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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50년 여름 제17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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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1건 조회 9,873회 작성일 20-02-16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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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jpg


 17 장

 

《장군님, 김책동지는 53사도하장에 나갔답니다. 전파장애로 그이상은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복도계단을 그대로 뛰여온듯싶은 강부관은 약간 숨이 찰사 한 어조로 보고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색연필을 놓고 맞은편 벽가의 오래된 구식벽시계를 바라보시였다. 눈가에 알릴가말가 주름살이 잡히였다. 그이께서는 오늘 전선사령부를 두번이나 전화로 찾으셨다. 그때마다 김책은 없었다. 하여 좀전에는 강부관을 불러 보위성작전국의 대출력 장파무선기를 통해 54사지휘부에 직접 알아보게 하시였던것이다. 그런데 김책은 54사도하장으로부터 또다시 53사도하장으로 떠난것이다.

(무엇때문에?)

매사에 정확하고 빈틈없는 김책, 어떤 정황에서나 리성을 잃지 않는 김책, 흠이라면 자신에 대해서는 너무나도 돌볼줄 모르고 혹사하는 습관, 칼날같이 예리하고 예민한 신경이다.

(무엇때문에 금강도하장에 하루가 넘도록 있는가. 무엇이 그를 초조케 했는가.)

김일성동지께서는 어제 김책과 전화를 하실 때 하던 그의 말, 흥분과 긴장의 량극단으로 뜀박질하듯 고르롭지 못하던 그의 어조, 마지막명령을 접수할 때 어딘가 떨리는듯 하던 그 음성을 상기하시였다.

(지쳤는가?)

김일성동지께서는 그것이 념려스러우시였다. 지금 전쟁의 중하는 점점 더 무겁게 온 나라를 내리누르고있다. 전선사령관으로 김책은 그 누구보다 이것을 예민하게 느끼고있는것이다.

(좀더 너누룩하고 배포가 유해야 되는데.)

이렇게 왼심을 써보기도 하셨다. 문득 펼쳐진 자료철에 시선이 가닿으시였다. 보위성 정찰국과 외무성, 조선중앙통신사들에서 올려보낸 자료들중에서 특별히 주목할만 하다고 여겨 자신께서 친히 철하신 자료들이였다. 이 정세자료들이 오늘 그이로 하여금 김책과 전선전반에 대하여 보다 심각한 생각을 달리게 했는지 몰랐다. 그이께서는 거의 무의식적으로 자료철을 한장한장 번지며 색연필로 밑줄을 그으신 부분을 훑어보시였다.

- 7월 4일 요시다내각에서 미국의 군사행동에 대한 협력문제 토론, 땅크수리, 폭탄, 자동차, 포, 반땅크지뢰, 조명탄생산 주문 접수.

※ 오산전투장에서 일본군장교시체 30구 발견.

- 7월 10일 부산에 상륙한 미25사 대구동쪽 영천에 지휘부설치, 괴뢰1군단의 배후진으로 예측.

- 맥아더사령부 대변인 인민군주력 소멸하고 7월내로 38선 수복한것이라고 언명(에이피, 도꾜방송)

- 재쏘 영국대사 데이비드 켈리 쏘련외무부상 그로꼬와 회견, 쏘련은 전쟁에 개입안할것임을 관측, 전승후 미국은 북조선문제를 어떻게 처리할것인가를 도꾜주재 영국사절단 단장과 맥아더 토론(유피)

자료철을 접으신 김일성동지께서는 벽에 걸린 작전지도를 유심히 보시다가 강부관에게 시선을 돌리시였다.

《오영혜동무를 불러주오.》

《장군님 저-》

강부관은 몹시 난처한 기색이였다.

《무슨 일이 있소?》

《오영혜동문 정문에 나갔습니다. 공주해방을 알렸더니 지도에 표식하겠다고 내려갔습니다. 가서 데려오겠습니다.》

《둬두시오. 아마 조직에서 받은 분공일것이요.》

김일성동지께서는 책상우의 자료철을 들고 오영혜의 방쪽으로 걸음을 옮기시였다. 강부관이 먼저 달려가 문을 열어드리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한걸음 내짚으시다가 그대로 서신채 한동안 방안을 유심히 살피시였다.

검은 창가림이 무겁게 드리운 방안은 침침하고 을스산했다. 창턱우에는 늘 놓여있던 꽃병들과 화분대신에 《조국보위수첩》이라고 쓴 총창 쥔 병사의 전신상이 찍힌 책이 놓여있었고 옷걸이엔 검은 바지가 걸려있었다. 책상앞 벽에는 두장의 연필화가 붙어있었다. 하나는 공중전을 형상한 그림이였고 다른 하나는 불타는 집앞에서 강아지를 안고 울고있는 소년의 그림이였다.

(오직 전쟁만이 있구나.)

놀랍게 변한 오영혜의 생활세계의 일단을 보시며 그이께서는 아쉬움을 느끼시였다. 평소에 어쩌다 이 방에 들어오시면 천진란만하고 발랄한 처녀의 생신하고 환희에 찬 감정이 그대로 향기처럼 떠돌군 했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누렇게 말라버린 백일홍이 꽂힌 꽃병이 라지에타옆에 놓인것을 보시고 창턱에 옮겨놓으시였다. 그리고 시든 꽃을 매만져보시다가 강부관이 의아한 시선으로 살피고있음을 느끼고 손을 떼시였다.

《5에 20에 지도를 꺼내오. 그것이 남반부의 도별지도일것이요.》

김일성동지께서는 또 한번 방안을 찬찬히 더듬어보시다가 책상 한귀퉁이에 쓰다만 편지 한장이 놓여있는것을 보시였다.

알지 못할 사람의 이름이였다. 정자로 곱게 박아쓴 폭에 비해서는 이때의 처녀들이 항용 이름앞에 놓이는 《존경하는》이라던가 《귀중한》이라던가 하는 관사가 빠져있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남의 편지 더구나 방년의 처녀의 편지라는것으로 더 보실수 없었다.

《강동문 박로수라는 사람을 알고있소?》

그이께서는 지도말이를 안고 내려서는 강부관에게 물으시였다.

강부관은 책상우에 있는 편지장을 보고는 난처한 기색으로 우물거렸다.

《알고있습니다.》

강부관은 약간 얼굴이 붉어지며 사실을 밝히였다.

《박로수라는 동무는 52사에서 대대장을 하고있습니다. 오영혜와는 평화시절부터 남다른 사이였는데… 요즈음 문제가 생긴것 같습니다.》

《문제라니?》

김일성동지께서는 호기심이 불쑥 동하셨다. 한편 오영혜가 여직껏 이런 일을 자신에게 감추고있은것이 이상하기도 하시였다.

《오영혜가 지금 좀 비싸게 놀고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좀전에 그를 욕해주었습니다. 저 편지를 한창 쓸 때에 제가 이 방에 들어왔댔습니다. 그런데 편지를 보니… 그 무슨 <사랑과 전쟁은 공존될수 없다>는 유식한 술어까지 썼는데 그것이 마음에 걸려 따졌습니다. 그랬드니 그 영혜가 울상이 되여 하는 소리인즉은 참 우습기도 하고 한편 감동이 되기도 했습니다. 아마 그 박로수라는 동무가 그전번 편지에 사랑에 대한 말을 좀 쓴것 같습니다. 영혜는 조국이 생사운명을 다투는 때에 련애편지를 하면 어쩌는가 하는것이였습니다. 그래서 자기는 진심으로 그 사람밖에 따르지 않지만 <사랑>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게 모질게 썼다는것입니다.》

《그러니 사랑에 대해서는 말하지 말아야 된다는것이요?》

《네, 결국 따져놓고보면 그렇습니다.》

《사랑과 전쟁은 공존할수 없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웃으시였으나 내심으로는 커다란 충격을 받으시였다. 모두가 저렇게 생각한다면 이것은 하나의 비극일것이다. 전쟁은 매 대상의 성격과 준비정도에 따라 각이한 자취와 상처를 남긴다. 물론 오영혜의 천진스럽고 단순한 편견은 아무때건 바로잡아질것이다. 그러나 전쟁은 매 사람의 의지와 신경에 얼마나한 짐으로 되고있는가. 오영혜는 오영혜대로 김책은 김책이대로 이 전쟁의 중하속에서 평소의 자기를 잃고있다. 좋게도 변하지만 그 반대이기도 하다. 김책은 금강에서 돌아와 자기 위치에 있어야겠으나 오지 않고있다. 금강도하의 중요성으로 하여 그는 거기서 떠날줄 모르고있다. 후날 그는 자기가 거기 그냥 있은것은 전선사령관으로서 할 일이 아니라는것을 알것이다. 그러나 전쟁정황의 엄혹한 중압에 그의 신경과 의지는 객관적인 통찰력을 잃고있다.

