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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전선의 아침 제1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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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1건 조회 5,174회 작성일 20-01-21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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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jpg

제  4  장

 

들판끝의 습지와 불에 타서 푸른빛과 재빛이 버짐먹은 노새잔등처럼 보기 싫게 어우러진 수림가녁을 따라 아직도 비온 뒤의 자욱한 안개가 정암동 골짜기쪽으로 하름하름 기여오른다. 어쩌면 그것은 새벽에 있은 기습적인 폭격뒤의 화염인지도 모른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축축히 젖은 풀숭구리들이 장화목을 넘어 야전복자락을 적시는것도 개의치 않으시고 그냥 사색에 잠겨 저수지앞 들판길을 걸으시였다.

어제 저녁 김일성동지께서는 정찰국에서 올려온 《설악산2호》의 긴급통보를 받으시였다.

극동군사령관으로 임명되여온 클라크가 극비에 작성한 《8개항목타격계획》의 중요내용과 그에 따르는 구체적인 타격대상들에 대한 심상치 않은 자료였다.

이른바 《클라크의 8가지 행동계획》이라고 명명된 그것은 릿지웨이의 《교살작전》이나 《초토화작전》을 훨씬 릉가한 악명높은 작전방안이였다.

후방을 황페화하여 전선을 마비시키려는 흉악한 의도와 함께 한민족의 말살을 목표로 한 무서운 살기가 흐르는 전쟁문서였고 이 땅을 철저한 재더미로 만들려는 야만들의 흉심이 드러난 야망이였다.

밤을 밝히시며 그에 대처하기 위한 방안을 짜시고 해당부문들에 구체적인 지시를 주시고나서도 그냥 마음이 무거우시여 이렇게 밖으로 나오신것이다.

(그래, 미제침략자들은 이태동안의 준엄한 전쟁의 나날 이 땅을 페허로 만들고도 성차지 않아 또다시 살륙의 이를 갈고있구나…)

김일성동지께서는 천천히 걸음을 옮기시였다.

참혹한 전쟁은 최고사령부가 자리잡고있는 이 담박골과 그 앞의 넓지 않은 들판도 사정없이 파헤집어놓았다.

여기저기 널려패운 폭탄구뎅이들마다에는 비물이 고이고 살아오른 물풀들속에서 개구리들이 눈만 말똥말똥 내밀고 할딱거리는데 물웅뎅이를 짬새의 파란 잔디풀밭이 비물에 젖어 파시시 눈을 아프게 한다. 평양치고도 교외여서 이 고장도 전쟁전에는 수목이 무성하여 천연원시림을 방불케 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미제침략군의 계단식폭격으로 나무들이 뿌리채 뽑히고 언덕들이 무너져내리고 논밭은 엉망진창이 되여버렸다.

상처입은 이 나라 강산이 그이의 눈앞에서 신음하고있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가슴이 아프고 마음이 무거우시였다.

그렇다. 산천이 몸부림치고 인민들이 신음하고있다.

눈앞에서 다시금 클라크의 8개 타격안의 항목들이 얼른거리고 아름다운 조국강토를 짓밟은 원쑤들에 대한 격렬한 증오가 전률처럼 지나간다. 심장의 한구석이 지그시 아파나시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걸음을 멈추고 주위를 둘러보시였다.

문득 폭탄구뎅이들사이의 파란 잔디밭이 끝나는 작은 내물곁의 키낮은 오리나무숲에서 군복색갈의 형체들이 언듯 나타났다 사라진다.

혼자서 좀 조용히 사색하고싶으시여 엄히 단속했는데 어느새 부관들이 뒤를 따르는것이다.

(참, 공정수는 어제 밤도 박정덕군단장에게 산나물을 가져다주고 오느라 새웠었지… 오늘은 일요일인데 늦잠이라도 잘게지…)

사실 그이께서는 담바우산에 오르시여 눈에 띄는 곰취며 참나물을 좀 뜯으셨는데 박정덕이 생각나서 공정수에게 돌려보내신것이였다. 곰취는 류경수몫으로 조금 절구도록 장명선아바이에게 부탁하시였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문득 발밑을 내려다보시였다.

허리가 잘룩하고 반들반들 윤기가 도는 까만 개미들이 물기가 채 빠지지 않은 부슬부슬한 흙덩이들을 물고 부지런히 굴밖으로 나르고있었다.

벌써 상당한 《흙산》이 개미굴주변에 원형으로 둘러싸였는데 정교하기 그지없는 《토성》이다.

아마도 아침나절에 내린 소낙비가 개미들에게는 하나의 큰 사변이요 자연의 엄혹한 재난이였던것 같다. 하지만 그것들은 용케도 자기네 굴을 뚫는데서 지형학적타산을 잘한것 같다. 곁에 흐르는 시내물이 큰 비에 불어나도 념려가 없는 묘한 곳을 《토성》자리로 정했기때문이다.

김일성동지께서는 팔짱을 끼시고 두무릎을 굽힌채 개미굴앞에 앉으시여 그냥 그것들을 내려다보시였다.

이것들이 얼마나 부지런한가. 누구의 통제가 없는것 같은데도 열성껏 흙덩이를 나르고있다. 헤아릴수 없는 촘촘이떼가 움직이는데도 《교통마비》는 전혀 일어나지 않는다. 제 굴에 대한 애착이 이토록 자연의 미물에게도 극성과 열성을 주는걸가.

김일성동지께서는 눈빛을 흐리시였다. 개미굴에서 몇걸음 떨어진 곳에서 적기의 기총소사에 의해 생긴 흙사태와 부러진 상수리나무를 띄여보신것이다.

그러니 이 평화로운 개미동네에도 자연적피해와 함께 전쟁의 세레가 들이닥친것이였다. 개미굴이 묻힌 원인은 소낙비에 의한것이 아니라 미제침략군의 기총소사에 의한것이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문득 허리를 펴시였다. 자신의 눈앞에서 놀라운 광경이 벌어진것이다.

개미굴밑의 개바닥에서 대가리가 크고 거무칙칙한 색갈을 띤 큰 말개미무리가 줄을 지어 지나가다가 《개미성》주위를 넘싯거리더니 불의에 공격을 개시한것이다.

