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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번영의 길 제4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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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1건 조회 2,285회 작성일 20-02-28 2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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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포화가 멎은 강산에 두번째로 찾아든 여름밤이 깊어가고있었다

한쪽이 조금 이지러진 상현달이 건지산마루에 높이 떠올라 깊은 골짜기를 은은하게 비쳐주었다. 종일 귀가 솔게 울어대던 풀벌레들도, 뒤산 어디선가 산촌의 정서를 돋구며 늦도록 구성지게 울어대던 밤새도 기진한듯 잠잠해진지 오래되였다. 서늘한 골바람이 무성한 숲을 스치는듯 이따금 소나무 설레이는 소리가 고요한 밤정기를 가볍게 휘저어놓았다. 

조국해방전쟁 전기간 깊은 밤에도 불빛이 꺼질줄 모르던 최고사령부의 창가들에도 어둠이 내리기 시작하는 이 깊은 밤 느슨히 흘러내린 야산을 등지고 자리잡은 나지막한 단층기와집의 한 창가에서만은 온밤 전등불이 꺼질줄 몰랐다

며칠 안있어 열리게 될 당중앙위원회 제6차전원회의의 보고서를 집필하시던 김일성동지께서는 이따금 붓을 멈추고 생각에 잠기기도 하시고 방안을 거닐기도 하시였다. 

그이께서는 이번 전원회의보고에서 전후인민경제복구발전의 기본방향과 구체적인 수행방도를 밝혀주시여야 했다

그이께서는 사색에 사색을 기울일수록 이번에 제시하시여야 할 전후복구건설의 방향상문제가 비단 복구기에만 해당되는것이 아니라 나라의 만년대계와도 잇닿아있는 매우 중요한 문제로 된다는것을 절감하시였다. 하다면 그 중요한 문제를 푸는 근본열쇠는 어디에 있는가? 

사색에 잠겨 방안을 거니시던 그이께서는 문득 원탁우의 쟁반에 빨갛게 익은 탐스러운 복숭아가 가득 담겨있는것을 보시였다. 만경대의 김보현할아버님께서 첫물 복숭아를 따가지고오신것이다. 전쟁 3년기간 과로하신 손자분의 건강을 두고 한시도 마음을 놓지 못하고계시던 할아버님시였다.

그이께서는 조부모님들의 그 사랑이 짜릿하게 가슴에 젖어들어 한동안 원탁우의 복숭아를 내려다 며 움직일줄 모르시였다. 이윽고 그이께서는 다시금 가운데방에서 깊은 잠에 드신듯 한 할아버님의 숨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천천히 방안을 거닐기 시작하시였다. 사색은 또다시 전후복구건설의 기본방향과 방도문제로 이어지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조국해방전쟁의 가장 준엄하던 나날에 정준택을 불러 전후인민경제복구발전계획을 세울데 대한 과업을 주시면서 장차 나라를 복구개건할 때에는 전쟁행정에서 나타난 공업의 부족점들과 식민지적편파성을 퇴치하며 나라의 장래 공업화를 위한 기초를 튼튼히 다지는데 선차적인 관심을 돌릴데 대하여 강조하시였다. 그러자면 반드시 중공업의 우선적인 복구발전에 주목을 돌려야 했다. 

그런데 국가계획위원회가 작성하여 비준에 제기한 전후복구안에는 중공업의 복구발전에 응당한 힘을 기울이지 않고있다는것이 명백히 드러나고있었다. 강남요업공장을 돌아보실 때 그 공장의 년간생산목표를 낮추 잡은데서도 그런 결함의 일단을 찾아보실수 있었다. 확실히 이것은 소홀히 스쳐버릴수 없는 문제였다. 매사에 주도세밀하고 꼼꼼하며 실수가 없는 정준택이 전후복구안이 절실히 필요한 때에 복구안작성에서 소심성을 보이고있는것이 그이께서는 몹시도 안타까우시였다. 

정준택은 실무도 밝고 열성도 높은 일군이였다.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헌신하려는 애국적열의를 그이께서는 그를 처음 만나시던 때 벌써 느끼시였다. 

그것은 광복직후 우리 당이 창건된지 며칠이 안되던 어느 날에 있은 일이였다

그이의 집무실로 김책이 들어와 유능한 기술자 한사람을 찾아냈다고 하면서 몹시 기뻐하였다. 인재 한사람한사람이 그처럼 귀중한 때였다. 