그리고 지금 최현은?… 김일성동지께서는 많은 일군들이 보조타격방향부대라고 덜 관심하는 최현사단의 간고한 싸움에 생각이 멎자 더욱 마음무거워졌다. 그 사태앞에 지금 무쇠같은 최현도 바빠할것이다. 현재 정세는 각일각 엄중한 단계에로 내닫고있다. 세계는 류례없는 전승속도와 질풍공격을 두고 찬탄을 금하지 못하고있다. 그러나 이 승리적인 반공격을 위해 매 전사들이 흘리는 피와 땀, 매 지휘관들이 바치는 신경과 의지에 대해서는 잊고있다. 지금 김책은 자기의 신경과 의지의 전체를 동원하고있다.

그이의 눈앞에는 메마른 얼굴에 늘 예민하게 번쩍이는 김책의 긴장된 눈길이 떠올랐다. 제1제대군인들속에 선 최현의 얼굴도 보였다.

《강철은 휘여지진 않지만 꺾일수 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혼자소리로 뇌이시였다. 며칠전부터 머리속에서 떠오르던 결심이 이순간 확고히 굳어지시였다.

미1기병사단의 움직임, 대구동쪽을 차지한 미25사의 병력전개… 그 모든것은 트루맨이나 맥아더의 공략작전의 꿈이 결코 무시할수 없는것임을 말하고있다. 적들은 결정적인 작전을 준비하고있다. 우리 역시 그렇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두손을 책상에 얹으시며 강부관을 보았다.

《강동무, 이제 조용히 서울로 출발할 준비를 하시오.》

《네?!》

강부관은 청천벽력같은 소리에 장승처럼 굳어져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침착한 표정으로 다시 말씀하셨다.

《그렇소, 서울로요. 일행은 동무와 기술서기 몇으로 하고…》

강부관의 얼굴은 밤처럼 캄캄해졌다. 그는 한참이나 굳어져있다가 정신없는 사람처럼 중얼거렸다.

《장군님, 길은 파괴되고 적의 항공대가 주야로 도로를 폭격합니다.》

《걱정마오. 우리 전사들이 다 그 길로 가고있지 않소. 나는 그곳 동무들이 보고싶소.》

 

강부관은 조상대대로 미신을 믿지 않았다. 오직 땅과 제 손만을 믿고 근면성실히 살아가는 농군의 후손인 강부관은 이미 교육받기전부터 할아버지, 아버지들처럼 운수팔자따위에는 외면하였다.

그러나 그는 이번 전선출발에서는 그 운수까지 생각하지 않을수 없었다. 서울출발준비를 극비밀리에 서두르면서 그는 중앙경위련대의 가장 우수한 사격수들로 한개중대쯤의 호위성원을 조직하려 했다. 그러나 김일성동지께서는 호위조직을 부결하시였다.

《우리 인민들과 군대들이 있는곳으로 가는데 무슨 호위가 필요하겠소. 그만두시오.》

하여 몇몇 호위부관들과 기술성원만이 동행하게 되였다. 그는 내내 찌프린 얼굴로 운전수들에게 주의를 주고 기야변속이 일없는가, 예비부속품은 갖췄는가, 다이야를 다시 살펴보라 하며 일일이 따지고 주의를 주고 다짐을 두었다. 아무런 방탄설비도 없는 보통 군용승용차에 장군님을 모시고 앞뒤에 두대의 차를 단채 내각 청사를 떠날 때 예측할수 없는 험한 길을 내다보며 강부관은 자기일생에 이 길이 가장 어렵고도 중대한 길이라는 생각에 가슴이 뻐근해졌다.

막연한 불안이 안개처럼 차올랐다. 단출하기 그지없는 석대의 차, 아무런 중무장도 없는 차의 행렬을 돌이켜보며 그는 부득불 항간에서 돌아가는 장군님의 《신통력》을 생각하지 않을수 없었다. 사람의 심리란 이상했다. 비과학이고 미신이라고 여긴 《신통력》을 믿고싶었다. (장군님께서는 하늘이 내신 위인이시니.) 하는 믿음에 의지하고싶었다. 장군님을 모시고 싸운 항일투사들로부터 들은 장군님께서는 항상 전투가 가장 치렬한 속에 뛰여드셨지만 어떤 탄알도 장군님을 피했다던 얘기가 마치 절대적안전에 대한 담보처럼 상기되였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 믿음이 맞아떨어지는것이였다.

사리원을 지나면서 두번씩이나 공습신호를 받았다. 여무진 따발총의 사격소리와 더불어 뎅강뎅강 야음을 깨치는 종소리가 울리면 길가의 모든 차들이 불을 껐고 《대피하시오! 대피!》 하는 도로 정리원들의 웨침소리에 따라 길좌우로 행진하던 군인들이 보도랑이건 밭에건 뛰여들었다.

그럴 때면 강부관은 속이 한줌만해서 뒤를 돌아보군 하였다. 장군님이 타신 차에서는 그대로 전진하라는 신호가 왔다. 강부관은 온몸이 눈이 되여 검푸른 하늘을 바라본다. 그러면 뻘겋고 퍼런 불이 번쩍이는 형체들이 먼 하늘가에 날아가는것이 보였다.

《우리쪽은 아니야.》

《암, 어디라구.》

참았던 숨을 내뿜으며 안도의 목소리들이 울린다.

그렇게 위험은 닥칠듯닥칠듯 하면서도 덤벼들지 못했다. 토산을 지나면서부터 멀고 가까운 산발들에서는 신호탄들이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올랐다. 내무성 정치보위부를 통해 이 지대에서 패잔병 무리가 날친다는것을 들은바있는 강부관은 머리칼까지 쭈빗이 일어섰다. 키를 넘게 자란 쑥대와 잡관목이 빼곡한 가운데로 갈 때는 더욱 그러하였다. 강부관은 권총갑에서 손을 떼지 않은채 사방을 살폈다.

내내 깊은 사색속에 계시던 김일성동지께서는 이 황량한 숲을 지나칠 때만은 밖을 유심히 내다보시였다. 강부관은 이로 하여 한층 더 긴장감을 느껴 권총지갑단추까지 열어놓았다.

김일성동지께서는 그것을 알아차리고 웃으시였다.

《그러단 바위를 보고도 놀라겠소.》

그러시고는 차안의 긴장을 가셔주기 위함인지 온화한 어조로 말씀하시였다.

《여기가 38선이요. 표식없이도 알겠군. 누구의 손도 가지 않아 밭들이 다 황무지가 되였소.》

《장군님, 그러니 저 큰 나무도 극상해야 5년생이겠지요.》

《그럴거요. 통일이 되면 할일이 정말 많지. 저 황무지를 다 일쿠자면 간단치 않을것이요.》

김일성동지께서는 깊은 감회에 잠기시였다. 그이께서는 언제한번 이 땅을 갈라놓고 생각한적이 없으시였다. 저앞에도 내 인민, 내 겨레가 있는것이였다.

그러나 해방이 되여서도 가보지 못한 땅이요, 만나보지 못한 겨레였다. 항일무장투쟁시기의 고향을 남에 둔 전사들과 김책이며 홍명희며 강건을 통해 만경대나 칠골의 아름다운 산천처럼 정답게 그려보는 땅이요 인민이였다. 그리고 서울에는 삼촌인 김형권이며 권영벽의 시신이 어덴가 묻혀있을것이다. 그리고 지금은 우리 전사들이 생명을 바치고있다.

서울시민들에게 보장해야 될 식량이며 땔감 문제도 떠오르셨다. 몇몇 일군을 보내여 그 대책문제를 세우게 하셨으나 그 역시 걱정이 되셨다.

갑자기 선두차에서 경적을 울렸다. 거의 동시에 폭음이 터졌다. 전방 2지점에서 섬광이 번쩍이고 시뻘건 불기둥이 솟구쳤다. 어둠이 부서져나간 시퍼런 하늘엔 동체에 불을 켜단 비행기들이 나타났다.

《불을 끄고 계속 전진하오. 림진강쪽이요.》

김일성동지께서는 차를 멈추려는 강부관을 제지시키고 태연히 적기가 갈개는 하늘을 주시하시였다. 적기는 몇번 더 폭탄을 떨어뜨리고는 강부관에게는 더없이 다행스럽게도 도망쳐갔다.

《심상치 않은걸.》

김일성동지께서는 근심스레 말씀하시였다. 5분도 못되여 강부관은 김일성동지께서 왜 그런 말씀을 하셨는가를 알았다. 어둠속에 장검으로 갈라놓은듯 펼쳐진 허연 공간이 나타났다.

《림진강이다!》

저마끔 어린애같은 기분속에 뇌일 때 강부관은 기침을 터뜨렸다. 매캐한 연기가 강바람을 타고 밀려왔던것이다.

《아니!》

강부관은 허리가 뭉청 부러져나간 다리를 알아보았다. 그는 차가 멎기도전에 뛰여내렸다. 군인들 몇이 서성거리는 다리목에 이른 그는 처음에는 아무 말도 못했다. 입구의 교각과 기둥만이 남고 다리는 통채로 사라져버렸다. 검푸른 강물이 솨솨 소리지르고 열기어린 재먼지가 숨못쉬게 밀려들었다.

《방금전 넉대의 <B-29>가 날아와 쳤습니다. 매일 이 지랄입니다. 그러나 제꺽 보수합니다.》

그의 신분을 확인한 도하장 직일관의 배포유한 말에 강부관은 성이 머리끝까지 차올랐다. 그러나 간신히 자제하고 행여나 하여 물었다.

