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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전선의 아침 제16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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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1건 조회 7,495회 작성일 20-01-27 0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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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jpg

제  2  장

 

초가을의 해빛이 최고사령부 집무실의 작은 창문으로 흘러들어 집무탁의 작전지도우에 강렬한 빛발을 뿌렸다.

점심때가 가까운 무렵이였다.

《그동안 되게 족쳤더군. 놈들의 아우성이 여기까지 들려왔소. 적의 요충지들과 지탱점들에 대한 공격과 습격전투를 최고사령부의 의도에 맞게 잘 진행하였소.》

박정덕의 보고를 받으신 김일성동지께서는 못해 만족해하시였다.

그이의 부르심을 받고 전선참모장과 함께 올라온 류경수가 말씀올렸다.

《장군님! 그동안 전선참모장동무가 최전선에 나가 붙어살다싶이 하면서 적들의 전방진지들을 습격하는 주요전투들을 본때있게 지휘하였습니다.

장군님께서 가르쳐주신대로 적지탱점들에 대한 습격전을 현대전투의 특성에 맞게 강력한 포병화력의 지원과 병종들간의 협동동작밑에 진행하였습니다.》

《동무네가 351고지 공격전투를 멋있게 했소.》

《네, 그렇습니다. 적들은 매번 이 고지를 출발진지로 삼고 우리 방어진지에 대한 공격을 해왔댔습니다. 우리는 포병습격타격후 맹렬한 돌격으로 넘어가 적들이 근 한해동안 강화한 고지를 불과 30분동안에 점령하고 적 2,000여명을 살상포로하였습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머리를 끄덕이시였다.

《대단하오. 이번에 동무들이 조직한 그 전투들은 적들의 기도를 짓부셔버리는데서 중요한 의의를 가지오. 351고지 공격전투와 함께 지난 7월에 있은 한개 중대가 남조선군 5보병사단의 공격을 물리친 153.7고지전투도 자랑할만 한 전투였소.》

153.7고지는 항시 적들의 방어전연을 위협했으며 또 아군의 종심에 대한 적들의 공격을 견제하는데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는 독립고지였다.

고지에는 인민군 1개 중대력량밖에 없었다.

적들은 이 고지를 어떻게하나 탈환해보려고 남조선군 5보병사단관하 1개 련대를 들이밀었다. 수많은 비행기와 포를 동원하여 폭탄과 포탄을 마구 퍼부은뒤 적들은 이 고지를 세면에서 공격하였다. 전투는 격렬하였다.

적들은 남강쪽 릉선을 따라 그 남쪽무명고지의 참호에까지 뛰여들어 갱도입구를 위협하였다. 정황은 위급했으나 인민군 전투원들은 갱도진지에 튼튼히 발붙이고 강력한 화력과 반돌격으로 적들을 물리치고 고지를 끝까지 사수하였다. 14시간동안의 가렬한 전투에서 그들은 적병 900여명을 살상하는 빛나는 전과를 거두었다.

적들의 국부적인 공격은 전선동부와 중부의 여러곳에서 그칠새 없었으나 갱도화된 인민군 방어진지앞에서 맥을 추지 못하였다.

역시 전선사령부를 강화하고 실력있는 지휘관들이 틀고앉아 작전전투조직을 진행하니 성과는 눈에 띄게 나타났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다가오는 적들의 공세를 앞두고 전선지휘관들을 최고사령부에 부른 이 시각 이 점이 마음에 드시였다.

앞을 멀리 내다보시며 그동안 무르익히신 작전적의도를 관철할 구상은 이미 다 섰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박정덕의 얼굴빛을 다시 여겨보시였다. 지난 달에 보셨을 때보다 더 축가고 어딘가모르게 병색이 떠도는것 같다.

《얼굴빛이 좋지 않소. 위탈이 말썽인게로군.》

《삭주물을 먹은 다음부터는 많이 좋아졌습니다.》

박정덕은 허리를 곧추 펴며 어줍은 미소를 지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머리를 흔드시였다.

《제2전선때부터 생긴 해묵은 병이니 쉽게 나올수 있겠소. 내 전번에 비방을 말해줬지? 검정암닭에 단너삼을 넣구 곰을 해먹어보라구…》

《저…》

박정덕의 얼굴이 붉어지자 김일성동지께서는 소리내여 웃고마시였다.

《하긴 언제 닭곰생각을 했겠나. 좋소. 그럼 동무들이 준비하는 854.1고지에 대한 전투방안을 들어봅시다.》

류경수가 전투가방에서 작전지도를 꺼내 집무탁우에 펼쳐놓았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집무탁에 팔을 짚고 오래도록 작전지도를 들여다보시였다.

《군단장동무, 854.1고지 우측에 있는게 811.7고지지?》

김일성동지의 물으심에 류경수의 갱핏한 얼굴에 진중한 빛이 떠올랐다.

