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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번영의 길 제12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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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0건 조회 4,274회 작성일 20-03-07 2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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뽀얀 안개발을 펼친것처럼 하늘을 덮으며 자오록이 내리던 보슬비가 멎기 시작하면서 동평양쪽 하늘이 휘연히 들리였다.

《장마가 걷히려나?》

한윤호는 혼자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는 습관처럼 무르팍을 주근주근 주물렀다. 그의 다리는 어찌보면 기압계보다 더 예민하였다. 날씨가 흐리고 기압이 낮아지면 영낙없이 다리가 지근지근 쏘는것이였다. 그래도 다행스러운것은 정전이 되기바쁘게 습기찬 감북산갱도에서 전쟁전에 쓰던 이 청사로 계획위원회 사무실들을 옮겨온것이였다.

한윤호는 책상우에 놓인 담배곽을 앞으로 끌어당겨가지고는 담배 한가치를 꺼내서 입에 물었다. 그는 지금 3층에 있는 정준택으로부터 전화가 오기를 기다리고있었다. 아침 첫시간에 중공업부문의 복구안을 제출하였으니 지금쯤은 위원장자신이 그 복구안에 대한 검토를 끝마치였을것이다.

김일성동지께서 당 제6차전원회의에서 제시하신 우리 당 경제건설의 기본로선에 따라 국가계획위원회에서는 중공업, 경공업, 농업부문의 복구안을 최종적으로 완성하기 위한 작업을 철야전투로 진행하였다. 경공업과 농업부문 복구안은 이미 위원장단계에서 통과되고 남은것은 중공업부문이였다.

며칠전에 정준택으로부터 중공업부문 복구안에 대한 의견이 나왔다. 그는 성근히 접수하고 필요한 수정을 하였다. 그런데도 중공업부문 계획안은 아직도 비준되지 않고있었다.

한윤호는 불쾌하였다. 자존심이 혹심하게 훼손당한것이였다. 그는 사회주의경제의 본질적인 특징인 계획화사업에 대하여 자기로서의 일정한 견해를 가지고있었다. 《계획은 곧 바란스과학이다.》라는것이 그의 지론이였다. 《바란스국장》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그는 계획작성에서 균형을 중시하였다. 균형이라고 할 때 그것은 우선 축적과 소비, 공업과 농업, 중공업과 경공업, 중공업내부에서도 채취공업과 가공공업사이의 균형 등을 의미하였다. 경제를 계획적으로 발전시킨다는것은 인민경제 여러 부문들사이의 옳은 균형을 보장한다는것을 의미하였다. 그가 쏘련에서 학사학위를 받은 론문도 바로 사회주의경제에서 《바란스》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리론적으로 해명한것이였다.

그가 계획사업에서 중시한 또 한가지는 계획의 객관성이였다. 그는 계획일군들이 가장 쉽게 오유를 범할수 있는것이 바로 주관주의이며 이 주관주의야말로 사회주의경제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유해로운것이라고 굳게 확신하고있었다. 그래서 아래일군들에게 계획사업이야말로 《가장 객관적인 엄밀한 바란스과학》이라고 늘 강조하군 하였다.

이런 의미에서 그는 정준택위원장과 손이 맞았다. 물론 정준택은 계획사업을 전문으로 배우고 연구한 일군은 아니였다. 그러나 그에게는 계획일군에게 절실히 필요한 수자들에 대한 놀랄만한 기억력과 비상한 분석력이 있었으며 우리 나라의 초대국가계획위원회 위원장으로서 계획사업에 대한 귀중한 경험도 있었다.

고지식하고 실무에 밝은 정준택은 계획에 반영된 하나의 수자도 허술히 스쳐버리는 경우가 없었고 그자신이 항상 계산자를 몸에 지니고다니면서 계산하고 확인하였다. 그는 계획사업에서 나타나는 주관주의, 본위주의, 지방주의 등을 제일 경계하였다.

이런 의미에서 한윤호는 정준택과 의사소통이 잘되였고 이제껏 사소한 마찰도 없이 서로 믿고 보충하면서 사업하여왔다. 그가 책임지고 작성한 계획들이 위원장한테서 부결되거나 대폭 수정된적은 지금까지 한번도 없었다. 한윤호는 어느덧 여기에 습관되여 그것을 응당한것으로 생각하게까지 되였다.

그런데 뜻밖에도 그가 책임지고 작성한 중공업부문 전후복구안이 거듭 수정을 강요당하였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는 연기 같기도 하고 안개 같기도 한것이 몽롱하게 떠도는 창밖 하늘을 내다보며 생각을 굴리고있었다.