《그래 몇시간이면 된다는것이요?》

《오늘저녁이면 끝납니다.》

도하장직일관옆에서 강부관을 호기심에 차 바라보던 나이지숙한 공병중대장의 대답에 강부관은 더는 참을수 없었다.

《동무넨 도대체 놀리는게요 뭐요? 저녁까지라면 옹근 하루가 아니요.》

《허참, 군관동지, 그것도 기적이지요. 평화시라면 보름씩 걸려도 못놓을 다리를 그것도 적의 폭격속에서 놓는것입니다.》

《짜장 그렇긴 하오. 하지만 우린 최고사령부의 특별임무를 수행하는 차란말이요. 좀 방법이 있을수 없겠소?》

강부관은 이들께 장군님을 모시고 가는 차라는것을 말할수 없는것이 안타까왔다. 그렇게만 되면 혹 방법이 있을수 있지 않겠는가.

강부관같은 으름장에 수태 치여난듯 한 공병중대장은 어둠속에서도 알리게 빙그레 웃었다.

《군관동지, 하여튼 전투적으로 하겠습니다. 주변인민들까지 비상소집을 시켰으니 이제 곧 착수하면 몇시간은 앞당길수 있습니다.》

《몇시간! 그것도 앞당기는것이요?》

강부관은 괜한 주정인것을 알면서도 자신을 다잡지 못하고 소리쳤다. 완전한 절망과 자포자기상태에서 분격을 터뜨리는 최고사령부 파견군관의 태도에 위압당한 공병중대장은 의기소침해서 어깨를 떨군채 서있었다. 김일성동지께서 그리로 걸어오시였다. 강부관은 자기가 소리친것을 그이께서 들으셨으리라는것으로 속이 뜨끔해졌다. 그러나 김일성동지께서는 강부관에 대해서는 아랑곳않고 도하장직일관과 공병중대장에게 말씀을 거시였다.

《수고합니다. 동무들!》

강부관이 차렷자세를 취하는것을 보고 상대가 보통분이 아님을 알아차린 두 군관은 뻣뻣이 굳어졌다. 김일성동지께서 악수를 청하시며 손을 내미시였다. 공병중대장의 손을 잡으신 김일성동지께서는 웃음어린 음성으로 말씀하셨다.

《손에 장알이 든든히 배겼군. 숱한 일을 제낀 손입니다…》

《예, 전, 공병중대장입니다. 그저 일을 합니다.》

대답하는 사람의 목소리는 코먹은 사람의 목소리처럼 울렸다.

《그래 놈들이 다리를 자주 때립니까?》

《네. 매일이다싶이 덤벼듭니다. 낮에는 고사포사격에 덤벼들었다가도 얼뜬 도망치는데 밤이면 도적고양이처럼 덤벼들어 지랄합니다. 이달에만도 여섯번이나 다리를 못쓰게 만들었습니다.》

도하장직일관이 대답했다.

《그러니 동무들의 고생이 이만저만 아니겠습니다.》

《일없습니다. 전쟁이 아닙니까.》

김일성동지께서는 고개를 끄덕이시였다.

옳습니다. 전쟁이니까. 동무들은 참으로 중한 일을 합니다. 전쟁승리는 이런 길, 이런 다리를 통해 이루어지는것이기도 합니다.》

그이께서는 다리쪽을 한참이나 보시다가 도하장직일관에게 상류쪽에 있는 철교는 어떤가고 물으시였다. 철교가 무사하다는것을 아시자 김일성동지께서는 그쪽으로 걸음을 옮기시였다. 강부관이 그이의 뒤를 따르려 걸음을 뗄 때 누군가 그의 팔소매를 잡았다. 공병중대장이였다.

《미안합니다. 군관동지, 저… 저분이… 누구십니까?》

그의 목소리는 떨리였고 호흡은 급했다. 강부관은 알려줄수 없었다. 장군님의 전선출발은 비밀로 되였기때문이였다. 공병중대장은 그의 옷소매를 놓지 않고 애원하듯 말했다.

《전 평양에서 살았습니다. 보위성 공병국에 있었습니다.》

강부관은 이 중대장이 분명 눈치를 차린것을 알았다. 그러나 말해줄수 없었다. 그는 중대장의 손목을 잡고 나직이 말했다.

《너무 많이 알면 안될 때도 있습니다. 아까 소리친건 량해해주오. 잘 있소.》

철교는 다리로부터 800m 상거한 상류쪽에 있었다. 풀밭을 질러 먼저 달려간 강부관은 철교입구에 들어서다가 하마트면 다리를 삐일번하였다. 짚었던 침목이 훌러덩 떨어져내렸기때문이였다.

《덤비지 마오.》

김일성동지께서 일깨우셨다.

철교입구에 이르신 그이께서는 전지불로 철책과 침목을 비추어보시였다. 어디 하나 성한것이 없었다. 철책은 군데군데 날아나 버렸고 있다는것도 파편과 기총탄에 휘여들고 부러져나가있었다. 침목들도 성한채 있는것이 없었다. 떨어져나간 자리가 많았고 새로 한 침목들중에는 껍질도 벗기지 않은 통나무도 있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몇걸음 침목을 짚으며 걸어나가시였다. 침목들이 삐극거렸다. 아찔한 밑에서는 검푸른 강물이 흰 이발을 번쩍이며 부글부글 끓고있었다.

《장군님, 더 나가시면 안되겠습니다.》

강부관이 얼결에 소리쳤다. 장군님임을 로출시킨것도 몰랐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철교끝을 전지불로 비쳐보시였다. 두가닥 레루가 맞붙을듯 한 끝머리가 아슴푸레 보였다. 전지불을 끄시자 그 모든것은 짙은 어둠속에 잠겨버렸다. 소란스러운 물소리만이 울렸다. 그이께서는 한참동안 서 먼 남쪽의 어둠속을 응시하다가 조용히 말씀하시였다.

《이 철교로 건너가야겠소.》

《네?!》

강부관은 순간 온몸에 경련을 일으킨듯 떨었다. 눈앞이 캄캄해졌다. 철교입구를 나서신 그이께서는 우렁우렁한 음성으로 말씀하셨다.

《여기엔 겁쟁이가 없지. 동무들, 철교로 넘어봅시다.》

《안됩니다.》

강부관은 자기가 얼마나 무엄스럽게 나선다는것도 잊고 장군님앞을 막아나섰다.

《최고사령관동지!》

땅속에서 솟아난듯 공병중대장이 나타났다. 그는 덜덜 떨며 울음맺힌 소리로 웨쳤다.

《이 길로는 안됩니다. 침목들이 말이 아닙니다. 장군님, 저의 소원입니다. 저희 공병들이 이제 여기에 널판을 깔고 차를 끌고 나가겠습니다. 장군님!》

공병중대장은 어깨를 떨며 굵은 눈물을 뿌렸다.

김일성동지를 이 험지에서 뜻밖에 만나뵈인 감격, 장군님께 다가드신 위험을 막지 못한 죄스러움, 그 모든것이 섞인 눈물이리라. 강부관은 그를 얼싸안고싶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빙그레 웃으시였다.

《그럴 시간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소.》

군관의 어깨를 다정히 두드려주시고 부드럽게 말씀하셨다.

《전쟁이 아니요. 동무네가 가는 곳을 최고사령관이라고 못가겠소. 우리 운전수들은 다 대담하고 능란하니까 마음을 놓소. 지금 전선에서는 나를 기다리고있소.》

김일성동지께서 차에 오르시였을 때 오영혜가 달려와 차문에 매달려 발을 동동 굴렀다.

《장군님, 못가요. 못갑니다.》

그는 흐느끼며 소리질렀다.

《허허, 내가 울보를 데리고 왔나. 정 무서우면 나와 타자.》

《장군님, 이러심 어찌 하십니까? 네?》

오영혜는 그대로 흐느꼈다. 강부관은 오영혜가 고마왔다. 철없는 딸처럼 마구 억지를 쓰는 그의 눈물이 장군님의 마음을 되돌려세우면 일생 오영혜를 업고라도 다닐 심정이였다. 그러나 김일성동지께서는 공병중대장의 간절한 소원도 오영혜의 눈물도 수원들의 만류도 아랑곳 않으시였다. 강부관이 재삼 만류하는 뜻의 말씀을 비쳤을제 김일성동지께서는 엄하게 말씀하시였다.

《동무들이, 싸우고있는 전선 전사들을 잊고있구만. 갑시다. 발동을 거오.》

비바람 부는 음산한 밤, 검푸른 강물은 솨솨 소리치며 흐른다. 덜커덩, 덜커덩… 침목을 타고 넘을 때마다 차들은 말처럼 껑충뛴다. 뿌지직… 썩은 침목이 부러지는 소리가 울린다.

《천천히! 천천히! 조향륜을 꼭 잡고-》

강부관은 운전수쪽 발판에 선채 눈을 부릅뜬채 마주다가서는 침목과 번들거리는 레루를 살핀다.

