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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50년 여름 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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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0건 조회 5,925회 작성일 20-02-20 0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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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jpg

종 장

 

7월 21일 새벽부터 련속타격과 대규모적기동으로 특징 지어지는 아군의 4차작전이 개시되였다. 전선은 하루사이에 수㎞, 지어 수십씩 전진하였다.

세계는 이 전광석화와 같은 공격속도에 찬탄을 금치 못하였다. 빠리, 런던, 뉴욕의 조간, 석간신문들에는 매일 빠짐없이 이 리해할수 없는 군대의 전투에 대한 소식을 실었으며 텔레비죤회사들과 잡지사들에서는 11만밖에 안되는 북조선의 지형과 문물을 소개하며 돈을 벌었다. 장죽을 물고 망건을 쓴 자그마한 백의인이 나귀를 타고다니는 그림들로 소개되던 조선안내광고는 날카롭고 예지있는 인상을 과장하여 그려낸 날파람있는 인민군군관과 전사들의 초상소개로 바꿔졌다. 세계는 2차대전후의 초대국으로 등장한 미국군대의 련속되는 패전을 20세기의 수수께끼로 떠들었으며 세계지리전문가들의 상식속에 콜롬부스이전의 미발견반도처럼 새겨졌던 조선이 경이의 나라, 경탄할 민족들이 사는 나라로 알려졌다.

이즈음에 와서 트루맨은 안면신경마비 비슷한 병증에 걸려들었다. 오랜지기인 주치의는 그것이 과로한 신경성흥분과 분노의 발작으로부터 온것이라고 말하였다. 휴식과 오락을 권하는 주치의의 말대로 트루맨은 단 몇시간이라도 악몽같은 현실을 떠나고싶어 때마침 열리는 딸 리사이틀의 음악회에 갔었다. 그러나 이것은 혹떼러 갔다가 혹붙인셈으로 되였다. 리사이틀은 첫 곡을 다 부르기전에 휘파람과 발구름, 마지막에는 썩은 닭알세례를 받았다. 그다음날 세개의 주도시들에서 미24사 장병가족들의 반전시위가 벌어졌다. 투서와 항의편지들이 끊임없이 백악관에 날아들었다.

《력대대통령중에서 으뜸가는 바보!》

《미국의 아들딸들을 죽음에로 끌어가는 요단강의 배사공》

《이제라도 조선에서 손을 떼라.》

민주당의 국회의원들이 그의 무능을 두고 우롱했고 갖은 비난과 모욕으로 그를 짓밟았다.

트루맨은 진퇴량난의 협곡에 빠져든것 같은 극도의 절망과 자포자기의 분노속에 몸부림쳤다. 7월 26일 아침 후버(미련방수사국장)가 제출한 자료에는 프랑스의 한 기자가 김일성수상을 만나기 위하여 빠리를 출발하였다는 보고가 적혀있어 그를 더욱 격분케 하였다. 기자가 북조선에 간다는 사실에서보다 대통령에게 보고할 하등의 중요성도 없는것을 고의적으로 적어넣은것은 마치 멀잖아 친선적인 우방국가의 공민들이 트루맨을 저버릴것이라는 암시처럼 여겨져 괘씸한 생각을 금할수 없게 한것이였다.

그런데다가 관방실장은 띤의 부인이 찾아와 행방불명된 남편을 찾아달라고, 그렇지 않으면 대통령을 만나겠다고 성칼지게 들이댄다는것이였다. 그런데 그날저녁 청천벽력같이 맥아더로부터 대만의 장개석을 만나련다는 취지의 보고가 CIA(미중앙정보국)선으로 들어왔다. 장개석을 만나는것은 개전직전 백악관과 펜타곤의 밀실에서 작성한 《한국군》의 평양입성과 더불어 대만군을 중국본토작전에 인입하기 위하여 계획된것이였다. 이미 서울을 잃은 시각부터 이 전쟁의 모든 희망을 털어버린 트루맨은 몸이 오싹한 상태에서 텔레타이프앞에 맥아더를 호출하였다. 그런데 맥아더의 대답은 그를 미칠 지경에 몰아넣었다.

