈며 련락병더러 말을 끌어오라고 했다. 련락병도 부관도 어리둥절한듯싶었다. 최현은 숨이 차 헐떡거리며 다시 일렀다.

《팔이미리에 가서 끌어오라구. 제일 날쌘거루!…》

그리고는 나어린 간호원을 불렀다. 처음으로 간호원을 눈여겨보았다. 얼굴이 동그스름하고 목이 가는, 최현의 눈으로 보건대 무척 어린 처녀였다. 하지만 이처럼 애어린 처녀들이 전선에서 얼마나 많은 힘겨운 일을 맡아하고있으며 얼마나 용감하게 희생적으로 싸우고있는지 최현은 잘 알고있다. 그런데 최현은 다른 누구보다도 처녀들이 희생되는것을 참아낼수 없었다. 지금도 그는 희생된 간호장 림정옥이 생각나 온몸이 저릿저릿해났다.

그는 물었다.

《지금 몇살이지?》

《18살입니다, 사단장동지!》

《?…》

나어린 전선처녀들은 작건크건 나이야 어려보이건말건 하나같이 모두 18살이다. 그들은 언제 어느때건 마치 노래의 후렴처럼 저는 열여덟입니다! 하고 되풀이한다. 그것은 입대를 청원하려 군사동원부의 문턱을 넘어서던 그때 약속이나 한것처럼 마음속으로 먼저 한두살을 더 먹었기때문이다.

최현은 더 이상 캐묻지 않았다. 중요한것은 그게 아니다. 그는 좀 망설이다가 별안간 결심한것처럼 엄숙하게 말했다.

《간호원! 이제 집결처에 도착하면 즉시 군의소로 돌아가야 해.》

《예?》

처녀의 두눈에서 놀란 빛이 번뜩이였다.

《거게선 동무 할 일이 많아. 내게 붙어선 아무 할 일도 없구. 알겠지?》

그는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앞으로 걸어나갔다. 뒤에서 목눌린 신음소리같이 나어린 처녀가 무어라고 부르짖었건만 돌아보지 않았다.

바로 그때였다. 최현은 《사단장동지!》하는 부르짖음에 고개를 획 돌렸다. 처음엔 누가 그렇게 기쁨에 넘쳐 부르짖었는지 알아보지 못했다. 갑자기 불어온 바람결에 전장의 불길이 확 솟구쳐서야 알아보았다. 정찰중대장과 무선수, 최현은 수북한 장미를 흠칫거렸다. 무선수의 잔등에 지워진 무선기, 춤추듯 흔들거리는 안테나, 불빛에 드러난 어린 병사의 벌깃해진 얼굴, 또 허우대가 큰 정찰중대장의 시꺼먼 얼굴엔 웃음이 버무러져있다. 껌벅거리는 불빛이 그것을 히뜩히뜩 비쳐주고있다.

최현은 그가 거수경례를 붙이는것을 보자 급히 마주가 어깨를 쿡 쥐여박으며 낮은 소리로 다정히 물었다.

《그러니 뺏아왔군 그래, 응?!》

《예, 뺏아왔습니다. 사단장동지!》

정찰중대장 역시 낮은 소리로 웃으며 대답했다. 최현은 만족하여 두손을 썩썩 맞비비다가는 또 어깨를 툭 쳐주었다.

《좋아, 중대장!… 그럼 당장 시작해봐야지, 응?!…》

《예!》

최현은 무선수를 향해 호기있게 명령했다.

《무선수, 곧 최고사령부를 찾으라!》

《알았습니다, 사단장동지!》

무선수는 급히 잔등의 무선기를 벗어내려놓고 이미 손에 쥐고있던 안테나줄을 가까운 나무가지우로 뿌려올렸다. 그는 줄이 제대로 걸렸는가를 확인해보고나서 무릎을 꿇고앉아 레시바를 귀에 끼웠다.

최현은 무선수의 기계적인 손동작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지켜보았다.