이때 전화종소리가 울리였다. 무척 기다리고있던 전화였으나 그는 조금도 서두르는 기색이 없이 천천히 송수화기를 집어들었다.

《예.》

그는 외마디대답과 함께 송수화기를 놓았다. 그리고는 사업노트를 옆구리에 낀 다음 웃몸을 약간 뒤로 제끼고 느린 걸음으로 3층계단을 올라갔다.

그가 위원장방으로 들어갔을 때 정준택은 언제나와 같이 커다란 량수책상을 마주하고 단정하게 앉아있었다. 정준택은 한윤호더러 앞탁에 나앉으라고 손짓하였다.

한윤호는 일이 심상치 않게 번져진다고 생각하였다. 자기가 제출한 복구안에 큰 의견이 없으면 문건을 넘겨주거나 몇마디 의견을 주면 그만이겠는데 앞에 나앉으라고 손짓하는것을 보면 무엇인가 할말이 많다는것을 의미하는것이 아닌가. 사업노트를 앞탁에 올려놓은 한윤호는 뾰족한 턱을 쳐들고 긴장한 자세로 앉아있었다.

《졔획이 전번보다는 훨씬 완성감이 있는데 한가지 물어봅시다.》 정준택이 계획문건에서 얼굴을 들지도 않은채 입을 열었다. 《화학비료생산계획을 갑자기 높이 세운 근거는 무엇입니까?》

《질안이 나올것으로 타산했습니다.》

《질안?》

정준택이 얼굴을 들었다. 병밑굽을 도려낸것 같은 두터운 안경알속에서 류달리 크고 검은 정준택의 쌍까풀눈이 한윤호의 얼굴을 지켜보고있었다.

《백홍건상동무와 합의를 본것입니까? 듣자니 상동문 지금 흥남비료공장에 내려가있다는데…》

정준택이 다시 파고들듯이 물었다.

《상동무야 질안문제를 알수가 없지요.》

《그렇다면?》

《쏘련측이 우리에 대한 원조로 불원간 흥남에다 10만t능력의 질안비료공장을 건설해줄것입니다. 이것은 제가 믿음직한 소식통을 통해서 얻은 정보입니다.》

《그래요?》

정준택은 더는 아무말도 하지 않고 다시 계획문건에 눈길을 박았다. 한윤호의 타산안에 의견이 있어하는것이 분명하였다. 하긴 쏘련측 계획일군들과의 교제가 전혀 없는 정준택으로서는 그럴만도 하였다. 한윤호는 그면에서는 자기가 정준택이보다 훨씬 월등하다고 자부하고있었다.

《국장동무도 알고있지만 우리는 짧은 시일에 파괴된 도시와 농촌, 공장, 제조소, 광산, 철도, 도로, 교량, 학교, 병원, 극장들을 복구건설해야 합니다. 지금처럼 세멘트, 벽돌, 강재, 목재를 비롯한 자재들이 많이 요구된적은 없었습니다.…》

정준택은 마치도 신문사설을 읽는듯 한 어조로 말하기 시작하였다.

한윤호는 전후에 들어오면서 정준택의 언행에서 몇가지 변화가 일어나고있다는것을 자주 느끼였다.

그중의 하나가 말이 많아진것이였다. 한윤호는 계획일군이 말이 많은것은 금물이라고 생각해왔다. 수다쟁이아낙네가 집안살림을 깐지게 꾸려나가는것을 본 일이 없다. 그런데 정준택은 지금도 그 어떤 자재의 필요성에 대하여 매우 추상적이고 아리숭한 표현으로 력설하고있는것이다. 그러나 한윤호는 참고 묵묵히 듣고있었다.

《우리에게는 날로 높아가는 인민경제의 방대한 수요를 충족시킬 가능성이 있습니다. 인민경제복구에 요구되는 철, 건재, 유색금속, 석탄, 목재 등 모든 자원이 다 있습니다. 이 부문 예비도 적지 않습니다. 문제는 이 모든것을 어떻게 하면 생산과 건설에 직접 이바지할수 있는 산 힘으로, 현실적인 실체로 전변시키는가 하는것입니다. 최대한 우리자체의 힘으로 복구건설을 하자는것은 결코 빈구호가 아닙니다.》

정준택의 《일반론》은 계속되고있었다. 그래도 한윤호는 선이 가는 얄팍한 입술을 꾹 다물고 한마디 응대도 없이 침착하게 앉아있었다. 그는 경솔하게 감정을 앞세우는 사람이 아니였다.