맥아더는 중국본토공략작전에 장개석군을 내세움으로써 전쟁을 국지전으로부터 세계적인 판도로 넓혀 《자유세계국가》군대 전부를 《공산권박멸》전쟁에 한시바삐 인입시켜야 된다는것이였다. 이것은 6월 26일까지 트루맨이 견지하던 구상이였으나 언제 그런 생각을 했더냐싶게 다몰아댔다.

《존경하는 원수, 귀관은 리성을 잃고있지 않는가. 지금 귀관과 귀관의 군대에 대한 나자신과 미국의 믿음이 여지없이 허물어지고있다. 패퇴하는 전선, 잃어버린 미국의 병사들, 사단과 사단들… 귀관은 미국전체를 24사로 만들려고 하는가.》

《각하, 절망하기에는 이르다고 본다. 기회는 있다. 나에게 다섯개 사단을 더 증파하라. 그러면 반드시 수복할것이다.》

《그것은 어렵다. 귀관과 귀관의 군대의 실패는 군대의 동원을 심한 난관속에 물아넣고있다. 귀관으로 하여 미국은 지금 세계의 웃음거리가 되고있다.》

《실패의 책임이 어떻게 나에게만 지워지는가. 지금은 이것이 문제가 아니다. 일단 일에 들어선이상 우린 물러설수 없다.》

맥아더의 대답은 도전적이였다.

트루맨은 그의 말에 엄연한 진리가 있음을 실감했다.

미국이라는 나라 전체를 걸고 도박판에 들어서지 않으면 안된다는것을 깨달은 트루맨은 모든것을 하느님께 맡긴다는 심정으로 지상군의 계속적인 투입을 약속하고 대만의 장개석을 전쟁에 말아넣는 모험만은 삼가하라고 간청하는투로 말했다. 맥아더는 그에 대한 대답은 피하고 워커가 있는 《한국》전선에 날아가겠다는 울분어린 말로써 대화를 마쳤다. 트루맨은 《나는 귀관이 더는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기를 바란다.》는 반위협, 반애원의 말을 남기고 기대에서 물러났다. 그리고 그는 국무장관 애치슨을 불러 1950년-1951년 군사비를 배로 늘일데 대한 문건기안을 지시했다.

이날 트루맨은 진종일 우울과 락담속에 전전긍긍했다. 한편 트루맨으로부터 일생 최대의 모욕을 당했다고 생각한 맥아더는 그다음날로 워커의 사령부로 날아갔다. 8군사령부를 부산으로 옮기겠다는 워커의 제의를 단호히 일축해버린 맥아더는 단 한번이라도 인민군을 이기는 승리적인 전투조직을 요구해나섰다. 그리고 신성모와 정일권이 참여한 한미고위지휘관 비밀회의를 벌려놓고 대전전투실패를 간단히 총화했다.

대전전투의 실패책임은 띤과 함께 워커사령부의 판단에 혼돈을 야기시킨 채병덕에게 들씌워졌다. 법적추궁문제가 론의되자 채병덕을 처벌전투에 내보내려는 신성모의 제의가 수락되였다. 맥아더는 반쯤 조는 자세로 앉아 침묵을 지켰다. 그때 그는 트루맨과 자기 관계를 되살펴보았으며 언젠가 자기에게도 그런 운명이 차례지지 않겠는가를 생각하였다. 트루맨과의 텔레타이프회견에서는 호기를 보인 그였으나 이 싸움에서 승리를 거둘 실제적인 전망은 찾아보지 못했기때문이였다.

일단 심연을 향해 떨어진 물체는 등가속도의 법칙으로 골바닥에까지 떨어지는것처럼 시위를 떠난 화살은 그냥 나는데까지 난다는 식으로 맥아더는 필사의 발악을 하는것이였다.

채병덕은 7월 27일 낮 12시에 련락장교로부터 신성모의 편지를 받았다.