그이께서는 과묵한 김책이 그처럼 좋아할 때에는 필시 대단한 기술자일것이라고 생각하고 자신께서도 만나보자고 하시였다.

《그럼 제가 데리고오겠습니다. 광산기사인데 이름은 정준택이라고 합니다. 우리 나라 광산들의 전망을 설계한 지도도 가지고있습니다.》 

그이께서는 하시던 일도 다 뒤로 미루고 김책이 소개한 기술자가 나타나기를 기다리시였다

이윽고 문이 열리더니 굵은 검정테안경을 낀 젊은 사람이 주밋주밋하며 방으로 들어왔다

김책이 대견하게 웃으며 뒤에서 그의 등을 떠밀어주고있었다

목깃을 빳빳이 일으켜 세운 검정양복을 팽팽하게 조여입은 정준택은 첫눈에도 무척 고정해보였다

《정준택동무, 이렇게 만나니 반갑습니다.》 

그이께서는 서글서글 웃으며 정준택의 앞으로 걸어가 그의 손을 굳게 잡아주시였다

정준택은 그이의 앞에 금시 얼어붙은 사람처럼 부동의 자세로 꼿꼿이 서있었다. 그는 무슨 말인가 할듯이 실룩거리였으나 정작 말은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 그의 얼굴에 경련 같은것이 지나갔다. 

다음순간 정준택은 갑자기 허리를 꺽으며 눈물을 떨구었다

《장군님, 저는 저는 장군님께서 산에서 일제와 싸우실 때 바로 그놈들밑에서 일했습니다.… 그놈들이 시키는 일을 했습니다.》 

정준택의 떨리는 목소리는 토막토막 끊어지고있었다

《그거야 먹고살자니 할수 없이 그랬겠지. 그러지 말고 손에 들고있 그거나 봅시다.》 

그이께서는 정준택의 손에 들고있는 도면말이 같은것을 가리키며 말씀하시였다. 그런데도 정준택이 선뜻 움직이려 하지 않자 뒤에 서있는 김책이 그것을 받아 책상우에 펼쳐놓았다. 

한장의 커다란 조선지도였다. 거기에는 우리 나라의 중요 광산들의 현실태와 앞으로의 개건대책들이 한눈에 굽어볼수 있도록 그림과 수자로 표식되여있었다.

그이께서는 김책과 함께 허리를 굽히고 오래동안 그 전망도를 들여다보시였다. 그것은 하나의 지도라기보다 나라잃은 식민지인테리의 깨끗한 량심이였고 애국의 퍼덕이는 넋이였다.

그이께서는 천천히 허리를 펴시고 고개를 떨구고 서있는 정준택을 이윽토록 바라보시였다

그이의 가슴속으로 뜨거운것이 솟구쳐올랐다

《정준택동무, 우리 함께 멸시받고 천대받던 이 나라, 헐벗고 굶주리는 이 나라를 어서빨리 세상에서 으뜸가는 부유한 나라로 일으켜세우자구.》 

정준택은 아무 말도 못했다. 두볼을 타고 하염없이 흘러내리는 뜨거운 눈물만이 그의 격동된 심정을 말해줄뿐이였다. 

정준택은 수령님의 신임속에 행정 10국이 조직되였을 때 산업국장의 중책을 지니고 사업하게 되였다. 그런데 일부 편협한 사람들이 정준택의 성분과 경력을 시비해나섰다. 

정준택은 고민하던 끝에 도로 자기가 일하던 광산으로 내려가 버리고말았다. 후에야 이 사실을 알게된 그이께서는 정준택의 과거를 시비한 일군들을 호되게 질책하시고 그를 빨리 불러올릴데 대한 과업을 주시였다. 

당시만 하여도 지방으로는 전화가 통하지 않았다. 할수 없이 방송으로 그를 불렀고 한편 그를 데리려 경위대원까지 파견하시였다. 

《간다온다는 말한마디 없이 훌쩍 사라지다니… 어쩌면 그럴수 있소? 어디 말해보오. 헐벗고 굶주리는 나라를 어서빨리 세상에서 으뜸가는 나라로 일으켜세우자고 한 그 약속을 벌써 잊었단말이요? 응?》 

그이께서는 정준택이 평양으로 올라왔을 때 그를 앞에 앉혀놓고 가슴아프게 타이르시였다

정준택은 고개를 들지 못하고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을뿐이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그후 정준택을 우리 나라 초대국가계획위원회 위원장으로 내세워주시였다. 정준택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직심스럽게 일하였다. 이번에 비준에 제기한 전후복구안도 전쟁의 가렬한 포화속에서 완성한것이였다. 

