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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조선의 힘 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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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0건 조회 1,761회 작성일 20-01-06 2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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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맵짠 추위가 대기를 옥죄고있었다. 칠성산너머로 흘러가던 구름쪼각들이 얼어붙은듯 움직이지 못했다. 처마끝에 길게 드리운 고드름은 서리찬 창끝처럼 날카로왔고 언땅을 굴으는 달구지바퀴소리는 아츠럽게 들려왔다.

오후였다. 길가에서 송아지가 음메- 하고 울었다. 어느 농가에서 솔가리를 태우는 냄새가 풍겨왔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문옆의 벽쪽에 걸어놓은 지도를 바라보고계시였다. 강하천을 위주로 그린 단조로운 조선지도였다. 그옆에 리성조가 서있었다. 지금 그는 전후의 수력발전총전망에 대하여 보고드리고있었다.

얼마전 최현이 와서 손을 대고 짚어보던 림성골의 이 집- 김일성동지께서 집무실로 쓰시는 맨 웃방은 온기가 적었다. 그러므로 그이께서는 여늬때처럼 어깨우에 외투를 걸치고계시였다. 맞은쪽 벽가에는 김책이 앉아있었는데 그는 제자의 론문발표를 지켜보는 스승과도 같이 긴장되고 초조해하는 표정이였다.

리성조는 몹시 흥분하고있었다. 어찌보면 추위를 타는것 같기도 했다. 자기가 손수 그린 지도에서 북부의 여러 강하천들과 예견하는 발전소위치를 짚을 때마다 손끝을 바르르 떨군 했다. 어깨를 옹송그리고 벅차게 숨을 내긋는가 하면 말이 막혀 한참씩 갑자르기도 했다. 그때마다 김책은 난감해하고 낮게 기침소리를 내거나 손가락으로 책상모서리를 가볍게 두드리면서 주의를 주었다. 이렇게 그들은 애써 준비한 전후수력발전계획이 장군님께 만족을 드릴수 있겠는가 하는데 전념하고있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거의 움직이지 않고계시였다. 리성조가 가리키는 지도의 강하천들을 주의깊게 보시였다. 그 강줄기들을 리성조는 이미 오래전에 다 돌아보았다. 정든 고향길처럼, 추억의 오솔길처럼 하나하나 더듬었고 밟아보았다. 그리하여 지금 그는 아무런 주저도 없이 래일의 발전소위치를 짚으며 그 전망을 확신하고있는것이다.

이런 사람들- 재능이 있고 아름다운 꿈이 있고 깨끗한 량심이 있는 이런 사람들을 아껴야 한다. 이들이 가지고있는 재능을 귀하게 여기고 이들의 량심을 믿으며 꿈을 꽃펴주어야 한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리성조의 설명을 귀담아들으며 줄곧 생각하시였다. 일신상에서는 따뜻한 정을 잃고 사는 리성조이다. 그를 아끼고 사랑하시는만큼 그의 가정생활을 념려하시지 않을수 없었다.

요즘 리성조는 일에 몰두하는것으로써 마음속 괴로움을 잊으려 애쓴다고 한다.

그는 사랑을 잃었고 가정은 깨여졌다. 남은것은 적후에서 싸우고있는 딸 리숙이뿐이다. 그 리숙이 최현과 같이 오면… 그래, 꼭 그렇게 함께 오도록 하여 부녀간의 상봉을 마련해주자. 나아가서 헐겁게 물려진 그의 가정을 새로 튼튼히, 굳건히 맺어주고…

고요했다. 리성조는 손을 내리고있었다. 단조롭게 울리던 말소리도 없다. 하지만 그이께서는 이 모든것을 느끼지 못하고계시였다.

《장군님!》 김책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보고가 끝났습니다.》 어느덧 리성조는 입을 다물고 그이를 우러르고있었다. 눈을 슴벅거리며 가슴을 조이며 그이께서 무슨 말씀이 계시겠는지 해서 기다리고있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벽에 걸린 지도를 다시금 눈여겨보시였다. 래일의 수력발전소를 표시한 밝은 불빛들이 오불꼬불한 강하천들에 그려져있다. 깨끗하고 또 어찌보면 아름다운 지도였다. 여기엔 그이께서 매일 매 시각 펼쳐보시는 작전지도에서와 같은 적아간의 경계선, 돌출부, 지탱점, 공격방향, 톱날형의 대치선, 붉고 푸른 화살표들이 없다. 꿈과 념원, 밝은 래일과 리상이 있을뿐이다!…

《좋소!》

마침내 그이께서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시였다. 리성조의 얼굴에, 김책의 얼굴에도 밝은 빛이 확 피였다. 그이께서는 리성조의 손을 잡아 의자쪽으로 끄당기시였다.