편지는 첫서두부터 살기가 풍기는 글이였다.

《귀하는 서울을 잃고 대전방위에 치명처를 입혔다. 책임은 크고 중하다.

지금 적은 전남에서 경남으로 지향하고있다. 련합군사령부는 이 적을 격퇴하는 모범전투를 조직하게 되였다. 강력한 미군의 정예대대로 진행되는 금번 전투에서 귀관은 아군 대대를 이끌고 안내 겸 독전관자격으로 나서게 된다.

무공을 세울 절호의 기회다. … 귀하의 성공을 빈다.》

채병덕은 자기의 운명에 끝장이 왔음을 감득했다. 그는 신성모의 편지를 찢어버리려다가 자기가 보던 시집갈피속에 밀어넣었다. 자기가 손톱금을 그어가며 읽던 시줄이 한눈에 확 안겨들었다.

 

나 언제라도 다시 온다면

어릴적 딩굴며 놀던

고향동산에 돌아가련다

푸른 들판 맞닿은 끝없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내 언젠가는 안식을 그려

모기불에 옛이야기 끝이 없는 고향집으로 가련다

지는 해에 붉은 노을을 등에 드리우고서

내 기다란 그림자 길게 끌고

동구에 들어서

다시 세상을 살지 못하는

운명이여…

 

채병덕은 그 시집을 가슴에 품고 세시간후 미29독립련대 3대대의 선두에서 경상남도 하동고개에 올랐다. 좌우앞은 깊은 골짜기였다. 그 골짜기에는 인민군 한개 기습대가 진을 치고있었다.

인민군전사의 보병총총창이 번쩍이는것을 본 채병덕은 권총을 황급히 뽑아들었으나 너무나 늦었다는것을 알았다. 인민군 경기관총이 불을 뿜었다. 채병덕은 사태를 설명하려고 고개를 돌리다가 아무 소리도 못하고 꺼꾸러졌다.

괴뢰의 비참한 운명의 표본으로 채병덕은 이렇게 죽었다.

이날 하동고개에 오른 미군은 단 하나도 살아돌아가지 못했다.

맥아더는 하동전투가 실패하고 경상남도, 전라남도계선 방어진이 허물어졌다는 보고가 들어오자 미8군사령부의 부산철퇴를 승인하고 즉시 자기의 《바탄》을 타고 도꾜로 날아갔다.

그 시각 서울시 야전병원에서는 리복심이가 갓 찍어낸 신문을 보고있었다. 신문에는 최고사령부의 전과보도로부터 새로 군대에 입대하는 로동청년들에 대한 소식, 무슨 이전 《국회》의원이였다는 안재홍이라는 인사의 담화며 하는것들과 함께 대전전투에서 위훈을 세운 군인들에 대한 수훈명단이 게재되여있었다.

복심은 송기덕이 사주고간, 이제는 겉면이 약간 말라 보들보들한 감촉이 도는 사과를 매만지며 신문 2면의 수훈자란에 적힌 자기의 남편이름을 보고 또 보았다.

 

푸른 새벽 림진강의 잠수교우로는 거의 그칠새없이 포차며 군용차들이 남으로 남으로 달렸다.

그 흐름을 거슬러 중절모를 깊숙이 내리쓴 체대 큰 로인이 커다란 배낭을 지고 걸어왔다.

물면에 약간 잠긴 다리를 내려다보고 바지를 걷은 그가 다리목에 들어서자 호각소리가 울렸다.

로인은 머쓱한 태도로 호각을 든 군인을 보며 배낭을 다시 추슬러메고 용기를 돋구듯 건기침을 한다.

《아바인 어데로 가시는 길입니까?》

《평양으로… 갑니다.》

《평양으로요?》

경무관은 뚫어지듯 바라보다가 의례히 하는 식으로 물었다.