덩지가 큰 말개미들은 기세있게 달려들어 흑개미들을 물어메치기 시작했다. 잘 째인 률동으로 성실한 로동을 하던 흑개미떼에 일시 혼란이 일어났다. 답답한건 말개미에게 물려죽으면서도 흑개미들이 입에 문 흙덩이들을 좀처럼 버리지 않는것이였다.

일시 개미굴주변은 수라장이 되여버렸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측은한 생각이 드시였다. 그런데 이때 개미굴에서 검은 진주빛의 조금 큰 흑개미들이 불쑥 나타나 불청객인 말개미떼를 향하여 일제히 달려들기 시작했다. 그 흑개미들의 입집게힘이 얼마나 센지 덩지 큰 말개미들이 허궁 들리여 개미성밑으로 굴러떨어진다. 무슨 분비액을 내뿜었는지 훌렁 나자빠진 말개미들이 성글고 긴 다리들을 바르르 떨다가 굳어져버린다.

김일성동지께서는 그냥 개미굴을 들여다보시며 뒤로 손을 흔드시였다.

《김명수, 공정수! 이리들 오라!》

그이의 부르심에 오리나무뒤에서 두 부관이 헐떡거리며 달려왔다.

《장군님!…》

《이리 오라구. 개미들의 전쟁이 붙었소!》

《예?!…》

덜퉁스러운 공정수가 먼저 허리를 굽히고 개미굴을 정신없이 들여다본다.

책임부관 김명수는 좁은 이마의 주름살을 펴지 않은채 고개만 기웃한다.

《야, 이 낯가죽두꺼운 놈들이 흑개미집을 습격했군요.》

《보오, 얼마나 이악한가.》

김일성동지께서는 군모를 벗어드시였다.

머리를 기웃하고 섰던 김명수가 갑자기 감탄했다.

《요 희끄무레한 말개미들이 조꼬마한 깜장개미들한테 옴짝을 못하누만요. 신통히 우리한테 달려든 미제양키놈들 같습니다.》

두손을 축축한 땅바닥에 붙이고 개미굴을 들여다보던 공정수도 덧붙였다.

《쪼꼬만 흑개미들이라고 얕보았다가 혼쌀납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두사람의 등을 두드리시였다.

《그래 제 보금자리를 지키려는 자각으로 뭉친 힘은 그 어떤 적도 이길수 있소! 정의는 언제나 이기기마련이거든.》

《정말 그렇습니다.》

공정수가 두눈을 반짝이며 힘있게 말씀드렸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는것을 느끼시였다.

비구름이 밀려가고 슬며시 해살이 퍼지고있었다.

개미굴앞을 떠나시여 아직 축축한 개바닥옆의 오솔길을 따라 그냥 들판쪽으로 걸음을 옮기시였다. 다시 사색에 잠겨드시였다.

그러고보면 클라크의 타격안은 이미 실행에 옮겨진셈이다. 미제는 벌써 이 며칠사이에 공화국 전 지역에 대한 무차별적인 폭격을 가해왔다. 그제만 해도 수풍과 장진, 부전, 허천강발전소를 겨냥하고 연 590여차의 폭격을 했다. 지어 5월 중순에는 자기편이 들어있는 장성포로수용소와 강동포로수용소, 묵현리포로수용소까지 무차별 폭격을 가하여 21명을 죽이고 72명에게 부상을 입히는 희비극적인 참사까지 빚어냈다.

그것이 우발적인 행동이겠는가. 이것은 지금 남조선을 행각하고있는 영국의 알렉산더장령에 대한 역습일수 있다. 아군에 포로된 영국국적의 시민가족들이 수십만명씩 떨쳐나 녀왕과 국회를 다몰아대고 얼마전에는 미국에서까지 조선전쟁포로가족관계자들이 조선전쟁의 중단과 정전담판의 조기실현을 요구하여 평화서명운동을 벌리고있다.

한 미군병사 포로의 아버지인 코돌과 또 다른 포로의 어머니 시델부인이 《뉴욕타임스》지에 발표한 반전평화호소문의 절절한 구절들도 생생하게 떠오르시였다.

클라크가 무엇때문에 전쟁개시후 최대의 공습을 들이대고있는가. 웨일랜드대장의 공습편대들은 군사대상이 아니라 공화국의 민간시설들과 경제산업시설들을 목표로 하고 검질긴 공중타격을 들이대고있다.

이것은 심상치 않은 징조였다.

클라크가 공중타격에 의거하리라는것은 이미 예견하시였었다. 이것이 전선을 무력화하기 위한 군사적작전의 일환으로 증대되리라고 생각하시였다.

클라크는 상대적으로 대공무력이 설핀 경제지대들과 공업시설들, 주민지대들을 노리고 련속적인 타격을 규칙적으로 중단하지 않으려 하고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며칠전 내각성원들을 이끌고 미제침략군의 폭격에 무참히 파괴된 평양거리를 돌아보시던 때의 그 괴로움과 격분이 되살아나는것을 느끼시였다.

 

 

…그날 장대재언덕에 오르시여 파괴된 수도의 거리들을 둘러보시였다. 그것을 과연 거리라고 말할수 있는가? 무너진 벽체들과 꺾이운 가로수와 전선대들, 형체없이 파헤쳐진 도로… 그것은 벌써 거리가 아니였다. 거리라는 구조를 찾아볼수도 없는 페허였고 도시의 잔해에 불과하였다.

평양의 중심부라고 볼수 있는 종로거리는 군데군데 산더미처럼 쌓인 무너진 벽돌무지들, 콩크리트쪼각들사이로 다져져 난 외통길로 군용차들이 분주히 다녀 겨우 옛거리의 륜곽을 가늠할수 있었고 폭연이 감도는 불탄 모란봉에 쓸쓸하게 서있는 울밑대며 청류벽을 따라 대동강기슭에 홍수뒤의 삐죽이 솟은 나무마냥 외로이 서있는 련광정과 한옆으로 무너져 앉은 대동문이 눈에 아프게 안겨들었다. 눈에 익었던 도시의 륜곽을 겨우 가늠할수 있는 형편이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무거운 안색으로 처참히 파괴된 도시를 휘둘러 보시다가 수행원들쪽으로 돌아서시였다.

《홍명희선생, 고구려가 평양을 수도로 정한것이 장수왕때였지요?》

도시건설상과 건축가동맹위원장을 앞세우고 뒤에 서있던 홍명희가 반걸음 나섰다.