그런데 어찌하여 심혈을 기울여 완성한 전후복구안에 그처럼 심중한 결함들이 나타났는가

그이의 눈앞으로 재가루만 날리는 도시와 농촌들이 흘러갔다. 아직도 페허속에서 검은 연기를 토하는 공장들의 처참한 모습이 떠올랐다. 

그이께서는 엄청난 피해상과는 너무도 거리가 먼 제한된 자금때문에 정준택이 그처럼 소극적인 계획을 세울수밖에 없었을것이라고 리해하시였다. 국가계획위원회 일부 일군들이 외국의 원조에 커다란 기대를 걸고있는것도 바로 그때문일것이다. 

그렇다면 자체의 힘으로는 어느때까지도 수천년 내려오는 가난의 누데기를 던져버릴수 없고 공업의 식민지적편파성도 영영 가셔버릴수 없단말인가

사색은 끊임없이 이어졌다.

여름밤은 서서히 깊어갔다. 피곤이 몰려들고 눈시울은 점점 무거워졌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다문 몇시간이라도 눈을 붙여야겠다고 생각하고 할아버님께서 주무시는 가운데방으로 올라가시였다. 할아버님곁에 누우셨으나 어쩐지 잠은 오지 않았다. 울타리밖 두릅나무가 몇그루 자라는 샘물터에서 샘치물이 돌돌 흘러내리는 소리가 가슴에 젖어들었다. 

어느덧 그 물소리는 만경대고향집 사립문밖에서 들려오던 순화강의 정다운 물소리로, 장백의 밀림속 밀영들마다에서 들려오던 잊지 못할 산중의 물소리로 가슴속에 흘러들었다. 그래서인지 그이께서는 언제나 산촌의 물소리를 좋아하시였다. 그 물소리를 들으시면 번거롭던 마음도 차붓이 안정되고 잠도 잘 왔다. 

그런데 이밤은 종시 잠들수 없으시였다. 재더미가 된 도시와 마을들의 처참한 전경이 눈앞에서 사라질줄 몰랐다.

그이께서는 자리에서 일어나 앉으시였다

그때 주무시는줄만 아시였던 할아버님께서 천천히 일어나시였다.

그이께서는 할아버님께서 지금껏 주무시지 못하고있었다는것을 아시고 몹시 놀라시였다

《할아버지, 밤이 깊었는데 어서 주무십시오.》 

그이께서 할아버님의 꽛꽛한 손을 부여잡고 절절히 권하시였다

《장군이 옆에서 잠들지 못하고있는데 어찌 잠이 오겠나…》 

할아버님께서는 안타까우신듯 한숨섞인 어조로 말씀하시며 장군님의 잠자리에 놓아둔 복숭아그릇을 바라보시였다. 한알도 손대지 않은 그대로였다. 

언제부터인가 할아버님께서는 손자분에게 첫물 복숭아를 맛보이는것을 가장 큰 락으로 삼으시였다. 사실 할아버님께서 손수 가꾸시는 복숭아는 껍질이 얇고 달기로 만경대일판에서도 소문이 자자하였다. 첫물 복숭아가 탐스럽게 익어갈 때면 누구나 다 군침을 삼키였다. 

장군님의 어린 시절에 있은 이야기다

언젠가 한번은 할아버님께서 남새밭을 가꾸시다가 어리신 장군님께서 복숭아나무아래서 먹음직스럽게 익어가는 복숭아를 홀린듯이 바라보고있는것을 띄여보시였다

《증손아, 복숭아가 먹고싶으냐?》 

할아버님께서 넌지시 물으시였다

《예.》 

《아직은 이르다. 좀더 익은 다음에 실컷 따먹어라. 그러지?》 

어리신 장군님께서는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을 올리시였다. 그때부터 장군님께서는 복숭아가 다 익기를 참을성있게 기다리시였다. 