《강동문 잔소리많은 시어머니가 되였군. 운전수의 자주권을 침해하지 마오. 마음놓고 모오.》

김일성동지께서는 차창밖의 어둠을 묵묵히 응시하며 롱조로 말씀하신다.

그러나 강부관의 잔등은 화락하게 젖어들었다. 운전수의 얼굴도 땀에 질펀하다. 이따금 철교전체가 흔들거린다. 강부관은 그때마다 이발을 지그시 악물고 《음, 음!》 하고 마음속으로 기압을 넣는다. 차는 1단으로 고개마루를 톺듯 입구를 벗어났다. 그런데 갑자기 레루의 좌우로 그림자들이 얼씬거리며 지나간다.

《장군님!》

《장군님!》

목메인 웨침들이 터져나왔다.

강부관은 전지불로 좌우를 살폈다. 두명씩 조를 짜 각목과 통나무를 든 군인들이 좌우에 울바자치듯 서서 홰불로 주변을 환히 밝히며 차와 함께 달리고있었다. 만약의 경우 자기들의 몸으로 떨어져내리는 차를 구하려는것이였다. 한 군인은 어쿠하며 침목을 빗디뎌 빠졌다가 다른 군인의 부축을 받을새도 없이 그대로 무릎걸음으로 벌렁벌렁 기여나갔다.

《세우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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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산님의 댓글

강산 작성일

(위에서 계속)

엄한 웨침이 울렸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불빛에 번쩍거리는 눈물젖은 군인들의 얼굴을, 몸과 통나무로 《철책》을 친 군인들을 한참이나 보시다가 젖은 음성으로 말씀하셨다.

《동무들 고맙소. 그러나 이건 나를 괴롭히는 일이요. 빨리 가서 다리복구를 다그치오. 전선에서는 포탄과 탄약을 기다리고있소. 다리를 빨리 복구하는것이… 나를 위한 길이요. 돌아서시오. 최고사령관으로 명령하는것이요.》

김일성동지께서는 차문을 열고 한손을 쳐드셨다.

홰불을 쳐들고 흐느끼는 전사들의 모습을 바라보는 김일성동지의 눈언저리에 물방울이 맺힌것을 이 어둠만이 알것이였다.

 

미륙군사에서 《지까마우가의 바위》로 불리우던 19련대는 7월 15일 밤 자기의 영예와 명성을 일조에 말아먹는 비참한 패전의 목조르기를 당했다. 미군사학교의 전술강좌에서 방어의 모범으로 칭송되던 이 련대의 파멸은 이미 13일에 마련되였으나 띤자신이나 련대장 멜로이대좌는 공주의 34련대가 인민군54사에 격파되는 그 시각까지 그런 비극적결말에 대해서 믿지 않았다. 34련대의 패퇴에 어지간히 당황하기도 한 띤이였지만 오랜 군인의 경력을 가진 그는 결코 락심하지 않았으며 자기의 대위시절이 흘러간 련대란것으로 더욱 총애하는 이 《바위련대》에 대해서만은 굳은 믿음을 가졌다. 련대장 멜로이는 물론 련대병사들의 기세도 그러하였다. 34련대의 실패에 《대아메리카의 신성이 모독되였다》고 격분한 장병들은 아시아의 군대에 치명적인 반격을 가하리라고 투지를 가다듬었다. 포병대와 땅크가 배속된 19련대의 화력은 인민군53사의 모든 화력에 비해서도 훨씬 우세하였다. 띤과 멜로이대좌는 14일에 있은 인민군의 묘하면서도 신속무쌍한 도하전술에 다시는 속지 않으리라고 결심하였다.

띤은 인민군53사의 주간도하를 막기 위하여 새벽부터 비행대를 호출하여 금강우안을 폭탄과 기총탄으로 봉쇄하였다. 그리고 모든 포와 땅크들을 강안가까이 진출시켜 움직이는 일체 목표를 소멸하게 하였다. 그러나 비행대의 맹폭속에서도 옛말에 나오는 불사신마냥 포를 끌고나온 인민군포병대와의 반포투쟁에서 19련대의 화력진지들이 여지없이 격파되였다. 다행히도 강과 기슭을 폭탄과 포탄으로 종일 불태운 덕에 인민군은 주간도하를 강행하지 않았다. 띤과 멜로이는 비록 손실은 컸으나 이것을 자기들의 성공으로 보았다.

황혼녘, 띤이 커피와 햄으로 간단히 저녁식사를 치르고 오끼나와의 5공군 부사령관과 야간비행대 파견문제를 전화로 이야기할 때 인민군53사의 도하가 시작되였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멜로이대좌와 전화를 바꾸자 멜로이는 이미 제 정신이 아니였다. 그는 미친 사람처럼 소리쳤다.

《각하… 종잡을수 없는 진출입니다. 하나가 아니라 무려 세개방향입니다. 정면과 좌우량익에서 파도식으로 밀려듭니다. 병력은 련대인지 사단인지 가늠할수 없습니다. 증원이 요구됩니다. 증원이-》

그로부터 반시간후에 멜로이대좌와의 전화는 끊어졌다. 띤은 새벽까지 전화통에 마주앉아 모든 련락이 두절된 상태에서 괴로운 밤을 보내였다. 새벽에 한쪽다리를 부상당한 멜로이가 련대의 절반을 잃은채 띤사령부로 찾아왔다. 멜로이는 《각하!》 이 한마디 말을 뇌이고는 기절하여 쓰러졌다. 19련대는 평촌리와 발산리에서 각개 포위되여 괴멸되고말았던것이다.

전선사령관 김책은 53사 7련대의 마지막 구분대가 강물에 들어서는것을 보며 도하장을 떠났다. 대안의 태평리쪽에서는 적의 마지막지탱점을 때리는 아군의 함성과 총성이 요란스레 울렸다. 그는 의자등받이에 기댄채 다리를 쭉 폈다. 련 사흘을 꼬박 밝히다싶이한 그는 다음번의 작전을 위해서도 자야 한다고 생각한것이였다. 그러나 앉기만 하면 금방이라도 쓰러져 굳잠이 들것 같던 애당초의 피곤과는 관계없이 전혀 잠이 오지 않았다. 눈을 꾹 감았으나 하루낮 하루저녁 꼬박 지켜본 도하전투의 매 장면들이 지꿎게 살아올랐으며 웅웅하는 고막속에는 열띤 부르짖음과 포성이 울려왔다.

53사도 54사의 경우처럼 아침부터 도하를 시도하였다. 직사포들이 적의 면전에서 대안의 백사장으로 《포복전진》하였다. 적은 모든 화점과 포진지들을 드러내고 맹렬한 조애사격을 퍼부어댔다. 로출된 상태에서 벌어지는 적아간의 반포투쟁은 용감성과 의지의 격투였다. 적은 비행대까지 동원하였으나 이 전투에서 실패했다. 아군 포수들은 백사장을 붉은 피로 물들이면서 적의 화점과 포진지들을 하나하나 격파해버렸다. 그 성과를 리용해 어두울무렵 53사의 두개련대가 강물에 뛰여들었을 때 적의 화력은 거의 봉쇄되여있었다.

째듯한 해빛, 번쩍이는 섬광, 모래기둥, 휘몰아치는 폭연… 옷들을 벗어붙이고 포탄을 장진하는 포수의 이지러진 얼굴… 선히 밟혀오는 모습을 방불히 보며 김책은 다시금 전투의 가장 치렬한 순간에 체험한 아슬아슬한 긴장을 느끼며 입술을 깨물기도 하고 몸을 뒤척이기도 하였다.

그러다가 깜빡 잠이 들었다. 잠속에서도 여전히 타래쳐오르는 포연과 전사들의 타는듯한 눈과 얼굴을 보았다. 다음 놀라웁게도 최현을 보았다. 대안을 향해 불을 뿜던 직사포가 입을 다물자 포판뒤에서 량손에 수류탄을 쥐고 일어난 군인은 최현이였다. 40년도인가 소부대공작을 마치고 돌아온 최현이 위장수염을 그대로 기른채 장군님을 모시고 사진찍었을 때의 그 모습이였다. 입수염의 오리오리가 일어서고 볼과 이마에 피가 흘렀다. 그는 맞은편 대안의 적의 포진지와 화점을 향해 걸어가고있었다. 그를 향해 수많은 적의 총구가 어릿거리는것이 보였다.

《최현동무, 어델 가오? 위험하오. 서시오!》

김책이 소리쳤으나 최현은 그때마다 무거운 눈길로 돌아보고는 그대로 적진을 향해 엄숙히 걸어갔다. 그러자 그를 겨누고있던 포구와 총구들에서 무수한 불찌가 번쩍였다. 최현은 불길속에 말려 사라졌다.

《최현동무!》

김책은 가슴이 터져나가는듯 하여 손을 허우적이다가 깨니 꿈이였다. 김책은 이마를 쓸었다. 축축한 땀이 내돋았다. 꿈으로 보기에는 너무나도 생동한 현실처럼 여겨졌고 깊은 생각을 하게 하였다. 그는 이미 53사의 도하주력이 강물에 뛰여들고 (이젠 먹었구나.) 하고 안도의 기쁨을 느끼던 순간부터 52사문제를 생각하였다.