《그렇습니다. 장군님, 427년이니까 장수왕 15년입니다. 그 이전에 장수왕의 선친인 광개토왕이 천도준비를 착실히 해서 저기 대성산의 광법사, 모란봉의 중흥사, 영명사도 그때 건설되고 안학궁과 장안성도 생겨났습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홍명희가 무거운 분위기를 가시려고 무등 왼심을 쓰는것이 느껴지여 가볍게 미소를 지으시였다.

《그러니 고구려때부터 계산해도 평양은 수도로서 1,500년의 력사를 가지고있는셈입니다.

하지만 〈삼국사기〉나 〈삼국유사〉를 보면 단군이 부루나, 평나에 도읍을 정했다고 썼으니 평양의 력사는 우리 조선의 력사와 맞먹는 반만년을 헤아리지요.》

《옳은 말씀입니다. 〈고려사〉와 〈세종실록〉에도 평양이 단군시조왕이 도읍했던 도시임을 서술하고있습니다. 고조선때만이 아니라 평양은 락랑국때도 수도였습니다.》

《홍선생, 우리의 유구한 이 평양을 지킨 장수들은 또 얼마나 많습니까. 고구려의 왕기, 고건무, 연개소문, 고려때 마탄전투에서 쾌승한 조원, 임진조국전쟁시기의 김응서, 서산대사 그리고 력사에 흔적을 남긴 계월향, 홍경래… 선조들의 애국의 넋이 숨쉬는 이 땅을 미제침략자들이 저렇게 재더미로 만들어놓았습니다. 도저히 형체조차 찾아볼수 없는… 저 페허를 두고 거리라고, 도시라고 누가 부르겠습니까!…》

《?!…》

김일성동지의 안광에 푸른빛이 번쩍이시였다.

《오늘 평양시를 돌아보면서 나는 이 페허의 도시를 세상이 보란듯이 더 웅장화려하게 일떠세울 결심을 다시금 굳히게 되였습니다.

김정희동무, 내가 지난해 1월에 이어 올해 4월에 동무들에게 평양시복구건설총계획도를 완성할 과업을 줄 때에도 언급했지만 그것은 철저한 창조, 미제침략자들이 눈이 뒤집혀 나자빠지게 영웅조선의 기상이 펄펄 나래치는것으로 되여야 하겠소.》

김일성동지께서는 잠시 말씀을 멈추고 도시전경을 둘러보시였다.

《오늘 특히 도시중심구역을 돌아보면서 생각되는것은 비문화적이며 기형적인 일제잔재를 깨끗이 없애버리는거요. 이자 홍명희선생도 이야기했지만 반만년의 오랜 력사를 가진 이 평양성안에 일제에 의해 〈신시가〉와 〈구시가〉가 생겨났거든.

중심시가에 자리잡았던 〈본정〉, 〈대화정〉, 〈황금정〉은 흔적도 없이 가셔버리고 조선의 력대거리들인 모래터지구와 이 종로의 신창동일대, 경림일대를 부각하며 보통강지구와 뺑대거리, 무진천, 동대원지구를 개발하여 앞으로 대동강이 도시의 중심을 흐르게 해야 합니다.

여기 장대재와 만수대, 남산재, 산등재, 해방산 등지에 주요건물들을 앉히고 도시교외로 뻗은 청룡산줄기와 언진산줄기들에는 산업시설들과 시민들을 위한 남새기지를 조성해야 합니다. 그리고 앞날의 대도시를 내다보며 산을 다스리고 물을 길들여야 합니다. 대성산, 금수산, 장산, 창광산, 고령산, 만달산, 수산, 마장산, 대청산, 국사봉, 청운산, 속봉산 등 평양의 주요 산들은 수림으로, 유원지로 꾸리고 대동강만이 아니라 상원천, 무진천, 곤양강과 보통강, 합장강, 순화강들엔 강뚝을 쌓고 다리들을 놓아 도시의 면모를 일신해야 합니다.》

《장군님, 우리 설계건축집단은 장군님의 의도가 총계획도에 철저히 반영되도록 최선을 다하고있습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머리가 크고 몸매가 다부진 건축가동맹위원장 김정희의 대답에 머리를 끄덕이시였다.

《그래, 정희동무, 언제면 우리가 새롭게 완성된 총계획도를 볼수 있겠소?》

《요즘 미제침략군의 도시폭격이 전례없이 심해져 현지측량에서 좀 애를 먹고있습니다. 어떻게 하나 래년봄까지는 완성하려고 합니다.》

김정희가 힘들게 말씀올리자 김일성동지께서는 한손을 내저으시였다.

《정희동무, 그건 틀렸소. 미제침략자들이 평양시만이 아니라 북조선의 모든 도시를 지도에서 없애겠다고 날치는데 거기에 겁을 먹은게 아니요? 놈들의 파괴가 가혹할수록 우리의 창조는 더 억세야 해. 전선의 전사들은 평양을 위해 피흘리고있소. 무조건 올해중으로 끝내야겠소!…》

《장군님, 알았습니다. 올해중으로 꼭 결속을 보겠습니다.》

김정희가 엄숙하게 대답을 올리였다.

장대재에서 내리는 길로 일군들을 데리고 내처 도시교외의 락랑지대를 거쳐 사동과 력포경계의 패주리산주변까지 돌아보시였다.

승용차가 수물봉쪽으로 돌아설 때 또다시 적기떼가 나타났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차에서 내리여 도시중심부로 날아드는 폭격기떼를 주시하시였다. 적기편대 하나가 빠져나와 그리 멀지 않은 덕동일대에 폭탄을 투하하기 시작했다. 수물봉과 제령산쪽에서 아군고사포들이 맹렬히 불을 뿜기 시작했다.

적폭격기들은 고사포불줄기사이를 잽싸게 선회하면서 떨굴건 다 떨구고 황급히 사라져버렸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시 차에 오르시여 한참 달리시다가 덕동가까이의 언덕기슭에 차를 멈추게 하시였다.

산벼랑에 바투 붙여세운 건물이 적폭탄에 맞았는지 검붉은 연기가 아직 치솟고있었다.

낯이 익은 고장이였다. 높지 않은 벼랑과 거기에 바투 붙여지은 단층교사.

문득 어둠이 깃드는 안개속으로 공책묶음을 안고 달음치던 공정수의 모습이 떠오르시였다.