《증명서가 있습니까?》

그러자 로인은 구겨진 모시적삼안자락에서 보풀이 질사 한 종이장을 내밀었다. 경무관은 그 종이장을 보고는 로인의 얼굴을 다시 쳐다보고 또다시 종이장을 보다가 밝은 웃음을 지었다.

《아바이, 저기 앉아 잠간 쉬십시오. 이제 위생차들이 오면 태워드리겠습니다.》

《성의는 고마우나 일없습니다. 난 걸어갈 작정이우다.》

《평양까지요?》

《네. 과객이 되여 가보자는겁니다. 북조선구경이지요. 아시겠소? 옛날 혜초라는 우리 먼 조상되는 사람은 수만리 대륙길을 도보로 걸어갔소. 그 사람은 풍물구경이지만 난 나라의 얼을 찾아가는 걸음이요.》

이상스런 대답에 경무관은 두눈이 휘둥그래 보다가 《잘 다녀가십시오.》 하고 거수경례까지 해보였다.

그 로인이 다리목에 들어서자 그 경무관은 자기 동료에게 신기한 발견이나 한것처럼 속삭였다.

《무슨 괴짜령감인지 통 모르겠소. 우리가 파견한 특수정찰같기도 하고… 아 글쎄 문화부상 김일동지의 수표가 있는 증명서를 가지고있는것이 아니겠소.》

그 로인은 성송암이였다. 그의 파란많은 행각은 끝났다. 보문산기슭에서 인생전체의 방향각을 바꾼 그는 대전병원에서 림운학과 련화를 만나 그들의 행복을 축복하고 계속 북행길에 올랐다.

그러나 그 걸음은 쉬운것이 아니였다. 낡은 세계와는 대담하게 작별했으나 새 세계는 의연히 많은데서 미지수로 남아있었다. 서울에 거의다 이른 산촌에서 그는 뜻밖에도 양음리의 김순남을 만났다. 성송암이 서울로 들어가는 차들이 없을가 하고 길녘에 앉아 쉬고있을 때였다. 달구지에 무슨 짐을 가득 싣고 송암이로서는 들어보지 못한 코노래를 흥얼거리며 걸어오던 순남이가 《선생님이 아네요》 하고 달려오지 않았으면 모를번 하였다. 그전날 때국이 흐르고 주접이 들었던 모습이 아니였다. 눈에 정기가 돌고 말하는품이 완연히 다른 사람이였다.

그는 인민군대에 보내는 지원물자를 싣고 가는 길이라고 했다. 그것도 자진해서 나섰다는것이였다. 그는 헤여지면서 송암이에게 참으로 많은 생각을 불러일으킬 말을 했다.

《선생님, 난 선생님이 욕하던 그 <빨갱이>가 됐이유. 근데 가만 생각하니 난 날 때부터 빨갱이였이유. 백주사한테랑 눌리우고 속아 몰라 그랬지. 근데 가만 생각함 선생님도 <빨갱이>야유. 그 나쁜 학식때문에 좀 생각이 잘못되신것 같애요. <빨갱이>란 좋은 사람들이라는거예요. 난 선생님이문 세상을 다 잘 아시는줄 알았이유. 지내보니 선생님두 모르는것이 있이요. 이렇게 돌아온다니 정말 반갑지라우.》

순남이는 인민군지원물자로 날라가는 포대에서 큰 참외 몇개를 꺼내 그에게 주고 헤여졌다. 이 충격도 큰데 서울집에 도착하니 그지없이 놀라운 사실이 그를 기다리고있었다. 그 보초는 송암이를 문밖에 세워놓고 엄하게 따져물었다. 송암은 속이 오주주해서 그 문초에 응할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의 이름을 입에 올리자 보초병은 입이 귀밑으로 돌아가 어덴가 달려갔다오더니 군관을 데려왔다. 송암은 그 군관을 통해 보초가 김일성장군님의 령을 받고 자기 집 가산과 비장품을 지킨다는것을 알았다. 그는 울었다. 김규식이나 최동오는 물론 안재홍이까지 네활개를 치며 서울거리의 당당한 주인으로 있는것을 본 성송암은 그날밤으로 옛날의 친지이자 현재의 공화국정부 《부통령》(당시 서울에서 공화국 부수상을 이렇게 불렀다.)인 홍명희에게 과거를 회개하는 편지를 썼다.