《그렇습니다. 장군님, 이 811.7고지는 적들이 854.1고지를 방어하기 위한 전초기지로서 2중3중의 차단물이 설치되여있습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두 고지와 함께 그 주변의 우리쪽 700릉선 그리고 1211고지와 351고지 등을 찬찬히 훑어보시였다.

《음, 그러고보면 854.1고지가 정말 묘한데 솟아있소. 놈들이 어느쪽에서 공세를 시작하든 동북쪽의 351고지와 서남쪽의 1211고지와 접해있으므로 아군의 화력을 제압할수 있고… 문제는 고성으로 뻗은 전략도로를 끼고있다는 점입니다.

클라크가 타산한게 동북산악지대를 봉쇄한 상태에서 릿지웨이처럼 회양분지를 겨냥할수 있는만큼 854.1고지가 전술적으로 아주 유리한 위치에 있소.》

《지금 미제침략군은 한해전부터 이 고지에 견고한 방어진지를 구축하고 〈철의 요새〉라고 떠들고있습니다. 두개 련대무력이 차지하고있던 고지에 얼마전에는 갑자기 한개 사단이 더 틀고앉았습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두 장령을 향해 돌아서시였다.

《허허, 중이 머리깎는 날 모기가 성한다고… 그것도 역시 공세의 전주곡이라고 볼수 있지 않겠소.

전선참모장동무, 내 전번에도 언급했지만 놈들의 공세가 시작되기전에 854.1고지를 타고앉아야겠소. 지금 적들이 전선중부에 무력을 집중하고있는데 우린 그 기회를 타서 전선동부쪽에서 먼저 선제공격을 해야 합니다. 무력집중이 놈들의 허위작전이라고 해도 일없소. 이건 적들의 음모를 파탄시키는데서 대단히 중요한 문제요. 적들을 분산시키는것과 함께 총적전략을 꺾어버리는것으로 되거든. 말하자면 적의 기도가 어떻든간에 적들을 동부산악지대로 끌어들이려는 우리의 의도를 관철해야 하오. 내 말을 알겠소?》

《알겠습니다. 이건 정말 천리혜안입니다. 단순한 고지공격전투만이 아닌… 명령만 내리십시오. 단숨에 고지를 점령하겠습니다.》

《그렇게 해야 되오. 내 생각엔 전선중부에 대한 적의 력량집중이 기만도 허위작전도 아니요. 클라크로서는 전선중부, 소위 그들이 말하는 〈철의 삼각지점〉을 돌파구로 볼거요. 류경수동무, 동무네 작전방안을 말해보시오.》

《네, 그동안 전선참모장동무와 구체적인 토론이 있었습니다. 사실 전 지난봄부터 저 고지를 눈에 든 가시처럼 여기고 몇번 전투정찰겸 습격전투도 조직했는데 방어시설이 여간 견고하지 않습니다. 전선참모장동무가 훌륭한 전술방안을 저에게 틔워주었습니다. 우리가 854.1고지를 점령하려면 쌍방간 오랜시일 서로 코를 맞대고있은만큼 호상 지형적으로나 군사적으로 파악이 있어 일반적인 공격으로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먼저 811.7고지와 854.1고지린접을 강력한 련포군으로 때리고 공격을 들이대자는겁니다. 그러면 적들의 력량이 이 지역에 쏠리게 될것입니다. 이때 854.1고지를 담당한 기본구분대들을 진입시켜 량익측으로부터 공격을 개시하자는 방안입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팔을 엇결으시며 환히 웃으시였다.

《동무들이 그동안 고지를 타고앉으려고 무던히 머리들을 짰구만. 그럴듯 하오.》

김일성동지께서는 잠시 생각에 잠기셨다가 말씀하셨다.

《류의할점은 공격에서의 불의성과 은밀성이요. 854.1고지에 진출하는 구분대들이 공격출발계선까지 은밀히 접근하는데 신중한 주의를 돌려야겠소.

포병습격타격은 공격직전이 아니라 854.1고지로부터 그 좌우린접고지까지 두세번 해보는 흉내를 내다가 하루쯤 지나 다시 반복을 하고… 그 다음 불의적인 공격을 해보시오.》

《알겠습니다. 적들로 하여금 바싹 긴장시켰다가 그 긴장이 해이된 다음 치자는 말씀이지요.》

《그렇소. 그전에는… 그 기만적인 포병습격타격시 854.1고지에 대해서는 슬쩍 건드리기만 하오. 답새기는것은 그 린접고지를 타고앉았을 때 하시오.》

《알았습니다. 장군님, 이젠 문제없습니다.》

류경수가 쇠소리나는 어조로 힘차게 대답올렸다.

《음, 좋아. 류경수와 박정덕이 하는것이니 문제없겠지. 이젠 식사나 하기오. 내 동무넬 주려고 곰취를 좀 남겨뒀는데 절인것이지만 그 맛이야 어디 가겠나.》

김일성동지께서는 두 장령의 어깨를 부여잡고 식당쪽으로 걸음을 옮기시였다.

 

×

 

전선은 이 순간 어쩐지 고요하게 느껴졌다. 그것은 폭풍전야의 숨가쁜 정적이였다.