《수고했소. 성조동무, 난 방금… 승리한 조국의 래일을 보았소. 정말 고맙소!…》

《장군님!》 리성조가 부르짖었다. 《저희들은 그저… 장군님께서 가르쳐주신대로 계획을 세워보았을뿐입니다.》

그의 눈가엔 어느새 뜨거운 눈물이 핑- 어리고있었다. 장군님께서도 웬일인지 가슴이 쿡 쑤시는것을 느끼시였다. 조국과 인민을 위해 자기의 재능과 정열을 깡그리 바치기로 결심한 이 인테리, 편협한 사람들에게서 수모도 받고 버림까지 받았지만 한사코 당을 따라온 사람이다.

장군님께서는 그를 자리에 앉히고 벽에 걸렸던 전망도를 상우에 펴놓으시였다. 엷은 문창호지가 된추위때문인지 바르르 떨었다. 장군님께서는 그 문가까이 옮겨가시였다. 땡땡 얼어붙은 밖의 적막에 귀를 기울이는듯 잠자코 생각에 잠기다가 몸을 돌리시였다.

《성조동무, 오늘 모처럼 기회가 생긴김에 내 한가지 부탁을 할가 하는데…》

리성조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놀란 눈빛이였다.

《장군님! 무슨 말씀이신지… 어떤 어려운 과업이라도 주신다면 저는…》

《부탁이요. 그저 한가지만…》 그이께서는 부드러운 눈빛으로 리성조를 마주 보시였다. 《부인이 찾아왔댔다는 말을 들었소. 그를… 용서해줄수 없을가?…》

리성조는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별안간 쓰라린 아픔을 상기한 모양이였다. 그는 두손을 꽉 마주잡으며 괴롭고 힘겹게 입을 열었다.

《장군님, 어쩌면 그런 하찮은 일로 장군님께서!…》

《아니요. 이건 중대한 문제요.》 그이께서는 나직하나 저력있는 음성으로 말씀하시였다. 《나는 동무의 부인이 돌아왔다는 말을 들었을 때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르오. 비록 한때는 일시적인 애로와 난관에 못이겨 집을 나갔댔지만… 어쨌든 돌아오지 않았소… 왜 돌아왔겠는지 생각해봤소?… 그는 지금까지 자기자신이나 남편이 공산주의자들에게 우롱당하고있다고 생각해왔을거요. 곡절도 없지 않았으니까… 그래서 참지 못하고 뛰쳐나갔소. 하지만 정작 준엄한 전쟁을 겪고있는 사람들속에 뛰여들어보고는 지금까지 자기가 얼마나 낡고 비좁은 자기 개인의 울타리속에 닫혀 살았는지 깨닫게 됐을거요. 온 나라 인민이 떨쳐나 원쑤들과 판가리싸움을 벌리고있는것을 보고 왜 생각이 없었겠소. 멸시받고 우롱당하고있다고 생각했던 남편이 다시 무거운 임무를 맡고 사업하는걸 보고 왜 생각이 없었겠소. 그래서 그는 돌아왔소. 눈물을 머금고 용서를 바라며 돌아왔소. 그래도 그를 용서하지 못하겠소?…》

리성조는 눈물에 젖고 흥분으로 하여 상기된 얼굴을 이즈러뜨리며 입을 실룩거리고있었다. 아무 말도 못하고 그저 북받쳐오르는 울음을 겨우 참고있었다. 그러한 그를 지켜보면서 그이께서 또 말씀을 이으시였다.

《지금 우린 어려운 전쟁을 겪고있소. 사람마다 말로는 다 표현하지 못할 그런 고통과 아픔을 지니고있소. 이런 때일수록 우린 사람들을 아끼고 돌봐야 하오. 우선 가까운 사람들부터 진정으로 아껴주어야 하오. 우리가 피흘려 싸우는 목적이 인민을 위함인데 인민이란 뭐겠소. 인민이란 우리의 부모처자들로부터 시작되는것이요.