《벽초! 이 자리에 신채호가 있다면 나처럼 울고 나처럼 미치고 나처럼 소리칠것입니다. 상해 취각루에서 통곡하며 뇌이던 그의 한생의 고민,

… 하늘은 동쪽에서 해를 솟게 하고 그 빛이 되라 동방에 조선을 찍었거늘 어찌하여 그 삼천리금수강산이 노예의 땅이 되여 영원의 암흑속에 묻히게 되였는가. 공자와 석가로 고구려의 슬기를 부패시키고 사대와 매국으로 백성을 결박시킨 권세가와 선비들을 저주한다. 구천에 지하에 사무친 원한 품고 사라져간 애국의 정령들의 목소리를 들으라.

개인의 명리와 물리에 피눈이 되여 대의를 잊고 진리를 저버린 량반사대부들이여, 수신제가의 넉두리로 제몸 하나 살리는데만 급급한 선비들이여.

그대들의 죄를 아는가. 이 땅, 이 민족을 살리기 위하여 진리와 방편을 애써 찾은자 과연 누구인가. 공자와 석가, 예수와 맑스로 주의를 운운하며 요설을 편 사람들! … 그대 정녕 민족을 살리고 민족에 리되게 그 주의를 가꿔 받아들였단 말인가. 진정한 구국민생의 기치였단 말인가. 목 마른자 샘을 찾듯 진리를 갈구하는 백성에게 그네들은 갖가지 미사려구로 주의의 반찬을 떠올리고는 결국 주의의 노예로 만들지 않았는가. 설령 그 주의가 정의스럽고 진리라 하더라도 주의의 노예가 된 이상 과연 자기를 살리고 민족을 살리는 무기로 방편으로 될수 있단 말인가. 공자를 받아들여도 조선의 공자로 받아들이고 석가를 받아들여도 조선의 석가로 받아들여야 하거늘 그네들은 공자의 조선, 석가의 조선을 만들려 개돼지싸움을 벌리다가 오랑캐의 제밥이 되였다. 그러니 이 땅에 과연 참된 주의가 있을수 있겠는가.

인민에게 받아들여지고 인민을 뭉치게 하는 주의를 찾아 내 가슴을 두드린다. 무지와 편견에 죽어가는 고답한 넋들이 헤매는 이 땅에 참된 주의가 언제 깃을 펴겠는가. 없다. 있다 해도 그 주의를 떠올릴 영걸이 없으니 앞이 캄캄하다. 아, 현세와 후세에 고하거니 남을 바라지 말고 우리의 주의를 만들고 그 주의를 떠올릴 영걸을 내세우라. 그리하여 2천만 민중이 하나의 얼로 뭉치고 한몸이 될 때 영원의 삶과 빛을 얻을것이다.

아, 과연 이 땅에 인민을 위한 주의가 펼쳐지고 그 흩어진 마음을 모두고 품어 빛낼 단심의 기둥, 화합의 얼, 향도의 빛은 정녕 없으려는가.…

에 대답이 없고 그 희망이 없어 몸부림친것이 어째 신채호나 저뿐이라 하겠습니까. 그로 하여 나는 이 땅, 이 민중의 혼을 보려고조차 하지 않았고 관조와 회의의 심연속을 끝없이 걸었습니다. 그길에서 나의 장녀의 죽음은 응당한 귀추로 남았습니다. 나의 도주행각은 해빛에 숨은 바퀴처럼 진리와 정의를 떠난 비극의 도피였습니다. 그것을 깨닫고 돌아섰을 때 나는 찬연한 광망을 보았습니다. 미군을 쳐이기는 조선사람들의 모습에서 나는 위대한 령도의 힘을 보았습니다. 하나의 그림족자를 거둬주는 덕에서 커다란 애국을 보았고 반동의 길을 걸은 사람마저 품어주는 아량에서 나는 거룩한 사랑을 보았습니다. 이제껏 개개의 물방울로 실개울로 떠돌며 잦아들던 우리 민족이 지금처럼 뭉쳐 장강대하로 흐른적이 과연 있습니까.