미제침략군의 포병대대들이 증강배치된 송어월리 후면과 절미동, 송로평쪽에서는 둔중한 포성들이 울리고 이 854.1고지를 엄호하기 위해 배비된 811.7고지 릉선 뒤쪽에서 으르렁대는 중땅크들의 소음이 간간히 들려오기도 한다.

박원진전사는 기관단총을 으스러지게 틀어쥐고 배밀이로 전진하다가 주춤 멈추었다. 앞에서 신기철분대장이 손을 쳐든것이다. 아직 공병들이 20메터폭으로 매설한 지뢰와 7선, 8선으로 겹겹이 늘인 철조망을 채 해체하지 못한것 같다. 이 구간을 극복해야 적 참호 밑 돌격선까지 은밀히 가닿을수있다.

공격출발진지를 떠난지도 벌써 많은 시간이 지나갔다. 박원진은 코등에서 진땀이 빠질빠질 솟았다.

이번 전투에서 민청원의 본때를 보여 성미가 뻣뻣한 리만희대대장의 눈이 활딱 뒤집히게 하려고 단단히 잡도리한 그다. 한달전에야 그는 겨우 대대장을 설복하여 자기 분대로 내려온것이다.

조순근부분대장과 박원진사이에 끼여 연한 비누내가 풍기는 머리를 자라목처럼 움츠리고 가재걸음을 하던 윤애사가 호ㅡ 하고 가쁜 숨을 내쉰다.

종군작가들인 석강하와 박한주는 전투의 전모를 취재한다면서 811.7고지를 때리게 된 포부대쪽에 떨어졌다. 사실 윤애사는 대대장의 엄한 지시로 담가소대에 배속되였는데 어제밤 공격출발진지를 떠날 때 신기철분대로 날쌔게 빠져들어온것이였다.

《원진동무, 아직 공격시간까진 멀었을가요?》

귀속말이지만 초랑초랑한 녀자의 목소리라 별로 크게 들린다.

《참지… 못하겠어요?》

《무슨 말을 그렇게…》

윤애사가 배시시 웃으며 점직해하자 박원진은 시뚝해하는 표정이다.

《애사동지, 이제라도 담가소대에 가는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호호호, 동무만 용사인가부지요?》

윤애사의 말에 이번에는 박원진이 점직해 얼굴을 붉혔다.

《솔직히 말하면 애사동지, 난 이렇게… 이름있는 시인동지옆에 있는것이 좋습니다.》

《허허, 저 원진이 시인선생한테 홀딱 반해구나.》

조순근이 익살스럽게 말하다가 박원진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앞에서 신기철분대장이 무서운 눈찌로 뒤를 돌아보는것이였다.

두 동갑이들은 기겁을 하여 목을 움츠렸다.

열적어난 박원진은 눈을 껌벅이며 어둠에 묻힐 854.1고지 정점을 바라보았다. 9월의 밤하늘이지만 별빛 한점 찾아보기 어렵다.

그러고보면 지휘관들이 공격날자를 귀신같이 골라잡은 셈이다.

문득 공격출발진지를 떠나기 앞서 참호에서 가졌던 중대공개당세포회의가 눈앞에 우렷이 떠올랐다.

부대당위원이며 중대당세포위원장인 신기철분대장이 검고 굵은 눈섭을 꿈틀거리며 엄숙하게 말했다.

《동무들, 이번 공격전투는 경애하는 최고사령관 김일성장군님의 작전적방침에 따라 진행되는 매우 중요한 전투입니다.

이 854.1고지는 전선동부의 무산령앞을 가로막은 고지로서 고성으로 뻗은 도로를 끼고있어 언제부터 우리 전사들이 윽윽 벼르던 적의 전술적지탱점입니다. 이 고지를 점령하면 장군님께서 의도하시는대로 미제침략군의 모험적인 기도를 좌절시키는데서 결정적역할을 하게 됩니다.

장군님께서는 우리 로동당원들이 싸움터에 서있기때문에 마음을 놓으시고 작전하십니다. 나라를 찾아주시고 땅을 주시고 인간의 권리를 주신 장군님의 사랑과 믿음을 어찌 순간인들 잊을수 있겠습니까. 장군님의 전사들인 우리 당원들이 이번 공격전투에서 맨앞장에 섭시다.》

신기철분대장이 주먹을 높이 들어 흔들자 박원진이도 벌떡 일어나 옆에 앉은 청년군인들을 돌아보며 불같이 웨쳤다.

《동무들! 당의 후비대인 우리 민청원들은 로동당원들의 뒤를 따라 경애하는 장군님을 위하여 생명의 마지막순간까지 용감히 싸웁시다!》

박원진에 이어 여러명이 일어나 불같은 토론을 하였다.

맹세문이 채택되고 소대별로 자리를 뜨려 할 때 류경수군단장이 나타났다. 그의 뒤로는 사단지휘관들과 함께 리만희대대장이 따라섰다.