성조동무, 나는 오랜 혁명투쟁과정에 부모와 동생, 많은 귀중한 동지들을 잃었소. 그들을 생각하면… 그들에게 못다한 지성을 생각할 때마다… 나는 마음다지군 했소. 너무도 일찌기 내곁을 떠나간 아버지, 어머니, 동생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하는 마음으로 우리 인민을 더 잘살게 하자. 아무도 우리 인민을 욕되게 하거나 괴롭히지 못하게 하자. 더는 우리 인민이 눈물을 모르게 하자. 더 억세고 더 존엄있게 내세우기 위해 나의 한생을 다 바치자! 이렇게 말이요. 이런 심정이 동무의 부인도 생각하게 했소. 자기의 잘못을 뉘우친 사람은 쫓지 않는 법이요. 성조동무, 나는 리숙이도 이걸 바라고있으리라고 생각하오.》

그 순간 리성조는 더는 참지 못하고 《장군님!》 하고 목메여 부르짖었다.

《장군님!… 고맙습니다!…》

김책도 자리에서 일어나있었다. 볕에 탄 그의 얼굴에도 눈물이 즐펀했다.

장군님께서는 리성조의 곁으로 다가가 그의 떨리는 어깨에 손을 얹으시였다.

《그러리라고 믿었소. 성조동무, 이제 리숙이 싸움을 이기고 돌아오면… 모두 둘러앉아 즐거운 한때를 보내기요. 나도 참가하겠소. 정말이요!…》

《장군님!-》

리성조는 하염없이 눈물을 쏟았다. 거침없이 떨어져내린 눈물이 그가 온갖 정성을 다해 그린 지도를 적시고있었다. 그리하여 오불꼬불한 강하천들에 새긴 붉은 별들이 빛을 뿌리며 푸른 물결처럼 흔들어댔다. 승리한 래일의 발전소 불빛들이 금시 살아나는듯 했다.

 

저녁 8시, 김일성동지께서는 남일에게 전화로 물으시였다.

《최고사령부 작전적예비대인 제118군부대가 언제 기동을 하오?》

《오늘밤 향산방향으로 나갑니다.》

《거기 나가보겠소. 남일동무도 준비하시오.》

최고사령부의 작전적예비대가 기동을 시작함은 새로운 반공격의 준비가 절정에 이르렀다는것을 의미한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멀고도 험한 길이였지만 밤중으로 군부대를 지도하기 위하여 밖으로 나서시였다. 그때 맞은편 고간을 손질해 쓰는 부관실에서 웃음소리가 터져나왔다. 무슨 즐거운 이야기가 오고갔거나 재미난 일이 있은 모양이다. 나날이 사람들의 얼굴에 웃음이 늘어가고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부관실문을 여시였다. 순간 부관장과 부관들, 김비서와 오영혜 등을 보시였다. 그들은 모두 벽에 붙인 자그마한 조선지도를 두고 떠들던중이였다.

《장군님, 새 지도를… 그렸습니다!》

오영혜가 얼굴을 붉히며 벽에 붙인 지도를 가리켰다.

《음-》

장군님께서는 지도를 가까이 들여다보시였다. 흰 종이에 알뜰한 솜씨로 정성들여 그린 지도, 작은 기발들이 청천강류역의 정주, 안주, 개천, 구장, 향산을 거쳐 장진, 부전쪽으로 쭉 그려져있었다.

《그런데 제2전선의 전투지점들은 왜 없나?》

그이께서 물으시자 오영혜는 난감해했다.

《저… 장군님! 그건 너무 복잡해놔서…》

《너무 복잡하다?》

《예, 오늘은 해방했다가 래일은 또 내주고… 한곳에서만도 몇번씩 전투가 벌어져서 어떻게 그려야 할지…》

《음- 그것도 연구해봐야겠군.》하고 그이께서는 웃으시였다. 《차라리 여기 적후투쟁지구는 붉은색으로 칠하는게 어때?…》

《아이 정말!?》

그이께서 또 소리내여 웃으시였다.

《여기 금천, 장풍, 련천, 철원, 이천, 화천!… 이 넓은 지역을 우리 제2전선부대들이 장악통제하고있소. 청천강류역의 승리도 제2전선의 활동과 떼여놓고 생각할수 없지… 영혜도 소식을 들어 알겠지만 얼마전엔 여기 곡산에 있는 놈들의 비행장을 들이쳐서 수십대의 적기를 파괴하고 불바다로 만들었소. 공중우세를 자랑하는 놈들을 땅우에서 요정냈거든!…》

그이께서는 학습장크기의 작은 지도앞에서였지만 감회깊은 어조로 말씀하고계시였다. 적후에서 싸우는 전사들에 대하여 크게 내세우고 자랑하고싶은 심정이시였다.

