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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전선의 아침 제13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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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1건 조회 7,525회 작성일 20-01-23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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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jpg

제  6  장

 

락원기계제작소 주철직장 당세포총회가 끝나자 김일성동지께서는 당원들과 함께 민주선전실을 나서시였다.

평안북도에 대한 현지지도의 길을 계속 이어가시는 그이이시였다.

밤바람이 슬밋슬밋 폭격에 상처입은 주철직장구내에 불어들자 홧홧 달아올랐던 대지는 한결 시서늘하게 느껴진다.

김일성동지께서는 갓 쇠물을 뽑아낸 용선로를 바라보시였다. 그리 크지 않은 용선로였지만 그간 전쟁의 가혹한 세례를 받아 누덕누덕 기운것 같기도 하고 여기저기 땜질한 헌 독을 련상시키기도 하였다.

《전쟁전에는 이 락원기계제작소에서 주로 소농기구를 만들었지요?》

김일성동지께서는 곁에 따라선 세포위원장과 신포향을 돌아보시였다.

《예, 해방전에 자그마한 수공업공장이였던 우리 기계제작소는 1945년 9월부터 호미와 낫, 보습 등 여러가지 소농기구를 생산하면서 휴갈뽐프들을 만들다가 전쟁을 맞았습니다.》

세포위원장의 말을 들으시며 그이께서는 다시 용선로를 살펴보시였다.

《동무들이 저 용선로를 살려 쇠물을 뽑는것 같은데 지금은 무엇을 만듭니까?》

《…》

세포위원장이 머뭇거리자 신포향이 조용히 말씀올렸다.

《장군님, 죄송합니다. 몇달전까지는 군수품들을 적지 않게 만들어냈는데 놈들의 전번 폭격에 모든게 파괴되고 송전선까지 절단되여 지금은 보습같은거나 조금씩 부어냅니다.》

신포향의 얼굴에 불그레한 기색이 서린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너그러운 미소를 지으시였다.

《보습이 어째서 그러오? 동무들이 전시식량증산에 나선 농민들을 도와주는건 아주 좋은 일이요. 어려운 속에서도 로동계급의 본분을 지킨다는게 뭐겠소.》

《얼마전부터는 이 신포향동무의 제기로 가마도 부어내고있습니다.》

《그렇소? 후퇴때 적지 않은 사람들이 가마같은것을 다 잃었을게요…》

김일성동지께서는 얼굴이 갤쑴하고 맑은 살갗에 검은동자가 큰 신포향을 바라보시였다.

방금전 세포총회에 참가해서도 느끼시였지만 속이 깊고 당에 대한 충정이 남다른 로동계급녀성이였다. 그이께서 전쟁승리의 길과 전후복구건설문제를 제기하시였을 때 신포향은 조용히 일어서서 말씀올렸다.

《수상님! 념려마십시오. 우리가 싸워 이기기만 하면 복구건설은 문제로 되지 않습니다. 일제놈들이 그렇게 마사놓고 간것도 우리는 2~3년동안에 다 복구해가지고 잘 살지 않았습니까? 전쟁이 끝나면 또 복구해가지고 잘 살수 있으니 너무 근심하지 마십시오.…》

김일성동지께서는 그의 대답에서 충격을 받으시였다. 평범한 녀성로동자의 진정에 넘친 소박한 한마디가 어찌하여 그토록 큰 격려로, 고무로, 힘으로 느껴지셨던가.… 억세고 진실한것이, 소박하고 드놀지 않는것이, 우리 로동계급의 더운 숨결이 가슴속으로 흘러들었던것이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용선로앞으로 가까이 다가가시였다. 출선구 가까이의 용선로벽에 큰 구멍을 땜질한 흔적이 력력했다.

《폭격에 뚫렸댔구만.…》

《예, 한창 출선을 앞두고 놈들의 무차별 폭격을 받았을 때 우리 당원동무들이 젖은 가마니를 쓰고 뛰여들어 막아냈습니다.》

세포위원장의 젖은 목소리에 김일성동지께서는 머리를 끄덕이시였다.

《다친 동무들은 없습니까?》

《두 당원이 화상을 입었지만 이젠 나았습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용선로의 규모와 생산량을 가늠해보시였다.

《전기가 끊어졌을 때는 어떻게 하오?》

《목탄자동차의 뒤바퀴를 리용해서 송풍을 보장합니다.》

《음, 정말 간고분투하고있구만…》

김일성동지께서는 뒤따라선 당원들을 돌아보시였다.