중대장의 차렷구령에 류경수는 손을 저어 쉬엿하라고 하고는 웅글은 소리로 입을 열었다.

《난 동무들의 토론을 다 들었습니다. 고맙고… 힘이 나는 토론입니다. 늦었지만 나도 토론겸 한마디 하려고 합니다.》

류경수는 매 전사들의 모습을 눈에 익혀두려는듯 유심히 보다가 입을 열었다.

《나는 긴말을 하지 않겠습니다. 동무들이 이미 다 말했고 말하지 않은 동무들은 속으로 심장의 맹세를 굳게 다지고있을것이기때문입니다.

내가 말하자는것은 동무들이 이제 하게 될 전투를 우리의 경애하는 최고사령관 김일성장군님께서 지켜보신다는것입니다. 우리모두가 가슴속에 새기고있는 맹세를 잊지 맙시다.

수령을 위하여!

조국을 위하여!》

류경수는 불끈 틀어쥔 주먹을 높이 들어 흔들고는 거수경례를 하였다.

박원진은 가슴이 뭉클해졌다.

(장령이 전사들에게 먼저 경례를 하다니…)

대대부에 갔다가 들은 군단장이 장군님을 만나뵈왔다던 말이 떠오르며 가슴이 후두두 뛰였다.

(장군님께서 지켜보시는 전투이기에… 정말 잘 싸워야겠어!)

《수령을 위하여! 조국을 위하여!》

류경수가 하던 말을 다시 뇌여보는 박원진의 가슴엔 뜨거운 불뭉치같은것이 솟구쳐올랐다.

몇명의 지휘관들과 함께 나타났던 류경수군단장이 감시소쪽 산등길로 사라지는것을 지켜보던 박원진은 신기철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원진동무! 동무의 물통은 어디에 있나?》

《…》

매사에 꼼꼼한 신기철의 물음에 박원진은 저도 모르게 얼굴을 붉혔다. 조순근이 이때라는듯 한바탕 너털웃음을 웃고는 입을 열었다.

《분대장동지, 그 물통은 황천에 갔습니다. 오늘 아침 대대부로 갔다오다가 류탄에 맞아 맞구멍이 났지요.》

《그럼 보고를 해야지. 한데 종군작가선생들한텐 어떻게 한다? 원진동문 종군작가선생들에게 준다고 늘 그〈공동경비구역〉샘물을 넣고 다니더니 끝내 나무아미타불이 되였으니…》

《체… 이제 전쟁이 끝나면 우리 옥호동약수와 도루메약수를 꼭 맛보이고야말겠어요.》

박원진이 볼이 부어 쌔근거린다.

《그래? 그땐 거기서 원진이가 뭘할가. 선생님을 하실가 위원장님을 하실가.…》

《분대장동무, 그건 틀렸시다. 원진인 어깨에다 왕별을 달 때까지 군복을 입는게 꿈이웨다.》

《미래의 장령동지라… 좋지! 얼마나 리상이 높은가. 하지만 원진이, 장령도 병사로부터 시작해. 자, 우선 이 물통을 받으라구…》

신기철은 박원진의 어깨에 물통을 걸어주고나서 만족한듯 미소를 지었다.

박원진은 불쑥 속이 찌르르하여 머리를 숙였다.

(분대장동지… 저의 꿈은 로동당원이 되는것입니다.… 당원이…)

신기철은 마라초연기를 내뿜었다.

《원진이, 우리도 아까 군단장동지의 말대로 장군님의 믿음에 어긋나지 않게 본때있게 싸워보자구. 그리구 이제 전쟁이 끝나면 말이요. 우리 고향인 저 함경남도 덕성에도 가기요. 신태리란 곳인데 칼산과 돌산에는 떡호박과 고구마가 잘되고 찰기장은 관북땅에 소문났지. 한번은 말이요. 그게 해방 이듬해야. 그 칼산에 올라가 파릿하게 내돋은 나리꽃뿌리 다섯개를 캐서 다래끼에 넣어 집으로 가져왔지. 이왕이면 더 많이 캐다가 분여받은 앞개천 밭머리에 쭉 돌아가며 심자구… 그래 내 뭐랬는지 아오? 〈여보, 이 다섯뿌리는 장군님께서 땅을 주신 삼월 닷새날을 잊지 말자는 뜻에서 집오래에 심자는거요. 땅이 영원히 우리것이 되였으니 이 나리꽃도 이제 자자손손 뿌리를 치며 온 마을에 퍼져 장군님의 고마움을 전해갈거요.〉

원진이가 이제 당원이 되여 군관복을 척 입고 가슴팍에 훈장달고 우리 고향에 함께 가면 얼굴이 달덩이같고 몸이 개버들같은 신태리처녀들이 줄줄 따라설게요. 하하하…》

《체…》

박원진은 입이 함지가 되여 딴전을 부렸다.

《허, 우리 원진동무야 고향에서 외씨같은 고운 글씨로 편지를 보내오는 녀동무가 있지 않소?》

정찰국에서 내려온 전무성군관과 함께 담배를 피우던 리만희대대장이 한마디 하자 조순근이 박원진의 등을 철썩 갈겼다.