53사와 54사의 금강도하가 아직 미지수로 남아있던 엊그제만도 김책에게서 52사문제는 지금처럼 절박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53사와 54사가 대전의 대문손잡이를 잡게 된 이 시각 52사의 위치와 역할을 새삼스럽게 생각지 않을수 없었다.

차가 한강다리를 지나 서울시내에 들어설 때까지 그는 52사문제에 대해서 명확한 결심을 얻지 못했다. 다만 한가지 명백한것은 대전포위작전의 시간과 규모는 52사의 행동여부에 많이 달렸다는것이였다.

차가 계동쪽의 키낮은 집들사이를 빠져나가는데 자지러진 총소리가 울렸다. 김책은 총소리가 나는쪽으로 차를 몰게 했다. 뒤골목 못미쳐서 군인들이 길을 차단하고있었다. 그 길옆에 우뚝하게 솟은 기와집을 둘러싸고 전지불들이 껌벅거렸다. 김책의 부관이 달려갔다와서 대여섯명의 패잔병이 한 민가에 도적질을 하려 뛰여들었다가 순찰하던 군인들에게 발견당하고 한명의 사상자를 남긴채 도주했음을 보고했다.

《별거 아니구 이런걸 훔치려 뛰여들었답니다.》

부관은 손에 들고온 그림족자를 보였다.

김책은 전지불로 글자를 비쳐보았다. 투명지를 덧씌운 화판에 어렴풋하게 새겨진 화가의 이름을 본 그는 저으기 놀랐다.

《이게 신사임당의 그림이 아닌가. 어느 집이요?》

《저 집입니다.》

부관은 전지불이 벙끗거리며 돌아가는 기와집 한채를 가리켰다.

《상한 사람들은 없다오?》

《빈집이랍니다. 집주인은 6. 28때 남으로 도망쳤답니다. 성송암이라고 이름있는 학자랍니다.》

《성송암?!…》

언젠가 김일성동지의 집무실에서 이 비슷한 이름을 들은 기억이 어렴풋 떠올랐으나 도주했다는 사실에 기분이 잡쳐 더 더듬지 않았다.

《그런데 죽은자의 몸에서 이런 요란스런 증명서가 나왔습니다.》

부관이 무궁화각인이 찍힌 가죽빠스포르트를 꺼내 내밀었다. 김책은 잠시 그것을 뒤적여보다가 부관에게 도로 주었다.

《이 증명서는 정찰국동무들에게 넘겨주오.》

증명서의 소지자는 리승만경호대 장교 백정식이였다. 차가 골목길을 빠져나갈 때 거적때기로 가려놓은 패잔병의 시체가 언뜻 눈에 띄였으나 김책은 중앙청에 가닿기전에 이 일은 잊어버리고 말았다.

중앙청에 이른 김책은 먼저 작전직일관실에 들렸다. 그를 맞은 작전부국장은 반시간전까지 강건총참모장도 함께 기다렸음을 알렸다.

《52사문제때문이였습니다. 전투보고서가 올라왔는데 형편이 좋지 않습니다.》

작전부국장은 52사앞에 조성된 정황과 그들이 치르고있는 가렬처절한 전투에 대하여 이야기하였다. 강건의 지도밑에 열린 작전협의회에서도 52사문제를 가지고 진지한 토론을 벌렸으나 해결책을 얻지 못했다고 했다. 혹시 그동안에 무슨 좋은 변화라도 있지 않았을가 하고 일루의 기대를 품었던 김책은 무거운 걸음으로 2층의 자기 방에 올라왔다. 한발 앞서 올라와있던 부관이 문앞에서 기다리고있었다.

《강건참모장동지가 방에서 쉽니다. 전선사령관동지가 도착하시는 즉시 깨워달라는 쪽지를 써놓고 잠들었습니다. 깨우겠습니다.》

《둬두오.》

방안은 불이 환히 켜진채로였다. 강건은 구석에 있는 침대에서가 아니라 작전탁앞 쏘파에서 불편스레 다리를 꼬부린채 자고있었다. 볼편은 우무러들고 턱은 더 뾰족해지였다. 먹즙을 친듯 곧고 진한 눈섭만이 패기로운 강건의 원래모습을 나타내고있었다.

김책은 시계를 보고 (3시반이였다.) 소리없이 전등스위치를 눌러껐다. 삽시에 방안이 캄캄해지였다. 김책은 책상앞의 의자에 가앉았다. 지금 상태에서 잠을 자기는 애당초 글렀다고 생각하며 담배를 꺼내물었다. 52사의 처지와 전망에 대하여 조금도 락관을 못가지던 작전부국장의 불안스러운 표정을 그려보며 라이타를 꺼내 불을 켰다. 왁살스럽게 크고 투박스러운 라이타는 (해방직후 청진제강소 로동자에게서 기념으로 받은것이였다.) 왕붓같은 불초리를 솟구쳤다. 김책이 담배불을 붙여 둬모금 빨았을 때였다. 강건이 자던사람 같지 않게 일어섰다.

《언제 돌아오셨습니까?》

김책은 그가 라이타를 켜는 서슬에 깨여났음을 알고 민망스러움을 금치 못했다.

《그렇게 신경이 예민해서야 몸이 견디겠소.… 지금 오는 길이요. 이야긴 이따 하기로 하고 좀 쉬기요. 작전부국장동무한테서 대충 들었소.》

김책은 다리를 길게 뻗치며 의자등받이에 몸을 기대였다. 그러나 강건은 앉지 않았다.

《사령관동지.》

강건은 근심낀 어조로 입을 열었다.

《장군님께서 사령관동지를 두번씩이나 찾으셨습니다.》

《알고있소.》

김책은 53사지휘부에까지 자기의 소재를 문의해왔댔음을 상기하며 필시 중요한 다른 문제가 있을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전선문제에 대해서는 다른 말씀이 없으셨소?》

《52사가 처한 형편에 대하여 물으셨습니다. 저희가 신통한 해결방안을 찾지 못했음을 보고드리자 장군님께서는 알겠다고… 정말 어려운 장벽에 부딪쳤다고 하시며 최춘국의 62사가 어데까지 나갔는가를 물으시고 그들의 속도를 보다 높이게 하라고 하시였습니다. 최현동무하고 상시적인 련계를 취하라는 지시를 주시고 전화를 끊으시였습니다.》

《최현동무와는 언제 련계를 맺어봤소?》

《저녁 열시경입니다.》

《그 동문 무엇이라고 하오?》

《걸찍하게 말하더군요. 깍두기판이라고 도처에 적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배포는 놀랍습니다. 걱정말라는것이지요. 이제 중대, 대대급으로 적진에 구멍을 뚫은 다음 벼락같이 나간다는것이지요.》

《허허 참, 그래 그 52사때문에 장군님께서까지 속을 태우신다는것을 말해줬소?》

《그런 얘긴 하지 않았습니다.》

《하긴 모르는게 낫지. 그 성미에 알았다간 견디겠소? 그 동무네 보고서를 보기오.》

강건은 빼람에서 보고서를 꺼내였다. 보고서는 매 글줄마다에 밑줄이 그어져있었다. 강건의 솜씨였다. 김책은 자동차경적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바깥 철문쪽으로 군용찦차 한대가 들어서는것을 무심히 보던 그는 결심어린 태도로 입을 열었다.

《강건동무, 53사의 제2제대인 9련대를 52사에 돌려야겠소. 피반령극복전투에 지원시키자는것이요.》

9련대는 대전을 동북방으로 압축하게 된 부대였다. 김책은 금강도하장에 나가 53사의 승리적전투진행을 보지 못했으면 이런 결심을 채택하지 못했을것이였다.

《53사는 9련대 참가없이도 도하를 해내지 않았소. 그들은 두개 련대의 공격으로도 적을 압축할수 있다고 보오. 그들이 작전계획계선에 다 간 상태에서 52사가 피반령을 넘지 못하면 대전포위를 못하는것으로 되지 않소.》

《그런데 문제는 9련대 하나로 피반령이 해결될수 없다는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손털고 앉아 무작정 최현동무한테만 강다짐 할순 없지 않소. 현재 도하할수 없는 자동차들과 로획품차들까지 동원시키면 한시간내로 피반령에 뽑을수 있소. 대전동북방이 미타하면 그런식으로 돌려세우면 되는것이고-》

강건은 그의 초조한 기색을 보다가 벽에 걸린 작전지도에 다가가 9련대의 기발표식을 뽑아들고 피반령에 옮겨놓았다. 대전동북방 압축이 잘 안되는 경우 한두시간이면 이 련대를 돌려세울수 있다는 김책의 마지막 말이 그를 움직여놓았던것이다.

김책은 강건의 행동을 지켜보다가 문기척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여느때없이 바삐 열리는 문가에 김책의 부관이 나타났다. 그뒤에 선 사람을 보았을 때 김책은 흠칫하며 두눈을 크게 떴다.

김책은 자기가 며칠밤을 새운탓에 무슨 환각상태에 이르지 않았는가 생각하였다. 자기의 부관옆에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책임부관이 서있지 않는가.