그런데 복숭아가 다 익어가도 장군님께서는 좀처럼 복숭아나무에 손을 대려고 하지 않으시였다

《왜 그러느냐, 어서 따먹어라 이젠 다 익었다.》

《며칠 더 기다리겠어요.》 

《또 며칠?》 

할아버님께서는 손자분이 그처럼 먹고싶어 하면서도 자꾸만 늦잡는것이 놀랍기만 하시였다

며칠이 지난 어느날 할아버님께서는 어린 장군님을 데리고 복숭아밭으로 가시였다

장군님께서는 복숭아나무들사이를 돌고돌더니 복숭아 하나를 따가지고오시였다

《허, 이런 큰 복숭아도 있느냐.》 

할아버님께서는 비로소 손자분이 복숭아밭에서도 제일 크고 탐스러운 복숭아를 점찍어두고 무르익기를 기다려오시였다는것을 아시였다

《할아버지, 어서 드세요.》 

할아버님은 어리신 장군님께서 두손으로 받쳐올리는 복숭아를 받고 너무도 대견하여 손자분의 머리를 쓰다듬고 또 쓰다듬으시였다

그때로부터 세월은 많이도 흘렀다

할아버님께서는 이번에 건지리로 들어오실 때에도 손자분께서 그처럼 즐겨하시는 복숭아를 달게 들리라 생각하시였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였다. 밤늦게 돌아오신 장군님께서는 원탁우의 복숭아를 보시더니 할아버님께서 전쟁기간 농사일도 하시고 복숭아밭도 가꾸시기에 수고가 많으셨다고 인사를 하고 정작 복숭아는 한알도 드시려고 하지 않았다. 거듭 권해도 밤참삼아 좀 있다 들겠다고만 고 종시 들지 않으셨다. 

밤이 퍽 깊은데다 장군님께서 자꾸 권하시여 할아버님께서는 잠자리에 드시지 않을수 없었다

웃방 책상에 마주앉으신 장군님께서는 밤깊도록 글을 쓰다가는 방안을 거닐고 그러다가는 다시 글을 쓰군 하시였다

자정이 다 되여서야 장군님께서는 할아버님의 옆자리에 누우시였다. 밤참삼아 들겠다던 복숭아는 물론 들지 않으시였다.

할아버님께서는 육친의 뜨거운 정으로 손자분께서 무거운 시름과 걱정으로 하여 잠들지 못하고있다는것을 아시였다. 

《장군, 며칠밤 꼬박 밝힌다는데 사람이 무쇠가 아닌이상 어떻게 견디겠나. 몸을 돌봐야지.》 

장군님을 따라 자리에서 일어나 앉으신 할아버님께서 장군님의 시름어린 얼굴을 바라보며 절절히 말씀하시였다

《할아버지, 어쩐지 잠이 오지 않습니다.》 

장군님께서는 속타는 심정을 하소하듯 나직이 말씀하시였다. 손자분의 솔직한 고백은 할아버님의 심금을 울리였다. 

《할아버지, 정말 걱정이 많습니다. 도시와 농촌, 공장들은 다 마지고 재더미만 남았지, 인민생활도 말이 아니지.》 

《전쟁인데 어찌 피해가 없겠나. 미국놈들이란 원래 그렇게 악독한 놈들이지. 하지만 우리가 전쟁에서 이겼는데 이제 무슨 큰 걱정이 있라구. 마사진 공장은 다시 일떠세우면 될거구, 인민생활이야 차차 펴일테지. 지금도 기름진 음식은 먹지 못해도 다들 굶지는 않아. 너무 걱정말라구. 장군》 

할아버님께서는 어떻게 하나 손자분을 위로하여 드리고싶었으나 어쩐지 말이 제대로 흐르지 못하면서 자주 토막지군 하였다

《사람들에게 풍족하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배를 곯지 않을만한 식량을 주고 수수한 옷감이나마 차려지게 하고 새집 한채씩 지어준다면 당장은 더 걱정할것이 없겠습니다

그렇지만… 아니, 이것으로 제 책임을 다했다고 할수 없습니다. 이것만으로는 안되지요. 조상대대로 내려오는 가난을 영영 털어버릴수는 없습니다.》 

장군님께서는 문득 말씀을 멈추고 할아버님의 주름덮인 얼굴을  바라보시였다. 그 눈빛은 간절한 소원과 무거운 시름으로 축축히 젖어있는듯 싶었다. 