《꼬마가 밑으로 호박씨 까누나ㅡ》

그러자 화선의 전사들이 웃음집을 터뜨렸다.

박원진은 얼굴이 벌개져서 조순근을 흘겨보았다.

사실 요즘 조순근은 아예 딴 사람이 되였다.

장군님께서 직접 품들여 가져오신 부모의 편지를 류경수군단장에게서 받은 날 그는 전호에 어푸러져 꺼이꺼이 굵은 눈물을 뿌렸다.

《장군님, 이 평백성의 자식이 뭐라고 친히 이런 편지심부름까지…》

그때 류경수군단장이 눈을 슴벅거리며 조순근을 일으켜세웠다.

《순근동무, 우리 장군님께서는 동무와 같은 〈베잠뱅이〉들을 믿고 이 전쟁을 치르시오. 전사들을 하늘같이 여기시고 이 전선을 우리에게 맡겨주셨소. 신성한 조국을 말이요. 우리 장군님과 어머니조국을 목숨으로 지켜야 해.》

《군단장동지, 제 이 몸이 천백번 쓰러져도 다시 일어나 장군님의 사랑에 꼭 보답하겠습니다.》

조순근이 눈물범벅이 된 얼굴을 들고 절절히 부르짖었다.…

(그렇다. 우린 천백번 쓰러져도 장군님의 사랑, 장군님품을 잊을수 없다.)

박원진은 총부혁을 꽉 틀어잡고 심호흡을 했다.

문득 미군포로를 잡아왔던 때의 일도 떠올랐다. 전사들은 우에서 호송군관이 내려오기를 기다리며 포로된 미군장교를 참호바닥에 꿇어앉히고 위세를 돋구었으나 서로 말을 알아듣지 못하여 실망하고말았다.

이때 854.1고지전투를 앞두고 련대에 내려와있던 전무성군관이 참호에 나타났다.

그는 포로앞으로 다가가 수첩을 꺼내들었다. 박원진은 호기심어린 눈으로 전무성을 바라보았다.

미군포로에게 뭘 씌우려는걸가?

다음순간 박원진은 눈이 둥그래졌다.

뜻밖에도 전무성이 류창한 영어로 포로를 심문하기 시작했던것이다. 박원진은 황홀한 눈길로 전무성을 쳐다보며 자기도 그처럼 영어를 알면 얼마나 좋을가 하고 부러워했다.

그때 미군포로를 잡아왔다는 소식에 급히 달려온 윤애사한테 전무성에 대해 물었다.

《저 정찰군관동지를 잘 안다지요? 한데 어떻게 되여 미국말을 저렇게 잘합니까?》

《호호… 전무성동지는 김일성종합대학을 다녔어요. 그때 자체로 공부한것이지요.》

《그래요? 난 축구선수로 알았는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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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산님의 댓글

강산 작성일

(위에서 계속)


《그건 무슨 소리예요?》

《전번에 전선사령부에 련락갔을 때 말입니다. 한 녀성군관동지가 날 붙잡고 우리한테 와있는 축구선수가 잘 있는가고 묻지 않겠습니까. 그리고는 저 군관동지에게 보내는 편지를 주더군요.》

《호호… 어떻게 생겼어요?》

윤애사가 웃으며 물었다.

《체, 윤애사동지보담 곱지 못해요.》

박원진의 말에 윤애사가 까르르 웃었다.

《호호호. 김인정중위, 그 언닌 으뜸가는 미인이예요.》

그날 저녁 대대부에 갔던 박원진은 그만 깜짝 놀라고말았다. 범이 제소리 하면 온다더니…

전무성과 바로 그 김인정군관이 감시창곁에 마주 서있었던것이다.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박원진이 들어서는것도 몰랐다.

(음, 그런 사이였구나.…)

박원진은 들킬세라 조용히 뒤돌아 몰래 나왔다.…

(전무성동지가 우리보다 먼저 움직인다면 혹시 전방정찰을 나가는것이 아닐가? 제발 무사해야겠는데…)

… 밤 1시, 854.1고지를 중심으로 좌우 린접 고지들에 대한 두번째의 포병습격타격이 개시되였다.

 

×

 

석강하는 류경수군단장의 곁에서 화광이 치솟는 고지를 바라보았다. 예광탄과 조명탄의 불줄기사이로 파란 신호탄이 창공으로 날아올랐다.

그러자 천지를 진감시키며 련포군의 강력한 습격타격이 811.7고지와 그 린접의 적차단물에 가해졌다.

파릿한 불줄기가 적진지로 날아가면 이윽고 굉음이 천지를 뒤흔든다. 그것은 련속 이어지면서 땅이 움씰거리며 화염이 치솟아 검은 하늘을 덮어버린다. 처음엔 귀가 멜것처럼 멍하더니 차츰 습관되여간다.

석강하와 함께 류경수군단장에게 붙잡혀 이 감시소에 눌러있게 된 박한주도 화염이 폭풍치는 전방을 묵묵히 바라본다.