《그런데… 영혜!》하고 그이께서 웃으며 또 말씀하시였다.

《이런 지도를 내 방에도 하나 그려붙이지 않겠나?!》

《어야나!》 오영혜가 놀란 소리를 질렀다. 《장군님 집무실에야 큰 작전지도들이 가득한데 어떻게 이런거야…》

《그래도 내겐 이 지도가 꼭 마음에 드는걸!…》

《아이, 장군님!…》

지금 그이께서 무엇보다 더 반가우셨던것은 한 기술서기에 불과한 나어린 이 처녀까지 새로운 전환의 시기가 도래하였음을 분명히 깨닫고있는 그것이였다. 그리하여 후퇴가 시작되면서 소리없이 사라졌던 지도대신 반공격의 새 지도를 그려붙인것이다. 처녀의 마음속에 어느덧 승리의 봄이 오고있었다!…

밖에서 승용차 멎는 소리가 났다. 남일이 도착한것이다.

…이날밤 김일성동지께서는 새로 조직된 후비부대들의 공격선진출을 현지에서 지도하시였다.

얼어붙은 길을 가득 메우며 총을 멘 병사들의 대오가 흘러가고있었다. 땅크들이 굴러가고 포차들은 불도 켜지 않고 꼬리를 물고 전선으로 나가고있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야밤의 맵짠 칼바람을 가슴 가득히 들여마시며 눈덮인 둔덕우에 서계시였다.

(얼마나 고대해온 이 시각인가!)하고 가슴후덥게 생각하시였다. (얼마나 많은 피와 땀을 바쳐 앞당겨온 이 시각인가!… 하지만 아직도 최후의 승리를 위하여 많은 피와 땀을 바쳐야 한다…)

총멘 전사들의 대오는 끝이 없는듯 했다. 한결같이 새 군복차림에 새 기관단총을 메였다. 반땅크총을 앞뒤에서 같이 메고 가는 사수와 부사수, 중기관총 총차를 걸머진채 가까스로 고개를 돌려보는 전사도 있었다. 박격포병들이 길마를 진 포마들과 같이 지나갔다. 그들의 등뒤에서는 하얀 눈가루들이 바람에 날리며 차디찬 별빛에 반짝이였다.

 

드디여 그날이 왔다. 11월 25일, 바로 적들이 《크리스마스총공세》를 시작한 다음날 주타격방향인 전선서부에서는 오래동안 애써 준비한 반공격이 시작되였다.

바야흐로 엄혹한 조선의 겨울이 한창이였다. 울부짖는 포성과 더불어 청천강에서는 얼음장이 쩡-쩡 터져갈리는 소리에 맹수들조차 치를 떨었다. 《크리스마스총공세》의 장엄한 포성에 발맞춰 산병선을 폈던 침략자들의 대다수는 이미 눈보라속에 묻혀버렸다. 18만여명에 달하던 미제8군의 주력이 붕괴되고있었다. 살아남은자들은 상부의 명령도 없이 제가끔 살구멍을 찾아 도망치기에 정신이 없었다.

바빠맞은 맥아더는 11월 28일밤, 워커와 알몬드 등을 도꾜에 불러 《도교회의》를 열었다. 회외에서 맥아더는 참패를 인정하고 평양-원산계선으로 퇴각할것을 지시하였다. 한편 본국에 7만 4 000명의 병력보충을 긴급요구하였다. 그러나 합동참모본부는 현재 미국본토에는 82공수사단밖에 없고 유럽에서도 이동시킬수 있는 병력이 겨우 l~2개사단병력밖에 없으므로 그 요구를 들어줄수 없다고 했다. 미제8군은 막다른 궁지에 빠지게 되였다. 맥아더는 미제1군단, 9군단을 빨리 퇴각시켜 평양일대에서 방어를 조직하려고 시도하였다. 이러한 사태하에서 최고사령관 김일성동지께서는 청천강계선에 진출한 아군련합부대들로 하여금 적에게 새 방어선에서 저항할 시간을 주지 말고 재빨리 청천강을 건너 퇴각하는 적들을 추격소멸하게 하시였다. 한편 제2전선의 최현군단지휘부에 련락군관을 파견하시였다. 드디여 제2전선부대들이 결사전을 벌릴 때가 박두해온것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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