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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조선의 힘 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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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0건 조회 2,007회 작성일 20-01-06 0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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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23일, 이날은 바로 5주일전인 10월 15일 웨이크섬회담때 맥아더가 조선전쟁을 끝장내기로 했던 《감은절》이다. 맥아더는 원래 이날에 도꾜의 궁성앞광장에서 성대한 《전승열병식》을 거행하려고 했었다. 그러나 조선전쟁의 형세는 시원치 않았다. 맥아더는 다시 12월 25일 크리스마스전으로 조선전쟁을 결속하겠다고 엄숙히 선언하고 11월 24일부터 새로운 대규모적인 《크리스마스총공세》를 벌리기로 했다.

드디여 11월 24일이 밝았다. 전날 북부조선일대는 맑게 개인 날씨였으나 새날에 접어들면서 하늘에는 검은구름이 낮게 드리웠다고 한다. 맥아더는 그 말을 듣고 이마살을 잔뜩 찌프렸다. 웬일인지 그 검은구름이 심상치 않게 여겨졌던것이다. 그는 나뽈레옹처럼 드러내놓고 미신을 믿지는 않았지만 그 초자연적인, 그 불가사의한 힘에 겁먹군 했다.

그러나 검은구름때문에 작전을 포기할수는 없었다. 작전준비는 완료되였고 청천강남부에 전개한 미제8군 18만 9 000여명은 10시로 예견된 공격개시시간을 묵묵히 기다리고있었다. 더우기 이날의 총공세는 맥아더가 현지에 도착한 다음 시작하게 되였으므로 빨리 서둘러야 했다. 그리하여 맥아더는 전선에 나갈 때마다 입는 전투복차림을 깐깐히 하고있었다. 그때 휘트니준장이 들어와 여러장의 커다란 사진들을 책상우에 펴놓았다.

《뭐요?》

맥아더의 물음에 휘트니는 가볍게 미소했다.

《각하의 반신상제막식의 사진들입니다.》

맥아더는 돋보기를 끼고 사진을 들여다보았다. 청동의 반신상을 여러 각도에서 찍은것인데 맥아더 자기와는 전혀 비슷해보이지 않았다. 반신상은 미국에 사는 일본 조각가 가와무라 고조가 만들었다고 한다. 어제 오후 2시에 도꾜 니혼바시에 있는 미쯔꼬시백화점 중앙홀에서 이 반신상제막식이 있었다.

맥아더는 어느 한장의 사진을 들고 자세히 눈여겨보았다.

반신상밑 대리석받침대에 영어로 새겨놓은 글이 찍혀있었다.

 

맥아더.    나는 누구요?

미합중국.  당신은 영웅이요!

일본.      당신은 힘이요!

자유세계.  당신은 희망이요!

 

맥아더는 그 글이 마음에 들었다. 바로 그것을 사진찍어온 휘트니의 처사도 마음에 들었다. 그러나 저도모르게 손에 들고있던 사진을 떨어뜨리며 이발을 사려물었다. 분노와 수치감과 피나는 증오가 로쇠한 그의 가슴에 불을 지피고있었다. 바로 이렇듯 서반구의 자유세계가 그를 영웅으로 칭송하고있는데 조선에서는 날이 갈수록 그의 명예가 손상되고 깎이우고 짓밟히고있는것이다. 이제 《크리스마스총공세》마저 실패하면 그가 온 생애를 바쳐 구축해온 영웅의 기념비는 형체도 없이 무너져버릴것이다.

맥아더는 쭈글쭈글한 전투모를 눌러썼다.

《갑시다. 지체 말고!》

그리하여 맥아더는 하네다비행장에서 극동공군사령관 스트라메이어중장, 작전부장 라이트준장, 정보부장 월로우비소장, 민정국장 휘트니준장 등과 함께 전용비행기 《스캪》호에 올랐다.

목적한 곳은 신안주비행장이다. 지금 그곳에서는 8군사령관 워커중장과 미l군단장 밀번소장이 벌써부터 나와 대기하고있다고 한다. 그러나 맥아더는 자동차에 실은 사다리가 떨어지기 바쁘게 기장인 스트리중좌에게 명령하였다.