얼마나 장엄한가.

석강하는 박한주에게 조용히 다가갔다.

《한주동무, 음악에 이걸 다 담을수 없을가?》

《석동무, 나도 그걸 생각하고있소. 교향악, 전투의 장엄한 교향악을 말이요.》

석강하는 북받치는 격정을 누를수 없어 박한주의 손을 꼭 잡았다.

이때 불시에 포소리가 멎고 감시소에 있던 몇몇 지휘관들이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 서슬에 석강하와 박한주도 따라나갔다.

《와ㅡ》하는 소리가 아슴푸레 들려왔다. 811.7고지를 목표로 공격출발진지를 차지하고있던 전투원들이 돌격에 진입한것이였다. 석강하는 한 지휘관의 뒤를 따라 정신없이 내달렸다.

총성이 콩볶듯하는 그리고 만세의 함성이 련속되는 고지로 내달렸다. 석강하의 온몸에는 이름할수 없는 희열과 기운이 태동쳤다.

그가 고지에 올랐을 때는 적의 1참호에 뛰여든 전투원들이 육박전을 벌리고있었다. 석강하는 무작정 그리로 달려가며 권총을 뽑아들었다. 그 순간 어디선가 날아온 총탄에 그의 군모가 벗겨졌다. 얼결에 손을 머리에 가져가니 총탄에 머리가죽이 벗겨졌는지 땀과 함께 피가 손에 묻어났다. 그것을 보는 순간 눈에 피발이 섰다. 홱 몸을 돌렸다. 저쪽 은페호바닥에 두사람이 맞붙어 딩구는것이 눈에 띄운다. 석강하는 권총을 쳐든채 씽 하니 그리로 달려갔다. 철갑모를 쓴 허우대 큰 미제침략군의 등판대기가 확 눈에 안겨들자 그는 몸을 낮추며 방아쇠를 련신 당겼다. 어느새 탄창이 비였는지 철컥 소리가 났다. 미제침략군놈이 옆으로 쓰러지자 그놈과 격투를 벌리고있던 사람이 몸을 털며 일어섰다.

석강하의 눈이 화등잔처럼 커졌다.

《아니, 한주동무가?…》

박한주는 아무 일도 없었던듯 손으로 군복을 툭툭 털었다.

그에게는 총대신 수류탄 두개가 차례졌었는데 이미 써버린 상태였다.

《고맙소. 사실은 배지기로 제껴버리려댔는데…》

《허허 참, 내가 괜히 끼여들었군.…》

석강하는 웃으며 입을 다셨다. 그제야 그는 참호속에 자기와 박한주 두사람만이 남아있다는것을 깨달았다.

전투원들은 벌써 적1참호를 벗어나 고지정점으로 돌격하고있었다. 그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작곡가선생, 난 동무때문에 또 늦었소.》

《됐소. 꾸물거릴게 있소. 아직 전투는 끝나지 않았소. 날 따르오!》

박한주가 제법 결패스럽게 웨치며 앞장서 전호턱에 올라섰다.

석강하도 적의 카빙총을 벗겨쥐고 그의 뒤를 따랐다.

돌격의 만세소리는 이미 고지웃쪽에서 울리고있었다.

… 석강하는 후날 박한주가 작곡한 전시가요들을 들으며 커다란 자부심을 느꼈다. 그가 어떻게 전쟁의 열광, 승리의 함성, 전사들의 랑만을 그리도 예민하고 정확하게 감수했으며 그 좁은 오선지에 잡아넣어 시대의 교향악으로 울려퍼지게 했는가는 누구보다 자기가 잘 안다고 생각했기때문이였다. 그리고 거기에는 자기의 《은공》도 없지 않았다고…

박한주가 창작한 《아무도 몰라》, 《해안포병의 노래》등을 비롯한 전시가요들은 힘과 용기, 투지와 랑만, 승리와 희열의 노래로 세월을 넘어 울려퍼졌다.

공화국의 한 세계프로권투선수권보유자는 경기출전때마다 그가 창작한 곡 《해안포병의 노래》를 울리며 경기장에 나가 승리하였다.

박한주는 전후 인민군문예창작집단의 한 성원으로 사업하면서 류경수의 관심과 고무속에 수령송가 《김일성원수께 드리는 노래》를 창작하였다. 그는 공화국의 첫 세대 공훈예술가이다.

전화의 나날에 전선동부에서 인연을 맺은 두 군인, 항일혁명투사 류경수는 혁명렬사릉에, 종군작곡가 박한주는 애국렬사릉에 안치되여있다.

력사가 기억하도록 위인들의 큰 심장이 이들을 영생의 언덕에 내세우신것이다.

 

×

 

1952년 9월 22일 밤 1시, 예광탄과 조명탄이 엇갈려 썰어대는 검푸른 밤하늘에 드디여 854.1고지 점령을 위한 공격구분대의 돌격을 알리는 신호탄이 길게 포물선을 그으며 날아올랐다.