(공정수를 오빠라고 하며 따른다던 소학교 녀교원…)

가슴이 서늘해지시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앞서 달려간 김명수의 뒤를 따라 화염이 솟구치는 소학교 교사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가시였다.

김명수가 두 군인과 함께 급히 마주 달려왔다.

《어떻소?》

《미제침략군 폭격에… 소학교가 직탄을 맞았습니다. 언덕우의 고사포진지군인들이 도와 불을 거진 다 껐습니다.》

김명수가 가쁜 숨을 몰아쉬며 대답올렸다.

《다친 사람은 없소?》

《최고사령관동지, 교실에서 복습을 하던 소학교학생 3명과 녀선생이 부상을 입었습니다. 우리 소대장이 그들을 부대군의소로 날라갔습니다.》

두줄배기 군인이 차렷자세로 보고드렸다.

김일성동지께서는 김명수를 돌아보시였다.

《그럼 공정수를 오빠라고 하며 따른다던 그 녀교원이 아니요?》

김명수가 눈을 내리깔았다.

《예. 소학교에는 녀교원이 한명뿐입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무거운 한숨을 내그으시였다.

《명수동무. 시내에 나간 공정수동무가 돌아오면 시간을 주어 군의소에 보내시오.》

《알았습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얼굴빛을 흐리시며 아직도 연기가 그물거리는 무너진 교사쪽으로 걸음을 옮기시였다.

두 군인과 김명수가 쏜살같이 앞장서 달려가 불타는 나무토막들을 옆으로 치운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무너진 벽체사이로 한 교실에 들어서시였다. 불탄 책상들과 걸상들, 벽보판… 앞벽에서 떨어져내린 흑판도 절반나마 타버렸다. 문득 김일성동지께서는 눈길이 굳어지시였다. 그 까만 흑판에 씌여진 글자들이 눈에 안겨들었던것이다.

《오이, 소나무, 하늘…》

방금전 미제침략군의 폭격전에 소학교학생들앞에서 녀선생이 백묵으로 쓴 글자들일것이다. 글씨가 바른게 참 곱기도 했다. 단정하고 이악한 녀선생의 성품이 알려왔다. 아직도 내내가 홧홧 솟는 희끗희끗한 재무지속에서 무엇인가 파리끼레한것이 눈에 띄우시였다. 그이께서는 매캐한 내굴을 피하시려다가 그 몽토록하고 파리끼레한것을 집어드시였다. 한끝이 까뭇까뭇하게 타들어 끄트머리가 까슬까슬해진 꽁다리연필이였다. 어찌나 바투 깎아썼는지 뒤켠에 박인 《삼천리》라는 상표이름까지 먹어들어갔다. 아마도 어린 소년들이 이걸 고사리손들로 꼭 쥐고 공정수가 가져다준 공책에다 《오이, 소나무…》를 또박또박 베껴나갔을것이다.

그이께서는 불시에 심장 한구석이 찌르는듯 아파나는것을 느끼시였다.

(야수들… 미제야수들… 삼천리강산이 다 불타고있구나. 산새도 깃들 곳 없고 아이들의 보금자리마저… 아이들은… 우리의 희망이고 미래이다. 그래서 우리가 해방직후부터 연필문제에도 신경을 써왔는데… 그 연필공장마저 타버리고… 이제는 이렇게 깎고 깎아 쓰다못해 꽁다리로 변해버린 연필마저 아이들의 손에서 앗아내여 불태우고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주먹을 으스러지게 틀어쥐시였다. 불탄 꽁다리 연필이 줌안에서 산산이 부서져 손가락짬으로 부슬부슬 흘러내렸다. 부서지다 아직 남은 타지 않은 꽁다리연필대가 아프게 손바닥을 찌른다.

그이께서는 교실밖으로 나오시였다. 모자채양을 올리자 진한 석양빛이 눈을 시그럽게 한다. 다시 불탄 교사를 돌아보시였다. 미처 끄지 못한 어느 불붙는 서까래에 맞았는지 불똥이 튀여 군복팔소매에 구멍이 펑 난 김명수가 수행원들사이를 빠져나와 가까이 다가선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목갈린 어조로 물으시였다.

《명수동무, 그 녀교원이 공정수와 어떤 사이요?》

김명수는 머뭇머뭇하며 불탄 군복팔소매를 매만졌다.

《한고향인데…아래웃집에서 살았답니다. 그 녀동문 해방전에 부모를 잃었는데 47년도 평양에 올라와 사범전문을 다닐 때부터 공동무와 친동기처럼 지내는가봅니다. 참하고 무던하고… 인물도 아련합니다.》

《그래? 돌아가면 군의국과 협의하여 긴급한 치료대책을 세워줘야겠소. 부모가 없다니 우리가 대신해야지…》

《알았습니다. 장군님!》

김일성동지께서는 묵묵히 뒤따라선 내각성원들앞으로 돌아서시였다.

《동무들, 전국의 학교실태를 다시 알아보고 아직 밖에 있는 교사들은 무조건 반토굴로 옮겨야겠소. 산간지대라고 하여 례외로 생각해선 안되오. 폭격이 더 심해질수 있으니 강한 대책을 세워야겠소.…》…

김일성동지께서는 회억에서 깨여나시여 그냥 걸음을 옮기시였다.

해빛이 넓게 퍼져가고있다. 어디선가 신기하게도 가냘픈 새소리까지 들린다.

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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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산님의 댓글

강산 작성일

(위에서 계속)

그냥 사색을 이어가시였다.

릿지웨이와 클라크의 교체는 대통령자리를 향하여 거의 경쟁자없는 걸음을 하고있는 아이젠하워의 영향력때문이라는것은 세계가 다 알고있다.

제2차 세계대전의 종식에 기여한 공로로 서방이 내세우고있는 완강한 군사가인 아이젠하워는 선거공약에서 자기가 집권한다면 반년내에 조선전쟁을 끝내겠다고 언명하였다. 그 연설들이 일반선거자들과 정계, 실업계의 광범한 여론을 불러일으키고있을 때 클라크대장이 릿지웨이의 자리를 타고앉았다.

전쟁에서 군사령관교체는 많은 경우 새로운 작전과 전략전술적변화를 의미한다. 교체된 군통수부는 이미 한직이 된 트루맨이 아니라 군사적경험과 지략을 겸비한 아이젠하워의 의사를 따를것이다.