《당원동무들, 나는 오늘 락원기계제작소 주철직장 로동계급들을 만나 큰 힘을 얻었습니다. 우리 당을 쇠물같은 당적량심으로 굳건히 받들려는 로동계급의 자력갱생의 모습에서 싸우는 우리 조선의 기상과 힘, 승리에 대한 락관을 보게 됩니다.

동무들, 우리는 반드시 이 전쟁에서 이깁니다. 영웅적인 우리 인민군대가 있고 자기 위업의 정당성을 확신하고 전시생산에 한결같이 일떠선 로동계급과 농민대중이 있는 한 승리는 우리의것입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신포향을 바라보시였다.

《포향동무, 내 떠나기 전에 동무들과 한가지 토의하고싶은게 있소.》

《수상님 말씀하십시오.》

《동무들이 크지 않은 용선로에서 거의 수공업적방법으로 보습과 쇠가마를 만들고있는데 이것도 물론 절실히 필요합니다. 하지만 내가 여기에 온 중요한 목적은… 동무들이 힘을 내여 수류탄이랑 생산하라고 말해주고싶어서였습니다. 전선의 용사들에게는 지금 더 많은 무기와 탄약이 요구됩니다.》

김일성동지의 말씀에 당원들은 눈을 빛내며 서로 마주보았다.

세포위원장이 당원들을 대표해서 경건한 자세로 말씀올렸다.

《수상님, 저희들이 힘을 합쳐 용선로도 개건확장하고 대중을 불러일으키겠습니다. 마음을 놓아주십시오.》

신포향이 의젓한 자세로 한걸음 나섰다.

《수상님, 우리 후방은 걱정마십시오! 수상님의 의도를 받들고 수류탄과 군수품을 더 많이 만들어 싸우는 전선의 용사들께 보내겠다는것을 맹세합니다.》

신포향의 눈가에서 물기가 번들거렸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승용차손잡이를 잡으시고 환하게 웃으시였다.

《내 이번에 군부대, 군사학교, 공장, 농촌들, 중앙당학교 등 여러 곳을 돌아보았는데 우리 후방이 크게 일떠섰소.

후방이자 전선입니다.

미제침략자들이 영웅적조선인민을 잘못 봤거든.

나는 전승을 확신합니다. 동무들의 결의를 믿겠소!…》

김일성동지께서는 이어 조선인민군 제858군부대, 만경대혁명자유가족학원, 평양사범대학, 영예군인 제1공업학교를 현지지도하시고 6월 22일 평안북도 도급기관책임일군협의회를 소집하시였다.

거기에서 전시생산 및 인민생활보장을 위한 평안북도 당단체들앞에 나서는 과업을 제시하시였다. 공군부대시찰에 이어 조선인민군 출판인쇄소, 중앙고급지도간부학교, 의주군 옥상면 당목소비조합상점, 강건군관학교, 조선인민군 576군부대 4대대 1중대를 돌아보시면서도 그이께서는 내내 락원의 당원들을 생각하시였다.

…락원의 로동계급은 준엄한 시절 자기 수령앞에 다진 그 결의를 지켰다. 전시생산에서 기적을 창조했을뿐만아니라 위대한 수령님께서 전후 농촌수리화의 원대한 구상을 펼치시고 기양관개공사에 필요한 대형양수기를 생산할데 대한 과업을 주시였을 때에는 공장에 설비도 자재도 변변한것이 없었으나 자력갱생, 간고분투의 혁명정신으로 《락원 1호》를 만들어냈으며 탑식기중기, 자동차기중기, 대형유압식굴착기 등 여러가지 최신식설비들을 생산하여 언제나 한마음으로 우리 당을 받들어 그날의 맹세를 지켰다.

…신의주시 입구에는 전화의 나날 우리 수령님을 쇠물로 받든 공화국영웅 신포향의 이름을 단 포향역이 있다. 크지 않은 철도역이지만 후대들은 그 역명판앞을 무심히 지나치지 못한다. 그리고 력사에 남은 10명당원들의 이름을 마음속으로 조용히 불러본다.

신포향, 호천학, 황순화, 장홍준, 심형섬, 차득호, 선우련수, 리성명, 류기동, 김언년.

 

×

 

이 계선에서는 잡관목이 무성한 854.1고지의 릉선들과 정점이 손에 잡힐듯이 보였다. 적1참호앞의 차단물까지의 거리도 얼마되지 않는다.