《우리가 전쟁피해를 많이 입은것은 미국놈들이 악착스레 폭격한데도 있지만 일본놈들이 우리 나라에 무슨 공장을 하나 건설해도 자원을 제놈들의 나라로 빼돌리기 편리하게 거의 모두 바다가에 세웠기때문입니다.》

《그래서 비행기폭격에다 함포사격도 많이 받았지. 진남포에 가보아도 바다가에 세워놓은 제련소가 제일 피해를 많이 받았거든》 

할아버님께서 장군님의 말씀을 받으시였다

《옳습니다. 그래서 나라를 재더미속에서 일으켜세울 때는 중요한 공장들은 다 원료조건, 수송조건이 유리한 내륙지대에 배치하려고 합니다. 이것은 본래대로 복구하는것보다 엄청나게 돈이 많이 듭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우리 인민이 대를 이어가며 복락을 누려갈 그런 세상을 마련하자면 지금은 어렵더라도 참고 자동차, 뜨락또르는 물론 그 어떤 기계라도 생산하는 그런 공장들을 재더미속에서 일떠세워야 합니다. 그러자면 밑천을 좀 들여야 하는데 손에 쥔 돈은 얼마 없고 일군들의 각오도 높지 못합니다.》 

장군님께서는 자신도 모르게 오래동안 혼자 가슴속에 묻어두고있던 근심과 고충을 할아버님앞에서 털어놓기 시작하시였다

할아버님께서는 전혀 뜻밖에 장군님의 마음속 고통을 헤아려보게 되자 말할수 없이 괴로우시였다

할아버님께서는 손자분에게 힘이 되고 위안이 되는 말씀을 하시고싶었으나 무슨 말씀을 하시였으면 좋을지 몰랐다

저려드는 가슴을 안고 한동안 묵묵히 앉아계시던 할아버님께서는 후들후들 떨리는 손으로 잘 익은 복숭아 한알을 골라 손자분의 손에 쥐여주시였다

《어서, 어서 들라구. 고향의 복숭아가 아닌가, 장군!》 

할아버님의 목소리는 안타까움에 젖어 갈리였다

수령님께서는 복숭아를 받아드셨다가 여전히 들념은 하지 않고 생각에 잠긴채 내려다보기만 하시였다

(이런 때 시원한 과일물이라도 있었으면…)

할아버님께서는 애끓는 심정으로 장손며느님의 정다운 모습을 그려보시였다.

언제보나 웃음을 담고 반기시던 정이 어린 그 눈빛, 강의하면서도 끝없이 부드럽고 효성이 지극하던 장손며느님의 모습이 못견디게 그리우시였다. 

할아버님께서 만경대의 첫물 복숭아를 따가지고 성안에 들어가시면 제일 기뻐하신분이 바로 그 며느님이시였다

며느님은 무더운 여름철에 신선한 사과나 복숭아 같은 과일이 생기면 껍질을 벗겨 채칼에 쳐서는 즙을 내시였다. 그런 다음에는 천에 싸서 거르고 얼음물을 탔다. 마지막으로 약간의 당분으로 맛을 돋구면 향기가 독특하고 시원한 과일차가 되였다. 

장손며느님이 두손으로 받쳐올리는 그 과일차를 드실 때의 할아버님의 기쁨을 과연 무슨 말로 다 표현할수 있었겠는가

물론 며느님은 장군님께도 과일차를 드리였다

할아버님께서는 며느님이 장군님께서 즐겨하시는 그 과일차를 만들기 위해 겨울철에도 잊지 않고 과일과 얼음을 벼겨에 파묻어 움속 깊숙이 정성담아 보관하신다는것을 이미 알고계시였다

장군님의 곁에서 장군님을 위하여 한몸이 그대로 방패가 되신 백두산의 녀장군, 그렇듯 소박하고 례절이 밝고 효성이 지극하던 사랑하는 장손며느님을 앞세워 보낸 절통함이 할아버님의 가슴을 아프게 저며내였다. 

한생의 충직한 전사이고 전우이고 반려자인 녀장군없이 홀로 엄혹한 전쟁을 치르고 또 페허우에서 나라를 일떠세우자니 장군의 말못할 고충인들 그 얼마랴

참을수 없는 안타까움과 측은함에 목이 메여드는것을 간신히 눅잦히며 손자분을 바라보시는 순간 할아버님께서는 갑자기 몸을 흠칫하시였다. 손자분의 귀밑에 몇오리의 흰머리칼이 섞여있는것이 눈에 띄였던것이다. 