아이젠하워의 6개월 전쟁종결설이 단순히 정전담판의 조속한 결속을 의미하겠는가? 만약 그들이 성실한 자세만 보인다면 보름내에도 이루어질수 있다. 하다면 무엇인가? 또 《영예로운 정전》설인가?

6개월, 아이젠하워에게 그러한 엄청난 시일이 왜 필요하겠는가는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그것은 《금단》의 《전략적》시간인것이다.

하지만 세상에 선포한 그 절대기일의 서막으로 된 클라크의 8개 타격설은 무엇을 노린 전주곡인가. 지상전선의 돌파를 예견했다면 너무도 에두른 돌팔매가 아닌가.

 

×

 

《장군님, 저기 리을설부관장이 옵니다.》

공정수의 보고에 그이께서는 명상에서 깨여나시여 뒤를 돌아보시였다.

급한 걸음으로 거의 달음질치다싶이 하는 날파람있는 군인은 리을설같은데 그 뒤로 붉은줄이 간 군복을 입은 장령들이 멀찌감치 뒤따르고있다.

체격과 걸음걸이로 김일을 알아보시였으나 나머지사람들은 분간하기 어려우시였다. 리을설이 온통 땀배인 얼굴로 다가와 차렷자세를 취했다.

《최고사령관동지, 제가 점심시간까지 기다리라고 했는데 모두들… 장군님신변이 걱정된다고 하기에…》

《됐소, 됐소! 온통 미역을 감았구만.》

김일성동지께서는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리을설의 군모밑으로 줄줄 흘러내리는 땀을 훔쳐주시였다.

《장군님…》

리을설은 숨을 헐떡거리며 뒤로 물러섰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다가오는 일군들과 장령들에게로 마주 가시였다. 그들과 일일이 손을 잡으시였다.

《이거 무슨 요란한 행차들이요? 김일동무와 정찰국장까지? 저 중좌동무는 낯이 익은데. 오, 지난 2월에 적신형직승기 나포작전을 지휘한 리문철동무구만.》

장령들의 맨뒤에 따라서던 리문철중좌가 차렷자세로 보고를 드렸다.

《최고사령관동지, 안녕하십니까?》

《가만, 그때 리동무가 그 직승기를 모스크바까지 호송했었지?》

《그렇습니다.》

《음, 보고서를 읽었소. 난 쏘련사람들이 그 직승기 날개나 부분설계도라도 얻으려고 까게베까지 동원해서 근 반년간 추적한 사실을 알고 놀랐댔소. 그런 면에선 우리가 늦게라도 도와주길 정말 잘했소. 동무가 〈설악산 2호〉도 찾아냈고 공적도 크고 수고도 많았소.》

《…》

리문철은 흰 얼굴이 벌개져가지고 몸둘바를 몰라했다.

《장군님, 사실 적직승기 나포작전에서는 71군단의 58사동무들의 공로가 큽니다.》

《그래?!…》

김일성동지께서는 높은 인간적품격이 엿보이는 리문철이 대견하시였다. 이런 영웅적이고 동지애가 뜨거운 군관들이 우리 군대의 중진으로 태반을 이루고있다는것은 얼마나 좋은 일인가!

《음, 료해해보고 그 동무들도 함께 다 표창하시오. 쏘도전쟁시기말이요. 쏘련에서 영웅이 근 5천명 배출되였는데 이 정의의 전쟁에서 우린 수훈자들이 그보다 몇배 나와도 좋아.

모두가 영웅이 되면 그건 조국의 자랑이 아니겠소.》

김일성동지께서는 김일을 돌아보시였다.

《점심참도 다 되였는데… 기다릴것이지 혼자서 사색도 못하겠구만.》

《장군님, 요즘 적들의 공습이 잦은데 너무하십니다. 이 들판에 어디 은페할데나 있습니까.》

김일이 걱정어린 어조로 말씀드리자 정찰국장과 남일의 눈길이 슬며시 마주친다.

《나는 빨찌산때부터 아직 총알에 다친적은 없소. 동지들덕이지.…》

《장군님, 정말 주의하셔야겠습니다. 이렇게 혼자 다니시는건…》

남일의 말에 김일성동지께서는 가볍게 미소를 지으시였다.

그이께서는 뒤켠에 서있는 김명수쪽을 돌아보시였다.

《왜 혼자겠습니까? 내 늘 동무들과 함께 있지 않소.》

《장군님, 전번 〈설악산〉이 보내온 문건을 참작하여 우리가 대책을 세웠지만 안심할바가 못된다고 생각합니다.》

옆에 있던 최영환이 정색해서 말씀올렸다.

《장군님. 최영환동무네가 특수공작조를 데리고 몇개의 테로조직흔적을 추적하다가 너무도 예상밖의 사태에 직면해서… 이게 그 문건입니다. 얼마전 뺑대거리에서 박정덕군단장동무를 저격한 테로분자들도 바로 그조직에서 파견한것이였습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김일이 올리는 문건을 예민한 눈길로 얼핏얼핏 번져보시다가 물으시였다.

《참, 그때 부상을 입은 박정덕의 팔이 어떤지 모르겠소.》

《장군님, 다행히도 뼈를 다치지 않아 이젠 상처자리도 다 아물고 거의 완치되였다고 합니다.》

한 보름전인 어느날 저녁 박정덕은 상원지구의 고사포진지들을 돌아보고 부대지휘부로 돌아가던중 뺑대거리를 지나다가 미상의 테로분자의 저격을 받아 왼팔에 부상을 입었던것이다. 피를 좀 흘렸지만 제꺽 응급처치를 해서 후과는 크지 않았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박정덕의 부상을 두고 여간만 근심하지 않으시였다.

《박정덕이 팔에 부상을 입고도 제대로 치료받을 생각은 안하고 여기저기를 자꾸 뛰여다닌다는데 좀 단단히 일러줘야겠소.》

《예. 제가 다시한번 신칙하겠습니다.》

남일이 나직이 말씀드렸다.

김일성동지께서는 한걸음 드티시여 남일과 나란히 걸으시였다.

《전번 4월에 교체된 미국측 수석대표가 그렇게 괴짜라면서?》

《예, 소조위원회 대표로 몇번 나오던자이기에 전 별로 대상하지 않았는데 의제 3항토의때부터 이 해리슨중장이 세계적인 기록을 창조한셈입니다.》

남일의 다소 익살적인 말에 걸음을 멈추시였다.