《안주에 내리기 전에 더 북으로 날아가보겠소.》

스트리기장의 두눈이 휘둥그래졌다.

《각하, 그럼 어데까지 가시렵니까?》

《나는 적의 후방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있는지 직접 내 눈으로 보고싶소. 그러니 압록강상공까지 가봐야겠소.》

극동공군사령관이 전투기들의 호위가 조직된 후에 돌아보는것이 좋겠다고 하였으나 맥아더는 《나는 가겠소!》하고 어성을 높였다. 이럴 때엔 아무도 그를 막으려 하지 못했다.

《스캪》호는 지루한 비행시간을 보낸 후 드디여 북부조선상공을 날기 시작했다. 맥아더는 안경을 끼고 눈아래에 펼쳐지는 황량한 세계를 굽어보기 시작했다.

흰눈에 덮인 산줄기들, 작은 댕기오리처럼 늘어진 강줄기, 흰종이우에 검은 점들을 찍어놓은듯 한 촌락들, 복잡하게 얽혀있는 고산지대의 풍경이였다. 바람에 날린 눈가루들이 흰연기처럼 도처에서 피여오르고있을뿐 그가 찾고저 하는것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이것이 신비로운 산악의 나라 조선의 북부지역이다. 유구한 력사와 문화를 자랑하며 소박하고 근면한 인민이 사는 동방의 조선- 이 나라와 이 땅에 사는 사람들에 대하여 서유럽에 알려준것은 13세기 이딸리아의 유명한 려행가 마르꼬 뽈로였다. 더 정확히 말하면 그가 루스띠께르의 손을 빌어 낸 《동방견문록》을 통하여 수수께끼와 같은 조선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후 1653년 항행도중 태풍으로 제주도에 표착하여 14년간이나 억류되여있다가 가까스로 일본 나가사끼로 탈출한 화란사람 하멜이 쓴 《동방 표류기》, 《조선수기》가 영어, 도이취어, 프랑스어로 번역되면서 더욱 본격적으로 소개되였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세계는 이 땅에 사는 사람들에 대하여 다는 알지 못하고있다. 더우기 저 북조선사람들의 견인불발성은 동방에 14년동안이나 머물러있는 맥아더조차 수수께끼로 여기고있다.

(지금 북조선 공산군은 어데 있을가? 무장도 변변치 않고 력량도 보잘것 없는 그들인데 어떻게 되여 8군의 진공을 저지시킬수 있었을가?…)

맥아더는 지금 이 시각 거의 20만에 달하는 미제8군이 공격명령을 기다리고있다는것을 다시한번 상기하였다. 시계를 보니 9시 18분이였다. 10시가 되면 공중과 지상에서 수백수천대의 비행기와 땅크의 지원하에 맹렬한 타격이 시작될것이다. 그러나 보다는 원자탄을 사용하는것이 더 낫지 않겠는가? 한때 일본에 원자탄을 투하한것은 지나친 힘의 과시였었다. 전쟁의 결말이 확연해진 때에 가서 반송장이나 다름없는 일본에도 원자탄을 던졌었는데 여기 조선땅에서는 왜 못쓴단말인가?!… 맥아더는 지금 온 나라가 필사적으로 싸우고있는 이 땅에 보유하고있는 모든 원자탄을 마구 내던지고싶었다. 위험이 증대될수록 더 과감하고 더 혹독하게 싸우고있는 이 나라 사람들을 한꺼번에 모조리 살륙하고 불태워버리고싶었다.

이렇게 맥아더는 신의주 서쪽 압록강하구에까지 돌면서 기창을 통해 내다보이는 눈덮인 산악지방에서 오래도록 눈을 떼지 못하고있었다.

…신안주비행장에서 대기하고있던 미8군사령관 워커중장과 미1군단장 밀번소장은 이미 몸이 얼어있었다. 그들의 찌뿌둥해하는 표정을 피끗 살피며 맥아더는 물었다.