금강산줄기의 영향때문인지 골짜기를 따라 이끼 한점 없는 하얗고 둥근 신묘한 바위들이 듬성듬성 조화롭게 솟아있는데 샘우물은 그중의 어느 한 바위밑에 고여있다.

엄밀한 의미에서는 우물이라기보다 샘에 가까왔다.

아무리 퍼내도 차디찬 물줄기는 마르는 법이 없고 어는 법도 없다.

박원진에게는 그게 이상스러웠다.

겨우내 샘우물은 가녘에 약간의 살얼음이 졌다가도 한낮의 차디찬 해빛에마저 스러지는것이였다.

이 전선동부의 험준한 골짜기는 겨울이면 아예 동토지대가 되고만다. 하지만 샘우물은 얼지 않는다.

너무 신비스러워 언젠가 신기철분대장에게 물었는데 그는 시무룩이 웃기만 하고 대신 조순근부분대장이 중얼거렸다.

《흐르는 물은 썩지도 얼지도 않아.》

《체… 저 샘우물이 흐르나요?…》

《그렇지! 흐르는게 아니라 솟구치지. 그게 더 힘을 뻗치거든.》

듣고보니 그럴듯 했다.

박원진은 그제야 깨도가 된듯 머리를 끄덕끄덕했다.

조순근은 빙그레 웃었다.

《하긴 사람도 마찬가지지. 부지런한 농군이 건강하고 또 오래 살거든. 우리 마을에 말이요. 서울의 대 지주의 땅을 관리하는 신가성을 가진 마름이 있었소. 명색이 마름이지 실은 큰 지주나 다름없었지. 이 신가가 크게 몸이 비대한것도 아닌데 몸을 까딱 움직이기 싫어했소.

그 집에 행랑살던 김덕만이라는 청년이 인력거에 태워 끌고다녔지. 때로는 업고 다니고. 갓 쉰에 로망한다고 그 신가도 골골했으니 이젠 아마 저승에 갔을거야…

하긴 덜퍽진 젊은 계집을 둘씩이나 첩으로 끼고사는 색골이였으니 고인 늪이나 다름없었지.》

그러고보면 입이 무거운 조순근이도 속은 깊은 사람이였다.

박원진은 지금 신록이 짙어가는 잡관목숲에 엎디여 그냥 앞을 살피는 조순근을 흘끔흘끔 쳐다보며 은근히 혀를 찼다.

불쑥 생각키우는 한사람이 있었다.

소학교시절의 담임교원 백선생도 저 조순근처럼 속이 너그럽고 말이 적은 사람이였다. 수업시간 학생들이 교실에 얌전하게 앉아 말똥말똥 쳐다볼 때면 안경을 춰올리며 어딘가 좀 점직해하군 했다. 휴식종이 울릴 때 선생의 몸은 늘 땀으로 푹 젖군 했다. 박원진은 자주 공부가 끝나면 길상리아이들을 휘둥해 여기저기 쏘다니다가는 헝겊책가방을 풀밭에 던지고 나무에 바라오르거나 메비둘기둥지를 털어내는 등 장난이 세찼다. 늦가을날 한번은 채순이네 집앞에 있는 《쌍가매집》지붕에 기여오른적이 있었다. 이름모를 볏이 발그레한 보라빛새가 처마에 둥지를 튼게 며칠전부터 손이 근질거리게 했던것이다. 눈이 올롱해진 채순이가 아래서 새된 소리로 종알거렸다.

《원진아, 빨리 내려와. 저기 오고있어. 할아버지한테 혼나지 말구…》

《네가 대줬니?…》

벌써 동구길 아근에 성난 《쌍가매집》 좌상로인의 모습이 보였다. 급해맞은 박원진은 둥지를 털지 못한채 지붕에서 쭈르르 흘러내리였다. 그바람에 서리를 맞히느라 따지 않은 누런 떡호박 두개가 땅에 떨어져 박살이 났다.

《쌍가매집》좌상로인이 학교로 찾아왔던날 담임교원 백선생은 수업을 마치자 아무 말없이 박원진을 데리고 도루메뒤산으로 올라갔다. 선생은 아름드리 느티나무밑으로 가더니 끓어앉아 가방에서 판자쪼각으로 만든 웬 물건을 꺼냈다. 못과 망치도 나왔다. 안경을 벗고 일어섰다.

《원진학생, 날 좀 부축해주오.》

년로한 선생은 나무에 오르려 무진 애를 썼으나 끝내 실패하였다. 박원진이 씽 하고 나무에 올라가 밑에서 선생이 넘겨주는 그 새둥지를 허둥지둥 받아 못으로 박았다. 망치질을 할 때 처음으로 눈굽이 뜨거워났다.