《세계적인 기록이라?…》

《글쎄 이자가 지난 4월 11일 처음 문건가방을 겨드랑이에 끼고 내키지 않는 걸음으로 회담장인 천막안에 들어서서는 제대로 앉기도 전에 급히 〈휴회할것을 제의합니다.〉하고는 일어서서 나가버렸습니다. 이런 일이 세번씩이나 반복되였는데 외신기자들이 그 시간까지 측정해서 세상에 발표했습니다.》

《그래 시간이 얼마였소?》

《2분, 1분 30초, 지어는 25초도 있습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호탕하게 웃으시였다.

《하하하, 진짜 국제회의 기적이요. 전쟁쌍방의 회담력사는 수천년을 넘으니 이 해리슨이라는 작자가 후세에 남을만 한 일화를 만들어냈구만.

음 그러니 클라크가 이런 괴물을 수석대표로 임명했단 말이지…》

남일의 얼굴에 다소 어두운 그림자가 지나갔다.

《최고사령관동지, 아무래도 놈들의 태도가 심상치 않습니다. 중립국지명문제와 비행장문제까지도 일정한 합의를 보고 군사분계선문제와 전쟁포로문제만 남아있는데 적들이 계속 성의없이 나오는 리면이 중시됩니다.

무엇을 망설이고있는지, 시간을 얻으려는것인지, 전번에는 제가 거제도학살사건을 두고 되게 때렸습니다. 이번 회의에서는 해리슨이 〈본관은 담판이 아니라 의견을 청취하라는 명령을 받았다.〉고 로골적으로 말하는데까지 이르렀습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잠시 말씀이 없으시다가 다시 걸음을 옮기시였다.

《남일동무, 지금 놈들은 전선의 고착과 공회전을 하는 회담의 막뒤에서 꿍꿍이를 하고있소. 지금이야말로 전국을 예리하게 주시 분석하고 전략적대책을 세워야 할 중대한 시기요.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적들은 군통수부를 교체하는 등 급작스러운 변동을 보이고있지 않소.

이건 벌써 번개빛이나 같소.

이제 우뢰소리가 날게요.

총참모장인 동무는 이제 회담장밖을 예리하게 둘러볼 때가 되였소. 찍어말하면 클라크가 이 전쟁의 국면을 급변시킬 새로운 대공세를 준비하고있으리라는거요.》

《?!…》

묵묵히 뒤따르던 남일이 정색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어제 팽덕회사령원이 휴식겸 병치료로 귀국하는것과 관련한 모임에서 론의가 좀 있었습니다.

중국동지들은 아이젠하워가 전직과 경력으로 보아 평화의 모자를 쓰자고 할것이므로 대통령취임식이 끝나면 적당한 구실로 전쟁을 종식하는 협정에 조인할것으로 락관하고있었습니다. 함께 참석했던 쏘련대사관무관은 자기네 원수 꼬미샤가 아이젠하워를 잘 아는데 장군님께서 말씀하신것처럼 정전은 흰기이므로 물러서지 않을것이라는 견해를 표명했습니다.》

《음… 덕회동무는 어떻소?》

《그는 쓰다달다 아무말도 없었습니다. 헤여질 때 장군님께서 작별방문시 귀중한 약재를 주시여 감사하다고 진심의 인사를 했을뿐입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머리를 가볍게 끄덕이시였다.

불쑥 국사봉쪽에서 아군의 대공화력이 하늘을 써는 장벽사격소리가 들렸다.

장령들이 긴장하여 멈춰섰다. 멀리 담바우산골짜기끝쪽으로 적비행련대가 사라지고있었다. 그쪽에서 고사기관총의 아츠런 소음과 고사포의 둔중한 포성이 엇섞여 들려왔다.

《적기들이 최고사령부쪽으로 날아갔습니다.》

공정수가 저만치 달려가며 소리지른다.

일행이 저수지를 지나 언덕을 넘어서자 타래치는 연기가 보였다.

미제침략군비행대가 최고사령부갱도입구에 자리잡은 경리부건물에 폭탄을 투하한것이다.

무너진 식당옆에서 장명선아바이가 땅을 치며 울고있었다.

《누가 다쳤소?》

김일성동지께서는 급한 걸음으로 다가가시였다.

공정수가 되돌아내려오며 보고올렸다.

《장군님, 제때에 대피하여 다친 사람은 없습니다. 저 장아바이가…》

김일성동지께서는 급한 걸음을 다가가시였다.

공정수가 되돌아내려보며 보고올렸다.

《장군님, 제때에 대피하여 다친 사람은 없습니다. 저 장아바이가…》

김일성동지께서는 놀라시여 장명선을 돌아보시였다.

《아바이, 무슨 일입니까?》

장명선이 눈물범벅이 된 얼굴을 들었다.

그의 손에는 깨여진 오지단지쪼각들이 쥐여져있었다.

《장군님, 이런 청천벽력이 어디 있습니까.… 글쎄 저 죽일놈들이… 이 고추장단지를… 어이후, 이를 어쩝니까.…》

김일성동지께서는 온통 연기에 끄슬리고 흙투성이가 된 장명선의 손을 잡으시였다.

《자 장아바이, 진정하시오. 미제놈들이 유독 우리 장아바이 보물을 겨냥하고 덤벼들다니…》

《면목이 없습니다, 장군님, 장군님앞에서까지 아끼던건데…》

《마음 놓으십시오. 우리 미제침략군놈들이 나자빠지게 더 맛있는 고추장을 만듭시다.》

위장망을 친 차체가 비교적 큰《윌리스》한대가 담박골에 들어서는 바람에 모두의 눈길이 그쪽으로 쏠렸다.

폭격속을 헤치고 달려오느라 바퀴며 기관실덮개우에 흙먼지가 뽀얗게 앉았다.

앞문이 열리며 키가 후리후리한 장령이 뛰여내려 군복매무시를 바로 한다.

《허, 박정덕동무가 아니요?…》

김일성동지께서는 반색을 하시며 장령들을 돌아보시였다.

박정덕이 급히 다가와 인사를 올리였다.