《그런데 이 계획에는.》

정준택이 책상우에 펼쳐진채로 놓인 계획문건을 들어보이였다.

한윤호는 이제야 본론으로 들어간다고 생각하고 부쩍 긴장해졌다. 벌써부터 관자노리의 혈관이 닥쳐올 그 어떤 폭풍우를 예감해서인지 불안스럽게 툭툭 높이 뛰기 시작하였다.

《이 계획은 우리에게 있는 풍부한 가능성을 현실성으로 전변시키는데서 심중한 약점을 발로시키고있습니다.》

(그러니 또 약점이 있단말이지.)

한윤호는 속이 울컥했으나 꾹 참았다. 그 약점이 무엇인지 들어봐야 했던것이다.

《례를 들어 철강재생산계획을 두고봅시다.》 정준택은 계속하였다. 《지금 철강재가 절실히 필요한데 강선제강소, 성진제강소, 황철들에서는 올해말에 가서야 강철을 생산할것으로 타산했습니다. 그것도 매우 소극적으로. 강선과 황철에서는 전기로와 평로를 이전의 2배의 능력으로 확장하여 복구하겠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이 사실에 대해서는 강선제강소에 내려가 계획작성사업을 도와준 국장동무자신도 잘 알겠는데 이것이 왜 계획에 반영되지 않았는지 모르겠습니다.》

《욕망만으로야 안되지요.》

한윤호는 처음으로 나직이 응수하였다.

《욕망만으로?》

정준택이 굵은 눈섭을 치켜올리고 되받았다.

《그렇지요. 전기로나 평로를 2배로 확장한다고 해서 쇠물이 2배로 나옵니까? 바란스는 여기에도 필요합니다. 로능력을 높이자면 그만한 설비가 안받침되여야지요. 강선인 경우에는 전기로의 능력에 맞는 대형경동치차와 대형변압기가 있어야 하고 로기초도 보강해야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런 대형설비가 준비되여있습니까?》

《강선사람들은 종전의 설비를 가지고서도 전기로를 배로 확장하겠다고 했습니다. 수령님께서 강선제강소에 가시였을 때 리웅천기사장이 종전의 15t전기로에서 30t이상의 쇠물을 뽑겠다고 결의다진걸 잊었습니까?》

한윤호는 대답대신에 한숨을 내쉬였다. 현장일군들의 결의는 물론 존중시되여야 한다. 때로는 그 결의를 적극 내세워주고 평가해줄 필요도 있다. 대중의 열의를 높여주는데는 여러가지 방도가 있을수 있는것이다. 그러나 결의와 계획화는 딴 문제다. 계획사업이야말로 엄밀한 과학일진대 잘 타산되지 못한 결의가 혹 국가계획의 통계수자에 올랐다가 실현되지 못하는 경우 련쇄된 고리에 미치는 그 후과는 실로 막심한것이다. 그래도 오래동안 나라의 전반살림살이를 책임지고 계획사업을 보았다는 자기네 위원장이 과연 이 단순하고도 명백한 리치를 깨치지 못하고있는가. 아니면 그것을 뻔히 알면서도 그 어떤 정치적고리로 하여 마음에 내키지 않는 추궁을 하고있는것은 아닌가.

한윤호는 속으로 여러가지 생각을 굴리면서도 정작 입밖으로는 한마디도 내비치지 않았다. 성미가 칼칼하고 꼬장꼬장한 그는 원래 긴 말을 좋아하지 않았다.

《황철과 김철용광로 그리고 강선의 분괴압연기복구문제를 늦잡고있는 리유는 무엇입니까?》

정준택이 다시 물었다. 하지만 한윤호는 그 물음에 구태여 대답할 필요를 느끼지 않았다. 황철의 용광로복구나 강선의 분괴압연기복구를 늦잡고있는 리유가 무엇인가 하는것은 자기 못지 않게 정준택도 잘 알고있다고 생각했기때문이였다.