이 송암이도 하나의 물방울이였지요. 물방울이란 공기로 날려버리면 죽어버리지요. 그러나 이제 대하를 본 이상 어찌 물방울로 외롭게 죽어가겠습니까?

나는 수천년력사에 없던 오늘의 이 기적을 두고 하늘에 감사하고 땅에 감사합니다. 이 땅과 하늘이 정녕 무심치 않아 수백천년 사라졌던 조선의 정기, 조선의 얼을 되모아 우리에게 구세주를 주신것입니다.…》

그리고 회답을 기다리려 했으나 더 참지 못하고 자기 일생이 담긴 유물들중에서 제일 값진것을 짐으로 꾸려가지고 이처럼 북행길에 오른것이였다. 그는 이 걸음이 자기 생의 마감을 장식하는것이면서 그 총화라고 여겼다. 동시에 이 길은 그에게서 민족의 미래를 찾아보러 가는 의미깊은 순방의 길이기도 하였다.…

성송암은 앞을 찌르는 불빛에 더 나가지 못하고 손을 이마우에 얹고 뒤뚝거리며 되돌아섰다. 군대차의 바쁜 움직임에 방해를 놓은것만 같아 서둘러 되돌아나오던 그는 강녘에 이르러 다리를 헛짚어 한쪽다리가 무릎에까지 물에 빠졌다. 좀전의 경무관이 아니면 물참봉이 될번 하였다. 그의 부축으로 물녘에 나와선 그는 차들이 지나쳐 가기를 기다렸다. 맨 앞의 차가 마른 땅에 올라와 부릉- 하고 변속을 하며 속도를 놓았다. 바퀴에 붙었던 물줄기가 빛살처럼 뿌려치면서 성송암의 몸에도 뿌려졌다. 송암은 몇걸음 더 뒤로 물러났다. 헛짚은 다리가 시큰거려 기우뚱한 자세로 서있는데 두번째 찦차가 그의 앞을 조금 지나가다가 길녘 모래불에서 문득 멈춰섰다.

《어데 다치지  않았습니까?》

강반의 정적을 헤치며 부드러우면서도 우렁우렁한 음성이 들렸다. 송암은 그 물음이 자기에게 향한것임을 처음에는 몰랐다. 군모가 아닌 평상모를 쓴 후리후리한 키에 어슬빛에도 류달리 환하신 얼굴로 인상적인분이 성큼성큼 다가왔다. 차에서 몇사람이 뛰여내려 경계태세를 취하는것을 보며 성송암은 마주 오는분이 례사로운분이 아니라는 직감속에 반사적으로 모자를 벗어들고 눈을 똑바로 치떴다.

《저에게 물으시는 말씀이오니까?》

《그렇습니다. 년세도 많으신것같은데 어찌하여 이런 밤길에 오르셨습니까?》

끝없이 친근하면서도 끝없는 위엄이 깃든 음성이며 어조였다.

앞서갔던 차가 되돌아와 소리없이 멈춰서는것을 보며 송암은 자기앞에 선분이 보통간부가 아니란것을 알았다. 그런분의 관심과 특히 그분의 얼굴과 눈빛에서 발산되는 위엄에 이즈음 늘 격동과 흥분에 뒤설렘하던 마음이 문을 떠밀치며 초연한 말소리로 흘러나왔다.

《늙마에 몸과 마음을 깃들일 곳을 찾아갑니다.》

세상을 초탈한 풍류객의 사담같은 그 대답에 마주 서신분은 별로 개의치않고 물으시였다.