《그래 무슨 일이요?… 정덕동무를 한번 찾으려던 참이였는데…》

김일성동지께서는 박정덕의 손을 따뜻이 잡으시였다. 어쩐지 전보다 손에 굳은 살이 배긴게 좀 투박하게 느껴지신다.

《장군님, 어제 보내주신 곰취랑… 정말 오래간만에 산나물구경을 했습니다.》

박정덕은 얼굴이 불그레해져서 눈길을 내리깐다.

《량이 작아서 맛이나 보았을게요.

사실은 내가 저 공정수네를 데리고 아침산보겸 담바우산에 올라 심심풀이로 뜯었던거요. 곰취야 원래 룡악산에 많지…》

김일성동지의 말씀에 박정덕은 군모를 바로 쓰며 머뭇거리다가 차쪽으로 되돌아섰다.

박정덕은 운전사와 함께 뒤문을 따더니 큼직한 상자 세개를 끄집어냈다.

상자안에는 정히 다듬은 풋배추들이 차곡차곡 쌓여있다.

《이게 풋배추가 아니요?…》

《장군님, 우리가 심어가꾼 첫물배추입니다. 변변치는 않으나… 맛보시라고…》

박정덕은 얼굴이 벌개져가지고 점직해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말없이 풋배추 하나를 들고 내려다보시였다. 무엇인가 가슴 한구석이 뭉클하시였다. 그 새파란 잎새가 그냥 풋배추로만 여겨지지 않으셨다.

그이께서는 뒤따라선 최용건을 돌아보시였다.

《보위상동무, 이젠 박정덕이네가 전사들에게 싱싱한 남새를 공급하게 됐구만.》

최용건이 우선우선하며 풋배추상자를 살펴본다.

《제 전번에 들렸을 땐 싹만 파릿파릿했댔는데… 군단장동무가 이젠 남새부자가 됐습니다. 남새종자값을 떼먹어 우릴 골탕먹였지만…》

《박정덕동무, 첫물이래두 이것만으로는 안돼. 보위상동무에게 인사를 단단히 해야겠소. 하하하…》

김일성동지께서는 즐거우신듯 한참동안이나 풋배추를 만져보시다가 박정덕에게로 다시 돌아서시였다.

방금 상자를 부리울 때 보니 박정덕이 아직 왼쪽 팔을 쓰기 불편해하는것같이 느껴지시였던것이다.

《정덕동무, 부상자리는 어떻소?…》

《장군님. 이젠 일없습니다.》

박정덕은 차렷자세를 취하며 활달하게 대답을 올리였다.

어쩐지 횐쪽 팔이 채 펴지지 않은것 같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낯빛을 흐리시였다.

《정덕동무, 그러단 주은래동무처럼 한쪽 팔이 휘고말겠소. 아무래도 온천치료를 받아야 할가보우. 전선사령부 군사위원 김익이 지금 삭주에 가있는데 그곳 온탕이 효험이 있소.》

《장군님, 보십시오. 이젠 정말 다 나았습니다.》

박정덕이 뒤로 한걸음 물러나며 왼쪽팔을 폈다 구부렸다 하면서 중얼거렸다.

《박정덕동무, 동무에게 따로 임무를 줄것도 있으니 준비를 해두시오.… 이 전쟁이 하루이틀에 끝나는게 아니요. 우린 큰 격전을 치를 각오를 해야 해!》

김일성동지께서는 문득 사색에 잠기시였다가 수행원들을 돌아보시였다.

《명수동무, 이 풋배추를 식당으로 가져가오. 장명선아바이에게 이걸로 김치도 담그고 된장에 푹 끓이게 하오. 풋배추국이 소고기국보다 낫소. 그 아바이가 고추장단지를 깨먹고 지금 기분이 말이 아니요.》

한낮의 태양이 담바우산상공에서 지글거리고있었다.

 

×

 

창문마다 차광막을 꼼꼼히 친 리승엽의 방에는 여러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다담상 비슷한 상우에는 술병까지 놓여있다.

장령숙소에 왔다가 리승엽이 찾는다는 소리에 처음으로 이 방에 들어선 차국천은 한동안 어리둥절해 서있었다.

《왜 관청에 온 촌닭처럼 그러고있소.》

리승엽은 차국천의 손을 힘껏 잡아흔들고는 구석쪽으로 그를 이끌어갔다.

《동무 나한테 의견이 많다지?》

차국천은 그만에야 눈길을 내리깔고 그간 불안에 타던 속내를 구구히 터놓았다.

《야단났습니다.… 내 리승엽동지가 군사위원회지시라고 해서 서천의 부대들을 금당지구로 옮겼다가 큰코 다칠번 했습니다.》

리승엽의 눈이 세모꼴이 되였다.

《그래 뭐가 잘못되였단 말이요?》

《그날 서천에서 전투가 있잖았소. 대단히 심상치 않은 전투였소.… 미군이 어떻게 빈틈을 알고 금당을 치는척 하다가 서천쪽으로 기여들었는지… 우리 박정덕군단장이 되게 문제를 세웠소. 최고사령부에 정식 제기하는가 하면 어제는 최영환부국장과 특수공작조군관들이 우르르 내려와 조사를 해댔소. 내 립장을 생각해보우. 비판을 좀 받았소. 땀 깨나 흘렸단 말이요. 이거야 버선목이라고 뒤집어보일수가 있나…》

차국천이 컴컴한 얼굴로 계속 우는 소리를 하자 리승엽은 세모진 눈을 풀었다.

《박정덕이, 그새끼… 여보, 차군사위원, 당신이야 그래도 볼쉐비크정통파인데 왜 사람이 그리 맹물이야. 항일련군 지대장이나 한 젊은 량반에게 꼼짝 못하고 잡혀사니… 쯧쯧.》

《그렇지 않소. 내막을 말하면… 하긴 내 예감인데 최고사령관동지께서 이제 그를 중히 쓰실것 같소.

좀 까다롭지만 명석하고 성실한 인물이요. 례절도 있고…》

리승엽이 듣다 말고 전선사령관옆에 앉은 박일우를 흘겨보았다.

《여보 내무상동무, 당신은 왜 멀쩡한 사람이 최영환부국장네 특수공작조가 돌아치는걸 알지도 못하우?》

얼굴이 벌개진 박일우는 흥 하고 랭소를 지었다.