전등불에 반사된 은발이 할아버님의 로안을 아프게 찔렀다

(마흔한살에 은발을 이다니, 세상에 이런 일이 어디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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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산님의 댓글

강산 작성일

(위에서 계속)

할아버님께서는 억이 막히시였다. 가슴이 무너져내리는것 같아 어찌할바를 모르고 앉아계시던 할아버님께서 또다시 복숭아 한알을 집어서 손자분의 손에 쥐여주시였다.

《어서 들라구, 어서…》

할아버님의 목소리는 눈물에 젖어 떨리였다.

《할아버지, 들겠습니다. 할아버지도 드십시오.》

장군님께서는 마침내 복숭아를 드시며 할아버님을 위로해주시려는듯 환히 웃으시였다.

《만경대도 전쟁기간 몹시 피해를 보았을것입니다. 나가본다 나가본다 하면서도 시간을 내지 못하여 나가보지 못했습니다. 올해 농사형편은 어떻습니까?》

문득 장군님께서 물으시였다.

《봄철에 가물이 좀 들었지만 크게 걱정할것은 없지. 만경대 산장밭은 가물이 좀 든다 해야 농사가 잘되거든. 너무 걱정말라구.》

《걱정하지 않겠습니다. 만경대사람들은 농사일에 들어서야 누구보다 부지런하지 않습니까.》

장군님의 얼굴에 그윽한 미소가 피여올랐다.

할아버님께서는 그러지 말자고 해도 자꾸만 눈길이 장군님의 흰 머리칼에 가는것을 어찌하실수가 없었다. 그때마다 가슴은 몹시도 아프시였다.

장군님께서는 미간을 좁히고 할아버님의 주름진 얼굴을 이윽토록 바라보시다가 조용히 물으시였다.

《할아버지, 이제 우리 인민들더러 몇해동안만 허리띠를 더 졸라매고 살라고 하면 어떻게 될가요? 견뎌낼가요?》

할아버님께서는 이런 생각때문에 장군님께서 잠도 못이루고 온밤 걱정속에서 모대기신다는것을 알게 되자 또다시 가슴이 답답해나시였다. 복구건설이라는 말의 준엄한 의미가 새삼스럽게 무거운 힘으로 가슴을 파고들었다. 손자분의 어깨우에 실릴 새로운 중하가 금시 할아버님의 어깨를 짓누르는것 같으시였다.

그렇지만 할아버님께서는 조금도 그런 내색을 하지 않고 헌헌한 목소리로 손자분에게 위안이 될 말씀만 하시였다.

《암 견디구말구. 더 잘 먹고 더 잘 입고 더 잘 살자고 허리띠를 졸라매는데 그걸 누가 마다하겠나. 난 우리 백성들을 잘 안다니까. 장군, 너무 심로하질 말게.》

《할아버지, 나도 우리 인민을 믿습니다. 전쟁을 이겨낸 인민이 아닙니까.》

장군님의 눈에서 신심의 불꽃이 타올랐다.

《암, 그렇고말고… 민심이 천심이라고 자고로 민심을 얻으면 천하를 얻는다고 했지.》

할아버님께서는 곡절많은 지난 세월의 가지가지 사연들을 더듬으시는듯 두눈을 쪼프리고 나직나직 말씀하시였다. 하지만 그 한마디한마디는 장군님의 심중깊이에까지 파고들면서 세찬 파문을 일으켰다.

《할아버지, 좋은 말씀을 해주어 고맙습니다. 제 이길로 황철로동계급을 찾아가렵니다. 그들의 목소리를 들어봐야 하겠습니다.》

《이 새벽에?》

할아버님께서는 놀라시였다.

《예, 도중에 어디 들릴데도 있습니다.》

《허허, 참. 만백성이 전쟁에서 이겼다고 기뻐하는 때에 장군만은 백성들의 모든 시름을 한몸에 안고 이 고생을 하니… 아!》

할아버님께서는 불시에 목이 꺽 메여 뒤말을 잇지 못하시였다.

《할아버지,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우리야 젊은 몸인데 고생을 좀 한들 뭐랍니까. 혼자 적적해 하시지 말고 눈을 좀 붙이십시오.》

장군님께서는 할아버님의 거칠은 손을 정답게 어루만지며 말씀을 하시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먼동이 터올무렵 할아버님께 인사를 올리고 건지리를 떠나시였다.