《전선사령관동지, 안녕하십니까?》

《아니, 이게 강부관이 아니요?》

《사령관동지, 장군님께서 오셨습니다.》

김책은 온몸이 돌처럼 굳어져 한동안 강부관을 물끄러미 보기만 하였다. 너무나도 큰 충격에 숨까지 다 멎어버리는것 같았다.

《여기에?! 여기가 어디라고…》

말이 목구멍에 걸려 채 나가지 않았다. 방금전 계동쪽에서 목격한 패잔병과의 소전투가 상기되였다. 그의 얼굴은 희게도 검게도 변했다.

《동문!》

김책은 터져나오는 웨침을 가까스로 삼키고 무엇에 떠밀친 사람처럼 뛰다싶이 걸어나갔다.

《장군님께서는 작전직일관실에 들리셨습니다.》

김책은 강부관의 말을 먼 꿈결처럼 들으며 화당거리는 가슴을 진정하지 못한채 문을 떠밀었다.

그런데 김일성동지께서는 벌써 계단을 올라 복도로 걸어오고계셨다. 평범한 군복차림이시였다. 모자를 왼손에 말아쥐고 얼굴에는 함뿍 웃음을 담으셨다. 김책은 몸을 떨었다.

《장군님!》

《김책동무!》

김일성동지께서는 그의 손을 잡고 어깨를 껴안으셨다. 김책은 짜릿한 기쁨속에 가슴이 억해졌다.

그이의 눅눅히 습기찬 군복에서는 향긋한 풀내와 휘발유냄새가 엇섞여 풍겼다. 김책은 자신을 다잡고 한걸음 물러섰다. 첫눈에 띄인것이 흙탕에 버무려진 장군님의 장화였다. 바지가랭이에는 풀잎들이 달라붙어있었다.

《새 신랑차림이 아니니 너무 보지 마오.》

김일성동지께서는 빙그레 미소를 지으시였다. 김책의 얼굴은 대번에 흐려지고 눈시울이 불깃해졌다.

《장군님, 여길!… 어떻게… 오셨습니까?》

김책은 입술을 떨었다.

《동무를 비판하자고 왔습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호탕하게 웃음을 터치시였다.

《전선사령관이 <사단장>으로 내려가니 이 최고사령관이 동무자리에 와있어야 할것 아닙니까.》

김책은 가슴이 찡- 저려들었다.

(나때문에, 나때문에 오셨구나. 내가 걱정돼서.)

김책은 고개를 쳐들수 없었다.

《자 주인이 이러고있으면 어쩝니까. 방구경을 시켜야지요.》

김책의 손목을 꼭 잡으신 그이께서는 더없이 행복한 표정이시였다. 방안홀에 들어서시여 작전탁의 지도며 벽에 걸린 따발총, (우리 나라 첫 제품이 나왔을 때 김일성동지께서 친히 김책에게 선물하신 총이였다.) 비옷과 배낭을 살피시는 그이의 눈길에는 따뜻한 미소가 피여 흐르셨다.

《저건 무슨 그림입니까?》

김일성동지께서는 철함우에 세워둔 그림을 보고 물으시였다.

《신사임당의 그림입니다.》

《신사임당?!… 진품입니까?》

《그런것 같습니다.》

김책은 무거운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대답올렸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오랜 세월의 풍우에 씻긴듯 색이 바랜 그림을 한동안 여겨보시였다. 달밤의 산수를 그린 그림에서는 섬세하고도 은근한 화법과 함께 아늑한 정취가 안겨왔다.

《동무들이 이런 그림을 볼 여유를 가지고있다니 마음이 놓입니다.》

그이께서는 밝은 웃음을 짓고 김책을 돌아보시였다. 김책은 낯이 뜨거워졌다.

《저… 그런게 아니라 저 그림은 방금 도적놈들한테서 빼앗아온것입니다.》

김책은 계동에서 벌어졌던 사건을 간단히 말씀드렸다.

《그 집에 경비대책을 세웠습니까?》

김일성동지께서는 투명지를 덧씌운 그림족자를 매만져보며 물으시였다.

《미처 그 생각을 못했습니다.》

《분명 성송암의 집이라고 했지요?》

《네, 홍명희선생이 일전에 말하던 그 학자같습니다.》

《그가 저런 그림까지 남기고 떠났다는것이 참 슬픈 일입니다. 그 로인은 골동품과 유물수집가라는데 저 유명한 녀류화가 그림까지 두고간것으로 봐서 아직 다른것도 더 있을수 있습니다. 우리가 지켜줍시다. 허허, 그 로인이 끝내 떠났군.》

김일성동지께서는 저으기 서운한 안색이시였다. 김책은 그이께서 옷걸이걸개에 모자를 벗어 거는것을 묵묵히 지켜보며 자신에 대한 종잡을수 없는 불만에 시달렸다. 응당 성송암의 집에 대하여 더 알아보아야 했으며 경비대책도 사전에 세웠어야 할것이였다. 그리고 성송암의 도주에 대해서는 다른 기회에 말씀드렸어야 했다. 이 모든 실수는 자기가 평소의 침착성과 여유를 잃어버렸기때문에 빚어진것이고 바로 이런데서부터 김일성동지께서 이 서울까지 나오셨으리라는 직감이 그를 괴롭혔다.

《도하전투가 굉장했다지요?》

김일성동지께서는 어두운 얼굴색의 김책을 눈여겨보시며 탁 트인 음성으로 말씀하셨다. 김책은 더 참을수 없었다.

《장군님, 제가 그만 금강에만 치우쳐있었습니다. 그건… 신심이 두텁지 못한탓입니다. 그러나 그때문에 여기까지 오신것은- 찬성할수 없습니다.》

《김책동무, 그러지 마시오.》

김일성동지께서는 정색하시고 김책을 보다가 부드럽게 말씀하시였다.

《동무처럼 생각한다면 나 역시 믿음이 부족해 온것으로 되는데 까놓고말해서 동무들이 보고싶었고 또 서울구경도 하고싶었소. 하긴 대전문제가 나를 잡아끈것만은 사실이지만… 자, 그러지 말고 오래간만에 만났는데 좀 웃어들보기요.》

김책은 입술을 꽉 다물고 완강한 자세로 서있었다. 자꾸만 울음이 북받쳐올라왔기때문이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김책의 얼굴로부터 강건의 손에 쥐여있는 9련대표식기를 보시고 가림막이 열린채 있는 작전지도에 눈길을 옮기시였다. 그이께서는 천천히 그 작전지도앞에 이르러 뒤짐을 진채 잠시 바라보다가 돌아서시였다.

《동무들이 지금까지 자지들 않고있는데 그래 무슨 문제를 토론했습니까?》

《52사문제때문입니다.》

강건이 솔직히 말씀드렸다.

《52사?… 그 피반령이 문제긴 문젭니다. 그래 어떤 전진을 보았습니까?》

김일성동지께서는 여전히 웃음을 지우지 않았으나 눈빛이 퍼그나 심중해지시였다.

《신통한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있습니다. 막부득한 수로 53사 9련대를 52사전투지역에 인입시킬가 생각하고있습니다.》

《김만익동무련대 말이지요?》

《네.》

《언제 채택한 결심입니까?》

《오늘 도하장에서 얻은 생각입니다.》

《도하장에서?!》

김일성동지께서는 무척 대견하신 빛이였다.

《그런데 그에 대해 최현동무는 뭐라고 합니까?》

《아직 명령을 떨구지 않았습니다.… 최현동무는 사단단독으로 돌파할수 있다고 하는데… 현재상태에서는 전망이 보이지 않습니다.》

《가능성이 없단말이지요?》

《네. 그들이 괴뢰 6사와 수도사단과 맞서 진천으로부터 청주계선까지 오는데 3일이 걸렸습니다. 그런데 지금 앞에 막아나선것은 세개사단이고 그들이 가야 될 옥천까지의 사이는 지형도 더 험한데다가 적은 완전한 종심방어를 꾸려놓고있습니다.》

《그런데도 최현동무는 간다고 한단말이지요…》

《그 동문 결사적인 첨입전투를 준비하고있습니다. 한개의 습격조는 자기가 직접 인솔하려고 한답니다.》

《그것이 사실이요?》

《네, 전화에서도 그걸 느꼈고 련락군관의 보고에서도 확인되였습니다.》

강건이 김책을 대신해서 보고드렸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얼굴을 흐리셨다. 그이께서는 훤히 밝아오는 창문가를 바라보시였다.

《그는 꼭 그렇게 하고야말거요. 아마 몇명의 결사조를 무어서라도 끌고 나가겠지. 죽어서라도 명령된 지점에 가있을것이요. 그는 원래 그렇게 찍어진 사람이요.》

사랑과 그리움에 타는 그 말씀에 김책은 가슴이 뭉클해졌다.

《최현동무가 보고싶구만.》

김일성동지께서는 창문가로 다가서시여 문을 활 열어제치시였다.

훤히 들린 하늘아래 우유빛 안개가 자욱히 서려있었다.

김책은 시계를 내려다보았다. 15분전 다섯시였다.