《말도 마오. 요즘은 우리 성도 방학세부상이 일을 주관하오. 난 강건너 불보기야. 다 귀찮소! 명색이 상이지…》

리승엽은 한동안 생각에 잠기여 눈을 또글또글 굴리며 담배만 풀썩풀썩 피워댔다.

《뭐 다른 일은 없겠지요?》

차국천의 미심쩍어하는 소리에 리승엽은 싱그레 웃었다.

《차동무, 그 포련대야 평양원형방어로 남포쪽을 견제하기 위해 강서 대보산지역에 주둔한걸 그자가 자의대로 서천에 옮긴게 아니요?》

《그건 옳소.》

《그럼 뭐가 잘못되였는가? 그 일대에 미군항공륙전대가 투하하여 작전을 편건 사실이 아니요. 우리 특수공작지대의 통보내용을 저 내무상도 알고있소.》

《그건 사실이요. 10지대의 통보도 정확했고 전투도 분명 있었지.》

듣지 못한줄 알았더니 웬걸 박일우가 제꺽 응수한다.

《후ㅡ》

차국천은 머리를 기웃거리다가 그제야 안도의 숨을 내쉬였다.

《여보 국천동무, 그 박정덕이가 또 뭐라고 줴칩데?…》

《그건 무슨 소립니까?》

차국천이 미심쩍어하자 리승엽은 대진내가 풍기는 누런 이를 드러내며 느슨하게 웃었다.

《허허, 너무 안하무인격이 돼서 그러우. 군사위원회를 뭘로 아는가 말이야. 물론 그때 너무 급해 절차를 다 밟지는 못했지만… 사실 그 박정덕이가 제2전선때부터 성미가 말랐댔소. 좋게 말해서 원칙이 강하다고 할지. 너무 날친단 말이야.》

리승엽의 가시든 소리에 차국천은 풀기없이 중얼거렸다.

《요즘 박정덕군단장이 뺑대거리에서 테로를 당한후 몸이 여의치 않수다. 장군님께서는 그를 삭주고급군관휴양소에 보내겠다고 하셨소. 무슨 중대한 임무를 받아가지고 치료겸 인차 떠날것 같소.》

《삭주후양소라…》

리승엽이 혼자소리로 중얼거렸다. 차국천은 얼핏 고개를 들었다. 순간 두 사람의 눈길이 부딪쳤다.

슬기운이 올라 벌개진 리승엽의 말상에서 작은 눈이 한찰나 파란 빛을 펑끗 내뿜었다. 차국천은 웬일인지 가슴 한구석이 섬찟해지는것을 느꼈다.

리승엽은 눈을 내리깔았다. 그러자 파란 불꽃은 간데온데없이 사라져버렸다.

《허허, 전선이 고착되니 군사지휘관들도 셈평좋게 휴양살이라… 전선사령부 군사위원 김익이와 교대하자는건가? 여보, 국천동무, 내 아까는 열이 좀 올랐댔는데 이러니저러니해도 이런때 군사위원이 군단장을 잘 도와주오. 어쨌든 그는 재능있는 군사가요. 흔치 않아…》

저으기 마음이 풀린 차국천도 술잔을 끄당겼다.

《그러지 않아도 총참모장의 신칙이 벌써부터 있었소. 통신성원조를 딸려보내라고 말이요. 최고사령부와 부단히 련계를 가지고 수행해야 할 중대임무를 맡은것 같소. 장군님께서도 한번 찾으시겠다고 하셨소.》

《그래요?…》

리승엽이 또 눈길을 들려다가 그만두고 실눈을 지은채 잔을 단숨에 비워버렸다.

리승엽은 뒤켠에 표표해 앉아있는 사나이를 얼핏 쳐다보았다.

《여 배철처장동무, 내 좀 뗑한데 10지대에 무슨 제기된것이 없나 알아보우. 겸해서 왕동무의 위치도 확인하고…》

《알겠시다.》

배가가 빠지자 리승엽은 술좌석을 향해 돌아앉았다.

《자, 자, 자! 이젠 우리 〈관동별곡〉이나 들읍시다레. 지난해 개천절날 들으니 황진이 찜쪄먹겠습니다.》

리승엽이 갑자기 너스레를 떨며 일본식으로 두손바닥을 펴고는 가락맞게 척척 들어다놨다했다. 다홍치마에 비단마고자를 받쳐 입고 분을 다닥다닥 바른 젊은 녀자 둘이 하나는 가야금을 들고 하나는 바얀을 들고 방에 들어서는것과 함께 례의 검은색 가죽잠바를 입은 배가가 슬며시 나타나 리승엽의 귀가에 얼굴을 가져갔다.

《응?!》…

리승엽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바람처럼 방에서 나가버렸다.

옆에 앉았던 차국천이 이상한듯 머리를 기웃거리며 경계심어린 눈길을 던졌다. 어쩐지 흥심이 깨져 제앞에 놓인 잔을 들고 근심스레 들여다보기만 했다.

안주인격의 해사한 녀자가 몸을 꼬며 듣기 거북하고 낯선 꼬부랑노래를 빨래줄처럼 길게 늘어빼고나니 이어 분떡바른 녀인이 가야금을 제법 기술스럽게 둥기당당 뜯는다.

《거 황진이를 불러라!…》

박일우가 억지스럽게 흥을 돋군다.

《황진이를 부르랍신다ㅡ》

누군가 혀꼬부라진 소리로 되받아넘기니 별스레 간질간질한 목소리가 차국천이 저 삼수갑산 잠뱅이시절 늘 보아온 잘 익은 농마국수가 분틀에서 빠져나오듯 슬슬 굴러나온다. 안주인격의 비린 악청보다는 듣기 한결 편하다.

차국천은 화김에 군복웃주머니에서 례의 그 큼직한 라이타를 꺼내 절컥절컥 담배불을 켜댔다.

 

청산은 내 뜻이요 록수는 님의 정이

록수는 흘러간들 청산이야 변할손가

록수도 청산을 못잊어 우러 예어 가난고



 

(어쩐지 리승엽이 저자가 께름하단 말이야.

2전선시기인 저 평강군 하송관리때부터… 저자가 왜 뒤마려운년 무우썰듯 들락날락일가? 이건 꼭 변기에다 물을 떠들고 세수한 기분이거든… 이방 분위기도 같아. 이게 혁명성이 조금이라도 있는덴가. 《황진이》란 또 누군고?…)

차국천은 바늘방석에 앉은 기분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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