적 참호밑의 돌격선까지 접근하여 은페하고있던 전투원들은 일제히 함성을 지르며 돌격해올라갔다. 아군의 811.7고지 공격으로 혼란에 빠진 적들이 미처 정신을 차릴새없이 일격에 시작한 공격이였다.

탄환이 핑핑 귀전을 스치고 박격포탄이 장렬하며 파편과 불과 흙비말을 휘뿌렸다.

박원진은 흑흑 숨을 몰아쉬며 신기철분대장의 뒤를 따라 무섭게 앞으로 내달렸다.

문득 귀가에 폭음과 총소리를 누르며 노래소리 같은것이 틀린다.

(이게 무슨 소리야?)

박원진은 이상한 생각이 들어 뒤를 돌아보았다.

탐조등과 파렬되는 포탄의 화광에 윤애사의 군모밑으로 흘러내린 머리칼과 얼굴이 얼핏 드러난다.

(용쿠나.)

그때 화선방송국에서 우렁찬 노래가 울려나왔다.

 

가렬한 전투의 저기 저 언덕

피흘린 동지를 잊지 말아라



 

박원진은 온몸이 훅 들리는듯 했다.

《만세!ㅡ》의 함성이 더 높아지며 전사들의 검은 물결이 노도처럼 고지를 덮쳤다.

박원진은 목이 다 쉬여버렸다. 이제는 입에서 《와!》하는 단절음만 뿜어나왔다. 적의 참호를 향해 기관단총을 휘두르며 내닫던 박원진은 《엎디라!》하는 소리에 무르춤 굳어졌다.

고지릉선의 중간쯤 되는 계선에서 강한 불줄기가 빗살처럼 날아왔다. 적의 토목화점에서 뿜어대는 불줄기였다.

《저놈들을 그저…》

조순근이 몸을 일으키려 하자 신기철분대장이 그의 등을 손으로 눌러버렸다.

《가만!》

신기철의 입에서 단김이 뿜겨나왔다. 그는 묵묵히 화점을 쏴보다가 박원진과 조순근을 돌아보았다.

불이 이글거리는것 같은 눈빛이 어둠속에서 확 안겨온다.

비장한것이, 숭고한것이 그 눈빛에서 격렬하게 뻗쳐왔다.

문득 신기철이 미소를 지었다. 아니, 입술 한쪽이 약간 들렸을뿐이다.

신기철은 불쑥 몸을 일으키더니 비호같이 달려나가며 화점을 향해 수류탄을 던졌다.

《콰쾅!》

온 천지가 뒤흔들리는듯싶다. 화점앞에서 눈부신 섬광이 번쩍이고 파편이 밤공기를 찢었다.

신기철이 다시 몸을 일으키며 목갈린 소리로 웨쳤다.

《당원들이여! 장군님을 위하여 돌격 앞으로!》

그의 웨침과 함께 대오가 일떠서는 순간 적의 중기화점이 다시 불질을 하기 시작했다. 돌격에로 부르던 신기철이 휘친하며 쓰러졌다.

《분대장동지!》

목이 터지게 웨치며 일떠서는 박원진의 군복자락을 조순근이 움켜쥐였다.

그순간 쓰러졌는가싶던 신기철이 불사신처럼 몸을 일으키며 웅글진 목소리로 부르짖었다.

《당원들이여, 날 따라 앞으로!》

신기철분대장이 육탄이 되여 날아들어 불뿜는 화구를 막자 적화점에서 불줄기가 뚝 멎어버렸다. 엎드렸던 병사들이 일제히 솟아나 성난 사자들처럼 고지의 릉선을 향하여 질풍같이 달려갔다.

(분대장동지!… 세포위원장동지!… 이 피값을!… 쓰러진 전우의 원한씻으러…)

박원진은 입술을 악물고 내달렸다.

눈에서 불이 펄펄 일었다. 악악하며 적 참호에 뛰여들어 기관단총을 휘둘러댔다.

미제침략군 1참호를 점령한 구분대는 고지정점을 향하여 공격성과를 확대해나갔다.

예광탄의 퍼런 빛이 하늘을 마구 썰고 화염방사기의 불줄기가 휙휙 단풍든 잡관목들을 끄슬리며 지나간다.

익측과 린접에서도 공격전투가 한창 벌어져 854.1고지는 온통 화염에 휩싸였다. 박원진은 달리면서 탄창주머니를 뒤져 새 탄창을 꺼내들었다. 목에서 쇠비린내가 훅훅 올리치밀고 군복잔등은 땀에 젖고 불에 타버려 몸에 가드라붙은것 같다.

그래도 달렸다. 탄알이 스쳐지나간 오른쪽허벅다리에서 물같은것이 줄줄 흘러내려 군화등을 적신다.

고지정점가까이에서 구분대의 돌격은 또다시 좌절되였다.

은페된 나지막한 바위사이에서 새로운 화점이 검질기게 불을 토했던것이다.