《장군님 9련대 파견에 대해서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꼭 보내겠습니까?》

김일성동지께서는 김책의 심리를 한눈에 꿰뚫듯 예지에 빛나는 눈길로 돌아보시였다.

김책은 김일성동지께서 9련대 파견에 별로 의의를 부여하지 않고있음을 알았다.

《장군님, 현재대로 두면 52사는 역포위의 위험에 빠질수 있습니다. 물론 한개 련대의 지원으로 다 해결되는것은 아니지만 지금 당장은 다른 수가 없습니다.》

《다른 수가 없다면… 역시 그 수가 나은거지요. 그렇게 합시다.》

이때 문기척소리도 없이 문이 열리며 김책의 부관이 취사원을 앞세우고 들어섰다. 강건이 들어오지 말라고 손을 저었으나 때는 늦었다. 김일성동지께서 돌아보시였던것이다. 다반에 통졸임과 깡통맥주를 안고 들어온 몸집이 강건이와 김책을 합쳐놓은만큼 우람한 취사원은 《장군님!》 하고 굽석 절을 하는데 너무 기뻐 덤벼치는통에 통맥주가 하나 주단우에 굴러떨어졌다.

김책은 엄한 눈길로 강건을 보았고 강건은 얼굴이 빨개져 김일성동지의 눈치를 살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어쩔바를 몰라하는 취사원에게 웃음으로 인사를 받으셨다.

《마침 잘됐소. 그러지 않아도 출출하다 했는데 굉장하구만.》

김일성동지의 말씀에 취사원의 입이 쩍 벌어졌다.

《장군님, 여긴 없는것이 없습니다.》

장군님을 여기서 만나뵈옵고 치하까지 받아 훌 뜬 취사원은 원탁우에 통졸임을 놓으며 염량좋게 말씀드렸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빙그레 웃으며 취사원을 보시다가 강부관을 부르시였다.

《거… 우리거 가져오우.》

좀 있어 강부관은 커다란 벼짚망태기를 들고 들어왔다. 거기에는 노랗게 잘 익은 참외가 가득 담겨있었다.

《장군님, 그 먼데서 참외까지… 참왼 여기도 많습니다.》

취사원은 너무 황송하여 손까지 씩씩 비비며 《아야, 향기가 보통 아닙니다.》 하고 벙글거렸다.

《동무네 차린것보단 못하겠지만 우리 만경대할아버지가 가꾼거요. 김책동무, 오시오. 강건동무도…》

김일성동지께서는 제일 잘 익은 참외를 고르시려는듯 벼짚망태기아구리를 벌리고 내려다보시였다.

취사원은 얼어붙은듯 굳어있었고 김책은 《올 과일이 어떻습니까?》 하고 태연한 빛을 띄였고 강건은 젖어든 눈길로 김일성동지를 넋없이 우러러보았다.

《태풍때문에 좀 해를 보긴 했지만 과일도 그렇고 곡식작황도 괜찮다고 하오. 바쁜 구실로 나가보지는 못했소만… 》

이렇게 허두를 떼신 김일성동지께서는 정치위원회와 내각회의에서 토론된 문제들로부터 김책과 강건의 가족들 안부까지 말씀하신후 화제를 전선문제에 돌리시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상우에 널린 참외씨를 하나하나 모아놓으며 깊은 생각에 잠기시였다. 김책에게는 그 모아놓은 참외씨들이 피반령방어계선처럼 보였다. 멀리서 닭울음소리가 희미하게 울려왔다.

《장군님, 좀 쉬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귀중한 새벽을 눈붙이고 있어서야 되겠습니까?》

 

시가상공을 감돌던 희푸른 아침안개와 연기는 점차 설펴져 가면서 검고 푸른 고급의 기와지붕과 희고 붉은 담벽들을 드러냈다. 경복궁, 창덕궁, 덕수궁의 고색창연한 지붕이 해빛을 받아 번쩍였고 멀리 동대문이며 남대문이 어렴풋이 보이였다. 일터로 나가는 시민들의 거뭇거뭇한 모습이 세종로와 광화문쪽으로 련련 줄져 흘렀다. 간간히 꽃으로 단장한 전차들이 명랑한 종소리 울리며 장난감기차처럼 천천히 굴러갔다. 고성기에서 울려나오는 건드러진 노래소리가 전차의 종소리와 합쳐 활력에 차넘친 도시의 교향곡을 들려준다. 평화의 도시요 안정의 도시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북악산중마루에 오르시여 거의 한식경이나 아무 말씀없이 도시를 부감하고계셨다. 여기로 오르실 때까지만도 여러가지 복잡한 전선문제를 가지고 줄곧 묻고 말씀하시던 그이시였다.

김책은 다양한 감회가 엇드는 속에 김일성동지의 명상어린 고요한 모습을 지켜보았다.

지금 김일성동지의 심중에 자리잡아 끓고있는 사색과 감정은 무엇일가. 해방년의 그달, 미제침략군의 조선강점으로 이 땅이 남북으로 량분되게 되였을 때 분노에 뇌이시던 말씀.

《결국… 조국광복을 위한 우리의 목표는 절반밖에 못 이루어진 셈이요. 서울을, 남해의 다도해를 그리며 눈을 감던 전우들의 한도 못풀어주었소.》

그때로부터 5년, 5년만에야 서울에 오셨다.

장군님의 서울입성을 바래서 이 고도의 수십만인민들이 얼마나 애타게 기다렸던가. 45년 8월부터 그 이듬해까지 저 서울역은 장군님을 맞으러 밤이고 낮이고 인민들로 덮여있었다지 않는가.

《여러분, 김일성장군님께서 여기 오셨소!》

이렇게 한마디만 소리치면 온 서울이 달려올것이다. 눈물의 바다, 감격의 바다가 펼쳐질것이다.

《김책동무!》

김일성동지께서 조용히 부르시였다.

《서울해방전투에서 희생된 전사들의 묘는 어데다 썼습니까?》

《주로 서대문형무소 뒤산에 안장했습니다.》

《묘를… 돌보는 사람들이 있습니까?》

《그건 미처…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김책은 자책감에 얼굴이 화끈해졌다.

《좀 어렵겠지만 서울시의 대공방어를 위한 화력기재들을 보충해줘야 하겠습니다. 고사기관총과 고사포들을 여기도 좋고 저 빈민가들이 널린 인왕산쪽에다 많이 걸어놓고 적들의 항공습격을 막아야 하겠습니다. 우리 전사들이 피로써 지킨 인민들의 생명재산과 저 오랜 건축물들에 조그마한 피해도 없게 해야 합니다. 이것은 희생된 전우들을 위한 일이기도 합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시금 서울시가를 유유히 굽어보시다가 걸음을 옮기시였다. 그이께서는 경무대쪽으로 난 길가에 이르러 수행원들중의 군의국장을 부르시였다.

《동무네 병원으로 가봅시다》

김책은 시계를 보았다. 김일성동지께서 오전안으로 대전작전문제와 관련되여 정황청취를 하시겠다고 하여 작전일군들을 모이게 한 시간이 돼오기때문이였다.

《몇분 더 정황을 연구하라고 합시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벌써 김책의 심리를 알아차리고 웃으며 말씀하셨다. 김책은 자기의 부관에게 눈짓을 주어 병원에 먼저 가게끔 하였다. 군의국장은 어쩔바를 모르는 거동으로 김일성동지를 병원에 안내하면서 아직 신설중이여서 질서가 잡히지 않고 정리가 잘 안되였다는 등 자기비판식으로 말씀드렸다.

《나는 보건검열원은 아닙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이런 말씀으로 당황해하는 군의국장을 진정시키고 치료와 부상병취급에서 제기되는 문제들을 물으시였다.

병원마당에는 김책의 부관이 달려가 어떻게 해놓았는지 얼씬거리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접수과로 향하는 복도굽이로 돌아서시였을 때 간막이복도 저켠에서 웅성웅성하는 말소리가 들렸다. 군복차림을 한 일여덟명의 군인들이 복도로 나왔다가 뒤밀려들어가고있었다. 김책의 부관이 《최고사령관동지의 서울시찰은 극비》라는것때문에 퇴원해나가는 군인들을 도로 자기 방에 가있게 한것이였다. 그런데 촉기빠른 한 전사가 간막이쪽으로 물러서다가 김일성동지를 알아보았다.

《최고사령관동지!》

감격에 넘친 웨침이 그 전사의 입에서 터져나왔다. 그러자 간막이쪽으로 들어가던 군인들이 돌아섰다.

《장군님!》

《최고사령관동지!》

전사들은 꿈결같이 웨치며 달려왔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어푸러질듯 달려오는 전사들을 보시자 만면에 환한 미소를 머금고 껴안을듯 급히 마주가시였다.

《최고사령관동지!》

전사들은 눈물에 목이 메여 그이앞에서 정중히 인사를 올렸다.

그이께서는 매 전사들의 손을 따뜻이 잡아주시고 이름과 부대명을 물으시였다. 다 나아서 퇴원한다는 보고에 그이께서 못내 기뻐하시였다.