《황철용광로의 대형송풍기나 강선의 분괴압연기 축세기가 못쓰게 된것때문에 그럽니까?》

정준택이 한발 더 깊이 들어가 물었으나 한윤호는 이번에도 침묵을 지켰다. 황철의 대형송풍기나 강선의 축세기를 복구할수 없다는것은 자기보다 공학을 전문했다는 정준택이 오히려 더 잘 알것이였다. 물론 김일성동지께서 강선제강소를 현지지도하실 때 정준택은 그이앞에서 축세기를 자체로 복구하는것이 전혀 불가능한것은 아니라고 말씀올린바있었다. 아래일군들이 자체로 복구하겠다고 하는데 그이앞에서 나라의 한 책임일군이 그렇게밖에 대답하지 못하리라는것을 한윤호는 충분히 리해하였다. 그런데 일반적인 결의도 아니고 국가의 법으로 채택되는 계획에 어떻게 반영하는가 하는 문제를 놓고 자기앞에서 말을 빙빙 돌리는것이 한윤호는 더없이 불쾌하였다.

《위원장동문 황철의 대형송풍기나 강선의 축세기를 당장 자체로 복구할수 있다고 생각합니까?》

마침내 한윤호는 침묵을 깨뜨리고 반문했다.

정준택은 대답대신 한윤호를 묵묵히 바라보았다. 두사람사이에는 어색한 공기가 떠돌았다.

《그러니 국장동무는 지금까지도 현장로동자들과 일군들의 결의를 믿지 않고있구만.…》

정준택의 주의깊은 눈길이 창밖을 내다보는 한윤호의 세모진 작은 눈을 응시하고있었다.

《계획수자는 어디까지나 과학적이여야 합니다.》

《그럼 쏘련측에서 입수한 정보는 과학적이여서 계획에 반영하고 강선이나 황철사람들의 결의는 과학적이 아니여서 계획에 반영할수 없다 그 말입니까?》

《강선제강소나 황해제철소 지배인들이 하는 말은 그곳 기사장들이 하는 말과 다릅니다.》

한윤호의 목소리는 잦아들기나 하는것처럼 점점 낮아졌다. 말을 맺을 때 소리가 조금 떨려나오는것만이 그가 몹시 흥분하고있다는것을 말해주고있을뿐이였다.

《난 강선제강소나 황해제철소 지배인들의 말을 듣자는것이 아니라 국장동무의 견해를 듣자는겁니다.》

《그래 내 견해를 모르겠습니까?》

한윤호는 정준택을 돌아보며 쌀쌀한 어조로 뇌까렸다.

《알만합니다. 국장동무의 그 견해라는것을… 바로 그런 견해때문에 현대적인 공작기계공장을 차려놓자고 론의는 많이 하면서도 정작 계획을 세울 때면 희천공작기계공장에 살이나 더 붙이는 식으로 그것을 대치하려 하지요. 그러나 국장동무, 우리 계획일군들이 명심해야 할 중요한 문제가 있습니다. 국장동무는 걸핏하면 바란스를 내대고 계획의 객관성과 과학성을 정면에 내거는데 우리에게 필요한 균형은 어디까지나 전진하기 위한 균형, 적극적이고도 동원적인 균형입니다. 그리고 계획의 객관성과 과학성도 중요하지만 당의 요구가 언제나 우리 사업의 첫자리에 놓여야 한다는것을…》

정준택은 한윤호에게 눈길을 떼지 않은채 낮으나 저력있는 목소리로 한마디한마디 힘을 주며 말했다.

《그렇다면 내가 당의 요구를 외면한단 말입니까? 위원장동무는 주의를 돌릴데는 돌리지 않고 이상한데로 문제를 끌고가는군요.》

한윤호는 싸늘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하고는 얄팍한 입술을 꼭 다물었다.

《내가 주의를 돌리지 않고있는것이 무엇입니까?》

《외화균형과 재정균형이지요. 쏘련의 원조가 지금 우리 주머니에 다 들어와있는거야 아니지 않습니까. 사실 원조분으로 흥남비료에 질안공장을 건설해준다는것을 알아낸것도 헐치 않았습니다.》

정준택은 한윤호가 이 시각에도 외국의 원조에만 기대를 걸고있다는것을 다시금 느끼지 않을수 없었다. 그는 한윤호에게 외국의 원조만 쳐다보지 말고 자기 나라 로동계급의 힘을 믿고 예비를 찾아내라고 단단히 일깨워주고싶었지만 어쩐지 그말이 입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그런 일반적이며 추상적인 말로는 상대방을 전혀 납득시키지 못하리라고 생각했던것이다. 하긴 그자신의 머리속 한구석에도 외국의 원조에 대한 은근한 기대가 자리잡고있는것은 사실이였다.

복도에서 여러사람의 성급한 발자국소리가 들려온것은 이때였다. 누구인가 문기척소리도 내지 않고 위원장방의 출입문을 활짝 열어제끼더니 흥분된 목소리로 웨치는것이였다.

《수령님께서 오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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