《아군의 사기는 어떻소?》

《사기말입니까?》 워커는 말을 고르느라고 쭈밋거렸다. 《물론 사기는 좋습니다만… 그런데…》

《그런데 뭐가 문제요?》

《보급때문에 골치를 앓고있습니다. 동기피복도 아직 오지 않았고 탄약도 부족한데다가 식량사정은 더욱 한심한 지경에 이르고있습니다.》

《그러면 왜 미리 집중수송을 조직하지 않았소?》

《조직했습니다, 각하!… 그런데 배후에 있는 공산군들이…》

《배후에 있는?…》

《예.》 워커는 장갑을 낀 두손을 세게 비벼댔다. 《배후에 있는 공산군들이 일체 보급로를 차단하고있습니다.》

맥아더는 언짢아했다. 전에도 워커가 배후에 있는 공산군들에 대해 전보로 알려왔었다는것을 상기했다. 그러나 그때 맥아더는 그런 통보쯤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었다. 전선이 압록강, 두만강에 이르면 그만이라고만 생각했던것이다.

《나와 나의 부하들은》 하고 맥아더는 뜨직뜨직 말하였다. 《언제나 미륙군에 승리의 기록만을 남겼소. 당신도 나의 부하인만큼 이점을 명심해두시오!》

맥아더는 가까이 굴러온 승용차로 걸어갔다.

…오전 10시, 미제8군 18만 9 000여명은 드디여 일제히 북진을 개시하였다. 대포들이 미친듯 울부짖고 눈가루 날리는 산마루우에서는 비행기편대들이 우뢰소리를 울리며 날아갔다. 땅크들이 굴러가며 꽈당꽈당 위세를 떨치면 그뒤를 따라 보병서렬이 전진하였다.

맥아더는 미24사단에 가서 띤의 후임인 쳐치소장을 고무해주고 다음은 미2사단으로 갔다. 벌써 공산군과의 처절한 싸움이 붙은 모양으로 흰눈에 덮인 둔덕에서 자지러진 총성들이 울리고있었다. 막료들이 만류했지만 맥아더는 전방가까이 2사단 9련대 2대대의 F중대까지 나갔다. 중대장인 웰레스대위가 달려와 승용차에서 내리는 맥아더에게 목청을 돋구어 보고했다.

《사기는 어떻소?》 맥아더가 물었다.

《좋습니다. 각하!》

《중대의 력량과 무장장비는?》

《옛, 대원 129명, 땅크 4대, 자행포 2문, 박격포 16문, 경기관총은 4개 소대에 각각 2문씩 있습니다. 각하!》

그렇다. 현지에 나와보면 이렇듯 사정은 판판 다른것이다. 장비는 말할것도 없고 사기도 좋다. 그런데 워커는… 《부르독장군》은 무엇때문에 그답지 않은 우는 소리로 나를 기분잡치게 하였던가?… 맥아더는 나지막한 둔덕을 가리키며 물었다.

《적정은 어떻소?… 저 둔덕우에까지 공산군이 진을 치고있단말이요?》

《아닙니다. 각하!》 웰레스대위는 여전히 청높은 소리로 대답했다. 《방금 직승기에서 보급물자를 투하했습니다. 그런데 그 저주맞을 리승만군대가 먼저 덤벼들었습니다. 각하!》

《…》

맥아더는 인차 영문을 알수 없어 얼떠름해있었다. 다시 사정을 물어서야 벌어진 사태의 진상을 알게 되였다. 직승기에서 전진하는 미군부대에 식량을 떨구어 사기를 돋구려 한것인데 굶주린 괴뢰군이 먼저 덤벼들어 둔덕우의 궤짝들을 사이에 두고 호상간 처절한 총격전이 벌어진것이였다.

《사격을 중지하시오!》하고 맥아더는 자제력을 잃고 고함쳤다. 《당장 이 추태를 중지시키오. 당장!》

《사격중지》를 알리는 구령소리들과 《총사령관각하가 나오셨다!》하는 웨침소리들이 한동안 둔덕쪽으로 날아갔다. 이쪽의 격렬한 총성이 그치자 저쪽 둔덕너머에서도 무슨 영문인가싶어 조용해졌다. 맥아더는 얼어붙은 눈더미를 밟으며 둔덕으로 올라갔다. 휘트니준장이 위험하다고 막아나섰지만 성난 눈길로 그를 밀어던졌다. 여전히 기세높은 웰레스대위를 제외하고는 다들 주춤거리며 뒤떨어졌다.