《원진학생, 이제 그 둥지에 새들이 보금자리를 틀면 와봅시다. 숲이란 새소리를 떠나서 생각할수 없습니다.》

백선생은 기분이 좋아 활짝 웃고있었고 박원진은 나무우에서 소리없이 눈물을 흘리고있었다.…

…백선생은 그후 50년 가을, 적후유격대에 속하여 싸울 때 구성남문을 해방하는 전투에서 전사하였다. 선생이 길상리의 소학생들을 데리고 봄철이면 자주 원족을 가던 곳이였다.… 백선생은 채순이 아버지와 함께 마을의 첫세대 로동당원이였다.…

《어때요? 이젠 샘우물에 접근해도 일없지 않을가요?》

곁에서 윤애사가 나직한 목소리로 달뜨게 묻는 바람에 박원진은 생각에서 깨여났다.

《애사동지, 침착하게 기다려야 합니다.》

박원진이 자못 엄한 목소리로 말하며 기관단총을 억세게 틀어쥐였다.

《아니 왜요?》

윤애사는 여전히 호들갑스럽게 군다.

박한주와 석강하는 자주 전선사령부쪽으로 나다녀도 그 녀자만은 그냥 대대에 끈질기게 붙어있으면서 부지런히 이중대 저 중대를 돌아다녔다.

언제부터 전선경계선의 그 말썽많은 샘우물에 가보고싶어 박원진을 못살게 굴며 안달이더니 대대장의 승낙을 종내 받아내지 못하자 마음 무던한 조순근에게 딱 달라붙어 어떻게 구슬렸는지 오늘은 예까지 따라온것이다.

박원진은 종군작가라고 하지만 어쩐지 행동이나 어조가 가벼워보여 그와 마주하면 심기가 좋지 않았다.

하긴 따지고보면 나이는 동갑에 가까운셈이였다.

《엊그제 미군장교가 기신거린 다음부터 이 경계선의 안전상태가 더 불안해진걸 아시지요? 까닥하다간 이전처럼 총격전이 벌어질수 있어요.

애사동지, 생명이 위험할수 있습니다.》

《어마나, 무섭겐 말하는군요. 호…》

박원진이 엄숙한 눈길로 돌아보니 윤애사는 귀인성스러운 두눈을 쌩긋 찡그리며 아래입술을 내밀었다.

박원진은 그만 픽 웃어버리고말았다.

(저렇게 웃을 땐 꼭 우리 마을 채순이처럼 보이는걸. 역시 처녀들은 다 같은 모양이야. 저 애사시인도 한때는 채순이처럼 간호병이였다지…

채순이 편지를 보면 덕지골의 유명호가 비행기사냥군조에 뽑혀 적기 2대를 쏴떨구고 군공메달을 받았다는건데…

왜 훈장을 못받았을가… 그 친구 성미가 용했는데…)

박원진은 슬쩍 윤애사를 돌아보았다.

《윤누이, 비행기 2대를 떨구고 군공메달을 받았다면 어때요?》

《2대? 적어도 국기훈장 3급은…》

《체… 그 친구 그러니 곁에서 부사수로 조력이나 한게지?…》

박원진은 어쩐지 알싸했던 마음이 퍽 가라앉는것을 느꼈다. 사실 그는 대대장련락병시절을 마치면서 군공메달 하나를 받았던것이다.

《원진동무, 떠들지 마오… 적정이 나타났소.》

덤불 앞쪽의 구새통뒤에 은페하고있던 조순근이 뒤를 돌아보며 입가에 손가락을 가져갔다.

박원진은 목을 움츠리고 윤애사는 목을 빼들었다.

샘우물터 저켠 숲을 와삭와삭 헤치는 소리가 들렸다.

박원진의 자라목도 학목이 되였다.

짧은 저녁빛에 칠이 벗겨진 철갑모가 언뜻 보이다가 음식찌꺼기가 짜들짜들 과다붙은 화식도구를 안은 어깨뼈가 솟은 사병의 겁에 질린 모습이 불쑥 나타났다.

화식병은 제 발자국소리에도 흠칫흠칫 놀라며 가끔 멈춰서서 인민군측고지를 흘끔흘끔 바라보다가는 비실비실 샘우물쪽으로 걸어왔다.

박원진은 속으로 피씩 웃었다.