《목적지는 어디입니까?》

《평양입니다.》

《로인장의 말씀을 봐선 게가 고향은 아닌것같은데요.》

《예, 본적지와 출생지를 말씀드리면 서울입니다.》

《그렇다면 평양에는 아는 사람이라도 있습니까?》

《별반 없습니다. 있다면 벽초 홍명희라고 공화국정부의 부통령으로 되는분이 있고 …또… 김일성장군이 제 이름을 알고계신다는것입니다.》

《그렇다면 선생이… 혹시 성송암이라는분이 아닙니까?》

성송암은 몸이 절로 와들와들 떨렸다. 순간 자동차의 불빛이 주변을 확 밝히다가 꺼졌다. 남쪽에서 달려오던 한대의 위생차가 저만치 멈춰섰다. 송암은 몇초사이 비쳐진 그 불빛에서 아니 그 불빛이 비치기전에 자기앞에 서계신분이 누군가를 알아차렸다.

송암은 숨이 꺽 막히는 흥분에 취하여 저도 모르게 꺾인듯 무릎을 끓었다.

《장군님, 성송암 문안 올립니다.》

《아니?》

《장군님, 미둔한 이 백성도 받아주십시오.》

《로인장이 이러시면 어찌합니까.》

김일성동지께서는 다급히 로인을 일으켜 세우시였다. 송암은 그이의 손길에 이끌려 일어서긴 했으나 다리맥이 풀려 몸을 주체할수 없었다. 눈물이 비오듯 쏟아져내렸다.

(아, 이것은 나에게 차례진 행운이고 축복이다.)

송암은 팔소매로 눈물을 닦았으나 수십년 맺힌 모든 고뇌가 이시각 눈물로 풀려나가는듯 울음을 참을수 없었다.

《선생님, 고정하십시오.

그런데 무슨 짐이 이리도 무겁습니까?》

김일성동지께서 성송암의 어깨에 멘 배낭을 벗겨주시였다. 그때야 송암은 그이의 손에 들린 배낭을 황급히 되잡아 땅우에 놓으며 감격어린 소리로 말씀드렸다.

《여기엔 우리 민족의 재능과 근면의 소산들이 담겨있습니다. 아름답고 착실하고 훌륭한…

수백년동안 이 재능은 나래를 펴지 못하고 죽어갔습니다.

그러나 장군님치하에서는 그 모든 아름다움과 훌륭함이 다시 소생하고있습니다. 나는 이것을 나의 한생과 함께 장군님께 바칩니다.

우리 민족과 나라의 창창한 미래는 장군님 품에 있지 않습니까.》

송암은 더 말을 잇지 못했다.

목메인 부르짖음들이 강반의 정적을 뒤흔들었다.

《최고사령관동지!-》

《장군님!-》

위생차쪽에서 여러명의 군인들이 부딪치고 밀치며 달려왔다.

김일성동지께서는 그들쪽으로 돌아서시였다.

다리를 절룩거리며 달려오는 부상병을 보시자 량팔을 벌리고 마주가시였다.

《가만들 서있소. 서있으라구.》

그이께서는 빠른 걸음으로 다가가 부상병을 부축하시였다.

부상병이 그이의 가슴에 얼굴을 묻자 뒤따르던 여러명의 군인들이 김일성동지께 매여달리듯 안겨들었다.

성송암은 눈물에 잠긴 눈으로 령도자와 인민의 혼연일체를 보았다.

(바로 이것이다! 여기에 힘이 있고 승리가 있고 민족의 찬란한 미래가 있다!)

하늘이 갑자기 훤히 들리였다. 찬란한 아침노을이 강물우에 그리운 새벽안개와 어스름을 밀어내며 붉은 기폭을 휘둘렀다. 강물우로 날던 물새 한마리가 금빛채광이 서린 하늘을 향해 곧추 날며 끼르륵- 끼르륵- 청아한 노래를 읊조렸다. 그 어떤 경사로운 소식을 온 우주에 알리렴인듯.

잠시후 김일성동지께서 타신 차는 불타는 노을을 안고 아득한 남쪽길로 내달았다. 충주의 수안보로 가시는 길이였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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