발밑에서 눈더미들이 파헤쳐지고 마른 잡관목들이 와삭거렸다. 눈가루가 날려와 얼굴을 때렸다. 갑자기 눈앞의 돌무지에 탄알이 박혔다. 총성과 도탄되는 탄알의 아츠러운 휘파람소리를 들은것은 그 다음순간의 일이였다.

심장이 덜컥 무너져내렸다. 등골로 줄달음치는 차디찬 전률을 느낌과 동시에 웰레스대위가 그 기세높던 긍지도 다 줴버리고 납작 엎드리는것을 보았다. 그러자 맥아더는 자기 역시 그처럼 분별을 잃고 엎드렸다면 평생 지울수 없는 수치의 기록을 남겼으리라는것을 생각하였다.

《통역을 부르오.》하고 그는 떨리는 목청으로 웨쳤다. 그리고 후들거리는 두 다리가 무너지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다문 한순간이라도 더 버티여내기 위하여 무섭게 긴장한 자세로 굳어져있었다. 통역이 나서서 무어라고 웨쳐대는 소리를 가까스로 분간해들었다. 그 다음 누군가 귀전에 대고 《각하, 그것들이 다 달아났습니다!》하고 속삭이기까지 악몽같은 순간순간을 지탱해냈다. 머리칼이 다 아파날 지경이였다.

다시 걸음을 옮기려니 늙은 육체가 산산이 부서져나가는듯 했다. 그러나 강심을 먹고 락하산이 달린 궤짝들이 있는데까지 다가갔다.

《열어보오.》

어느새 달려온 미군병사들이 총창으로 궤짝을 뜯기 시작했다. 그들의 얼굴에는 수염이 자라고 피곤과 굶주림에 시달린 사람들의 누르께한 죽음의 음영이 비껴있었다. 추위도 아랑곳없이 사납고 광포한 열기로 꿰짝들을 뜯어내거나 말 안듣는 고리쇠들을 두들겨부셔댔다. 맥아더는 침울한 눈길로 그 정경을 바라보면서 자기 역시 무섭게 배가 고파나는듯이 여겨졌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궤짝들 모두가 탄약상자, 수류탄들로 차있는것이다. 비명과도 같은 흐느낌소리가 터진 후 갑자기 무거운 침묵이 닥쳐왔다. 기세높던 웰레스대위의 눈가에 무엇인가 번들거리는것이 보였다.

《대위.》하고 맥아더는 물었다. 《중대에 총탄은 넉넉하오?》

《아닙니다. 각하! 모두해서 5상자뿐입니다.》

맥빠진 대답이였다. 총공세에 나선 군인이라면 응당 이 상자들을 붙안고 기뻐 날뛰여야 하겠으나 오히려 고통스럽게 이그러져 있을뿐이였다.

그 순간 맥아더는 《보급로차단》이라는, 자기가 태평양전쟁에서 일본군을 최종적으로 격멸하기에 앞서 집요하게 추구해오던 작전이 상기되였다. 태평양상의 섬들에서 일본군수비대들은 기아와 질병, 총탄의 부족으로 자멸하고말았었는데 오늘은 그의 병사들이 그 전철을 밟기 시작한것이였다.

(이게 도대체 어찌된 일인가?)하고 그는 미칠듯 한 생각에 사로잡혔다. (방대한 공격력량이 그 출발선에서 벌써 이 지경에 달하다니 도대체 어찌된 일이란말인가?)

배후에 남은 게릴라들에 또 생각이 미쳤다. 아니 그들은 그저 게릴라들인것이 아니라 조직된 력량, 정규군의 련합부대들이였다. 바로 그 련합부대들이 동서간의 작전적련계를 끊어버렸고 보급로를 차단하였다.