무선수가 전원을 넣고 조절기를 돌리고있다. 공작파장을 맞추는것이다. 가늘고 가무스레한 손가락이 움직일 때마다 삐익-삐- 하는 새되고 예리한 전파음들이 가슴둘레를 어이는듯 했다.

(드디여 됐구나!…)

최현은 출력표시등의 불빛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있었다. 가슴이 졸아드는듯 했다.

《장군님! 최현이 보고드립니다. 군집단의 리탈을 보장하고 현재 북상중입니다. 사단은 건재합니다.》

마음속으로 구절구절을 곱씹으며 숨을 죽였다. 숨막히는 휘파람소리같은 한 짧은 전파음을 붙들었다가 놓쳐버렸다. 이것일가, 아니면 저것일가?… 무선수가 조절기를 돌려댈 때마다 굵다란 신호, 가느다란 신호, 바늘같이 찌르는 음파, 둔탁한 파렬음들이 엇갈리군 했다. 적아간의 격전이상으로 전파의 세계에서도 주파수마다 미친듯 부르짖고 찌르고 내달리며 법석 끓고있는것 같다. 출렬표시등의 불빛이 껌벅껌벅 숨쉬듯 한다. 여전히 그 불빛을 지켜보고있던 최현은 갑자기 마음이 불안해졌다. 한손으로 레시바를 감싸쥔 무선수가 차츰 허둥지둥하기때문이였다.

별안간 무선수가 건전을 두드리던 손을 멈추었다. 레시바를 뽑고 일어나더니 검붉어진 얼굴을 숙이고 속삭이듯 말했다.

《안됩니다. 사단장동지!》

《뭣이?》 최현은 별안간 목이 칵 메여버린듯 했다. 거칠게 숨을 내뿜고 가까스로 부르짖었다. 《그건 무슨 소리야 ?!…》

《사단장동지, 무선기출력이 낮아서… 안됩니다.》

《아니, 다시 해봐, 한번 더!》

무선수는 다시 꿇어앉았다. 레시바를 귀에 끼우고 꼭같은 방법으로 아득한 공간을 더듬기 시작했다. 사위여가는 불빛에 침통해진 무선수의 얼굴이 언듯거렸다.

최현은 여전히 출렬표시등의 껌벅이는 불빛에 매달렸다. 손톱눈만 한 그 작은 불빛에 온갖 소원을 다 담고있었다.

무선수는 인내성있게 최고사령부를 찾기 시작했다. 또다시 귀에 익은 갖가지 전파음들이 울부짖고 흐느끼고 떨리며 들끓어대였다.

그렇게 또 한동안 시간이 흘렀다. 차츰 무선수의 손동작이 굼떠지고 고개가 수그러졌다. 그것을 보자 최현은 지금까지 잊고있던 고열에 달뜨는 자신이 느껴졌다. 세찬 경련의 발작이 등허리를 꿰지르며 뻣뻣해진 목둘레로 뻗쳐올랐다.

그는 헉헉 찬바람을 들이키며 고개를 돌려버렸다. 시꺼멓게 죽어있는 정찰중대장의 얼굴을 띄여보았다. 그리도 기쁨과 자랑에 넘치던 그 얼굴이 수그러지고있다. 최현은 그앞을 지나갔다.

얼마후 그는 련락병이 끌어온 포마에 올랐다. 검푸른 밤하늘이 비좁게 열려있었다. 첩첩이 솟은 산봉우리들이 천리장성처럼 웅크러뜨리고 늘어섰다. 써늘한 바람결이 숲속에서 풍기는 씁쓸하고 아련한 풀이끼냄새를 실어왔다. 고삐를 감아쥔 최현은 장화발로 말의 배허벅을 찼다.

《출발!-》

말편자밑에서 자갈돌들이 딱딱 마치는 소리가 났다. 랭랭한 적막에 싸인 시꺼먼 골짜기가 앞에서 기다리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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