 

정준택은 새벽녘에야 잠자리에 누웠다. 여러가지 문서들이 수북이 놓인 앉은뱅이책상이 그가 누운 머리맡에 놓여있었다. 수자들이 빼곡하게 들어찬 그 문서들은 책상너머 장판바닥에도 널려있었다.

그는 강남요업공장의 전망계획을 잘못 세워 수령님께서 찌는듯한 무더위속에서 동뚝길을 걷게 하신것을 생각하면 참으로 죄송스럽기 그지없었다. 이 복구안작성에서 드러낸 소극성은 비단 강남요업공장만이 아니라 제철, 제강부문을 비롯한 모든 중공업기업소들의 복구계획과 생산계획을 타산하는데서도 공통적으로 나타났을것이다. 그는 강남요업공장에서 돌아오는 길로 아래단위에서 묶어올린 계획들을 자신이 직접 계산자를 놓고 검토했다. 그러나 아래실정에 어두운 그로서는 계획안에 내재해있는 빈 구석들을 발견해내기가 조련치 않았다. 이것이 그를 제일 괴롭히였다.

그가 깊은 잠에 들지 못하고 몸을 이리뒤척 저리뒤척 하는데 산아래서 자동차발동소리 같은것이 들려왔다.

《무슨 소리요?》

정준택이 안해에게 물었다. 아침밥을 짓느라고 부엌에 내려가있던 김정원이 자동차소리 같다고 무심히 대답하였다.

감북산아래에 국가계획위원회 차고들이 있는데 그리로 드나드는 자동차들의 발동소리가 산중턱에 높직이 올라앉은 이집에서도 아주 똑똑히 들리였다.

정준택은 다시 잠을 청하였다. 그런데 차고로 들어가서 잠잠해질줄 알았던 자동차소라가 또다시 들려왔다. 처음보다 훨씬 높아진 소리였다.

《아니 자동차가 이리로 올라오지 않소?》

정준택이 소리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않았다.

《무슨 차가 새벽에 이리로 온단 말이예요?》

정준택은 안해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정준택이 타고다니는 승용차는 물론 국가계획위원회 다른 자동차들도 여기 산중턱까자 오르는 일은 거의나 없었다. 더구나 지난번 장마때 좁고 험한 외통길이 온통 바닥이 패이고 허연 나무뿌리가 볼성사납게 드러나자 운전사들은 계획일군들이 들어있는 산중턱의 갱도에까지 차를 몰고올 생각은 아예 단념해버리고 말았다.

그런데 때아닌 이른 새벽에 들려오기 시작한 자동차소리는 멎을줄 모르고 점점 높아졌다. 밖에 나갔던 안해는 산아래로 안개가 껴서 무슨 자동차인지 보이지 않는다고 하였다. 부릉부릉… 안깐힘을 쓰며 가파롭고 험한 산길을 톺아오르는 차소리는 이제는 거의나 지척에서 들려왔다.

정준택도 더는 집안에 앉아있을수 없었다. 밖으로 나오자 차소리가 급작스레 높아지더니 안개발속에서 불쑥 승용차머리가 튀여나왔다.

《아니?》

정준택은 자기 눈을 의심하였다. 이른 아침 숲속길을 톺으며 자기 집으로 찾아온 차는 수령님께서 리용하시는 낯익은 승용차였던것이다. 숲속공지에 멈춰선 차는 퍼그나 힘들게 올라온듯 단김을 내뿜고있었다.

정준택부부는 승용차에서 내리시는 김일성동지께로 달려갔다.

부부는 뜻밖의 경사에 어찌할바를 몰랐다.

《허허… 내가 동무들의 단잠을 깨우지 않았습니까?》 그이께서 서글서글 웃으며 두사람의 앞으로 걸어오시였다. 《그러지 않아도 전쟁때 내가 여기로 한번 와보자고 했는데 바빠서 시간을 내지 못하다가 오늘 이렇게 황철에 나가던 길에 들렸습니다. 오면서 보니 길도 험하고… 그동안 불편한것이 많았을것입니다.》

《수령님께서 그처럼 보살펴주시였는데 무슨 불편이 있었겠습니까. 저희들은 정말 아무런 불편도 없이 전쟁을 치르었습니다.》

그이께서는 김정원이 올리는 말씀을 대견하게 들으며 갱도가까이에 있는 솔밭속의 자그마한 단층집을 빙 둘러보시였다.