기실 아군쪽에서 먼저 선불질 한적은 없었다.

(알량한 놈들… 초불에 언손 녹일 작자들…)

박원진이 속으로 투덜거리는데 불쑥 앞에서 조순근이 벌떡 몸을 일으켰다.

《야, 너 이슬골 김덕만이 아니가?!…》

조순근의 목소리가 너무 높아 윤애사는 와뜰 놀라며 엉덩방아를 찧었다.

기신기신 샘우물쪽으로 다가가던 화식병은 마른 벼락이라도 맞은것처럼 뒤로 나가넘어졌다. 화식도구들이 사방에 휘뿌려졌다.

박원진또래의 겁에 질린 애숭이얼굴에서 두눈이 더룩거렸다.

그는 기관단총을 목에 건채 장승처럼 우뚝 서있는 조순근을 불안한 눈길로 흘끔흘끔 올려다보다가 입을 딱 벌렸다.

《아니, 순근성님 아니시우? 이런!…》

《덕만이, 네놈이 옳긴 옳구나. 야!ㅡ》

갑자기 조순근은 버럭 소리를 내질렀다.

《베잠뱅이인 네가 양키놈의 앞잡이가 돼? 이놈! 세상에서 제일 못난 이놈, 네가 리승만의 군복을 입어? 이놈, 너 오늘 잘 만났다.》

성이 나서 길길이 뛰는 조순근을 처음 보는 박원진은 영문을 몰라 눈을 껌벅이였다.

한참후에야 언젠가 조순근이 외우던 덕만이라는 이름이 생각났다.

《성님, 너무 몰아대지 말라유. 뭐 이 군복을 입고싶어서 입었나요?

나라를 지키는건 대장부의 일이라고 성님도 말하지 않았나요.》

김덕만은 그제야 정신이 든듯 자못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야, 뭐 나라라고? 그래 양키들이 주인행세를 하는판에 나라는 무슨 나라야?

너두 까추샤지?》

《그래두 우린 〈대한민국〉백성인걸요. 신주사가 하는 말이 빨갱이 세상이 되면 우린 다 러씨야노예가 된댔어요.》

보매 김덕만이도 제 궁냥은 있은 모양이다.

《이놈아, 네놈이 감히 인민이 주인이 된 공화국을 모독해?

야, 덕만아, 넌 네 동생 덕실이를 겁탈하고 개천에 내던진 미국놈들을 벌써 잊었느냐?

그놈들밑에서 총부리를 어디에 돌려?!…》

《성님…》

불쑥 조순근은 입을 다물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잠시 말없이 서있었다.

전선경계선의 《공동경비구역》에는 문득 고요가 깃들었다.

별안간 풀죽은 목소리가 박원진의 귀를 때렸다.

《성님… 성님은 벌써 두줄배기 상관이군요.》

《헛참, 네놈이 속은 궁글지 않은줄 알았더니 이 구새통처럼 되였구나.》

《나두 제 알속은 있어요. 까짓거 아무리 숙맥이라두 피맺힌 원쑤야 모르겠나요. 제길!》

김덕만의 얼굴이 검붉어졌다.

《말은 잘한다.… 야, 덕만아. 그 신주사가 아직 살아있느냐?…》

《체, 신수가 점점 더 멀끔해져서 38도선 이북의

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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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산님의 댓글

강산 작성일

(위에서 계속)

《체, 신수가 점점 더 멀끔해져서 38도선 이북의 땅을 되찾는다고 윽윽해요. 신주사 아들이 우리 대대장이우다. 잰내비상이 생각나지요?…》

《개새끼! 아직 숨이 붙어있구나.…》

조순근이 이를 부득부득 갈았다.

수풀 저쪽에서 수군거리는 인기척이 나는 바람에 그들은 눈길을 돌렸다.

《우리 선임하사가 와요. 성님, 조심하시우. 우리쪽 1참호앞에 이쪽을 겨냥한 저격수들이 한벌 쭉 깔려있어유. 미군공병장교가 지휘해유…》

김덕만은 슬금슬금 뒤로 물러났다.

《짐승도 한번빠진 구뎅이에는 안빠진다는데…

야, 덕만아, 너두 조선사람이지?

조선사람이면 너두 김일성장군님을 따라야 한다!…》

수풀너머가 소란해지고 어슬빛에 총창들이 번뜩이였다.

박원진은 케가 글렀다는것을 깨달았다.

이날도 윤애사는 샘우물을 직접 들여다볼수 있는 기회를 종시 놓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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