《나는 김일성장군유격대 토벌에 직접 관계해본 쓰라린 경험을 가지고있다.… 그들과 싸우자면 전선이라는 개념을 버려야 한다.… 유능한 작전가도 군사령관도 숲속에서 길을 잃은 사람과 같이 되고만다.…》

전 일본군 대좌 다께오의 말이였다. 그러나 그는 그것을 비웃어 넘겼다. 다께오와 그의 《대일본제국》이 바로 맥아더앞에 무릎꿇고 항복하지 않았던가… 웰레스대위의 병사들이 침울하게 모여서있는것이 보였다. 마음을 다잡아야 하였다. 그리고 창자가 비여있는 이 병사들- 공격의욕까지도 거덜이 난 이 병사들의 배를 불려주어야 했다. 한데 무엇으로?… 그 어떤것이든 지금 당장 줄수 있는것은 없을가?!…

《중대를 정렬시키오!》하고 마침내 맥아더는 거만한 시선을 높이 들었다. 전선에서 오래 싸운 병사들을 표창함으로써 전투의욕을 돋궈주리라고 생각한것이였다.

눈가루 날리는 둔덕에 100여명의 장교, 하사관, 병사들이 정렬했다. 그러나 맥아더는 땅크와 자행포에 남은 병사들까지 모두 모이게 했다. 그러느라고 또 한동안 시간이 지체되였다.

맥아더는 낡은 군모를 비껴올리고 대렬앞에 나서자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부터 126일전… 바로 남조선에 상륙한 그때부터 계속 전투에 참가한 사람들은 1보 앞으로 나오시오.》

그의 지시에 따라 대렬앞으로 나온 사람은 천만뜻밖에도 3명이였다. 게다가 두 사람은 부상을 입고있었다. 맥아더는 126일간 계속 싸운 사람들에게 훈장을 달아줄 생각이였는데 몸이 성한채로 남은것은 부중대장인 와인중위뿐이였다.

《중위, 초기엔 중대성원이 몇명이였소? 상륙당시말이요.》 맥아더가 물었다.

《208명이였습니다.》

맥아더는 머리를 흔들었다. 한사람이나 부상당한자들까지 셋을 표창한다 하더라도 129명의 위를 불려줄 리유로는 되지 않을것이다.

그는 어리둥절해 정렬해선 중대를 남겨둔채 둔덕을 내리기 시작했다. 막료들의 무거운 발걸음소리가 뒤따랐다. 자그마한 둔덕이였으나 내리막길은 미끄러웠고 몸의 균형을 잡기가 어려웠다. 그는 F중대의 100여명병사들이 바라보는데서 넘어지지 않으려고 무진 애를 썼으나 끝내 눈더미에서 미끄러져 비틀거렸다. 당황망조한 막료들이 달려들어 거들어주려고 했으나 그는 말없이 한팔을 내젓고 가까이에 있는 마른 나무줄기를 잡아끌었다. 가까스로 로쇠한 몸을 바로세웠다. 이름모를 그 나무줄기가 끊어져 줌안에 남았다. 그는 그것을 잠시 들여다보다가 곧 신경질적으로 내던져버렸다.

맥아더는 평생 처음으로 전쟁의 전망에 대한 극심한 공포감을 품고서 눈덮인 산발들을 바라보았다. 적은 지금 어데 있는가? 어데서 어떤 력량으로 무엇을 준비하는가?!… 아니 적의 력량은 가늠할수가 없다. 이 나라에서는 민간인도 모두 군사인원으로 계산해야 한다.…

맥아더는 문득 마쳐드는 이런 생각에 가슴을 떨었다. 하지만 그는 아직 너무나 많은것을 모르고있었다. 총사령관이라는 권력을 쥐고 방대한 무력을 지휘하는 그였으나 바야흐로 도래하는 정세는 알수 없었다.

만일 그가 좀더 일찌기, 하다 못해 하루전이라도 11월 25일 즉 이제 약 20시간이후부터 인민군대의 결정적인 반공격 즉 3계단 2차작전이 벌어지리라는것을 미리 알았더라면 이처럼 황량한 산기슭에까지 날아오지는 않았을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알게 되기까지는 아직도 얼마간의 시간이 남아있었다. 하늘은 여전히 그의 머리우에 검은구름장들을 낮추 드리우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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