지금도 그이께서 일을 보시는 룡흥리갱도앞의 집무실에서 조금 둔덕진 곳에 나서면 국가계획위원회 부서들이 들어있는 이곳 감북산갱도가 멀리 바라보이군 하였다. 언제인가 그이께서는 갱도앞 소나무들에 빨래를 널어놓은것을 보시고 정준택에게 전화를 걸어 빨래를 그렇게 널어놓으면 적비행기에 로출될수 있다고 주의를 주신적도 있었다.

그러지 않아도 적들은 감북탄광의 한 갱도에 국가기관이 들어있다는것을 어떻게 알아냈던지 갱도를 폭격한 때도 있었다. 그때 폭탄이 갱도입구에 떨어졌는데 정준택자신이 그날 이마에 심한 부상을 입기까지 하였다.

그이께서는 이 사실을 보고받으시고 그러지 않아도 정준택동무는 습기찬 갱도에서 밤낮없이 일하느라고 몸이 몹시 쇠약해졌다고 하시며 그의 집을 따로 갱도밖에 지어주라고 지시하시였다. 지금 그이께서 둘러보시는 솔밭속의 단층집은 바로 이렇게 되여 생겨난것이였다.

정준택부부는 전쟁 전기간 적들의 폭격을 여러차례 받으면서도 시련을 함께 이겨나갔다.

그이께서는 다정한 눈길로 정준택부부를 번갈아보시였다.

《피난갔던 아이들은 왔습니까?》

그이께서 김정원에게 물으시였다.

《아직 오지 못했습니다. 의주할머니한테 가있으니 걱정할것은 없습니다.》

《그래도 그 애들이 아버지, 어머니를 얼마나 그리워하겠습니까. 빨리 데려내와야 하겠습니다.》

그이께서 김정원이와 이야기를 주고받는 동안 정준택은 북받치는 감격과 함께 억제할수 없는 죄책감에 휩싸여 고개를 떨구고 서있었다.

그는 전후복구안을 완성하지 못하여 그이께서 대낮에도 인적이 드문 이 산속의 외딴집을 찾으시지 않으면 안되게 하였다고 자신을 아프게 채찍질했던것이다. 하지만 그이께서는 이에 대해서는 아무런 말씀도 하지 않으시고 정준택이더러 오늘의 사업계획은 무엇인가고 물으시였다.

《복구계획을 다시 검토하고 황철이나 강선으로 나가볼가 합니다.》

정준택은 어쩡쩡하게 대답을 올리였다.

《그렇습니까, 그렇다면 나와 함께 황철에 나가봅시다. 백홍건동무도 데리고가자고 합니다.》

《아, 그래서 이른아침에 이렇게…》

정준택은 급기야 그이를 따라나서려고 서둘렀다.

《허허.》

그이께서 인자하게 웃으며 김정원을 돌아보시였다.

《내 부인에게 정동무를 잘 돌봐달라고 특별히 부탁을 하였는데 식사도 시키지 않고 데리고가면 부인이 뭐라고 하겠습니까. 그러지 말고 정동무는 기다렸다가 아침식사를 하고 천천히 나를 따라오시오.》

김정원은 머리를 다소곳이 수그리고서서 몸둘바를 몰라하였다.

그이께서는 미소어린 눈길로 김정원을 대견하게 바라보시고는 정준택이더러 여기까지 왔던 걸음에 국가계획위원회 부서들이 들어있는 갱도를 돌아보자고 하시였다.

《생각하던것보다 갱도에 습기가 많습니다. 물론 장마철이 돼서 그렇긴 하겠지만 안되겠습니다. 계획일군들은 다 귀중한 사람들인데 그들의 건강을 아껴야 합니다. 빨리 시내에 있는 본청사에 나가야 하겠습니다. 본청사가까이에 사택도 짓고…》

갱도를 돌아보신 그이께서는 시내에 있는 본청사를 복구하는데서 나서는 크고작은 문제들에 이르기까지 세심한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어느덧 시간은 흘러 안개걷힌 숲속으로 눈부신 아침해살이 비껴들기 시작하였다.

《호르르 쭁!》

별안간 잠을 깬 산새가 청높은 고음으로 숲속의 정적을 깨뜨리였다.

《허허… 정말 아름다운 아침이요. 새들도 이 땅에서 포화가 멎은것을 기뻐서 노래부르는거지.》

그이께서는 환히 웃으며 정준택부부더러 어서 집에 들어가라고 이르시고는 차에 오르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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