전사들은 그 자리에 엎디여 일제히 화력을 집중하였다. 기관단총들과 경기관총이 맞받아 불질을 한다. 하지만 견고한 화점은 끄덕도 안한다.

수류탄을 던졌으나 투척거리가 모자란다.

박원진은 전투대오의 맨앞 바위츠렁밑에 엎드려 이글거리는 시선으로 적화점을 쏘아보았다.

(우리 분대장동지가 목숨으로 연 돌격로가… 당원동지들이 앞장선 이 길이…

채순아, 우린 김장군님령도를 받는 공화국의 민청원이지… 옥호동샘물을 지켜줘.… 어머니, 난 꼭 당원이 되고싶어요. 부디 몸성히 계세요.)

박원진은 온몸에 휩싸이는 강력한 힘의 후광을 느꼈다.

그는 땅을 차며 몸을 일으켰다.

《민청원들이여! 로동당원들의 뒤를 따라 앞으로!…》

박원진은 거인처럼 일어나 쨍쨍한 목소리로 웨치며 적화점을 향하여 달려갔다. 열여덟살의 불타는 가슴으로 적화구를 막았다.

…854.1고지정점에 온통 탄알과 파편구멍이 숭숭한 공화국기가 포연속에 세차게 펄럭이였다.

조순근의 무릎을 베고 누워있는 박원진에게로 리만희대대장과 윤애사 그리고 석강하와 박한주가 달려왔다.

《박원진이, 눈을 뜨오! 우린 승리했소. 단 40분동안에 고지를 점령했단 말이요! 응?…》

리만희가 박원진의 군복자락을 와락 걷어쥐고 흔들었다.

《원진이, 우린 이겼어. 어서 장군님께 승전의 보고를 올려야지.》

군모를 벗어든 조순근이 손등으로 눈굽을 훔쳤다. 훔치고 또 훔쳐도 눈물은 그냥 투박한 손등을 따라 줄줄 흘러내렸다.

윤애사가 조용히 다가가 박원진의 손을 잡았다.

《원진동무, 어서 눈을 뜨세요. 골짜기의 샘우물이 우리것이 되였어요.》

윤애사의 화염에 끄슬린 얼굴에서도 맑은것이 방울방울 떨어져 박원진의 군복앞섶을 적신다. 그 순간 박원진이 불쑥 눈을 뜨고 리만희와 윤애사를 올려다보았다. 그 눈에 전선의 밤하늘이 그대로 비껴 파들거린다.

《애사누이, 이젠… 그 샘우물맛을… 직접 가보세요.… 좋은 시를…》

박원진은 웃으려 하였다. 했으나 그 웃음은 그만 중간에서 영영 굳어져버리고말았다.

… 종군녀류시인 윤애사는 854.1고지전투가 끝난 후 조순근부분대장과 함께 그 샘우물앞에 오래도록 서서 떠날줄 몰랐다. 그는 차마 그 샘물을 마실수 없었다.

전선사령부에 가있는 심봉운에게 주려고 군용물통에 그 샘물을 담으려 하였다.

그러나 채 담지 못한채 주저앉았다.

뭔가 기약도 없이 심장을 쾅쾅 두드렸다. 샘물을 두고 하던 박원진의 말이, 그의 고향 약수터에 대한 말이 귀전을 울렸고 죽으면서도 빛을 잃지 않던 그의 맑은 눈동자가 떠올랐다.

그러자 전선길을 다니며 무수히 마주쳤던 샘물과 박우물과 실개천들이 눈앞을 스치였다. 대학시절의 농촌 우물가, 빨래방치소리… 거리를 달리는 전차들과 들꽃송이들… 물보라… 웃음소리…

샘우물 한옆에 쭈그리고앉아 마라초를 뻑뻑 빨던 조순근이 정신나간 녀자처럼 눈을 번뜩이는 윤애사를 걱정스레 흘끔흘끔 바라보았다.

윤애사는 도툼한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샘우물과 이어진 아름다운 지향과 랑만을 두고, 래일의 꿈을 안고 한목숨 바친 전사들의 위훈을 두고 그는 《결전의 길로》와 같은 무게있는 작품을 쓰려고 결심한것이다.… 그 순간 가보지 못한 곳, 가고싶었던 곳, 박원진전사가 늘 외우던 옥호동 약수터… 그 잔디푸른 약수터의 전경이 그냥 눈앞을 맴돈다. 모진 진통속에, 몸부림속에… 며칠후 서정시 《약수터에서》가 전선신문에 실렸다.

이것은 혁명적락관주의에 기초한 비장성도 전사들의 대중적영웅주의에 대한 격찬도 아니였다. 발랄하고 따뜻하고 랑만적인 색조가 고향을 그리는 젊은 병사의 뜨거운 정을 내뿜었다. 애젊은 청춘들은 그렇게도 아름답고 찬란하고 억센 삶을 꿈꾸고 사랑했던것이다.

윤애사는 자기의 손을 잡은채 눈을 감은 박원진전사도 그러한 희망차고 밝은 시를 열렬히 바랐을것이라는것을 충심으로부터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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