《그래, 병원생활이 어떠했소?》

《싫었습니다. 겨우 견뎠습니다.》

몸집이 류다르게 큰 전사가 눈물을 닦다 말고 큰소리로 대답올렸다. 그 말에 군의국장의 낯이 대뜸 거멓게 죽어들어갔다.

《왜? 치료가 좋지 않소? 식사가 나쁘오?》

《식사랑 치료랑은 좋습니다.》

《그런데-?》

김일성동지의 눈길에는 웃음이 넘실거렸다. 몸매가 큰 전사는 손으로 눈물을 닦고는 심각한 표정으로 말씀드렸다.

《장군님, 미국놈들이 자꾸 들어온다는데 저흰 공밥만 먹으니 누워도 바늘방석에 누운것 같았습니다. 빨리 그놈들을 족쳐야 하지 않습니까.》

《미국놈과 싸워봤소?》

《전… 못싸워봤습니다. 여기 로량진전투에서 부상당했습니다.》

《최고사령관동지, 전 싸워봤습니다.》

패기있게 생긴 52사에 있다는 하사관이 한걸음 나섰다.

《그래, 그놈들이 어떻던가?》

《영 겁쟁이들이고 바보들입니다. 빈 탄창이 달린 따발총을 내들어도 손을 번쩍번쩍 듭니다.》

《그렇다?! 그래 동문 몇놈이나 잡았소?》

《옛,… 많인 못잡았습니다. 열두놈밖에.》

《허 대단하오. 매 사람이 다 그렇게 잡으면 미국놈이 남아날가.》

그이께서는 수행한 일군들에게까지 웃음어린 시선을 주시다가 약간 시무룩해있는 몸집이 큰 전사에게 물으시였다.

《동무도 그렇게 할만 하오?》

《장군님, 자신있습니다.》

《동문 언제 입대를 했소?》

아직 군대생활이 몸에 익지 않아보였기때문이였다.

《6월 27일에 입대를 했습니다.》

《입대전엔 뭘했소?》

《평남관개관리소 로동자였습니다. 그전엔 떼도 몰고… 전 힘으로도 그놈들 문제없습니다. 그놈들은 다리힘이 약하기때문에 육박전을 할 때 안다리를 걸면 영낙없답니다.》

《연구를 많이 했구만. 허허.》

김일성동지께서는 전사의 너무나도 순진한 대답에 웃음을 터치시였다. 약간 덤빌사 하면서도 크고 어진 두눈에 무척 성실해보이는 그 전사가 무척 호감이 가셨다.

《동무 54사 18련대라고 했지?》

《옛, 2대대 3중대 중기분대 대원 전호근.》

《전호근이라. 동무네 18련대가 싸움을 잘하지. 당원부대니까.》

김일성동지께서는 매 전사들에게 다시는 부상당하지 말고 잘 싸우기를 바란다고 하신 후 그들과 헤여지셨다. 한 방문앞에 이르렀을 때 군의국장이 딱한 얼굴로 그이앞을 막아섰다.

《장군님, 여기도 보시겠습니까?》

《보면 안되오?》

《중상자호실이여서 그럽니다.》

《중상자?! 봅시다.》

 

복심은 귀익은 음성에 또 무슨 꿈을 꿨는가 생각하며 눈을 떴다. 우유빛 갓을 씌운 전구알이 두개로 되였다가는 세개로 되고 다시 두개로 돌아갔다.

그는 여드레째 반생반사의 사태에서 헤매였다. 그러나 의식만은 거의 언제나 똑똑하였다. 간호원들이 자기 안주머니에 있던 돈봉투(송기덕이 주고간)를 꺼내들고 《야, 이 동문 살림차비를 알뜰히 했구나…》 하고 귀속말로 속삭이던것까지 들었으며 또 지금껏 기억하고있었다. 그리고 자기가 전선에 나오며 송기덕동무한테 절대로 지지 않겠다고 맹세한것을 결국 실천하지 못하게 됐다는 생각까지 해나갈수 있었다. 그러나 회진때마다 서로 나누는 의사들의 말이나 표정을 보면 자기는 이 세상사람이 아닌것 같은 느낌이 들 때도 많았다.

(누구실가?)

유난히 굵고 우렁우렁하신 음성… 그 음성은 죽어도 잊지 못할 평천리의 폭격현장에서 들어본 음성이 아닌가.

(이게 의사들이 말하던 《환각》이라는거지.)

복심은 눈을 감았다. 《환각》은 계속되였다. 인기척과 웅성거리는 소음이 고막에서 맴돌았다.

《이 동무는 포격속에서 자기 몸으로 부상병을 막다가 중상을 당했습니다.》

조용조용한 목소리다. 언젠가도 이런 말을 들었다. 복심은 《환각》에서 깨려고 눈을 떴다. 전구알대신 흰 위생복이 어른거린다. 또다시 《환각》이 온다.

근심어린 엄숙한 얼굴, 부드러운 눈빛… 이것은 《환각》일가. 복심은 눈에 정기를 모았다.

《아!》

소리는 목구멍에서 잦아든다. 무거운 산소마스크가 입을 가리우고있는것이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녀인이 자신을 알아보았음을 느끼셨다. 녀인의 눈까풀이 열렸다. 백랍처럼 흰 이마에 맺힌 땀방울이 더 커져가고 눈동자도 더 커져갔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천정에 붙어있는 선풍기가 움직이지 않는것을 보시고 창문을 열라고 하셨다. 그리고 허리를 굽힌채 녀인의 손목을 꼭 잡으시였다. 순간 녀인의 떨리는 눈시울로 맑은 이슬방울이 맺혀올라 귀밑으로 굴러내렸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손수건으로 그의 눈굽의 눈물을 닦아주셨다.

《힘을 내오!… 힘을!》

김일성동지께서는 누군가 가져다주는 의자에 앉아 근 한식경이나 녀인을 지켜보셨다. 녀인의 얼굴에는 홍조가 어리는듯싶었다.

그러다가 녀인은 다시 눈을 감았다. 그래도 김일성동지께서는 자리를 뜰념을 하지 않으셨다.

《의식을 또 잃었습니다. 이런 현상이 자주 반복됩니다.》

원장의 송구스럽게 하는 말을 듣고서야 자리에서 일어나셨다.

문가에서 한참이나 서서 돌아보셨다. 복도에 나오셨을 때 그이께서는 침통한 안색을 감추지 못하고 그 녀인의 상태에 대하여 물으시였다. 원장은 김일성동지께서는 모든것을 다 알고계신다고 생각한탓인지 김책이로도 모를 라틴어까지 써가며 수술경위와 지금까지의 치료과정을 말씀드렸다.

녀인은 혈관과 신경조직의 손상과 심한 출혈로 극도로 쇠약해진데다가 혈압이 생명위험선에 떨어졌기때문에 치유전망을 속단하기 어렵다는것이였다. 김일성동지의 안색이 눈에 띄이게 어두워지셨다. 그이께서는 엄하신 눈길로 원장을 보시였다.

《사람은 그렇게 죽음에 쉽게 굴하는것이 아니요. 동문 저 녀자가 지금 살기 위해 얼마나 애쓰는지 아오?》

《장군님, 저희들이 꼭 살려내겠습니다. 그 동문 이제까지 의식을 회복한 상태라도 감정반응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동문 분명히 최고사령관동지를 알아뵈옵고 반응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치료에서 하나의 전진입니다.》

《허허, 그것이 정말이라면 얼마나 좋겠소. 원장동무, 나를 위안할 생각을 말고 한번 기술을 총동원해보시오. 이건 최고사령관의 명령으로 생각해도 좋고 내 개인의 부탁으로 들어도 좋소.》

《최고사령관동지, 명령대로 꼭 살려내겠습니다.》

《고맙소.》

김일성동지께서는 심려어린 안색으로 김책을 돌아보시였다.

《그 동무를 모르겠소?… 평천리 폭격때 만났던 녀자요. 리복심이라고…》

《네?!》

그때 김책이 받은 충격은 이만저만 크지 않았다. 김일성동지를 모시고 사업하는 과정에 그이의 비상한 기억력에 늘 감탄하는 그였으나 산소마스크로 얼굴절반을 가리다싶이 한 녀성을 대번에 알아보신데는 놀라움을 금할수 없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잠시 생각에 잠기셨다가 가슴아픈 어조로 말씀하셨다.

《남편한테 소박당한 녀자요. 그 남편이라는 동무를 찾아봐야겠소. 54사 18련대에 있는데 이름이 송기덕이요. 내 한번 만나본 동무같소.》

《장군님, 제가 그런 사람을 만났댔습니다.》

김책은 오산전투장에서 만났던 중대장을 상기하였다.

《그 사람을 꼭 찾아야겠소.》

김일성동지께서는 가볍게 한숨을 쉬고 천천히 걸음을 옮기시였다.

《중앙청》마당에 이르신 그이께서는 뒤따르는 차에서 내리는 영혜를 보시자 강부관에게 조용히 말씀하시였다.

《이제 저 오영혜를 시켜 희생된 전사들한테 가져갈 꽃다발을 만들어야겠소. 가는것은 오영혜와 함께 동무가 내대신 가주오. 여기 동무들께 부담끼칠 생각 말고 조용히 해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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